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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출신과 돌려막기 청와대 참모진 | 耽讀 쓴 기사 2009-08-3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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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했다. 참모진 출신 대학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참모진 9명 중 윤진석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과 박형준 정무수석을 뺀 나머지 참모진이 서울대 출신이고,  윤진석 정책실장과 박형준 정무수석은 고려대 출신이다. 이전에는 맹형규 정무수석(연세대) 정동기 민정수석(한양대)과 비교하면 출신대학 편중이 심하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 특별보좌관도 정무수석에서 정무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맹형규 전 정무수석만 빼고 나머지  강만수 경제특별보좌관, 이현구 과학특별보좌관, 오해석 IT특별보좌관 모두가 서울대 출신이다. 청와대 참모진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대·고려대 출신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만 아니라 이전 정권도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인사에서도 서울대 편중을 비판받았지만 이렇게까지 두 대학에만 편중한 것은 문제 있는 인사 방법이다. 단순히 다른 대학을 차별한다는 말이 아니다.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청와대 참모가 될 수 있다. 능력이 있는데도 어느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안 되면 또 다른 차별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참모진 개편을 하면서 특정 대학 출신을 배제하거나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만 임명하기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개편을 하다보니 두 대학 출신만 구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참모진을 개편하면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다른 대학 출신에서도 참모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 대해 이동관 신임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번 청와대 개편은 집권 중반기의 국내외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과 기능 등 시스템 개편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국내외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대통령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특정 대학에만 편중된 인사가 아니라 다른 대학 출신에서도 발굴하여 참모진에 등용하는 것이 더 낫다.

 

청와대는 몇몇 수석을 신설하여 '신임'이라고 했지만 자리 이동에 불과한 사람들도 있다. 이동관 신임 홍보수석은 청와대 대변인, 맹형규 정무특별보좌관은 정무수석, 박형준 정무수석은 홍보기획관이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특별보좌관으로 부활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돌려막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청와대는 이번에 정책실장과 홍보수석을 '신설'했다고 했지만 노무현 정부 청와대 조직을 거의 다시 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비대하다고 비판한지 불과 1년 반 만이다. 청와대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청와대는 이동관 신임 홍보수석 내정에 대해 "오랜 기자생활을 통하여 정무적 감각과 상황판단력이 뛰어나고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변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언론과의 소통도 원활하고 통합된 홍보조직을 잘 이끌어 정책과 홍보의 연계를 도모할 적임자로 판단"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우리는 '청와대 관계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청와대 관계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시민들은 잘 모른다. 시민들은 왠만한 사안이 아니라면 청와대 관계자가 아닌 이동관 홍보수석 이름으로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앞으로도 청와대 관계자 이름으로 청와대가 시민과 소통하면 이동관 홍보수석 내정 이유를 믿을 시민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서울대·고려대 출신, 돌려막기라는 비판을 뒤로하고 시민들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편중된 인사를 개선하고, 시민과 소통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점점 시민들에게 외면받는 고립된 섬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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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정권 붕괴가 주는 교훈 | 耽讀 쓴 기사 2009-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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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 선거에 우리나라 언론과 나 자신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 본 일은 처음일 것이다. 30일 일본 중의원 선거이다. 방송은 첫번째 뉴스,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거의 실었다. 나 자신도 얼마나 관심이 많았으면 아이들과 채널 싸움하면서까지 NHK를 시청했겠는가.

 

