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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몰라도 정말 모르십니다 | 耽讀 쓴 기사 2008-04-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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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이후 한우 농가 달래기에 매우 바쁘십니다. 어제(26일)는 한우 농가를 방문하셨고, 오늘은(2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축사에 적용되는 현행 소방법의 문제점을 예로 들며 규제혁파와 현장중심 행정을 강력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발언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축사를 짓는데 소방법 때문에 까다로워서 못 짓겠다고 하더라. 소방법에 의해서 비상구 표지판을 붙였다고 해서 소가 그걸 보고 나갈 것도 아닌데... 소방방재청장 (여기) 안 오나. 내가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못하겠더라"라는 부분입니다.

 

참 몰라도 정말 모릅니다. 한우를 키우는 분이 어떻게 말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소방시설은 강화되어야 합니다. 돼지와 닭 축사에서 화재가 나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소가 비상구 표지판을 보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소방 시설이 완벽해야 합니다. 불이 나지 않도록 완벽한 소방시설이 필요합니다. 불이 나면 가축들은 다 죽으니까 말입니다. 소방법 규제를 완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방시설 설비에 지원을 해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또 대통령께서는 "일본 화우같은 것은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다. 소 한 마리 가격이 1억원하는 소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데 그러면 일본처럼 개방해도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것"라고 했습니다.

 

1억원이 넘는 일본산 화우는 분명 최고 품질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화우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 일본은 수입되는 외국산 교잡우를 억제하기 위한 표시강화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2006년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농림수산성 산하 ‘가축의 유전자원 보호에 관한 검토모임’에서는 일본소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화우정액에 바코드를 인쇄해 유통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습니다.

 

또 쇠고기 생산이력제를 활용해 순수한 일본소만을 표시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일본소를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축사농가를 국외연수에 보내고, 휴경지에 방목까지 실시합니다. 일본은 화우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가 나서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정부는 얼마만큼 한우를 최고 품질로 생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까? 모든 문제를 한우농가들이 다 책임져야 합니까? 질병관리시스템과 오수 처리 시설까지 하는 일본 화우가 최고 품질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우가 최고 품질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한우협회, 한우농가가 합심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값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완전히 개방하고 무슨 수로 한우농가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품질 개량에 나설 수 있습니까?

 

얼마 있지 않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일본처럼 최고 쇠고기를 먹는다고 하셨습니까? 얼마 전에는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도시 노동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결국 미국산 쇠고기는 질 좋은 쇠고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돈 없으면 미국산 쇠고기 먹으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3만달러가 되지 않으니까 미국산 쇠고기를 값싸게 먹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한우를 먹자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광우병 위험물질을 한 없이 먹은 후입니다. 광우병 걸리고 한우 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이미 앞서가는 축산농가는 쇠고기 개방을 해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면서 "어제 방문한 축산농가도 FTA(자유무역협정)나 쇠고기 개방을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감히 그 한우 농가가 대통령 앞에서 쇠고기 개방하면 우리 한우 농가는 다 망한다고 어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와 미국 농민은 근본적으로 경쟁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키우는 농가가 약 3천마리를 키웁니다. 그런데 미국 농가는 거대 기업입니다. 몇 만, 몇 십만 마리를 키웁니다. 과연 경쟁이 될까요?

 

몇 몇 한우 농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우가 아무리 비싸도 사 먹는 사람이 분명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한우농가는 경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통령께서는 사료값 폭등에 대하여 "그 축산농가 대표의 아들은 '버려진 빈 땅에 풀을 많이 심었고, 논농사도 열흘 중복되는 것을 피하면 이모작도 할 수 있다. (사료)값이 올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버려진 땅에 풀을 심어 사료로 사용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풀만 먹은 소는 질기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 잘 맞지 않습니다. 곡물 사료(조사료)를 먹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풀과 조사료를 같이 먹여야 좋은 육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풀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풀을 키울 만한 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우는 키우지만 땅이 없는 농가에 땅을 임대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조사료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료값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이 아직도 미약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우농가들의 단순한 푸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광우병이라는 국민건강권 침탈과 우리나라 한우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돈 몇 푼 지원해주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하루빨리 고쳐야 합니다. 정말 국민건강권과 우리나라 한우를 보호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찾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 중에 가장 빠른 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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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이 부럽다. | 인문 2008-04-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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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저/박성관 역
청어람미디어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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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와 <고양이 빌딩>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다 다카시는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다. 책을 사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학생 때는 문학에 심취했고, 기자와 철학도로 살았다.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통하여 세인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연과학, 종교, 뇌과학, 우주, 지구과학, 죽음, 예술, 테크놀로지, 국제정치경제학, 생명과학 등으로 지적 지향을 넓혀가고 있다.


 


어느 한 분야에 생명을 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만큼, 다양성이 지배하는 학문과 책에 대하여 대단한 열정으로 책 읽기를 한다.


 


우리는 그가 읽는 분야를 '논픽션'이라 부르면  이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논픽션 작가'라 한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하여 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그가 이번에 <피가되고 살이되는 500권, 피도살도 안 되는 100권>을 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쓰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그는 이 시기를 '나의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라고 표현한다) 대담 형식으로,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책 읽기 족적을 실었다.


 


수수께끼같은 시대였지만 그는 이때 지적 자산이 충분히 축적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읽기 시기였다고 말한다. 책 한 권을 쓰는데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껍데기 같은 책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우리 시대 글쟁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2부 나의 독서 일기에 소개된 책은 235권이다. 나의 독서 일기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주간문춘>에 신간을 읽고 쓴 독서일기를 연재한 것이다. 신간 서평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가 서점에 가서 책을 선정하는 방법은 재미있다.


