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耽讀
http://blog.yes24.com/kdssae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耽讀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1,161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My Favorites
耽讀 쓴 기사
오마이뉴스기사
대한민국
성경읽기
노무현
창비주간논평
사색의 향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성약출판사
耽讀
MB
미디어
남북관계
정치기사
사회기사
국제
경제기사
4대강
천안함
김대중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세종시
한국교회
인사청문회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질매섬과 네 동무의 5.18
박근혜정부
박정희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리뷰
역사
인문
음반
문학
사회
소설
에세이
정치
어린이
기독교
자연과학
경제
인물
gift
문화
예술
DVD
나의 메모
耽讀글방
耽讀메모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09 / 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2009-03 의 전체보기
선교사가 본 19세기 조선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 사회 2009-03-29 19:04
http://blog.yes24.com/document/131706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문명과 야만 -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조현범
책세상 | 2002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우리는 팔만대장경, 한글, 조선왕조실록 따위를 말하면서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런 자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해도 조선은 문명과 야만 중 '야만'에 가까운 나라였다. 서양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조현범은 <문명과 야만>-부제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을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를 타자의 위치에 고정시켰던 서양 선교사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타자화되어간 우리 초기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시각을 확인하는 조현범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동남아시아를 바라는 시각 역시 19세기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았던 '야만'이라는 시각과 별 다르지 않다점에서 반추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선교사들이 우월성으로 조선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현범은 제1장에서 말한다. 19세기 서양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 기독교 해외 운동의 붐,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도덕률의 팽창, 이국 취향과 여행기 장르의 성공이라는 시대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였는데 선교사들 역시 시대정신으로 먹고 자란 이들었을 뿐이다.

 

사실 선교사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는 명목이었지만 서구 제국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이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백인 우월성이라는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았다. 우월성으로 바라본 조선은 '야만'이었다. 서양의 문명화된 나라들이 비서양의 뒤떨어진 나라들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명화 사명은 식민지 지배는 신이 내리 사명이 되었다. 

 

"문명화 사명은 제국의 황제와 식민 관료에서부터 식민지 쟁탈 전쟁을 벌이는 군대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 비유럽 지역을 탐사하는 탐험가와 인류학자들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에 진출했던 서양 선교사들 역시 이런 시대 정신을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고 있엇던 셈이다."(40쪽)

 

19세기 시대정신을 먹고 자란 선교사들이 19세기 조선이 들어왔어서 조선 사회와 조선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았는지 제2장에서 살핀다. 조범현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김대건 신부 체포 후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자 '어리골'이라는 곳으로 도피 한 후 조선과 조선인들 삶을 닮은 긴 편지를 적은 <어리골서한>이라는 자료와 조선사회를 소개하는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들 남긴 자료들에 주목한다.

 

다블뤼 주교 시선은 복합적이다. 조선 정치 지배 집단은 '부패한 양반과 관료들'로 왕과 백성 중간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횡령과 착취를 일삼는 세력이었다. 또 설득력 있는 사회를 질서를 갖춘 나라였다. 조선의 쇄국 정책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지만 민족성은 야만인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을 가졌다고 보았다. 특히 조선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경박한 자들이라고 했다.  

 

다블뤼 주교가 바라본 조선에 대한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은 '폭식 습관'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정말 폭식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극단적인 표현도 나온다. 식탐을 악담으로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조선에서 15년 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무시만 할 수는 없다.

 

"식탐이 조선인들이 가진 악덕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의정이나 임금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블뤼 주교가 조선인들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적 사회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 성격인 까다로움, 탐욕스러움, 수다스러움을 조선인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런 탐욕스러움에서 기인하는 생활 습관으로 폭식과 폭음의 관습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76~77 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86-88쪽 인용)

 

이런 시각으로 말미암아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야만으로 생각했을 것같지만 아니었다.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칭찬한 압권은 '공동체 정신과 상호부조 생활'이었다고 조현범은 말한다. 상호부조와 자선 행위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결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상화 부조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애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다."(85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75-76쪽 인용)

 

다블뤼 주교 이후 조선은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를 선교지 문명을 기독교 문명으로 개화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와 병원 따위로 조선에 정착한다.

 

개신교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거리는 불결하고, 좁았으며 집들은 음침했다.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청교도 후예답게 조선인들은 게으른 천성을 가졌고, 복음 전파가 목적인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혁파하는 것이 개신교 선교사들이 할 일이었다. 릴리어스 언더우드 말을 빌어보자.

 

"조선 사람들은 서양 문명에서 최선의 것, 즉 사람의 힘을 분발시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동력이 바로 기독교 신앙과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기독교의 원리, 그리고 이 원리가 실천되는 곳, 이 정신이 숨쉬는 곳, 거기에서 문명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162쪽)

 

책을 덮어면서 든 느낌은 19세기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 본 시선과 지금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불과 백여년 전 서양인들에게 타자화되어 야만스러운 민족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에 울분을 토하기 전, 우리도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YES24 책읽는 주말 - 3월 참여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생명공학, 생태계를 악마에게 맡기는 '파우스트의 선택' | 자연과학 2009-03-22 18:39
http://blog.yes24.com/document/130770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박병상
책세상 | 2002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과학기술자들이 자연법칙을 연구하여 내놓은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일까.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하고, 악한 얼굴로 보일 수 있다. 푸줏간 칼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흉기와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듯이.