언론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지난 54년간 일본 정치를 지배한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에 참패하면서 막을 내리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선진국에서 일본처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 않은 나라는 없다. 자민당이 독재정권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 '정치'에서만은 일본은 후진국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시민들은 "자민당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자유당 정권 말기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가 2009년 일본에서 등장한 것이다. 1993년 비(非)자민-비공산 연립정권인 호소카와 내각 10개월을 빼고는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 했지만 일본 시민들은 더 이상 자민당에게 일본이라는 나라 운영을 맞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민당은 54년 동안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반공'을 통하여 정권을 유지하는데 든든한 기반을 닦았다. 전후 복구를 위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유권자 표심을 잡았다. 반공과 경제성장은 이것은 자민당 54년 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그러나 냉전체제은 이미 끝난지 20년이 되었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갔던 경제도 발목이 잡혔다. 자민당 정권을 유지해주었던 두 버팀목이 무너져 내렸는데도 자민당은 변화라는 시대를 읽는 능력을 기르지 않고,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의원 자리를 물러주는 세습 정치로 자기들만의 정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치기득권을 만든 자민당은 관료권력과 경제권력과 결탁하면서 '부자정권'을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일본 대다수 서민들은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 비정규직으로 인하여 삶을 갈수록 팍팍해졌다. 자민당은 이들을 외면했고, 돌볼 능력마저 없었다. 54년을 지지해주었던 일본 시민들이 '부자정권'인 자민당 정권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민당 정권을 뒤 따라가는 정권이 있으니 대한민국 이명박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은 시작부터 '부자감세'였다. 부자감세라는 거센 비판을 받자 올해부터는 '서민행보'를 하고 있지만 진짜 서민인 '용산철거민'과 '쌍용자동차' '비정규직법 개정'에서 보여주듯이 껍데기만 서민일뿐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서민을 위한 경제 정책과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복지 정책을 내놓지 않고 말로만 하는 서민정책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4대강 삽질 사업에 들어갈 사업비는 한 푼도 깎을 마음이 없어면서 서민을 위한 재정에는 인색한 정권이 어떻게 서민행보를 주장하고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일본 민주당은 그 동안 미국과 관계에서도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미일관계가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자민당 정권이 54년 동안 유지해왔던 친미 일변도 외교 정책에서 적지않은 변화가 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일관계 역시 자민당이 추진해온 제재일변도에서 어느 정도는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한미동맹을 유난히 강조하는 정권이다. 일본 민주당 집권으로 동북아관계가 변화에 접어들었는데도 한미동맹만 강조하다가는 동북아에서 외톨이 신세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냉전정권 · 부자정권 · 기득권정권이었던 일본 자민당 정권이 54년 만에 무너졌다. 시대 변화와 특정 세력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권은 언젠가는 유권자들에게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일본 자민당 정권 붕괴에서 확인할 수 있다. 54년 일본 자민당 정권 붕괴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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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 "아빠 내 자전거도 고장났어요" | My Story 2009-08-2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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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서헌이는 자전거 때문에 불만이 많습니다. 오빠와 동생 막둥이는 자전거가 있는데 자기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 차별은 아닙니다. 큰 아들 자전거는 울산 외사촌 형이 타던 것이고, 막둥이 자전거는 6살 때 선교원 선생님이 준 중고 자전거입니다.

 

자전거가 타고 싶어도 오빠와 동생은 자기 것이라고 주지 않습니다. 번갈아 가면서 타라고 해도 잠시뿐입니다. 사람은 셋, 자전거는 둘. 참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내가 타는 어른 자전거가 있었지만 아직 타기는 힘듭니다.

 

"아빠, 나도 자전거 타고 싶어요?"
"오빠 자전거 타면 되잖아."

"오빠가 안 주잖아요. 체헌이도 자기만 타요."

"그럼 아빠가 자전거 하나 살줄까."

"정말이예요. 아빠 진짜 살 주실거예요?"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며칠 전 '00마트'에서 자전거 할인 행사를 하고 있는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에게 서헌이에게 자전거를 사 주자고 말하니 아내는 반대합니다. 중고 자전거를 사주면 될 것인데 굳이 새 자전거를 사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딸과 약속을 했는데 아빠 체면이 있지 눈 딱 감고 새 자전거 사주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다들 마트로 갔습니다. 옆에 있던 막둥이가 눈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전거 한 번, 누나 새 자전거 한 번. 아무리 봐도 자기 자전거는 아닙니다. 4년 전 선교원 선생님이 선교원 마당에 굴러 다니던 자전거를 주신 것은 고맙지만 이제 이 자전거에서 벗어나고 싶은 얼굴입니다.

 

  
막둥이가 4년 동안 탔던 자전거. 이제 역사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빠, 내 자전거 고장났어요."
"뭐 너 자전거가 고장났다고. 방금 집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왔잖아."

"아니예요 브레이크도 잘 안잡히고, 자전거 세우는 받침대도 없잖아요."

 

사실 맞습니다. 자전거 세우는 받침대도 없고, 5∼6살 짜리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라 막둥이도 지금 자전거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누나 자전거와 자기 자전거를 번갈아가면서 보는 막둥이를 보면서 마음을 한 번도 먹었습니다. 30∼40% 할인 행사를 하니 이번에 조금도 돈을 주고 막둥이 자전거까지 구입해기로 했습니다.

