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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율 26%! | 박근혜정부 2015-01-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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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중 30%는 아버지 박정희 지지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정희 후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지지율이 대로 떨어진 결과가 나옵니다. 리얼미터는 29.7%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가입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6%가 나왔습니다.

 

30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따르면, 인터넷방송 <팩트TV>와 함께 29일 휴대전화가입자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 지지율은 한 달 전 조사대보다 13.5%포인트 급락한 2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정 평가는 64.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무응답은 9.3%입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주축이고, 집권 후에는 견고한 지지층이었던 50~60대와 영남지역에서도 모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50대의 경우 '긍정 37.5% 부정 52.8%'로 부정평가가 크게 높았고, 60대 이상에서는 '긍정 43.4% 부정 40.0%'로 격차였습니다. 오차범위내로 줄어든 것입니다.  

대구경북에서는 긍정평가가 앞달 49.4%에서 29.8%로 급감한 반면, 부정평가는 39.9%에서 56.8%로 급등하면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27%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아마 이 지지율이 더 충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부산/울산/경남 역시 긍정평가가 54.7%에서 22.3%로 급감한 반면, 부정평가는 37.4%에서 67.0%로 급증하면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무려 3배나 높아졌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급락해 전달보다 4.4%포인트 하락한 35.4%로 지난 2013년 8월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7.2%포인트 오른 23.3%로 7.30재보선 참패후 가장 높았습니다. 정의당도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높은 7.2%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컴퓨터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 임의전화걸기(RDD)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한국갤럽 조사도 20%대로 떨어졌습니다.  30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의 1월 4주째(27~29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전주보다 1%포인트 하락한 29%로 나타나 3주 연속 최저치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새누리당 지지층(414명)의 55%가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긍정 평가를 한 반면 37%는 부정 평가를 했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박 대통령 직무 긍정률이 60%에 미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또 80%는 현 정부가 '증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9%만이 '증세를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이와 관련, 한국갤럽은 "정부의 주장과 달리 현재 증세를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세금 징수 대상과 방식에 대한 충분한 합의나 설득이 선행되지 않은 점 때문"이라며 "관련 정책 발표 직후 반발에 직면해 서둘러 보완책을 내놓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불신이 커진 탓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7~29일 사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를 상대로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실시됐습니다. 응답자 수는 1009명(응답률 1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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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회고록에서 "노무현 탓" | 정치기사 2015-01-3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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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일부가 29일 언론에 공개됐다. 책은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이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한·미 쇠고기 협상, 대북 정책, 한·중 또는 한·일 관계에 대해 놀랄 만큼의 자화자찬과 자기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남북정상회담과 광우병 관련 내용을 일부 살표보겠습니다. 이명박은 회고록에서 북한이 다섯 차례 넘게 정상회담을 제안해 왔지만, 때마다 큰 규모의 식량 지원이나 도로 건설 재료 등을 요구해 결국 무산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연평도 포격 이후 2010년 극비 방한했던 북 보위부 인사가 대통령 면담 불발 후 빈손으로 귀국한 후 처형됐다는 이야기를 미국을 통해 전해들었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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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난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5분 국가원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통과하고 있다.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청와대에서 접견했다. 인사가 끝나자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다. 나는 남북정상회담이 과거처럼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언급하지도 못하면서, 대북 지원 논의만 하는 것이라면 회담을 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9년 10월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우리 측 인사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통보해왔다. 북한 핵 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등을 주요 의제에 포함시키되,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성 지원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침으로 확정했다." 