 


'도쿄도서점'에서 책을 고른다. 무턱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 들르는 도쿄도 서점과 미디어 서평을 먼저 참고한다. 처음에는 열 몇 권에서 스무 권 정도 선택한다. 표지와 띠지, 목차와 머리말, 후기 정도를 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한 권 당 1분에서 3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다음으로 15권 정도 고른 책을 2분 정도 살펴보면서 이거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10권 정도 남기는데 한 권당 3분 정도 하여 7할 정도를 가지고 집에 와서 주의깊게 읽는다. 앞 부분 5, 6쪽을 읽는다. 그 책의 질이 대부분 5, 6쪽에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한 권당 6, 7분이 소요된다. 여기서 제외되는 책이 있고, 읽을 만한 책이 5권 정도로 줄어든다. 책 한권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가 드는 품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읽은 책들이 대부분 문학 작품이었지만 그가 나의 독서 일기에서 소개한 책은 논픽션이다. 일본은 지금 문학보다는 논픽션이 강세라고 한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가 문학도로 삶을 살았던 시절은 지독히도 픽션이 대세였다. 그가 <문예춘추>에 있을 때는 문필가로 '선생'이라고 지칭되는 사람은 소설가 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문학 부진 현상의 근본 원인을, 독자가 문학 작품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현대 문학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45쪽)


 


하지만 논픽셕은 생생한 현실을 제공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한다고 말한다. 픽션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와 생생함이 살아 있는 논픽션은 사방에 펼려져 있다고 다치비나는 말한다. 문학 작품에 대한 비판에 모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시대 소설들의 공허함이 지배하는 것에 분명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분명하다. 소설과 비교해도 논픽션 작품들이 흥미와 재미, 생생함이 강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치비나는 왜 그토록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그리고 인간이 지적인 욕망을 상실하지 않는 한, 인간은 '더 책을 읽고 싶다', '새로운 책과 더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더 읽고 싶은 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지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이 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적으로 죽었다고 해도 좋습니다."(52쪽)


 


한 마디로 정의하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책 쓰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편과 표피만으로 글쓰기를 말 장난처럼 해대는 요즘 글쓰는 이들을 향한 일격이다. 다치비나의 책 읽기는 대충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다나카 가쿠게이 연구>는 탐사보도를 통하여 거대한 악과 일전을 겨루어 이긴 것은 지독한 책 읽기이라는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치비나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아사히 저널>을 무대로 록히드 재판 비판파들과 논쟁을 했다. 그와 논쟁한 사람들은 법률 전문가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15단 분량의 법률 전문서를 철저히 독파했다고 말한다.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주해서를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전문가들과 논쟁할 때는 그 수준으로는 당해날 재간이 없으니까 일본평론사의 <공판법 대계>(전4권) <증거법 대계>(전4권> 같은 책을 읽어야 했어요. 그 때 늘 곁에 두고 도움을 받은 것이 <판례 형사육법전서>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최고재판판례집에 달려드는 식으로 해갔습니다."(170쪽)


 


결국 그는 법률전문가들과 논쟁에서도 지지 않았다. 다치비나는 어떤 분야를 읽어도 철저했으며, 분명했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에는 책 제목만 소개한 것들도 있지만 다치비나를 통하여 우리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읽기가 필요하며, 얕은 지식으로 책 한 권 내는 우리 지식 풍토에 강한 경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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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대한 예의 없음으로 물러나라 | 耽讀 쓴 기사 2008-04-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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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못자리와 고추를 심었다. 농부가 쌀 한톨을 생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는지 경남 사천 지역(모내기는 지역마다 시작하는 날이 조금씩 다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올해 동생은 4월 16일 볍씨를 담갔다. 4월 19일에는 흙과 볍씨를 못상자에 담았다. 4월 26일 싹이난 볍씨를 못자리에 옮겨 못판을 만들었다. 앞으로 40일 전후로 해서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약 140일이 걸린다. 그동안 농약을 세 번 정도 뿌린다. 아마 올해 가을걷이는 10월 10일경쯤 될 것이다. 그러니까 볍씨 담그기부터 가을걷이까지 약 170-180일 정도 걸린다.

 

농부는 18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논에 나가야 한다. 벼는 심어 놓으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다. 벼는 하루하루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게으른 농부 주인을 만나면 벼도 게으르고, 부지러한 농부주인을 만나면 벼도 부지런하다.

 

고추는 어떤가? 벼보다 더 예민하다. 두둑을 만들고, 풀이 나지 못하도록 검은색 비닐을 덮어야 한다. 비닐에 구멍을 뚫고, 물을 구멍 하나하나에 부어 주어야 한다. 벼는 이앙기(모심는 농기계)로 심지만 고추는 손으로 하나하나 심어야 한다.

 

고추는 특히 습기에 약하다. 여름철 장마와 태풍, 폭우가 오는 날이면 고추농사 짓는 농부들은 비상 상태다. 물빼기를 조금만 늦게 해주어도, 애지중지 키웠던 고추는 습기 때문에 다 떨어진다.

 

농사는 이토록 인고의 삶이다. 하루라도 농부가 돌보지 않으면 벼와 고추, 어느 농작물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있을 수 없다. 요즘 주말농장이 인기지만 주중에 누가 돌보지 않는 한 100% 실패다.

 

이렇듯 농사짓기가 인고와 사랑의 열매인데 우리나라 청와대 수석들은 농지법위반, 자경확인서를 급조하여 돈 벌기에 바빴다. 농지를 사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법을 몰랐다고 했다. 이는 투기의혹보다 더 나쁜 말이다. 농사 지을 땅을 샀으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법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 논과 밭이기 때문에 지어야 한다.

