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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지망생들에게 | 耽讀글방 2007-11-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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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의 무기

김남주
창비 | 199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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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지망생들에게

 

대통령지망생들이여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나니

고민일랑 말거라 대머리라고

가발술이 와서 귀밑까지 덮어줄 것이다

실망일랑 말거라 곰보딱지라고

화장술이 와서 반반하게 골라줄 것이다

절망일랑 말거라 말더듬이라고

웅변술이 와서 유창하게 떠들어줄 것이다

근심일랑 말거라 뱃속이 시커멓다고

조명술이 와서 하얗게 칠해줄 것이다

걱정일랑 말거라 평판이 나쁘다고

조작술이 와서 여론을 바꿔줄 것이다

낙담일랑 말거라 청중이 안 모인다고

동원술이 와서 긁어모아 줄 것이다

낙심일랑 말거라 돈이 없다고

조폐술이 와서 찍어줄 것이다

낙담일랑 말거라 표가 안 나온다고

컴퓨터가 와서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 동시대의 보통사람들이여 대통령 지망생들이여

곰보여 째보여 언청이여 애꾸여 대머리여

귀머거리여 말더듬이여 눈봉사여 사기꾼 협잡꾼 정상모리배여

장군이여......

지금은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나니

대통령이 되고 싶거든

쓰잘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고 가서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 가서

백악관에 가서 청와대로 가는 허가증이나 하나 따가지고 오거라

차기 대통령감에 아무개라고 큼직하게 찍힌  (김남주 '대통령지망생들에게')

 

김남주님의 시가 기억납니다. 청와대 가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오늘 김남주님이 지은 '대통령지망생에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청와대 가기 위하여 백악관에 허가증 받으러가는 후보는 없습니다.

 

언론은 대통령 자격와 능력, 공약, 정책, 신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김남주님 말씀처럼 '모리배, 협잡꾼'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덕성에 흠결이 엄청나고, 가진 자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추구하면서 서민과 낮은 자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는 분들이 나라를 살리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시대입니다. 대머리도 가려주고, 돈도 찍어주고, 조명술이 밝혀주고, 최선 마이크가 목소리를 책임져줍니다. 하지만 후보가 없습니다. 후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후보 자체를 볼 수 없습니다. 진심이 없습니다. 감언이설은 잘하지만 진실을 담은 말은 없습니다.

 

외교은 당당하고, 사회정책은 약자를 배려하고, 경제정책은 비정규직을 돌아보고, 교육은 평등을 지향하고, 한반도는 평화를 구축하고, 여성을 위하며,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정책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대통령지망생 여러분. 정말 김남주님이 쓰신 '대통령지망생들에게'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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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진리 | 耽讀글방 2007-11-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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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저
해냄 | 199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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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진리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좋아져도

사람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정보와 서비스를 먹고는 못 산다

이 몸의 진리를 건너뛰면 끝장난다

 

첨단 정보와 지식과 컴퓨터가

이 시대를 이끌어간다 해도

누군가는 비바람치고 불멸 쬐는 논밭을 기며

하루 세 끼 밥을 길러 식탁에 올려야 한다

 

누군가는 지하 막장에서 매캐한 공장에서

쇠를 캐고 달구고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선가 나 대신 누군가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몸으로 때워야만 한다

 

정보다 문화다 서비스다 하면서 너나없이

논밭에서 공장에서 손털고 일어서는

바로 그 때가 인류 파멸의 시간이다

앞서간다고 착각하지 마라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82쪽)

[출처]사람만이 희망이다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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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은 그대 마음 | 耽讀메모 2007-11-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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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저
해냄 | 199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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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그대 마음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사람은 조금도 고집하는 마음이 없어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내 마음은 따로 없어

그대 마음이 내 마음

 

내 슬픔은 따로 없어

그대 슬픔이 내 슬픔

 

내 성공은 따로 없어

그대 웃음이 내 성공

 

내 변화는 따로 없어

그대 성장이 내 변화

 

내 이념은 따로 없어

그대 생각이 내 이념

 

내 갈 길은 따로 없어

그대 올 길이 내 갈 길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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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 예술 2007-11-2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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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김영진 저
책세상 | 2001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대학 다닐 때 매주 영화를 두 편씩 본 적이 있다. 두 편 동시 상영을 비롯하여 '예술영화'라는 것까지 닥치는대로 보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니 일년 100편 정도였다. 나이를 먹어면서 영화 보는 편수도 조금씩 줄어 요즘은 일년에 한 두편이다. 올해는 '화려한 휴가' 한편 밖에 보지 못했다. 영화를 깊이 알기 위해서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이들을 만나보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다.


