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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담은 조각과 건축물 | 예술 2007-09-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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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

문명대,김동현 등저
돌베개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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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이 회화와 공예에 관한 우리 최고의 미술품에 관한 책이라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는 조각과 건축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만났던 작품이 많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석가탑' '다보탑'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한 20가지 우리나라 조각과 건축물을 상세히 설명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조각물과 건축물을 비교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작품들이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조각품은 대부분 불교작품이라 생소했다. 각 작품을 소개한 교수들의 설명과 눈으로 만난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을 더 깊이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조각품을 만났을 때도 미술사적 가치만 아니라 종교심도 큰 역활을 한다는 것을 새삼느꼈다.

 


깊은 만남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설명한 임남수 영남대학교 교수다음 말은 이 조각상 풍기는 멋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은 소년의 통통하면서도 둥근 얼굴, 양손과 발의 자연스러운 살집과 마디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옷자락에도 천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의 상승하는 오른쪽 무릎은, 뚝섬 출토상이나 연가7년명 상에서 신체를 구속하고 있던 좌우대칭이나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시원스럽게 깨뜨리고, 새로운 조형예술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깨달음의 미소는 작가로서의 성취를 이룬 불사의 희열을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하고 싶다."(본문 51쪽)


 


작가는 반가사유상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처를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으면 이런 묘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심은 이론과 설명보다는 자기가 믿는 종교와 자신이 일치할 때 온전한 신자라 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작가 역시 그 자신이 부처와 하나되었고, 부처로 성불함으로써 깨달음 미소를 조각품에 나타냈을 것이다.


 


스무 가지 조각과 건축물 중에서 나를 가장 이끌었던 것은 '도산서원 도산서당'이었다. 도산서당은 도산서원 내 아래쪽 동편에 있는 작은 건물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사람을 길렀다.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사람'을 알고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도산서당은 작은 건물이다. 3칸 기본 구조에 우측으로 익첨 1칸을 덧대는, 8평 남짓하다. 8평 공간에서 퇴계는 성리학을 이루었다. 이 시대 학문을 이루기 위하여 집을 크게 짓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퇴계는 묻고 있는 듯하다. 건물로 학문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퇴계가 도산서당 동쪽 대청 한 칸을 암서헌(巖棲軒), 자신이 거처한 중앙 방 한 칸을 '완락재(玩樂齋)라 했다. 김지민 목포대학교 교수 말을 들어보자.


 


"암서헌이란 '(학문에 대한) 자신감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다가 이제 바위에 깃들여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주자의 운곡시에서, 완락재란 역시 주자의 <명당실기>에서 나오는 '좋아서 구경하는 것을 즐ㄹ기는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는 글에서 취해 지은 이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서당은 자연에 최소한만 개입함으로써 큰 우주를 그려낸 퇴계의 맑고 깨끗한 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하겠다."(본문 230쪽)


 


건축물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3칸이 화려하면 얼마나 화려하겠으며, 크면 얼마나 클까? 3칸 작은 집에서 '학문'을 이룬 그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큰 것만, 화려한 것만 좋은 것으로 여기는 범인(凡人)이 깨닫기는 퇴계가 크다. 하지만 퇴계가 크다는 것만 존경할 것이 아니라 작은 3칸 8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도 성리학 최고 학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름만 존경하는 것은 퇴계에게 무례한 일인지 모른다. 도산서당이 나에게 답한 귀한 가르침이었다.


 


그 외에 석가탑, 다보탑, 경회루, 담양 소쇄원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오늘도 그 아름다움과 경외스러움을 담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는 '기술'(技術)은 있지만 '혼'(魂)은 없지 않은가? 옛 시대와 옛 사람이 남긴 조각과 건축물이 오늘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것을 만들을 혼을 담았기 때문이다. 혼을 담은 건축과 조각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2>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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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이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 개조 | 사회 2007-09-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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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저
돌베개 | 200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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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극과 극으로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소위 '유빠'는 아니지만 그를 좋아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책에서 말한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대한민국 개조론>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대선 출마자들은 출마 선언과 책을 쓰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유시민도 출마 전에 이 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른 출마자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자신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비전과 정책을 두고 일할 것인지 말한다. 물론 지금은 대선을 포기했지만.



유시민도 밝혔듯이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수와 진보에는 달갑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말만 하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유시민 글 중 눈에 들어왔던 내용은 한미FTA가 참여정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TA에는 박정희 경제체제의 중심인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선택함으로 대한민국은 개방경제,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고 설득력 있었다.