 

큰 아이는 약간 불만이지만 외사촌 형에게 받은 자전거가 탈만 하고, 새학기를 맞아 엄마가 가방을 사주었기 때문에 새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새 자전거를 산 기념으로 남강 둔치 자전거 길에 가서 시승을 하기로 했습니다. 남강 둔치에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코스모스를 보니 가을이라는 느낌입니다.

 

  
남강둔치에 핀 코스모스

 

남강 둔치 자전거 길에서 시승식을 하기 전에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막둥이입니다. 헌 자전거를 뒤로하고 이제 새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리는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새 자전거를 산 기념으로 남강 둔치 자전거 길에서 시승식을 하기 전. 막둥이, 딸 서헌, 큰 아들 인헌, 아내
 

"아빠, 내가 제일 먼저 자전거 타고 달릴 것이니 사진 찍어 주세요."

"막둥이 새 자전거 잘 탈 수 있겠어?"

"탈 수 있어요. 선교원에서 받은 자전거로 연습했잖아요,"

"아무래도 자전거가 너보다 더 커서 발이 페달에 닿이 않을 것 같다."

"아니 닿아요. 닿을 수 있어요."

"발이 닿아도 발에 힘이 없어 앞으로 나가기 힘들 것 같다."

 

 

키가 작아 안장을 가장 낮게 해도 패달에 발이 겨우 닿았습니다. 다리에 힘도 없어 힘차게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엄마가 뒤에서 잡아 주고 겨우 올랐습니다. 흔들흔들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했지만 중심을 잡았습니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하니 그냥 앞으로 달립니다. 천천히 가라고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자전거 길이고, 오늘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 부딪칠 염려가 없었습니다.

 

오빠와 동생과는 달리 자기 자전거를 새 자전거로 산 딸 아이는 싱글벙글입니다. 그 동안 자전거가 없어 만날 불만이었는데 이제 자전거가 생겼으니, 그것도 새 자전거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딸 서헌이가 새 자전거를 타면서 기뻐하고 있다.

"아빠, 고마워요. 자전거 사주셔서."

"자전거가 있으니 좋아."
"얼마나 좋은데요. 재미있고 신나요. 오빠하고, 체헌이는 자기들만 타고 나는 잘 안 태워주었는데 이제 내 자전거가 있으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예요."

 

아내와 큰 아이가 뒤 따라오면서 저 멀리 달아나버린 막둥이와 딸 서헌이를 따라가기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생각보다 막둥이와 딸 아이가 자전거를 잘 탑니다. 남강 둔치 자전거 길은 우리 가족이 새 자전거 시승을 하는데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간혹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토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 쉽게 시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큰 아들. 두 사람은 헌 자전거로 큰 아들은 불만이 많다

 

새 자전거 시승식을 신나게 하고 힘이 들었는지 그만 자전거 길에 앉았습니다. 막둥이도, 딸도, 큰 아들도 지쳤습니다. 집에서 남강 둔치까지 자전거로 5분 거리밖에 안 되는데 온 가족이 둔치에서 자전거를 탄 일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는 자주 자전거를 타야겠습니다. 막둥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밥고 먹고 양치질 하고 나서 또 자전거를 타겠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오래타는 것도 좋지만 쉬는 일도 중요함

 

"아빠 저녁 먹고, 양치칠 하고 나서 자전거 타면 안 돼?"
"오늘 많이 놀았잖아. 너 방학 언제 끝나지."

"3일 남았어요."
"숙제는 다 했어? 방학 때 너 노는 것밖에 한 일이 없잖아."

"공부했어요. 숙제도 했고."

"오늘은 안 돼. 씻고 나서 책 한 권 읽고 잠자야지."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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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35) |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2009-08-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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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5주일


96문: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97문: 그렇다면 어떤 형상도 만들면 안 됩니까?


  답: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고

         표현해서도 안 됩니다.

      피조물은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에 경배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형상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일은 금하셨습니다.


98문: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평신도를 위한 책”으로서

      형상들을 허용해서도 안 됩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 못하는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강설을 통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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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마지막까지 노무현 모욕 | 耽讀 쓴 기사 2009-08-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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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제보 취재로 단독 보도한 "노무현 국민장은 이명박의 실수" 기사는 충격 그 자체다.  "노무현 국민장은 이명박의 실수"라는 기사 제목만 읽었을 때는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지 않았다고 비판한 줄 알았다.