 


김영진은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을 통하여 여러 장르 영화를 말한다. 영화는 매우 친숙하지만 각자 취향에 따라 좋은 영화, 나쁜 영화로 설명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좋은 영화 기준은 영화 자체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영화를 비평하는 기준도 다르다.


 


'에로티시즘, 포르노'를 맨 앞에 두었다. 에로티시즘은 이제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영화도 포르노에 버금가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되며, 본다. 2000년 벽두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한 <거짓말>은 장선우 감독이 포르노그라픽 형식으로 위장해 사회를 고발한 영화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미추와 선악과 분별의 경계를 넘어선 놀이'인 영화 <거짓말>은 변화하지 않는 사회를 조롱하면서 퇴행적인 즐거움에 빠져버린 후에 진흙 속에서 연꽃을 보자는, 부처의 가르침 뒤에 숨어버리는 영화일지도 모른다."(18-19쪽)


 


장선우 감독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관음증을 겉으로는 깨끗한척 음란성을 초월한 인간내면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사회 어떤 구성원들이 <거짓말>를 음란영화로 매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포르노그라피적인 영화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만이 참된 영화로 생각하는 이들을 향한 일갈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노! 사실 말만 들어도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한다. 정의를 다 다르게 내릴 수 있지만 30쪽 움베르트 에코가 내린 정의 "포르노의 특징은 지져분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는 데 있다." 동의하고 싶다. 나를 자극하고 성에 대한 감흥과 감동이 아니라 지겹다는 것을 느낄 때 그를 포르노라 부른다. 에코 다운 정의이다.


 


포르노 여성을 비하고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라 여성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도덕적 순결주의와 이들이 함께 포르노 반대를 외치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 앞에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가?


 


'예술 영화', 과연 예술과 영화는 무엇인가?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짧은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김영진이 예술과 영화의 관계를 조금은 설명하고 예술 영화를 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영화만 '예술영화'라 하는 것인가? '예술미술, 예술음악, 예술 문학' 이런 단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왜 영화만 '예술'을 자기 이름 앞에 넣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을 통하여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통찰을 담은 영화가 예술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말하고 있지만.


 


김영진은 홍상수 감독을 말하는데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세부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은 우리 영화에 많은 도전을 준다. <강원도의 힘>에서 대학 교수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픈 여자에게 오럴 섹스를 강요한다. 홍상수 영화는 성교할 때만에 극적인 순간이다. 앞뒤가 맞진 않는 부분도 많다.


 


"홍상수 영화는 조각난 이야기를 퍼줄 풀듯이 관객으로 하여금 손수 재조립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꿰어맞추어도 결국은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일상, 빙 둘러 순화되는 일상의 감옥을 말하고 있다."(81쪽)


 


우리 일상을 조각난 퍼즐과 같다.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 상당히 혁신적이라 느낄 수  있지만 홍상수 영화가 혁신적이기보다는 우리 인생이 혁신적이지 않을까? 예술영화, B급영화 따위의 장르 구별이 있지만 이는 구별하고자는 주장일 뿐 영화는 그 자체로 우리 일상을 말하고, 인간을 말하고 있다.



영화는 근대 예술이 나은 선물이다. 영화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말한다. 한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지, 주연배우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하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자기를 말하는 배우와 영화를 보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영화가 어떤 장르이든지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영화가 이것을 담지 못하면 우리는 영화를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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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耽讀글방 2007-11-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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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박현찬 공저
예담 | 200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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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70쪽

 

문자는 다 같이 쓰는 것이지만 문장에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법이야.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96쪽

 

다섯 자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생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106쪽

[출처]<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70, 96,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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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 문학 2007-11-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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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최기숙 저
책세상 | 200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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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로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영악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굉장히 낯설어 한다. 어른들 세상이 더럽고, 잔인한 세계이기에 자기와 다른 하얀 종이처럼 깨끗하기를 원한다. 이런 생각은 오늘만 아니라 우리 옛 이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옛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둘러싼 폭력성, 어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많이 보여준다. 계모의 질투, 가난한 어머니를 꾀어 떡과 옷까지 빼앗고, 어린이까지 잡아 먹는 호랑이, 나이든 부모를 위하여 어린 자식을 죽이는 일 따위를 많이 볼 수 있다. 옛 이야기들을 모아 어린이의 세계와 힘, 의미를 살펴본 책이 최기숙이 쓴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이다. 