물론 보수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FTA는 대한민국을 반드시 살리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유시민 생각이다. 유시민의 이런 주장에 진보진영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원인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아직 <민족경제론>을 읽지 못해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족경제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발전전략으로 만들어 제시한 인물입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각 지역 단위에서 1, 2, 3차 산업이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가게 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균형잡힌 경제구조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그가 제시한 전략의 핵심입니다. 경제가 그저 경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하게 하자는, 인간 중심, 가치 중심의 경제개발전전략이죠." (본문 36쪽)



어떤 경제체제보다 좋은 경제론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를 거부하고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택했고. 대한민국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40년 이상 지속했기 때문에 그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시민 생각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아직도 박현채식 경제체제를 염두에 두고 FTA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안티'일 뿐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유시민은 일갈한다. 나 역시 FTA는 반대하지만 반대할 경우 그 대안은 아직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 진보진영 역시 그 대안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유시민이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FTA가 진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확신은 분명하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어떻게 가야 할까?



참여정부가 내놓은 대한민국 장기발전전략인 '비전2030'에서 찾고 있다. 비전2030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선도적 세계화, 개방화와 지식정보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선도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번영의 기회로 삼는다.



둘째, 인적자원개발. 지구촌을 무대로 경쟁하는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다. 일하는 동안 더욱 생산적으로 일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자본 확충. 사회적 자본은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다." (본문 58-60족)



세계화가 피할 수 없고, FTA로 가는 길이 외길이라면 대한민국은 이를 대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그 대안으로 사람이 배우는 일에 국가가 적극 지원하고, 평등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개인보다 사회적인 자본을 확충하는 일에 전력해야 함을 유시민은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성장주의와 낡은 복지국가론을 넘어 사회투자국가로 가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유시민을 하고 있다.



보수진영은 유시민이 제시한 정책을 "좌파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에 굴복"했다고 비난한다. 정말 유시민이 제시하는 국가발전전략이 이토록 비판받을 만한가? 둘 다 옳을 수 있지만 그들 주장 면면을 들여다 보면 '말'은 하지만 '책임 있는 대안'은 사실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유시민이 제시한 '의료급여제도'는 비판받을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쳐 그렇게 가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선진통상국가와 복지국가의 좋은 점을 택하여 사회투자국가로 가야 할 중요한 기로서 섰다. 세계화는 인민생활을 피폐하게 하는 주범이지만 우리만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더라도 세계화 본류를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세계화 본류에만 대한민국을 맡긴다면 소외와 가난한 인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인민을 위한 세계화와 개방화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한다. 즉 사람이 중심이고, 희망이 대안을 세계화 흐름 속에서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 개조다. 그 중심에 인민이 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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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에 마음이 더 가는 이유 | 예술 2007-09-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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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안휘준,정양모 등저
돌베개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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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이후로 미술 시간, 음악 시간은 고역이었다. 예술적 재능은 천부적이라 했는데 부모님께서 나에게 예술적인 재능은 전혀 물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런 재능은 물려주지 못했다. 물론 그림과 예술품을 읽는 재능도 별로 없다. 고흐, 피카소, 바흐, 모짜르트, 김정희, 안평대군, 한석봉의 그림과 음악, 서예를 아무리 보고도 왜 그 작품이 위대한 예술품인지 잘 몰라 예술작품들을 설명한 책들을 한 번씩 사본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도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이런 와중에 '돌베게'에서 나온 강경숙 외 17명이 지은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를 만났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에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40점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과 비교한다. '회화'는 김홍도, 정선, 윤두서, 김정희, 조속, 안견과 고구려 고분 벽화, 민화, 궁중장병화, 불화 등이다. '공예'는 도기, 청자, 백자 등 도자 공예품, 목공예, 금속 공예, 문양전 등이다. '불교조각'은 석조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 마애불, 목각탱, 목불 등이다. '건축'은 궁궐건축, 사원 건축, 서원건축, 사원건축, 조경문화, 석탑, 석교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미술사에 최고의 작품을 선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이 책에 선별된 작품을 폄하할 수 없다. 40개 작품 중에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논란이 되면서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문외하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감정주의는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소재한 고구려 벽화 '무용총 수렵도'를 통하여 고구려를 알아보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무용총 벽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5세기 전반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당시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여겨지던 벽화 형식으로 드러난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 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선을 특징으로 하는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 대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본문 29쪽 인용)


 


군사력만 강했다고 생각한 우리 의식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수렵도>에 대한 평가다. 고구려는 예술 세계에서도 중국에 뒤쳐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색체와 필력, 예술성을 바탕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 내세를 믿었고, 그것을 벽화에 담았다. 고구려는 벽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 전반을 담았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으로 들어가보자. 위대한 미술품은 어쩌면 인민을 담는 것이 아닐까?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 그 자체를 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인민의 일상적 삶을 담은 것을 '풍속화'라 한다. 풍속화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삶이 우주와 종말을 다할 때까지 존속하는 유일한 그림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대가다. 그가 그린 작품 중 <빨래터> <타작> <서당> <기와이기>는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다.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가 설명한 <빨래터와 <타작>을 감상해보자.