 

그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아 입에 담기조차 힘든 독설로 비난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을 했을 때는 '화해'를 국장 기간에는 '조기'까지 게양하고,  YS 삶도 스러져가는 이 때 그래도 한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바쳤던 것을 기억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가면서 살갗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경악했다. 오마이뉴스는 "노무현의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치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한 것이었다"고 잘라 말했다며, YS는 "국민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도 충분했다"고 덧붙였다고 보도했다.

 

알듯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일부 노사모를 비롯한 친노세력 중에는 국민장을 반대하고 가족장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수 백만 명의 추모 물결과 애도 속에 국민장으로 결정되었고, 온 시민들이 마지막 가는 노 전 대통령을 눈물로 보냈다. 이런 국민장은 김구 선생 이후 처음이었고, 더 큰 국민장이었다. 앞으로도 이같은 국민장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YS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YS 발언 속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장으로 장례식을 치를 자격이 없다는 뜻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노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자격이 없는가? 아니다. 국민장이 아니라 '국장'으로도 치를 자격이 있는 분이었다. 국장도 가능했던 분을 가족장으로 치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또 YS는 이어 "내가 발탁해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그는 내게 빚이 있는데, 이렇게 돼 버려서 조금 실망했다"며 "나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헌화할 꽃을 그냥 던져버리고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그를 한 번도 찍지 않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임했다는 것 자체에 분노했다. IMF를 덜먹이지 않더라도 이것은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다. 나라 경제를 거들 낸 사람, 남북관계를 전임 노태우 정부보다 더 냉전으로 몰아간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YS 자신이 선택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YS가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가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따르지 않았다면 노 전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군사 쿠데타 세력과 손을 잡았다. 이유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다. 민주주의가 목적이 아니라 대통령이 수단이 되어버렸기에 쿠데타 세력과도 손을 잡았던 장본인이 김영삼이다.

 

그것을 알았던 노무현은 김영삼을 따르지 않았다. 지금도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빚을 졌다고, 진짜 빚을 진 사람은 김영삼 자신다. 누구에게 민주주의에게. 김영삼이 민주주의 앞에 사죄는 못할 망정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에 꽃을 던졌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배반한 자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에 헌화할 꽃을 던졌다고" 이것은 단순히 노무현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다시 모욕한 것이다.

수구세력이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 가는 길까지 모욕과 조롱, 온갖 완악한 말로 비난한 것과 똑 같다.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에 헌화할 꽃을 그냥 던져버리고 왔다고 말한 것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말로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포털 야후 누리꾼 'momilkuk'은 "인터뷰 할 곳이 얼마나 없었으면 일본 극우지에 기어이 지면을 장식했을까?"라고 묻고, "김영삼의 심리의 기저는 이렇다. 고 노무현은 김영삼의 3당 합당의 부당함에 몸소 대항했다. 그의 정직한 정치에 김영삼은 얼마나 쪽팔렸을까? 그후 내내 고 노무현을 비난었다. 김영삼의 악담은 그의 저급한 인격을 스스로 조롱한것이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자기 얼굴을 침을 뱉었다는 말이다.

 

경향신문 'lightwood'은 "이 세상에 가장 나쁜 것이 변절이다. 노무현은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김영삼이가 민주세력이라 잘못 알았을 뿐, 쿠데타정권·김종필·김영삼이 손잡을 줄은 꿈에서도 통탄할 변절이라"며 "김영삼은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비판했다.

 

