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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을 새롭게 바라보며 | 기본 카테고리 2005-06-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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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적, 정의를 훔치다

박홍규 저
돌베개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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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의적 이야기는 로빈 후드로부터 시작한다. 셔우드 숲에서 생활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농민들에게서 환영받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의적은 부자의 재물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형상으로 제일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저자의 의적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나타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이름들이 의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정치적 의적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단순한 도둑에서 정치 변혁을 꿈꾸는 이까지 의적이라는 울타리에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씩 살펴 본다.

내 기억 속의 의적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쾌걸 조로가 칼싸움 후 그어 댄 문자는 자기 과시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내일을 행해 쏴라”에서 주인공들이 하나 둘 셋과 동시에 양 손에 총을 잡고 뛰어 나가는 모습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타개하려는 몸짓을 본다. 개인의 움직임이거나 집단의 움직임이거나 간에 그들은 사회에 반항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의적, 정의를 훔치다. 무언가를 훔쳤으니까 도둑이다. 그 도둑이 훔친 것은 대중의 마음이다.법학자가 쓴 도둑 이야기는 여러 형태의 도둑을 보여준다. 그가 만들어 놓은 마당에 헤쳐 놓은 도둑들은 한 시대의 유물이다. 그러나 저자 말대로 박물관에 갇힌 시체가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그런 도둑들이다.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엄청난 도적도 있다. 상당히 많은 대중이 그들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그들은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의적이 된다. 그들이 반항한 체제가 봉건제도이건 제국주의이건 자본주의이건 간에 그들이 희망한 것은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라는 마흐노의 말로 대변되는 동등함이었다.

저자는 전세계를 두루 섭렵하며 당대의 도적을 섭렵한다. 바다이건 육상이건, 산이나 초원이나 상관하지 않는다. 법은 있으나 대중을 위한 법이 아니고, 대중은 있으나 그 대중을 위하는 이가 없는 곳에서 의적은 탄생한다. 저자는 의적은 대중이 있고, 악법이나 허술한 법이라는 법체계의 모순성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의적들을 따라 영국에서 시작하여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거쳐 중남미를 돌아 인도,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오면서 많은 의적과 그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을 나열한다. 비슷비슷한 개별적 존재로서 해적을 해석함은 새로운 시각이다. 그들이 나름대로의 규율을 가지고 해적 생활을 하였음은 선장을 선출하는 결투에서 보여진다.

의적은 법의 잣대로 보면 범죄자요 범죄 집단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닌 한, 그 법은 잣대로서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새로운 잣대를 원하는 움직임이 의적이라는 형태로 발로될 때 이들 집단은 새로운 혁명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혁명 집단을 마음으로 따르는 대중이 있을 때 그들은 의적이라는 범주로 분류되어 그들 스스로가 영웅으로 대접받기를 원하지 않았더라도 한 시대의 영웅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인 목적을 가졌건 아니면 단순한 도적이건 간에 그들은 대중의 사랑과 흠모를 받았다. 그들이 꾀하는 것이 사회의 변혁이건 현재 생활의 개선이건 간에 그들은 대중과 함께 하였다. 그것이 의적이 된 이유이고 아직도 이야기거리가 되는 이유이다. 역사는 그렇게 변화하여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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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줄, 사랑 그것이 가져다 준 행복 | 기본 카테고리 2005-06-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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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저
푸른숲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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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 장음계에서 제3음과 7음을 반음 낮춰 연주하는 재즈·블루스의 독특한 음계. 재즈와 블루스만이 갖는 미묘하면서도 독특한 음계로, 주로 멜로디를 이끌 때 단순한 연주 기법보다는 특유한 느낌·감정 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저자가 사전적 의미로 블루노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게 책의 내용과 흐름은 독특한 음계를 가지고 다가 온다. 정윤수와 문유정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음은 각자의 음을 잘못된 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각자의 음색이 너무도 뚜렷하기에 잘못된 음으로 인식되고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것이다. 서로의 음은 다른 선 위에 존재하고 있기에 서로의 음에 무관심할 뿐이다. 잘 어울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음들 사이에 이음줄이 없었기에. 인위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음을 더 멀리 떼어 놓게 된다. 그러나, 모두 인생이라는 오선지 위에 있음을 아는 순간부터 스스로 자기의 음계를 낮추어 만남으로써 특유한 화음을 만들어 준다.