 

푸줏간 칼처럼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이지, 칼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 생각할 수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과학기술은 푸줏간 칼을 벼르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유레카'를 외치면서 목욕탕을 뛰쳐나온 아르키메데스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이 과학과 기술로 만나는 시대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돈과 패권을 위해 과학기술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 과학기술을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과 패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과학기술은 선한 유익을 누려야 할 소비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무시해버렸기에 선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험하다는 평가를 내린 박병상의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은 과학기술은 우리 미래를 장밋빛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생각을 돌아보게 한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라고 주장했듯이, 의사 결정에 소비자가 소외되는 한, 과학기술이 미칠 영향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민주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한, 과학기술은 차라리 위험하다. (7쪽)

 

자본을 위한 과학기술은 '생명공학'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생명공학마저 뒤쳐지고 만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처럼 생명공학은  유전자 조작으로 식량을 대량생산할 수 있고, 배아복제와 생명복제를 통하여 의약품을 만들고, 장기를 생산한다면 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21세기는 '생명공학시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21세기 생명공학은 장및빛 미래를 가져다 줄것이라는 이 명제는 차라리 악몽이며, 저주라고 매완호(Mae-Wan Ho) 교수는 말했다. 박병상도 생명공학을 택하는 것은 후손과 이웃과 생태계의 생명을 악마에게 맡기는 '파우스트의 선택'이라 한다.

 

생명공학의 두 분야인 유전자조작과 생명복제에서 유전자 조작은 '안정성', 생명복제는 '윤리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둘 다 안정성과 윤리문제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이 가져다주는 불평등까지 초래한다.

 

지역적 단작을 초래했던 녹색혁명에서 세계적 단작을 이끌어가는 유전자 조작 시대로 접어들면, 씨앗부터 자본에 예속되고 말 것이다. 씨앗에 맞는 경작환경과 경작 방법을 돈을 내고 도입해야 하고, 수확한 농작물을 어떻게 가공해야 좋은지에 대한 조언도 자본에게 머 조아리며 구해야할 것이다. (71쪽)

 

자본의 이익을 위하여 유전자 조작이 이용될 때 우리는 씨앗부터 자본에 예속되고, 내 땅과 제철에 먹던 먹을거리를 문화를 한 순간 빼앗아 가버림으로써 문화까지 자본에 의해 용도 폐기시키는 생명공학은 비윤리적이며, 치명적인 불평등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생명과 생태계를 물려 주었듯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생명과 생태계를 물려 주어야 한다. 자본이 추구하는 이익 앞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굴복하면 건강해야 할 후손의 생명을 '삭제'해버림으로써 우리 미래 세대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자본 때문에 현재 우리보다 더 악화된 불평등 세상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 

 

생명 복제는 어떤가? 난치병과 불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복제를 세포조직을 만든다면 과연 인류에게 질병없고, 오래 사는 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생명복제 영역도 자본의 이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당연히 자본이 이익을 누릴 때 어떤 이는 불이익과 불평등을 경험한다.

 

자본과 있는 자를 위한 생명공학은 모든 사람을 먹을거리와 질병없는, 오래 사는 것을 인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착취와 고통, 불평들을 잉태하는 세상이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까지 해한다.

 

생명 복제 기술은 생명에 여벌을 만드는 기술이라 요약할 수 있으며 그 기술은 지불능력이 충분한 기득권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한 생명 소외 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다. 인간 복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일부 인사들은 이미 태어난 복제 인간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엄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복제가 전제되는 인간의 생명은 더 이상 존엄할 수 없다.(139쪽)

 

결국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하고 가야한다. 생명복제나 유전조 조작과 같이 현재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과학기술이 선동하는 황색 미래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는, 후손의 세대까지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은, 골고루 가난하게 그리고 느리게 살아갈 때 비로소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면서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적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박병상은 제시하고 있다.

 

생명공학이 편의와 인류 복지로 채색한 화려한 과학기술적 삶이 아니라 전통이 묻어 있는 자연스러운 삶이므로 자식과 노후, 그리고 후손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168쪽)

 
 
 

YES24 책읽는 주말 - 3월 참여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오바마는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 정치 2009-03-22 18:34
http://blog.yes24.com/document/130769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미국의 마지막 기회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저/김명섭,김석원 공역
삼인 | 2009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소련이 무너진 후 미국을 이끈 대통령들이다. 이들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얼마나 받을까? 조지 H. W. 부시는 'B,' 빌 클린턴은 'C'쯤 된다. 그럼 조지 W. 부시는 'F'다. 너무 가혹한 점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미국 원로 외교 전략가이자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의 저자 Z.브레진스키가 쓴 <미국의 마지막 기회>(Second Chance)로 들어가보자.

