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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양심이 고백한 '양심 고백서' | 사회 2010-02-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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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저
사회평론 | 201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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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배신자'라 했다. 너도 그곳에서 있으면서 수십억 벌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양심고백' 운운하느냐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그를 진실을 알리는 양심고백은 완전무결한 인격을 가진 이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리의  공범이 하는 양심고백이라는 이유로 진정성과 진실성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반박한다.

 

그렇다. 원래 불의는 너도 불의한 양심을 가졌으면서 무슨 진실을 알리느냐고 비웃는다. 그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다. 배신자란 낙인 찍히고, 불의한 양심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죽지 않을 권력'이라는 거대한 불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불의한 양심이 정의로운 양심으로 거듭난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이처럼 정의로운 양심이 진실을 위해 거대한 불의를 낱낱이 파헤친 양심고백서다. 양심고백서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가 더 대접받고,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을 자신들 사명으로 여기는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들 모습은 그 동안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끊임없이 들었던 이 말에 우리가 세뇌 당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희생을 치르고 조직에 기여한 사람과 성과를 챙기는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본에서 일해본 사람은 그 이유를 안다. 삼성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의 위상을 높인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 이재용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비자금 기술자가 더 대접받고, 회장님을 보위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길 때 밤을 새워가면서 오늘의 삼성이 있게한 반도체 연구원들과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남녀 생산직 직원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삼성의 진짜 모습이라는 양심고백서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회장을 보위하고, 회장이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물도 마시지 않는 구조에서 이건희 전 회장은 "죽지 않을 권력"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삼성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권력을 쥔 자들, 죄를 단죄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그래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비자금리 폭로되어 '조준웅 특검'까지 만들었지만 "삼성 특별변호사"라고 할 정도로 진실을 외면했다. 조준웅 특검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평가는 냉혹했다.

 

"결국 이번 특검의 최대 성과는 이건희 일가가 훔친 돈, 즉 장물을 피해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훔친 자에게 갖도록 한 것이다. 조준웅 특검은 삼성생명 차명지분을 모두 이건희의 몫으로 인정해줬는데, 이는 이건희에게 횡재나 다름없다."

 

조준웅 특검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2심재판 재판부는 비리를 저지른 재벌들에게 "당신들도 처벌 받고 싶지 않으면, 평소 삼성처럼 법관들을 관리해 주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 됐다. 2심 판결을 놓고 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전 국민의 영혼을 오염시킨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고 김용철 변호사는 말했다.

 

오염된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야 할 사명은 가진 재판부가 오히려 영혼을 오염시켰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김용철은 "죽은 권력이 아니라 죽지 않을 권력도 수사하라"는 것이 김용철 호소다. 그 중심에는 바로 언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양심고백을 위해 김용철 변호사가 문을 두드렸을 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 비리를 파헤치는 일은 '진실'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만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학연, 지연 등 인맥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고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는 물론 학계와 문화계 인맥까지 관리하는 삼성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는 이들은 그래서 많지 않다."

 

불법을 단죄할 법조계와 더 엄격한 법을 만들어야 할 정치권,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언론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변호하는 이 어처구니 현실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김용철 변호사의 탄식을 들어보자.

 

"삼성 비자금 관리를 맡았던 한 사람에게 만약 검찰이 삼성그룹 본관을 압수수색하면 어떻게 할 것인 묻자 그는 '삼성 본관에 압수수색이 들어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은 '만약 들어오면 (칼로)찌르고 도망가죠 뭐' 말문이 막혔다."

