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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이다. | 耽讀 쓴 기사 2009-03-3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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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목사가 당신에게 "헌금 나만큼 한 사람 있어요? 33평 아파트 바쳐봤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이니 목사님 말씀 잘 들어면서 묵묵히 그 교회에 다닐 것인가. 아니면 가만히 교회를 옮길 것인가. 목사인 나에게 이런 상담을 해오면 당연히 그 교회를 떠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목사들은 신자들에게 헌금 많이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은 믿음 없는 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목사들은 "33평 아파트 바쳐봤어요"라면서 그 정도 헌금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교회에서 감나라 배나라고 하느냐고 한다.

 

참 망극한 일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로가 대통령인 대한민국만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평수로 신자 등급을 매기는 참으로 이상한 한국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세속의 조건-권력, 학벌, 명예, 물질-으로 신자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아니 신자 등급 자체가 없다.

 

한국사회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도 자본주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목사는 구원을 가난과 기아, 배고픔, 열등감에서 해방으로 설교한다. 신자들도 만날 하는 기도가 부자와 성공, 합격, 취직 따위밖에 없다. 세속 사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교회가 교양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교양있는 자들이 교양있게 살기 위해서 모인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많이 배운 자, 많이 가진 자, 많은 권력을 쥔 자들이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좋은 음악을 듣고 이야기 한다. 서로 좋은 이웃이다.

 

얼마나 좋은 이웃인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이웃이다. 그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이웃이 좋은 이웃일까? 이웃은 누구인가? 좋은 예가 있다. 선한 사마리이아인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웃은 강도 맞은 나그네였다. 왜 제사장과 레위인, 유대인들은 강도 맞은 나그네의 이웃이 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자만을 이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강도 맞은 나그네는 그들과는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강도 맞은 자가 자기들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손해만 될 뿐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달랐다.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자를 이웃으로 보았다. 우리 시대 한국교회에서 목사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사건을 설교하고, 신자들은 듣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맞은 이를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제사상과 레위인, 유대인들처럼 유익되지 않기에 버려 두고 간다.

 

마태 25장 31-46절은 인자가 의인과 악인이 누구인지 나누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그 때 인자가 의인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말씀한다. 하지만 의인들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고 대답한다.

 

의인들은 우리는 그렇게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 인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사랑하고, 함께 한 것이 인자, 곧 예수님께 한 일이라고 하셨다.

 

악인들에게도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하신다. 악인들은 즉각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라면서 반박한다.

 

하지만 인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가난한 자, 목 마른 자, 아무 힘이 없는 자를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권력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자주 말한다. 세계를 책임지겠다고. 세계를 책임지지 못하면 한국이라도 책임지겠다고 한다. 세계를 어떻게 책임지고, 한국을 어떻게 책임지는 방법은 사람 숫자와 물질, 세속 권력으로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러니 가난하고 힘 없는, 권력과 돈이 없는 자들이 자리할 곳이 없다. 어떻게해서든 돈 한 푼 보태야하고, 권력이라는 힘을 빌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달동네 단 칸 방에 사는 사람보다 강남에서 수십억 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하나님 더 능력있게 사용하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 33평짜리 바쳐봤냐고." 그런 아파트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지만, 가난한 과부가 드린 100원짜리 동전 두 개는 한 없이 크게 받으심을 아시는가.

 

이웃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이웃은 내게 아무런 도움을 줄 능력이 없는 이가 진짜 이웃이다. 내 옆에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힘 없는 자를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자가 있다면 신앙의 근본부터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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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벽을 넘지 못하다 | 耽讀 쓴 기사 2009-03-3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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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터 학교, 지역까지 줄을 세우고, 사고력과 창의력은 눈꼽만큼도 없다고 비판했던 내가 31일 치르는 '교과학습 진단 평가'(일제고사) 벽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이 30일이니 내일 무조건 학교에 안 보낼 수 있지만 선생님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제고사를 안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한 마디 상의가 없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매달 초 월간 교육계획표를 학교에서 보낸다. 2009년 3월 월간 교육계획안를 보면 31일에 일제고사를 본다는 계획이 없다. 월간 계획안만 믿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학교 교장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주 토요일(28일)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일제고사를 치르는 줄 알았다. 아침을 먹는데 일제고사 뉴스가 나왔다. 아내에게 우리 아이들은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따졌다. 일제고사 안 보는 학교가 어디 있나면서.
 
