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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시대, 중세를 극복해야 | 역사 2013-04-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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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원종우 저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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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시작하기 전에 유럽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없애야 …2083은 이슬람 몰아내는 해다. 대화는 끝났다. 무장항쟁이다.…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이 무슬림을 구하기 위해 기독교인을 학살한 것이다."

테러범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테러 수시간 전 1500쪽에 이르는 '2083: 유럽 독립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시사토론 웹사이트(www.freak.no
)에 올린 글입니다. 브레이비크는 지난 2011년 7월 23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인근 우토야섬에서 발생한 청소년 캠프 총기테러를 자행해 98명을 숨지게 했습니다. 브레이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범인 신원이 완전히 밝혀지기 전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은 용의자를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과 관련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테러범은 '이슬람'...십자군은 '성전' 과연 그럴까?

왜 우리 언론들은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슬람을 의심할까요? 우리 언론들이 이슬람교에 대한 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외신 대부분이 서구 언론 시각을 그대로 보도하거나,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서구 시각으로 이슬람을 보는 것입니다.

'전쟁광'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은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이번 전쟁은 새로운 종류의 악(Evil)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테러를 응징하는 십자군 전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십자군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악을 응징한 전쟁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군이 악에 가까웠습니다.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광기에 휩싸여 살육을 일삼고 다녔다고 할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그들이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 끼친 폐해는 아주 컸고, 특히 '성스러운 군대', '신의 영광' 등의 거창하고도 숭고한 명분을 생각한다며 그 윤리적 타락 정도는 실로 비참한 것이다. 해방 전쟁, 성전 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모든 다른 전쟁처럼 십자군 원정도 힘에 중독되어 피를 탐닉하는 인간의 잔인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비극이었을 뿐이다." -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유럽편>

딴지관광청(현 노매드21)에 '파토의 유럽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약 5년 동안 연재한 글을 수정 보완한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원종우 지음 ㅣ 역사의아침 펴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관한 지식이 과연 진리일까?"라고 묻습니다.

특히 승자가 쓰는 역사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그들이 기록한 역사를 비판없이 받아 들이는 우리들 자세에 딴죽을 겁니다.

2년 전 이맘때입니다. 동네에 신혼부부가 '00못'가를 거닐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연못은 연꽃이 피면 굉장히 예쁜데, 우리 가족도 1년에 두 세번은 가는 곳이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흉흉한 소문이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신부가 윤간을 당해 숨졌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 흉흉한 소문을 들은 후 길을 거닐다가 외국인노동자를 보면 순간 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내 몸에 뿌리깊은 '인종주의'....

백인들이 황인종과 흑인종을 차별하는 것만 인종주의라고 생각했던 인종주의는 제 몸에도 배어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깜둥이", "냄새난다"같은 말을 쉽게 합니다. 중국 사람을 '떼놈', 일본 사람을 '쪽발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을 비하하기 까지 합니다. 이처럼 인종주의는 아주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한국인 사이에 통용되는 인간에 대한 상식을 이주 노동자들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돈 없고 힘없는데도 생김새와 말도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은 힘을 가진 고용주에게 무의식적인 폭압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 결과 이주 노동자들을 하등한 존재로 대하게 되고, 이런 관념은 그들의 잔인한 행위를 합리화 하면서 동물적 가학성마저 촉발시킨다. 이 시점에서 양심은 증발해버리고 일종의 자기최면 상태에 놓이는데 이것은 인종주의 전형적인 심리 유형이기도 하다."(본문에서)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노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원숭이'에 비유한다. 지은이는 이런 언행을 "인종주의 전향"이라며 "여기서 인종주의를 발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글을 쓴 사람 역시 자신이 인종주의 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종우 글을 읽어면서 내 몸 속에 배인 인종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말았습니다. 남탓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흰피부를 가진 백인과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을 쉽게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 마음은 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백인은 아무렇지 않는데, 흑인과 동남아 사람들은 왠지 꺼림칙합니다.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를 걷어낼 때만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국가는 여럿이고 민족은 다양하더라도 이제 세계는 여러 측면에서 하나가 되고 있다. '세계화'라는 표현은 자본의 탐욕을 대변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경제와 낯섦을 허물고 차이를 인종하고 받아들이면서 공존을 꾀한다는 의미에서 세계가 하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이것은 거창한 구호, 제도, 조약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작은 것에서부터 지각하고 실천할 때만 언젠가 세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지은 한비야 교장(세계시민학교)이 만든 '세계시민'이란 단어는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고, 수천개나 넘는 민족이 있습니다. 피부색깔이 다른 인종이 있습니다. 국적과 민족, 인종은 달라도 '시민'으로 하나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 속에는 인종주의를 자연스럽게 제거합니다.

