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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만 하지말고 비평도 시청자의 몫이다 | 문화 2009-01-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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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텔레비전 보기 - 시청에서 비평으로

정준영 저
책세상 | 200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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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언론관련7대 법안'으로 상당한 파열음을 경험했다. '언론관련 7대 법안'을 '언론 7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언론노조는 파업, 민주당은 국회본회의장을 점거했을까?

 

이명박 정권이 재벌방송과 특정 신문 방송을 출연시키면서 언론자유 침해와 여론 독과점과 이념 독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터넷' 등장 이후 여론 공간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었지만 '텔레비전'은 아직까지 대중매체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이 대중매체로서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방송장악 시도를 막아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텔레비전을 비평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뉴스와 드라마, 시사교양 모든 프로그램에서 비평하는 능력을 가질 때만 권력집단이 여론을 왜곡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준영이 쓴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는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된다. '시청에서 비평으로'라는 부제에서 보여주듯이 정준영은 텔레비전을 '필요 없으니 집에 치워라' 같은 텔레비전 무용론 같은 주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작품'으로 본다.

 

텔레비전이 작품인 이유는 장르와 관계없이 브라운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프로그램드은 모두 제작진의 일정한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형식적인 질, 즉 표현의 방법에 대한 제작진들의 관심은 다른 예술가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이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텔레비전이 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12쪽)

 

정준영은 '비평'을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텔레비전을 시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따위를 보면서 주인공과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촌평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비평이라 한다.

 

인터넷이 새로운 여론 매체로 자리잡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족과 동무들 사이에 나누었던 주인공과 내용에 대한 촌평과 이야기를 벗어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전문가와 비슷한 식견으로 비평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도 많아진 것은 매우 좋은 모습이다.

 

텔레비전은 '작품'... 적극적인 비평이 이어져야

 

정준영은 우리가 텔레비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텔레비전은 하찮다 텔레비전은 현실을 반영하거나 반영해야 한다' 따위라고 말한다. 하찮은 텔레비전이므로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은 분명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텔레비전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철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말을 인용한다.

 

"아직도 텔레비전을 의식하지 않고 시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점점 더 텔레비전을 위한 시위, 즉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성격의 시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지각 범주에 맞을 때, 그들에 의하여 시위는 중계되고 증폭되어 최대의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31쪽)

 

텔레비전이 이렇다면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텔레비전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효과를 논할 때 단지 프로그램 속에 담겨 있는 내용 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정준영은 말한다.

 

정준영은 대중매체가 거대 기업이므로 텔레비전이 미칠 정치적 우려를 제시한다. <텔레비전 보기>가 2002년에 나왔는데 2009년 대한민국 현실을 정확하게 예언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거대 기업은 세금이나, 이자율, 노동 정책, 독점 규제 정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국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는 국가는 이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구매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언론 기업을 통제하고 있을 경우 모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와 특수한 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당연히 높아진다."(61쪽)

 

텔레비전은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 사회를 곳곳을 파고들면서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과 방송사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하여 우리 자신들이 비평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 비평까지 막으려는 시도가 지금 자행되고 있으니 과연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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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 | 인문 2009-01-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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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이나미 저
책세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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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이다. 궁금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하여 이나미씨는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를 썼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유주의는 쿠무인가를 보고 싶어한다.

 

이나미는 보수적 정치가들이 외치는 '자유'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자유이르모 '보수주의'라는 다른 이름을 불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이나미가 규정한 보수주의는 무엇일까"

 

"보수주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보수주의는, 어느 문인에 의해 아주 적절히 지적된 바와 같이,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즉 사회를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인 신념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욕망'이다." (11쪽)

 

보수주의가 신념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용의 전부라고 일갈한다. '신념'이 아욕망이라 할 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보수주의를 갖고 있다. '욕망'으로만 산다면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극복'해야 한다.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와 동일시하는 한국 사회 보수적 정치가들 논리는 여기서 무너진다.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이나미는 <브리태니커> 정의한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 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를 동의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쯤 '자유주의가' 들어왔을까? 이나미는 <독립신문>에 주목한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조선시대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신문> 대중을 상대로 '자유주의'를 전파했다고 이나미는 주장한다.

 

"독립신문은 주로 그 동안 유교에 의해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해 재평가하며,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과 경젣적 독립을 강조했다."(14쪽)

 

문제는 <브리태니커>가 말한 자유주의 개념처럼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하는 사상이 녹아 있고, 자유주의 개념이 성립되었을 때 서구는 제국주의가 싹트면서 제국주의를 미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다시 기억해야하지만 '자유주의'가졌던 특징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독립신문>은 '자유'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독립신문> 1899년 1월 10일자 '인권자유'에서 "자유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 욕심을 능히 어거하야 좋은 일이면 나의 마음대로 하고 그른 일이면 하지 아니하는 것이 실상 자유의 본질"이라 했다.