"우리 아이들이 일제고사 안 보니 다행이예요."
"무슨 말이예요. 일제고사 안 보는 학교가 어디 있었요."
"아니 월간 교육계획안를 보니까 31일 일제고사 치른다는 계획은 없던데."
"당신이 잘못 알고 있어요?"
"이것 보세요. 월간 계획안에 없잖아요?"
"지난 주 토요일(21일) 교육설명회 때 나눠 준 교육과정 운영 계획안을 보면 31일 일제고사 치른다고 되어 있어요?"
"뭐라고? 3월 초에 보내준 월간 교육계획안은 무엇이예요?"
"이것보세요. 교과진단평가 본다고 되어 있잖아요?"
 
아내가 보여준 '교육과정 운영계획'에는 선명하게 31일(화) 교과진단평가를 2-6학년까지 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순간 멍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체험학습을 가려면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담임 선생님께 체험학습 계획서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31일 일제고사를 보는 줄 알았다면 지난 주 24일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했었다. 그리고 일제고사를 안 보는 줄 알고 큰 아이는 두 번(16일-18일, 23일-25일) 둘째와 막둥이는 한 번(23일-25일) 체험학습을 다녀왔으니 세 번이나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아니 31일 일제고사 보는 것 알았다면 말을 해야지요?"
"당신도 알고 있는 줄 알고 있었죠."
"나는 월간교육계획안만 보고 일제고사 안 보는 줄 알았지."

"당신이 21일에 학부모 설명회에 갔다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잖아요?"

"일제고사 보는 줄 알았으면 지난 주 아이들 체험학습 안 보냈지. 일제고사 때문에 또 체험학습 가면 인헌이는 3주 연속, 서헌이와 막둥이는 2주 연속 체험학습 가니까. 난감하다. 누구를 탓하겠요. 내 잘못이지."

 

일제고사를 말로만 비판하면 무엇하나. 문제가 있다면 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일제고사가 이래저래 아이들과 부모들을 힘들게 한다. 일제고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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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본 19세기 조선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 사회 2009-03-2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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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명과 야만 -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조현범
책세상 | 200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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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팔만대장경, 한글, 조선왕조실록 따위를 말하면서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런 자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해도 조선은 문명과 야만 중 '야만'에 가까운 나라였다. 서양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조현범은 <문명과 야만>-부제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을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를 타자의 위치에 고정시켰던 서양 선교사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타자화되어간 우리 초기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시각을 확인하는 조현범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동남아시아를 바라는 시각 역시 19세기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았던 '야만'이라는 시각과 별 다르지 않다점에서 반추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선교사들이 우월성으로 조선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현범은 제1장에서 말한다. 19세기 서양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 기독교 해외 운동의 붐,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도덕률의 팽창, 이국 취향과 여행기 장르의 성공이라는 시대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였는데 선교사들 역시 시대정신으로 먹고 자란 이들었을 뿐이다.

 

사실 선교사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는 명목이었지만 서구 제국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이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백인 우월성이라는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았다. 우월성으로 바라본 조선은 '야만'이었다. 서양의 문명화된 나라들이 비서양의 뒤떨어진 나라들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명화 사명은 식민지 지배는 신이 내리 사명이 되었다. 

 

"문명화 사명은 제국의 황제와 식민 관료에서부터 식민지 쟁탈 전쟁을 벌이는 군대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 비유럽 지역을 탐사하는 탐험가와 인류학자들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에 진출했던 서양 선교사들 역시 이런 시대 정신을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고 있엇던 셈이다."(40쪽)

 

19세기 시대정신을 먹고 자란 선교사들이 19세기 조선이 들어왔어서 조선 사회와 조선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았는지 제2장에서 살핀다. 조범현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김대건 신부 체포 후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자 '어리골'이라는 곳으로 도피 한 후 조선과 조선인들 삶을 닮은 긴 편지를 적은 <어리골서한>이라는 자료와 조선사회를 소개하는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들 남긴 자료들에 주목한다.