 


"<빨래터>를 보면, 점잖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어 빨래하는 아낙들을 훔쳐보고 있다. 까닥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인 그림 속 양반처럼, 김홍도 역시 천박하다고 비난받을 만한 주제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타작>에서는 벼 낟알을 털기에 여념이 없는 일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마름은 술에 취해 아여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상류 계층인 마름과 하류 계층인 일꾼들의 불공평한 관계를 유머스럽게 풍자했다."(본문97쪽)


 


<빨래터> 풍경은 천박함을 통하여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표현한다. 양반과 인민이 다르지 않다. 본능에서 신분차이는 없다. 김홍도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면서 계급과 신분제를 비판한 것은 아닐까? 섣부른 생각이지만 나는 <빨래터>를 그렇게 읽고,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 본능은 천박하지 않으며, 인민과 양반은 본능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양반이 자신의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아낙보다 어쩌면 신분에서는 상위이지만 본능을 드러내는 입장에서는 하위임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작>은 양반의 천박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놀고 먹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일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노동 자체는 고귀하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의식이 더 천박한 것임을 <타작>은 말하고 있다. 노동은 가치 있다. 노동이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고, 노동 자체를 기뻐하고, 귀하에 여기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통하여 우리를 예술세계로 인도한다. 예술세계는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다. 사람과 밀접하지 않는 예술품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사람과 함께 하는, 특히 인민과 함께 하는 예술품인 민속화는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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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 | 자연과학 2007-09-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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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렉트릭 유니버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저/김명남 역
생각의나무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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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없다면 나는 오늘 <오마이뉴스>에 들어와 서평과 기사를 쓸 수 없다.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청와대, <조선일보>, 한국방송에 들어가 글을 남길 수 없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실 수 없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텔레비전을 통하여 볼 수 없다.



'이것은'은 무엇일까? '전기'다. 사람은 가장 가치있는 것을 가장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예를 들면 '물', '공기'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인 만든 것 중에 우리나라 같은 경우 너무 흔하여 귀한 줄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기가 아닐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깃불을 처음 만났다.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한없이 쓸 수 있는 전기지만 우리는 전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간다. 과연 이 전기가 인류에게 처음 다가온 때는 언제쯤일까?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지은 <일렉트릭 유니버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과학에 무능한 사람이 이 책을 읽기에는 부담되었다. 과학과 경제, 철학 책들을 내는 사람들이 요즘 하는 말은 '쉽게' 썼다고 한다. 하지만 비전문가와 학생 시절 공부하기 싫었던 사람들이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일렉트릭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전기가 인류에게 다가와까지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발명을 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보를 탄생시킨 조지프 핸리와 새뮤얼 모리스가 있다. 전보의 발명은 혁명을 이룬다. 전보가 생기전 전 세상은 어땠을까?



"두 도시 사이에 소식을 전하던 마부는 무게가 450킬로그램도 넘게 나갈 동물을 바위와, 바퀴자국 깊은 진흙투성이 길과, 때때로 쓰러져 있는 나뭇가지 위로 몰아야만 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19세기 초에 정보가 전해지는 속도는 고대 수메르인들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본문 40쪽)



하지만 전보가 발명된 후 세상은, 세상을 강타했다. 금융업 내부자 거래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등장했다. 멀리 떨어진 사무실도 연결할 수 있었고, 철도망도 복잡해졌다. 시간의 통합도 가능해졌다.



등장인물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사람이 있다. '하인리히 헤르츠'다. 그는 '고독한 과학자'였다. 데이비드 모더니는 헤르츠의 일기와 편지, 연설을 통하여 발명과정을 설명한다. 실험과 연구만한 과학자였다. 1889년 3월 17일 일기 "미친 듯이 계산만 했음." 헤르츠의 ‘논문모음집’에 쓴 윌리엄 톰슨의 서문.



"패러데이가 최초로 힘의 곡선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물리수학자들을 화나게 한 이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수많은 실험가와 이론가들이 등장하여 19세기 물리학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리로 19세기 끝 무렵에 세상에 발표된 헤르츠의 전기에 대한 논문들은 영원한 금자탐을 남을 것이다." (본문 141쪽)



헤르츠는 열정을 연구했다. 그는 병들어갔고, 폐혈증으로 죽음에 이른다. 고독과 싸우면서 전자기선만을 생각했다. 그는 우리 의식 너머에 있는 실제 사물의 존재를 알고 싶어했다. 우리와 바깥세계 사이에는 감각이라는 협소한 완충지대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협소하지만 이는 철저히 탐구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과학자가 간 길이 이런 길 아닐까?



그렇다. 전기를 통한 발명과 발견은 고독과 싸움이다. 인내와 싸움이다. 나와 싸움이다. 이 인고의 과정을 통하여 잉태한 결과물들을 우리는 받아먹고 있지만 그들을 향한 고마움의 표는 전혀 없다.



