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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아니라 내가 뽑는 올해의 책, 비록 지나간 책들이지만 | 나의 리뷰 2014-12-3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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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올해의 뉴스'를 선정하고 나서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책 10권을 뽑았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좋은 책 기준은 어쩌면 답이 없다. 읽고 나서 마음에 남고, 배움이 되었다면 좋은 책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올해의 책도 좋지만 자기가 선택한 올해의 책도 의미가 있으리라. 꼭 올해 발행되 책이 아니라 몇 년 지난 책들을 뽑아 올해의 책으로 뽑는 일도 재미 있으리라.

  

 

ⓒ 궁리

1.<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ㅣ 궁리 펴냄 

 

<디케의 눈>은 두꺼운 법전이 아니라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법이 어떻게 해석되어 왔고,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결국 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 생동감있게 표현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피의자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거리낌 없이 행사하기 위해서는 수사관의 양심이나 인격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일 수사관이 강압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조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애초에 변호인은 필요도 없을 것이다."(148쪽)

 

한 마디로 인간 기본권을 보호하고 편견과 선입관을 배제하며 끊임없는 노력하는 일이 법이 가져야 할 본분임을 강조한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예로 든 사건 들 대부분이 미국 판례라는 점이다.

  

ⓒ 인물과사상사

2.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 김덕영 지음 ㅣ 인물과 사상사 펴냄

 

토론과 논쟁이 사라진 대학 사회를 향한 김덕영의 일갈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조폭과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패거리 문화, 근친상간과 동종교배가 횡행하는 대학, 학력위주와 학위조작, 기초학문의 위기, 기업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대학, 시민강좌 수준으로 전락한 대학 교양 교육, 영어 공용화를 외치는 지식인들이 …' 판치는 이런 대학이라면 '대학' 간판은 내려야 한다.

 

김덕영은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에서 대학 사회를 향하여 간절히 원한다. 대학은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이다. 대학이란 다양한 자유로운 정신들이 모여 서로 투쟁하는 곳이다. 사회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하며 무정부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한다. 베버가 본 것처럼.

 

과연 대한민국 대학은 이를 용납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서부터 일등부터 꼴찌를 줄세우는 일제고사가 있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는 비극은 끝내야 한다.  

 

 

ⓒ 을유문화사

3.<피아졸라, 위대한 탱고> 마리아 수사나 아치 · 사이먼 콜리어 지음 ㅣ 한은경 옮김 ㅣ 을유문화사  

 

피아졸라는 자신의 음악에 열정과 활력, 부드러움과 유머, 드라마, 고통, 즐거움, 강렬함, 감정을 몰아넣었다. 그는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며 인생 그 자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서 음악은 절대였다.

 

"나에게 음악은 아내 이상이다. 아내와는 이혼할 수 있지만 음악과는 이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과 결혼하면 음악은 영원히 당신의 사랑이 되며, 결국 음악과 함께 무덤까지 가는 것이다."(277쪽)

 

음악과 결혼한 피아졸라, 음악 연주 자체였던 피아졸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확장시키고, 살아 있다는 기쁨을 경험하며, 도전하는 정신을 배울 수 있게 했다. 피아졸라는 댄스홀에 머물러 있던 탱고를 콘서트 홀로 가져왔다. 그렇다. 피아졸라는 탱고 역사를 바꾼 '위대한 탱고'였다.

 

 

ⓒ 현대문학

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이 책을 읽고 지금은 5학년인 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편지를 썼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아니라는 이 야만을 딸뿐만 아니라 이 땅 여성들이 한 번은 읽어야, 아니 남성이 읽어야 할 책임을 알았다. 딸에게 이렇게 썼다.

 

"아빠가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만큼 귀하고 고귀한 것은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일만큼 귀한 것은 없다. 누리에는 탈레반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과 사상, 이념, 종교라는 이름으로 남성, 여성, 어린이, 어르신 뿐만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상과 철학을 가진 자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너무도 많다. 어떤 것도 '인간' 그 자체를 억압할 수 없다. 억압하는 것에는 저항해야 한다."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런 사회와 문명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너 자신을 발견하면서 너 자신을 존중하면서, 다른 이도 너와 똑같은 존귀한 자임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너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성별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천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네가 존귀한 것만큼 모든 사람도 똑 같이 존귀함을 잊지 말아라."

 

 

ⓒ 뿌리와 이파리

5.<THE left> 제프 일리 지음 ㅣ 유강은 옮김 ㅣ 뿌리와 이파리 

 

2008년 봄 촛불과 맞물려 10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많이 읽혔던 책이다.

 

<THE left>는 좌파에 대한 심층서는 아니지만 화석화 위기에 빠져버린 우리 사회의 사상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좌파를 박물관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 순간 우리 사회는 삭막함을 넘어 호흡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가 아닌가? 

 

신자유주의와 지배하는 우리 시대 한 번 읽고 가야 할 책이다. 생각을 제한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리니 이 두꺼운 책을 읽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도 좋으리라. 이런 책 머리맡에 두고 읽는 재미, 참 좋다.

 

  

ⓒ 아고라

6.<거짓된 진실> 데릭 젠슨 지음 ㅣ 이현정 지음 ㅣ 아고라   

 

자본과 생산, 이익을 위하여 사람이 사람이 아닌 도구로 취급받으면서 죽어갔다. 인종 우월주의와 지배문화가 남긴 이 참혹한 증오범죄를 이제 우리는 끝내야 한다. 여성을 도구화하고, 피부색이 다른 인종을 차별화하는 잔인한 범죄, 경제와 생산을 위한 인간의 물질화를 추구하는 시대이다. 이를 데렉 젠슨은 '지배문화'라 한다. 이 지배문화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연다.

 

"지배문화를 멈추게 못하면, 그것은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일 것이다. 전부 죽일 수 없다면 죽일 수 있는 것은 다 죽일 것이다."(본문315쪽)
 

생산보다 생명을 위에 두고, 생명을 생산의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을 물리적으로 멈추게 하고, 생산을 위한 정복을 그만두는 것이며, 지구를 파괴에서 해방시키고, 마지막을 문명 제거라고 데릭 존슨은 말한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증오는 수억 년간의 자연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들 각자를 키운, 우리의 틀을 만든 조건의 결과물이다. 우리에게 주입된 의문시된 적 없는 가정들의 결과다. 증오를 멈추게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 틀을 만드는 조건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전에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맞다. 그게 바로 내 해법이다. 우리는 문명을 제거해야 한다."(본문 527쪽) 

 

ⓒ 다산책방

7.<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ㅣ 다산책방 ㅣ 11,000원

 

돈에 예수를 팔고, 권력에 예수를 팔아 버린 숱한 잘난 예수장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장기려이지만 장기려가 간 길은 애써 외면한다.

 

장기려는 권력과 자본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환자'에게 있었다. 생명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화석화된 교리보다는 생명을 택했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 자와 마음 심(心) 자로 이루어져 있다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예수를 팔아 먹는 자들이 꼭 읽어야 한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 

 

ⓒ 청어람미디어

8.<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ㅣ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2001년 펴낸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와 <고양이 빌딩>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다 다카시는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다. 다치바나는 왜 그토록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그리고 인간이 지적인 욕망을 상실하지 않는 한, 인간은 '더 책을 읽고 싶다', '새로운 책과 더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더 읽고 싶은 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지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이 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적으로 죽었다고 해도 좋습니다."(52쪽)

 

한 마디로 정의하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책 쓰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편과 표피만으로 글쓰기를 말 장난처럼 해대는 요즘 글쓰는 이들을 향한 일격이다. 다치바나의 책 읽기는 대충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다나카 가쿠게이 연구>는 탐사보도를 통하여 거대한 악과 일전을 겨루어 이긴 것은 지독한 책 읽기이라는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생각의 나무

9.<공부도둑> 장회익 지음 ㅣ 생각의 나무

 

'0교시 수업' '영어몰입교육' '학교자율화'에서 출발하여 '일제고사'로 막을 내리는 대한민국 2008년 '학교' 모습이다. 진짜 공부를 시키려는 선생님들을 내치는 정신나간 교육청들이 학교 교육을 살리겠다고 난리치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향한 일갈이 담겨 있다. 장회익 말을 들어보자.

 

"학문 그 자체는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요즘은 가히 경쟁만능 시대라 할 만큼 모든 것을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학문은 기여이고, 협동이지 결코 경쟁이 아니다."(274쪽)

 

공부를 입신출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장회익 교수는 개인의 입신양명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학문도 거부한다. 그가 공부하는 최종목적은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인민을 위함이다. 모든 인민을 위한 학문이기에 '공부도둑'이라는 말이 왠지 낯설지 않고, 심지어 읽는 과정에서는 경외감마저 든다.

