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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 사회 2013-08-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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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저
뿌리와이파리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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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및 교과서문제)는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최유라 씨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조영남씨가 지난 2005년 4월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를 펴낸 후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말은 책 제목 처럼 당시 이 발언은 "맞아 죽을 정도"로 엄청난 비판을 자초했었다. 특히 그해는 '을사늑약 100년', 공복60년과 맞물려 분노는 더 컸다. 그럼 아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어떤가?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쉽게 읽으면 일본 극우세력이 쓴 글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똑 같은 가혹한 '운명'을 겪고도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위안부마다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면서 "그런 그녀는 일본군이 아닌 업자를 '폭행 주체로 기억한다.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교감'없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들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쯤되면 영락없이 '친일파'다.

 

"일본군이 이용했다고 해서 아시아 전역에 있었던 그런 유의 시설들을 전부 '일본군 위안소'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38쪽)

 

물론 그는 "군인이나 헌병에 의해 끌려간 경우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개별적으로 강간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말한다. 하지만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였다면일본 군인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강제로 끌려온' 존재였다"며 일본군을 '강제성'에서 위안부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잠깐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 전 위 글들이 담긴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를 읽은 후, 판단을 내리자. 글쓴이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따위가 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2007년에는 일본어판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아사히 신문사)을 수상했다.

 

'소녀상'....위안부 리얼리티 표현이 아니라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

 

박유하 연구와 활동 그리고 펴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제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도 "조선인 위안부와는 거리가 있다"면서 "리얼리터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위안부'를 바람직한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

 

2011년 12월 세워진 '평화 소녀상'은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박유하 주장은 충격이다. 특히 그는 "미국에 설립된 위안부 기림비는 '강제로 끌려간 20만명의 소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며 "그러한 그 비는 '위안부'에 관한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표한 것일 뿐 위안부 자체를 표한 것은 아니다"는데 까지 이른다.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따라가보자. 미군기지 주변 여성들이 현대판 '위안부'라고 한다.

 

미군,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해...새겨 들어야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인 여성은 '전리품'이었다. 물론, 전리품이든 군수품이든,' 일본군' '남성'에게 물건처럼 착취를 당했다는 점에서는 '남성 중심 국가'로서의 일본의 사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일본 패전 후에 일본이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고 한국전쟁 때 한국 정부가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던 미국 역시 그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동안 미국이 이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어온 것은, 그들의 '위안소' 문제를 지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19쪽)

 

박유하가 미군도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여성들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박유하 이 지적은 우리가 새겨야 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미군 '위안부'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28일 경기 동두천 보산동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 참혹하게 살해(범인은 맥주병을 시신에 넣었다)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미군 케네스 마클(당시 20세) 이었고, 피해자는 윤금이씨였다. 윤금이씨같은 이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같다고 할 없지만, 가해자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강제성과 여성들 인간존엄성이 파괴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라도 이런 주장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성노예인지 아닌지는 국제사회로부터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세계 각국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때 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 것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에 '배상 요구'는 무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청구권협정으로 배상은 끝났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식민지때 강제징용했던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징용 배상금을 낼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는)해결이 끝났다"고 했다. 박유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송자들이 소송을 낸 근거는 위안부들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국제법을 어긴 것이었다는 것이 '배상'요구의 근거였는데, 당시의 법을 실제로 어긴 직접적 주체는 일본국이 아닌 업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자들의 '법적 책임'과 '배상 요구'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237쪽)

 

일본 우익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일협정은 또 하나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하에서 이루어진 탓에 식민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양쪽에 주지 않았다는 점일 인식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박유하는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며 정대협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차원 배상 요구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면에 이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위안부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성'문제

 

특히 "수요 시위를 비롯한 정대협 활동에 어린 학생들을 대거 동원되는 상황은 극히 우려스럽다"면서 "그들이 새롭게 심어진 '반일'적 적개심을 넘어서 같은 또래의 일본 청소녀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감정소모의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말을 들으면 '위장된 일본 우익'이라는 세간의 평이 낯설지 않다. 그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 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빨갱이'이나 '친일파'라는 명칭이 그저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320쪽)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아닌, '제국'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책 제목 역시 <제국의 위안부>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직접 책임을 묻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는 그들이 조선인 여성을 짓밟앗기 때문에 분노하기 이전에, 인간존엄성이 짓밟힌 문제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들이 소녀상 앞에서 분노한다.