 

Z.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정부 때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이 지원은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덫에 걸리게 하였고, 결국 소련제국 몰락을 이끌게 된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마지막 기회>에서 소련제국 몰락 이후 미국은 글로벌 리더가 되었지만 기회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뽑았던 세명의 대통령들이 제국을 위기로 몰았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리더 1세인 부시 1세 시대를 "원죄, 그리고 전통적 상상의 함정"으로 평가했다. 부시 1세는 탁월한 외교간으로 소련 제국 몰락 이후 위기 관리는 잘했지만 냉전 종언과 함께 전 세계는 야심차고, 좀더 적극적이며, 좀더 비전에 가득 찬 갈망을 원했지만 글로벌 리더로서 그는 미래를 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브레진스키는 비판했다.

 

글로벌 리더 2세 빌 클린턴 시대는 "선량한 무능, 그리고 방종의 대가"라고 평가했다. 클린턴은 부시 1세와는 달리 전 지구적인 비전을 가졌고, 미래지향적이었지만 제국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행사함에 있어 전략적 일관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결국 거대한 역사적 흔적을 세계에 남기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글로벌 리더 3세인 부시 2세는 "파국적 리더십, 그리고 공포에 기댄 정치" 시대로 평가하면서 강력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역사적 순간을 오해했고, 단 5년 만에 미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위험스럽게 훼손했고, 경멸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행인 것은 미국 대통령 임기가 8년으로 제한 되었다는 점이다.

 

원죄와 선량한 무능, 파국적 리더십으로 세명의 리더들은 첫 번째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미국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기회는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를 살리는 대안을 브레진스키는 영민한 글로벌 리더가 등장함으로써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영민한 글로벌 리더는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저자가 <마지막 기회>를 쓴 때가 2007년 초였다. 영민한 글로벌 리더는 누구였을까? 브렌진스키는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오바마로 판단했고, 그를 지지했으며 바람대로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이 영민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아직까지 미국에 대해 남아 있는 선의를 활용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이 아직도 전 지구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기를 기대하는 미국의 모습은, 자신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대통령의 수사가 신중하며, 인류가 가진 생활 조건의 복잡성에 대해 민감하고, 대외적인 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는 합의를 추구하는 모습이다."(222쪽)

 

결국 미국이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우리는 이제 제국이고,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중심이 된 '대서양공동체'를 확립해야 한다고 브레진스키는 지적한다.

 

또 대서양 공동체를 넘어 비서구 국가인 일본과 한국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기 이유는 이렇다.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비유럽 국가들을 선별해 전 지구적 사안에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끌어들임으로써, 중용과 부, 민주주의를 갖춘 지배적 핵심세력은 건설적인 세계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투사할 수 있다."(243쪽)

 

이렇게 하지 못하면 미국은 탈제국주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오만하게 제국적 것으로 보편적으로 간주되고, 탈식민주의 시대에 식민주의라는 진창에 빠지면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기는 구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 브레진스키는 단언한다.

 

하지만 브레진스키는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강대국의 힘은 만약 그 강대국이 이상을 위해 일하기를 멈춘다면 쇠약해질 것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미국의 힘을 정치적으로 각성된 인류의 열망과 명백하게 연관 짓는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미국은 아직도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브레진스키 바람과 예언대로 미국은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YES24 책읽는 주말 - 3월 참여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땅의 왕자와 바다의 왕자가 더불어 잘 살기를 | 자연과학 2009-03-21 21:24
http://blog.yes24.com/document/130679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고래의 삶과 죽음

이브 코아 저/최원근 역
시공사 | 199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물 중 가장 큰 생물은? 고래다. 대왕고래 암컷은 길이 30m, 몸무게 130톤이나 된다. 거대한 몸집 때문인지 고래는 인류에게 오랜 옛날부터 공포와 신비한 대상이었다.

 

구약성경 <시편>과 <요나서>부터 <모비 딕>의 아하브 선장에 이르기까지 뱃사람들의 끝없는 희생과 모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이 있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003 <고래의 삶과 죽음>이다. 217쪽 문고판이지만 여전히 성역처럼 남아 있는 바닷속 신비 속으로 읽는 이들을 안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1장에서 문헌상에 기록된 거대한 괴물 또는 동물들로 묘사된 고래를 만날 수 있다. 고래는 구약성경 <시편>에서는 ‘리바이어던’으로, 1세기 플리니우스가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쓴 에서는 <박물지> '피세테르'(physeter : 그리스어로 향유고래 속명)으로 13세기 <스페쿨룸 레갈레>에서는 무시시한 '인간의 적'으로 등장했다.

 

다양한 문헌뿐만 아니라 고래에 대한 생각은 지역과 인종, 민족과 나라에 따라 달랐다. 중세 아이슬란드 선원은 고래를 ‘악마의 사자’라 불렀고, 아일랜드 사람은 ‘신의 사자’로 생각했다. 본 사람들은 고래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죽은 고래의 영혼과 뱃속에 든 새끼를 위해 제사까지 지냈다.

 

제2장은 물고기를 포유류로 재분류하는 오랜 시간과 함께 다양한 고래들을 만날 수 있다. 고래 사냥법, 이빨과 수염의 있고, 없음에 따라 두 개의 아목으로 정해진다는 글을 읽어가면 고래에 대한 놀라운 점들을 만날 수 있다.

