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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거침없는 논쟁, 그 이유와 대안 | 기본 카테고리 2010-02-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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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저/김승욱 역
알마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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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관한 논쟁은 모든 논쟁의 시작이다. 믿음에 관한 논쟁은 선한 삶과 정의로운 세상에 관한 모든 논란의 시작이다.’

 

종교를 갖지 않고 있다. 종교에 관해 이야기할 때 쉽게 수긍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도 않는, 쉽게 말해 교묘하게 피해가는 편이다. 그러나, 남에게 그의 종교를 강하게 밀어붙여 강요하는 것을 받는 경우는 싫은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 우리가 종교를 믿는 사유들을 따지기 이전에 잘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들이대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런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책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강한 반감이 원인 중의 하나인 듯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볼 때의 반감도 하나의 이유이다.

 

도발적인 제목이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일단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는 뜻일까? 왜냐하면 신을 믿는 것에 대한 반론이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 하더라도 위대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독설가로 평이 나있는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거침없이 풀어 헤친다. 그 속에서 잠시 혼란을 겪는다. 제대로 정신차리고 읽어야 한다. 종교에 대한 거리낌 없는 비판이 연속된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기에 무사히 읽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신앙심 깊은 신자라면 몇 쪽 넘기지 않고 저 멀리 내팽개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있는 것 같은, 아니 있는 것이 내게는 편하게 느껴지는 것 때문이라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면을 정확히 파고들며 종교가 펼치는 만행과 부적절함을 드러낸다. 그 결과가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것도 매우 강한 표현이다.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책의 두께를 인식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여러 인물들의 말을 인용하고 하나씩 비판하고 동조하는 일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보다는 시종 일관 저자가 견지하는 자세가 너무도 확고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저자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하나의 목표로 향하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본다.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 네 가지를 제시한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최대한의 노예 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종교와의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 토대이다. 여기에 과학의 발전으로 밝혀지는 사실들,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러 분야에서 일어난 실망스런 일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을 얽매는 사례들을 적나라하게 펼친다. 기본 토대로 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며 펼쳐진다. 그러나 단순히 흥미로움만을 좇지는 않는다.  

 

동서양 고금에서 보여진 종교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일들, 그리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일들은 저자가 지목하는 사례들이 된다. 우리가 매달리는 문헌의 허구성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 그것은 저자가 공격하기 쉬운 계기를 만든다. 음식, 건강, 계시 등 여러 분야에서 종교라는 이름이 만들어 낸 좋지 않은 사례들을 짚어나간다. 역사를 통해 위대한 학자로 배웠던 이들의 논리도 무참히 깨버린다. 종교가 조작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신앙을 오히려 타락시키고 이성을 모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앙은 자유로운 탐색과 그 탐색이 불러올 해방적인 결과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바탕으로 해서 그러한 자유로움을 찾을 것인가?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종교의 진통효과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위약 효과와 색안경이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살짝 비켜가는 것인가? 아니다. 위약 효과를 경계한다고 하며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한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을 그것으로 얽매는 사실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종교의 관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스로 종교라는 틀에 모든 것을 맞추고 그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매우 강하게 부정하는 모습들이 너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경우들을 본 적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살피며 서양의 종교가 가진 문제점을 이야기한 후 그의 화살은 동방으로 건넌다. 동방을 거론하는 이유는 새로운 해결책으로 동방의 종교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 종교도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신앙은 위협으로 본다. 종교가 저지른 실수와 범죄는 그 종교의 원래의 가르침을 살펴봄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창조 설화, 피의 희생 제물, 속죄, 영원한 형벌, 불가능한 임무 등을 말하며 종교가 행한 가식적인 일들을 다룬다.

 

저자는 명확한 증거와 기존의 생각에 대한 철저한 반증을 통하여 결론의 길로 향한다. 어떤 결론을 맺으려고 강하게, 날카롭게 종교를 비판하였는가? 종교의 변화를 슬며시 말한다. 이제까지 확고한 자세로 일관했던 종교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증거들이 점점 쌓여감에 따라 새로운 상태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라는 결론으로 향한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운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담론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모조리 없앤다는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이제까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것들도 새로운 관점에서의 논의가 가능하다고 한다.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 권리를 요구한다.

 

대단하다. 대담하다. 거센 비판과 반대 의견을 각오하고 써 내려간 것 같다. 읽는 내내 강한 반발이 다가올 것 같은 초조함이 밀려드는 듯 하였다. 저자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언제라도 도망갈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종교라는 주제는 내게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새로운 발견으로 이루어진 새 세상, 연구하는 기쁨을 우선으로 하는 생각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걸음이 되리라는 것을 믿기에. 저자의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새로운 관점의 논의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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