YS는 민주주의와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한민국 앞에 사죄해야 한다. 자기 나라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에 꽃을 던져버렸다니 나라가 울고, 땅이 울고, 하늘이 울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났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그 자체가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 이런 사람이 다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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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세제 개편안 비전도 철학도 없다" | 耽讀 쓴 기사 2009-08-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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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2009년 세제개편안'에 대해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 놓고 차오르는 물을 사발로 퍼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비전도 철학도 없는 2009년 세제개편안'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먼저 "4대강 정비사업이다 뭐다 해서 재정지출을 천문학적 규모로 늘리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세금을 깎아주었으니 나라 살림에 큰 구멍이 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고 질타했다. 부자감세를 해놓고 4대강 때문에 재정을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재정위기가 닥치면 세수를 늘리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세수는 줄이면서 재정을 늘리는 재정 정책을 펴고 있으니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 논리이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재정건전성에 좋다고 해명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나라들이 그것 때문에 정책 수행에 얼마나 큰 제약을 받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며 "국가채무의 수준이 OECD 평균치를 훨씬 더 밑돈다는 사실이 방만한 재정 운영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해 건전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방만한 재정운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정부가 재정운영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여 '2009년 세제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이로 인한 세수 증가분이 앞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고 기회재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재정건정성을 키우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보수 언론이 세제개편안을 두고 "부자 증세로 세수 증대를 꾀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마지못해 몇 푼의 세금 더 내게 하면서 부자 증세라고 말하는 것은 낯 간지러운 일"이라고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자증세가 낯 간지러운 이유는 정부가 부자들에게도 세금 부담을 높였다면서 선전하고 있는 1억원 이상 사람의 소득세가 48만원 정도 늘어나지만 "2008년 세제개편안에 따라 세율이 2% 포인트 낮아진 것만으로도 이미 2백만원 가량의 세금이 절약된 상황이라"며 "세폭 4분의 1밖에 안 되는 세금부담 증가를 갖고 부자 증세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고하여 부자들도 세금이 늘어난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증대하여 우리 경제에 좋은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슨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이론을 모두 동원해 봐도 별다른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며 "소득세를 깎아주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깎아준 세금으로 소비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 예로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90%를 깎아주면 모를까? "35%를 33%로 낮춰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분발해 더 열심히 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고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감세는 아무 효과 없이 세수만 축내는 결과를 빚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했다. 이는 고소득층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재정 건전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볼 때도 2009년 세제개혁안 같은 땜질식 처방은 결코 만족스러운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는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 놓고 차오르는 물을 사발로 퍼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재정정책인 "감세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한 시대착오적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하여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자체에 대해서 비판했다.

 

세금은 적극 거두고, 재정은 4대강 정비사업 따위때문에 돈 보따리를 푸는 것을 보면서 "세수 감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돈을 쓰겠다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물었다.

 

만약 이렇게 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재정 건전성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애써 쌓아놓은 업적이라"며 "입만 열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사람조차 지난 두 정부가 재정 건전성만은 다치지 않았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여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남긴 재정 건전성 업적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도 역대 정부가 공들여 쌓아놓은 탑을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와 방만한 재정지출을 삼가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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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남북화해 의지 있나 | 耽讀 쓴 기사 2009-08-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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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그 선물은 남북화해다. 이명박 정부 1년 반 동안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은 없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평양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육신을 묻는 마지막 순간 북한 조문단 특사를 초청하여 이명박 정부와 만남을 성사시켰다.

 

꽁꽁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이제 봄날을 맞은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밤하늘에도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하지만 오늘 들려온 한 소식은 과연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지 의심을 사게 했다. 

 

24일 YTN은 "정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당국에 사전 신고 없이 북측에 부고를 보낸 김대중 평화센터에 '주의 조치'를 취했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밝혔습니다"고 보도했다. YTN은 통일부 당국자 말을 빌려 "김대중 평화센터가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에 김 전 대통령 부고를 보낸 것은 남북교류협력법상 사전 신고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사전 신고가 없었다" 보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끝나자마자 이런 조치를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부고를 그럼 통일부가 보냈는가? 통일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업적을 알았다면 김대중 평화센터가 보내기 전에 먼저 보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남북관계를 비추어 통일부가 직접 보낼 수 없었다면 김대중 평화센터 측에 먼저 부고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타진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의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남북화해를 바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 유지를 받들자고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반응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통일부는 또 "김대중 평화센터측이 북에 부고를 보낸 뒤 사후에 신고를 했고 재발 방지를 다짐한 만큼 법적으로 더이상 문제삼지 않고 주의 조치에 그쳤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미적거린다고 해도 통일부만은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후 보고를 했기 때문에 주의 조치에 그쳤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다음 누리꾼 '소천사미카엘'은 "김대중 평화센터에서 부고 보내는 동안 정부에서는 뭐하고 있었냐?"고 따졌다. 정부가 할 일을 김대중 평화센터가 했는데 문제 삼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덴찌'는 "누가 누굴 주의한단 말인가" 반문 하면서 "주의를 받아야 할 정부가 주의를 주는 기상천외한 일일세 고마워해라.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북측과 접촉을 주선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발 딴지 좀 부리지 말라"고 통일부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 육신을 묻으면서까지 성사시킨 남북관계 회복을 통일부가 발로 차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북은 그 동안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르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통일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통일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안 다면 다시는 이런 일을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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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뜻 받들자고? 언론악법 폐기하고 남북대화 나서라 | 耽讀 쓴 기사 2009-08-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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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기간과 이후 정치권에서는 '화합'과 '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많이 쓰고 있다. 이 대통령은 24일 22차 라디오 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상과 빈소도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면서 "이 역사적 장면으로부터 화합과 통합이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임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우리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을 친구로 삼기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관장회의에서 9월 정기 국회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이 주는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정치 속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살리고 수행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도 '화해와 통합', '남북화해'라는 용어를 쓰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을 받들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한나라당 한 목소리로 화합과 통합, 남북화해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지난 1년 반 동안 겪었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의장, 한나라당은 말로만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벌인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어떤 반성도 찾을 수 없다. 김형오 의장은 정기 국회가 정상적으로 개회되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이라고 했다.

