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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 사회 2007-08-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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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폭격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저/김남섭 역
한겨레신문사 | 200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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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교전 중인 영국군을 지원하던 미군이 그만 오폭을 하여 영국군 3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미군은 영국군을 결코 죽일 마음이 없었다. 오로지 탈레반을 죽이려는 목적이었을 뿐. 전쟁에서 폭격을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병법이다. 그러나 '폭격'은 억울한 죽음을 양산한다.
문제는 이 억울한 죽음의 대부분이 사실은 '오폭'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폭격의 역사>에서 이를 낱낱이 증명하고 있다. 폭격은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병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자 김남섭은 스벤 린드크비스트가 <폭격의 역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왜 그들은 습관적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고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주요 수단으로 이처럼 폭격에 매달리는가? 그 이유는 분쟁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이후의 지난 세계 분쟁의 역사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비행기가 발명되기 이전 17세기 말 공중으로부터의 폭격이 일부 선구적인 작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상상'되기 시작한 때부터, 20세기 끝자락에 있던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검토한 뒤 그가 찾아낸 거의 습관화된 폭격의 근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바로 서구인의 머리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타 인종 특히 비서구인에 대한 경멸감, 즉 인종주의이다." (본문 7쪽 인용)

전쟁에서 폭격은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최고의 전술이 아니라 인종주의가 핵심이라는 린드크비스트의 주장은 정말 충격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려 걸프전, 코스보 전쟁, 아프가니스탄, 수단의 폭격을 생각하면 이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전쟁 중 발생했던 '노근리 사건'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죽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한다면 서구인들의 폭격에는 인종주의와 자신들의 인종과 다른 인종에 대한 경멸감이 중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종주의가 내재된 폭격을 예로 든다.

"바로 다음날인 6월 28일, 전략공군사령부는 지원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한국 상공을 완전히 지배하였고, 중폭격기들은 처음에 어떤 저항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스탠튼 섬의 페리 호로 여행을 하는 것처럼 거의 방해 받지 않고 기지와 목표물을 오갔다. 승무원들의 직무 비행은 6개월 지속하였다. 6개월 동안 계속하여 그들은 실생활에서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한국인들의 머리 위로 죽음과 파괴의 비를 퍼부었다." (본문 273쪽 인용)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폭격을 표현하고 있다. 미공군은 방해받지 않았다. 방해받지 않았다면 북한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며 미공군은 폭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폭격을 했으며 그 대상은 북한군이 아니라 이름없는 한국민간인들이었다. 과연 서구인들의 머리에 하늘의 비처럼 내리는 폭격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폭격의 역사>는 국제법도 인종주의가 내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프랑스 지배에 항거하기 위하여 시리아에서 1925년에 반란이 있었다. 프랑스는 폭격을 지속하였다.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시리아는 전시 법규에서 무방비 도시들에 대한 폭격을 언급하면서 항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악당들'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 국제법 교수 퀸시 라이트는 두 가지 이론으로 분석을 하였는데 그 중 한가지 이론을 살펴보자.

"시리아는 다른 모든 비유럽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국제법 밖에 있다. 이 이론은 세 가지 종류의 인간들, 즉 문명인, 야만인, 미개인인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제법은 문명인들만 완전히 인정한다. 왜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은 일부 사람들, 예를 들어 범죄자, 천치, 혹은 매우 어린 아이들이 권리를 가질 수없듯이, 그와 똑같은 이유로 유럽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126쪽 인용)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폭격은 퀸시 라이트 교수의 분석처럼 동일하다. 오폭으로 영국군 3명이 죽자, 즉각 미군은 원인 분석과 잘못을 시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폭격으로 죽어갔던 수많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들의 죽음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폭격의 역사> '폭격' 단순히 전쟁 중에 일어나는 전략, 전술로만 여겼던 것을 비판한다. 폭격은 아군을 위한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자신들과는 다른 인종을 향한 폭격이며, 그들의 상황과 환경, 나이, 성별,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은 필요 없다. 그들의 이익만 된다면 폭격을 통하여 그들의 목적한 바를 이루면 그만이다. 폭격은 서구인의 비서구인에 대한 경멸, 곧 인종주의라는 그의 주장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폭격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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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에게 예의를 | 인물 2007-08-2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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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하트마 간디 GANDHI