 

자본의 노예가 할 수 있는 말이다. 논과 밭을 구입하여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것은 땅을 모욕한 것이다. 돈 많은 자들의 투기 놀음은 이미 생명을 잃은 지 오래되었지만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나라를 위하여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땅을 사고서 실정법 운운하면서 농사짓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을 듣고 있으니 분노가 치민다.

 

특히 이동관 대변인은 "취득과정에서의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공직수행에 결격 사유가 안된다"고 말했다. 취득과정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공직수행에 결격 사유가 아니다? 이는 망발이다. 취득과정에 불법 사유가 안 될지라도, 절대농지를 구입한 주인이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은 것은 더 잘못이다.

 

절대농지는 한 마디로 무조건 농사 지으라는 명령이다. 취득과정에 불법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는 것이 땅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다. 절대 농지를 소유한 자가 흙 한 번 묻히지 않고, 서울에 살면서 노후생활을 대비해 사놓은 땅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영종도 농지건은 명백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박미석 수석은 문제가 일자 농사를 짓지도 않았으면서 농사를 지은 것처럼 자경확인서를 대한민국 국민 앞에 놓았다. 국민에 대한 모독이요, 땅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지금 땅을 자본에 팔아버렸다. 아파트, 공장, 골프장, 온갖 콘크리트 건물 짓는데 팔아버렸다. 땅을 일굴 사람이 없어 놀리고 있다. 광우병도 죽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땅 투기과 공장, 골프장, 아파트도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왜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을 무조건 수입하기로 했을까? 청와대 수석과 대변인이 절대농지를 구입하고, 자경확인서를 급조하면서까지 돈 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땅을 돈 벌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광우병도 수입하면 돈이 되는데 왜 수입하지 않겠는가? 돈이 되는데.

 

박미석 수석, 이동관 대변인은 물러나는 것이 원칙이다. 대한민국 실정법을 어긴 원칙에서도 물려나야 할 뿐 아니라 농사 지을 땅에 농사 한 번 짓지 않은 땅에 대한 기본 예의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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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치열한 삶의 대화 | 사회 2008-04-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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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화

리영희 저/임헌영 대담
한길사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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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삶을 살아온 자는 당당하다. 부끄러움이 없다. 거짓된 삶을 살아온 자는 항상 거짓되다. 진실 앞에서 서면 추해진다. 당당한척 하지만 가장 추락한 자신을 보여준다. 당당한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있으니 '리영희'다.


 


'리영희' 그는 누구인가?  <전환시대의 논리>로 1970년대 청년들에게 진리를 향한 외침을 부르짖게 했다.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등 그가 내 놓은 글들을 진실을 향하여 당당한 삶을 추구했던 이들에게 지적 사유를 하게 했고, 나는 그가 남겨 놓은 글 앞에 무릎 꿇고 읽고 또 읽었다. 그는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가 2005년 3월에 임헌영과 나눈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대담형식으로 담은 <대화>를 내 놓았다.


 


<대화>를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사람은 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 자신을 다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반추하는 대화는 녹록하지 않다. 가식을 담을 수 없다. 리영희 선생의 <대화>는 지식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말한다. '전문가'가 아닌, 시대가 고민하는 것을 자신과 일체시킨 삶이었다.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본문 7쪽)


 


전문지식을 자본에 팔고, 권력에 팔고, 명예에 파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그 지식을 팔아 권력을 만들고, 스스로 기득권에 들어가 결국 지식장사꾼으로 살아갈 뿐이다. 리영희는 자신을 지식장사꾼이 아니라 자유와 책임으로 시대의 고민과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했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지식인은 지식장사꾼이 되면 그는 지식을 배반한 자가 된다. 지식을 배반한다면 그 지식은 자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인다. 리영희가 살았던 대한민국은 자유를 통제했고, 자유를 향한 외침을 탄압했다. 그는 그런 환경을 '반인간적 환경'(8쪽)이라 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죽임이 난무하는 세상은 삶이 가치가 없다. 인간과 자유, 평등과 진실은 거짓될 뿐이며, 기득권에 항거하는 사악한 존재일뿐이다.


 


그 험혹한 대한민국 사회를 살았던 리영희의 삶이 <대화>에 녹아 있다. 대화를 통하여 한 지식인이 험혹한 사회를 어떻게 도전과 응전을 통하여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 험혹한 세상을 만드는 구성원들 중에는 전문가 지식인들, 지식을 팔아 살아가는 지식장사꾼들이 존재했음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청년과 학생, 지식인들에 의해서 '사상의 은사'로 불리운 것을 과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상의 은사는 리영희 자신의 삶을 험혹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야만의 권력은 나에게 '의식화 원흉'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씌워 핍박의 고삐를 조였다. 이 시기, 거짓(허위)로 덮인 깜깜한 한국의 하늘에 희미하나마 한 줄기 진실과 이성의 빛을 비춰주려는 나의 글과 사상이 '야만의 지배'를 물리치려는 선령한 인간들의 눈물겨운 싸움에 힘이 되었는지, 또 이 시대 한국사의 전진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을지 아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1990년대에 이르러 나라에 광명이 비치게 되었을 때, 나는 허약한 한 지식인으로서 미미하나마 나의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자위했다."(본문 8쪽)


 