 

김형오 의장은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 자유가 명백하게 침해당할 수 있는 언론악법을 직권상정했다. 다수결 원칙과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했지만 국민 60%이상은 한나라당이 상정한 미디어법을 반대했다. 국민의 뜻을 외면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국민의 뜻만 무시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일로 예정됐던 언론관련법 강행처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사건 첫 평의가 무산되었는데 이유는 헌재가 피청구인인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야권의 심판 청구 취지에 대응하는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답변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헌재가 요구한 답변서까지 제출을 미루었다.

 

이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인가? 묻고 싶다.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난 1년 반 동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스러져가는 마지막 육신을 일으키면서까지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독재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이명박 정부는 집회의 자유와 말하는 자유,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는 자유를 빼앗았다. 그리고 언론악법을 직권상정하여 날치기 처리했다. 날치기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헌재 판단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김형오 의장이 정기국회 개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이니 받들자고 말하려면 언론악법 날치기 처리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

 

김형오 의장 발언에 대해 포털 다음 누리꾼 반응 차갑다. '물빛바다' 는 "DJ의 뜻? DJ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국민들 걱정. 민주주의 걱정뿐이였다. 감히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자가 DJ를 욕보이다니.뻔뻔하다 미디어법 직권상정쇼하면서 국민들을 더 이상 욕보이지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앙앙'도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면그것은 악의편 이라는 것 아닌가요? 여기서 악은 국민을 외면하고 자기 이득만 챙기는 한나라당을 이야기 하는것 같은데. 어디서 고인의 뜻을 왜곡하는 것인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또 헛소리 하는겁니까? 부끄러운줄 좀 아세요"라고 비판했다.

 

어제 서울 시청 광장에서 이희호 여사도 용서 화합 이전에 권력에의 회유에 끝까지 넘어가지 않고 신념을 지켜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념과 삶의 철학을 강조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은 껍데기 용서와 화합이 아닌 바로 민주주의가 바로 서는 일이다.

 

한나라당이 오래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인 '남북화해'를 입에 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명박 정부는 미적거리고 있다. 북한은 대담한 행보를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손을 내밀까 말까?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과 면담을 가졌지만 청와대는 처음에 조문간 성격을 '사설 조문단'으로 평가절하했다. 김정일 위원장 유일지배체제인 북한 체제상 김정일 위원장이 보내는 조문단이라면 사설 조문단이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을 청와대 관계자가 '사설 조문단'으로 규정해버렸는데 이것을 알고 한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 둘 다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뜻을 받들어 화해와 통합으로 가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언론악법을 날치기 처리한 것을 시민과 야당 앞에 사과하고, 폐기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그토록 외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뜻을 받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에 미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사설 조문단같은 발언은 더 이상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며, 당국자간 회담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북한도 특사를 파견했듯이 이제 이명박 정부도 특사를 파견하여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을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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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는 또 다른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 耽讀 쓴 기사 2009-08-2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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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가 7전 8기 끝에 하늘을 날았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나로호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분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나로호를 보면서 왜 두 분 대통령을 떠올리지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로호 개발사업은 2002년 8월 시작됐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2004년 10월 러시아 후르니체프사와 발사체 시스템 협력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나로호 개발 사업을 착수한 분이고, 노 전 대통령은 나로호 사업을 본궤도에 올린 분이기에 87일을 간격으로 삶을 놓은 두 분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두 분이 살아계셨더라면 7전 8기 역경을 딛고 하늘로 솟아 오르는 나로호를 보면서 얼마나 허뭇했을까?