1942년 앨런 튜링은 생각하는 기계를 고안한다. 바로 컴퓨터이다. 고마움을 표하자! 이제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산골에 살더라도 컴퓨터가 아니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는 앨런 튜링의 수고한 결과이다.



<일랙트릭 유니버스>에는 레이더, 컴퓨터, 신경세포의 비밀을 풀기 위한 힘쓴 이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과학 세계를 소설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지프 핸리, 새뮤얼 모리스, 벨, 마이클 패러데이, 하인리히 헤르츠, 왓슨 와트, 앨런 튜링, 앨런 호지킨, 오토 뢰비 등을 통하여 전기가 발명과 혁신 과정을 통하여 인류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그들이 선물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힘들었고, 빈약했지만 '실험'과 '연구'를 통하여 위대한 전기발명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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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금업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가? | DVD 2007-09-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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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의 고리대금업

이화승
책세상 | 200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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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을 위협하는 큰 나라이다. 정치는 공산체제이지만 경제는 이미 자본주의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 개방으로 이끈 후 중국은 미국 다음의 경제규모가 될 정도로 커졌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살펴볼 것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단순히 덩샤오핑이 이룬 경제개혁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이화승은 <중국의 고리대금업>을 통하여 중국인의 역사 속에 흐르고 있는 경제논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고리대금=높은 이자로 돈을 버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 이래 금융업에서 어느 민족과 나라보다 재리에 밝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상인이자 요리사라는 표현을 즐겨한다. 상업적인 면에서 중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배경에 중국적 특성을 듬뿍 담고 있는 금융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전당포로 대표되는 민간 금융기관이 그것인데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본문 7쪽)



대금업은 위진남북조 시대 사원에서 시작되었다. 전당포는 그저 돈 없는 사람이 자기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곳이지만 백성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유일한 금융기관이었다. 처음 전당은 매우 정치적이었는 데 경제적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당업이 사원, 곧 절에서 시작되었고, 그 역사가 아주 장구하다는 것이다. 황실과 백성들이 불교에 심취하면서 보시로 사원의 부가 축적되었다. 사원이 어떻게 축적된 부를 이용했는지 이화승은 말한다.



"처음에는 금은보화를 땅에 묻어 보관한 뒤 조금씩 꺼내어 쓰기도 했으나 이는 항구적인 방법은 되지 못했고, 점차 사원이 직간접적으로 상업 활동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백성들이 밀접한 지역이나 상업이 번화한 곳에 자리한 사원에서는 부근에 토지를 구입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거나 건물을 지어 세를 놓기도 하여 세속적 상인인 집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본문 36쪽)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불교는 세속적 욕심을 한없이 제거하는 종교이다. 탐은 불교에서 버려야 하지만 오히려 세속의 경제적 이익을 사원의 부를 채우는데 이용했다. 이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종교가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고리대금업은 아니지만 성도들이 땀과 눈물로 번 물질을 세속적 복을 위하여 헌금하라고 하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당 나라 시대에는 이자를 매우 많이 받았다. 한 달에 10% 정말 고리이다. 당대는 제국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기상과 더불어 대금업도 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했다. 당나라는 200여 업종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직업이 전당, 궤방, 추궤 등의 대금업이라고 이화승은 말한다. 당나라는 민영 대금업이 발전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리적으로 백성들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사원은 신도의 신심을 대금의 전제로 했다. 민영전당포에는 특별한 금지 품목을 제외하고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전당할 수 있어 담보물의 종류가 다양했다. 한대 후로 정부에서는 극도로 사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여자나 어린 자녀를 맡기는 인신 담보 대금을 적극 금지했다." (본문 56-7쪽)



그렇다. 민영 대금업은 백성들 가까이 있었고, 백성들이 필요할 때 빌릴 수 있는 곳이었다.  어쩌면 오늘날의 금융업보다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한 대금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대와 명대 청대까지 내려왔던 전당포는 이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당포는 중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 중국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작은 책이지만 중국 문화와 중국인들의 의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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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의 진범은? | 역사 2007-09-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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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

구춘권 저
책세상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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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끝난 지 18일이 지났다. 40여 일 언론의 중심에 자리 잡았던 그 사건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탈레반'은 테러집단으로 각인되었다. 테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오늘도 이라크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자연사가 아니라 누구의 테러에 의하여.