 

최기숙은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을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규정하고 거세하였는지 말하고 있다. 거세란 말은 강제성과 폭력성이 개입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 방법이란 구전설화를 통한 설명이다.

 

'해와 달 오누이' '여우누이' '달래나보지' '오누이힘내기' '아기장수' 따위가 나오는데 그 중 '아기장수'를 살펴보면 아기와 장수가 어울릴 것 같은가? 대부분 어른이 장수가 된다. 아기장수라 함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아기가 어른보다 힘이 세다. 그럼 그는 제거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자기와 같은 존재, 존엄한 존재, 인격을 지닌 자로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아기장수'라는 단어는 '아기'와 '장수'라는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통해 존재론적적 모순을 표상한다. 아가장수는 아기라는 현실태 속에서 장수라는 가능태를 표출하는 존재다. 이러한 아기장수는 가족들에게 위협적이며 동시에 경외로운 존재로 인지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질성은 가족과 주변인들로 하여금 그를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수용하지 못하도록 이끈다."(본문 32쪽)
 
아기장수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한다. 어른보다 우위에 선 아기는 제거되어야 한다. 어른에 순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른에 종속되어야만 어린이답다. 아기장수가 기존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어른, 부모는 수용할 수 없다. 꿈은 사라져버리고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어른이 말하는 바를 따라가야 한다. 어린이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어른이 주체가 되는 사회구조 속에 갇혀 사는 비극적 희생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시대 어린이들도 어른, 부모가 만든 구조 속에 살도록 강요받는다. 어린이는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부모와 어른이 만들어 준 꿈을 이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어린이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꿈을 이루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어른과 부모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희생당하는 어린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지혜로운 어린이가 있음을 말한다. 최기숙은 어린이는 무엇으로 지혜로운가에서 "어린이는 순진무구한 놀이를 통해 어른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대한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는 심각한 삶이 어린이에게서는 명쾌한 한판의 놀이로 다루어진다"고 한다.
 
'머슴장가노내기' '어린이가장' '아버지를 구한 아들의 지혜'를 통하여 어린들이 슬기를 통하여 어린이가 얼마나 주체적인지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를 구한 아들의 지혜는 원님이 백셍에게 한겨울에 복분자를 구해 오라고 명령한다. 복분자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뱀에 물렸다는 것이다. 원님은 한겨울에 뱀이 어디있느냐고 묻고 화가 나자 수탉이 나은 알을 사오라고 명령한다. 불합리한 일이지만 항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단번에 푼다, '되묻는' 방식이다. 원님을 찾아가 아버지가 간밤에 해산을 해서 전하러 왔다고 한다. 남자가 어떻게 알을 낳느냐고 원님이 묻자 아이는 그럼 어떻게 수탉이 알을 낳느냐고 응수한다. 기만적 명령과 행동에 기만적 응수를 통하여 어린이는 문제를 해결한다.
 
기만과 폭력적인 어른들을 기만을 통하여 응수하는 어린이를 보여주는 지혜담 이야기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존경할 만한 어른은 없고, 연약하고 비굴한 어른 세계만이 가능할때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한다. 아예 어린이의 순수함을 벗어던지고 어른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희생담과 지혜담 이야기 모두가 어린이를 강요하고 억압하고, 영악한 어른을 영악한 방법으로 넘어선다. 어른을 중심으로 어린이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희생담, 지혜담 둘 다에서 아직 주체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전설화는 어린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어른이 만든 이야기다.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의도가 숨어 있다.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구전설화에 나타난 어린이의 세계와 힘, 의미와 기대를 통하여 '어린이'와 '어린이 이야기'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최기숙은 전래민담에 대하여 생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한 전래민담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래민담의 어느 한 텍스트를 정전으로 채택하고 출판을 통해 그것을 고착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래민담의 세계는 현재적 의미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회와 인간상에 응답할 수 있도록 재해석 되어야 한다. 절대적을 옳고 그른 세계를 전수시키기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전래민담의 본원적 존재방식인 것이다."(본문 174쪽)
 