요게시 차다 저/정영목 역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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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시 차다의 <마하트마 간디>를 읽었다.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김선일씨이다. 그가 살려다라고 외치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프가니스탄에 우리나라 사람 19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 2명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렸다.

<마하트마 간디>를 읽으면서 왜 이들이 생각났을까? 우리는 간디를 그저 '비폭력주의자'로 칭송을 하고 있지만 그가 비폭력주의자의 삶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간 비폭력의 삶을 왜 우리들의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지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간디는 누구인가? 함석헌은 이렇게 말했다.

"간디의 길이란 어떤 길인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른 대로 그것은 사티아그라하다. 진리파지(眞理把持)이다. 참을 지킴이다. 또 세상이 보통 일컫는 대로 비폭력운동이다. 사나운 힘을 쓰지 않음이다. 혹 무저항주의란 말을 쓰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름이다. 간디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항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죽어도 저항해 싸우자는 주의다. 다만 폭력, 곧 사나운 힘을 쓰지 말자는 주의다." (본문 35쪽 인용).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그는 불의 항거했다. 항거의 방법, 총과 칼, 인간의 생명을 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의와 진리 그 자체로 저항했다. 간디가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저항주의라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불의에 항거했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것은 간디의 삶의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요게시 차다의 <마하트마 간디>를 통하여 본 간디라는 한 인간의 삶의 결론 '지독한 신념'으로 살아온 여정이었다.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으로 그를 단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비폭력'이라는 말을 쓴다. 자신이 갈 수 없는 길이면 쉽게 말하면 안 된다. 간디의 삶의 여정을 존경한다는 말 한마디 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사적 이익의 도구로 사용한다.

간디는 인도의 힌두 계급의 카스트 중 제3의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바이샤 출신이다. 인도라는 국가는 사상 속의 국가는 존재하였지만 정치, 행정체제로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현실의 문제는 그가 영국 유학을 끝내고 남아프라카로 가기 전까지는 얼마나 자기를 노예화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남아프리카에서 경험된 인도와 인도인의 문제는 사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브리마 차리아, 사티아그라하는 그를 지독한 신념을 통하여 현실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설정하게 되며 자신의 삶이었고, 자신이 된다.

"우리는 폭력도, 유혈도, 사람들이 요즘 이해하고 있는 방식의 외교도 채택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진리와 비폭력만 채택했습니다. 무혈 혁명을 이루려는 이러한 시도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계는 유혈로 인해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세계는 탈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탈출구를 열망하는 세상에 탈출구를 보여주는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의 특권일 것이라는 믿음에 자부심을 자기고 있습니다." (본문 538쪽 인용)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오늘도 많은 이들이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입에서 정의와 평화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간디의 이 말이 그들에게는 어떤 뜻일까? 의미일까? 부시 미국대통령은 오늘도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철군하면 베트남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비폭력이나는 신념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될지라도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이었고, 원수라는 인간 본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용납할 수 없게 한다. 인도로 돌아와서 그가 보여준 사타그라하 운동과 자치운동, 인도 독립을 향한 열정을 무엇으로 담을 수 없는 그릇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원래 종교란 근원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기에 이슬람과 힌두종교의 하나를 위하여 싸웠지만 현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치성이 결국 분열의 씨앗이 되게 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된다.