 

다블뤼 주교 시선은 복합적이다. 조선 정치 지배 집단은 '부패한 양반과 관료들'로 왕과 백성 중간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횡령과 착취를 일삼는 세력이었다. 또 설득력 있는 사회를 질서를 갖춘 나라였다. 조선의 쇄국 정책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지만 민족성은 야만인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을 가졌다고 보았다. 특히 조선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경박한 자들이라고 했다.  

 

다블뤼 주교가 바라본 조선에 대한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은 '폭식 습관'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정말 폭식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극단적인 표현도 나온다. 식탐을 악담으로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조선에서 15년 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무시만 할 수는 없다.

 

"식탐이 조선인들이 가진 악덕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의정이나 임금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블뤼 주교가 조선인들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적 사회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 성격인 까다로움, 탐욕스러움, 수다스러움을 조선인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런 탐욕스러움에서 기인하는 생활 습관으로 폭식과 폭음의 관습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76~77 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86-88쪽 인용)

 

이런 시각으로 말미암아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야만으로 생각했을 것같지만 아니었다.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칭찬한 압권은 '공동체 정신과 상호부조 생활'이었다고 조현범은 말한다. 상호부조와 자선 행위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결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상화 부조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애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다."(85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75-76쪽 인용)

 

다블뤼 주교 이후 조선은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를 선교지 문명을 기독교 문명으로 개화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와 병원 따위로 조선에 정착한다.

 

개신교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거리는 불결하고, 좁았으며 집들은 음침했다.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청교도 후예답게 조선인들은 게으른 천성을 가졌고, 복음 전파가 목적인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혁파하는 것이 개신교 선교사들이 할 일이었다. 릴리어스 언더우드 말을 빌어보자.

 

"조선 사람들은 서양 문명에서 최선의 것, 즉 사람의 힘을 분발시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동력이 바로 기독교 신앙과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기독교의 원리, 그리고 이 원리가 실천되는 곳, 이 정신이 숨쉬는 곳, 거기에서 문명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162쪽)

 

책을 덮어면서 든 느낌은 19세기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 본 시선과 지금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불과 백여년 전 서양인들에게 타자화되어 야만스러운 민족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에 울분을 토하기 전, 우리도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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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인권 탓하기 전에 언론자유부터 | 耽讀 쓴 기사 2009-03-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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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브로셀 '국경 없는 기자회'(RSF) 아시아담당 국장이 한국을 방문 중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북한인권방송 지원과 실태 조사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3일 방한하자마자 목적이 바뀌었다.

 

브로셀 국장 자신이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비판 언론에 대한 명백한 정치 보복(political revenge)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대한민국 언론이 오히려 정치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셀 국장이 한국을 방문한 그날 <YTN> 노종면 위원장을 비롯한 기자 3명이 체포되었고, MBC 이충근 PD가 연이어 체포되었으니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북한 인권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언론 환경이 언론인 체포와 구속때문에 더 심각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느낀 충격은 상당했으리라. 물론 대한민국 인권이 북한 인권보다 열악하다는 말은 아니다. 북한은 1인독재정권이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인권 보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언론이 탄압받자 국제앰네스티는 YTN  노종면 노조 위원장 구속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요청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조사를 허락하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언론탄압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오명도 없다. 언론탄압 때문에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조사를 받는 나라가 과연 다른 나라 인권을 논할 수 있을까?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26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6개국, 반대 6개국, 기권 15개국으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가운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유엔총회 북한 인권결의안에도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었다. <연합뉴스>는 27일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한 이유를 우리 정부는 "'인권은 인류보편적 가치로서 여타 사안과 분리해 인권문제 그 자체로 다루어야 한다'는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기본 입장과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인권은 인류보편적 가치'라면 언론자유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아닌가? 언론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 근간이다. 이명박 정권이 인권을 인류보편적 가치 운운하면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려면 대한민국에서 언론자유가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다 알고 있듯이 2009년 대한민국 언론 현실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가 심각한 위헙을 받고 있다. 결국 국제앰네스티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국경 없는 기자회는 3주 안에 한국 언론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내기로 했다. 북한은 볼 것도 없이 인권탄압국으로 정평이 났고, 남한은 언론 탄압국이 될 수도 있다. 참 부끄럽다.