 

책을 덮어면서 머리에 든 생각은 '박유하가 쓴 책을 일본 우익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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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주 부드럽게 | 사회 2013-08-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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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김동춘 저
사계절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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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막말'이 있느냐고 분노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히틀러는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지난 10일 <한겨레> 토요판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중' 기사에서 미국은 "19세기 말까지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필리핀 독립전쟁이었던 필리핀-아메리카전쟁(1899~1902년)에서 100만명 웃도는 필리핀 시민을 학살했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

두세 사람이 살해 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이를 집중보도하고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은 질타 받는다. 그런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자살폭탄이 터져 수십 명이 죽어도 짧게 보도될 때가 많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만, 600만 명을 학살한 것에 비하면 약하다. 미국이 자신들 학살에 대한 책임을 졌던 적이 있었는가?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라는 스탈린 말을 무조건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남 탓할 처지가 아니다.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거창사건, 노근리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등. 그나마 이들 사건은 잘 알려진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건도 많다.

기사 관련 사진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사계절

 

한국전쟁의 정치사회학을 시도하며 민중의 체험으로 전쟁의 의미를 캐물은 <전쟁과 사회>를 썼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독한 인간성 말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그답게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통계'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점을,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양심'을 가진 학자와 지성인으로서 호소한다.

"학살이나 국가폭력은 마치 암세포와 같이 그것과 전혀 무관한 구성원들의 정치·사회 의식과 도덕적 기반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7쪽)

"학살과 국가폭력은 암세포"

그는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일과 맞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바로잡는 일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맞먹는다는 말은 국가 권력이 인간존엄성을 결코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자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위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록 '누더기'로 출발하자 군·경 출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끝자락이었던 2008년 1월 30일에는 뉴라이트연합 등 90개 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정협'(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이 "6·25전쟁 중에 발생한 양민 희생자 사건을 왜곡하면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반국가 행위자를 두둔한 점을 바로 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국군, 경찰을 학살자로 모독한 사진 전시회 즉각 철회", "과거사위 발표 민간인 희생사건은 왜곡 날조된 엉터리다", "좌파정권 산물 과거사정리위 정리하라"고 외쳤다.

노무현 "국가가 자행한 폭력" 사과... 수구세력 "왜곡날조"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 앞둔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위를 '국가'를 대표해 사과했다. 이에 앞서 제주4·3사건에 대해서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과 수구세력 중 누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했을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국가는 그 어떤 행위로도 국민의 존엄성을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기 학살은 인간존엄성을 훼손한 것이다. 당연히 국가 이름으로 사과해야 한다.

예로든 헌법이 1987년 개정 헌법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럼 제헌헌법을 보자.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고,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아이까지 학살... 대한민국 헌법 부정

'문경 석달동 학살사건'이란 
문경 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24일 정오, 공비 토벌 명목으로 수색 정찰 중이던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명이 경북 문경군 산북면 산간 마을 석달동을 지나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마을 주민 전원을 불러내 사냥 연습하듯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다. 당시 학살로 마을 주민 136명 중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09.27 <시사인> "어린아이도 사냥 연습하듯 학살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학살은 헌법을 무시했다. 1950년 11월 8일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주민 70명은 국군에게 총과 칼로 학살당했다. 그들은 "무학이거나 국졸이었으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벽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아이들이 학살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김동춘은 경북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 추모비에 이런 시를 남겼다.