"북한은 임태희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서명한 내용이라며 세 장짜리 합의서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정상회담을 하는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t(톤), 쌀 40만t, 비료 30만t의 식량을 비롯하여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를 제공하고 북측의 국가 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2010년 6월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 명의로 메시지를 보냈다. 국정원 고위급 인사와 접촉하고 싶다는 요구였다. 7월 국정원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자 북측은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2010년 12월 5일 북측 인사는 비밀리에 서울로 들어왔다. 대좌 1명, 상좌 1명과 통신원 2명을 대동했다. 양측은 협의 끝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와 접촉한 북측 인사가 공개처형됐다는 것이다. 당시 권력 세습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은 측과 군부에 의해 제거됐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2011년 5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원자바오가 이렇게 말했다. '오랜 친구로서 저는 대통령께서 결심을 내려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성사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은 과거 전례대로 대가를 요구해왔습니다. 북한의 조건을 받아들이면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것이 됩니다. 남북관계도 정상화될 수 없습니다.'" 

"(2012년 1월 9일) 원자바오 총리는 회담을 마친 뒤 댜오위타이 만찬에서 "저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김정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했다. 당시는 북한이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을 서두르면서 대남 비방에 몰두할 때였다. 나는 "우리는 늙고 은퇴하는데 북한은 젊은 사람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고 했다. 원자바오는 "그렇지만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북한의 장래를 두고 '그리 오래 참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   

 

한·미 쇠고기 협상과 촛불집회 "그들(민주당)이 집권하던 때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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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이 지난 2008년 4월 18일 오후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조지 부시를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하고 있다. 


 

MB 정부 초기 엄청난 규모의 촛불 집회를 불러일으켰던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선 이명박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협상의 여지"가 좁았던 탓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광우병 사태는 한·미관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지킨 것이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줬다.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의 국가부도 사태를 막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한국의 G20 참여 등 굵직한 외교적 성과 이면에는 광우병 사태로 쌓인 국제사회의 신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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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막기 위해 광화문에 쌓아놓은 컨테이너에 ‘명박산성’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미 양국 대통령이 몇 차례에 걸쳐 약속한 일을 마무리짓지 않은 채 퇴임하겠다니, 넘겨받은 이 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이 답답했다. (중략) 뼛조각 사건과 그로 인한 수차례의 한·미 정상 간 약속으로 협상 여지가 좁아진 것은 바로 그들(민주당)이 집권하던 때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시위대가 청와대에 들어오는 일이 있더라도 인명 피해가 있으면 절대 안된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처해달라'고 당부했다. (중략) '명박산성' 비판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정말 뻔뻔함 극치를 보여준 이명박입니다. 이런 자가 대한민국을 5년 동안 이끌었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더 한심한 것은 더 문제인 박근혜가 대한민국 현 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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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안을 말하다 | 나의 리뷰 2015-01-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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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세계는 경제 위기를 맞았다. 올해는 구제역과 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경제살리기'에 올인하여 청와대 지하 벙커 안에 '워룸'까지 만들어 놓고 '경제'를 외쳤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바쁘지만 용산철거민 참사에서 보듯이 서민들과 약자들은 기댈 곳 하나 없었다. 박근혜정권도 별 다르지 않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국민열불시대'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와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본주의에 빠져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구조이다. 자본은 갈수록 배를 부르지만 노동자 삶은 팍팍해진다.

 

과연 대안은 없는가? 여기 김수행 교수가 있다. 지난 2008년 2월 정년 퇴임하기까지 20년간 서울대에서 강의한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66)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를 만나 나눈 대화를 모은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세계 경제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견줄 만큼 위기라고 하는데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공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을 토대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은 시장만능주의 같은 경제로는 해결 방법이 없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공황이론이 없다. 그러니 현 상황을 극복할 대안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시장만능주의와 맹신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시장에 맞기면 된다는 주장을 했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한쪽은 부가 흘러 넘치고, 한쪽은 배고픔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른바 ‘새로운 사회’다. 새로운 사회란 "양극화 해소→ 내수기반 확충→ 경제의 안정적 성장→ 인권유린과 증오 해소→ 사회적 타협의 확대로 나아가는 것이 유럽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을 제시한다.