'마녀사냥'시대, 중세를 극복해야....

지은이는 말합니다. 역사는 시간별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세시대를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십자군 전쟁은 '야만'입니다. 이와 함께 마녀사냥은 중세는 그리스·로마시대 정신문명을 퇴보시켰습니다. 마녀로 고발당한 이유를 보면 중세가 얼마나 정신문명 고갈시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큰소리로 웃는다. 전혀 웃지 않는다. 혼자 중얼거린다. 간질병이 있거나 사시다. 외모가 흉하다. 고양이를 키운다. 피부병이 있다. 몽유병이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고해를 하지 않는다. 낮에 잠을 잔다.(본문에서)

이게 중세였습니다. 하지만 중세 마녀사냥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 진단입니다. 예를 들면 1950년대 '매카시즘'과 1990년대 유고·터키·이라크·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인종분규도 "마녀사냥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빨갱이 사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술문명은 진보할지 몰라도, 정신문명은 퇴보와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할 때만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문명의 수준은 부, 과학기술, 법 제도 같은 표면적인 것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문명이 증오를 얼마나 통제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부의 재분배라든가 사회적 기회의 확보와 함께, 증오를 현명하게 통제하는 문명에서는 일상에서의 평화와 행복을 구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구성원 간의 미움이 만연된 사회는 제 아무리 국내 총생산량이 높다 한들 타의 모범이 될 수 없다.

중세는 과연 끝났는가. 십자군과 마녀사냥은 과거의 역사일 뿐인가. 나의 증오가 이데올로기, 신념으로 포장되어 미움과 폭력으로 발휘되는 일은 이제 다시 없을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이 던져줄 것이다. 이념이나 이론, 슬로건이나 명분이 아닌 삶 자체가 말이다(본문에서).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는 '좌절과 퇴보'를 통해 극복한다는 것이 지은이 생각입니다. 특히 '승자의 기록'인 역사는 '오류'일 수 있음을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오류를 이해할 때... 인종주의 극복할 수 있어

'인류의 오류'를 이해해야만 역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인종주의'와 '십자군 전쟁' 그리고 '마녀사냥'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 선이나 악이 아니며 단지 이익에 의해 선 또는 악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유럽편>이 독자에게 던진 주제입니다.

나는 유럽의 과거와 오늘을 통해 '이성을 통한 근대정신의 달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이성이란 차가운 논리나 계산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고, 인간을 인간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지성과 용기를 말한다. 또 악한 행동을 비판하고 응징하되,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들여다보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여러분도, 대한민국도, 다른 어떤 사람이나 나라보다 선하거나 훌륭하지 않다. 한계를 알고 역사와 사회의 교훈을 배워나갈 때, 진정 기본으로 복귀하고 순수함으로 회귀할 수 있는 지혜와 근대가 추구했던 이상에 하루하루 근접하는 삶의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중락) 스스로의 한계와 문제를 알면서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소신 껏 더 나은 생존이 길을 택하는 것, 그렇게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힘이고 용기이기 때문이다.(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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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특권은 늙어서 존경받는 것 | 에세이 2013-04-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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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가와기타 요시노리 저/이정환 역
예담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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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童顔) "나이든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을 때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들은 자신보고 '늙었다'는 말보다는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더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40대 중년이 20대 청년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면 포털 검색 상위에 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늙는다. '불로초'를 그토록 찾았던 진시황제도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마흔 살, "인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