 

우리 아이들은 요즘 밥때문에 고통까지 당해야 하니 참 걱정이다. 줄세우기에서 밥 걱정하는 이 비극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 후마니타스

10.<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ㅣ 후마니타스

 

'지식인이란?'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권력이 어떤 권력이든 권력이 인민을 억압한다면 저항하는 숙명을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20년 동안 우리 사회 지식인은 "이제 사회는 외세에 억눌린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이끄는 안내자, 민중 이익의 수호자, 위대한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서 지식인을 원하지 않는다"가 되었다.

 

도도한 역사 물결에 저항적인 지식은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권력을 위하고, 권력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일 뿐이다. 권력 수호 전위대로 초라하게 전락해버린 지식인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배로 들어섰기에 지식인은 이제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이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의 생산 기술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충격이다. 자본에 정신을 팔아버린 지식인들은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요즘은 언론도 말하지 않는다. 지식인과 언론이 말하지 않으니 점점 이 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올해 나온 책만 올해의 책이 되라는 법이 있나. 지난 책들을 뽑는 재미도 있고, 내가 이런 책도 읽었나 하면서 추억도 반추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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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명 걸겠다…실패하면 내 역할은 거기까지" |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2014-12-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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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생명 걸겠다…실패하면 내 역할은 거기까지"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문 의원은 29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다"면서 "피하고 싶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했다. 당의 갈등과 분열도 걱정했다. 피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출마를 "시대적 소명",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그는 "개인을 위해서는 계산하지 않겠다. 저의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겠다"면서 "당을 살리는 데 제 정치인생을 걸겠다. 당을 살려내는 데 끝내 실패한다면 '정치인 문재인'의 시대적 역할은 거기가 끝이라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해 새정치민주연합 재건에 실패하면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참고로 29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문 의원은 22일부터 26일까지(25일 제외) 나흘간 전국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재인 의원은 지난주 14.8%에서 1.5%p 오른 16.3%를 기록하면서 11주 연속 1위를 지켜오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 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으로 무선전화(50%)와 유선전화(50%) 병행 RDD 방법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p입니다.

 

문 의원은 나아가  "여기서 저의 정치생명을 걸겠다"면서 "대표가 되면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개인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선당후사의 자세로 변화와 혁신에만 전념하고, 기필코 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며 2016년 총선 승ㅇ리를 다짐했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그는 "당 대표 또는 계파의 공천은 결코 없다"며 "공천 제도를 선거 전에 미리 투명하게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천 개혁이 총선 승리 길음을 천명했습니다. 한 발 나아가 "대표의 손에서 공천권을 내려놓고 '제도와 룰'이 공천하도록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친노 계파 논란을 의식한듯 "계파 논란을 완전히 없애겠다"며 "'친노'가 정치 계파로 존재한다면 해체할 사람은 저 뿐이다. 친노-비노 논란을 끝낼 수 있는 사람도 저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 김근태 의장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만 남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문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지는 정당'에서 '이기는 정당'으로 환골탈태하겠다, △ '정치정당'을 명실상부한 '정책정당'으로 바꾸겠다, △지지기반 확장, 네트워크 정당으로 천만 당원 시대를 열겠다 등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는 영광스러운 민주주의 시대도 열었다. 민주정부 10년"이라며 "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성장한 황금시대의 개막"이라며 "바로 그때부터 우리는 기득권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화와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했다"고 반성했습니다.

그는 "국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는 겸손이 부족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려는 열정이 부족했다"며 "국민들은 우리에게 보낸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멈칫했던 지난 7년 동안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고 인권과 자유가 크게 억압받고 있다"며 "민주주의 후퇴는 경제를 침체하게 만들었고 사회도 활력을 잃었다"고 했다.  

문재인 의원은 박근혜정권이 추진했던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발언도 서슴치 않으면서 헌재도 비판했습니다. 그는 "헌재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당을 국민의 선거(라는) 심판에 맡기지 않고 국가권력이 직접 개입해 강제 해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8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1명인 김이수 재판관에 관해서는 "김이수 재판관 견해에 100%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대표 경선에 나선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선거 때 내거는 공약은 엇비슷할지 모른다. 대선 때도 (문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복지 공약이 서로 비슷하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실제로 비슷하나? 말만 그런 것"이라며 "다 유능하고 좋은 분들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우리 당을 변화시키지 못했지 않느냐. 이제 혁신을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은 과연 새정치 대표가 되고, 더 나아가 2016년 대권을 잡을 수 있을까요? 문재인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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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군사독재 시절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에 의해 선고" | 박근혜정부 2014-12-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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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한겨레>

 

 

"이 의원에 대한 유죄 판결이 1987년 이전의 군사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매우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의해 선고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측이 내란음모·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구명을 위해 대법원에 성명서를 전달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도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연합뉴스>는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인권단체인 카터센터는 지난 18일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유죄 판결에 대한 카터센터 성명서’를 내고, 우편을 통해 우리 대법원에 발송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성명서는 "대한민국 현직 국회의원인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서울고법의 유죄 판결을 우려한다"며 "서울고법은 추종자들에 대한 이 의원의 녹취록을 근거로 징역 9년을 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카터센터는 "현재 상고심이 진행중인 이 소송에서 제시된 사실들의 진위에 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대한민국 내정에 간섭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 우려한 것입니다. 하지만 카터센터는 "이 의원에 대한 유죄 판결이 1987년 이전의 군사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매우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의해 선고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악용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어 "이 판결이 국제인권조약을 준수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의무, 매우 성공적으로 번영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세계적 명성 등과 모순된다는 점도 주목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석기 위원에 대한 국보법 선고는 민주주의를 위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카터센터는 카터 전 대통령이 "한국이 아시아와 세계 정세에서 인권 지도자로서 필수적 역할을 확대하려면, 국보법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인권에 관해 모든 한국 시민들이 온전히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국보법이 민주주의와 인간존엄성을 침해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카터센터는 "미국인들이 고문의 공적 사용에 관한 의회의 조사 결과에 관해 긴박하게 토론하는 이 시기에 모든 나라가 국제 인권법에 충실하면서도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이 북한 인권은 지적하면서 정작 대한민국 시민에 대한 인권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정권이 새겨 들어야 할 충고입니다.

 

지난 8월11일 항소심 선공공판에 참석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진공동취재단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인권대통령'으로 불렸고, 1981년 퇴임 후 인권과 세계 보건, 갈등 해결, 선거 감시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카터 센터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탄원서를 낸 것은 내란 사건 피고인들 가족들이 이달 초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의 주선으로 카터센터를 직접 방문해 탄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 전 의원에 대한 구명활동은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 4대 종단 최고위 성직자들은 지난 7월 서울고법에 탄원서를 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어리석은 갈등으로 국력을 소진하기보다 서로 간의 이해와 포용이 허용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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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 엉망"과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 | 박근혜정부 2014-12-2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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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한겨레

 

지난 25일 밤 신원미상의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명동 일대 건물 및 바닥에 남겼습니다. 이들은 명동 곳곳에서 기습 낙서를 했습니다. 관심 끈 글귀는 나라골이 엉망이 아니라 ㅈㅂㅇㄱㅎㅎ입니다. 알고보니 이는 "정윤회와 박근혜의 초성을 번갈아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경찰 수사를 비웃기라고 하듯,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남을 예로 들면서 그를 강하게 비판하는 전단이 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습니다. 

 

 

 

26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전단 1만여 장이 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단에는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는 사진이 있으며, 사진 위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 아래에는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은 이날 홍대입구역 인근에 뿌려진 전단. <연합뉴스>


<경향신문>에 따르면. 26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건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꼬는 내용의 전단 1만장 가량이 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작은 수첩만한 전단 상단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 하단에는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글 내용은 지난 2002년 5월11~14일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단에는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경제난 때문인만큼 경제를 도와줘야 북한이 우리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 제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북한을 다녀온 뒤 박 대통령이 쓴 방북기 일부입니다. 

 

 

 26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전단 1만여 장이 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단에는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는 사진이 있으며, 사진 위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 아래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종북'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은 이날 홍대입구역 인근에 뿌려진 전단.  <연합뉴스>



또 다른 전단에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이전인 2007년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과 2002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김 전 위원장에 대한 평가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었습니다.