 

나로호 발사 성공에 대해 언론들은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쏘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시민들도 환호했다. 나로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큰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로호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쏘는 우주발사체라고 해요."
"너 우주발사체가 무엇인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아빠는 알아요."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로켓이라는 것 정도 밖에 몰라?"

"1단 로켓과 2단 로켓이 언제 분리돼요?"

"아빠 잘 모르는 것 묻지 말고, 나로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니? 너도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 없어."
"나는 솔직히 우주선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래도 하늘을 날아오르는 나로호 처럼 너는 더 높이 생각하고, 너 넓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너 나로호를 어느 대통령때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때인 2002년 8월이야, 그리고 나로호 사업을 본궤도에 올린 분은 노무현 대통령이고. 두 분은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나로호 같은 우주 개발 사업도 열심히 한 분들이다."

 

나로호 발사 성공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뛰어와서 말했다,

 

"아빠!"

"왜 그래 또 무슨 일이 났어. 네가 소리지르면서 나에게 오면 겁난다다. 겁나."

"나로호가 발사에 실패했대요"
"뭐라고? 너 잘못 본 것 아니야, 방금 전에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아빠하고 같이 봤잖아."
"그런데 실패했대요."

 

나로호는 이륙 9분 뒤 고도 306㎞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와 분리됐어야 했지만, 이보다 예정보다 36㎞ 높은 고도 342㎞에서 분리된 것으로 전해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잠시 멍했다. 방금까지 하늘을 향해 오르는 나로호를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로호는 이렇게 또 다른 역경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궤도진입에 실패했다고 나로호 모든 것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또 다른 도전을 하면서 역사는 진보한다. 오늘 우리는 눈으로 나로호가 성공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저 높은 우주공간에서는 실패했다는 소식을 귀로 들었다.

 

나로호 개발을 시작하고, 본궤도에 올린 두 분이 남기고 간 또 다른 업적이 오늘 완전히 성공했다면 더 기뻐겠지만 두 분이 남기고간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역설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에 말했다.

 

우리 삶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고, 우리가 가는 길은 온갖 난관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눈으로 분명 나로호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우리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저 우주 공간에서는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내일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도 이런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과 각성하는 시민으로 살아갈 때만이 민주주의는 지킬 수 있다. 나로호는 또 다른 도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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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전 청동기 사람들과 동무하다 | My Story 2009-08-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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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대평면은 우리나라 최대 청동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된 곳입니다. 청동기 시대 400동이 넘는 집터와 6곳의 환호, 4천제곱미터가 넘는 밭이 발굴되었습니다. 하지만 남강댐 건설과 증축으로 수몰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청동기 유적이 수몰되자 진주시는 2005년부터 청동기박물관을 짖기 시작하여 지난 6월 11일 개관했습니다.

 

개학을 6일 앞두고 조카들이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조카들과 함께 청동기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청동기 박물관은 평일에는 600-700명, 주말은 3,000명이 찾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청동기 박물관에는 BC1500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과 무덤, 솟대, 밭을 만들어 놓아 3500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대평마을 전경
ⓒ 김동수
 

 

움집을 보니 어릴 적 초가집이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초가집은 민속촌에서는 볼 수 있지만 움집은 보기 힘듭니다. 막둥이 녀석이 움집 앞에서 주인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빠! 이 집 이름이 무엇이에요?"

"움집이냐."
"아빠도 이런 집에서 살아봤어요?"

"아빠는 초가집에서는 살았지만 움집에서는 살아보지 못했어."

"아빠! 내가 이 집 주인이다. 사진 한 번 찍어주세요."

 

 

  
청동기시대 대평마을에 있었던 움집 앞에서 주인 행사를 하고 있는 막둥이
ⓒ 김동수

 

움집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는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3500년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놓아 입체감을 들게했습니다.

 

"아빠 여기 들어와보세요. 유리예요. 유리."

"정말 신기하다. 막둥아 옛날 사람들도 유리를 만들었을까?"
"옛날 사람들도 유리를 만들었으니, 여기 유리가 있잖아요."
"그래 3500년전 사람들도 유리를 만들었으니 지금 이 바닥이 유리다."

 

한참 웃었습니다.