사실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 늙음은 불행과 두려움이 아니라 즐겨야 한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 '마흔 살'을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말한 가와기타 요시노리가 쓴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에서 "긴 인생에서 나이 드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진짜 인생'을 시작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 예담

 

불혹을 8년째 살아가고 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천명'이 3년 앞으로 다가온 마흔여덟 살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녹록지 않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아이 셋을 낳았다. 자라는 아이들 보면서 마냥 즐거움만은 아니다. 아빠가 어디를 가나 따라다녔던 아이들은 이제 조금씩 멀어져간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는 이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 '허탈감'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라며 자책할 때도 있다. 지은이는 과거의 좋은 일만 기억하라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이란, 과거의 좋은 일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이란, 그 반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본문에서)

그렇다 과거를 돌아보면 분명 좋은 일과 기쁨을 줄 만한 일들이 있다. "과거를 다루는 정말 멋진 방법이 아닌가. 즐거운 일, 좋은 일만 기억하면서 살라"는 요시노리 말은 '난 불행하게만 살아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앞으로 삶을 불행하게 살지 않도록 하는 작은 조언이다.

부끄러워하는 삶... 늘그막에 존경받는 삶

아내에게 "나는 저렇게 늙으면 안 되는 데"라며 늘그막에 존경받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모든 사람을 자기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뜻이다. 이것이 상대방에게 존경을 받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인지도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는 기본 자세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본문에서)

그러면서 요시노리는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이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특권 중의 하나는 늙어서 존경받는 것"이라고 했다면서 "늙어서 존경받을 수 있는 인생이라면 정말 멋진 삶"이라고 말한다. 늙어서 존경받는 삶, 쉽지 않다.

 늙어 존경받는 삶, 쉽지 않다.
ⓒ 예담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로 뽑혔다가 낙마한 이들이 살아온 삶을 보면 '부끄러움'이 없다. 도덕성이 무너진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미안하다'도 겨우 한다.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대통령 부름에 처음부터 응하지 말아야 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도덕성과 불법이 드러나지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었다. 늙어 존경받기는 비판과 질타받는 인생살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장관은 장관답게 사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직함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탐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를 이용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를 지낸 이들이 '전관예우'로 살아가는 삶을 비판하는 이유다. 요시노리는 '직함' 자체를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직함' 악용하면... 조폭과 다름없어

이때 명심해야 할 점은, 이용한 간판이나 직함에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간판이나 직함에 얼룩을 묻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간판이나 직함에 얼룩을 묻히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겸허함을 잊지 말라는 것.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잊지 말자. 간판이나 직함은 겸허함을 갖춘 자제심이 뒷받침될 때 빛이 난다.(본문에서)

그러면서 "간판이나 직함을 내세워 거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하류인간이나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없다"고 경고한다. 직함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편법을 동원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 테니스장을 황금시간대인 매주 토요일 오전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18일 <오마이뉴스>"토요일 오전엔 나혼자"... 테니스장 독차지한 MB 참고)

만약 MB가 전직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토요일 오전은 5시간을 '나홀로' 테니스를 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행태가 "직함을 내세워 거만한 행동"을 한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하면 어떤 사람인지 요시노리는 "조폭이나 다를 게 없다"고 일갈했음을 이 전 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위공직자와 자본권력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직함을 악용하지 않고, 선하게 이용하면 분명 이 사회는 진보할 것이다.

 늙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멋지게 살자
ⓒ 예담

 


남을 비판하기 전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사리사욕을 위해 직함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존경받는 삶은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절반쯤 산 이맘때 정리해야 할 것이 많다.

"현명한 길을 택할 것인가, 어리석은 길을 택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한다."

청빈, 정말 외로울까? 동의하기 힘들어...

현명한 길을 택하는 방법으로 요시노리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인생 키워드 35가지'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물론 생각이 달라, 마음에 새기기 어려운 인생 키워도 있다.