 

이는 미영식 자본주의 곧 "자신들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올리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줄이고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해 점점 더 야만적인 사회를 만들어 온" 길과는 다르다. 자본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맞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이 함께 하는 경제체제, '계획참여 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다든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힘을 모아서 이 사회에 대해서 도전을 해야 하고, 그것을 지식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66쪽)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맞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김수행 교수는 "스웨던은 정부가 산림보호 요원, 폐수관리와 환경관리 요원을 양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한다. 이런 일자리를 통하여 앞으로 닥칠 엄청난 환경오염을 방지하여 돈은 더 적게 들면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요, 새로운 사회다.

 

아이들 보육하는데, 환자를 돌보는 일이나 늙은이를 돌보는 일에 인력을 투입. 실업을 한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다른 직업을 얻도록 도와주기도 하구요, 이렇게 국내시장을 성장 시키니까 그 나라들은 경제성장률도 올라가면서 복지도 잘 되죠. 이게 같이 가는 거예요. 복지와 성장,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하는 겁니다.(155쪽)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가야만 한다.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비교적 노동자와 서민들을 생각했던 노무현 정권마저 성장을 통한 복지를 지향했다. '파이'를 키워야만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다. 한미FTA  비준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있다고 하는 논리와 같다.

 

이에 대하여 김수행 교수는 이런 논리는 재벌만 더 배부르게 할 뿐 서민들 배는 채워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규제를 풀어 재벌과 다국적 기업을 배불리게 하지만 그 부는 자본가들에게 갈 뿐, 서민들에게는 오지 않는다. 이런 재벌 독점을 깨야만 진정한 민주화 사회라고 까지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재벌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는데, 시장에 맡겨버리면 어떻게 국부가 증진되겠어요? 독점하고 있는 놈들만 배부르게 되는 거죠 바로 이점이 애덤 스미스와 시장주의자들과 근본적인 차이입니다.(168쪽)

 

한국 경제는 수출이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 없는가? 김수행 교수는 "'우리는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운용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고 말해 우리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개혁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시장과 개인에게만 맞기거나, 수출만 살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일자리는 4대강 정비 같은 삽질이 아니라 환경과 보건, 교육 따위 무궁무진한 진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내수기반을 튼튼히 할 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위하여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필요하다. 지휘자가 착취와 기능이 결부되지 않고, 오케스트라 구성원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일이다. 과연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대한민국 지도자는 없는가? 모든 구성원을 더불어 살게 하는 지휘자는 없는가? 솔직히 현재 지도자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를 덮어면서 느낀 답답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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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박근혜, 부끄럽지 않은가?" |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2015-01-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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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 대표 후보가 2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경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노컷뉴스>

 

오는 2월8일 치러지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경선에 나선 문재인 의원이 최근의 연말정산 대란 및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및 내각 경제팀의 전면 퇴진을 요구한다"며 "박 대통령은 부끄럽지 않느냐"며 맹공을 펼쳤습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때 박근혜와 맞붙었던 문재인은 27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권이 서민들에게 '세금 폭탄'을 쏟아붓고 있다"며 "담뱃세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대란으로 서민과 직장인의 '유리 지갑'을 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금 폭탄'이란 말은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조중동 따위 기득권 세력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해 펴며 썼던 단어입니다.

 

"최경환 교체하라"


그는 이어 "작년 말 우리 당이 강력히 막아낸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을 다시 밀어붙이려다 국민의 반발에 부딪쳤다. 힘없는 서민들 호주머니만 가혹하게 쥐어짜고 있다"며 발언을 수위를 높였습니다. 문 의원은 박 대통령에 대해 "첫째, 국민에게 먼저 엄중히 사과해야 한다. 둘째,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셋째,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총리 한 사람 교체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그는 최경환 교체를 요구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한 명의 사퇴만으론 부족하다"며 "청와대와 내각의 경제팀을 모두 바꿔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초당적 경제 살리기에 협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길로 간다면, 당 대표가 된 후 '부자감세·서민증세 백지화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또한 당 대표가 되면 수십 년간 유지돼 온 낡은 조세체계를 정의롭고 선진화된 방향으로 혁신하겠다. '국가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정부·여당도 동참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이 장외투쟁을 염두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저는 장외투쟁이 바람직한 방안이라 생각하지 않고, 설령 불가피한 일이 생기더라도 국회를 떠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장외투쟁은 야당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정국이 꽉 막혀 있을 때 야당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대선공약 열거하며 맹공…"박근혜와의 전쟁" 