 

문:실제 만나본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

박근혜:김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는 믿을 만한 파트너(2007년 6월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

 

문: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

박근혜: 대화를 하려고 마주앉아서 인권 어떻게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2002년 7월 신동아 인터뷰)

 

한편 서울 마포경찰서는 인근 CCTV와 목격자 등을 상대로 누가 전단을 뿌렸는지 찾을 방침이라고 핣니다. 경찰 관계자는 "관리인 허락 없이 건물에 들어가 전단을 뿌렸다면 건조물 침입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용의자 신병을 확보하면 정확한 경위 등을 조사할 것"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유인물 살포가 건조물 침입과 연관돼 이뤄졌을 수도 있기에 형사과(강력팀)에서 처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는 없다”며 “물론 명예훼손 정도에 그칠 사안이면 수사과로 배당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대공 용의점이 나오면 보안과로 사건이 이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누리꾼들은 "정확한 사실만 적시했으니 명예훼손은 가당치 않고, 건조물 침입혐의는 건물주 신고 없이 적용 가능한건가?  아무튼 찌라시 뿌렸다고 강력계 형사들이 나선다? 정말 코미디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아닌가? 최고존엄 훼손죄인가? "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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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이 엉망이다” 서울 명동 기습 낙서 | 박근혜정부 2014-12-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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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쓰고 있다. 뉴시스

 

25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썼습니다. 이날 기습 낙서는 명동 곳곳에서 진행됐다고 합니다.

 

25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쓰고 있다. 뉴시스

 

25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쓰고 있다. 뉴시스

 

25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쓰고 있다. 뉴시스

 

 

 

그럼 'ㅈㅂㅇㄱㅎㅎ'는 무슨 뜻일까요? <한겨레>는 "정윤회와 박근혜의 초성을 번갈아 작성한 것"이라고 관계자가 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6일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현재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용의자를 찾고 있다"며 "재물손괴, 명예훼손 혐의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겨레>는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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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말, '섬뜩함' 아니면 '유체이탈' | 박근혜정부 2014-12-2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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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함' 아니면 '유체이탈' 화법

 

박근혜 대통령 입에 나오는 말은 이와 같습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등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 기간 1급 기밀문건인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때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화록을 공개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 출처 <한겨레> 201.12.04일자

 

이전 정부의 외교문서로 비공개가 원칙인 남북대화록 공개에는 ‘알 권리’를 내세우고, 정권의 비선세력 의혹을 청와대 내부에서 제기한 문건에 대해선 언론기관 고소 등으로 ‘알 권리’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명확하게 ‘정치적 실리’로만 계산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규제 타당성 여부를 조속히 검토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게 될 것"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2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단두대' 발언이 알려지자 거센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같은 달 26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단두대, 암 덩어리 등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마치 5·16 쿠데타 직후 한국사회를 연상케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나와 "급기야 단두대 얘기도 나왔는데, 이런 공포스러운 발언들은 일선 공무원들을 상당히 긴장하게 하고 실적주의에 빠지게 해 무분별한 규제완화 등 또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트위터도 비판 글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가 사용한 ‘단두대’라는 말은 최악의 단어선택이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두대와 연관된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냥 흘려 들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불쾌한 기분이 든다."(@zar*****)

"박물관으로 보내야" - 노무현, 국보법 철폐를 주문하며. "단두대에 올려야" - 박근혜, 기업규제 철폐를 주문하며. 박물관과 단두대는 문화적 코드가 확실히 다르죠. 단두대가 더 좋은 표현이라 느껴진다면, 그게 당신의 문화적 코드인 겁니다."(@his******)

 박근혜 '단두대' 발언은 통일 '대박'처럼 계산된 저렴한 단어 같기는 한데 부정적 의미의 단어라 거부감이 더 클 듯. 더구나 무고한 사람 처형했던 박정희의 딸이 단두대라는 섬찟한 표현을 저리 쉽게 쓰다니."(@dit****)

 

 

문제는 박 대통령 발언이 점점 강도를 더 해 간다는 것입니다. 올해 박 대통령이 한 말 중 거친 말들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거친 표현들. 그래픽 <한겨레>

 

"단두대", "쳐부술 원순", "암덩어리",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단어 하나가 하나가 섬뜩할 정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말이 가볍다고 얼마나 비판을 많이 했습니까? 그런데 노 대통령은 말이 가벼울 뿐 '단두대' 같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두대가 무엇인지 안 다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는 프랑스 혁명이 계속되던 1792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들보와 두 기둥으로 이루어졌고 사선으로 된 칼날이 잘 내려오게 기둥 안쪽에 홈을 파놓았으며 칼등을 무겁게 만들어 떨어지는 힘을 더욱 강하게 함으로써 엎드린 사형수의 목을 예리하게 자르도록 했습니다.

 

모든 사형수를 '기계를 이용하여' 처형할 것을 요구한 법률이 프랑스 외과의사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1783년 생트 출생으로 1789년 국민의회 의원이 됨)의 노력으로 통과되었다. 참수형을 더이상 귀족의 특권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가능하면 고통 없는 형집행을 위해 고안한 법안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 처형 모습

 

 

이 기계는 비세트르 병원에서 사체를 이용해 만족할 만한 실험을 여러 번 거친 뒤, 1792년 4월 25일 한 노상강도를 사형하기 위해서 '그레브 광장'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루이제트(Louisette) 또는 루이종(Louison)이라 불렀으나 곧 기요탱의 이름을 따 '라 기요틴'(La guillotine)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프랑스 범죄자들은 여기에 '과부'라는 별명을 붙였다. 프랑스에서는 20세기까지 계속 단두대를 사용하다가 1960년대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해, 1965년부터 1977년 마지막 사용 때까지 8회만 사용했다. 1981년 9월 프랑스는 사형제도를 법으로 금지했고 단두대도 폐기되었다

 

역사는 로베스피에르와 급진적 혁명 세력들이 너무 많은 생명들을 단두대로 처형한 것과 관련해 공포정치를 폈다고 적고 있다. 히틀러도 1930년대 자신의 정적들을 죽이는데 단두대를 사용했으며 그 숫자만도 무려 2만 명이 넘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정권은 호치민 세력(공산당)을 뿌리 뽑는다며 단두대로 처형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마지막으로 단두대를 사용한 때는 1977년이었으며 1981년에 사형제를 폐지했다.

지금은 박물관의 유물로만 전시돼 있는 단두대, 역사에서조차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단두대가 2014년 11월 대한민국의 청와대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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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상실 명령, 헌재 스스로 헌법 위반했다" | 박근혜정부 2014-12-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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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당 해산 결정 자체의 무게가 매우 엄중할 뿐 아니라 이같은 결정이 미칠 파급 효과(민주주의 후퇴)도 매우 큰 만큼 정말 법리에 맞는 불가피한 일이었는지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헌법재판기관이 모인 권위 있는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결정문을 제출하라고 요청하는 등 국제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34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결정문을 꼼꼼히 읽고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한 두 헌법학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22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긴급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편집자  

 

 I. 서론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1년여의 심리 끝에 해산결정을 내렸다. 더욱이 결정 주문에서는 "1.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와 함께 "2.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적시하여,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에 대해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직을 상실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표지를 포함해 34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결정문을 읽고 분석한 결과,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법리적인 면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결정으로서 법리를 차분하게 적용한 '사법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인용의견을 낸 8인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 믿는다. 

다음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타난 법리적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앞으로 이러한 결정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제언을 제시해본다.    