 

법과 정의보다는 회장을 위해 충성하는 이 거짓된 모습을 보고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법과 질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시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용철 변호사를 향해 '배신자'라, '반기업인'이라 낙인 찍고 있다. 그러므러로 우리가 나서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언론권력이 외면하지만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예스24>와 <알라딘>은 베스트셀러 1위, 인터넷<교보문고>는 2위다. 김용철 변호사와 출판사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책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을. 그는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 바람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스24> 'Jeter '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리뷰에서 "자본주의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며 "우리는 후손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은 부모 세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면서 우리는 정말 부끄럽지 않은 부모들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삼성과 이 땅의 권력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한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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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역사,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 인물 2010-02-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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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히틀러 세트

이언 커쇼 저/이희재 역
교양인 |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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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재자 반열에 오른 이들은 많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아돌프 히틀러만큼 20세기 독재자로 자리매김한 이는 없다. 히틀러는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았고,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을 갈가리 찢기게 하여 독일을 넘어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례가 없었고 20세기 대학살 주모자였던 그는 책을 좋아했다. 베토벤, 브루크너, 그리고 평생 음악 이상으로 삼았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좋아했으며 한 때는 위대한 미술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스무네 살이 될 때까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뾰족한 계획도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떠돌고 있던" 별 볼일 없이 산 '낙오자'에 불과했다.

 

책이 동무였고, 바로크를 사랑하고, 미술가가 되기를 바랐으며, 별 볼 일 없이 젊음을 보냈던 '낙오자'가 도대체 어떻게 독일에서 권력을 휘어잡고 20세기 세계사에서 수천 만 명 인민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특히 그의 조국 독일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첫 손가락에 꼽혀도 토를 달 사람을 없는 이마누엘 칸트, <파우스트>를 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긴 피히테를 선조로 두었다. 이런 정신문명을 가진 독일인들이 어떻게 이 독재자를 '하이 히틀러'라고 부르면서 충성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영국 세필드 대학의 현대사 교수이자 구조주의 역사학자인 이언 커쇼가 30여년에 걸친 히틀러와 제3제국 연구 성과를 종합해 펴낸 <히틀러 1·2>에서 찾을 수 있다.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히틀러와 나치 체제를 분석한 전기 '히틀러' 1·2권 합쳐-영어판은 총4권-2236쪽이 넘는 분량이라, 처음엔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물론 책 분량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언 커쇼는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한 연구를 통해 <히틀러1·2>를 썼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히틀러 연구서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2000년 최고의 역사 저작에 수여하는 울프슨 역사상을 수상했다.

 

1권은 1889년 히틀러의 출생부터 위대한 예술가를 꿈꾼 청년 시절,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오른 후 재무장을 선언, 1936년 라인란트 점령을 계기로 독일제국의 위대한 부활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까지를 다루었다. 

 

커쇼는 히틀러를 '개인'으로 보기보다 당시 독일이라는 '사회'가 함께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외곬, 확고부동, 모든 장애물을 쓸어버리는 무자비함, 영특한 냉소주의도"도 한 몫했지만 "히틀러의 권력은 사실 사회에 더 깊은 뿌리를 두었다, 그것은 히틀러를 추종한 사람들이 히틀러에게 쏟아 부은 사회적 기대와 욕망의 산물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명의 뿌리를 뒤흔든 나치의 공격은 20세기를 규정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히틀러는 그 공격의 지원지였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그 공격의 주창자였지 일차 원인은 아니었다."(1권 36쪽).

 

즉 히틀러가 독재자가 된 것은 단순히 히틀러 개인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가 바란 산물이라는 말이다. 독일 인민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전쟁, 혁명, 민족적 수모, 볼셰비즘에 대한 공포는 워낙 광범위하게 독일 국민을 뒤흔들었고, 히틀러는 그런 상황을 발판으로 삼았다. 독일의 서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울분과 고정관념을 당대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잘 대변했다. 더 나은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어느 정치인보다도 잘 심어주었다."(1권 603쪽)

 

한 때는 위대했지만 이제는 쇠락하여 초라해진 독일 제국, 독일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히틀러의 환상은 독일 인민들을 감동시켰고, 지지자들은 점점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2권은 히틀러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가 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히틀러가 독일을 전쟁으로 몰고 가 결국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9년 뒤인 1945년 베를린의 어두운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는 것까지 다루었다. 커쇼는 히틀러를 악마로 만들어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철저히 객관적이다.

