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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신념을 파는 지식인들 | 인문 2008-11-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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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편
후마니타스 | 200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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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사르트르가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한 지식인에 대한 명제는 아직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인이란 진리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 편에 서서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 사회에 진리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 편에서 서서 권력-정치, 경제, 언론-에 저항하는 지식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 저항하는 지식인은 '죽었다'고 선언 한 책이 나왔다. 물론 이 책은 지식인의 죽음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진리와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이 다시 부활을 고민한다. 2007년 4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지식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변론문을 모은 <경향신문>이 펴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다.

 

사르트르 말처럼 지식인이란 태생적으로 저항하는 자이다. 하지만 민주화 20년 동안 우리 사회 지식인은 “이제 사회는 외세에 억눌린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이끄는 안내자, 민중 이익의 수호자, 위대한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서 지식인을 원하지 않는다”가 되었다.

 

도도한 역사 물결에 저항적인 지식은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권력을 위하고, 권력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일 뿐이다. 권력 수호 전위대로 초라하게 전락해버린 지식인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저항하는 지식인에서 권력에 순응하는 지식인, 자본에 순응하는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독재권력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과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상'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평생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썼던 김대중 정부 시절 학문과 지성을 통하여 권력에 저항했던 지식인을 '신지식인상'을 대처하여 결국 지식인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일 뿐,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었다는 비판은 마음을 아프게한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식인은 '경제권력'과 어울리게 된다. 경제권력에 순응하는 지식인은 결국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명예박사를 주지 못해 안달이고, 산학협동은 '산학일체'로 진화 중이며 대기업 연구용역비를 받는 상당수 교수들은 재벌개혁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23쪽)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저항했다. 시대정신으로 불린 함석헌과 리영희 저작들, 장준하의 선구적 활동, 백낙청 김현의 비평 의식. 이들은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저항했다. 그 저항은 사라졌고, 자본 권력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가난한 자와 억압당하는 자가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없는 데도 지식인은 저항하지 않는다. 신분제 사회로까지 나아가는 현실이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지식인은 죽은 자이다.

 

"한국사회의 물질적 구조적 변화를 빠트리고 지식인상의 변화를 말할 수 없다. 서울대 입학상 중 상류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가는 현실을 덮어둔 채,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지고 학력격차가 신분 고착화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말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 박사가 최고곡 학연과 인맥이 우선시되는 문제 괄호를 치고 지식인상을 논한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지식인'은 되새겨야할 화두다. 과거에도 지식인은 학력과 신분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지식인이라 본시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다. 허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 할 길을 묻는 한 그는 언제나 지식인인 것이다."(56쪽)

 

지식인들은 ‘지식인의 죽음’을 부른 요인을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자본종속과 시장논리지배’ ‘서구 학문 중심주의 및 의존’이라고 말하다. 서구학문 중심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교수 34명 중 31명, 정치학과 11명 중 10명, 외교학교 11명 중 10명, 사회학과 14명 중 9명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지적은 우리대학 현실이 얼마나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인지 알게 한다. 보수와 진보가 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양성한 지식인이 없다. 우리를 말하고, 우리 사회를 말할 수 있는 지적 풍토는 없고, 껍데기라도 미국에서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자생적 지식인의 학문 성과가 더 탁월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지식인사대주의'도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팽배해 있다는 비판은 진보지식인들이 새겨할 내용들이다.

 

특히 5장에서 다루고 있는 '경제권력과 지식인'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식인들이 이제는 자기 신념을 자본에 팔아버렸다는 강한 비판은 경제권력이 정치 권력 우위에 자리잡았음을 알게 한다.

 

“심각한 문제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인의 신념을 팔아 버린다는 데에 있다. 기억 프로젝트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버리면서 무리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다.” 128쪽)

 

이는 지식인 개인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의 변화에 기인함을 지적하고 있다. 기업은 이제 돈만 버는 조직이 아니다. 돈만 버는 조직으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회적인 사업을 통하여 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시대이다. 물론 궁극적 목적은 이윤이다.

 

기업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윤은 사회와 나눔으로 말미암아 이윤만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사회와 공익을 위한 기업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기업 발전이 우리 사회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데올리기를 심어줌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가 먹혀 들어가고 있다.

 

“기업의 영역이 정부는 물론 전 사회로 확장되고 있고, 기업 없이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담론이 확고해진 상황에서 지식인 개인으로서 택할 수 있는 길은 기업에 속하든지, 아니면 척을 지든지 둘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셈이다."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배로 들어섰기에 지식인은 이제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이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의 생산 기술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충격이다.