문 의원은 증세 논란과 관련 "박근혜 정부는 국가 재정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변명한다"면서 "(그러나) 본질은 이 정권의 무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틈만 나면 복지를 후퇴시킬 궁리만 한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복지수준이 높은 나라인가?"라며 "아이들 보육, 어르신들 고령연금, 기초수급권, 이 중 무엇이 그리 과한가?"라고 몰아붙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2012년 12월16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서 악수한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뉴스1>


문 의원은 증세논란과 관련, "무능으로 재정부족이 심각한 것도 화가 나는 일인데,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부족분을 메우려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라며 "재벌과 '(상위) 1% 부자'에겐 오히려 세금을 깎으면 깎았지 한 푼도 더 내게 할 수 없다고 한다. 법인세를 정상화하는 것이 해답"이라며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의원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을 열거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과 화려한 복지 시리즈 공약으로 표를 모았다"며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보면 모두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는 구호 뿐이었고, 대학생 반값등록금, 국가책임보육과 임산부 지원, 노인 기초연금 20만원,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집 없는 서민을 위한 목돈 안 드는 전세, 행복주택,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빈곤사각지대 완화, 4대 중증질환 국가책임 등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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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총리 갈았는데도 지지율은 폭락 중 | 박근혜정부 2015-01-27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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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주 국무총리를 정홍원에서 이한구로 교체(이직 청문회 시작은 하지 않았음)했지만 지지율은 폭락 중입니다. 지난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30%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리얼미터> 주간정례조사에서도 일주일새 또다시 5.3%포인트 폭락했습이다. 이 기관 여론조사에서 최저치입니다. 무엇보다 전통 지지층이자,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와 50대에서도 지지율이 40%대로 폭락했습니다.


26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9~23일 닷새간 전국성인 2천500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전주보다 5.3%포인트 하락한 34.1%로 전주에 세웠던 집권후 최저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2015년 1월 3주차). 리얼미터 제공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전주보다 6.4%포인트 상승한 58.3%를 기록하며 60%을 앞두고 있습니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강한 부정평가가 40.3%로, 처음으로 40%를 넘었습니다. 민심이 박근혜 대통령을 떠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름/무응답'은 1.2%p 줄어든 7.5%였습니다. 박 대통령 지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일간으로 보면 19일(월)에는 전 주 주간집계 대비 2.8%p 하락한 36.6%로 시작, 20일(화) 35.0%, 21일(수) 33.2%로 이틀 연속 하락했습니다. 연말정산 5월 재정산 소식과 이석기 전 의원 내란선동 유죄 확정 판결이 있었던 22일(목)에는 34.3%로 반등했으나, 23일(금)에는 국무총리·청와대 인사개편에도 불구하고 34.2%에 머물러 인사개편이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서도 지난주보다 무려 13.5%포인트나 폭락한 45.4%의 지지율을 보여 핵심지지층까지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의 부정평가는 45.2%로, 긍정평가와의 격차가 불과 0.2%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물론 이들 지역은 언제든지 박 대통령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전통 지지층입니다.