 

“고래는 물고기처럼 피부가 매끈하고, 지느러미와 꼬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래가 물고기라고 단정한다.”

 

“매끈한 피부와 지느러, 꼬리 모습으로는 물고기인 것 같지만 따뜻한 혈액과 소화기관, 호흡기관, 생식방법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고래는 분명 포유류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래를 포유류로 분류했지만, 1세기 플리니우스가 <박물지>에서 고래를 물고기로 부른 후 인류는 거의 1600년 동안 고래는 물고기였다. 이것을 뒤집은 사람이 스웨던 박물학자 샤를 드 린네 1758년 펴낸 <자연의 체계>에서 포유류로 재분류했다.

 

3장은 고래를 지역과 나라,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했고, 다른 방법으로 사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다에 사는 고래를 당연히 물고기라 생각했다. 물고기라 생각한 것만 틀릴 뿐 고대 사람들이 고래를 관찰한 것은 정확했다. 사냥할 고래, 피해야 할 고래, 작살 꽂는 방식, 가장 좋은 사냥철, 가장 좋은 어장을 경험을 통하여 알았다.

 

가족관계까지 파악하여 항상 새끼 고래, 어미고래, 아비 고래 순으로 작살을 던졌다. 그러면 아무 고래도 달아나지 않았다. 고래의 습성을 이해한 포경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고래 습성을 알아 사냥하였고, 성공했다.  

 

"중세초기, 바스크인은 대양에서는 처음으로 고래잡이를 시도했다. 그들이 고래 사냥에 이용한 작살은 부표에 매달아 놓은 자유작살이었다. 그들은 '사냥개떼'같은 소형정을 타고 나와, 고래 한 마를 향해서 가능한 많은 작살을 던졌다. 네덜란드인은 스피츠베르겐 해안에 세계 최초로 포경산업 기지를 건설했다. 오로지 포경선원을 위해 조성된 포경기지였다.(본문 47-53쪽) 

 

4장은 미국 포경업의 황금기를 다룬다. 서부개척 시대 황금을 찾아 '서쪽으로'를 외쳤던 것처럼 '고래를 향하여'로 미국은 포경업 황금기를 열었다. 1820년 뉴잉글랜드 주수입원이 포경산업이었다. 도시 전체에 고래 기름, 경랍, 수염 처리 공장이 지어졌고, 작살과 철제 밧줄, 구리못을 제조하는 공장, 1830년 경에는 해마다 72척의 포경선이 낸티컷을 출항했다.

 

산업혁명이 아니라 고래혁명으로 미국이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고래는 마냥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라는 것이고 마구잡이식 고래 포경은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포경선원은 강인함을 요구했고, 약한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환경, 빈약한 음식은 그들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 알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질병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포경선은 남태평양의 섬에 유행성 감기와 결핵, 콜레라 등을 실어왔다. 유럽인처럼 항체를 갖고 있지 않았던 원주민들은 수두나 홍역처럼 가벼운 병으로도 몰살당했다. 이렇게 해서 1770년에 4만명에 달했던 타이티의 인구가 1830년에는 9,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약 3만명 정도 피지인이 1875년에 홍역으로 죽어 갔다.(본문 85쪽)

 

열악한 환경, 빈약한 음식 때문에 생명을 잃을 지라도 사람들은 포경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오로지 고래러시를 꿈꾸었다. 고래는 그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 간 곳은 동료의 죽음 뿐만아니라 죄없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욕심은 고래가 지구상에 사라지게 하였고, 사람이 나서서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멸종시키고, 사람이 살리는 악순환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고래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문점들이 고래를 아직도 경외할지 모른다. 존 헌터가 지은 <소형 고래 해부기>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심장이 뛸 때마다 10-15갤런의 피가 한꺼번에 솟구쳤다."

 

1갤런이 3.75리터 정도이니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37-56리터 피가 솟구친다. 해양 생태계 균형뿐만 아니라, 고래도 지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37-56리터를 인간의 탐욕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최종 육식자, 즉 다른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잡아먹기만 하는 위치에 있는 고래는 해양 생태계를 균형있게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균형이란 말은 모든 생물이 마치 어떤 큰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타격을 가하면 결국 기계는 망가져서 작동이 멈추게 된다.(126쪽)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임을 깨닫는 양심이 있음인지 아직도 고래는 살아있다. 탐욕은 멈추고, 양심은 계속 살아 있어야 고래는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인류 조상들이 고래를 '신의 사자' 와 '악마의 사자'로 생각한 것은 바다의 왕자 고래를 경외했음을 뜻한다.

 

그러했기 거대한 고래에 맞섰던 옛날 영웅 시대 고래 사냥꾼은 경건한 의식을 지냈다. 고래를 잡기 위한 작살이었지만 땅의 왕자 인간이 바다의 왕자 고래에게 보내는 마지막 의식이었다.