 

"산 넘어 넓은 세상 머물 곳 찾아/구천 떠도는 어매 아배 기다리며/석달 마을 산 모퉁이에/ 이름 없는 아기 혼들 울고 있네//아가들아 아가들아/ 이름 없는 아가들아/ 피 묻은 아베 조바위 쓰고/ 눈물 젖은 아베 고무신 신고 놀지/ 그 옛날 이야기 말해주렴/ 지나가는 길손이 발 멈추거든// 아가들아 아가들아 오늘 밤은/ 어매 품에 안겨 아베 등에 업혀/ 백토로 사라지기 전 그 옛날처럼/ 좋은 세상 꿈꾸며 잠들어라 - <이름 없는 아기 혼들>'석달동 양민 학살에 때 참살된 아기들을 생각하며'"(129쪽)

기사 관련 사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 사진들. 위 왼쪽 차량적재함에 '논산읍' 글자가 보인다.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이 끌어내려지고 있다. 위 오른쪽 길게 파놓은 구덩이 둔덕 위 재소자들을 엎드리게 하고 등 뒤에서 헌병들이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 민간 청년단원들이 구덩이의 시신들을 정리하고 있다.
ⓒ 사계절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들을 학살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 군경을 모독한 것이 되는가. 오히려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군과 경찰을 모독한 일이다.

김동춘은 "과거 청산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죽음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삶은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그것은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생명의 가능성을 묻는다"고 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사과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중간에는 한국전쟁기 학살 현장과 유골 발굴을 담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 7월-8월 대구 형무소 재소자와 경산·청도 지역보도연맹원 집단학살사건, 1950영 7월 청주경찰서와 청주형무소 등에 구금된 청주·청원 지역보도연맹원 학살사건, 1951년 2-3월 경남 산청 외공리 학살사건 등등이다.

죽은 자보다 산 자가 더 고통스러웠던 지난 60년

특히 1950년 6월 28일경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최소 1800여 명 이상의 보도연맹원과 재소자 등이 헌병대와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숨진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사건을 담은 사진 3장에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이게 대한민국 군과 경찰이 자행한 학살이었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도 빨갱이였고, 아니 죽은 이보다 더한 '산송장'이었다. 

"한국전쟁기에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폭도' 혹은 '빨갱이'였고, 살아남은 가족도 '빨갱이'였다. 지난 60여년 동안 피학살자들의 가족들과 기적적인 생존자들은 '산송장'이었다. 우리 사회는 산송장이 이웃에 널려 있는데 그 존재를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도대체 그런 국가나 사회는 어떤 곳일까?"(59쪽)

김동춘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좌익 관련 피학살자들과 가족들을 세 번이나 죽였다고 주장한다. "학살 자체가 첫 번째이고, 1960년 당시 진상규명 요구를 폭력으로 틀어막은 것이 두 번째이며 그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하여 1980년대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세 번째"라고. 이 말 앞에서 "난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학살

이어진 그의 글 "특히 세 번째 학살은 정부가 단독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언론, 사회, 이웃 사람들의 협력과 공모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침묵했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은 빨갱이였으니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자신의 묵인과 방관을 정당화했다"는 말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는 군경과 수구기득권만 학살에 책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책임에 나 자신도 포함됨을 비로소 알았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제주도의 서늘한 풍광 아래에서 검은 핏자국을 남기며 사라져간 사람들, 토벌작전·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하게 살해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반추"하고 "국가와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억압되어 있던 학살의 비밀을 끄집어내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고자"한다. 그러기에 불편하다. 왜 난 그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수구세력처럼 "전쟁통에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인민군들도 양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과 비통한 슬픔을 남긴 전쟁의 실체와 진실"을 밝힐 수 있고, "원통한 죽음은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므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지난 60년을 되풀이 할 것이다.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지금도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아주 부드럽게.

"국가권력, 민주화 이후 부드러운 학살 자행"

"나는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안 기관의 위법과 권력 남용, 도시 재개발 철거 현장에 난무하는 폭력과 노동 현장의 구사대 폭력, 빨갱이라고 덧칠을 해서 특정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나는 학살은 전쟁기에 나타나는 매우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폭력으로 정치적 저항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는 권력 행사의 한 특수한 형태라고 보았다."(30쪽)

쌍용자동차 노동자 23명은 더 이상 살아있는 자들과 호흡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 최병승·천의봉씨는 290여일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싸웠다. 갑을 관계는 또 어떤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김동춘 표현처럼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동춘이 던지는 마지막 호소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기억하자.