 

우리는 11~12대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한다. 이명박 정권은 7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런데 2007년 대한민국 언론지수가 얼마인지 아는가? 47위였다. 2007년에 47위였다면 언론사에 자기 사람 낙하산 투하, 언론인 체포와 구속, 비판 프로그램 수사, 미네르바 구속같은 인터넷 통제가 자행되고 있는 2009년 대한민국 언론지수는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기 전에 내 눈에 있는 들보 먼저 빼야 한다. 인권 자체가 없는 북한 탓하지 말고, 인권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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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4) |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2009-03-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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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4주일


35문: “그분은 성신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라는 말로

      당신은 무엇을 고백합니까?


  답: 하나님의 영원한 아드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성신의 사역(使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성(人性)을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또한 다윗의 참된 자손이 되고

         모든 일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36문: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므로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죄를

         그의 순결함과 온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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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샘 추위가 물러간 자리에 피어난 꽃들 | 耽讀 쓴 기사 2009-03-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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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했던 잎샘추위가 저멀리 달아났습니다. 시샘도 어느 정도지 자리를 펴고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잎샘추위가 떠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꽃들입니다.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탐스러운 모양과 은은한 향기로 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목련, 개나리 처녀가 아니라 개나리 총각으로 유명한 개나리,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주인 없는 집에 목련이 피었다가 몇 송이만 남고 다 떨어졌습니다. 대부분 꽃들이 그렇지만 목련은 더 지는 모습이 더 안타깝습니다. 탐스러움과 은은한 향기는 없어지고 조금은 추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주인 없는 집에 핀 목련이라 더 쓸쓸합니다.

 

  
주인 없는 집에 핀 목련.

 

5년 전 살구나무를 심었습니다. 5년 동안 한 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는데 올해는 열매를 맺을지 궁금합니다. 살구꽃이 피었는데 언뜻 보면 매화와 비슷합니다. 옛사람들은 살구꽃을 급제화(及第花)라 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상징적 의미의 꽃으로 생각하였다지요. 옛날 과거의 전시(殿試)는 해마다 2월(음력) 열렸답니다. 이유는 살구꽃이 이 때가 만발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봄> 노랫말에도 살구꽃이 나오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하얀 살구꽃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립니다.
 

 

 

 

동백꽃은 따뜻한 남쪽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붉은 꽃망울을 볼 때마다 어찌 저토록 붉은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백꽃은 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떨어질 때까지 고이 간직합니다. 겨울바람을 이겨낸 동백나무이기에 첫 모습을 마지막까지 간직할 수 있겠지요.

 

  
동백꽃은 정열입니다.

 

봄처녀인데, 왜 개나리 처녀가 아니라 '개나리 총각'일까요? 궁금합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다니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개나리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꽃입니다. 흔한 꽃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지요. 흔한 꽃이기에 누구나 볼 수 있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지도 않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꽃이 개나리가 아닐까요?

 

 

따뜻한 봄날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보면 낮은 자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을 뽐내기보다는 납작 엎드려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나가는 길손에게 밟혀 피어보지 못할 수 있지만 민들레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옛 사람들은 배가 아프면 민들레 새잎을 씹어먹기도 하며, 뱀에 물렸을 때 뿌리를 다져서 발랐다지요. 또 꽃을 그늘에 말렸다가 피가 부족하거나 결핵에 걸렸을 때 먹었다고 합니다.

 

  
민들레가 곱게 피었습니다.