II.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나타난 법리적 문제점들 

1. 정당해산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해놓고 사실은 확대해석을 했다

결정문 전반부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8조 제4항이 1960년의 제3차 개헌에서 도입된 배경을 고려해볼 때, 정당해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라 정당해산을 어렵게 함으로써 정당의 존속을 보호하려는 '정당보호조항'으로 보았다. 헌법에 정당해산조항이 없던 이승만 정권 하에서 이승만 행정부는 진보당을 '정당 등록 취소'라는 행정처분을 통해 사실상 해산해 버렸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자의적인 정당해산으로부터 정당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1960년 개헌에서 헌법에 들어간 조항이 현행헌법 제8조 제4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해산에 대한 헌법 제8조 제4항이 정당보호조항이므로 동조항에 규정된 정당해산 사유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위배"와 관련해서는 단순한 저촉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 스스로 밝히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당연히 헌법재판소는 기각결정을 내릴 것이라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정당해산 요건들을 엄격하게 적용해도 이 요건들을 충족하여 통진당의 목적이나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히 위배된다는 것이 헌법재판관 8인의 인용의견인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 8인의 인용의견은 이 결정에서 정당해산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서 적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쟁점들에서 구체적 증거 제시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의 정당을 해산시켜 정치현장에서 사멸시키는 막중한 파괴력을 가지는 결정문이 갖추어야 할 논리적 완결성은 이 결정문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따라서 구체적 증거 제시없이 추측과 단정으로 이어지는 8인의 인용의견은 이 사건의 당사자인 통진당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대하는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2. 통진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정당의 '목적'은 그 정당의 당헌, 당규, 강령에 명시된다. 8인의 인용의견은 통진당이 강령에 명시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정한 목적이 아니고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숨은 목적'으로서 통진당의 목적이라고 단정했다. 그 근거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북한 추종세력인 자주파가 강령에 도입한 것임을 들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통진당의 창당 배경과 창당 과정 등에 대해 민노당의 창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결정문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강령에 누가 도입했느냐가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강령에 명시된 '진보적 민주주의'의 의미는 창당 후 통진당에 가입한 많은 당원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기 위해서는 강령에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도 불사할 수 있음이 명시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헌재가 결정문 서두에서 밝힌대로 "정당의 목적"이라는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3. 통진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인용의견은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자체의 활동으로 보았다. 이석기 전 의원 등의 2013년 5월 10일과 5월 12일 경기도당 회합에서의 발언 등을 포함한 이석기 전 의원 등의 '활동'이 통진당이라는 정당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근거로 이석기 위원 등이 통진당의 주도세력이며 이들이 이미 당을 장악하고 있음을 들고 있다.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가 아니다. 적어도 정당해산을 명하는 중요한 결정문에서 사용되기에는 명확하지 않은 불확정개념이다. 더욱이 왜 이석기 의원 등을 통진당의 '주도세력'으로 볼 수 있는지, 왜 그들이 통진당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는지, 그래서 결국 그들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의 활동과 '등치'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 제시가 빈약하다. 이 대목은 특히 엄정한 논증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이석기 의원 및 같이 회합을 가졌던 당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10만명 가까운 당원들의 활동도, 이석기 의원 등의 회합이나 회합에서의 발언을 승인하지 않은 통진당 집행부의 활동도, 다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으로 간주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의 활동'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 부분에서 헌법재판소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와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4.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발현시켰다?

8인의 인용의견은 통진당의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숨은 목적'과 통진당이라는 정당의 활동으로 등치될 수 있는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은 통진당 주도세력인 이석기 의원 등의 '북한추종성'에 비추어 봤을 때 저항권 행사의 긴급상황에서는 폭력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체재 전복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발현된 것이라 단정했다. '구체적 위험성'은 '추상적 위험성'과 대비되는 법률용어로서 고도의 입증책임을 요한다. 즉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현실로'야기되어야 '구체적 위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때 실질적인 피해 발생의 위험성이 '현실로' 야기된다는 것은, 폭동이나 정부전복 등의 구체적 해악 발생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함이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이란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과 폭동이나 정부 전복 등의 해악 발생이 인과관계를 가져야 함을, '현존'이란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과 폭동이나 정부 전복 등의 해악 발생 사이에 시간적인 근접성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석기 의원 등의 회합에서 나온 여러 발언들이 대법원 판결로 사실로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발언이 폭동이나 정부 전복의 해악을 발생시키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현실로' 발생시켰는가? 8인의 인용의견은 고도의 입증이 필요한 '구체적 위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에 대한 정밀한 논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등의 '북한추종성'이라는 말이 '구체적 위험성'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킬 수는 없는 것이다. 

5.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도 상실한다?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도 논리가 빈약하지만,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비례대표, 지역구 가리지 않고 상실한다고 주문에 명시한 것은 어떻게 보면 더 큰 법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당법에는 정당해산의 요건, 절차, 해산결정의 효과 등에 대해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법규정에도 해산 결정시에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 없이 월권적 권한행사를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법부의 최고법원이다. 사법부는 기본적으로 구체적 사건에서 국민이 만든 헌법과 국회가 만든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곳이지 입법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법규정이 없는 부분에 까지 판단에 나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부 측이 정당해산심판 청구시에 정당해산 여부와 함께 해산결정이 내려지면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도 상실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해달라고 청구서에 썼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판단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은 헌법재판소법에 의해 직권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인이 판단을 구한 모든 사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줄 필요는 없다. 심지어 청구인이 판단을 구하지 않은 사항도 헌법재판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직권주의이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정부 측이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대해 판단해달라고 했어도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이 '정당해산 심판의 본질에서 나오는 기본적 효력'이라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의원직 상실을 주문에서 명했다. 이것은 헌법재판소가 준입법권 행사로까지 나아간 것으로 입법권을 입법부에 부여한 헌법상의 삼권분립원리에 반하는 결정이다.  

이번의 의원직 상실 선고는 헌법상의 법치주의원리에도 반한다. 법치주의란 입법, 행정작용뿐만 아니라 사법작용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할 것을 요한다는 헌법원리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법률적 근거 없이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명했다.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으로서 법치주의의 감시자가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또한 헌재의 의원직 상실결정은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백번 양보하여 헌재가 정당해산결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해산결정을 내린 정당 소속의 선출직 공무원들의 자격을 상실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그러한 의원 자격상실 결정은 애초에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광역의회 의원, 기초의회 의원에게 모두 내려졌어야 한다. 이에 대해 헌재는 정부 측이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만을 청구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만 판단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은 직권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정부 측이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만 구했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광역의회의원이나 기초의회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을 광역의회의원·기초의회의원과 달리 차별 취급을 한 것이다. 이러한 차별취급에도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광역의회의원·기초의회의원과 달리 취급한 합리적 이유는 이 사안에서 존재하기 힘들다.        

국회의원직 상실 선고는 앞으로 또 다른 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통진당 소속의 광역의회 의원과 기초의회 의원들의 의원직도 이번 헌재 결정으로 상실되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통해 뽑힌 기초의회 의원 전원을 제외하고 비례대표로 뽑힌 광역의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의원직 박탈 결정을 내릴 전망이라고 한다. 광역의회 의원은 비례대표이기 때문에 정당 대표로 뽑혔으므로 통진당이 해산되는 이상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도 법리적으로 봤을 때 선관위의 월권이다. 광역의회 의원이나 기초의회의원들도 정당이 해산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법규정이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상실시킨 헌법재판소 주문의 어디에도 광역의회 의원이나 기초의회 의원의 자격 상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법적 근거도 없고, 헌재의 주문에도 나와 있지 않은 선관위의 광역의회 의원 의원자격 상실 결정도 헌법상의 법치주의원리와 삼권분립원리에 반하는 위헌·위법적 결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III. 이번 결정의 법리 외적인 문제점들 

1. 정당활동의 자유를 후퇴시킨 결정이다 

이번 결정은 간단히 말해 남북 분단의 상황 하에서의 체재 안정을 위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활동의 자유'를 후퇴시킨 결정이다. 이것은 헌재가 정당해산결정의 핵심근거로 삼았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오히려 역행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합성어로 볼 수 있다. 이 때 '자유주의'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18세기 시민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발전한 개념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활동의 '자유'가 더 두텁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정당활동의 자유는 앞으로 크게 후퇴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으로 통진당뿐만 아니라 다른 진보정당들에게도 자유로와야 할 정당 활동에 큰 '위축효과'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2. 헌법재판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아니라 사회분열을 불러올 수 있는 결정이다.

헌법재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사회통합적 기능이다. 한국사회내 다양한 세력의 여러 의견이나 이해관계를 헌법재판을 통해 국민적 합의로 통합해내면서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기능이자 사명인 것이다. 과연 이번의 정당해산결정이 정치적 갈등 조정을 통한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을 낳은 헌재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지켜 볼 일이다.        
IV. 결론 

그러면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문제 많은 결정들을 막을 대안은 무엇일까? 근원적인 대안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적 구성을 획기적으로 다양화하는 것이라 믿는다. 9인 중 7인이 현직 고위판사 중에서 2인이 현직 검사장들 중에서 임명된 것이 현재의 헌법재판소 재판부이다. 50대 중반 이후의 남성 중심의 재판관들, 평생을 20-30년 동안 엘리트 판사로, 엘리트 검사로만 살아온 분들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보수성에서 크게 벗어난 재판관이 존재하기가 힘들다. 헌재 재판관들이 가진 성향상의 보수성이 여과없이 드러난 것이 이번 헌재결정이다. 애초에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으로서 필요한 진정한 덕목은 판검사 생활을 통해 쌓은 민형사 사건에서의 경험보다 인권 감수성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 기본권 보장의 최후보루이기 때문이다. 