"새롭게 발굴되고 해석된 역사는 죽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구조의 기원을 고발해주는 문서다. 이 성과가 단순히 피해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 시민의 것이 되고 또 인류의 것이 될 때, 우리는 인권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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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으로 '사람세탁', 강용석은 정말 변했을까 | 정치 2013-08-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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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용석의 직설

강용석 저/박봉팔 편
미래지향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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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누가 이 단어를 만들었을까? 세탁은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돈세탁은 뒷돈이나, 비자금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깨끗함이 아니라 더러움을 상징한다. 돈세탁만 아니라 '사람세탁'도 있는 모양이다. 더러움을 제거하고,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아나운서 성희롱' 한 강용석

지난 2010년 7월 16일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 따위로 '성나라당'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충격에 빠지게 한 사건이 터졌다.

강용석 당시 의원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너만 쳐다봐. 남자는 똑같다.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는 말한 것이 4일이 지난 같은 달 20일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된 것이다.

강 의원은 끝까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성나라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를 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충격에 빠졌는지 제명은 반나절만에 결정됐다. 하지만 의원직 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011년 8월 31일 '강용석 제명안'에 대한 표결 결과는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 무효 8명이었다. 의원 제명안 가결 요건인 재적의원의 3분의 2(198명) 찬성에는 한참을 못미쳤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표결 직전 요한복음 8장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의원직 제명 부결은 사실상 강용석에게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 없었다.

김형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강 전 의원은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 작은 아들 병역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안철수 의원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박 시장 아들 병역 문제는 결국 '사과'하면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안 의원 저격도 '헛방'이었다. 결국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유권자 심판을 받았다.

이런 사안으로 낙마했다면, 대부분 정치인은 생명이 끝난다. 아니 부끄러워서라도 몇 년 간은 언론을 피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종편과 케이블 방송에서 출연해 '아나운서 성희롱'과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그리고 안철수 저격수 이미지를 거의 '세탁'을 넘어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만약 강용석 전 의원이 2011년 8월 제명당했다면, '당당하게'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용석 전 의원 아니,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JTBC), <강용석의 고소한19>(tvN), <유자식 상팔자>(JTBC) 따위에 출연을 통해 몇 마디 툭툭 던져 강용석이 '변'했다는 시청자들과 누리꾼들 '인정'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는 논란이 한창일 때인 지난 7월 4일 <썰전>에서 그는 "정문헌, 서상기는 사퇴해야 한다. 이 정도 얘기해 놓고 착오라고 하면 안 된다. NLL 대화록 전문을 보면 포기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상기, 정문헌 의원이 과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정원 명예를 위해" 2007년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군인 출신이다. 단독 결정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도 했다.

"정문헌과 서상기 사퇴하라"로 이미지 세탁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unheim)에서 "강용석은 분위기를 파악한 겁니다"는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도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오히려 우익세력은 그를 성토했다. 변희재는 "강용석이 애국우파 진영에 빚진 것은 없어요. 자기 길을 가더라도 배신자 운운할 것 없다"고 했고, 정미홍 <더 코칭그룹> 대표도 "강용석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노렸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뭐든 앞으로 이루기 어렵겠습니다"고 했다.

3년 전 성나라당 아이콘이었던 강용석은 온데간데 없고, 친정인 새누리당과 "국정원 셀프개혁" 운운한 박근혜 대통령까지 에둘러 비판하는 강용석으로 부활한 셈이다.


기사 관련 사진그럼 강용석은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강용석의 직설>(도서출판 미래지향>이 증명하고 있다.

그는 변희재 대표와 고 성재기 남성연대대표가 NLL발언에 대해 비판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있다. 국가 안보에 관련된 일에 보수논객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다르다고 변절자로 몰아가는 건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강용석 성향이 어딜 가겠나.(웃음) 성재기와는 전화로 오해를 풀었다. 조만간 변희재와도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강용석 "'아나운서 성희롱' 아직도 기억 안나"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만일 박근혜를 당선시키려 마음 먹었으면 댓글만 달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문재인 3개, 박근혜 3개, 안철수 3개다. 이정희가 26개, 민주당이 28개, 범죄일람표를 보니 안철수 지지 댓글 3개에 국정원 직원이 추천을 누르기도 했더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새누리당과 <조중동>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특히 강용석을 상징하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당시 술에 취해 실수했던 것이었다면 곧바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날 학생 30여명이 함께 있었고, 취할 정도로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솔직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262쪽)