 

잎샘 추위가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이미 겨울은 봄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목련, 살구꽃, 동백꽃, 개나리, 민들레는 따뜻한 봄이 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겨울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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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진실을 싫어한다. | 耽讀 쓴 기사 2009-03-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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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 세우지만 죄목을 찾지 못한다. 죽이기는 해야겠고, 죄목은 찾지 못하다가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거짓 증인을 세워 증언을 하게 했다.

 

하지만 거짓 증인이 할 수 있이란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밖에 없었다. 증언은 많이 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 증언이 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세웠던 거짓 증인들이 한 거짓 증언은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증언으로 채택될 수 없었다.

 

유대 종교법으로 죽일 죄목을 찾지 못하자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무리가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라는 죄목으로 죽여야 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반역죄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한다. 

 

빌라도가 반응에 놀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다. 민란이 일어날 조짐까지 보이자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어떤 죄목도 없이 십자가를 진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을 보면 그들은 진리를 싫어하며, 자신들의 어둠이 드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어두움이었다. 어둠이니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예수님을 제거해야만 어둠은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일은 세속 사회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모든 권력은 진실보다는 어둠을 더 좋아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통제와 탄압, 여론 왜곡을 시도한다. 민주국가는 언론 자유를 통하여 권력을 어느 정도 견제하지만 권력은 언제든지 왜곡과 통제, 탄압으로 어둠이 드러나는 일을 막는다. 

 

촛불재판과 미네르바 구속,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구속, MBC <PD수첩> 이춘근 PD 체포는 이명박 정권은 진실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권력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들을 재판하고, 체포하는 과정을 보면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엄격하게, 아니 '막무가내'로 적용한다.

 

운동복 차림으로 아내와 마라톤을 하고 있는 YTN 조승호 기자 체포, 밤에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가는 MBC 이춘근 PD를 미행하여 체포하는 일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둠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배하도록 하고 있다.

 

어둠에 갇혀 민주국가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언론자유를 훼손했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강도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들에게는 소수 특권계층들뿐이며 시민들은 머슴이다. 시민들을 섬기는 정권이면, 시민이 알아야 할 진실을 보도한 언론인이 아내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체포할 수 없다. 생명을 사랑하기 위하여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을 탄압할 수 없다.

 

그들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방송은 자신들이 소유해야지 시민들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방송을 소유해야만 어둠을 빛에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방송은 반드시 장악해야 할 도구이다.

 

방송은 진실을 보도하는 민주주의 근간이 아니라 소수특권층들이 지향하는 이익과 어둠을 더 어둡게 하는 수단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은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방송산업은 시민들을 기만하는 말 장난일 뿐, 진실이 아니다. 어둠이 더욱 짙게 내리고 있다.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작은 빛 하나에 무릎을 꿇게 된다. 어둠이 짙을지라도 작은 빛 하나만 있다면 어둠을 이긴다.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둠이 빛을 두려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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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두 아들, 축구를 하다 | My Story 2009-03-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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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2박 3일 다녀왔습니다. 말은 여행이지만 우리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부곡 온천입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경남 지역에 있는 목사님 가족 25가정이 함께 한 모임입니다.

 

둘째 날(24일)은 밀양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큰 아이가 갑자기 엄마한테 축구를 하자고 합니다. 축구를 잘못하지만 축구를 참 좋아하지요. 아빠가 아니라 엄마보고 축구를 하지고 조르는 아들 성화에 결국 아내가 큰 아들과 축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 나하고 공 차요?"
"인헌아 엄마 공 못 찬다. 아빠하고 해라."
"인헌아 아빠는 조금 있다가 목사님들하고 족구하니까. 엄마하고 해라."

"엄마 내 드리블 하니까 빼앗아 보세요."

 

  
혼자를 드리블을 하는 큰 아들 과연 축구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 김동수
축구

 

지난해 방과 후 수업으로 축구를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운동을 너무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도 운동는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잘못하지만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빠와 한 번씩 축구를 하면 정말 재미있게 하지요. 엄마가 달려 들었지만 개인기로 제치자 아내는 그만 넘어졌습니다.