사악한 권력은 진실을 말하는 자를 오히려 사악하다 말한다. 그 사악함에 어떤 지식은 진실을 판다. 진실을 팔아 권력과 하나 된다.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야만을 거역해야 할 지식인이 오히려 야만이 진실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리영희 그는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을 거역했다. 그러기에 그는 의식화 원흉으로 지배권력이 핍박했지만 사상의 은사로 칭송받았다. <대화>는 리영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임헌영과 대화하면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시대 대한민국은 또 다른 전문가 지식인, 지식장사꾼이 되기 위하여 공부한다. 지식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 인민을 위하여 사용하기 보다는 자본에 팔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대화>는 그리 달갑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험혹한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를 읽음으로 작은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하다. 리영희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나라, 사회의 변화와 전진을 지켜보면서, 혹시 요구가 있으면 몇 마디를 해주는 것으로 족하지.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성현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나에게 한 말이라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자서전 같은 것을 마다했지.(본문733쪽)


 


인간은 언제든지 변절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기를 견책하지 않으면 변절할 수 있다. 리영희 선생은 끝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사회가 원하다면 미력한 보탬을 하겠다는 말에는 숙연함마저 든다. 그렇다 그가 살아온 삶이 그랬기에 자신을 높이지 않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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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을 살아온 자의 40년 회화록 | 사회 2008-04-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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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낙청 회화록 1-7권 세트

백낙청회화록 간행위원회 저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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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복된 일은 무엇일까? 수십억짜리 아파트, 일류대학 졸업장, 권력을 가진 경력, 수십억이 넘는 재산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은 육신 장막이 끝나는 순간 더 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리 가지고 가려고 하지만 결코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가지고 간다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인생살이 40년 동안 자신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책을 남긴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진짜 복이다. 창비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가 대담과 좌담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표명한 '말'들을 정리한 <백낙청 회화록 1-5>은 정말 대단한 역작이다.


 


5권에는 40년 동안 창작과 비평을 통하여 각 시대마다 지식인들이 문학과 사회 민족 정치 역사 등을 주제로 벌인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백철 김동리 선우휘 박현채 등 지금은 다시 육신을 통하여 만날 수 없는 이들과  리영희, 강만길, 고은, 김지하,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레드릭 제임슨, 가라타니 고진 등 국내외 지식인 133명(국외 12명)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변혁적 중도주의 등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진보라는 틀을 제시했던 백낙청이지만 1권 '작가 선우휘와 마주 앉다'에서 사르트르를 두고 선우휘남에소 나눈 대화를 보면 고통스러운 단면을 보여준다.


 


"싸르트르를 끝까지 충실하게 추종하게 되면 결국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가는 것이 아니냐. 말하자면 그가 작가의 역할을 기존사회의 모순을 파헤쳐야 한다는 데 둔다고 할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이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백낙청 회화록 1권> '작가 선우휘와 마주 앉다' 16쪽) 


 


선우휘의 도전적인 질문에 30살 평론가 백낙청은 말한다. “요즈음 특히 좌경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모든 행동을 우리 지식인들이 맹종한다면 우리 지식인들도 그에 못지않게 좌경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귀결이겠지요”라고 말한다.


 


이는 군부폭압정권이 사상과 사유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은 시대 아픔을 느끼는 청년 백낙청의 안타까운 반응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거대한 보수논객 앞에 30살 청년 진보지식인은 작게 보인다. 그 작게 보이는 것이 질곡과 아픔을 뒤로하고 조금씩 나아져서 결국 40년 역작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논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논쟁이란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논쟁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와 독재권력이 사상과 사유를 획일화시켰기 때문이다. 논쟁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을 설득시켜 가는 과정이며, 또한 상대방 주장을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과학방법론으로 맞다면 인정해주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논쟁은 즐거움이다. 얼굴 붉히면서 격정적인 토론을 하지만 서로를 존중한다. 획일화된 사회는 존중을 찾을 수 없으면 흑백만이 난무한다. <백낙청 회화록>에서는 논쟁을 즐긴다. 상대방 주장을 인정 비판하는 과정을 상세히 전해준다. 백낙청은 항상 상대방 주장 가운데 자신이 동의하는 부분을 먼저 밝힌 뒤 이를 자신의 생각으로 새롭게 정립한다. 이를 반격이라고할까? “그 점은 저도 동감입니다만” “물론 저도 거기에 동감인데요” “그건 그렇지요, 그러나”와 같은 표현에서 그가 논쟁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를 논쟁이 없는 사회라고 한탄하지만 40년 창작과 비평에는 분명 논쟁이 있었다. 사유와 사상이 다른 이들이 인간과 사회, 역사, 민족, 정치를 두고 치열한 지적 논쟁을 했기에 창작과 비평은 지금도 뭇 사람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40년 우리 지성사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론 투쟁에 적극적이다. 이론이 곧 실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무시가 아니라 더 나은 진보를 위한 노력이다. 백낙청은 말했다. "남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저 나름으로 그런 진리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글'이 아니라 '말'을 담았기에 읽는 독자는 좌담과 대담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생생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사상과 사유의 영역과 철학이 달라도 그들은 논쟁했고, 무시하지 않았고, 서로를 설득하려고 했다. 자신의 철학과 사상은 지키려고 하지만 상대에게는 자신의 사유 영역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여기에는 강압이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회화록을 보면 이전에는 긴 대담과 좌담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짧은 대담과 좌담이 많다. 2권(1985~90)과 5권(2005~2007)에 각각 실린 글은 9편과 34편으로 큰 차이가 난다. 책 두께가 비슷한데 실린 편수는 4배 가량 차이가 난다. 시대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논쟁은 많은 시대이지만 깊이 있는 논쟁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백낙청 회화록 부분에서 뽑은 말들이다.