비폭력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도 결국은 '폭력'의 이름으로 죽었다.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종교만큼 평화를 외치는 것도 없지만 종교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음을 비폭력주의자 간디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또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다. 인류의 비극이 종교에서 싹트고, 잉태되고, 만들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간 길을 우리는 왜 가지 못할까? 그러니 그를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비폭력주의자'라고, 치열한 비폭력의 삶의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간디를 입에 담는 것은 간디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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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호를 다시 탈 수 있을까 | 역사 2007-08-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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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도여행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저/박진희 역
궁리출판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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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처음 타 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경남 진주에서 경남 하동 송림숲에 소풍을 가는 형님 가족을 따라 갔었다. 그 때 비둘기호를 타고 갈 때 본 풍경이 지금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후 기차 여행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1994년 대학원 공부를 위하여 수원까지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96년까지 계속된 기차여행은 매주 계속되었기 때문에 아마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10여 년 전 기차여행은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최근 읽은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여행의 역사>는 3년간의 긴 기차 여행을 새롭게 떠올리게 하였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기차가 현재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겪고 노력을 하였는지 말한다. 기차가 사람들에게 처음 속살을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시간의 단축과 절약, 속도감 때문에 감사패를 전달하지 않았다. 기차는 사람의 대화를 단절시켰다. 나와 너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한 마차의 좁은 공간을 기대할 수 없었다.

또한 풍경과 사람을 단절시키는 존재였다. 빠른 속도감이 느림의 시간 속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하는 당시까지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차는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사람은 빠른 시일 내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숙제를 가졌다.

"열차를 타고 하는 여행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자연 조망, 산이나 계곡의 아름다운 전망은 아예 사라져버리거나 아니면 왜곡되어 버린다. 지형을 오르고 내리는 것, 건강한 공기 그리고, '거리'라는 말로 연결되는 다른 모든 기분 좋은 연상들을 사라지거나 아니면 황량한 단절들, 어두운 터널들, 그리고 위협적인 기관차의 건강하지 않은 가스 분출이 되어 버린다."(본문 73쪽 인용)

이런 기차를 누가 사랑하겠는가? 사람들은 이웃과 너와 나 사이의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차는 사람과 이야기, 풍경을 보는 재미를 빼앗아 가버렸다.

우리 시대 기차는 속도를 더욱 빨리 한다. 비둘기호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통일호도 사라졌고, 무궁호는 가장 느린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새마을호는 이미 KTX에 강자의 자리를 내준 신세이다. 기차를 처음 만난 이들이 KTX를 타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빠른 것만 옳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 시대 인간 군상들이 조금은 더 느린 기차를 타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저자는 유럽과 미국의 객차 차이를 말하면서 기차의 세계를 너무나 잘 그리고 있다. 유럽은 마차와 기차의 객차, 미국은 증기선과 기차 객차의 차이다. 즉 마차는 단절성이 있다. 유럽의 기차 객차는 객차 사이에 단절의 벽이 있다. 하지만 증기선과 미국의 객차는 열린 세계이다. 기차는 병리학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 동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의 충돌 쇼크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질병을 이해하는 노력의 출발점이 된다. 닫힌 객차가 남긴 현상은 무엇일까?

"마부는 마차를 세우고, 여행객은 당장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철도 여행객들의 경우는 어떻게 다른가? 여행객이 우연히 차장 바로 가까이에 있는 좌석에 앉아 있지 않는 경우, 도움을 청하는 그의 목소리를 그저 허공에 울릴 뿐 어떤 도움도 받을 수가 없다. 죽어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면 할수록 더 도움을 받지 못한는 상항에 처하게 될 것이다."(본문 107쪽 인용)

우리 기차는 열린 객차이다. 하지만 고급화가 될수록, 특급이 될수록 갇힌 공간을 원한다. 자신의 세상을 꿈꾸지만 그곳엔 '우리'가 없다. 그러기에 도움이 필요할 때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이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문제 그 공간이 닫힌 곳이며, 우리가 없으며, 살림의 공간은 아니다.