우선 판검사 출신 재판관을 줄이고 앞으로는 노동·인권 분야에서 활동한 재야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또한 가능하면 헌법재판소법과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헌법재판관 임명 자격 요건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교수, 행정부 공무원, 외교관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일본에서 대법관은 한국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역할을 동시에 한다. 우리 사법제도가 많은 부분 일본의 제도를 모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인선 부분만큼은 참조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다. 이 부분이 일본사법제도에서 가장 본받아야 할 부분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개헌을 한다면 지금의 대통령 3인, 국회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의 헌법재판관 선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독일처럼 9인 전원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통해 뽑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이 글은 <프레시안> 보도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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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민주화' 팽개치고 기득권 수호자로 | 박근혜정부 2014-12-24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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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15일 청와대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소장 박한철) 8대1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습니다. 의원지까지 박탈했습니다. 겉으로는 헌재가 통진당을 해산했지만, 박근혜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보수세력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고,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헸습니다. 하지만 진보세력은 민주주의 위기다, 제2사법살인이다고 합니다. 이들 주장 같은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성공회대)가 22일 <한겨레>에 쓴 <민주화로 태어난 헌재, 기득권 수호 첨병으로> 글이 헌재 결정을 가장 설득력있게 비판한 명문입니다.

 

그는 "독재정권때 대법원 망가져 헌법재판소가 탄생 토지공개념 무력화 등 결정으로 비난 자초민주주의 발전·기본권 보호 애초 기대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정권 2003년 노무현정권 탄생하자 사법부와 헌재는 기득권 세력이 기댈 언덕"이라고 말했습니다. 헌법 수호자가 기득권 대변자로 변질되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그는 제헌헌법에 관심을 가졌는 데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조화 이루자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래 글은 한홍구 교수 글 전문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렸다. 10여일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비행기가 아직 이륙하기 전에 활주로에 나갔다가 돌아온 것이라면,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하여 한참을 날아가고 있던 한국 민주주의가 회항을 한 것이다. 그것도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넘어 1958년 2월25일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던 때로 가버린 느낌이다. 2012년 12월4일 대통령 후보 텔레비전(TV)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충성 혈서를 써가며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기 마사오를 들먹이며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으며, 숱한 조작간첩 사건을 만들어낸 김기춘을 일찌감치 비서실장으로 등용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슬픈 운명이 앞당겨졌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심판에 대한 판결을 연내에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통합진보당 해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시민들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우선 택일의 정치학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이사는 언제 하고 장은 어느 날 담그고 하는 식으로 날짜를 민감하게 따졌다. 하고많은 날 중에서 왜 하필 12월19일이었을까? 바로 2년 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날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8월11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이른바 아르오(RO)에 대해서도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핵심적인 두 가지 쟁점에서 모두 통합진보당 쪽에 유리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2015년 1월 중에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서둘러 박근혜의 당선 2주년에 이 놀라운 선물을 바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이 인용 8, 기각 1로 갈렸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법조계에서조차 결과에 대해 놀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헌법재판관들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라면 8:1이 아니라 9:0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엄격한 증거에 의거하여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원내 제3당의 해산 문제를 다루는 판결이라면, 정부가 무리하게 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수구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댄다 한들 8:1이나 9:0으로 기각 결정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번 헌재의 결정은 1987년 6월항쟁으로 탄생한, 다시 말해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목 졸라 죽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만든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짓밟아 버렸다. 좀도둑이 들끓어 불안해서 야구방망이 하나 장만했더니 강도가 들어 그 야구방망이로 우리 식구를 쳐 죽인 꼴이다. 게다가 정당을 보호해야 할 경비원이 강도와 합세했으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이나 헌법재판소, 그리고 수구언론만을 탓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치명상을 입었는데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 것이 꼭 추운 날씨 탓일까?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처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을 때 손 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은 그동안 통합진보당이 보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를 향한 대중들의 꿈을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된 데 대하여 통합진보당 자신이 가장 통렬하고 엄중한 자기비판을 해야 하겠지만, 비단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다. 좁게는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했던 정치세력, 크게는 진보진영이라 부르든, 민주개혁진영이라 부르든 진영 차원에서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10석의 의석을 얻은 작은 승리에 대해 진보진영은 너무 교만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종북’이란 써서는 안 될 흉한 말을 만들어 내며 갈가리 찢어져 버린 것은 민주노동당 자신이었다. 간신히 2012년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모였지만, 몇 달 못 가 부정선거 논란으로 당은 또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당이 분열에 빠질 때마다 당 밖의 관심 있는 대중들은 환멸을 더해갈 뿐이었다. 옛 민주당 계열조차 지리멸렬한 상황이니 정말 바닥까지 내려가 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진보의 재구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만 집안 단속, 문단속 안 한 우리 자신의 잘못이 살인강도의 범죄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와 현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위헌정당 해산심판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많은 언론들이 지적했듯이 통합진보당에 앞서 진보당이 1958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산당했다. 제헌헌법에 정당해산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서였을까, 대한민국 정부의 전복을 획책했다는 남로당은 해산당하지 않았다. 북으로 간 남로당원들은 북로당과 남로당이 합당했다고 하지만, 남쪽에서 남로당은 그냥 사라졌을 뿐이다. 진보당은 탄생도 죽음도 모두 기구했다. 이런 운명을 예견해서였을까, 조봉암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보수 야당인 민주당이 조봉암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보당을 만들었다. 조봉암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의 주역이었으나 해방 후 전향하여 이승만 밑에서 초대 농림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이끌었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봉암은 보수 야당 민주당의 후보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던 신익희가 선거가 한창 진행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승만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은 조봉암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반공투사 이승만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마음의 대중들 다수는 자연스럽게 조봉암을 지지했다.

 

 

1956년 대통령선거는 “조봉암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유명한 말이 나온 선거였다. 자유당 정권은 대대적인 부정을 자행하여 이승만을 당선시켰다. ‘평화통일’과 ‘피해 대중을 위한 정치’를 내세운 조봉암의 폭발적인 인기에 놀란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이 다시는 선거에 나올 수 없도록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958년 1월11일 오후부터 진보당 간부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 이승만 정권의 공보실은 1월13일 조봉암을 체포했고, 진보당 사건 첫 공판(3월13일)이 열리기도 전인 2월25일 진보당의 등록을 ‘군정법령 제55호’에 의거하여 취소하고 앞으로 “진보당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하한 활동도 불법으로 인정하며 의법처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미군정 당시에 제정된 ‘군정법령 제55호’에는 정당의 등록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정당의 해산이나 등록 취소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즉 이승만 정권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행정처분’으로 진보당을 해산한 것이다.

 

 

4월 혁명 후 제2공화국 헌법을 만들면서 정당해산에 관한 규정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은 수구세력이나 헌법재판관 나으리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방어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을 함부로 해산할 수 없도록 하는 보호장치로서 마련된 것이다. 당시 헌법개정안 기초위원장 정헌주는 국회에서 개헌안 표결을 앞두고 이승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를 크레인으로 끌고 간 만행을 상기하면서 “이 자리는 아무런 총검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크레인’을 몰고 오는 군대의 발자취 소리도 들리지를 않습니다. (…) 이러한 자유로운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젊은 학도들이 많은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라고 감격해했다. 제2공화국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내각책임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정당의 역할이 각별히 중요했다. 정헌주에 따르면 “내각책임제 정치라는 것은 정당에 의한 정당의 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관용으로서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정당이 존립”해야만 했기에 정당에 대한 보호는 일반적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넘어 “정당의 자유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2공화국에서는 정당이 헌법기구로 격상되어 헌법 제13조에 “정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먼저 선언한 뒤, “단,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로써 그 정당의 해산을 명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정헌주는 이를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진보당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인 해산 처분에 의해 가지고 이것을 해산”할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에서는 법관들뿐 아니라 재야 변호사들의 대다수가 포함된 서울변호사회도 헌법재판소의 설치를 반대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실제로 구성되지는 못했다.