 


“극복의 대상으로서 분단체제를 말한 겁니다. …남북한 모두가 포섭된 하나의 체제를 인식하자는 거지요. 그렇다고 완결된 체제는 아니고 말하자면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한 하위체제로서, 남북 양쪽의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이익에 위배되고 전세계적으로도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익에 반대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제4권, 1999년 <창작과비평> 수록, 미 뉴욕주립 빙엄튼대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와의 대담 ‘21세기의 시련과 역사적 선택-세계체제,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중에서)
 
“민족문학론이 지금 싯점에서 그 내용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문학’이라는 것으로 그 내용을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제5권·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종합토론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 중에서)


 


40년 전 대담과 좌담이라 별 감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시대가 더 깊은 사유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말들을 만날 수 있다. 40년 동안 우리 지식인들이 남긴 치열한 사회와 민족, 국가와 나라, 정치, 역사, 문학을 논한 지식과 사유 논쟁 속으로 들어간다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1권 1968-1980년, 2권 1985년-1990년, 3권 1990년-1997년, 4권 1997년-2004년, 5권 2005년-2007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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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를 돌보시라 | 耽讀 쓴 기사 2008-04-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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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장로다.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서울시를 봉헌하겠다고 할 만큼 돈독한 신앙을 가졌다. 그런 신앙 형태를 두고 많은 비판이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비판 받을 수는 없다.

 

그럼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 행태가 과연 좋은 신앙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 봉헌같은 발언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만이 신정국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부활 이후 신약 성경은 특정 국가를 신정국가로 명명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로마서 10장 14절)

 

구원에 관한 가르침이지만 이스라엘이란 현실 국가를 통한 구원은 끝났다는 선언이다. 한 국가, 시(市)를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와 시, 집단을 봉헌한다는 논리는 배격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봉헌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한민국 헌법에도 합당하지않고, 성경 가르침에도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형태를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성경에 문외한지 알 수 있다.

 

성경은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친다. 그 중 하나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고 한다.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너희가 참으로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반드시 손을 뻗어, 너희의 땅에서 사는 가난하고 궁핍한 친족을 도와주어라. 그렇다고 하여, 너희가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명령이다.(신명기 14장, 4,11절)

 

가난한 자가 없게 하라고 하셨다. 장로라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이대통령의 정책에는 가난한 자들이 없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는가? 대기업 총수들과는 직통 전화를 개설하면서 그는 노동자를 외면했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과 수석이라고 비판이 일 때, 부자가 무슨 죄인가? 일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은 부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돈 자체는 악이 아니다. 하지만 유혹을 통하여 점점 악으로 인도한다.

 

가난한 자들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자로부터 재산을 나누어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가 거부될 때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시편 49편 기자는 자신의 삶을 재물 위에 세운 부자는 "멸망하는 짐승같도다"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런데 이번 이명박 정부 청와대 수석 중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종찬 민정수석은 개신교 신자다. 재산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박미석 수석 같은 경우 농사를 짓지도 않았는데 자경확인서를 제출한 것은 돈에 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음을 보연준다. 신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닌 것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통하여 드리는 십일조는 망령된 것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사탄에게 속한 재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기독교가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까지 십일조를 바치는 자를 돈 많이 낸다고 좋은 신앙을 가진 자라고 칭송한다. 이는 망령된 일이며, 신성모독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 약자와 소외된 자를 돌아보라고 했다.

 

"나 만군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공정한 재판을 하여라. 서로 관용과 자비를 베풀어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생각을 하지 말아라."(스가랴 7장 9-10절)

 

예수님도 창녀, 세리, 장애자, 병자, 가난한 자와 항상 함께 하셨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얼마만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장로인가?

 

한국 교회가 가난한 자를 배신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지 않음으로 부자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는 교회에 장로되기가 국회의원되기보다 힘들다는 것은 우스개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문제다. 지난 3월 26일 소망교회 장로 출마자들의 직업군을 보면 교수 4명, 의사 5명, 기업 CEO 18명, 과장급 이상 공무원 3명 등으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노동자는 없었다.

 

교회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신자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장로라면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교회는 이미 부자가 아니면, 권력자가 아니면 장로가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장로라면 가난한 자를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 국민건강권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강자와 부자들의 건강만 챙길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의 건강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서울시 봉헌이 신앙이 아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하여였는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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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존재하는가? | 사회 2008-04-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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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조국 저
책세상 | 200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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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과 이명박 대통령 미국 방문, 학교자율화계획 등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17일 대법원은 매우 중요한 판결 하나를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일환 대법관)가 1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탈출죄)로 기소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64) 교수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판결이다.


 

국가보안법 탈출죄란 한국인이 외국 국적을 얻고 외국에 살다가 북한을 방문한 행위를 말한다. 기존 판례는 어떤 자의 방북 행위에 대해 국적에 상관없이 탈출죄를 인정했다.


 


대한민국 헌법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로 성문화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하위법이면서도 양심과 사상을 판결할 때는 상위법 행사를 했다. 헌법 19조에서 말하는 '양심'은 윤리 의미뿐만 아니라 사상적 의미도 포함된다.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아직도 저열한 수준이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와 문화가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저해하고, 시민 의식도 저열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를 조국은 다음과 같은 주장한다.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 역시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법률의 외피를 쓴 '불법국가' 가 등장했을 때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단초는 시민의 양심과 사상적 결단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정신적 기본권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이며, '최상급기본권 Supergrundrecht'라고 할 수 있다." (본문 11쪽)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문구에는 동의했지만 사상과 양심, 특정 종교 신봉자들에게 배격과 침해를 일삼았다. 송두율 교수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이시우씨,  범청학련 남측본부 윤기진 의장, 군산 동고등학교 김형근 교사를 통하여 아직도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은 실정법률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양심과 사상의 자유 보호 범위는 어디 까지 일까? 양심과 사상을 형성하고, 결정할 때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를 받지 않았아 함을 조국은 강조한다. 즉, 국가와 사회가 특정 사상과 이념을 인민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는 세뇌 교육 같은 형식으로 양심과 사상을 형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그 동안 반공이념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안전법, 보안관찰법을 통하여 인민의 사상과 양심을 통제했다. 국가은 '빨갱이'을 사상전화시키는 억압을 일삼았다. 사회안전법은 1988년, 사상전환제는 지난 1998년 폐지되었다. 준법서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여 아직도 인민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살아남았다.