테러로 죽음 맞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런던과 스페인, 카이로, 바그다드, 카불, 발리, 텔아비브, 예루살렘. 지구상 어디든지 테러는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테러에 희생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이 교통사고를 접하는 것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테러에 이렇게 적응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테러에 적응하는 단계까지 이른 이유가 무엇일까? 구춘권이 지은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 전쟁>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제목이 재미있다. '미국의 세계질서 전쟁'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제목이다. 테러에 '메가'가 들어가야 한다. 한두 명이 희생되는 것은 언론의 관심조차 받을 수 없다. 수십 명, 수백 명은 희생되어야 언론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세계무역빌딩이 공격을 당했다고. 그날 밤을 새웠다. 이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테러는 적의 수장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적이라 할 수 없는 시민을 노린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는 정당성을 인정받기는커녕, 사악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중심에 이슬람 있다고 서양 언론은 지구상 모든 이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하지만 테러는 이슬람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테러란 과연 무엇인가?


 


"테러리즘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테러라는 단어는 원래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지칭하는 데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시기부터 테러는 일반적으로 공포에 기반을 둔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보다 넓게 정의한다면, 테러는 정치적 동기를 지닌 폭력 일반을 지칭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당연히 사회 집단의 테러 행위는 물론 국가에 의한 테러 역시 포함된다." (본문 29쪽)



우리는 테러를 특정 종교와 관계된 집단 일부가 자신들의 뜻을 쟁취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치적 동기와 국가까지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테러가 집단화, 과격화, 대형화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메가테러리즘의 등장 배경을 이해하는 데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호 연관된 현상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세계화 또는 지구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지는 수십 년 동안의 변화가 지구 곳곳에서 사회의 균열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균열에 대한 반작용은 종교적 근본주의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문 43쪽)



구춘권은 테러의 대형화를 세계화와 종교적 근본주의에서 찾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체제로 자리 잡음으로써 빈부의 격차는 발생하고, 균열과 계급화는 사회를 불평등하게 한다. 사회의 분열은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 들어가게 한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는 중동에서 충돌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 무역센터 테러는 극단적 이슬람과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의 전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것 역시 테러라는 말이다. 이라크 침략, 아프간침략. 그 전쟁이 결코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다. 사악한 전쟁이다. 요즘 테러는 예측 불가능한 것인가 행동 영역은 국제적이다. 런던과 이집트에서 일어난 테러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라고 말하지만 정의로운 나라가 정의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질서를 위하여 다른 나라를 해하는 일들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코스보, 수단, 이라크, 팔레스타인, 아프칸에서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왜 미국에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진정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자간 평화협정,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아니라 다극체제가 필요하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지구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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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말로 설득한 김일성 | 정치 2007-09-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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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일성의 말, 그 대중설득의 전략

전미영
책세상 | 200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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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까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두 사람은 만남이 보통 만남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사람에게서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다. 어눌한 말투가 어떤 때는 사람들을 더 감동시킬 수 있지만 감동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정치가들의 말은 인민대중을 설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격정과 열정이 담긴 말을 통하여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39' <정치와 진리>에서 김선욱은 "정치적 행위는 언어적 행위"라 주장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언어를 통하여 서로를 알아가고 정치적 행위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 자체가 정치인 것이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40' 전미영의 <김일성의 말, 그 대중 설득의 전략>은 김일성 주석이 북한 인민을 말을 통하여 설득시켰다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이라는 특정집단이 김일성을 신격화시키고 그들의 교주로 섬기는 것과 같은 현상을 두고 사이비 종교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우리는 독재정권이 한 세대 이상 유지하는 것을 20세기 이후에는 경험할 수 없었다. 아무리 폭압정권이라 해도 20년 이상, 자기 아들에게까지 폭압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었다는 뜻이다.


 


북한의 김일성 60년 체제는 과연 어떻게 존속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김일성은 폭군, 폭정의 정치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의 경험을 통하여 김일성이 폭압과 억압의 방법만으로 자기 뿐만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까지 정권을 유지하게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궁금증을 전미영은 김일성 주석의 말의 정치를 통하여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김주석은 폭압만으로 정권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하여 인민 대중을 설득시켰다. 전미영은 김일성 주석의 말을 인용했다.


 


"김일성은 영도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든 사업의 집행에서 설복과 해설의 방법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것, 대중으로 하여금 무진장한 적극성과 창발성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고 정책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본문 19쪽)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법은 설복하고 해설의 방법 곧, 언어를 통하여 인민 특히 지지자들과 소수의 동요분자들을 다스렸다. '언어는 사유를 이루며 사상을 나타내주는 기본 수단이다.' <주체의 언어 이론>에서 밝힌 언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북한 언어 이론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이다.


 


이를 위하여 북한은 정부 초기부터 '문맹퇴치운동'를 적극 실시하였다고 전미영은 밝히고 있다. 말과 문자, 곧 언어를 통하여 북한 정부, 아니 김주석은 철저히 인민대중을 교화시켰다. 이 교화는 총과 탱크를 통한 폭압정치보다 훨씬 인민대중을 자신을 신격화, 수령으로 모시는 데 나은 방법이 된 것이다. 힘으로 누르는 정치는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임을 김주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담은 저작들을 통하여 김일성은 북한을 통치했다.