 

하지만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지식인은 죽었지만 대중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은 대중 지식인들이 지식을 나누는 공간이며, 지식인들이 독점했던 지성을 논쟁과 물음을 통하여 대중지성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식인의 죽음으로 통탄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성공간인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는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고, 선(善)의지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면 된다. 그 중 하나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제도도 대중지식인을 통한 대중지성을 만들어가는 귀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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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 | 사회 2008-11-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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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막스베버, 이 사람을 보라

김덕영 저
인물과사상사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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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어떤 곳일까? 전문성이 바탕이 된 지적 논쟁과 토론이 있고,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상대가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이 탁월하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일까? 아니 함께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에서 자신과는 다른 학문세계를 열어가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덕영은 대한민국 대학을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에서 “조폭과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패거리 문화, 근친상간과 동종교배가 횡행하는 대학, 사학비리,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노동력의 착취, 학력위주와 학위조작, 기초학문의 위기, 기업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대학, 시민강좌 수준으로 전락한 대학 교양 교육, 영어 공용화를 외치는 지식인들이 …”가득 찬 곳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상아탑’은 학연, 지연, 연줄, 자본에 이미 무너졌다. 한 마디로 ‘거대한 혼돈’ 이배하는 대학이다. 김덕영은 거대한 혼돈에 허우적거리는 대한민국 대학 현실을 향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그 대안을 ‘막스 베버’(1864~1920)가 살았던 삶과 학문적 성과를 통하여 찾고자 한다.

 

막스 베버는 니에스, 지멜 등과 더불어 현대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지은이로 익히 알고 있다. 항상 우리는 이렇다. 누가 어떤 책을 썼다는 정도로 그를 안다 말한다. <자본>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칼 막스를 안다면서 통렬히 비판하는 것처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지도 않고 막스 베버를 논한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자로서 독일 지성계와 대학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전공인 법학 외에도 경제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고전학 따위를 연구하면서 “문화과학의 영역에서 훌륭한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베버가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대학학제가 여러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 서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버가 훗날 현대사회학의 거목으로 독일 대학계를 넘어 세계 지성계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독일의 지적 풍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있는 독일 대학사회의 지적 풍토는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를 읽어가면서 부러움과 함께 그 길을 결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일류대학 열병과 학문보다는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우리 대학 현실에서는 세계 지성계를 뒤흔들 대학자가 탄생할 수 없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베버가 살았던 독일사회는 현재 우리 사회보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았다. 시민계층은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성숙하지 못했다.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독일 통일과 함께 정치와 정신을 지배했던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가 다스렸던 시대와 같다.

 

비스마르크를 정점으로 한 독일은 군국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관료주의가 독일의 학문, 대학, 정신까지 지배하였다. 독일경제학은 경제 행위의 주체로 여겨졌던 '국가' 대신 시민사회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주창하였고, 독일제국 아들인 독일시민 계층 역시 자기 자신을 '아버지'인 귀족계급과 동일시하였다.

 

“독일 시민계층의 정치적 미성숙은 독일 국민 국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문제,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 역사의 종말를 고할지 모를 정도로 국민국가에 위협적인 것이라고 베버는 확신했다. 이처럼 독일의 시민계층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이유는 아직도 귀족계급이 군주주의적며 관료주의적인 국가체계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으려면 국민국가를 창건한 귀족계급, 즉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시민계층, 즉 아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것밖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132쪽)

 

베버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아버지 살해란 독일정신-시민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정신-에 대한 거부였다. 시민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가야 말로 진정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믿었다.

 

베버는 비스마르크가 남긴 "눈곱만큼도 정치적 교육도 받지 않은 국민"이 "정치적 사고의 자유성과 정치적 자유를 교육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신적 자유를 최고 선으로 여겼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고, 국가를 시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그 행위를 억압하는 것을 거부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일이다. 경제와 안보를 위하여 시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였고,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다.

 

지금 그 망령이 되살아나려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진정 강한 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에 있지 않고,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할 때 가능함을 우리는 베버를 통하야 배워야 한다.

 

베버는 말한다. 대학은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이다. 베버는 대학을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으로 보았다. 대학이란 다양한 자유로운 정신들이 모여 서로 투쟁하는 곳이다. 사회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하며 무정부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한다.

 

베버는 자기와 학문세계가 달라도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가 위대하다면 존중하였고,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기를 원했다.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출신의 이탈리아 사회학자로서 신디칼리즘(급진적 노동조합주의)과 아나키즘이 결합된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로버트 미헬스를 부르주아 사회과학자들의 독무대인 학술지와 학회 및 사회과학 총서 발행인으로 끌여들었다고" 김덕영은 말한다.

 

학술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베버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아니면서도 급진적 사회주의자 미헬스를 보수사회학회지 논문에 게재토록 했다. 이유를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관계된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철학 역사학 국가과학읩 분야에서는 기능한 다양한 방향의 대표자가 공존하면서 활동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바의 대학은 교회나 종파 또는 국가를 유지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191쪽)

 

“대학이란 한마디로 전문적 연구와 전문적 교육을 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수의 인격은 바로 이 전문성에서 나온다.”(213쪽)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지난 봄 서울대학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가 정년퇴임을 했다. 김수행 교수는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였다. 경제학부교수가 30명이 넘는데 김수행 교수 퇴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자는 사라졌다. 대한민국 일등 대학, 세계 일류대학을 지향한 대학이 학문의 다양성을 거부한 것이다. 치열한 논쟁은 간데 없고, 획일화된 사상만 지배하는 대학은 죽은 사회이다.