이어 경기-인천 9.3%포인트(39.4%→30.1%), 부산-경남-울산 8.0%포인트(44.7%→36.7%), 광주-전라 7.7%포인트(21.5%→13.8%) 순으로 낙폭이 컸습니다. 연령별로는 모든 연령층에서 하락한 가운데, 50대에서 8.3%포인트(52.5%→44.2%), 60세 이상 7.6%포인트(65.5%→57.9%) 순으로 낙폭이 컸다. 30대 4.8%포인트(23.0%→18.2%), 20대(19세 포함) 3.1%포인트(23.7%→20.6%), 40대 2.6%포인트(29.8%→27.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큰 힘을 보탠 5060도 떠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차기대선후보 지지도는 문재인 의원이 1.2%p 상승한 16.7%를 기록,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16.0%로 2주간 하락을 멈추고 1.6%p 반등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7%p 오른 13.2%로 3위, 안철수(8.1%), 홍준표(6.4%), 정몽준(6.1%), 김문수(5.8%), 안희정(5.7%), 남경필(3.7%) 순이었습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무선전화(50%)와 유선전화(50%) 병행 RDD 방법으로 조사했고, 응답률은 전화면접 방식은 20.3%, 자동응답 방식은 5.6%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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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지막까지 웃은 사람, 체게바라 | 나의 리뷰 2015-01-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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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전 쿠바 혁명은  피델 카스트로보다  잊지 말아야 할 혁명가가 있으니 '체 게바라'다. 체는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 정권을 끝내며 아바나에 입성했지만 1965년 4월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로 향했다. 볼리비아에선 또 다른 독재정권 바리엔토스 정권이 인민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혁명가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1967년 10월 9일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삶을 마감했다.

 

영원한 혁명가 '체'를 잊을 수 없어, 많은 이들은 '체'를 혁명의 우상으로 가슴에 담았고, 그를 기념하는 책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페르난도 D. 가르시아와 오스카 솔라가 지은 <CNE, 한 혁명가의 초상>이다.  

 

<CNE, 한 혁명가의 초상>는 게바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긴 여정을 사진 400여점으로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가로 활동하던 시절까지 체가 남긴 흔적들 따라간다. 또 그동안 공개 되지 않았던 사진들과 체 게바라 자신이 남긴 글 외에도 혁명 동지였던 피델카스트로가 쓴 글들이 실려있다.

 

알고 있듯이 체는 가난한 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선조 중에는 스페인 총독 출신도 있었고, 아버지는 지리학자이면서 탐험가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무신론자였다. 주류 가문에서 태어난 그가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평생을 받쳤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천식'을 주었다. 천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대담한 행동과 돌파력을 가지게 하였고, 고등학교 시절 그는 천식환자들에게는 절대 금지인 럭비를 하는 등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피해가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천식과 맞서 싸웠던 체는 4500km의 여행을 마치며 단순히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게릴라 투쟁에 몸담게 되고,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끈 혁명가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떠난다. 자신과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한다. 그는 다섯 나라를 지나는 8개월 동안 가난한자들을 만났다. 나환자를 만났다. 여행 도중 그는 많은 기록을 했지만 그 땐, 할아버지 로베르토 게바리처럼 '탐험가'로서의 시각이 더 컸다. 하지만 그가 여행을 끝냈을 때는 달랐다.

 

"나는 민중의 편에 설 것이며, 교의의 해부자이자 교조의 정신분석가인 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바리케이트와 참호를 공격하고, 붉은 피로 내 무기를 적시하리는 것을 안다. 나는 싸움을 준비하며 내 몸을 긴장시키고 내 존재를 성소로 준비함으로서 승리의 노동계급과 무산자의 처절한 외침 속에 깃든 감동과 희망을 찬양할 것이다."(39쪽)

 

그는 의사와 탐험가가 아니라 게릴라 전사로서 거듭났고, 그 삶을 성실히 살았다. 피델과 많은 이들을 만나 쿠바 혁명을 이룩했다. 혁명을 성공했다면 권좌에 앉이 권력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떠났다. 궁금했다. 권력에 탐닉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는 볼리비아로 갔을까?