 


"김일성의 저작들은 북한의 모든 공공집회, 연설, 보고회 등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 언어생활에까지도 인용해야 하는 북한의 사상, 이론의 원전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는 이제 김일성의 '말'이 북한 사회의 준거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김일성의 노작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김일성 저작선집> <김일성 저작집>은 북한 사회에서는 일종의 '경전'이며 그 이외의 북한 문헌은 모두 이 경전의 주석서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본문 37쪽)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법은 언어였고, 언어를 담은 저작들이었다. 탄압과 폭압적인 방법을 전혀 통치수단만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하여 북한을 통치한 김일성의 통치철학은 언어가 얼마나 인민대중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전미영은 김주석의 언어 사용법을 대중성, 반복성 민족성을 말한다. 인민대중은 사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강의하는 강의실의 언어에 감복하지 않는다. 고급 언어를 말하라 하지만, 시장통에서 회자되는 말에 더 설득당하기 마련이다. 김일성은 말하고 있다.


 


"선전원과 선동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남이 알아들고 깨닫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본문 47쪽)


 


온갖 미사어구와 어려운 말을 통하여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본다.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쓰는 무리들을 볼 때 김일성의 이런 언어감각은 놀랍다. 인민이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인민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반복성이다. 언어는 반복 나는 이를 세뇌시키는 방법이라 말하고 싶다. 민족성, 일제강점, 폭압기를 경험한 인민대중에게 민족성을 가미한 언어는 더 큰 설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 김일성정권을 우리는 도깨비와 같은 이들로 규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허황된 규정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김일성이 총과 칼만으로 북한을 50년 이상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과 언어, 50년 이상 인민대중을 설득시켰왔다. 물론 갇힌 공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언어적 행위가 북한 인민대중을 새로운 세계와 사상에 대하여 전혀 열려있지 못하게 한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와 김일성 숭배사상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와 어떤 단체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 일상 생활에서 많은 사람과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언어 사용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언어를 통하여 인민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들어오게 하였고, 조작된 언어 내면에서 김일성은 북한을 60년 이상 통치하고 있다.


 


우리가 김일성의 말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북한 체제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악의 축이니, 처단해야 할 집단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우리는 북한을 바로 알 수 없다. 북한을 말로 통치한 김일성의 탁월한 언어 통치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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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묻고, 답하지 않는다 | 역사 2007-09-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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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저
소나무 | 200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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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패.' 말과 귀를 조심하라. 군주가 자기를 향한 직언을 외면하기 위하여 환관과 신하의 목에 걸게 한 패이다.

말은 하기 위하여, 귀는 듣기 위하여 존재한다. 말하는 자는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자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못하게 했으니 그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는 밝음으로 인하여 모든 이가 주인 되는 세상이 아니라 어두움이 지배하여 오로지 군주 그만 존재하는 시대였다. 그럼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군주는 군주가 아니다.


 


백성 없는 군주가 있을 수 있으며, 신하 없는 군주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런 군주가 있었으니, 연산군이다. 직언과 간언을 폐한 그는 결국 반정에 의하여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연산군만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직언과 간언을 허한 군주, 등용 직전의 일군들에게 글로서 자신이 섬길 나라와 백성을 표하기를 허한 나라였다. 이를 허한 조선을 527년 긴 시간의 왕조가 되게 하였다.

나라의 일군의 직언과 간언을 듣기를 싫어한 군주도 있었지만 조선은 나라의 일군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말을 글로서 듣고, 읽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를 '책문'이라 했다. '나라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사사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했다.

나랏일을 하는 이가 사사로운 사람이 된다면 그의 지식이 출중할지라도 그는 매국의 길을 가는 자이다. 매국은 나라를 팔아먹는 자에게만 씌어주는 '관'이 아니다. 사사로이 나랏일을 하는 이가 매국의 길을 가는 이다. 조선은 이런 매국의 길을 가는 자들을 '책문'을 통하여 걸러 내고자 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의 임금의 물음에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 나랏일을 시작도 하지 않은 이가 말했다. 진정 죽음을 각오한 간언이다.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대는 임금과 신하로 존재하지 않기에 이 묻고 물음이 필요 없는가? 아니다 우리도 묻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에는 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물론 사사로운 말, 나의 이익을 위한 말은 많다. 대학 시절에 배운 공의와 정의, 민주주의의 거창한 명분은 아니더라도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면접관 앞에서 합격을 위하여 소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소음' 소리가 아니라, 나라와 이웃을 위하고 이롭게 하는 말을 말이다. 이 말은 '데시벨'이 100 이상이 넘어도 좋다. 좋은 말로 이루어진 '소리'는 '소음'으로 규제받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리는 100데시벨이 넘는 소리일지라도 나라와 이웃과 다른 이를 위한 참된 소리가 흘러 넘쳐야 한다.