 

<고래의 삶과 죽음>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땅의 왕자 사람과 바다의 왕자 고래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였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글씨, 항일과 친일을 말하다 | 역사 2009-03-16 19:30
http://blog.yes24.com/document/130066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필적은 말한다

구본진 저
중앙북스(books) | 200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컴퓨터 좌판이 고맙고, 반가운 사람이 있다. 이른바 '악필'이다. "악필은 천재"라는 말도 안 되는 위로해보지만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동무들끼리, 아닌 마음에 둔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악필은 한으로까지 남아 있다.

 

악필도 부담스러운데, 글씨가 그 사람 성격과 인격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펴낸 이가 있다. 구본준 검사(현 법무연수원 교수)다. 구본준 검사는 <필적은 말한다>에서 '글씨는 뇌의 지문'이라는 필적학의 주장을 바탕으로, 항일 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비교분석하고 있다.

 

구본준은 항일 지사(6백 점)와 친일파(3백 점)을 통하여 왜 어떤 이는 목숨을 바치며 불의에 맞서고, 어떤 이는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좇았는지 그들이 남긴 글씨들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다.

 

구본준은 항일지사는 절개를 지켰으니 좋은 글씨를 남겼을 것이고, 친일파는 나라를 팔아 먹었으니 나쁜 글씨를 썼을 것이라는 선입관으로 글씨를 단순 평가하지 않았다. 구본준은 조직폭력, 마약, 살인 따위 강력범죄 수사를 20여 년 해오면서 그들이 남겼던 글씨체가 일반인들과 달랐음을 알았다고 한다. 글씨와 인격에 무언가 관련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범죄자들)의 글씨는 하나같이 둥글둥글하고, 글씨 크기와 간격도 들쑥날쑥했다. 내용은 온통거짓이도 글씨체까지 꾸며내진 못하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필체는 그들의 거짓된 인격이나 기질을 반영하고 있었다."(29쪽)

 

읽는 이에 따라 약간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지만-나 역시 마찬가지-그는 필적은 그 사람 인격을 말한다고 단언하기 까지 한다. 구본준은 항일지사와 친일파가 남긴 간찰(簡札)에 주목했는데 이유는 온 정성을 다 드려 쓰는 서예보다는 선인들의 정신과 생활상을 알 수 있고, 꾸미지 않는 맨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준이 항일지사와 친일파 글씨를 분석해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항일 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친일파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은 떨어진다."(93쪽)

 

그럼 항일과 친일 중 대표적인 사람인 김구 선생과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 글씨를 한 번 비교해보자. 돈으로 김구 선생와 을사오적 이완용 글씨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두 사람의 글씨에 매기는 가치는 130×30㎝ 반절지를 기준으로 백범 김구 선생 글씨는 1000만~1500만원이고, 을사오적 이완용 글씨는 30만~50만원 정도 나간다고 한다. 오직 돈의 가치로만 따져도 30배 차이가 난다.

 

구본준은 김구 선생 글씨는 웅혼함과 강인, 철옹성 같은 기개, 꾸밈이 없는 천진함이 느껴지고, 언뜻보면 졸렬하고 어눌한 듯하나 자주 대하면 달빛에 매화 향기가 떠다니는 것처럼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비하여 이완용은 당대 명필(?) 답게 '잘 썼지'만 꾸밈을 앞세워 가벼움만을 좇는 기운이 사사롭고, 글자 크기, 행 간격이 들쑥날쑥한 것에서는 예측하기 힘든 사람임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소식은 '옛날에 글씨를 논함에 겸하여 그 생평도 논하면서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비록 글씨가 공교하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비록 글씨가 공교하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이완용의 글씨가 '세상 사람들이 소중히 생각하고 천년이 가도 썩지 않고, 전해질' 김구 선생의 글씨를 능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13쪽)

 

눈길을 끈 내용은 김구 선생과 이완용 같은 알려진 인물에 대한 글씨체 평가보다는 큰 일을 남겼지만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만큼 큰 이름을 남기지 않은 자결과 무력으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들 편지글들이었다. 

 

홍문관, 사헌부, 요직을 거친 이만도는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자 단식으로 자결한다. 이만도 글씨를 "조용하고 엄숙하며 우아한 맛을 풍기며 학식과 인품과 정조가 고방하게 묻어난다"고 구본준은 평했다.

 

성균관전적, 통훈대부를 지낸 전남 곡성 출신 정재건은 조선을 일제가 병탄하자 망한 나라의 신하로서 의리상 구차하게 살 수 없다면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런 그를 "시원시원하고 청량하며, 성정이 고결하고 단아하며, 포용력이 큰 사람임을 보여주는 필체"라고 구본준은 평했다.