백화점과 기차가 파노라마라는 의미에서 동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고, 흥미를 넘어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 풍경과의 단절을 선물하면서 사람들의 외면을 샀지만 이제는 단절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이야기 꺼리와 다른 이와의 만남, 조용히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 고속 열차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느림보 완행열차 비둘기호(이런 열차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말 다시 한번 비둘기를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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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께서 실록 밖으로 행차하시다. | 역사 2007-08-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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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박현모 저
푸른역사 | 200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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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액권 화폐 주인공 '세종' 대한민국 행정수도 명칭 '세종'. 그렇다 세종은 우리에게 그저 어느 과거 한 시대를 통치한 '왕'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살아있는 존재이다. '대왕'이라는 존칭까지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창제, 태종의 셋째 아들, 과학, 음악, 농업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고 역사 시간이 엄청 외웠지만 세종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안다고 하지만 눈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지식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여기 세종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 책이 있다. 박현모의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이다. 그는 세종은 누구인가. 무슨 업적을 남겼는가? 이런 다분히 사실 역사에 대한 세종을 평가하지 않고, 태종은 아버지로서, 황희, 허조, 박연, 정인지, 김종서, 신숙주는 신하로서, 수양대군은 아들로서, 정조는 조선 후대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세종을 어떻게 보았는지 말하고 있다.

위대한 성군도 '사람'이다. 그도 초창기에는 백성들에게 비난의 대상이었다.

"재위 5년 3월 강원도 고성에 사는 이각이라는 사람은 '이 임금이 왕위에 올라서 흉년이 들어 매우 살기가 어려운데, 만약 내가 왕이 된다면 매년 풍년이 들 것'이라는 엄청난 소리를 했고, 그 다음해는 3월에는 청주의 아전 박광과 곽절이 '양녕대군이 왕이 되었으면 백성들이 자애로운 은덕을 입었을 터인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본문 15쪽 인용)

감히 세종대왕을 아전이라는 자들이 난언을 했다. 당시 백성들의 눈이 정확할 수 있다. 자신들의 배고픔과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세종도 별 볼 일 없는 왕이요, 오히려 양녕대군이 왕이었다면 성군으로 존경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백성들이 그를 별 볼일 없는 왕으로 보았지만 아버지 태종을 달랐다.

"나는 내 측근인 강상인과 영부사 심온을 다른 '불나방들'의 견제용으로 희생시키는 과정에서 그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세종은 자신의 장인인 심온이 국가의 명령은 마땅히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 혐의로 사사되고 왕비의 가문을 적몰할 것이지를 의논하는 자리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와중에서도 그는 거의 매일 내가 거처하는 수강궁에 문안하고 경연에 나가거나 성균관에 거둥하는 등 일상적인 일을 수행했다." (본문 44쪽 인용)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섬뜩했다. 성군 세종이 아버지를 두려워했기 때문일까? 얼굴 하는 변하지 않고, 사랑하는 중전의 아비가 사사되고 멸문당하는데 중전이 통곡하는데도 그는 일상생활을 했다. 병권을 태종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조선의 왕이다. 충분히 장인과 중전 가족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잔인할 정도로 냉정했던 세종이 성군으로 위대한 반열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황희는 말한다.

"인재는 세상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보배라고 보았던 상께서는 인재의 천거를 요구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고 하셨다. 모름지기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임금들은 인재를 들여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인재를 구별해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본문 78쪽 인용)

세종을 인재를 알아보았고, 구별하는 방법을 알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다. 세종이 위대하기도 했지만 그때 인재도 많았다. 황희, 허조, 김종서, 맹사성, 박연. 왕은 인재를 만났고, 인재는 왕을 만났던 것이다. 세종이 성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 시대 우리나라에 이런 인재와 지도자가 함께 어울려 나라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고 세종 시대가 부러운 이유이다.