 

<독립신문>이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교' 강조하는 '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핵심이 이익과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주의인데 아직들은 '자유'를 '옳음' 곧 '의'를 포함하지 않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신문> '유교' 지배 이데올리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자유주의 핵심 개념인 '독립'을 "자기 힘과 재주가 있으면 벌어먹고 세상에 자주독립한 백성이 되어 빈부 귀천 간에 사람마다 자기 십상에 자유권을 가지고 있으며"로 규정하고 "양반은 이제 더 이상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권리가 없다"고 양반을 비판하였다.

 

이는 <독립신문>이 유교에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한 재평가,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을 강조하여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적 내용들을 도입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 재산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짝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권리'에서 '인간(men)'은 전 인류가 아닌 백인, 그중에서도 남성을 의미했으며 '개인의 자유'에서 '개인'은 우수한 개인을 의미했다. 인간은 자연을, 남성은 여성을, 백인은 흑인을 지배할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인간, 개인은 백인 남성을 의미했다. 이렇게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는 양립했으며, 시기적으로도 동시대의 산물이었다." (77쪽)

 

결국 자유주의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성과 백인 우월주의와 적자생존이라는 서구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우리가 강하면 약한 나라를 지배할 수 있고, 우리가 약하면 강대국에 지배받을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어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조하는 세력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

 

나아가 이나미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민권의 신장이 아닌 민권을 제한하는데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백성과 신민, 인민과 국민 등 여러 가지 민 개념을 그들의 의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개화파인 윤치호는 "민중은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운동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했으며 <독립신문>은 "평민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한 정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며"라고 했다.

 

"개화파는 유교의 전통적인 민 개념을 공유하면서 민을 철지히 불신했다. 그들이 민권을 주장한 이유는 자신들의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은 우민관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144쪽)

 

이렇듯 한국 자유주의는 서구제국주의가 자유주의와 손을 잡았듯이 박영효는 친일인사가 되었고, 민권을 소리높여 주장했던 독립협회는 동학농민전쟁 진압을 위해서 외국군대의 조선 땅 진주를 주장했다.

 

자유주의를 마냥 외친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라도 '자유주의'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자유주의 본질을 안 다면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것이 이나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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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과 복원은 생명 창조 | 문화 2009-01-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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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김주삼 저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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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 10일 밤 8시 40분쯤 국보 1호 숭례문에 불길이 쏫았다. 불길이 쏫은지 5시간만인 다음 날 오전  1시 55분쯤 숭례문은 600년 역사를 뒤로했다. 600년 역사가 잿더미로 변한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울었다.

 

1971년 송산리 5호분·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중에 우연히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주인공은 백제 25대 무령왕(501-523 재위)이었다. 1500년 역사를 그 때 사람들은 하룻밤 정리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숭례문과 무령왕릉을 우리는 '문화재'라 부른다. 문화재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전에 '문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Sir E. B. Tylor는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에서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했다.

 

문화활동 결과물이자 증거물이 '문화재'다.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 인류학적인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즉 문화재란,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 한 시대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폭넓은 대상물이자, 인류가 과거에 만들어 현재에 전한 문화적 대상물이다.

 

숭례문 화재 전에 쓴 글이지만 이런 점에서 김주삼의 책세상 문고 · 우리시대 052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은 의미있는 읽을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김주삼은 "문화재의 현재 가치에 따라 보존 방법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면서 "무리한 복원 작업을 자제하고, 처리 대상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과학방법론, 담당자들의 기술력, 전문가 협조, 보존과 복원 기록"을 강조한다.

 

김주삼 지적에 따라 1971년 당시 1500년을 하룻밤 청소하듯 정리했던 일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숭례문 화재 후 2년이면 충분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아직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화재가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인류학과 문화적 대상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이다.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1장은 문화재의 중요성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개념, 2장은 문화재 보존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여러 손상 원인인 사람들 때문이 일어나는 손상과 자연 현상으로 일어난 손상을 실핀다. 특히 3장은 예방 보존 및 복원 방법을 다룬다. 그는 복원보다는 문화재의 현 상태 존중과 수명 연장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방보존이라는 것이 대상물에 손을 대지 않는 보존방법이라는 면에서 보존윤리상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며 여러 연구를 종합해본 결과, 파손이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를 일일이 복원해주는 것에 비해 인력 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84쪽)

 

무엇보다 한 번 훼손된 문화재를 아무리 복원해도 '원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든, 자연현상이든 문화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복원이 따라 올 수밖에 없다.

 

그럼 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복원 작업에는 '가역성'(reversidility)이 강조된다. 가역성이란 "현재 잘못된 복원이나 향후 복원이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언제라도 최초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복원은 원형 왜곡 금지를 위하여 "복원한 흔적을 보이게 하고, 문화재에 담긴 노화 현상과 역사적인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김주삼은 강조한다. 복원 기록을 남기는 것을 물론이다.

