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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중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 정치 2009-07-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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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김욱 저
책세상 | 200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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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모습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치욕스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는목적뿐만 아니라 절차까지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법 날치기는 둘 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이런 질곡과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개헌과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조봉암 선생같은 이들을 제거하였다. 박정희는 헌법을 유린했고, 마지막에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체육관 선거로 종신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전두환 역시 헌법을 유린하였고, 수 많은 인민들을 피흘리게 했다.

 

한 때는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쿠데타 주역이었던 노태우와 김종필과 손을 잡았다. 정치를 권모술수의 현장으로 만들고, 헌정을 유린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민주적 절차 따위는 잠시 접어 두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 논리였다.

 

이럴 때 문득 떠오른 말은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는 "성공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처세술을 주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김욱은 <마키아벨리즘을 읽는 한국 헌정사>에서 마키아벨리즘을 통하여 이승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조명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즘의 새로운 발견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사익을 나쁜 것으로, 공익을 좋은 것으로 규정하여 공익을 권장한다. 즉 마키아벨리에게 좋은 목적이란 공동체의 이익이다. 그럼 공동체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백 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처럼,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나쁜 수단이 목적으로 전화되어 좋은 목적을 상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이는 좋은 목적을 위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김욱은 말한다.  즉, 나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이익이다. 가장 큰 공동체가 국가이다.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군주제를 주장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니다.  김욱은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면 군주국이든, 공화국이든 아니면 다른 정부형태도 상관없었다"고 주장한다. 군주국과 공화국 중 어느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즘을 요약하면 어떤 경우라도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좋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전제 위에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군주가 목적인 정당성(인민주권)과 수단인 정통성(민주절차를 통한 권력승계)을 가져야만 정권의 지속여부가 결정된다고 김욱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헌정사를 기록하고 있는 군주들(대통령)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는가? 김욱은 "한국 헌정사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부도덕한 정치 과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 도덕적 요구가 뒤얽힌 질곡의 역사였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승만을 김욱은 "분단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훔침으로써 얻어낸 영광"이라면서 "그의 반역 행위는 대한민국 건국을 친일 세력과 함께 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친일파와 함께 한 것이 심각한 반역행위인 이유는 "헌법 제정 권력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권력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그는 이를 '원죄'라고까지 표현한다. 이유는 친일파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인민이 주인인데 주인 중 한쪽인 북쪽 인민들을 이승만은 철저히 배격했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버린 것으로 마키아벨리즘이 아니다.

 

박정희는 어떤가? 박정희는 분명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였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이들도 민주주의는 훼손되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다고 주장하면서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시킨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정적을 암살하려했으며 사법 살인을 부추기고 언론을 통제"했다. 사적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이 침해받은 것이다. 결국 박정희는 김재규에 의해 살해된다. 김욱은 이를 "마키아벨리즘이 실패했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한다.

 

김영삼은 누구인가? 그는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는 "민주화 투쟁의 적이었던 군사 파쇼 집단과 동지가 되어" 3당 야합을 했다. 한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그가 왜 군사 파쇼 집단과 동지가 되었을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김욱의 말을 들어보자.

 

애초에 김영삼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 따위는 없었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는 그저 개인적 욕망의 대상을 향해 투쟁했으며 군주로서가 아니라 사적 개인으로서 존재했을 뿐이다. 김영삼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가 아니었다(60쪽)

 

김영삼은 자신과 박정희를 비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김욱은 박정희는 먹고사는(목적) 문제를 위해 모든 힘을 숭상했지만 김영삼은 힘 그 자체를 숭상했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이승만은 정당성, 박정희는 정당성과 정통성, 김영삼은 정당성이 없었지만 김대중은 정당성과 정통성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김욱은 주장한다. 이승만부터 김영삼까지 이어져왔던 정통성과 정당성 문제가 비로소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김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동안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학살자를 용서하고, 박정희 기념관을 지원했으며 그의 아들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김욱은 "그가 만약 뛰어난 마키아벨리스트였다면 '혐오스러운 학살자'를 사적으로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공적인 결과에 보탬을 주려는 따위의 어리석은 시도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김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너무 늦게 군주가 되었고, 이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김욱은 노 전 대통령을 "정치의 이단자"라고 말하는데 그가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개의치 않는 역사의 정당성을 따진다. 이것은 정치인으로서 특히 한국의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50년 동안 정당성과 정통성의 부재 속에서 살아온 우리 현실에서 정당성과 정통성을 따지며 정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정당성과 정통성을 따지면서 정치를 했다. 즉 인민의 이익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대통령까지 지냈다. 이승만과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정사는 정당성과 정통성을 함께 갖추었던 군주를 잘 만나지 못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거의 유일한 군주였다.

