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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 역사를 왜곡한다고? 과연 그럴까 | 역사 2013-03-3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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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주한 저
위즈덤하우스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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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검증을 통과시키자, 지난 27일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 낸 논평입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아예 서한을 보내 "일본 사회과 교과서에 독도 기술이 확대되고 가해자로서의 역사인식이 희박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교과서 기술에 반영됐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사왜곡, 일본 '전유물'? 아닌 것 같은데...

'독도는 우리 땅'은 불변입니다. 하지만 과연 일본만 우리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뉴라이트 핵심 인물이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독도를 일본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며 일본 극우와 근현대 인식이 비슷합니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역사의아침

 

그리고 박근혜 정부들어 '5.16군사반란'을 '쿠데타'로 부르지 못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낸 서남수 교육부 장관입니다.

문제는 현대사만 왜곡된 것이 아니라 고대사(고조선·한사군·임나일본부)가 주류 역사학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제식민지사관 시각을 가졌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는 '한국'과 '역사학'이 없다. 중국의 변방사나 일본의 지방사로 한국 역사를 보니 한국이 사라졌다. 역사적 사실에 성실하기는커녕 사실을 외면하거나 과장하고, 견강부화하거나 억단해서 진실을 매몰시키니 '역사학' 없다."-<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이주한 지음 ㅣ 역사의 아침 펴냄) 서문에서

주류 역사학계가 한국사를 중국 '변방사'나 일본 '지방사'로 봤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지만, 이주한은 한국사 '거두'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와 그의 후예들이 얼마나 한국사를 왜곡시켰는지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를 죽인, 조선사편수회 이어받은 주류 역사학

몇 년 전 한국사가 필수과목에서 빠져 논란이 빚어지고, 아직도 수능은 선택과목이라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사는 필수였고, 학력고사(1986년 학년도)는 20점짜리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태정태세문단세...'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 다음백과사전

 

아직도 한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니 제대로된 역사관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대사가 일제식민사관 지배를 받고 있는 주류 역사학계 주장이 '정설'이 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책이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입니다.

"1945년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로 승계되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의 손에 청산되면서 한국사 원형과 진실은 철저하게 부관참시 당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는 이른바 '실증주의'로 치장되었고, 조선사편수회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과학적 역사학은 '신념이 앞서 관념론, '국수주의'로 전락했다. 그렇게 한국사는 죽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단재 선생은 또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해석했습니다.

김삼웅 "단재 고대사만 제대로 연구했다면, 중국 역사왜곡 없을 것"

이같은 인식은 밖으로는 아의 단위인 우리 민족과 국가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안으로는 각 시대 다양한 역사적 모순은 투쟁을 통해 사회발전 한다는 변증법적 역사관입니다. 이주한은 "주류 식민사학자들은 단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그들과 단재는 양립할 수 없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본다"면서 "일본 극우파 시각으로 한국사를 본다. 그리니 양립할 수 없다"고 질타하면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지은 <단채 신채호 평전>(시대의 창)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한국 사학계가 단재의 고대사만 제대로 연구하고 고증에 충실해왔다면 감히 중국이 요즘 같이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의 망설을 들고 나오지 못하였을 터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재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과 100년 앞을 내다보는 진정한 사가의 진면목을 보인다."

 단재 선생은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을 매우 강조했다.
ⓒ 역사의 아침

 


이주한은 단재 선생이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면서 "주체적 관심이란 누가,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로보는가 문제"라고 합니다. 단재는 중화주의나 일제 식민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가장 먼저 경계했다고 이주한은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침략과 지배의 관점에 서면 반드시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란 것이 단재 신채호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식민주의사관은 일제 한국 침략과 지배 정당화 합리화"

그럼 식민사관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생겨났을까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역사학)는<식민사관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서 "일제 어용학자들은 한국사 연구를 '한국침략'이라는 그들 정책에 맞춰 진행시켰다. 따라서 식민주의사관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를 한국의 역사로 정당화 합리화 위해 고안해 낸 역사관"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근거해 이주한은 "이만열 분석은 정확하다"며 "침략과 지배를 위해 고안함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일 수 없다. 학문이 아니고 정치이고, 이론이 아니라 폭력이다"고 식민주의사관을 맹비난합니다.

옛 서독 대통령 바이체크가 2차 대전 패전 40돌 기념식에서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극복이 아니다. 과거에 눈을 감은 사람은 현재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주한도 말합니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끔 한다. 기억이 없는 인간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다.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얼마든지 농락되고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할 수 있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책 서문)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친일파와 수구기득권세력이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식민사관은 역사만 아니라 현대사 전반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식민사관 논란은 단순히 역사학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관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함축한 것이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젠더·교육·법·예술 등 사회 전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지는 않겠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없다. 식민사관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본문에서)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에 있다고?