 

자결한 항일지사들의 글씨는 더 반듯하고 더 규칙적이며 상당히 정돈되어 있다. 글자의 선은 곧고 각진 것이 많다. 이들 특징은 일반적인 항일운동가와 다를 바 없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마음먹은 것을 곧 행동에 옮기는 습성, 빠른 결단력, 이것이 속도의 빠름과 관련 있다. -148쪽

 

또 의병장 양한규의 쌀 한 섬을 빌려 달라는 편지, 의거를 앞두고 가족을 부탁하는 김지섭의 편지,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곽종석의 포고문, 의병장 정경태의 '창의통문', 의병장 유인석이 최익현에게 눈물로 보낸 간찰, 만주 투사 이종혁의 옥중 편지 따위들은 글 내용으로서뿐만 아니라 글씨체를 통해서도 그들이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필적은 말한다>는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유명인사들 글씨를 평했는데 책을 닫으면서 문득 든 생각하니 이명박 대통령 필적은 어떻게 평가할지였다.  

 

 

 

YES24 책읽는 주말 - 3월 참여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가장 파괴적인 두 독재자, 히틀러 대 스탈린 | 정치 2009-03-13 17:20
http://blog.yes24.com/document/129713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저/조행복 역
교양인 | 2008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히틀러와 스탈린, 그들이 간 지 64년(히틀러 1945년), 56년(스탈린 1953년)이 지났지만 경험한 사람이든 아니든, 두 사람을 수천만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독재자로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둘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알듯이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떼어놓을 수 없다. 물론 스탈린은 승자였고, 히틀러는 패자였다.

 

이 둘을 책 한 권으로 추적한 책이 있다. <독재자들>(THE DICTATORS)이다. <독재자들>을 쓴 리처드 오버리는 학자로서 언제나 논쟁의 최전선에서 물러섬 없이 "신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오버리는 < Russia's War > <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 따위 책을 펴내 2001년 전쟁사 연구자들의 국제적 모임인 미국 군사사학회에서 수여하는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 상'을 받았고 2004년에는 <독재자들>로 그해 영국에서 출간된 가장 탁월한 역사 저술에 수여하는 '울프슨 역사상'을 받았을 정도로 전쟁사 연구에 조예가 깊다.

 

<독재자들>은 20세기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문헌과 치밀한 연구를 통하여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치적 전기이면서 한 편으로는 두 독재자들 만든 체제와 그 체제 속에서 살았던 인민들 함께 분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 연구가 답다.  

 

우리도 경험했듯이 독재자들이 인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지만 그를 추앙한다. 오버리는 바깥 세상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을 보면 전무후무한 독재자이지만 두 독재자와 인민들이 왜 그토록 강력하게 묶였는지 살핀다. 이 하나됨은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명쾌하게 답해준다.

 

오버리는 스탈린과 히틀러 두 독재자를 비교분석한 것 중 흥미를 끈 점은 리더십 분석이다. 그는 스탈린 체제와 히틀러 체제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데는 스탈린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히틀러는 자기 역량을 과신하고, 인종편견으로 인하여 결국 2차대전에서 승자와 패자로 갈랐다고 분석하고 있다.

 

알고있듯이 스탈린과 히틀러는 독재자로서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2차대전은 적으로 싸웠다. 둘은 1941년 동부전선에서 맞붙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은 전사자 867만명을 포함 사상자가 1140여만, 독일은 600만의 병력을 동부전선에서 잃었다. 스탈린이 이겼다. 2차대전 발발 당시 스탈린은 경제력이나 무기 수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히틀러보다 뒤떨어졌다. 그럼 왜 히틀러는 졌을까?

 

자신을 과신한 히틀러, 능력을 한계를 인정한 스탈린

 

"두 적대국 사이의 전투력 균형을 바꾼 요인은 소련이 전선에 공급한 무기 수량의 급증과 무기배치 및 이용 방식의 대폭적인 개선에 있었다."(734쪽).  

 

즉, 소련은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십만 문의 포를 생산했지만 독일은 수만 문에 그쳤다. 전차 생산도 1942과 43년을 지나면서 소련 쪽이 독일을 따라잡았으며, 미국이 보내준 수십만 대의 지프와 트럭이 함께 하면서 '인민'이 아니라 한층 증가했던 현대전 무기들이 소련 아니 스탈린이 히틀러를 이긴 원인라고 오버리는 말한다.

 

하지만 현대식 무기만 아니다. 오버리는 전쟁 최고사령관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업무집행 방식 차이가 승패를 가른 또 다른 요인으로 꼽는다.

 

"스탈린은 국방위원회와 최고사령부(스타프카) 활동을 크레믈 사령부로 통합하였다.  스탈린은 정기적으로 최고위급 해결사들을 파견해 전쟁수행 노력을 감시했고 직접 보고받았고, 장군이나 관료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지시를 내리거나 임무수행을 독려했다.(738쪽)

 

히틀러도 자신의 사령부에서 전쟁수행 노력을 지휘했으나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전선을 직접 감독하는 일은 드물었고, 밀사나 대리인을 내려보내지도 않았다. 전쟁기간 중 최고사령관이 진쟁 진행 사항을 통합하고, 살피는 것과 한 번 내린 지시 이후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다면 승패는 뻔하다.