세종은 치열했다. 대신들과 논쟁했고, 토론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생각을 거두었지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다른 7명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시각을 통하여 세종을 보고자 했고, 세종의 뜻이 자기와 다를 때 어떤 때는 의문을 가졌고, 반박했고, 순응했다. 세종 시대가 진정 성군 시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한 책들이 자주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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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책읽기 | 인문 2007-08-1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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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탐독

이정우 저
아고라 | 200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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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태어나서 언제쯤 책을 접할까? 요즘이야 엄마 뱃속에서부터 책을 접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초등학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접하게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책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부터이다. 그 전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자신이 책을 접한 시간과 과정을 반추하면서 책으로 낸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이요, 영광이다. 여기 그 한 사람이 있으니, '이정우'이다.


<탐독>이란 책이름이 좋아 그냥 샀다. 처음에는 몇 권의 책을 서평한 줄 알고 구입했다. 철학 아카데미를 통하여 조금은 낯익은 사람이기도 했다. '이름 있는' 이들이 '이름 있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집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들이 모아 놓은 서평집은 결국 '이름 없는' 서평집이 되고 말지만. <탐독>은 달랐다. 이유는 서평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정우는 어릴 때에는 책과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사랑하고 책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라고 했다. 아버지의 서재였다. 요즘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책과 동무하는 일이 중요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탐독>의 좋은 점은 그가 과거를 반추하면서 읽었던 책 내용이 지금도 자신의 지적작업에 오롯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매우 놀라웠다. 일반적인 책읽기는 덮는 순간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특히 이 시대의 책읽기가 논술과 성적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그가 그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 책을 읽고, 사고의 빅뱅을 경험한 것만 그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혀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고 있듯이 ''텍스트''에 충실했다. 텍스트를 읽으려면 엄청난 지적 고뇌를 해야 한다. 남들이 다 해 놓은 해설서를 가지고 무슨 지적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개론서만 붙들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되뇌는 오늘의 지식인들을 향한 일갈이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배따라기>,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목로주점> 따위를 통하여 그는 '생의 애환'을 만난다.

"언어란 참 묘한 것이다. 애환과 고통을 언어적으로 반추함으로써 이제 이것들은 일종의 대상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음미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쾌락까지 누리게 되니 말이다."(본문 37쪽 인용)

책 읽기는 성적이 아니다. 공부가 아니다. 이정우가 어쩌면 이 시대가 아니라 그 때 태어났기 때문에 문학에서 삶의 애환과 고통을 발견했지 오늘 이 때 태어났다면 논술을 향한 읽기에 바빠, 그 때 그 감흥과 느낌, 놀라운 경험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의 애환에만 머문다면 사람은 우울하다. 이 우울한 사람에게 내일을 말해줄 수 없다. 그는 대하소설을 만난다. <삼국지>, <수호지>, <임꺽정>. 이들은 웅장하다. 아직도 젊음의 때에 읽어야 할 대하소설이다. 젊음의 때는 내일이 있다.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치열한 삶을 통하여 주어진다. 이 시대 어른이 다 해놓은 밥상만을 받기 원하는 젊은이들이 한 번은 읽어야 할 책들이다.

문학, 과학, 철학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그의 지적 사유의 길들을 읽어가면서 한 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였고, 텍스트가 아닌 해설과 개론서의 목을 매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자랑하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이 시대 과연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원전, 원어를 통하여 고민한 열매를 가지고 가르치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원전, 원어를 통하여 구로하여 열매를 낳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적 사유는 텍스트, 오로지 텍스트와 더불어 논의할 때에만 정식으로 철학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 무수한 개론적 저술들, 철학과 관계도 없으면서 '철학'이라는 말을 남발한 담론들 등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읽고, 독일어로 <정신분석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본문인용 286쪽)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학자, 전문가라 말한다. 얄팍한 지식껍데기로 먹고사는 우리 인생이 한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책'을 만났을 때, '한 저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지적 작업을 해야 한다. 껍데기는 걷어내고, 깊은 사유를 통하여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이 벗겨내야 한다. 이 능력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랜 시간 우리가 원전과 고전, 위대한 저술들을 통하여 사유의 깊이가 깊어진 후에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사유의 길을 우리는 가려는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는 이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한 책을 읽었다고 쉽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탐독>을 읽고나서 깨달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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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 | 역사 2007-08-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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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의 부곡, 잊혀진 역사 사라진 인간