 

  
대평마을 움집 안. 유리바닥을 만들오 놓아 청동기 시대 움집 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 김동수

 

  
움집 안 모습
ⓒ 김동수

천장을 보면서 비가 많이 오면 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초가집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초가집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비가 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 콘리크트는 방수를 잘못하면 비가 샙니다. 조상들 지혜를 초가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움집도 비가 새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마냥 신기합니다. 움집을 태어나서 처음보니 신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헌아 너도 움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 아빠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초가집에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파트보다 훨씬 더 시원하고, 따뜻했다. 지금은 에어컨이 없으면 살기 힘들잖아."

 

"잘 모르겠어요. 안에 들어와보니까. 많이 불편할 것같아요. 진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어요?"

 

"아마 그럴 거야. 청동기 시대를 공부한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무조건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밥하는 체험을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막둥이와 딸, 조카가 밥을 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3500년 전으로 다들 돌아갔습니다. 그 때는 논농사를 짓지 않았는데 무엇을 해 먹고 살았을까요. 대평마을에도 논이 아니라 밭이 발견되었습니다. 옥수수와 조 따위로 밥을 해 먹었을까요? 딸이 물었습니다.

 

"3500년 전 사람들은 밥을 무엇으로 해먹어요?"

"아빠도 잘 모르겠다. 쌀?"

"아빠는 그것도 몰라요. 쌀이 없었으면 옥수수와 조로 밥을 해먹었을 거예요."

 

  
움집 안에서 아이들이 청동기시대 조상들이 밥을 어떻게 해먹었는지 체험을 하고 있다.
ⓒ 김동수

 

움집에 나와 보니 대평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맞아 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야외 아궁이 밥을 하고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아줌마, 아저씨 무엇하세요."
"응,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단다."

"아줌마, 우리는 새참으로 과자와 피자, 햄버거를 먹을 때가 있어요? 아줌마는 아들과 딸에게 새참으로 무엇을 주세요."
"피자? 햄버거? 과자? 그것이 무엇인데. 우리는 아침과 점심, 저녁에 밥을 해먹어."

 

3500년 전 아줌마와 3500년 후 아이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3500년 전 아줌마가 피자와 과자를 알 수 없듯이 아이들도 3500년 전 아이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대평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우리 집 아이 셋과 조카 셋 30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함께 함
ⓒ 김동수

 

  
대평마을 사람들과 함께 찰각
ⓒ 김동수

 

대평마을을 지나니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우는 솟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솟대
ⓒ 김동수
 

"아빠 저기 세워져 있는 막대기가 무엇이예요. 막대기 위에 새가 있어요"
"응 솟대라고 하는 거다."

"솟대를 왜 세워요?"

"솟대는 하나만 세우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여러개를 세웠구나. 옛날 사람들은 장승·선돌·탑·신목 따위와 함께 세웠는데. 오리를 맨 꼭대기 달았다. 오리가 물새잖아, 자기 마을을 지켜주고, 풍년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 아빠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 사람들은 다들 하늘과 물에 대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자기 자신,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생각했던 것같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그것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솟대 위 새들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믿었던 신앙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3500년 전 사람들이 가졌던 자연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금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다면 삽질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하지 않겠지요.

 

솟대 앞에는 무덤군이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이 무덤군은 대평면에서 발견된 무덤군이 아니라 경남 진주시 가호동에서 발견된 무덤군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대평마을에서 발굴된 무덤들
ⓒ 김동수

무덤은 보는 것만으로 삶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훨씬 삶을 살아가는 데 유익합니다.

 

"아빠, 왜 무덤을 돌로 만들었어요?"

"여기 큰 돌을 고인돌이라고 하는데. 고인들은 높은 자리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 무덤이야."
"여기 넓적한 돌무덤도 있어요?"
"그것은 석관묘 또는 돌널무덤이라고 불러. 돌널무덤은 시베리아, 중국의 동북지방, 우리나라,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데 아빠도 더 이상은 모르겠다."

"인헌이 너 더 배우고 싶으면 고고학 공부해라."
"고고학이 무엇이에요."
"응 바로 이런 것 공부하는 것다.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만들었고, 무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부하는 학문을 고고학이라고 해. 어때 공부하고 싶어?"

 

대평에는 옥도 유명합니다. 옥이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지배자들 장신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진주청동기 박물관에는 이런 유적뿐만 아니라 입체상영관도 있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3500년 전 사람들과 함께 동무하기 위해 경남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진주청동기박물관을 견학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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