 

특히 스탈린은 소련군 최고 명령권자이지만 자신이 군사전략가로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같은 뛰어난 군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최고 명령권자라 할지라도, 군사전략가는 아님을 인정함으로써 군 지휘관들과 현장 지휘관들의 신임을 얻었다. 군사전력은 뛰어난 군인들에게 맞기고, 스탈린 자신은 국내경제와 노동력 동원에 집중하였다. 이유는 국내경제와 노동력 동원에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점점 더 자신이 군사전략가로 탁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가 군사적인 문제 온 정신을 쏟는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그 문제에서 나보다 더 잘 해낼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741쪽)

 

군사전략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는 "중요한 결정은 전부" 자신이 직접 내리겠다고 고집까지 했으며, 지휘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 가장 작은 단위 부대 배치까지 직접 명령했다. 작전상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히틀러가 이렇게 고집을 피웠으니 지휘관을 신뢰했던 스탈린을 이길 수 없었다.

 

2차대전 승패만으로 스탈린을 부각시킬 수 없다. 둘 다 민주주의에 반한 자들이었고, 인민을 무참히 짓밟은 독재자였다. 우리는 <독재자들>을 읽어가면서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두 체제를 발견하게 된다.

 

항상 독재자들은 자신들을 선한 자라 말하고,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이들을 반체제, 반국가로 몰아간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자신들을 살해하는 이들을 추앙한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마찬가지다. 오버리는 <독재자들>을 통하여 왜 인민들이 자신들을 살해하려는 그들을 추앙했는지 원인을 밝히고 있다.

 

"역사가의 책임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악하고 더 정신이 나갔는지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독재체제로 하여금 그토록 엄청난 규모의 살인을 저지르게 한,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과 정신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29쪽)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 사회 2009-03-04 17:15
http://blog.yes24.com/document/128513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기획/한겨레 사진부 사진/박재동 그림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사람에게 '망각' 없다면 어떤 삶일까?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망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편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영원히 자리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100여 일간 켜졌던 ‘촛불’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우리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영원한 기억으로 되살리기 위한 책이 나왔다.

 

<한겨레> 사진부 기자들이 찍은 10만 컷 사진 중 가려뽑고 봅은 115컷과 촛불시민으로 함께 했던 11명이 자신이 경험한 촛불 영원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펴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다.

 

책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직후의 경북 경주 근교 우시장의 한적한 풍경으로 시작하여 7월 12일 밤 비오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가족의 활짝 피어난 웃음으로 맺음하하면서 전조 ․ 파도 ․ 직접 ․ 폭발 ․ 광장 ․ 민심 ․ 진화 ․ 역진 ․ 공명 ․ 계속으로 나누어 각 국면을 한 사람씩 써 내려갔다. 책상과 머리에서 나온 사진과 글들이 아니기에 사진 한 장, 글 한 편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지난 해 그 뜨거웠던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경험을 한다. 

 

또한 115 컷 사진뿐만 아니라 107쪽-110쪽 박재동 화백의 촛불집회 현장 스케치와 캐리커처는 집회 기간 내내 넘쳐났던 촛불소녀와 시민, 386과 유모차 부대의 창조적 유희, 생명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을 사진과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게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없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다. 신이 만든 창조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았던 축산자본과 대한민국 정치권력은 '어둠'이었다.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아버린 축산자본과 정치권력에 저항했던 촛불은 '빛'이었다.

 

하지만 촛불 발화 원인은 축산 자본과 이명박 정권의 생명권 파괴 이전에 영어 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따위를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발화되었다고 글쓴이들은 적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만 생명권 파괴가 아니라 영어몰입교육과 대운하 같은 모두가 인간 기본권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 촛불 배후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자신들이 배후이자, 원인이면서 그들은 배후세력 운운했다. 10대 소녀들로 시작된 촛불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와 아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운동화’ 신고 뛰었던 386세대, 나이 지극힌 어르신까지 모았다

 

윤형근(사단법인 한살림 상무)은 “이들이 가진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과 ‘우정과 환대. 돌봄의 감수성’은 일정 시점까지 촛불집회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으로 시작된 촛불은 드디어 파도가 되어 울렁대기 시작했다. 촛불소녀들은 기존 집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 의견을 표출했다.

 

그들은 '되고 송'을 불렀고, '뻔한 코스'가 아닌 발길 닫는 곳으로 갔다. "나는 안 찍었어!"를 외쳤으며, 일산 하는 한 고3 여학생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나라 걱정으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하면서 촛불을 들었다.

 

퇴계로를 막으면 서울역으로 돌아가면 되는 촛불시민들을 향하여 결국 경찰은 "운동권보다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고3학생이 수능보다는 나라 걱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명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1조를 무시한, 인간 생명권과 기본권을 저버려 어둠이 되어버린 청와대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소통'을 원했지만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다. 왜 이명박 정권은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을까? 박영선(참여연대기획위원장)은 "어쩌면 국민의 건강권이나 행복추구권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촛불시민들에게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가 보루였으나, 이 보루는 오만한 대통령과 무지막지한 검경에 의해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미국산 쇠고기와 영어몰입교육, 이름만 바뀐 4대강 정비 사업과 함께 용산철거민참사에서도 어김없이 파괴되고 있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인간 기본권 보루를 촛불이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희망은 있다. 이유는 지난해 촛불은 신진욱(중앙대 교수) 말처럼 "촛불의 힘은 시민들 간 이음, 나눔, 모임에서 생겨났다. 인구 1,200만의 세계적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시민들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성별과 연령, 직업과 계층을 달리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행동했으며, 또한 모두를 위해 각장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헌신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인민을 폭도와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명박산성과 거대한 차벽으로 막았지만 시민들은 하나 된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생명과 민주주의 소중함이라는 큰 메시지를 던졌으나 2008년 촛불은 현실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못했다. 그 반증이 재벌방송과 조중동방송, 금산분리완화, 2%를 위한 감세 정책와 용산철거민참사 같은 비극이다.