술의 폐해를 논하라 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 답했다. 흉년으로 농사 지은 농민마저 먹을 쌀이 없는데 어찌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 술을 빚는단 말인가? 이는 썩은 것이다.

그럼 과연 우리의 시대는 무엇인가? 이 시대 농민을 술 때문에 핍절의 삶을 살지 않는다. 오히려 쌀을 지을 논을 없애라 하기 때문에 죽는다. 조선의 양반보다 더 한 경제논리가 우리의 농민을 죽이고 있다. 사람은 경제논리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쌀로 산다.

'정암'이 시대를 포용하지 못했을까? 시대가 거대한 '정암'을 받아드릴 수 없을까? 훈구는 후자이리라, 아니 중종이 그를 안을 수 없었다. 정암이 너무나 거산이었기에. 하늘과 군주가 하나가 아니라. 하늘과 백성이 하나임을 설파한 정암을 중종이, 훈구세력이 안을 수 있었다고 말하려면 '달'이 '해'보다 더 밝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암은 사사로이 너의 이익을 위하여 차지한 것에서 내려오라 했다. 누가 이에 동의하여 내려온다는 말인가? 내가 어림없는 소리이다.

이 시대 수구도 중종과 훈구와 같다. 자기 이익에 사로잡힌 일명 '기득권'이다. 그러나 정암 살던 시대의 훈구는 그래도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 시대의 수구는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묻고 싶은 물음이다.

나라의 권력을 군대의 힘을 찬탈한 이를 구국의 영도자로 숭상하는 이들이 바로 수구이다. 이런 이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라 자칭하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 요즘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을 '국가안위'라는 이름으로 정죄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음에 답할 마음의 준비와 그것을 실행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

'교육'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대 이래 이 진리를 부인한 이가 있었을까? 온전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이라면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그저 '글자'를 외우는 일에만 몰두한다. 잘 외운 '글자' 하나 '열 가지 지혜 부럽지 않다'이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글자', '단어', '공식' 외우기에 몰두한다.

명종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없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 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것 외에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을 '학문'을 이룩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과 결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생각한다.

휴대전화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어처구니! 맷돌을 돌려야 두부와 도토리묵을 해먹을 수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 두부와 도토리묵을 해먹을 수 없다. 우리 이제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 주어서는 안 된다.

이름 있는 대학들은 똑똑한 아이들만을 뽑겠노라 혈안이다. 교육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나라를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보편 인류를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생각이다. 똑똑한 아이 잘 뽑아 대학에 이름 내고, 머리 좋은 애들 뽑아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똑똑한 아이들 뽑아 머리 나쁜 학생으로 만든 장본인들이 그들 아닌가?

2007년 12월 19일 우리는 선택한다. 5년 동안 나랏일을 맡을 자를. 누구를 택할 것인가? 나라를 이끌겠노라 나선 이들에게 <책문>을 통하여 읽고 답해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름 있는 대학과 그 교수들, 그들은 지지하는 수구언론들은 잘도 이런 책을 소개한다.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그들은 똑똑한 아이들 뽑기에 혈안이 되지 말아야 하며, 논조를 바꾸어야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책문>은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왕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 이 시대 왕은 누구인가? 이 물음까지 답하면서 우리는 모두 시대의 물음에 답해야 하며, 답을 얻을 때만이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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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민주주의 | 정치 2007-09-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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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

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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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모바일 투표를 실시한다.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다. 문제없이 잘 실시되면 국가에서 실시하는 선거에서도 멀지 않아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IT 혁명을 이룬 국가답게 모바일 투표가 성공한다면 인터넷 투표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박동진은 <전자민주주의가 오고 있다>에서 이를 예상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0년이므로 7년이 지난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부족한 점도 있지만, 저자는 매우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이 책을 지필 한 것 같다.



정보화사회가 정착되면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확대되고 있다. 각종 포털과 언론 홈페이지는 수많은 댓글을 통하여 토론의 장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전자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계층 또는 계급들 사이의 수평 수직적인 갈등이 권력을 둘러싸고 증폭되는 상황에서 저항의 헤게모니적 전유태로 등장하는 담론이다. 정보사회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담론을 가리켜 바로 전자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본문 9쪽)



민주주의가 여러 계층과 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평 수직적 갈등에서 저항과 헤게모니가 벌어질 때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이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전자민주주의는 정보화 사회에서 이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이런 해소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전자민주주의는 이를 해소할 수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논의하는 입장은 무엇일까?