 


사회안전법 폐지 투쟁의 상징이었던 서준식 씨는 사상전환제를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성역에 대한 국가권력의 폭력적 침입이며, 극에 달한 정치적 폭력의 한 표현"이라고 했다.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는 그 강도가 높든 낮든, 그 방식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좌파사상법의 양심도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양심인 것이다." (본문 48쪽)


 


우리 사회는 반공을 통하여 사상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종교신념과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것도 억압했다. '여호와 증인'의 집총거부는 정통 기독교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지만 집총거부자들이 병역 기피를 위하여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철저한 점검을 통하여 최종 판단하여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해지는 병역 거부는 인정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관 중 한 사람인 홈스는 "사상의 자유의 원칙은 우리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의 원칙을 뜻한다"고 말했다. 나와 같은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하고, 질시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함을 선언하고 있다.  


 


홈스 대법관은 1919년 '아브람스 판결 Abrams v. United States'에서 반국가 선동죄의 유죄를 확정한 판결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말했다.


 


"나는 우리가 혐오하며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는 의견의 표현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영원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의견이 법률의 합법적이고 긴요한 목적을 즉각적으로 방해하는 위협이 너무도 임박하여 imminent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곧바로 억제해야 하는 경우 외에는."(95쪽)


 


홈스 대법관 시절보다 못한 시대를 대한민국은 살아가고 있다. 특정 사상와 이념이 국가를 전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사상과 이념이 국가를 전복할 임박한 위험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 사상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형식민주주의는 실현되었지만 아직 사상와 이념의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빨갱이를 타도하자', '좌익', '좌파'라는 말 자체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사상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임을 방증하고 있다. 획일화된 신념, 사상을 강조하고, 기존 체제에 순응을 강제하고, 기성 체제에 대하여 의심, 질문, 도전, 논쟁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진보할 수 없다.


 


조국 교수는 국가보안법을 친미 · 반공 · 분단 · 자본의 논리를 일탈하는 사상과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프로크루스테서의 침대'라고 했다. 인간의 정신을 해하는 법이 국가보안법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통하여 사상을 통제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악법임을 말하고 있다.


 


나와는 다른 종교와 신념, 이념과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그 신념과 사상, 이념을 말하고, 지키는 일에는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 사상을 침해받았을 때는 나와 다른 사상일지라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가 가야 길이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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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와 다른 일본정부 | 耽讀 쓴 기사 2008-04-2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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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서 수입 규정에 어긋나는 척추뼈를 발견해 수입을 일시 중단했다. 일본은 현재 20개월 미만의 소에서 등뼈와 뇌·내장 등 광우병위험물질(SRM)을 모두 제거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처럼 연령과 부위 제한을 완전히 풀고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압박에도 일본은 '국민건강의 안전'을 우선시 하는 정책을 통하여 미국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개방하지 않으면 한미FTA비준(안)을 위하여 의회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미국의회의 논리에 굴복했는지 몰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결국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했다. 연령제한·부위제한까지 말이다.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대통령은 국내 수입이 금지된 '몬테나' 산 쇠고기까지 친절히 먹었다.

 

그러나 강기갑 의원은 "미국 정부가 수입을 강요하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머리뼈와 등뼈 등 광우병 위험부위는 미국 축산업자들조차도 광우병 위험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동맹강화와 한미FTA비준(안)이 미국의회에 상정되고, 통과되기를 기대하면서 국민건강권을 미국 축산업자와 미국 의회에 상납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국민건강권을 이유로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미국산쇠고기 완전개방을 불허하고 있음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미국은 일본이 미국산쇠고기 전면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미일동맹이 훼손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미일동맹은 한미동맹보다 단계가 높은 수준임을 이명박 정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를 완전개방하지 않아도 미일동맹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건강권을 넘겨주면서까지 한미동맹 회복을 걱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인 외교와 안보, 경제도 '국익'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 국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익에 최우선은 국민생존권이다. 국민생존권에는 국민건강권이 포함된다. 국민건강이 훼손된 국익이 어디 있는가? 국민건강을 빼앗는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고 나서 국익을 위한 결단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이 취임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헌법 제69조)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위하여 대통령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권리와 함께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키고 있다. 국민복리에는 국민건강권이 포함되어 있다. 건강권을 지키는 일이 복리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이다.

 

국민건강권을 수행하지 않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과연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 국익, 한미동맹강화라는 이름으로 국민건강권을 훼손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고 오히려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일본이 부럽다. 미일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민건강권을 지키는 일본이 부럽다. 그런 정치력과 외교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명박 정부가 일본과 관계에서 과거사를 묻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정말 일본에게 배울 것은 이런 외교력아닌가? 일본을 배워도 잘 배워라.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다 들어주는 것이 한미동맹회복과 강화가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 않고도 미일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일본의 이런 외교력과 정치력을 배워라.

 

'21세기 전략동맹'같은 사탕발림식 말잔치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전문경영인 출신이 어찌 이토록 이익에 둔감한가?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한 합의문 조차 없는 미국방문이 무슨 성과인가? 7월 부시 대통령은 방문이 성과인가?