 

"나는 역사적 인물에 드러난 악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내가 하려는 것은 히틀러가 도대체 어떻게 한 사회를 휘어잡았기에 그 사회가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도 히틀러를 지지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2권 8쪽)

 

위대한 독일 제국 부활을 선언하고,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이자 인민들은 그를 지지했고, 인민들이 자신을 지지하자 히틀러를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타협은 없었고, 독일제국이 자기 손에 달렸다고 확신했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변수로서 나 같은 사람은 유일무이하다. 군인이나 민간인 중 누구도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나는 지력과 결단의 힘을 믿는다. 전쟁은 언제나 적을 절멸시켜야 한다. 이걸 외면하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타협은 없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나는 쳐들어가서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운명이 오직 나한테 달렸다."(2권 354쪽)

 

오직 자신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이 연설, 선동성을 통해 참모들과 독일인민들은 그를 숭배했고, 히틀러 지배력은 극지방의 빙하처럼 견고해져 극단의 길로 치닫게 된다. 이 신념은 결국 패배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커쇼는 말한다.

 

이어 커쇼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권력은 허깨비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굳게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도자 숭배는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을 휘어잡았다. 더불어 알아주는 자리에 있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까지도 속으로는 비판을 하고 우습게 볼지언정, 지도자 숭배를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하다 보니, 히틀러의 권력이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으로 굳게된 것이다.

 

자연히 히틀러는 누구한테도 견제받지 않았다. 파멸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렸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독일 인민을 비롯하여 독일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치정권에 희생됐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바가 거의 없는 히틀러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컸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나는 아버지는 존경했지만 어머니는 사랑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벙커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 사진을 품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만큼 다른 이들을 사랑했다면 20세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만약'은 공상일뿐 현실이 아니다.

 

이 책은 히틀러에게 사로잡힌 독일 사회와 유럽인들의 모습을 통해 결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히틀러 치하에서 벌어진 일은 현대 문명 자체의 소산이자 특성인가? 그런 참사의 가능성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는가? 히틀러와 그의 시대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1권 머리글에서 "히틀러의 유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그 유산에는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도 들어간다. 우리는 오직 역사를 통해서만 미래를 위해서 배울 수가 있다"고 적었다. 2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기 부담스럽다고 해도 한 번 도전해보자. 우린 히틀러를 악마로 비판만 하지 말고 그가 저지른 그런 참혹함이 다시는 우리에게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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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가슴으로 쓴 '고난의 역사' | 역사 2010-02-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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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저
한길사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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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분을 뵌 것은 딱 한 번이다. 1985년 봄쯤이었는데 경남 진주 어느 교회에서였다. 그 때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여든 다섯 몸으로 역사와 민중을 향한 열정만을 읽을 수 있었다.

 

씨알 함석헌 선생. 그가 세상을 떠난지 오늘(4일)로 21년이 되었다. 오래 전 읽었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 들었다. 이 책은 선생께서 1934-35년 동인지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과 해방 이후 쓴 글을 묶은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를 전공한 분도 아니다. 하지만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나온 우리 역사에 대한 통사(通史)다. 그리고 단순히 '역사'만 아니라 '사상'이 혼합된 사상사에 가깝다.

 

그가 <성서조선>에 연재할 당시는 일제식민지였다. 그러니 조선 역사에 대해 글을 쓴 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일제의 강압도 문제였지만 제대로 자료와 그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가 없었지만 그는 머리와 가슴으로 씨름하면서 글을 섰다고 했다.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도 아니지, 도서관도 참고서도 없는 시골인 오지이지, 자료라고는 중등학교 교과서와 보통 돌아다니는 몇 권의 참고서를 가지고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출판사리뷰)

 

가슴과 머리로 씨름하여 준비한 내용을 강연하고, 글로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 선생은 한국 역사를 '고난의 역사', 우리 민족을 '수난의 여왕'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난은 우리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무기력하게 고난 앞에 패배자로 남을 것이 아니라 이겨내 보다 높은 차원을 나아가 역사의 사명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난은 인생을 심화한다. 고난을 역사를 정화한다. 평면적이던 호호야(好好爺)도 이를 통하고 나면 입체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고, 더럽던 압박과 싸움의 역사도 눈물을 통하여 볼 때는 선으로 가는 힘씀이 아닌 것이 없다. 중국의 교만, 만주의 사나움, 일본의 영악, 러시아의 음흉이 다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면 언제 망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살고자 하기 때문이요, 살고자 함은 살아 있기 때문이요. 살아 있음은 살려 주시기 때문이다. 살려 두시는 것은 할 일이 있는 증거다. 우리의 맡은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고난의 초달(楚撻)을 견디어야 한다.