 

여기 우리 과제가 있다. 촛불은 계속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바로 우리, 국민으로터 나온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똑바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외침을 끝임없이 보내야 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김수행,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을 말하다 | 경제 2009-03-04 17:12
http://blog.yes24.com/document/128512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저
시대의창 | 2009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세계 경제가 위기다. 언론은 연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한다. 작년 1월 대비 올 1월 수출이 32.8%이나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인데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라는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경제살리기'에 올인하여 청와대 지하 벙커 안에 '워룸'까지 만들어 놓고 '경제'를 외치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바쁘지만 용산철거민 참사에서 보듯이 서민들과 약자들은 기댈 곳 하나 없다.

 

지금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와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본주의에 빠져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구조이다. 자본은 갈수록 배를 부르지만 노동자 삶은 팍팍해진다.

 

과연 대안은 없는가? 여기 김수행 교수가 있다. 지난 해 2월 정년 퇴임하기까지 20년간 서울대에서 강의한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66)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를 만나 나눈 대화를 모은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세계 경제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견줄 만큼 위기라고 하는데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공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을 토대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은 시장만능주의 같은 경제로는 해결 방법이 없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공황이론이 없다. 그러니 현 상황을 극복할 대안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시장만능주의와 맹신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시장에 맞기면 된다는 주장을 했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한쪽은 부가 흘러 넘치고, 한쪽은 배고픔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른바 ‘새로운 사회’다. 새로운 사회란 "양극화 해소→ 내수기반 확충→ 경제의 안정적 성장→ 인권유린과 증오 해소→ 사회적 타협의 확대로 나아가는 것이 유럽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을 제시한다.

 

이는 미영식 자본주의 곧 "자신들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올리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줄이고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해 점점 더 야만적인 사회를 만들어 온" 길과는 다르다. 자본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맞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이 함께 하는 경제체제, '계획참여 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다든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힘을 모아서 이 사회에 대해서 도전을 해야 하고, 그것을 지식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66쪽)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맞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김수행 교수는 "스웨던은 정부가 산림보호 요원, 폐수관리와 환경관리 요원을 양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한다. 이런 일자리를 통하여 앞으로 닥칠 엄청난 환경오염을 방지하여 돈은 더 적게 들면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요, 새로운 사회다.

 

아이들 보육하는데, 환자를 돌보는 일이나 늙은이를 돌보는 일에 인력을 투입. 실업을 한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다른 직업을 얻도록 도와주기도 하구요, 이렇게 국내시장을 성장 시키니까 그 나라들은 경제성장률도 올라가면서 복지도 잘 되죠. 이게 같이 가는 거예요. 복지와 성장,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하는 겁니다.(155쪽)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가야만 한다.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비교적 노동자와 서민들을 생각했던 노무현 정권마저 성장을 통한 복지를 지향했다. '파이'를 키워야만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다. 한미FTA  비준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있다고 하는 논리와 같다.

 

이에 대하여 김수행 교수는 이런 논리는 재벌만 더 배부르게 할 뿐 서민들 배는 채워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규제를 풀어 재벌과 다국적 기업을 배불리게 하지만 그 부는 자본가들에게 갈 뿐, 서민들에게는 오지 않는다. 이런 재벌 독점을 깨야만 진정한 민주화 사회라고 까지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재벌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는데, 시장에 맡겨버리면 어떻게 국부가 증진되겠어요? 독점하고 있는 놈들만 배부르게 되는 거죠 바로 이점이 애덤 스미스와 시장주의자들과 근본적인 차이입니다.(168쪽)

 

한국 경제는 수출이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 없는가? 김수행 교수는 "'우리는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운용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고 말해 우리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개혁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시장과 개인에게만 맞기거나, 수출만 살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일자리는 4대강 정비 같은 삽질이 아니라 환경과 보건, 교육 따위 무궁무진한 진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내수기반을 튼튼히 할 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위하여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필요하다. 지휘자가 착취와 기능이 결부되지 않고, 오케스트라 구성원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일이다. 과연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대한민국 지도자는 없는가? 모든 구성원을 더불어 살게 하는 지휘자는 없는가? 솔직히 현재 지도자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를 덮어면서 느낀 답답함이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조금은 뭐 하지만
눈을 조금 넓히자!
나라사랑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wkdf qhrh rkqlsken 
언젠가 티브이 재방으로 우연히 '실종.. 
리뷰읽다말고 책이 궁금해져서 주문하고.. 
오늘 55 | 전체 2273941
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