 

하지만 또 다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정통성은 있지만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정권인 이명박 정권은 인민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인민이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풀어가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된다. 역사의 주체는 인민 자신이다.

 

역사는 신비롭다. 아무도 역사의 정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지만 역사는 자정력을 잃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가 이 신비를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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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저항하라 | 인문 2009-07-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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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저/이재경 역
시간과공간사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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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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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또 다시 죽어야 하나? | 인물 2009-07-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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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대중 죽이기

강준만 저
개마고원 | 199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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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죽이기>. 이 도발적이고, 과격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책제목이 14년 만에 부활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1일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 강연에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심해졌다"며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 후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 중에 눈길을 끈 비판은 <조중동>이었다. 조선일보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 사설에서 "올해 86세의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反)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다"고 했으며, 동아일보는 <'민주' 탈 쓰고 反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 사설에서 민주선거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두고 "DJ는 민주의 가면을 쓴 반민주주의자임을 보여줬다"고 맹비난했다.

 

강준만은 1995년 1월 "적어도 최근 십수 년간, 한국 정치와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음모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김대중 죽이기'"라면서 "집단적인 탐욕과 음모와 무지와 위선과 기만에 희생된, 앞으로도 희생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대중"이라고 했는데 그 '앞으로'가 14년이 지난 2009년 6월에도 현재진행형이 되었다.

 

강준만은 <김대중 죽이기>에서 "우리나라 정치평론은 대부분 쓰레기"라면서 "우리나라 정치평론이 쓰레기라는 데 동의하거나, 아니면 그런 주장을 한 강준만이 정신나간 놈이라는" 양자택일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치평론을 쓰레기라고 표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강준만은 '언론'과 '지식인'을 맹비난한다. 강준만은 언론이 김대중을 먹고 자랐으며, 어떤 때는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독자들의 눈을 속여왔다고 말한다.

 

"분명히 해두자. 당신은 그동안 언론이라는 창문을 통해 김대중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창문은 김대중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거이니와, 더러운 때와 의도적인 분탕질로 투명하지도 않았다."(16쪽)

 

이 언론 중심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강준만이 <조선일보>에 주목한 이유는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신문이면서 "철저하게 이념적인 동시에 철저하게 상업적인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우와 극좌에 치우친 신문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데 <조선일보>만 성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조선일보>가 김대중을 아주 교묘하게 비난하고 다른 언론은 <조선일보>를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일보>는 김대중을 잡아 먹고 자란 신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딱한 건 5공 시절에 급성장한 <조선일보>가 이젠 한국 최대의 신문으로서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이 지난 91년 자랑사람아 이야기한 그대로 '발행부수 2백만이면 독자는 6백만명이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약 3분의 1이 조선일보를 매일 읽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정말 두렵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192쪽)

 

물론 <조선일보>는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막지 못했고, 1995년보다는 약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떤 언론보다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식인을 향한 비판은 더 가혹하다.

 

지식인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정치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통하여 정치혐오증을 심어주고, 김대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정치평론의 양비론은 현실 정치인 김대중의 행태와 '김대중 신화' 사이의 괴리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언론과 지식인의 부추김을 받아 형성된 국민의 잘못된 정치 인식 자체가 김대중이 당면해야 했던 최대의 적이었던 것이다."(261쪽)

 

특히 강준만은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진보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김대중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진보성을 선명하게 내세울 수 있다"면서 "김대중에 대한 비판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고 맹비난했다.