 

대한민국 정부와 한나라당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대한 국회청문회 개초와 국정조사권을 실시하여 개방을 위한 협상과정과 대책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미국산쇠고기 개방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대한민국 국익과 대한민국 국민건강권과 대한민국 농민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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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 | 사회 2008-04-2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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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짓된 진실

데릭 젠슨 저/이현정 역
아고라 | 2008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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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 진실이 거짓일 수 있을까? 첫 장을 열면서 던진 물음이다. 또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세인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이겨 본선에 나가 당선된다면 데릭 젠슨에게 <거짓된 진실>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거짓된 진실>을 50쪽 까지만 읽어도 내 질문이 얼마나 허망한 질문인지 알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1918년 미국 조지아 주 발도스타에서 흑인 열한 명을 무참히 살해한 백인들, 살해 당한 흑인 남편을 둔 아내가 복수를 맹세하자 나무에 매달아 난도질 하고, 불에 태웠고, 배를 갈라 아이까지 발로 머리를 짖이겨 죽였다. 하지만 그것이 수백발을 그에게 발포했다.




오래 전 일이라 우리 시대는 아닐 것이라 애써 변명하려고 하는 순간 데릭 젠슨은 칼날을 들이댄다. 2001년 남미 콜롬비아 알토나야에서 ‘암살대’라는 이름으로 부활절 주말에 40명을 학살했다. 한 여성을 데릭 젠슨은 주목했다. 암살대는 그 여성을 전기톱으로 손을 자르고, 배와 목을 갈랐다.




그러기에 젠슨에게 던지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왔다. 후세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적으로 인종 차별은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지만 데릭 젠슨이 말할 것처럼 아직 미국과 우리의 인식은 1918년과 2001년에 일어났던 잔혹, 만행, 증오에 사무친 사건들을 일으킨 내적 증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그는 <거짓된 진실>을 썼다.




“이 책은 하나의 무기다. 잔학 행위에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손에 쥐어진 총이고, 그 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매뉴얼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식을 묶어두고 지금 같은 세상에 우리를 묶어두는 밧줄을 자르는 칼이다. 도화선에 붙이는 성냥이다.” (본문 11쪽)




<거짓된 진실>이라는 제목은 추상적이다. 개념 정리를 하려고 덤벼들다가는 젠슨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읽지 못한다. 이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데릭 젠슨은 500쪽이 넘는 분량을 통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지난 1세기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제시함으로써 백인 중심의 미국 주류 사회가 얼마나 증오와 잔혹한 삶을 살았는지 37쪽-40쪽에서 사람들이 경찰 지시를 따르다가 죽음 당한 사실을 말한다.




“앤토니 바에즈, 1994년 12월 22일, 뉴욕 시 길거링서 축구를 했다는 이유로 질식사. 갈랜드 카터, 17세, 1996년 1월 8일, 등 뒤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다. 대릴 하워턴, 1994년 9월 8일, 다른 사람의 집 지키는 개한테 먹이를 주다가 총알 여섯발을 맞았다. 티샤 밀러, 1998년 12월 28일, 고장 난 차에서 자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깨는 순간 총알 열두발을 맞았다. 1996년 6월 13일, 자신의 차에 앉아서 손을 허공에 올린 상태에서 총알 열여덟 발을 맞다(첫발을 쏜 다음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검둥이 넌 이제 죽었어.).”




미국은 이렇게 만날 경찰관에게 4-5명이 죽임을 당하며 대부분이 흑인과 더불어 소수자, 유색인종, 약자들이다. 이는 드러난 잔혹하고 증오가 깃던 범죄다. 백인 경찰은 우연일 수 있다. 일상 업무에서 일어난 단순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한 이들은 생명을 잃었다. 한 번 잃은 생명은 다시 찾을 수 없다. 증오는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증오’가 수 없이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증오에 희생당하는 이들 중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이 있다. 젠슨은 강간을 증오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강간을 통하여 경험한 여성들을 남성은 성폭력이라는 죄로 말할 뿐 그것은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는 증오로 보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21-22쪽에는 FBI 직원과 대화에서 왜 강간이 증오범죄가 아닌지 대화 내용이 실려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강간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동기가 명백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강간은 피해자의 시민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히려는 욕구, 또는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나는 FBI에서 정의하는 증오범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증오범죄는 개인, 재산, 또는 사회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로서,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특정 종교, 인종, 장애, 성적 취향, 민족에 대해 가해자의 편견으로 일어나는 범죄행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강간은 증오범죄가 아닐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강간의 정의는? "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그 여성의 성기에 삽입하는 행위입니다.”


“그 정의에 피해자 남성은 포함되지 않는군요.” 내가 말했다.


“그것 참 흥미롭죠?”


“아, 그러니까 이런 얘기군요. 어떤 여성 또는 어떤 사람의 시민권은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지 않는군요.”


“성별은 법에서 증오범죄로부터의 보호범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별이 보호계층 범주라고 가정하면, 강간이 증오범죄에 포함될까요?” 내가 물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동기가 명백하게 다릅니다. 강간은 증오범죄가 아니에요.”


 


증오범죄가 개인, 재산 또는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 인간 기본권을 더 악랄하게 파괴하고, 잔혹한 범죄라 한다면 강간이 왜 해당되지는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FBI는 끝끝내 강간은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어떨가? 성폭력을 증오범죄 규범에 포함시키려고 한 젠슨의 끈기있는 주장이 애처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증오범죄라 주장하는 젠슨의 주장이 설득력있다.