신성곤 저
책세상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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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곡, 잊혀진 역사 사라진 인간].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잊혀진 역사.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대부분 기득권의 역사이다. 승자의 역사이다. 권력자의 역사이다. 거기에 빈자와 약자와 인민과 민중의 역사, 이름 없는 이들의 역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정사가 그렇다.

사리진 인간 역사 마찬가지이다. 기록되지 않기에 존재한 자들었지만 후대는 그들을 기억할 수 없고, 어디에 존재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신성곤은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결합으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역사에 사로잡힌 나 자신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인간과 인간의 결합, 괴연 지배와 피지배, 승자와 패자의 역사를 어떻게 이런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관계가 가능함을 공간적으로 중국, 시간적으로 중세에서 찾고자 한다. 주종관계, 상하관계만 유일한 주류였던 당시에 과연 이런 관계를 찾아볼 수 있을까? 지배와 피지배, 예속만이 존재하였던 곳에 인격적 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관계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이 '부곡'이다. 부곡은 노비도 아니며, 양민도 아니다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부곡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겠다. 그들이 천민인가> 양민인가? 구성원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언제부터 부곡이 생겼는가? 우리나라에서 부곡은.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성곤은 역사를 피지배와 지배의 계급적 구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비록 노비일 수 있고, 양민일 수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로 역사를 보기 원했다는 사실이다. 부곡주의 부곡민은 인간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인간적 유대관계 고대 역사에 이런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

부곡을 신분 차별적 요소로만 보지 않는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과연 역사가 인간관계망으로만 이해될 수 있을까? 역사는 분명 지배와 피지배, 승자와 패자, 이름 있는 자들의 역사만을 정사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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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의 힘 | DVD 2007-08-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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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김수경 저
책세상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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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의 [노랫말의 힘, 추악과 상투성의 변주]에서 유일하게 생각나는 노래는 조용필의 '허공'이다. 다른 노래는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70년대의 님과 함께도 기억은 나지만.

왜 음대에 성악과, 기악과, 작곡과는 있는데 작사과는 없는지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해소 하였다. 사실 나도 노랫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찬송가에서 멜로디보다는 노랫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 노랫말은 현대에 가까울 수록 노랫말의 아름다움은 1930년 한국 대중가요가 첫발을 내딛을 당시보다 못한 것 같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발라드 쪽의 노랫말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 이후 댄스 음악쪽이 중심에 자리 잡은 후 노랫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김수경이 발라드의 노랫말을 택하지 않고 댄스 음악의 노랫말을 찾았다면 아마 엄청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 음악은 약간은 상투적이란다. 나 사랑하지 않으면 나 죽소. 이런 의미의 상투적, 그런데 아리랑의 노랫말을 상투적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노랫말을 쓰는 사람들이 아리랑을 약간 변형시켜 똑같이 반복하면 상투적이 된다. 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이라 할지라도 비난은 하지 말자.

43쪽에서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냐,'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가 반가운가' 같은 구체적인 물음은 지금 봐도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했는데 요즘 이런 노랫말을 쓸 수 있을까? 요즘은 정말 신선한 노랫말이 없다.

김수경의 글을 읽으면서 약간 느낀 것은 요즘 노랫말은 조금은 나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가?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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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소비하는 일본? | 문화 2007-08-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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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을 소비하는 일본

히라타 유키에 저
책세상 | 200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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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소비하는 일본- 한류, 여성, 드라마] 일본사람이 우리글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매끄럽게 정리하였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책세상문고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영화, 음악, 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오늘 하라타의 글에 등장한 한국 드라마 중에서 직접 드라마가 하나도 없다.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별은 내 가슴에,] [가을동화,] [유리구두] 정말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거기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한류의 대명사인 배용준이 어느 드라마에서 배역을 맡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다.