 

 

유신 이전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위헌법률 심판권이 대법원에 귀속되었다. 당시 사법부는 정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위상을 구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1년 6월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가배상법 제2조가 군인이나 군속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우리 헌정사상 획기적인 판결이라 찬양했고, <조선일보>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대외적으로 표방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 이 판결은 불행하게도 ‘사법파동’을 불러왔다. 박정희가 사법부에 대해 길길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공안검사들은 현직 법관 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가면서,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로 1971년 7월2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1972년 유신쿠데타로 사법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 9명을 모두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버렸고, 이들 외에 일반 법관 41명도 옷을 벗겨 버렸다. 박정희는 위헌 판결이 난 국가배상법의 군인이나 군속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아예 유신헌법에 넣어 버렸다. 이 찬란한 조항은 1987년의 개헌에도 살아남아 ‘군대 가서 죽으면 개 값만도 못하다’라는 속설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희는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권을 빼앗아 헌법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넘겨버렸다. 헌법위원회는 위헌법률심사권, 고위공무원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결정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유신정권 때도, 전두환 정권 때도 단 한번도 그 권한을 써본 적이 없다. 유신 때는 헌법위원회의 구성을 언론이 제법 크게 보도했지만, 1981년에는 사진도 없이 단신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군사정권 시기는 참으로 헌법이 죽어 있던 시기였다. 그나마 위안은 당시의 대법원에는 지금 헌법재판소에는 딱 한명밖에 없는 올곧은 법관이 그래도 이일규와 이회창 두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소수의견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이일규는 1985년 5월 박세경 변호사의 계엄포고령 위반사건 상고심에서 구 계엄법 제23조 2항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면서 “다수의견(합헌론)이 헌법정신에 눈뜨지 못하고 헌법적 감각이 무딘 점을 통탄할 따름이다”라고 동료 대법원 판사들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민주화의 자식에서 기득권 수호의 첨병으로

 

 

헌법재판소가 탄생한 것은 어쩌면 유신과 전두환 정권 시기에 대법원이 너무나 망가진 탓인지 모른다. 위헌법률 심판이나 위헌정당 해산심판의 권한을 사법부에 두느냐, 별도의 헌법재판소를 만드느냐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철수나 허영같이 독일에서 공부한 헌법학자들이 독일식 연방헌법재판소를 모델로 한 헌법재판소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탓에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권이 귀속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김철수가 헌법재판소를 과거 박정희에 의해 대법원 판사 임용에서 탈락한 분들 중심으로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1988년 9월 설립된 헌법재판소에는 첫해 39건의 사건이 접수된 데 그쳤지만, 시간이 흐르며 접수되는 사건이 많아져 현재는 연간 약 1500건 이상의 사건이 접수되는 등 20년간 약 2만6000건의 사건이 접수되었다. 모든 것이 헌법으로 통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약 2만6000건의 사건 가운데 위헌 결정이 난 것만 해도 760건이 넘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 심판 등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소수자 보호 등 긍정적인 역할을 일정하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과연 ‘민주화의 자식’으로, ‘법치국가의 꽃’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고 2003년 노무현 정권이 연이어 탄생하자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의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가 정치권력을 잃어버린 기득권 세력이 기댈 언덕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의 3부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등 선출되는 권력이 모두 민주개혁 진영에 넘어가게 되자 사법권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대통령 자리도 빼앗겨, 의회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해, 방송도 빼앗긴데다가, 종이 신문의 영향력도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믿을 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법부의 사정도 변화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사법개혁의 소리도 높아졌고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용공조작 사건이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사건에 대한 과거청산의 요구도 거세졌다. 지난 수십년간 굳어져온 법관 서열 대신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을 우대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명문고-서울법대 출신의 엘리트 법관들의 박탈감은 높아져 갔다. 노동운동 했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방향을 전환하여 늦깎이로 고시에 합격하거나, 노동자로 위장취업까지는 안 했더라도 학생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사법부의 분위기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법 엘리트 상층부의 보수화를 부추겼다. 지난 수십년간 1만명이 넘게 감옥에 보내도 아무 말 없이 조용하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가 하루아침에 엄청난 인권 문제로 대두하지 않나, 자신들이 보기에 틀림없는 거물 간첩 송두율이 핵심적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고 풀려나지 않나, 기존의 관습을 깬 새로운 판결들이 속속 나오면서 엘리트 법관들의 보수화는 심화되어 갔다. 학생운동권 출신 젊은 법관들의 진출과 진보적 판결의 빈번한 출현에 따른 불안감이 증대한 것이다. 이는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이 한때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던 영남권 와이에스(YS) 세력의 보수화를 가져와 3당 합당의 보수 대연합으로 이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토지공개념이 무력화된 것이라든가 2004년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이라 결정한 것 등은 헌법재판소가 기득권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특히 2004년을 보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서로 보수적 가치의 최후의 옹호자임을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혹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를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헌법재판관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엘리트 법관들 사이에서 여전히 대법관이 헌법재판관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일부 바이올린 주자들은 바이올린이 비올라와 비교되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2004년 수구세력의 총아 경쟁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서 각각 안타를 쳤지만 그 경쟁의 최후 승자는 <경국대전>을 끌어다가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이유로 위헌 결정이라는 만루 홈런을 친 헌법재판소였다.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 발전, 소수파 보호, 기본권의 신장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기득권의 옹호,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사안에서 예단과 편견으로 가득 찬 채 8:1이라는 압도적 편향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을 대행하는 국가기구라는 벌거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순옥 교수가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떠맡은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은 “지배체제를 부정하거나 지배체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 이단자가 생길 경우 헌법의 적인 그에게 사회적 파문을 선고함으로써 지배체제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사실 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 그 자체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것은 헌법을 스스로 짓밟은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의 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5가지로 못박고 있다. 또한 헌법 64조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제명에 관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수호의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부여하지도 않은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헌법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형법 제87조는 내란을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91조 2항에서 국헌 문란을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딱 헌법재판소가 한 짓이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한 다음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한국진보연대 주최로 ‘민주수호 국민대회’가 열려 한 집회 참가자가 민주주의의 사망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주된 이유는 통합진보당이 표방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습헌법을 찾던 헌법재판관 나으리들은 <경국대전>에는 정통한지 몰라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재건할 때 국민과 맺은 약속인 제헌헌법은 읽어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중요한 문건이다. 그러나 제헌헌법에 관한 문제가 수능시험에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국가정체성을 들먹이는 보수세력이 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제헌헌법은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될 때 좌파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중간파도 백범을 따라 남북협상에 참가했지 정부나 제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헌헌법은 우파들만 모여서 만든 것이다. 제헌헌법을 한번 읽어보기만 하면 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만들자고 떠들어대는 수구세력들이 제헌헌법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중요산업 국유화같이 골수 운동권 ‘종북’세력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통합진보당 강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내용이 제헌헌법에는 가득 차 있다. 파업을 했던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에 몰려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첨탑으로 올라가야 하는 현재의 처지에서 노동3권이 아니라 노동4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헌헌법은 순 빨갱이 헌법이다. 기업에 이익이 발생하면 노동자에게 나눠먹을 권리가 있다는 이익분배균점권을 부여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재건한 보수세력들이었다.

 

 

 

제헌헌법을 기초했고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법제처장을 지낸 현민 유진오는 제헌헌법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설서인 <헌법해의>에서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에 대해 “우리나라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조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정치적 민주주의란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이다. 대한민국을 재건할 때 국민에게 한 약속은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더하는 것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쟁점이 된 경제민주화는 사실 아주 오래된,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가 맺었던지도 잊어버린 오랜 약속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김일성이 처음 쓴 것처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올라가면 이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1945년 4월 임시의정원 38차 회의 의사록을 보면 김규광(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의 붉은 승려로 소개된 김충창=김성숙) 의원은 임시정부의 오랜 운동이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고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모두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시의정원이 임시헌장을 반포하면서 채택한 성명서를 보면 임시정부는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집권 제 원칙의 채용”을 주안점으로 삼아 헌법을 개정했다고 했다. 백범도 3·1운동 이후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이상을 가지고 혁명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한 것이 바로 현재의 임시정부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이 되면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지배를 수립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와 같은 역사가 있는데 진보적 민주주의를 계승한 것이 어떻게 내란이고 종북일 수 있을까? 진보적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우는 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사이의 역사적 계승성을 말살하는 자들이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헌정사적 정통성을 왜곡하는 자들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임시정부와 제헌헌법과 독립운동세력에서 찾아야 할까, 아니면 친일파와 국가보안법과 김창룡, 노덕술, 서북청년단 따위에서 찾아야 할까.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책은 오히려 대한민국임시정부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비해 우경화되어 있다. 유럽에 갖다 놓으면 중도우파 정도밖에는 안 될 통합진보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갓난아기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다는 중무장한 군인들의 내란이 계속되고 있다. 내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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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결정 "RO 참석자 명단 오류" | 박근혜정부 2014-12-2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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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은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여 그 근간을 훼손하고 이를 폐지하고자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성을 시급히 제거하기 위해 정당해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하여야 한다. 위법행위가 확인된 개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당 자체의 위헌성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통진당의 주도세력은 언제든 그들의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합법정당을 가장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정당보조금을 받아활동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통진당의 고유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하면서 낸 결정문 중 일부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①북한을 추종하는 주도세력이 당을 장악해 ②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숨은 목적을 ③폭력을 동원해 달성하려 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은 위헌 정당이다입니다. 이렇게 통진당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결정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종북 콘서트' 논란을 겨냥해 "자신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무언가 냄사가 나지 않습니까?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반대세력을 '빨갱이 사냥'으로 쳐냈습니다. 이승만은 조봉암을, 박정희는 인혁당을.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으로 정당해산 결정문에 적시한 명단에서 오류가 발견됐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결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헌재가 통진당 주도세력의 활동을 근거로 당 전체 활동의 위헌성을 판단한 점, 주도세력 이외의 일반 당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경계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소한 오류가 아니라는 주장이입니다. 문제의 명단은 '통진당 주도세력의 형성과정'을 서술한 부분에 나온다고 이 매체는 전했습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민혁당이 경기동부연합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은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 관련 회합 참석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며 참석자 20명을 구체적 직위와 함께 소개했습니다. 특히 헌재는 이석기, 이상호, 홍순석, 한동근, 조양원, 김근래 등 내란음모 사건의 피고인들을 차례로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20명 중 A씨는 'RO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연합뉴스>는 통진당은 이와 관련, 내란 관련 회합, 즉 작년 5월 10일과 12일의 'RO 회합' 참석자로 지목된 사람 중 A씨는 실제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고 통진당 당원도 아니라고 지적했다고 전했습니다. 통진당 관계자는 22일 "A씨는 형사소송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회합 참석자로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헌재가 명백하고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더구나 A씨는 탈당해 현재 당원도 아니다"며 "그를 주도세력으로 언급한 결정문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드러낸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황당함 자체입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내란 관련 기록을 헌재에 제출했기 때문에 A씨가 거기에 언급돼 있을 것"이라며 "RO 회합은 모르겠고 통진당 사수 결의대회 등에 한 번은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억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기억과 정확한 물증은 엄연한 차이입니다.