정윤수는 자기가 가는 길의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길을 만들기도 전에 파헤쳐 놓고 뒤섞어 버렸다. 너무 힘이 들다고 길이 아닌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라고 하였다. 어린 아이들의 손으로 그 길을 닦아가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의 길이 아니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그마저 은수를 보내면서 길의 의미조차 놓아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걷는 마지막 길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앞으로 가기를 포기해 버렸다.

문유정이 지나온 길은 적어도 남이 보기에 포장이 잘되고 대체로 평탄한 길이었다. 포장된 길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 거리가 아니다. 다만 포장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모난 돌이 박혀 있건 허술한 모래로 뒤섞여 있건 그들은 평탄함과 반듯한 포장만을 볼 뿐이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시샘의 눈초리로 볼 뿐이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이는 발바닥부터 찔러 들어오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아픔을 꾀병으로 치부하려는 주변의 눈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 아픔은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 가기만 한다. 세 번의 자살 시도는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에 의해 희석된다. 정윤수와 만남은 무관심의 시간을 지나 마음을 나누고 주위에 화해의 손짓을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수녀 고모는 그 길이 다르지 않음을 안다. 어차피 하나의 길로 모여짐을 안다. 그래서 안타깝다. 서로를 보지 못하는 눈에 조바심이 난다. 그 길이 같은 길임을 그의 작은 힘으로나마 알릴 수 있도록 애쓴다. 같은 길에 동행 시키려고 애쓴다. 또, 이렇게 애쓰는 이들이 많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이음줄을 건네주고 떠난다.

이들은 서로 만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간다. 길가에는 훼방을 놓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계속 가기만 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가야만 한다고 하기에 앞으로 가기만 한다. 저 쪽의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간다. 그러나, 손을 내밀고 몸을 기울여 소리를 내어 보면 그 길이 너무도 가까이 있고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안다. 두 길이 마침내 만난다. 그 길의 끝에서 회한과 용서가 뒤섞여 나타나면서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낸다.

서로 따라 잡는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시 멀어진다. 용서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공지영의 글은 또 다시 날카롭게 빛난다. 있을 법 하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과정의 자취를 아슬아슬하게 따라 간다. 꽉 닫힌 마음이 열리는 과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간다. 새롭게 눈 떠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갈 뿐이다. 태백 산골의 어린이들이 처음 보는 바다는 문유정이 새롭게 만난 세계의 표현이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음은 판박이되는 세월의 모습에 파묻히기 보다는 있는 현실을 그대로 마음에 담고자 하는 의도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짐이다.

정윤수의 블루노트는 그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애의 시작을 만들어 낸 가족의 해체. 이를 수용하지 못한 사회. 그 속에서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움직여버린 그의 삶. 다른 사람을 살피기는커녕 자기 혼자도 지킬 수 없던 그의 삶. 그것이 대상 없는 분노로 나타나고 타인의 삶까지 뭉개버린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모든 것을 용서로 묶어 마무리해 버린다. 그것이 어설프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화해와 용서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쓰라림에 멈추어 버린 과거가 아니고, 뒤얽히고 꼬인 지금의 허무한 생활이 아니고. 언제나 우리 곁에서 살아 있던 사랑으로 가는 길을 보여 준다. 저 밑바닥에 숨어 있는, 그러나 쉽게 끄집어내지 못하는 사랑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형수와 대학 교수의 만남이기 이전에 사회가 버린 이와 사회에서 벗어나 버린 이의 우연인 듯 하면서도 필연적인 만남이다. 정윤수가 덮어 쓴 누명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 다른 이에게 덮어 씌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유정이 간직한 아픔과 고뇌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공지영은 이것을 찾아내어 한 올 한 올 꿰어 우리 앞에 풀어내 놓는다.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조심스레 외친다. 또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 행복한 시간을 찾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알려 준다. 간결하지만 많은 마음을 담은 블루노트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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