 

체의 마지막 모습 <서해문집>

 

<CNE, 한 혁명가의 초상>은 어떻게 답했을까? 1964년 '체'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1964년 12월 체는 알제리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는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공존을 인정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의 공존을 유지해왔습니다." (151쪽)

 

이는 소련을 겨냥한 경고였다. 사회주의란 겁떼기만 걸쳤을 뿐 알맹이는 착취하는 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스크바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모스크바와 결별할 수 없는 피델을 위하여 체는 페델과 '정치적 결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델은 작별 편지를 체에게 보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쿠바의 모든 책임을 면제시켜주려 하오 .쿠바가 나에게 보여준 모범에서 제외하고 말이오. 만약 내가 다른 하늘 밑에서 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내 머리 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쿠바의 인민들, 특히 바로 당신일 것이오."(164쪽)

 

"끊임없이 전진하지 못하는 혁명은 혁명의 후퇴와 다를 바 없"으며 "나는 괜찮소.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고, 또 그럴 것"이라 했던 체는 1967년 10월 8일 생포되었고, 다음 날 볼리비아 정부 지시와 미국 CIA의 묵인 하에 혁명가로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체는 마지막 순간에도 웃음을 머금었고, 시신은 자신의 적들에게 조소를 남겼다. 그들은 그가 정말로 생명을 잃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 가장 오래까지 웃는 자는 바로 그였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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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특급 정보 공개하면 대통령 하야도…” | 박근혜정부 2015-01-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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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처음 보도한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 감찰보고서. 세계일보 제공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조사해 23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0%로 취임 뒤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주보다 5%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이 조사는 전국 19살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했으며,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응답률은 17%였습니다.

 

급했는지 박근혜정권은 총리를 정홍원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이완구로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비시설장 김기춘과 이른바 '문고리3인방'은 교체해지 않았습니다. 과연 민심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분명한 것은 지지율 50%이상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났습니다. <한겨레>는 24일자 '대통령 하야'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중앙 일간지가 '대통령 하야'를 직접 언급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겨레>는 이날 "세계일보가 특급 정보 공개하면 대통령 하야도…" 제목 기사에서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가 통일교 내부 관계자들에게 배포한 문건을 통해 "세계일보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7~8개의 청와대 특급 정보가 공개된다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잘 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한겨레>

 

 

"세계일보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7~8개의 청와대 특급 정보가 공개된다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건으로 정권 말기 때 나타나는 현상이 벌써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15년을 지나고 나서 집권 4년 차가 되어 사실상 집권 말기 현상으로 청와대가 통일교를 상대로 보복할 여유가 없습니다. 설령 보복을 하겠다고 대든다고 하여도 국민 여론과 야당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청와대의 압박에 밀려 세계일보 사장과 기자들을 해임한다면 청와대와 맞설 핵무기 7~8개는 무용지물이 되고 청와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버립니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권력 속성과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 발가벗는 격이 됩니다. 인사 조치 한다고 해서 청와대가 감동하여 우리를 살려준다고 믿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여겨집니다."-"세계일보가 특급 정보 공개하면 대통령 하야도…"

 

이에 대해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하며 최후까지 싸워보자는 강경한 태도"라며 "더 나아가 신도대책위는 이 시점에서 이미 정부의 세무조사까지 미리 내다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겨레>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비롯된 청와대와 세계일보의 긴장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국세청 세무조사가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따라 통일교 쪽의 대응 수위는 달라질 것이다. 또 지난 1월5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세계일보 기자들의 명예훼손 혐의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수사 강도에 따라 세계일보의 대응도 정해질 것이다. 잠복돼 있는 뇌관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윤회 문건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과연 박근혜 하야를 끌어낼 수 있는 자료를 통일교는 갖고 있을까요? 정말 있다면 <세겨일보>는 이를 보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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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지휘관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름 없는 시민이 나라를 살린다 | 나의 리뷰 2015-01-2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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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두 달에 한 번은 영화를 본다. 지난 해도 <플랜맨>, <변호인>, <표적>, <해적>, 그리고 <명량>을 봤다.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장군인 줄 알았지만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모든 장수와 백성까지 왜군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순신 장군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12척으로 330척과 싸워 이겼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유비문환’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2323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4)이 일어났을 때 조선은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 1590(선조 23) 통신정사(通信正使)로 선임되어 일본에 갔던 황윤길이 왜군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통신부사 김성일도 이를 알았지만,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싸우는 바람에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황윤길과는 다른 보고를 했다. 같은 당이 아니라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만약 선조와 조정이 황윤길 보고를 받고 준비했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10일 만에 한양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양만 잃은 것이 아니라 7년 동안 백성들은 참혹한 고통을 당한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백성을 더 고통에 빠지게 한 것이다.