 


증오범죄는 이런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재산권을 빼앗고, 노동 착취가 있다. 다이아몬드를 빼앗긴 남아프리카 원주민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대로 살던 그들의 땅을 빼앗겼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땅과 다이아몬드 권리를 주지 않았다. 아니 그들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권리는 정복한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 착취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내 옷은 착취 공장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 고기는 공장형 축산시설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빼앗아 가고, 내가 먹는 값싼 채소는 가족농을 몰아내는 농업기업이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압수한다.--- 채소뿐 아니라 커피도 빼앗아 가버린다. 커피 재배가 열대림을 파괴하고 명금류 철새 개체군을 격감시키고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소농들을 땅에서 몰아내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를 이유로 내 차를 가져가버린다. 결혼 반지도 빼앗아간다. 광업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자연 경관과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전자렌지, 냉장고도 가져가버린다. 제기랄, 전기 배선까지 통째로 가져가버리는 이유는 전기를 만드는 환경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란다"(본문 98쪽)


 


생각해보시라. 아무 권리도 없는 사람이 불쑥 내 집에 들어와서, 내가 이 집을 차지 했으니 이제부터 이 집은 내 집이요.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집문서, 땅문서, 온갖 가구들을 차지 않고 나를 쫓아낸다면 어쩔 것인가?  




문명를 자랑했던 이들이 이것을 저질렀다. 오늘날 이런 일들이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위협한다고, 독재자라고 침략하여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아직도 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국익을 위하여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집에 들어온 강도가 나를 몰아내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면 과연 나는 인정할 수 있는가? 젠슨이 던진 질문에 답할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가?


 


석유를 빼앗기 위해, 자기 나라 안보를 위해 힘 있는 나라는 지금도 침략한다. '세계 평화'와 '세계 정의'라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는 증오와 잔혹함이 담긴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1999년 프놈펜에서 '디나 찬'이라는 여성이 '제1회 젠더와 발전 전국 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고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우리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과 뼈, 피부가 있고, 심장이 있으며, 우리는 어떤 이의 누이이고 딸이고 손녀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자입니다. 존중과 품위로써 대우받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권리를 우리도 가지고 싶습니다. 나는 인신매매를 당했고, 강간을 당하고 구타당한 후 억지로 남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모욕을 당하고 물건처럼 취급되어 남자들이, 그래요, 남자들이 쾌락을 느끼게 해야 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다주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쾌락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수치심, 고통, 모멸감뿐이었습니다.” (본문 307쪽)


 


여기서도 여성은 성과 경제적 약자로 등장한다. 그는 동물이 아니다. 쓰레기가 아니다고 외쳤다. 우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남성과 자본은 그를 인간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로 생각했을 뿐이다. 자본이 만든 증오가 그렇게 만들었다.


 


자본은 이토록 사람을 잔혹하게 만든다. 자본은 이토록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든다. 자본은 여성을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인 증오범죄다. 개인과 가족, 사회까지 모든 빼앗아가버리는 범죄다.


 


"돈이 목숨보다 더 중하다고 누가 정의하는가? 돈을 가진 자들이 더 힘이 세다고 누가 정의하는가? 결국 돈이 무엇인가? 종이다. 금속이다. 먹을 수도 없다. 종이는 열을 가하면 탄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갖다 붙인 의미를 제외하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돈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본문 312쪽)




데릭 젠슨 말이 틀렸는가? 가장 부자라고 각 시대마다 이름난 부자들이 영원히 죽지 않았는가? 아니다. 다 세월 무게에 힘을 쓰지 못하고 죽었다. 경제 살리기에 혈안이 된 우리 사회가 한 번 읽기를 간절히 바란다.


 


데릭 젠슨은 끊임없이 증오와 잔혹함이 난무하는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소수자 린치, 고문, 강간, 포르노 사이트, 아동학대, 노예화, 대상화, 계급착취, 생태파괴, 홀로코스트 등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


 


읽으면서 과연 이런 범죄가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현실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 모든 것을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것을 타기 위한 문명이 나은 산물임을 젠슨은 지적한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데릭 젠슨이 제시하는 해법은 문명의 제거다. 문명은 진보가 아니라 파괴로 드러나고 있다. 문명은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세상을 뿐이다. 다른 이를 주체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존중하면 된다. 인간이기에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미움이 다른 이를 존중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문명은 증오를 잉태했다. 이 말은 충격이다. 문명은 인간 삶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결국 파괴과 증오를 낳게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문명을 제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라. 데릭 젠슨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읽으면서 인간문명이 무엇을 남겼는지 알게 되었고, 그 증오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던저 주는 알게 되었다. 내가 증오범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긴다면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리라. 이런 세상을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인가?



"옛날 옛적에 인간들이 여기 살았다. 그들은 시냇물 옆에 앉아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잠을 잤다. 섹스를 했다. 연어를 잡았다. 연어를 먹었다 이웃사람과 말다툼을 했다. 때로는 치고받기도 했다. 그들의 아이들도 여기 살았다. 그 아이들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이 그 연어의 새끼를 먹었고, 그 이웃의 아이들과 말다툼을 했고, 그 이웃 아이들과 치고 받았고, 그 이웃 아이들과 의식을 거행했고, 이웃의 아이들과 결혼을 했고, 그 이웃 아이들과 아이를 만들었다. 그들은 햇볕을 받으며 걱정 없이 살았고, 아침에는 자신의 얼굴에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밤에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일어나서 시냇가에 앉아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들은 이렇게 살았다."(본문 5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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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마르크스 | 耽讀메모 2008-04-2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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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더 레프트 THE left 1848~2000

제프 일리 저/유강은 역
뿌리와이파리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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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마르크스는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르크스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이미지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후대에 거친 경로에 의해서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죽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저작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후대 사람들-과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이거나 동조하는 이데올로기들의 노력-에 의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 바깥으로 빠져나와버렸고, 이 때문에 우리는 두 사람이 당대에 서 있던 자리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이 당대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19세기 말에 활동던 사회주의 정치인들과 노동운동가들의 인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출처]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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