 

문화재 보존이든, 복원이든 부러진 의자 다리를 수리하는 것과 아파트를 개보수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삽질 경제가 다시 부활하여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는 요즘 김주삼이 남긴 맺음말에서 남긴 글은 문화재 보존과 복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문화재 보존은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가들처럼 개개인의 판단에 다라 그 방향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품을 다루는 보존 전문가는 생명 존중이라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에 견줄수 있어야 한다."(143쪽)

 

김주삼 지적은 '보존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특히 이 나라 정권 담당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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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역사 | 역사 2009-01-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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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

아오키 다모쓰 등편/박진우 역
한울 |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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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땅과 가장 많은 사람 수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일극체제와 유럽 다극체제가 세계의 모든 정치, 경제, 외교, 문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과 선진자본주의에 편입된(G7) 일본이 세계사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세계사 주류에 완전히 편입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류가 된다 할지라도 양극화가 아시아를 암울하게 한다.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지역과 지역 사이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아시아에서는 몇몇 나라만 서구 자본주의에 편입된다면 몇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는 주류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서구'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일본 진보학자들이 '아시아'란 무엇인가를 두고 질문과 고민, 답을 제시한 책이 이번에 나왔다. '아시아 신세기'로 8권이다.1권은 '공간' 2권은 '역사' 3권은 '정체성' 4권은 '행복' 5권은 '시장' 6권은'미디어' 7권은 '파워' 8권은 '구상'이다. 

  

시리즈 2권 <역사>는 서구제국주의가 군사적 ․ 경제적 ․ 문화적 욕망에 사로잡혀 침략 ․ 침입, 식민지화 ․ 피식민지화의 연쇄와 개발주의 근대화를 겪으면서 많은 상처를 낸 가시를 돌아본다. 그 '가시'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도 자리하고 있다.

 

"분명히 일본은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흐름 중 일부를 끌어당겼으나, 결국에는 아시인들에게 비판받는 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덧붙여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 국가로 군림하면서도, 자국을 편입된 식민지민에게 자립의 무기인 민주주의라는 사상을 전한 데 비해, 일본는 이에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제국 내 인간의 이동과 독립운동>- 36쪽)

 

<역사>는 1부 ‘제국과 해방의 유산’과 2부 ‘전쟁과 혁명’ 3부 ‘역사의 주체에 관한 물음’과 마지막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탈식민주의적 역사공간의 중층성 -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일본, 동티모르'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서' 글은 우리가 서구 중심 역사관에 잡혀 있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내용이다.

 

고토 겐이치(와세다대학 아시아 ․ 태평양연구과 교수)는 <탈식민주의적 역사공간의 중층성 - 인도네시아 ․ 네덜란드 ․ 일본 ․ 동티모르> 논문을 통하여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면서 내세운 지배이념은 ‘대동아공영권’이었고,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지배하면서 내세운 지배이념은 ‘형제의 대동단결’ 일본의 인도네시아 지배구실은 ‘민족해방’이었고,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지배구성은 ‘주민으로터 요청’이었다고 지적했다.

 

고토 겐이치 교수 논문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과거의 '적'에 대한 최고 지도자들의 발언 부분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시책을 선진국 중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지지해온 전시 지배국 일본에 대해서도 동티모르 최고지도자층의 발언은 지극히 유연하다. '전시 보상을 요구할 의도는 없다,' '역사는 역사로,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탈식민주의적 역사공간의 중층성>-66쪽)

 

자신들 영혼을 지배한 이들에게 동티모르 지도자들은 '역사는 역사로, 우리는 현재와 미래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발언은 요즘 우리와 일본 관계를 정립하는 어떤 세력과 비슷한 점이 많다. 과거는 묻어버리고 미래로 가잔다. 어떤 이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요즘 팔레스타인을 맹폭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로켓 공격을 했기 때문에 폭격했다고 한다. 무자비한 폭격을 정당화시키는 그들 논리가 끔찍할 뿐이다. 2004년 3월 22일 이스라엘 로켓포 공격으로 살해당한 하마스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이 쓴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서>는 현재 팔레스타인 상황과 맞물려 깊은 의미가 있다.

 

“자신을 지키고 고향을 동경하며 방위하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전 세계가 저더러 최초의 테러리스트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이야 말로 우리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국가 차원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사실입니다.”(200쪽)

 

어린이와 여성, 수많은 민간인들에게 폭격하는 이스라엘 모습을 보면서 베트남 작가 '바오 닌'(Bao Ninh)이 <전쟁으로 전쟁을 수습할 수 없>를 통해서 던지는 답은 이스라엘과 군사력으로 온갖 만행을 자행하는 국가들이 읽어여 할 대목이다.

 

"전쟁을 전쟁으로 수습하는 것, 피로 피를 씻어내는 것, 원한으로 원한을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이다. 그것은 20세기 전쟁이 가져다 준 가장 위대한 교훈이지만 21세기 인류는 그것은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97쪽)

 

인류를 전쟁의 참화와 테러리즘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뿐인 것이라는 바오 닌의 바람이 이루어질 날이 오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계속하여 중국 문화대혁명과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이란 혁명과 걸프 전쟁 등 우리가 살아가는 아시아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지워지지 않는 수난과 식민지배 역사를 성찰함으로써 아시아가 새로운 희망을 향하여 나아가고 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시아 '역사'를 다루면서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한 수많은 만행에 대한 반성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왕에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식민지배를 다루었다면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도 다루어야 했다. 일본 진보지식인들까지도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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