'한사군'(낙랑·진번·임둔·현도), 시험 때마다 많이 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사군 위치를 두고 주류사학계는 한반도 서북부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주한은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이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위만조선의 항신들이 제후로 봉해진 지역
ⓒ 역사의 아침

 


 주류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한사군,임나일본부의 위치와 실제 위치
ⓒ 역사의 아침

 


서기전 1세기경 <사>》나 서기 1세기경 <한서>, 3세기 후반 <삼국지>, 5세기경 고대 남송의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사료들에서 한사군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1차 사료를 해석한 2차 사료보다 1차 사료를 우선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학의 기본이다. 중국 고대 사료는 일관되게 한사군 중심지인 낙랑이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가 지금의 난하라는 사실도 중국 고대 사료에 근거해 어렵지 않게 비정할 수 있다. "패수가 압록강이다, 청천강이다" 하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그렇다. -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이나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아직도 첨예한 논란입니다. 그러므로 이주한 주장이 완전한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산군 위치가 어디인지에 따라 중국 동북공정을 반복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

이주한 같은 주장을 '국수주의'로 비판할 수 있지만, 이주한은 "하나의 정설만 있어야 하는 한국사는 이미 역사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다"면서 "이미 답이 다 정해져 있으니 연구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떤 학문이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논쟁과 토론을 해야 합니다. 사료를 통해 상대방의 역사 해석을 반박할 때만 한국사는 발전하고 우리 사회 역시 진보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역사관이다. 역사관은 한 사람의 종합적인 인식체계이자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시도한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순간 영혼의 소리에 집중해보자. 우리의 사고와 의식, 일상을 지배하는 가치를 각자의 장에서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꿈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연대의 장으로 나오자. 모두를 위한 역사는 없다. 일제 식민사관에 균열이 생길 때, 우리는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변혁의 물결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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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자유인에서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 정치 2013-03-1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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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저
생각의길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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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되었다면 2012년 12월 48%는 멘붕이 아니라 광화문과 온나라 곳곳에서 '브라보'를 외치며 단맛나는 술잔을 나눴을 것이다. 물론 51%는 멘붕에 빠져 쓰디쓴 술잔을 들이켰을 것이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란 부르는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정했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참 의미없는 것이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나왔다면 나라꼴이 이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10년 동안 정치에 몸담았던 유시민은 지난 달 "직업으로서 정치이 떠난다"며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정치는 글쓰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라고 했다. 글쟁이다운 답이다. 그러면서 정치는 자신에게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멀쩡한 사람도 정치에 발을 내딛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종종본다. 정치라는 환경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가면을 벗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글쓰기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곧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이유인게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본문에서)


왜 정치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직시할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없을까?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을 비판하고 채찍질 하기보다는 남에 비판하기를 더 좋아하고, 더 잘한다. 정치인은 더 그런 모양이다.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됐는데 야당과 협상과 타협보다는 굴복을 요구하면서 '난 참좋은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그분을 보면 알 것같다. 그리고 정치란 내면을 채우기보다는 소모하는 것이라는 유시민 주장은 헛말은 아니다.

유시민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정치판을 야수의 탐욕이라고 표현한 유시민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켠이 짠해진다. 유시민은 '노무현'처럼 반대세력과 맞서 싸운 적이 많다. 이런 그를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은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평했다. 김 전 의원 말에 유시민도 "나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며 "맞다'고 인정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비판하는 이들도 생겼지만, '노빠'가 '유빠'로 거듭날 정도로 열렬 지지하는 이들은 '노무현 다음은 유시민'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 나도 포함된다.

하지만 유시민은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하게 만든 정치를 떠났다.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유시민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짠한 이유다. 하지만 그의 변명을 듣다보면, 짠한 마음을 거두어야 할 것 같다.

"정치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중략)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들어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인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본문에서)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한 정치인이 과연 시민들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지난 선거때도 단일화는 '대의'였다. 유시민의 말을 꼽씹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존 칼빈(장 칼뱅)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난 개신교 목사이면서 '칼뱅주의자'다.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개인을 사유와 행위의 주체라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단주의는 배결될 수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칼뱅이다. 유시민이 집단주의 또는 전체주의라고 지목한 공산주의자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와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다.

폴 포트를 전체주의자로 규정한 것에는 쉽게 동의했지만, 칼뱅주의자인 나에게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뱅은 전체주의자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은 솔직히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하지만 그의 비판은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조직화한 지성적 금욕주의자 칼뱅의 동기는 고상했다. 그가 모든 '죄인'에 대해 냉혹했던 것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도덕적 품성을 길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계속되는 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포정치를 밀고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학적 정치적 견해에는 오류가 없다고 확신했다. 장 칼뱅은 현란한 신학 이론으로 무장한 광신자였다.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정신과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가 나타나 칼뱅의 공포정치를 완전히 끝내는 사상의 혁명을 이룰 때까지 제네바 시민들은 무려 2백 년 동안 자유와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진 무덤 속에서 삶의 의미와 환희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본문에서)

'광신자', '사이코패스','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으로 죽였다'같은 말은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당연히 가르칠 마음도 없다. 아마 유시민 주장에 칼뱅주의자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칼뱅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청교도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미국을 건국하고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나온 것을 안 다면 유시민이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칼뱅주의자만 아니라, 개신교의 절대주의와 배타주의는 태생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거북하지만, 칼뱅주의자들은 유시민의 신랄한 비판을 새겨야 할 것이다.

"직업으로서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올까? 유시민은 지난 2007년 8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연인 유시민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별로 안 행복하다. 더 행복한 길이 다른 데 더 있는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시민에게 정치는 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자기가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지기 어렵다. 내가 선출직 공직자로서 갖는 책임감이 있는 한편, 자유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늘 후자가 우세한 분위기에서 정치생활을 했다면 최근 2년 동안에는 책임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책임의식이 주도하고 있다. 자유의 길은 접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의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혹독한 상사가 될 수 있고, 학교에서 인기짱인 남자가 애인에겐 폭력남이 될 수 있다. 나는 공직자로서 마땅한 페르소나를 표출하지 못했다. 마음의 힘이 곧 내공인데 그런 점에서 박근혜씨를 보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초인 수준이다. 내가 배워야 할 점인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필요한 강점이다."-2007.08.22<오마이뉴스>"내가 싸가지 없다고? 맞는 말이다. '유시민 지지' 떳떳히 말 못한 '유빠'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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