 

엄마와 형이 공차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막둥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엄마와 사모님 한 분이 한 팀, 엄마와 막둥이가 한 팀이 되었습니다. 막둥이는 막무가내입니다. 형 공도 자기 공이고, 자기 공도 자기 공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막둥이에게 패스를 해줍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형아는 왜 공을 안 주는거야. 패스 해주라. 패스."
"너는 우리 편이 아니잖아. 내가 너에게 패스를 해주어야 하는데?"
"형아 빨리 패스해라. 패스. 엄마 형이 나에게 패스 안 해준다."
"김막둥! 네가 빼앗야지
. 형 한테 패스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니?"

"형이 동생한테 패스 좀 해주면 안 돼요."

"상대팀에게 패스를 해주는 일이 어디 있어. 네가 빼앗아라."

 

  
엄마를 따 돌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큰 아들. 막둥이가 과연 형에게서 공을 빼앗을 수 있을까요
ⓒ 김동수
축구

 

자기 고집대로지 되지 않자 막둥이는 형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형에게 공을 빼았습니다. 형에게서 공을 빼앗은 막둥이는 드리블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 멀리 사모님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겨우 형에게서 공을 빼앗아지만 사모님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무엇하고 있어요? 사모님이 달려 오면 나를 보호해주어야지."
"아니 네가 형에게서 공을 빼앗고 나서 드리블 하다가 그만 빼앗겼잖아. 사모님을 제칠 수 없었어면 엄마한테 패스를 해야지 실력도 없어면서 무슨 드리블을 한다고."

 

 

  
막둥이가 드리블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달려오는 사모님을 따돌리고 공격을 할 수 있을까요
ⓒ 김동수
축구

 

막둥이게서는 빼앗은 공을 사모님은 인헌이에게 패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아내가 달려들어 공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인헌이는 멍하지 엄마를 보고 있습니다.

 

"엄마 언제 와 있었어요?"

"인헌아 축구 선수는 눈이 적어도 네 개는 되어야 한다.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는 되어야지 앞 만 보고 달리면 되나."

 

 

  
엄마를 따 돌리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만 공은 엄마에게 다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 김동수
축구

 

"엄마, 패스! 패스!"

"패스해도, 공만 빼앗기는 선수에게 어떻게 패스를 할 수 있니."
"엄마하고 나는 같은 팀이예요. 패스도 안 해주면서 같은 팀이라고 할 수 있어dy."

"패스해주면 골을 넣을 수 있어?"
"패스를 해주면 골 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막둥이는 엄마가에게 패스를 받자 마자 형이에 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10분 동안 두 팀이 축구를 했지만 0-0 무승부였습니다. 두 팀 모두 골결정력 부족이었습니다. 0-0 무승부였지만 재미있는 축구 경기였습니다.

 

  
엄마와 큰 아들, 막둥이 가운데 공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구일찌 정말 궁금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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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꽃남>·WBC까지... 한나라당=패러디당 | 耽讀 쓴 기사 2009-03-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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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때아닌 김연아 선수가 등장했다.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이 직접 올라온 것이 아니라 '경제도 김연아처럼'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김연아 선수를 패러디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나라당은 김연아 선수측에 어떤 문의도 하지 않고 '김연아' 선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연아 선수를 패러디한 한나라당
ⓒ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지난 20일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꽃보다 경제 한나라당 H4'
ⓒ 한나라당
한나라당

김연아 선수를 시작으로 한나라당발 패러디 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김연아 선수를 패러디한 후 엄청난 비판을 받았으면 조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막무가내였다.

 

지난달 20일 가수 손담비씨는 졸지에 '박담비'가 되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는 '박희태의 말말말'이라는 코너가 있다. 여기에 손담비씨 "미쳤어"를 "같이 미칩시다"로 패러디하면서 박희태 대표를 '박담비'로 표현한 것이다.

 

박담비는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라면서 "불광불급이다. 미치지 않으면 뭔가를 이루지 못합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공부에 미쳐야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운동에 미쳐야 우승을 한다"면서 "우리 한번 같이 경제 살리기에 미쳐보자"라고 했다.