 

박근혜정권 법무부와 대한민국 헌재, 두고두고 오점을 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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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로 태어난 헌재, 기득권 수호 첨병으로 | 박근혜정부 2014-12-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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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렸다. 10여일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비행기가 아직 이륙하기 전에 활주로에 나갔다가 돌아온 것이라면,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하여 한참을 날아가고 있던 한국 민주주의가 회항을 한 것이다. 그것도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넘어 1958년 2월25일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던 때로 가버린 느낌이다. 2012년 12월4일 대통령 후보 텔레비전(TV)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충성 혈서를 써가며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기 마사오를 들먹이며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있으며, 숱한 조작간첩 사건을 만들어낸 김기춘을 일찌감치 비서실장으로 등용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슬픈 운명이 앞당겨졌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심판에 대한 판결을 연내에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통합진보당 해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시민들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우선 택일의 정치학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이사는 언제 하고 장은 어느 날 담그고 하는 식으로 날짜를 민감하게 따졌다. 하고많은 날 중에서 왜 하필 12월19일이었을까? 바로 2년 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날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은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8월11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이른바 아르오(RO)에 대해서도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핵심적인 두 가지 쟁점에서 모두 통합진보당 쪽에 유리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2015년 1월 중에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부랴부랴 서둘러 박근혜의 당선 2주년에 이 놀라운 선물을 바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이 인용 8, 기각 1로 갈렸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법조계에서조차 결과에 대해 놀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헌법재판관들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라면 8:1이 아니라 9:0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엄격한 증거에 의거하여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원내 제3당의 해산 문제를 다루는 판결이라면, 정부가 무리하게 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수구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댄다 한들 8:1이나 9:0으로 기각 결정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번 헌재의 결정은 1987년 6월항쟁으로 탄생한, 다시 말해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목 졸라 죽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만든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짓밟아 버렸다. 좀도둑이 들끓어 불안해서 야구방망이 하나 장만했더니 강도가 들어 그 야구방망이로 우리 식구를 쳐 죽인 꼴이다. 게다가 정당을 보호해야 할 경비원이 강도와 합세했으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재정권때 대법원 망가져
헌법재판소가 탄생
토지공개념 무력화 등
결정으로 비난 자초
민주주의 발전·기본권 보호
애초 기대에서 벗어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이나 헌법재판소, 그리고 수구언론만을 탓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치명상을 입었는데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 것이 꼭 추운 날씨 탓일까?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처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을 때 손 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은 그동안 통합진보당이 보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를 향한 대중들의 꿈을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된 데 대하여 통합진보당 자신이 가장 통렬하고 엄중한 자기비판을 해야 하겠지만, 비단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다. 좁게는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했던 정치세력, 크게는 진보진영이라 부르든, 민주개혁진영이라 부르든 진영 차원에서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10석의 의석을 얻은 작은 승리에 대해 진보진영은 너무 교만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종북’이란 써서는 안 될 흉한 말을 만들어 내며 갈가리 찢어져 버린 것은 민주노동당 자신이었다. 간신히 2012년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모였지만, 몇 달 못 가 부정선거 논란으로 당은 또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당이 분열에 빠질 때마다 당 밖의 관심 있는 대중들은 환멸을 더해갈 뿐이었다. 옛 민주당 계열조차 지리멸렬한 상황이니 정말 바닥까지 내려가 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진보의 재구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만 집안 단속, 문단속 안 한 우리 자신의 잘못이 살인강도의 범죄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와 현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위헌정당 해산심판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많은 언론들이 지적했듯이 통합진보당에 앞서 진보당이 1958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산당했다. 제헌헌법에 정당해산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서였을까, 대한민국 정부의 전복을 획책했다는 남로당은 해산당하지 않았다. 북으로 간 남로당원들은 북로당과 남로당이 합당했다고 하지만, 남쪽에서 남로당은 그냥 사라졌을 뿐이다. 진보당은 탄생도 죽음도 모두 기구했다. 이런 운명을 예견해서였을까, 조봉암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보수 야당인 민주당이 조봉암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보당을 만들었다. 조봉암은 1920년대 조선공산당의 주역이었으나 해방 후 전향하여 이승만 밑에서 초대 농림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이끌었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봉암은 보수 야당 민주당의 후보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던 신익희가 선거가 한창 진행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승만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은 조봉암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반공투사 이승만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마음의 대중들 다수는 자연스럽게 조봉암을 지지했다.

1956년 대통령선거는 “조봉암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유명한 말이 나온 선거였다. 자유당 정권은 대대적인 부정을 자행하여 이승만을 당선시켰다. ‘평화통일’과 ‘피해 대중을 위한 정치’를 내세운 조봉암의 폭발적인 인기에 놀란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이 다시는 선거에 나올 수 없도록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958년 1월11일 오후부터 진보당 간부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 이승만 정권의 공보실은 1월13일 조봉암을 체포했고, 진보당 사건 첫 공판(3월13일)이 열리기도 전인 2월25일 진보당의 등록을 ‘군정법령 제55호’에 의거하여 취소하고 앞으로 “진보당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하한 활동도 불법으로 인정하며 의법처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미군정 당시에 제정된 ‘군정법령 제55호’에는 정당의 등록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정당의 해산이나 등록 취소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즉 이승만 정권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행정처분’으로 진보당을 해산한 것이다.

4월 혁명 후 제2공화국 헌법을 만들면서 정당해산에 관한 규정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은 수구세력이나 헌법재판관 나으리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방어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을 함부로 해산할 수 없도록 하는 보호장치로서 마련된 것이다. 당시 헌법개정안 기초위원장 정헌주는 국회에서 개헌안 표결을 앞두고 이승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를 크레인으로 끌고 간 만행을 상기하면서 “이 자리는 아무런 총검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크레인’을 몰고 오는 군대의 발자취 소리도 들리지를 않습니다. (…) 이러한 자유로운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젊은 학도들이 많은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라고 감격해했다. 제2공화국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내각책임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정당의 역할이 각별히 중요했다. 정헌주에 따르면 “내각책임제 정치라는 것은 정당에 의한 정당의 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관용으로서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정당이 존립”해야만 했기에 정당에 대한 보호는 일반적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넘어 “정당의 자유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2공화국에서는 정당이 헌법기구로 격상되어 헌법 제13조에 “정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먼저 선언한 뒤, “단,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로써 그 정당의 해산을 명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정헌주는 이를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진보당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인 해산 처분에 의해 가지고 이것을 해산”할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에서는 법관들뿐 아니라 재야 변호사들의 대다수가 포함된 서울변호사회도 헌법재판소의 설치를 반대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실제로 구성되지는 못했다.