 

우리가 고난과 수난 앞에 패배자가 아니라 고난이라는 회초리를 이기고 남아가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뜻없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한 역사가 우리 앞에 있지만 역사가 실패한 이유는 사람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실패한 역사를 이겨내게 되면 역사는 무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뜻없이 끝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에는 허다한 실패가 있다. 실패가 허다하다기보다는 잘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저 실패로 그치는 실패는 아니다. 영원한 실패라는 것은 없다. 몇 번을 잘못하더라도 역사가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기 위하여 늘 다시 힘쓸 의무가 남아 있다. 다시 함이 삶이요, 역사요, 뜻이다. 열번 넘어지면 넘어지는 순간 열한번째로 일어나야 하는 책임이 이미 짊어지워진 것이다

 

그가 이 글을 썼을 때는 식민지배를 당한 지 25년이 지나고 있었다. 25년이면 패배주의가 그들을 지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말한다. 역사는 뜻없이 끝나지 않는다고. 실패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자에게 역사는 주어진다고. 열번 넘어지면 열한번째 일어나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고 말한다. 식민지 인민을 향한 그의 부르짖음은 울림이 되었을 것이다. 그 울림이 지금도 우리를 향하고 있다. 역사를 책임지는 것, 바로 그것은 인민인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명'이라고 한다.

 

고난의 역사라지만 그 역사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 없는 고난은 무엇이냐? 사실은의미 없이는 고난 조차도 없다. 죽음 뿐이지. 그러나 의미는 어디서 오나? 의미는 전체에 있다. 전체는 명한 것이다. 그 명은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사명 없이도 하는 고난, 그것이 바위가 무너짐이요. 중생이 넘어짐이다. 그러므로 사명하는 자각이야말로 재생의 원동력이다. 거의 쇠망하도록 자친 민족일수록 세계적 사명을 자각시킬 필요가 있다. 쇠망은 결국 정신적 쇠망이요, 정신은 결국 명이다.

 

우리가 주인이라고 한다. 인민이 주인요. 인민이 주인이라는 역사 의식을 가질 때만에 역사를 말할 수 있노라고 한다. 그런데 함석헌에게 '고난'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고난을 '양심'이라고 말한다. 역사의 사건이나 인물이 남긴 업적이 아니라 그들이 양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업적에 매몰되지 말고, 그들은 가졌던 양심 곧, 자유하는 정신을 가졌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함석헌의 시각이다.

 

어쩔 수 없이 내게 주어진 것이 이 하나밖에 없다. 이 마음이 자유하는 마음, 자유하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해야 된다. 이제라도 우리가 하려면 될 수 있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 빈 소리 하지 말고 공상하지 마라. 우리가 받은 유일한 역사적 유산은 이것뿐이다. 사실 어느 나라 무슨 문화도 복잡한 듯하지만 들추고 보면 수북한 껍질뿐이요, 마지막에 정말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자유하는 정신.

 

자유하는 정신을 가졌는가 당신은. 함석헌 다른 책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삽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역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마음이라야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고 했다. 생각하는 사람이 자유하는 정신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는 사람, 자유하는 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역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에 불과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함석헌은 씨알은 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소리를 내야 씨알이라고 했다. 속에 알이드는 것은 싹이 트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죽고 못하거든 여러분이 내라,  천천만만으로 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 자유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역사를 향해 말해야 한다. 그것이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사람들에게 던진 뜻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다. 대중이 스스로 하기로 깨는 시대다. 집권자가 잘하면 좋겠지만 못하는 경우는 민중 스스로가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해야 할 의무가 분명해질 것이요. 하자는 의지를 발동시키면 할 수 있는 높고 거룩한 사명이 저 위에서 손짓해 부르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 의무가 분명해지고 그 사명이 빛나게 되면 그 신념이 한층 더 높아지고 더 굳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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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