유성룡은 이 같은 비극을 후손들이 다시는 겪지 않도록 책을 썼다. <징비록>이다. '징비懲毖'<시경> '소비小毖'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에서 따왔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어처구니가 없고, 안타까웠다. 선조와 신하 그리고 장수들은 정말 무지했다. 우리나라 지형을 왜군이나 명나라 장수보다 더 몰랐다.

신립 장군이 있다. 용맹한 장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혜가 없었다. 왜군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임진년 41일 유성룡은 신립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라며 왜군이 쳐들올 것이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립은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며 별 것 아니라고 말한다.

유성룡이 거듭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갖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라고 했지만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라고 말한다. 조총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조선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신립 조차 모른 것이다.

유성룡은 다시 한 번 “나라에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면 병사들은 모두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때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 병사들도 강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며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신립은 유성룡 말을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조선에서 맹장 중 맹장으로 불렸던 신립마저 이 같은 판단을 하고 있으니 다른 장수가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신립이 유성령을 무시하고 떠난지 불과 13일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준비하지 못한 신립은 우리나라 지형도 몰랐다. 왜군을 막으려면 조령에서 막아야 했다. 하지만 신입은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과 싸우는 것을 택했다. 탄금대는 늪이었다. 늪은 빠지는 곳이다. 더구나 기병을 통해 전투를 하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인 나도 말을 타고 늪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왜군을 막을 수 있는 요새가 있었다. 조령이다. 만약 조령에서 왜군을 막았다면 이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립 장군은 조령을 버렸다. 결국 조선군은 탄금대에서 참패를 한다. 용맹만 있고, 지혜가 없는 장군은 전투에서 질 뿐 아니라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가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총병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68)

아빠는 말했다. 장군 한 사람이 판단을 잘 못하면 부대 전체가 전멸한다고. 믿지 못했는 데 조령이 아니라 탄금대에서 전투를 준비한 신립 장군을 보고 맞다는 생각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신립 같은 장군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장군은 용맹해야 한다. 하지만 용맹함보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신립 장군만 아니라 임금인 선조도 마찬가지다. 그는 도망가기 바빴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왕. 평양까지 도망가고, 나중에는 의주까지 간다.

백성들은“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며 “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를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라고 분노했다.

말로는 ‘백성을 위한다’면서도 정작 전쟁이 나자 자기 목숨 지키기 바쁜 왕과 신하들. 요즘도 이런 지도자들이 많다. 아빠는 자주 말씀하신다.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때는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당선되고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신들 배를 채우는 일을 많이 한다고. 그 때나 지금이나 시민만 힘들다. 전쟁은 참혹했다.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려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181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모른다.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겪었던 일을 한 번씩 말씀하신다. 할머니 말씀을 들어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은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과 높은 자리 앉은 분들이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싸우고 다투지 말고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일하면 된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시민을 생각하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나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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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1)는 '황군장교'로 일왕에 충성했다 | 박정희 2015-01-2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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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습니다. 박근혜는 박정희 명예회복을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리고 박정희가 가업을 이었다고 했습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과연 박정희는 누구일까요? 약 20여회에 걸쳐 '박정희는 누군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도 무조건 순종하라며 독재했다. 우리나라도 독재해야 한다"

 "위대하신 대통령이 떠난 지 34년이 지났다"

 

지난 2013년 10월 25일 박정희 34주기 추모 예배때 목사들이 한 말입니다. 남유진 경북 구미시장이 11월 14일 경북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96주년 기념 행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박정희를 추앙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와 '황군장교'라고 비판했습니다. 우리 현대사 정치인 중 이렇게 극명한 평가를 받는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 과연 박정희는 누구일까요? 몇 차례 걸처 박정희가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박정희는 일본제국주의에 충성한, 일왕에게 충성한 '황군장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박정희를 '친일파'로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를 친일파로 규정한 것은 군 분야에서 인물 선정 기준 중 하나가 위관급 이상 장교와 오장급 이상 헌병으로 재직한 자였습니다. 박정희는 1940년 4월 신경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뒤 1942년 10월 일본 육사 본과 3학년에 편입, 졸업 후 1944년 7월 황군(皇軍) 육군 소위로 임관됐습니다.  