유신 이전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위헌법률 심판권이 대법원에 귀속되었다. 당시 사법부는 정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위상을 구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1년 6월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가배상법 제2조가 군인이나 군속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우리 헌정사상 획기적인 판결이라 찬양했고, <조선일보>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대외적으로 표방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 이 판결은 불행하게도 ‘사법파동’을 불러왔다. 박정희가 사법부에 대해 길길이 화를 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공안검사들은 현직 법관 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가면서,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로 1971년 7월2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탓만 할 순 없어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이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는 참담할 뿐

1972년 유신쿠데타로 사법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 9명을 모두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버렸고, 이들 외에 일반 법관 41명도 옷을 벗겨 버렸다. 박정희는 위헌 판결이 난 국가배상법의 군인이나 군속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아예 유신헌법에 넣어 버렸다. 이 찬란한 조항은 1987년의 개헌에도 살아남아 ‘군대 가서 죽으면 개 값만도 못하다’라는 속설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희는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권을 빼앗아 헌법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넘겨버렸다. 헌법위원회는 위헌법률심사권, 고위공무원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결정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유신정권 때도, 전두환 정권 때도 단 한번도 그 권한을 써본 적이 없다. 유신 때는 헌법위원회의 구성을 언론이 제법 크게 보도했지만, 1981년에는 사진도 없이 단신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군사정권 시기는 참으로 헌법이 죽어 있던 시기였다. 그나마 위안은 당시의 대법원에는 지금 헌법재판소에는 딱 한명밖에 없는 올곧은 법관이 그래도 이일규와 이회창 두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소수의견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이일규는 1985년 5월 박세경 변호사의 계엄포고령 위반사건 상고심에서 구 계엄법 제23조 2항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면서 “다수의견(합헌론)이 헌법정신에 눈뜨지 못하고 헌법적 감각이 무딘 점을 통탄할 따름이다”라고 동료 대법원 판사들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민주화의 자식에서 기득권 수호의 첨병으로

헌법재판소가 탄생한 것은 어쩌면 유신과 전두환 정권 시기에 대법원이 너무나 망가진 탓인지 모른다. 위헌법률 심판이나 위헌정당 해산심판의 권한을 사법부에 두느냐, 별도의 헌법재판소를 만드느냐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철수나 허영같이 독일에서 공부한 헌법학자들이 독일식 연방헌법재판소를 모델로 한 헌법재판소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탓에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권이 귀속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김철수가 헌법재판소를 과거 박정희에 의해 대법원 판사 임용에서 탈락한 분들 중심으로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1988년 9월 설립된 헌법재판소에는 첫해 39건의 사건이 접수된 데 그쳤지만, 시간이 흐르며 접수되는 사건이 많아져 현재는 연간 약 1500건 이상의 사건이 접수되는 등 20년간 약 2만6000건의 사건이 접수되었다. 모든 것이 헌법으로 통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약 2만6000건의 사건 가운데 위헌 결정이 난 것만 해도 760건이 넘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 심판 등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소수자 보호 등 긍정적인 역할을 일정하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과연 ‘민주화의 자식’으로, ‘법치국가의 꽃’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고 2003년 노무현 정권이 연이어 탄생하자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의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가 정치권력을 잃어버린 기득권 세력이 기댈 언덕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의 3부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등 선출되는 권력이 모두 민주개혁 진영에 넘어가게 되자 사법권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대통령 자리도 빼앗겨, 의회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해, 방송도 빼앗긴데다가, 종이 신문의 영향력도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믿을 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법부의 사정도 변화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사법개혁의 소리도 높아졌고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용공조작 사건이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사건에 대한 과거청산의 요구도 거세졌다. 지난 수십년간 굳어져온 법관 서열 대신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을 우대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명문고-서울법대 출신의 엘리트 법관들의 박탈감은 높아져 갔다. 노동운동 했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방향을 전환하여 늦깎이로 고시에 합격하거나, 노동자로 위장취업까지는 안 했더라도 학생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사법부의 분위기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법 엘리트 상층부의 보수화를 부추겼다. 지난 수십년간 1만명이 넘게 감옥에 보내도 아무 말 없이 조용하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가 하루아침에 엄청난 인권 문제로 대두하지 않나, 자신들이 보기에 틀림없는 거물 간첩 송두율이 핵심적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고 풀려나지 않나, 기존의 관습을 깬 새로운 판결들이 속속 나오면서 엘리트 법관들의 보수화는 심화되어 갔다. 학생운동권 출신 젊은 법관들의 진출과 진보적 판결의 빈번한 출현에 따른 불안감이 증대한 것이다. 이는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이 한때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던 영남권 와이에스(YS) 세력의 보수화를 가져와 3당 합당의 보수 대연합으로 이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토지공개념이 무력화된 것이라든가 2004년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이라 결정한 것 등은 헌법재판소가 기득권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특히 2004년을 보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서로 보수적 가치의 최후의 옹호자임을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혹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를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헌법재판관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엘리트 법관들 사이에서 여전히 대법관이 헌법재판관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일부 바이올린 주자들은 바이올린이 비올라와 비교되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2004년 수구세력의 총아 경쟁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서 각각 안타를 쳤지만 그 경쟁의 최후 승자는 <경국대전>을 끌어다가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이유로 위헌 결정이라는 만루 홈런을 친 헌법재판소였다.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 발전, 소수파 보호, 기본권의 신장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기득권의 옹호,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사안에서 예단과 편견으로 가득 찬 채 8:1이라는 압도적 편향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을 대행하는 국가기구라는 벌거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순옥 교수가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떠맡은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은 “지배체제를 부정하거나 지배체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 이단자가 생길 경우 헌법의 적인 그에게 사회적 파문을 선고함으로써 지배체제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사실 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 그 자체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 발전, 소수파 보호, 기본권의 신장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기득권의 옹호,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사안에서 예단과 편견으로 가득 찬 채 8:1이라는 압도적 편향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을 대행하는 국가기구라는 벌거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순옥 교수가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떠맡은 이데올로기적 억압 기능은 “지배체제를 부정하거나 지배체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 이단자가 생길 경우 헌법의 적인 그에게 사회적 파문을 선고함으로써 지배체제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만, 사실 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 그 자체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것은 헌법을 스스로 짓밟은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의 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5가지로 못박고 있다. 또한 헌법 64조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제명에 관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수호의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부여하지도 않은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헌법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형법 제87조는 내란을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91조 2항에서 국헌 문란을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딱 헌법재판소가 한 짓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주된 이유는 통합진보당이 표방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습헌법을 찾던 헌법재판관 나으리들은 <경국대전>에는 정통한지 몰라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재건할 때 국민과 맺은 약속인 제헌헌법은 읽어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중요한 문건이다. 그러나 제헌헌법에 관한 문제가 수능시험에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국가정체성을 들먹이는 보수세력이 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제헌헌법은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될 때 좌파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중간파도 백범을 따라 남북협상에 참가했지 정부나 제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헌헌법은 우파들만 모여서 만든 것이다. 제헌헌법을 한번 읽어보기만 하면 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만들자고 떠들어대는 수구세력들이 제헌헌법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중요산업 국유화같이 골수 운동권 ‘종북’세력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통합진보당 강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내용이 제헌헌법에는 가득 차 있다. 파업을 했던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에 몰려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첨탑으로 올라가야 하는 현재의 처지에서 노동3권이 아니라 노동4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헌헌법은 순 빨갱이 헌법이다. 기업에 이익이 발생하면 노동자에게 나눠먹을 권리가 있다는 이익분배균점권을 부여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재건한 보수세력들이었다.

 

제헌헌법을 기초했고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법제처장을 지낸 현민 유진오는 제헌헌법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설서인 <헌법해의>에서 제헌헌법의 경제조항에 대해 “우리나라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조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정치적 민주주의란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이다. 대한민국을 재건할 때 국민에게 한 약속은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더하는 것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쟁점이 된 경제민주화는 사실 아주 오래된,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가 맺었던지도 잊어버린 오랜 약속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김일성이 처음 쓴 것처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올라가면 이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였다. 박근혜 정권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김일성이 처음 쓴 것처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올라가면 이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1945년 4월 임시의정원 38차 회의 의사록을 보면 김규광(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의 붉은 승려로 소개된 김충창=김성숙) 의원은 임시정부의 오랜 운동이 진보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고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모두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시의정원이 임시헌장을 반포하면서 채택한 성명서를 보면 임시정부는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집권 제 원칙의 채용”을 주안점으로 삼아 헌법을 개정했다고 했다. 백범도 3·1운동 이후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이상을 가지고 혁명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한 것이 바로 현재의 임시정부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이 되면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지배를 수립할 것이라고 확언했다.이와 같은 역사가 있는데 진보적 민주주의를 계승한 것이 어떻게 내란이고 종북일 수 있을까? 진보적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우는 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사이의 역사적 계승성을 말살하는 자들이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헌정사적 정통성을 왜곡하는 자들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임시정부와 제헌헌법과 독립운동세력에서 찾아야 할까, 아니면 친일파와 국가보안법과 김창룡, 노덕술, 서북청년단 따위에서 찾아야 할까.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책은 오히려 대한민국임시정부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비해 우경화되어 있다. 유럽에 갖다 놓으면 중도우파 정도밖에는 안 될 통합진보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갓난아기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다는 중무장한 군인들의 내란이 계속되고 있다. 내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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