"'청빈'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해도 깨끗하게 산다는 뜻이다. 멋있는 말이다. 동양인의 미의식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가난은 싫다. 그래서 '칭빈'이 아닌 '청부'의 삶을 살고 싶다. 깨끗하게 사는 것은 좋지만 가난은 싫다. 부유해지고 싶다."(본문에서)

그러면서 요시노리는 "'청부'의 삶이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청빈은 역시 힘들고 외롭다. 어느 정도 풍족해야 깨끗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요시노리가 청빈의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청빈은 힘들거나 외롭지 않다. 돈이란 배고픔을 모른다. 배고픔을 모르니 채워넣고, 채워넣고 결국은 요시노리가 경고했던 직함을 악용하는 상황에 이른다. 청부는 존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살이 절반을 살아온 나에게 늘그막에 존경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작은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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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들의 '존재감', 상상을 초월하네 | 역사 2013-04-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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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 노비들

김종성 저
역사의아침 | 201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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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르던 말.

'머슴'에 대한 포털 다음 국어사전 뜻풀이다. 어릴 적 동네에도 머슴들이 있었다. 그들 삶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참 힘들겠다, 싶었다. 이제 더 이상 머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997년 IMF '방아쇠'를 당긴 한보그룹 몰락 때 청문회에 나왔던 정태수 당시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머슴이 뭘 알겠는가."

'머슴론' 존재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이 한 마디는 대한민국 재벌그룹 회장들이 임직원들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말이었다. 월급쟁이들은 "머슴이 뭘 알겠는가"라는 말을 듣고,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자본이 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적어도 머슴은 지주에게 모든 생존권을 박탈당하진 않았다. 다른 지주와 부농에게로 옮길 수 있고, 자작농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노동자들은 강하게 표현하면 '파리목숨'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일류기업이 된 국내 한 대기업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된다"는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조 결성을 방해한다. 헌법조차 무시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자본의 눈치를 보고, 공권력은 감시한 자본을 잡아넣기보다는 노동자를 옭아맨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OO공화국', 'OO제국'같은 민주시민에게는 부끄러운 말을 만들어냈다. 이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과연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보다 너 낫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기 책 한 권이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사극으로 역사읽기'를 쓰고 있는 김종성 시민기자가 쓴 <조선 노비들-천하지만 특별한>(역사의 아침 펴냄)이다.

선비와 토론한 노비, 박인수

<조선노비들>은 그동안 사극을 통해서 보고 느꼈던 '노비'에 대한 짧은 생각을 고쳐주고, 더 풍성하게 해준다.

조선시대 노비 열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고, 각각의 노비와 관련된 개별 쟁점, 즉 노비의 개념, 기원, 결혼, 직업, 사회적 지위, 유형, 의무, 법률관계, 재산, 자녀, 면천, 저항 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또한 사료 속에만 존재하던 인물들을 사료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동안 사극이나 문학 작품 등에서 '하나의 면'만이 부각된 노비들의 본모습과 함께, 그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을 지탱했던 기둥 중 하나였던 '노비제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 출판사 소개

SBS 드라마 <뿌리깊은나무>(2011)에서 똘복(강채윤 어릴적 이름)과 석삼(똘복이 아버지)이 글자를 알았다면, 석삼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똘복과 석삼이처럼 조선시대 노비들은 문자를 해독하지 못했다. 세종 이도의 한글창제도 문자 해독을 못하는 백성 때문이었다. 당연히 노비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노비가 있다. 서경덕의 제자로 당대 최고 학자인 박지화에게 유학을 배운 노비 박인수다. 박인수는 불경까지 익혀 선비들과 토론을 해도 막힘이 없었다. 한 마디로 '알아줄' 정도였다. 그런 그를 그 시대 선비들은 노비가 글자를 안 다고 내치지 않았다. 그를 존경했다. 그렇다 모두는 아니었지만 조선 선비들은 자신보다 학식이 높은 자를 존경할 줄 알았다. 어쩌면 그것이 조선이 527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매일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수십 명의 제자가 찾아와 마당에 늘어서서 절을 올렸다"면서 "박인수를 떠받는 제자들은 거의 다 양인이었을 것이고 그중 상당수는 특권층인 양반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노비를 떠받들었다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적었다. 나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우리가 가진 노비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좁기 때문이리라.