옛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읽을 것이다. 지금 어린이가 어른,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 아이들에게 자기가 읽었던 옛 이야기를 읽게 한다. 자신이 강제적으로 세뇌되었던 어린이 상을 또 다시 강요하는 비극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어린이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꿈을 이루어가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강요된 꿈은 또 다른 강요를 낳게 된다. 이는 비극이다. 어른과 어린이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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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을 노래한 사람 | 인물 2007-11-2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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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랭스턴 휴즈

밀턴 멜저 저/박태순 역
실천문학사 | 200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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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낯설 다. 랭스턴 휴즈(1902-1967)에게는 흑인 문학의 거장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1902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화물선 선실보이와 같은 하층 직업을 전전했지만 삶에 대한 연민과 꿈을 잃지 않았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았음이 어둡지만 따스한 그의 작품 속에 잘 드러난다. 한때 부친의 강요로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이 아니라 할렘가와 술집들을 떠돌며 흑인들의 삶과 비애를 몸으로 배웠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랭스턴 휴즈는 꽤 알려졌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는 흑인만이 천부적으로 지녀온 흑인성의 정수 '소울'에 대하여 제일 처음 자긍을 노래한 시인이다.


 


'미국인이지만 그러나 흑인'.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했던 흑인들이 흥얼거리는 재즈를 통하여 고통과 애통, 곤혹스러게 살았던 흑인들을 노래했다. 고통과 애통이 배어있는 인간이면서 인간답지 못했던 흑인들의 흑인성, 하지만 어떤 백인 문화보다도 더 위대했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를 드러내고자 전심을 다했다.


 


사람의 사람다움이 인간 삶의 기본이듯이 휴즈는 흑인의 흑인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고, 긍지로 여겼다. 흑인의 흑인다움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쳐 곤혹과 비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흑인들의 희망과 전진 진보를 위하여 미국을 돌아다녔다.


 


억압과 차별의 부당함을 읊었고, 희망을 노래했기에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그의 문학이 친근하게 읽혀짐으로써 '흑인문학의 외교관'이라 불리워졌다. 그가 남긴 시 몇 편을 소개한다.


 


<니그로>


나는 니그로


밤이 검은 것처럼 검고


나의 아프리카 한복판처럼 검다



나는 줄곧 노예


시저는 나에게 문지방 닦으라 했고


나는 워싱턴의 구두도 닦았다



나는 줄곧 노동자


내 손에서 피라미드 섰고


울워드 빌딩의 미장이 일도 했지



나는 줄곧 노래꾼


아프리카에서 조지아에 이르는 길에


내 서러운 노래 말고


랙타임(재즈)이 내 입에서 나왔지



나는 줄곧 희생자


벨기에 놈들 콩고 강에서 내 손목 자르고


백인들 미시시피 강에서 여전히 린치를 가한다



나는 니그로


밤이 검은 것처럼 검고


나는 아프리카 한복판처럼 검다.


 


<할렘 강 환상곡>



새벽 두시, 홀로
강으로 내려가 본 일이 있는가
강가에 앉아
버림 받은 기분에 젖은 일이 있는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이미 죽은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
연인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 여자 나지 말았었기를 바란 일이 있는가


할렘강으로의 나들이
새벽 두시
한밤중 나홀로
하느님, 나 죽고만 싶어-


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결코 오지 않는다
 오늘에나 금년에는
 결코 오지 않는다
 순종이나 공포에 매달리는 한
  
 나는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당당히 두 발로 딛고 서서
 내 땅을 가져야 하는 권리
  
 나는 저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신물이 난다
 일이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자는 따위의 말
 내일이 되면 좋아진다는 따위의 말
 나의 자유는 나의 죽음 뒤에는 필요 없다
 내일의 빵으로는 나는 살 수가 없다
  
 자유는
 필요의 요구라는 대지 위에
 경작되는 힘찬 씨앗
 나 또한 여기에 살아 있으니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요구한다


 


"네가 네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너를 노예로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백인들은 항상 흑인들을 천하다고 여겼고, 세뇌했을 것이다. 세뇌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당연히 그렇다고 말이다.