 

김덕영은 말한다. 대학과 학자는 전문성을 설파고, 다른 이의 학문을 학문으로 비판해야 한다. 분석과 비판, 논쟁과 아버지 살해가 존재하는 대학만이 살아있는 대학이라고. 학연, 지연, 혈연으로까지 엮여있는 대학민국 대학과 지식을 향하여 "대학과 학문 그리고 지식인의 근대성을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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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 그린 <보수혁명> | 사회 2008-11-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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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보수 혁명

전진성 저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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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은 근대헌법상 처음으로 소유권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인간다운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을 이상으로한 20세기 현대 헌법의 전형인 된 '바이마르 헌법'으로 유명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헌법뿐만 아니라 독일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보수 혁명'(Konservative Rovolution)이란 담론을 형성하였다. 진진성이 지은 <보수혁명>은 보수 혁명 담론을 통해 20세기 독일 보수주의와 그것을 이끌었던 지식인들을 이해하는 도움을 준다.

 

주의할 점은 '보수혁명'이라 할 때 현실 정치에 실현되고 있는 보수주의와 연관시킬 수 있지만 이들 지식인들은 현실정치를 거부했던 '반(反)정치적' 이념을 빚어냈음을 알아야 한다. 보수혁명을 이끈 이들은 반서구주의 반근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고, 보편성을 지향하며 개별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서구 자유주의의 이념을 거부하였다.

 

"독일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계몽 사상과 프랑스 혁명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줄곧 서구 세계에 대한 저항 의식을 키워왔다. 이 이념은 특히 범인류적 보편성을 지향하는 서구 자유주의를 문제시했으며 그것의 토대인 계몽적 이성과 개인의 자유의 원리를 모두 거부했다."(20쪽)

 

계몽사상과 개인의 개별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기술과 산업혁명, 다양한 정치적 ․ 사회적 혁명을 가져왔다. 이는 기존의 사상과 예술, 정치 형성과 사회 구조를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독일 지식인들은 이 변화를 위기로 인식하였고, 붕괴되어가는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보수혁명은 근대적 혁명 이념들이 고취시켰던 바와 같이 ‘역사적 진보’를 위한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혁명이었다.”(31쪽)

 

<서구의 몰락>을 지은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는 “우리는 생을 지배하는 이성의 힘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는 생이 이성을 지배한다고 느낀다. 인간에 대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계몽사상과 보편성, 이성적인 사유를 거부했던 보수혁명은 '전쟁'(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폭발한다.

 

1914년 8월 1차대전 발발을 통하여 집회 자유가 제한되었던 프로이센 독일에서는 '개인들과 계층들과 직종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거리로 뛰쳐나와 '카니발'을 연상시켰다. 이런 일은 독일 보수층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개별 인간의 권리보다는 '통일된 단위'로 유대를 재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자 에른스트 트뢸취(Erenst Troltsch)는 말했다.

 

"이 믿기 힘든 (전쟁의) 압력하에서 독일의 삶의 희생, 형제애, 신뢰의, 필설로 다 할 수 없이 위대한 통합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승리에 대한 확인이야 말로 잊을 수 없는 8월이 준 의미였고, 또한 현재에도 그러하다."(39쪽)

 

독일 보수주의는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전체)가 운명일체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독일 민족 개별 인간은 새롭게 등장은 주체인 공동체에 부름받는 객체가 되었다. 수 많은 젊은이들은 결국 전쟁에 스스로 나섰지만 독일은 처참한 패배를 맞게 되었다.

 

개별 인간이 아닌 공동체와 전쟁이 나은 처참한 결과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이성,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하지만 독일은 정치적 행위의 결정 요소를 민주적 토론이 아니 합의 보다는 오로지 정치적 책임자-권력자-의 임의적인 결단에서 찾는 '결단주의'가 등장했고 독일은 '보수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보수혁명에는 여러 분파들이 존재했지만 정치지형을 만들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현실 정치가들보다는 문인과 예술가, 비주류 사상가들의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카를 슈미트는 결국 '총체적 국가' '영도자 국가'가 이상적 국가로 개별 인간의 자기 주장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권위 있는 영도자가 지배하는 국가를 원했는데 결과는 1939년 폴란드 침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보수혁명>을 통해서 인간 이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한 개인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만든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나치즘은 독일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보수 혁명을 주장했던 인간 파괴를 통하여 우리는 20세기 겪었던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독일 보수주의자들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세계는 인간 파괴를 떨처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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