우리의 문화가 일본과 접촉하고, 교류를 통하여 물질적인 이익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다. 문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교류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물론 문화가 더 배타성을 내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영화, 드라마가가 인기를 누리지 못한 이유도 우리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배타성이 원인일 수 있다.

앞으로 드라마, 영화, 노래를 통하여 서로를 알아가면 좋겠다. 정말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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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과학을 만날 수 있을까? | 인문 2007-08-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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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김호경 저
책세상 | 200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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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기독인으로 기독교 진리와 과학, 역사, 문학을 연관시키는 일을 그렇데 좋아하지 않는다. 성경을 과학으로 이해하고자 하면 어느 것 하나 진리로 받아 들이기 힘들다.

고고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고고학을 통하여 성경의 기록이 밝혀진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인가 하니 성경은 고고학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진리 자체로 나는 믿고 있다.

32쪽에서 저자는 고대를 '종교적'이라 표현했다. 물론 그 뜻을 안다. 하지만 과연 현대가 고대보다 종교적이지 못할까? 고대는 무조건 미신적인 종교성이고, 현대는 고등종교이기에 미신이 아닌가? 이런 의식 자체가 현대를 고대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생각하는 반증이다. 이런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현대는 어쩌면 고대보다 더 미신적일수 있음을.

요즘은 과도기적인가? 사실 모든 시대가 과도적이기다. 과도적이라는 말은 사실 나쁜 말이 아니다. 항상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는 단어이기에. 변화를 두려워 하는 시대와 사회는 사실 죽음의 사회이다.

34쪽에서 저자는 구약시대를 정교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은 아니다. 사사들 정도만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 생활을 하였을 뿐이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은 신정정치였지만 왕이 제사장을 겸직하지 않았다. 제사장은 아론의 가문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과 솔로몬은 지도자와 왕이었지 제사장은 결코 아니었다.

과학이 종교를 지배할 수있을까? 종교가 과학을 지배할 수 있을까? 답은 나와 있다. 자자가 말하고 있지만 종교가 권력을 가지면 안 된다. 이미 사망이다. 죽음이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자꾸만 권력을 집착하려고 한다. 문제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종교는 타협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둘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침범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기독교 진리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을 수 있고, 그 증명을 시도해서도 안 된다. 증명 되었다고 해서 기독인들이 춤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 자체로 진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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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무서움 | 역사 2007-08-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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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 민간 종교 결사 전통과 현대의 만남

이은자 저
책세상 | 200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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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생각하면 조금 무서운 말처럼 느껴진다. 중국에서는 백련교, 미륵신앙, 백련종 따위가 있었던 모양이다. 백련교는 마니교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며, 무력집단의 존재, 급진적인 현실 변혁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청대의 민간 결사는 명 말에 탄생한 민간 종교 결사가 발전한 것이고, 청대에 새롭게 탄생한 교파가 있다고 한다. 수원교, 홍양교, 문향교, 황천도, 무위교가 전자에 속하고 팔괘교, 청련교, 귀일도, 일관도가 후자라 말한다.

민간결사는 다양하다. 개인의 종교적 구원을 기도하는 촌락의 소규모 집단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미륵의 세계를 갈망하며 무장 촉동을 일으키는 대규모 집단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민간 결사는 정부의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공 친일의 입알 갖는다. 사회주의 중국과 양립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은자의 [중국 민간 종교 결사, 전통과 현대의 만남] 정말 생소하였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현대 법륜공이 중국에 일어나고 있다. 공산당정부는 탄압하였다. 법륜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의 종교가 인간에게 뿌리를 내리면 그것을 거둘 수 있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거두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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