 


랭스턴은 이를 깼다. 흑인은 노예가 당연하다는 생각을 철저히 깼다. 그는 흑인들에게 너 자신을 존중하라고 했다. 백인과 같이 흑인도 동일한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는 힘이다.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세뇌키는 것도 힘이지만, 흑인들 스스로가 자유인임을 깨닫는 것도 힘이다.


 


시인인 랭스턴은 이를 알았다. 흑인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힘을 알았다. 그는 흑인들, 나아가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존중할 것, 서로를 존중할 것을 노래했다. 존 프랭클린은 <노예에서 자유민으로>에서 랭스턴 휴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휴즈는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을 통해 '새로운 니그로'의 전통을 수립해 나간 작가로 저항시인이지만 울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는 작품을 써온 문학인이다. 그는 흑인의 흑인다움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감동적인 시편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소설과 희곡을 통해서 그의 문학적 기량을 발휘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평론과 산문 등 모든 분야의 글을 써 '할렘의 셰익스피어' 라 부르기도 한다."(출판사리뷰)


 


저항 시인이지만, 흑인의 질곡과 고통, 애통을 노래했지만 그는 비굴하지 않았다. 자학을 노래하지 않았다. 울분을 분노로 발하지 않았다. 그는 질곡과 고통, 애통, 울분을 흑인의 흑인다움, 곧 흑인이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노래했다.


 


"당신은 학생들에게 피부색의 한계를 초월하여, 누구든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본문 128쪽)


 


피부색의 한계를 초월하여, 누구든, 흑인일지라도 그가 사람이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랭스턴 휴즈는 지극히 낮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언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쓰이 않으면 안 된다."(194쪽)


 


그가 남긴 시편들을 보면 당당했고, 자유했다. 언어를 통하여 믿음과 자신감을 노래하였고, 사람을 노래했다. 비참함에 애통하고, 고통과 질곡에 스스로를 자학하는 이들에게 랭스턴 휴즈는 당당함과 자존감을 심어 주었다. 그는 정말 '사람'을 노래했다. 오늘 우리가 그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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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인문 2007-11-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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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저/이언숙 역
청어람미디어 | 2001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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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기도 구로(劬勞)지만 책 읽기도 구로(劬勞)다. 구로는 힘든 일이지만 태어난 생명을 만나는 순간 기쁨으로 변환다. 거룩한 거듭남이라 할까? 책 읽기를 너무 높이는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책 읽기가 시험성적과 비교하는 세태로 변질된 이 시대가 한 번쯤은 되새겨 볼 일이다. 책 읽는 방법을 자신만의 세계를 통하여 목표로 삼고 정리해가는 것은 인생을 깊이 있게 살게 할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으니 '다치바나 다카시'다.


 

그는 1940년 일본 나가사키 현 출생. 1964년 도쿄대학 불문과 졸업. <문예춘추>에 입사하였다가,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문예춘추> 11월호)을 통해 수상의 범법 행위를 파헤쳐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사회적 문제 외에 우주, 뇌를 포함한 과학 분야에까지 집필 범위를 넓혔다. 저서로는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일본공산당연구>, <정신과 물질>(공저), <거악 vs 언론>, 따위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다. 지독한 수집광, 편집광, 기록광이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통하여 책 한 권을 쓴다. 어찌 구로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고, 어떻게 읽었는지 말한다. 그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하여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말한다.