 

백무현씨는 <만화 박정희>에서 "박정희가 만주에 간 이유는 다소 복합적이었다. 부인과의 불화로 인한 도피 심리와 만족스럽지 못한 교사 생활 또한 권력과 출세욕이 함께 작용했다"(<만화 박정희 1>- 64쪽)고 말합니다. 박정희가 만주에 간 것은 처음부터 황군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때려잡겠다는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박정희가 들어간 '만주군관학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기 위해 친일 주구들을 훈련시켜 양성하는 학교였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민족 독립과 해방을 위해 상해,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몸을 던져 일제와 투쟁하던 시기에 박정희는 독립군들을 때려잡기 위해 친일 주구들을 양성하는 만주군관학교에 스스로 입교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충성을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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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군장교 박정희

 

"나는 오늘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천황 폐하와 부의 황제 폐하께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1942년 3월 만주육사 졸업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1939년 3월 1일자 '만주신민'에 기고한 혈서

"혁명을 완수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것은 한-일 양국이 운명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혁명정부는 이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한일 회담이 조기에 타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일문제에 대해 마음으로 성의를 보인다면 우리는(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처럼 많은 청구권 자금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배상 등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1961년 11월 12일 일본 이케다 총리와 공식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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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滿洲日報 1942.3.24)

 

박정희는 '황군장교'로 일왕과 일제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다카기 마사오였습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쿠데타로 말입니다. 대한민국 비극입니다. 광복군 출신 장준하 선생 황군장교 박정희에게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우리 독립 광복군의 총부리를 겨누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박정희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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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율, 뚝뚝뚝 떨어지는 소리나네 |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2015-01-2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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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뚝뚝뚝 떨어지는 소리납니다. '정윤횐 비선논란', '담배세인상', '김영한 항명파동', '음종환 K,Y발언' 그리고 '13월정산' 따위 연이은 악재로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제는 30%선 마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21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3.2%로 조사됐다고 <고발뉴스>는 22일 보도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추세를 보면 지난 14일 40.6%에서 15일에는 39.4%로 40%선이 무너졌고, 16일 38.8%, 19일 36.0%, 20일 35.0%, 21일 33.2%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무려 일주일새 7.4%포인트나 폭락해버렸습니다. 부정평가는 앞날 58.4%에서 58.8%로 높아졌습니다.

 

대통령 '지지율 30%'는  통치불능 레임덕 상태에 빠져든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럼 현 상황은 박 대통령에게 취임 후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발뉴스>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리얼미터>의 지지율 조사가 <한국갤럽> 조사보다 4~5%포인트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35%로 취임 후 최저치였숩니다. 단정할 수 없지만 이렇게 가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음 조사 결과에선 30%대 붕괴 가능성도 있습니다.

 

 

박근혜는 저 웃음으로 뚝뚝 떨어지는 지지율을 올릴 수 있을까요?

 

특히 새누리당 지지층과 50대 연령층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이탈이 나타나 더 위기입니다. 21일 새누리당 지지층의 박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72.4%를 기록해 이 역시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74%라는 것이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 14일 86.2%에서 일주일 만에 무려 15%포인트 가까이 추락했습니다. 50대의 긍정평가도 45.4%에 그쳐 부정평가 50.1%와 역전됐습니다. 알듯이 50대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입니다.

 

<리얼미터>는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5년 단임제 하에서 피할 수 없는 징후일 수도 있겠지만, 당청 지지율의 교차 시점이 예상보다는 빠르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이번 여론 조사는 20~21일 이틀 동안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임의걸기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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