여종 손가락 자른 주인....야구방망이 매타작한 대한민국 어느 재벌 회장

하지만 여종 손가락을 자른 주인도 있었다. 중종조 명재상인 송질의 딸이면서 조광조 일파로 몰려 한때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삼정승을 지낸 홍언필 부인인 송씨가 그 사람이다. 송씨는 혼례식날 신혼방에 술상을 가지고 들어온 여종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그는 또 남편과 간통한 남의 집 여종을 수없이 매질하고 칼로 머리털을 잘랐다. 심지어 매질 당해 쓰러진 그 여종을 생사 확인조차 하지 않고 땅에 묻었다.

이런 일은 조선시대만 있었을까? 매질 당하는 노비를 보면서 지난 2010년  아이를 둔 가장을 야구방망이로 때린 한 재벌 대표가 생각났다. 당연히 매타작을 한 이는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그를 집행유예로 감경한 이유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사회적 지탄을 받은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기본적인 인간대접조차 받지 못한 조선 노비들 지위는 물건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야구방망이 휘두른 최아무개 회장도 여종 손가락을 자르고, 여종을 매질한 송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노비들은 죽어도 동정받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죽인 이들이 더 추앙받기도 했다. 정조 때 형조판서를,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서구는 노비를 때려 죽였지만, "번거로워 관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혹자들은 "'젊은 친구'가 어쩜 그렇게 훌륭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하기 까지했"다니,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매타작을 한 재벌회장에 대해 분노할 줄은 알았다.

노비가 없었다면 조선을 굴러가지 못했을 것

노비도 노비 나름이다. "1000명의 부하를 거느린 노비"가 있는가 하면, 남편을 과거에 급제시킨 여종도 있다. 무엇보다 재산을 축적하여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기근에 빠진 사람들을 도운 노비도 있었다고 한다. "<성종실록>에 따르면, 충청도 진천에 사는 사노비 임복은 기근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자 곡식 2000석을 바쳐 성종에 의해 면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같은 예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대다수 노비들은 양인들에 비해 가난하게 살았다.

나는 그동안 조선조 신분구조는 '사농공상(선비, 농부, 공장, 상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은이는 "법적으로 존재한 신분은 양인과 천민(노비)뿐이었다"고 말한다. 사농공상은 신분 구별이 아니라 "직역(職域)의 구별이었다"고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양인 중에도 사농공상이 있고, 천민 중에도 '사농공상'이 있다는 말이다.

1590년 통신사 허성을 수행한 노비 백대붕은 한시를 잘 지었다. 노비가 통신사를 수행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사를 짓는 노비, 기술을 보유한 공노비, 실무행정을 담당하는 노비 츨신 서리들이 있었다. 한 마디로 조선은 노비가 없었다면 굴러가지 못했을 것이다.

"행정도 상당 부분은 노비들에 의해, 수공업제품의 생산도 노비들에 의해, 거기에다가 농업생산 역시 상당 부분은 노비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니, 조선이란 나라는 기본적으로 노비들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였던 셈이다."(본문에서)

노비는 '마당쇠'와 '삼월이'가 아냐, 하지만....

이처럼 노비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마당쇠'와 '삼월이'가 아니었다. 물론 양인처럼 마음을 먹는다고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손가락이 잘리고, 매타작 당해 죽어도 동정을 받기는 커녕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생산의 상당부분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노비는 노동자와 흡사한 존재"였다.

조선 노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항했다. 왕과 귀족 지배층은 이를 공권력으로 막았다. 하지만 저항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1894년 노비제도는 공식 폐지됐다. 12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은 치열한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김종성의 마지막 글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서민이 노동자 대중이라면, 옛날의 서민은 노비 대중이었다. 즉 이 둘은 자기 시대의 대표적인 서민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노비제 시대와 노동자 시대에는 역사 발전의 공통적인 패턴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패턴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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