 

문제는 학생과 운동선수, 시민들이 이렇게 미쳐버리면 모두 망하는 것이다.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 함을 한나라당만 모르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인기 가수와 노래뿐만 아니라 인기 드라마도 좋아한다. 인기 없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도 '꽃보다 경제 한나라당 H4'로 패러디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나라당이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이유는 핵심 국정과제를 추진하겠다며 꾸린 신설 특위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구몽표'(정몽준) 아름다운국토가꾸기위원장은 "전학 오자마자 반장 선거에서 차점을 차지한 실력파"로 비유했다. '허지후'(허태열) 정치선진화위원장은 "'법보다 해머'가 급훈인 민주반과 함께 원활하게 학생회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비유했다.

 

'소이공'(공성진) 미래위기관리위원장은 패싸움 위험이 존재하는 한국고교 주변을 파악할 인물로 비유했다. 이들 외에 '안경빈'(안경률) 나눔봉사위원장이 '한나라당 H4'의 주요 멤버들이다. 박순자 의원은 '한나라반의 홍일점 지도부'로, 이름은 '금순디'로 일자리위원장을 맞고 있다.

 

인기를 좋아하는 한나라당은 지난달 24일 공식 홈페이지 '박희태의 말말말'에 그룹 '소녀시대'를 패러디한 '원외시대'를 올렸다. 패러디 사진 속에는 최진덕 이진동 김문일 정용대 김희정 권용범 송태영 권기균 김동완 지구당 위원장이 등장했다. 원외위원장들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박희태 대표가 "저도 원외입니다"라고 한 말을 친절하게 달았다.

 

  
지난 달 24일 한나라당이 '소녀시대'를 패러디한 '원외시대'
ⓒ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좋아하는 인기는 이제 스포츠까지 폭을 넓혔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WBC 준우승이다. 한나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4일 <당정청 '드림팀'이 되자>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패러디물을 보면 새로운 일본 킬러로 등장했던 봉중근(박희태 대표) 선수와 아픈 몸으로 대표팀을 준우승까지 이끈 김인식(이명박 대통령) 감독, 베네수엘라 및 일본과 벌인 경기에서 친 홈런으로 부진을 한 방에 떨쳐버린 추신수(한승수 총리) 선수가 나온다.

 

  
WBC를 패러디한 한나라당 당정청 ‘드림팀’이 되자
ⓒ 한나라당
한나라당

 

<당정청 '드림팀'이 되자> 설명문에서 박희태 대표는 "야구 대표팀이 위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경제살리기라는 위대한 도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정청이 한 덩어리가 되어 팀코리아를 만들겠습니다. 훗날 위기를 극복한 후에 지금 일한 팀이 '드림팀'이었다는 평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지난 23일(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 사이 회담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와 국토를 누가 망치고 있으며, 6개월짜리 일자리를 누가 만들고 있으며, 법과 원칙을 누가 먼저 어겼고, 꿈을 빼앗아가는 자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안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패러디물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패러디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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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거버넌스가 아니라 생활정치다 | 창비주간논평 2009-03-2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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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거버넌스가 아니라 생활정치다  

정상호 /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정치학

2009년 한국사회의 최대 화두는 위기이다. 금년에 발표된 많은 사회경제 지표들은 한국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조차 정부의 공식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악의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위기의 객관적 요소라면, 실수를 인정하는 데 옹색한 정부의 일방적 독주와 야당을 비롯한 대안세력의 지리멸렬함은 위기의 주체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4.29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현재의 위기 타개를 위한 다양한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다. 야당에서의 개혁공천, 선거연합이나 집권여당의 거국내각 등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가장 주목할 논의는 백낙청 교수가 제시한 거버넌스론('나라 다스리기'론)이다. 우선 백교수의 거버넌스론은 두가지 이유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MB 탓으로 돌리며 정부 비판과 질책에만 몰두해온 야당과 시민사회의 관성을 질타하며 좀더 창의적인 역할과 적극적인 책임감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큰 틀의 정치비전으로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즉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있는 진보가 주도하고 시민사회가 적극 동참하는 중도 거국체제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백낙청 교수의 제안에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에 관해 탁월한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헌신해온 원로지식인의 지혜와 고민이 깊게 담겨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정치비전 치고는 다소 모호하거나 정치학 연구자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버넌스의 전제: 성찰과 혁신