 

"그들의 순수성이나 양심을 못 믿는게 아니다. 그들의 순수성이나 양심은 기묘하게도 김대중에 대해서만큼은 실종돼 버렸다. 그들은 원칙을 부르짖다가도 김대중 문제만 나오면 그 어떤 보수주의자 못지 않은 현실주의자로 돌변해 버린다."(284쪽)

 

14년 전과 다른 점은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 영향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 선봉장으로 비판했던 <조선일보>는 김대중이 지향했던 가치와 철학, 이룬 업적인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따위를 맹비난하고 있다. 김대중을 비판했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김대중 죽이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김대중'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가 가졌던 정신을 죽이려고 한다. 김대중이 가졌던 정신을 존중하고, 함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김대중 정신을 죽이려고 날 뛰는 저들의 저열한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김대중 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에 전심전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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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않겠다" | 인물 2009-07-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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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범일지

김학민, 이병갑 공저
학민사 | 199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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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경전 중에는 <성경>, 고전 중에는 <그리스․로마신화>와 <삼국지>는 한 가정에 한 권쯤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중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달리 판단하겠지만 짧은 생각에는 <백범일지>도 포함될 것이다.

 

한 집에 한 권쯤 있는 책들은 시중에 나온 것만 해도 수십 종에 이른다. <백범일지>도 2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20여종 되는 책 중에는 원본을 나름대로 원본에 충실한 '족보 있는 판본'도 있지만 급히 베낀 책까지 있다. <백범일지>라도 다 같은 <백범일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고민이 된다. 무엇을 손에 들고 읽어야 할지.

 

고민을 해결해 준 <백범일지> 중 하나가 김학민․이병갑 주해 <정본 백범일지>이다. <정본 백범일지>는 '주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교열과정에서 삭제해버린 구절을 원본과 꼼꼼하게 대조하여 복원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352쪽-355쪽에 실은 '대가족명부'이다. 대가족 명부는 기미운동(3.1운동)으로 인하여 상해에 옮겨와 거주하던 5백여 동포를 일컫는다. 그 동안 대가족 명부은 친필본과 필사본에도 모두 누락되어 있었는데 이를 복원한 것이다. 아직 완전한 명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발걸음임은 분명하다.

 

<백범일지>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947년이었으니 올해로 62년이다. <백범일지> 세상에 나오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이승만 정권은 '금서'딱지를 붙이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백범은 <백범일지>가 처음 책으로 나올 때 편찬 배경을 서술하기 책머리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 독립을 지키고, 우리 시체로 발등상을 삼아서 우리 자손을 높이고, 우리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야 한다. 나는 나보다 앞서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 일을 하고 간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비록 늙었으나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아니할 것이다."

 

"내 비록 늙었으나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에는 조국 해방을 위해 자신을 바친 것 외에는 어떤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백범은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백범은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백범 때는 독립이 가장 큰 소명이었지만 오늘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큰 소명이기 때문이다.

 

백범은 "양반이 있음으로 국가가 독립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양반의 학대를 좀더 받아도 나라만 살아났으면 좋겠다"말을 한다. '양반' 조선시대 권력집단이자, 기득권이다. 이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지 않고, 기득권에 매몰되자 결국 조선은 멸망했다. 백범이 바라는 바는 바로 양반는 구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는 말이다.

 

과연 오늘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세력은 자기 희생을 통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지배자가 되었을 뿐, 나라를 위해 자기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백범은 상해임시정부 국무령과 국무위원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60평생을 회고하면 너무도 상리(常理)에 벗어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 사람이 귀하면 궁(窮)이 없겠고, 궁하면 귀가 없을 것이나 나는 귀역궁 궁역궁(貴亦窮 窮亦窮:귀한 몸이어도 궁하고 궁한 몸이어도 궁함으로) 일생을 지낸다. 국가독립을 하면 삼천리 강산이 다 내것이 될는지는 알지 못하나 천하의 넓고 큰 지구 표면에 한 뼘의 땅 반칸의 집도 소유가 없다" (정본 백범일지 <국무령, 국무위원> 261쪽)

 

조국이 일제식민지인데 배불리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니 권력과 집을 가져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겠지만 백범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가 바란 것은 조국독립있고, 조국이 독립해도 자기 영달을 위해 독립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 만들었다고 법과 민주주의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 자리 차지하기 바쁜 이명박 정권모습과 달라도 정말 다르다. 백범을 존경하면 무엇하나. <백범일지>를 읽어면 무엇하나. 그가 바랐던 삶을 자기 삶에 녹이지 않으면 <백범일지>는 종이 위에 쓴 글일뿐이다.