물론 정말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강용석 말처럼 "그날만 총 11개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받은 '상처'는 푸념이 된다. 아니, 잘 난 아나운서들이 죄없는 강용석을 성희롱한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강용석 방송을 통해 옛것들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정치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정계에 복귀하기 전에 시청률 15%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봤으면 좋겠다. 반짝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이랄까? 15%의 시청률은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략) 지금 나는 '정치 방학' 중이다. 길고 긴 방학의 끝이 언제쯤일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열심히 해둬야 나중에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7쪽)

방송으로 '이미지 세탁'한 후...

특히 그는 "내가 이 길로 가면서 뭔가를 이루면 내 방식도 하나의 모델이 될 거로 생각한다"는 말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난 3년 동안 강용석이란 이름 석 자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어떤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한 자신의 길이 모델이라고 한다. 강용석은 이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강용석 본질을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이승만의 국부로서 역할은 토지개혁 때문에 가능했다. 토지개혁 때문에 6.25를 겪고도 민중 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다(중략) 경제발전이 가장 큰 업적이다.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으로 이끌어 나간 것은 박정희 아니고서는 추진할 수 없던 것이었다. 중화학공업, 제철, 조선, 건설, 전자, 중공업 등을 제대로 세운다는 것을 박정희 말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93-95)

그리고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면서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편이다"고 한다. 그는 이어 "다른 유사한 나라들의 유사한 독재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좋았다. 이를테면 페론를 뒤집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이나 미얀마, 제3의 세계 군부독재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괜찮은 편이었다"고도 했다.

강용석 논리는 수구세력 주장과 별 다르지 않다.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한 두 마디가 강용석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 세탁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지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은  박 대통령이 국외 방문을 할 때, 정상회담 내용보다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을 정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괜찮은 대통령"

그는 대통령이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예언자로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언뿐만 아니라 그걸 성취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 조직하고 활동해서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뒷감당하고 정리해서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 그걸 다 갖춰야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걸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다."(본문 222쪽)

대통령 자격은 예언자 자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언자란 무엇일까? 예언자란 앞날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예언자는 인민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아파하는 자이며, 인민을 탄압한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다. 인민을 생각하는 않는 자는 예언자가 될 수 없다, 독재자 이승만과 군사반란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가? 없었다.

강용석은 박정희를 높이 평가한 것이 "경제발전"이다. 수구세력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는 김영삼과 노무현 평가를 박하게 했는 데 둘 다 "정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한 이유로 낮게 평가받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는 데도 경제발전을 했다는 이유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난 8일 <썰전>에서 방송사들이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이미 국정원 국정조사에 검찰 기소까지 된 상황인데 이슈가 인화성이 없는 이슈일 수 있다. 뭘 어쩌자는 거냐"라고 했다. 한 마디로 촛불집회는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그는 "동원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라며  "내가 이런 집회 한 두 번 해봤나. 장외 집회라는 게 동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거다. 다 동원하는 것이다. 70~80%는 동원된 인력이다. 노무현 정권 때 매일 촛불집회 했다. 그때 다 동원해서 나갔다"고 했다.

촛불집회는 다 동원된 것?

노무현 정부때 자신들이 장외집회를 동원해봤다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도 "동원"이라는 주장은 한 마디로 '억지'다. 몇 백명까지는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수 만 명을 어떻게 동원하는가. 한나라당식 동원 정치를 촛불집회에 적용하는 강용석을 보니, "나는 국정원에 아무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국정원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청와대 계신 분과 어떻게 그렇게 닮았는지. 하기야 같은 편 아니던가.

박상도 SBS 아나운서는 지난 6월 14일 전·현직 언론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칼럼사이트 <자유칼럼그룹>에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제목 글에서 "예능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강용석씨를 보며 돈 세탁하듯 이미지도 세탁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을 예견했지만 이 정도로 (강 전 의원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급변할 줄은 몰랐다"고 탄식했다.

박 아나운서 말을 새겨야 한다. 속지 말자, 강용석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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