 


"이제는 오직 읽는 일만 남아 있다. 우선 가벼운 개설서부터 읽는다. 교과서적인 입문서를 읽는다. 한 권을 읽고 나면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면서 두 권째부터는 읽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정독할 필요는 없다. 메모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너무 의욕이 앞서게 되면 분명 도중에 좌절하고 만다. 메모를 하면서 정독을 하면,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도 이틀씩 걸릴 수 있다.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입문서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 치우는 편이 낫다. 메모를 하지 않아도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 다른 책에서도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머리속으로 들어온다. 메모를 하는 대신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두는 방법이 더 좋다. 그 다음에는 색인을 참고하면 된다. 그리고 책은 거칠게 다루는 것이 좋다. 나중에 헌 책방에 팔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보겠다는 식의 구두쇠 발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본문 77-78쪽)


 


다카시가 읽는 방법이 사실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무턱대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다카시씨의 책 읽는 방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소설과 수필이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 등 전문서적이다. 다카시는 소설과 수필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은 색다른 책 읽는 습관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저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볍게 읽고, 조금씩 정독하는 것은 전문서적을 읽는데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가볍게 읽는 것을 대충대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부담없이 읽지만 기초 윤곽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메모와 반복을 통하여 책을 거칠게 다루라는 조언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81쪽)


 


책이 비싸다는 논란은 계속있어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책은 비싸지 않다.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만나다면 값어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고급카페에서 커피 한 잔 값, 외국 유명 커피회사 커피 한 잔 값을 생각해보면 책 값이 비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책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 정말 이 말에는 수긍이 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하자면, 나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건 사람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든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책을 읽지 않을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대학에 지속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일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충고 한 마디! 책에 쓰여있다고 해서 무엇이건 다 믿지는 말아라. 자신이 직접 손에 들고 확인할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말아라. 이 책도 포함하여."(285-286쪽)


 


정말 책 속에는 길이 있을까? 무턱대고 읽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책 읽기를 구로처럼 여긴다면 분명 책에는 길이 있다.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공간과 환경, 사람은 지극히 일부다. 그들만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책을 통해서는 더 많은 이들, 문화, 사회, 경제, 정치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다카시도 말한 것처럼 책이 절대진리는 아니다. 책 읽기가 구로라 한 이유는 저자와 대화하고, 저자가 한 말을 무조건 믿거나 따르지 말고 자기 사상과 견주어 비판하고, 되새김질 하면서 자신만의 사상으로 체화해야 한다. 고전을 읽었을 때 고전 그 자체를 절대인양 받아드려 오늘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지 말고, 재해석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그의 책읽기는 대부분 글쓰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독서와는 구별이 된다. 하지만 능동적이고 구체적이며 동시에 아주 실용적인 독서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바쁜 시간 틈틈이 책을 읽어야 하는 대부분의 현대 직장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지금껏 즐거움만을 쫓아 책에 탐닉해 왔거나, 필요에 따라 책을 읽긴 했지만 닥치는 대로 책을 골라왔던 요령 없는 독서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출판사리뷰)


 


다카시는 고양이 빌딩라는 서고를 가지고 있다. 4층 건물(지상 3층, 지하 1층)이다. 지하 1층은 서고, 1층과 3층은 작업실, 2층은 사무실이다. 대지가 10평 밖에 안 되지만 얼마나 땅을 잘 활용했는지 서가 총 길이가 700미터로 3만5000권 정도 책이 꽂혀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198-203쪽에 고양이 빌당 내부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읽기, 사진 찍기, 음반 수집, 우표 수집 따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고자하는 목표를 정하고 철저한 준비와 관심, 치열한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함을 다카시는 보여준다. 대충대충하는 성격인 나에게 정말 많은 도전을 주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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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날의 지혜 | 耽讀글방 2007-11-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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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저
해냄 | 199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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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날의 지혜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토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기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밍이 되십시오. (61-62쪽)

 

 

큰 것만 찾는 우리다.

다리를 다리라 하면 될 것을 '대교'라 한다.

작은 차도 탈 수 있는데

큰 차를 탄다.

큰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출처]사람만이 희망이다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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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돈이 뒤바뀌면 신성모독이다. | 耽讀글방 2007-11-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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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나님이냐 돈이냐

쟈크 엘룰 저/양명수 역
대장간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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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그 자체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 그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부는 하나님의 축복과 별도로 생각할 수 없으며, 단지 축복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가 악하고 불의한 사람에게 돌아갈 때는 항상 추문과 저항이 있음을 구약성경이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 그 자체도 가치가 있다. 구약 성경은 이러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와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면 부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시편 기자와 욥이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부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징표와 그 징표의 본질이 뒤바뀐 것으로서, 이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볼 수 있다.

 

"볼찌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시편 73:12,13)

[출처]하나님이냐 돈이냐 77-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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