 

고은 선생은 <백범일지>를 읽을 때마다 "울게 되는 눈물의 책"이라며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라면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과 근원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젊은이 뿐만 아니다.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민주주의를 스스로 짓밟고서도 한 번도 진심어린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되찾고 하는 이들을 곤봉과 방패로 내리찍고, 군홧발로 짓밟고 있다. 

 

백범이 <백범일지>에서 조국 독립을 그토록 강조했다면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백범일지>를 읽어면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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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패배하지 않았다 | 인물 2009-07-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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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배한 암살

김삼웅 등저
학민사 | 199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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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 울린 '총성'은 정확히 1년 후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 백범 선생 말처럼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드는 서막 중 하나였다.

 

'만약'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1950년 6월 25일은 역사 속에서 민족상잔으로 '기억'되지 않고, 그저 역사 속에 흘러갔던 어느 한 날이었을지 모른다.

 

백범이 간지 오늘(26일)로 60년이 되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고, 1948년 4월 백범 선생과 함께 38선을 넘었던 선우진 선생은 생전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었다. 

 

어디 선우진 선생 한 명 뿐이겠는가. 그를 아직도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사람들이 많고, 좌파로 매도하며, 5만원권과 함께 발행되어야 했던 10만원권 발행이 무기한 연기된 2009년 6월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부끄러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늘 1992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선생이 엮은 <패배한 암살>은 백범을 죽음으로 이끈 세력이 누구인지 밝히고자 하는 산물이었다.

 

<패배한 암살>은 백범 선생 암살 관계를 다룬 글 가운데 비교적 충실한 내용과 각종 자료와 증언을 중심으로 김삼웅 선생 외 14명이 쓴 글을 제1부 해방정국과 민족노선의 좌절, 제2부 백범 암살의 전개과정, 제3부 백범 암살의 배후, 제4부 누구를 위한 반역인가로 엮었다.

 

그들은 백범 암살을 한 개인의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해방정국의 치열한 노선 싸움과 거대한 정치적 음모는 결국 백범을 암살로 몰아갔고, 백범을 암살한 자들은 한 사람을 살해한 '살해범'이 아니라 민족 반역자로 단죄하고 있다.

 

김구와 이승만에 대해 수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백범 선생과 우남 노선의 갈등'을 쓴 이원모(미주 백범기념사업회장)-1992년 나온 책이라 당시 직책을 그대로 씀-는 백범 선생과 이승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자칭 '대통령' 이승만과 임시정부 수위를 자청한 사람 김구"라 평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때 남산에 높여 세웠던 그의 동상이 4.19 혁명 때 학생들에 의해 넘어뜨려졌는데, 남산 그 지역에 국민의 이름으로 동양 최대의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세워진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28쪽)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그를 암살한 마지막 배후로 지목되었지만 그 잘난 '물증'이 없어 아직도 역사는 그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서거하자 온 나라는 통곡했다. 많은 통곡이 있지만 <패배한 암살>에 실린 독립투사 박동엽 선생( 전 대광고 교감)은 '백범 김구 선생 참변 목격기'에서 이렇게 썼다.

 

"선생님! 정몽주 쓰러질 때 누가 보았는지, 사육신 넘어질 때 누가 울었는지 저는 모르옵니다. 그러나 님이 쓰러질 때 이 못난 동수(冬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늘도 몸부림치고 땅도 눈물 피눈물 뿌리던 그 날! 겨레의 장자를 끊는 비통한 통곡소리 산을 뒤덮던 그 날 !독재자의 앞잡이들은 '좌익계열에서 통곡대를 조작하였다'고 조작하여 전주와 담벼락마다 위협과 공갈로 무시무시한 포고물을 붙여서 참지 못하여 터지는 울음소리마저 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155쪽)

 

백범 때도 통곡을 조작했다고 한다. 민족을 반역한 그들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가 60년을 사이에 두고 어찌 이리 닮았는가. 백범을 지우기 바빴던 이들이 다시 부활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이 울었고, 땅도 피눈물을 쏟았다. 백범 암살은 숱한 이들 마음 속에 비통함으로 자리잡았고, 백범을 보낼 수 없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늘 누구처럼.