"탈대중화 사회를 전망하면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경향, 중앙 집권적인 대의제 민주주의가 분권적인 참여 민주주의로 전환될 것이라는 논리, 소수 권력에 의한 지배가 근본적으로 전환되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 (본문 19쪽)



직접 민주주의가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제도일 수 있지만 이는 현대사회에서 적용될 리 없다. 직접민주주의 대신으로 도입돼 대의민주주의 역시 모든 인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데모스(인민)에 의한 통치가 민주주의의 근본이 아닌가?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데모스가 인정하는 통치'로 전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통치권력은 사실 소수다. 이 소수가 다수인 데모스를 지배하는 시대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데모스를 중심으로 위임받아 데모스를 위한 정치행위를 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 저자는 전자민주주의 시대 도래를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전자민주주의 논리가 성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의민주주의 시대가 소수의 통치권력이 데모스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민주주의는 분명 대의민주주의보다 데모스의 참여는 원할 것이며, 활발할 것이다. 하지만 참여만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대신한다거나, 대의민주주의보다 나은 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박동진은 전자민주주의가 참여를 확대하면서 또한 민주적인 전자공론이 정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 화자와 청자, 교사와 학생, 생산자와 소비자, 나아가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등 지금까지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민주화 과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전자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오늘도 누리꾼들은 참여의 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참여하며, 비판하며, 주장하고, 자기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설득한다. 그리고 민정 민주주의를 해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저자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2004년 3월 12일의 대통령 탄핵 사건은 사실 전자민주의가 없었더라면 소수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단호히 배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자민주주의는 5년 전 저자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염려를 넘어 이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제도로 정착하고 있다.



모바일 투표와 인터넷 투표만이 전자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인터넷 공간을 통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이념과 사상과 철학을 통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한다. 이것이 전자민주주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자민주주의 한 단면인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 난잡한 의견을 또한 비판하고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이 있는 전자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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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을 권리 | 사회 2007-09-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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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헌법의 풍경

김두식 저
교양인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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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07년 9월 11일) 법원은 김승연 한화그룹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지난 6일 현대자동차 정몽구회장에 대한 선고가 나온 지 5일 만에 나온 법의 판단 앞에 사람들은 분노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다시 한 번 적용되는 현실 앞에 분노는 당연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법원칙과 법적용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이 위대한 선언은 불변하다. 이 불변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대한민국은 존재 근거를 상실한다.



하지만 헌법의 대원칙하에 만들어지는 하위법들은 과연 법이 원칙에 따라 적용되고 있는가? 과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가? 이 질문은 아직 정확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 형식적으로 법치국가이지만 아직 우리는 완전히 법치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두 재벌 회장의 집행유예가 이를 증거한다. 또 법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는 너무 먼 당신이다. 대한민국의 이런 현실에 항의하는 이가 있으니 김두식 교수이다. 그는 <헌법의 풍경>에서 말한다.


 


 


 


"이 책은 정의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승자의 일방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까닭에 표면상 평온해 보이는 사회를 '법의 지배'로 오해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탈을 쓴 폭력의 지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적인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란 결국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나 진리를 찾아가는 이런 과정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본문 6쪽)


 


법의 지배와 합리적 토론이 아닌 강자의 논리가 법 위에 있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법의 지배와 합리적은 토론과정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 헌법 1조만 대한민국에 온전히 적용되더라도 살만한 나라가 될 것이다.


 


<헌법의 풍경>은 2장에서 '국가란 이름의 괴물'에서 과연 '국가는 절대적인 선'인가 질문하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수 없이 외웠던 기억이 났다.



과연 국가의 상징인 국기, 곧 국가에 대한 이런 충성이 과연 정의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는 절대선이 아니다. 양심과 진리에 위배된다면 국기도 국가도 완전한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김두식은 국가란 이름의 학살자를 통하여 이런 확신은 더 분명해진다. 히틀러의 '독일' 히로히토의 '일본'은 국가였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는 학살자에 불과했다. 히틀러와 히로히토의 국가도 법에 의한 통치를 받았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김두식의 말을 빌려보자.



"나치 독일의 이야기는 법에 의한 지배가 그저 '외형상 법처럼 보이는 것들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정의에 합치되는 법에 의한 지배'여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괴물화를 막기 위해 지켜내야 할 법은 반드시 '정의에 합치되는 법'이어야 합니다. '법의 탈를 쓴 불법'은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악의 도구일 뿐이며 이미 법일 수 없습니다." (본문 90쪽)



우리가 경험한 불법인 법들이 얼마나 많은가? 박정희 군부독재기간의 '긴급조치' 아직도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은 불법이 법으로 국민과 이념과 사상의 자유를 해한 예인 것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내용은 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이를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라 말한다. 어쩌면 권력자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지만. 자기의 존엄한 가치를 상실할 수 없다는 인간의 근원적 가치를 최고의 진실로 인정하는 위대한 법조항이었다.



진술거부권, 말하지 않을 권리는 모든 국민이 가진 위대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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