거버넌스 개념의 본질적 요소는 정부이든 지자체이든 시민사회와의 수평적 협력이다. MB정부에 이르러 사라진 정치용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시민사회와 거버넌스를 들 수 있다. 청와대가 나서서 살인사건을 여론조작에 악용하고, 용산사태를 도시테러집단의 자폭행위로 규정하는 MB정부에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기대이다.

백교수의 거버넌스 주장이 다소 생뚱맞게 들리는 또다른 이유는 MB정부가 아니라 우리 시민사회 자체의 취약함에 있다. 세계적 학자 펑과 라이트(A. Fung and E. O. Wright)가 그들의 저서(Deepening Democracy)에서 잘 간파했듯이 시민사회의 견제력과 조직화가 미약한 사회에서 자칫 거버넌스는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정권의 치적을 과장하는 겉치레나 '분식회계'로 전락할 수 있다. 거버넌스를 논하기 앞서 연대를 통한 시민사회 내부의 역량강화와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이다.

타자와의 적대보다 내부의 연대가 우선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셰보르스키(A. Przeworski)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자본가와의 계급투쟁(between) 이전에 노동자계급의 형성(among)에 관한 투쟁이다. 우리 현실에 적용하자면, 오늘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단기적으로는 MB정부에 대항하고 장기적으로는 집권할 수 있는 공동의 대안과 정책, 통일된 전략과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하다.

4.29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공천과 선거연합은 의석확보라는 단기적 수지타산이 아니라 대안세력이 하나의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 즉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한다. 국민이 눈여겨보는 것 또한 바로 이 지점이다. 많은 유권자가 말 많고 잘난 진보개혁진영이 대선과 총선 패배 이후 얼마나 뼈저리게 반성했고 진짜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시민사회와 야당이 사회적 현안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를 주도하자는 백교수의 주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도 이는 시급한 과제이다.

연대와 혁신의 생활정치

현재의 시점에서 안으로부터의 혁신과 연대를 가능하게 할 비전과 화두는 생활정치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진보개혁진영은 우선 민주화 이후 분열의 근인(根因)으로 작용하고 있는 일자리(비정규직입법), 교육(3불정책), 개방(한미FTA), 경제(수출주도 재벌경제의 극복) 등 4대현안에 대해 공동코뮤니케를 작성해야 한다. 그 형태는 진보개혁진영의 다양한 싱크탱크와 지식인들이 폭넓게 참여해 초안을 작성하고 정치세력들이 합의하는 정책협약 방식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지방선거가 있는 2010년을 생활정치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해야 한다. 정당공천제, 지역정당의 허용, 지구당제 부활,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확대, 지역별 후보연합 등 진보개혁진영이 함께 준비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들은 차고 넘친다. 특히 386세대와 시민운동이 지역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풀뿌리로의 하방운동'이 절실하다. 하방운동의 조직화 과정은 수도권에서 명망가 중심으로 활동했던 386 출신 정치인들과 시민운동의 거품을 빼고 정당의 토대인 지역을 강화하고 신진정치인을 충원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4.29 재보선은 이러한 제안들이 실험될 수 있는 호재다. 울산에서 두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큰 틀의 선거연합을 마련하고 주민참여 경선제로써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승리는 물론이고 신뢰회복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또한 정동영 전 장관의 갑작스런 복귀는 무쟁점, 무관심의 보궐선거 지형을 크게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전주와 부평에서 이견 없는 개혁공천을 단행해 성과를 거둔다면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진보개혁진영은 정치담론 투쟁에서 계속 밀려왔다. 그 결과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화, 녹색성장 등 나름대로 의미있는 개념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보수의 수사로 전락하고 있다. 연대와 혁신의 생활정치의 비전과 전략은 이러한 보수화 추세에 반전과 돌파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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