 

백범 암살자는 안두희이다. 하지만 그는 총만 쐈을 뿐 그는 진짜 암살자가 아니다. 백범을 죽이라고 명한 마지막 결정권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가 누구일까? 김삼웅 전 관장은 '백범 암살과 이승만' 글에서 이승만에게 많은 혐의점이 있다고 밝히지만 '혐의점'일 뿐이다. 그는 17년 전에 이렇게 바랐다.

 

국회가 국정조사권 발동이나 청문회를 열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 이 땅의 건국사를 바로잡아야 국가의 기틀이 바로 서게 된다.(259쪽)

 

그 바람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힌 것 하나 없다. 60년이 되었는데, 김구 선생을 다들 존경한다면서, 민족 지도자라 추앙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진범을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17년 전에는 안두희가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김구 선생 추모와 함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백범 암살자 마지막 진범을 찾아 단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패배하지 않았다. 1949년 6월 26일 총성은 백범을 패배로 이끈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우뚝한 바위와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민족 지도자로 마음에 새겼다.<패배한 암살>이 던지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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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ㅇㅇㅇ씨입니까?" 물으면... | 인문 2009-07-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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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
열린책들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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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로 조금 나아졌지만, 솔직히 자신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자기 이익을 위한 삶보다는 다른 이 특히 서민과 약자를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 얻었다면 우리들이 쓰는 바보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력하고,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상징하는 '바보'가 꼭 필요한 세상이지만 얼마 없는 것이 문제이고, 우리가 쓰는 바보는 필요가 없지만 의외로 많아 문제이다. 이 바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별 하는 일 없이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하면서 능력 있는 척하고, 진보와 발전을 가로 막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보임을 모르고 다른 이는 무시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과 어리석음까지 겸비한 이들에게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따위를 쓴 움베르트 에코가 지은 칼럼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허를 찌를 듯한 웃음과 해학, 유머로 읽는 이들을 즐거움으로 이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에코가 기호학자에서 유머 작가로 변신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장난기 어린 익살꾼이 되어 썰렁한 웃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1부 실용 처세법에는 '기내식을 먹는 방법',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 따위를 싣고 있다. 그 중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에서 에코는 "미국의 철도 교통을 생각하면 핵전쟁 이후에 달라질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말한다.

 

이유는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예닐곱 시간은" 늦고, "기차역은 썰렁하고 휑뎅그렁하기"하고, "차량은 불결하고 모조 가죽 좌석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미국 기차, 아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에코의 일갈로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있고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48쪽)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기차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라가 경제대국이니, 경찰국가이니 하면서 지구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구상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읽는 이들은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에코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 수 있다.

 

세상과 권력은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항상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맞습니다'라는 답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에코 생각은 다르다. 에코는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느 세제회사 경품으로 받은 것임을 누구나 빤히 아는 백과 사전을 가지 집 거실에 버젓이 진열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맞습니다'라는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백과 사전을 찾아 맞으면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이렇게 말한 답은 "훌륭하십니다"이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었던 안 죽었던 상관이 없다. 아니 에코는 "훌륭하십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은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면 잡아가는 세상이다.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의 채증에 걸려 경찰이 당신에게 연락하여 "경찰입니다. ooo씨입니까?" 묻는다면 당신은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ooo 짐 꾸려!"라고 답한다. 아니다, "야구 보러 갈까요"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상관없다. 오직 "맞습니다"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에코처럼 할 수 있을까? 경찰이 "ㅇㅇㅇ씨 입니까" 물을 때에 "맞습니다"가 아니라 "포도 좋아하는데요"라고 멎지게 한 방을 먹이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에코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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