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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품집 중 [돌아오다]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10-06-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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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0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김중혁 등저
문학동네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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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을 지키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그곳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전과 다른 기다림일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떠나 보낸 후 새롭게 나를 찾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그들의 실체가 곁에 없더라도, 언제나 그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다릴 수 있다.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곳에서.

 

다시 돌아오다. 할머니와 화자인 나, 둘 만의 공간을 만들어 온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지만 같은 응어리를 가슴 한 켠에 담은 채 지내온 것이다. 변화 속에서 변화하지 못한 채, 아니 변화를 두려워한 채 살아온 것이다. 큰 상실감이 가져다 준 공황 상태를 벗삼아 지내온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빨리 편승하지 못한 채 지내게 한 아픈 기억들은 무엇일까?

 

집안에 누가 있는 것 같아. 할머니의 인식에는 떠나간 이들이 남아 있다. 그 인식은 할머니의 행동에 제한을 가한다. 마음 속으로 찾고 있는 그것, 그것을 나도 같이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할머니의 고집으로만 치부할 뿐이다.

 

우리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와 나, 두 존재 만이 이 너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다. 세를 놓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낡은 목조 건물의 자태는 무언가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 속의 인물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밟으면 깨질세라 조심스러움이 그득하다. 할머니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흔적들은 소리 없이 살아 움직이며 집 안의 인물들의 의식을 건드린다. 그러한 건드림이

 

봄이 되었지만 정원은 여전히 겨울처럼 황폐했다. 흐르는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 할머니의 존재는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려 한다. 무언가 풀지 못한 큰 숙제를 짊어진 것처럼 할머니의 기억과 행동은 정지해 있다. 그렇기에 외부의 변화는 그들 사이로 끼어 들지 못한다. 그저 안으로만 상처를 키울 뿐이다.

 

2층 내 방 창가에 여자가 서 있다. 새로운 전환을 보인다. 내가 보고 싶어하던, 알고 싶어하던 이야기를 우연히 찾아 온 윤옥을 통하여 보고 듣는다. 윤옥은 메신저이자 치유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 가까이 하면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은 기억 저 편에 자리하고 있던 상처의 원인들이다. 정신병에 걸린 아빠의 방화, 그리고 자살은 할머니의 아픔으로 남는다. 엄마의 아픔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의 아픔으로까지 남는다. 가족이 해체되는 비극은 상상 이상의 큰 아픔으로 남는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며, 주위 사람들이 풀어주지 못한다. 겉으로 표시하지 않아도 내면 깊이 자리잡는다. 가족의 상실은 긴 시간 동안 상처로 남아 온다. 할머니의 존재가 이를 덮을 수는 없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비어 있음의 아픔을 처절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아픔은 할머니의 죽음과 윤옥의 떠남으로 한 매듭을 짓는다. 할머니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자 내 세계의 시작이다. 아무도 남지 않았음은 추억에 대한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채워갈 수 있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 구심점은 여전히 집이다. 집은 물리적인 의미에서뿐 아니라 상징적으로 가족을 의미한다.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여전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기댐이 함께 함을 뜻한다. 

 

윤옥의 존재는 나 자신을 투영하는 허상의 존재이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논리보다 앞서는 것이 간절한 갈망이며 마음 속의 바람과 상상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끝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필연적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사진을 보는 순간 새로운 충격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그 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를 더욱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한다. 모든 이가 돌아오기를. 물리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인 치유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돌아옴의 진정한 의미는 위로이자 치유이므로.

 

이제 가만히 바라보자.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자. 그녀의 마음에 가만히 돌아와 앉는 그들을 그려보자. 조금씩 아물어가는 그 자리 위에 새롭게 만들어갈 그녀의 내일을 바라보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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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거는 주술의 의미 | 기본 카테고리 2010-06-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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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에 주술을 걸다

이지현 저
동시대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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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는 이 음악을 언제, 왜 만들었을까? 미술가는 이 그림을 언제, 왜 그렸을까? 음악가는 화가인 친구의 전시회를 보고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음악에 감명받은 화가는 그 느낌을 화폭에 옮겨 놓기도 한다. 그러면 음악과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음악과 미술을 어떤 마음으로 듣고 보며 받아들일까? 그 동안 여러 음악이나 미술 작품들을 듣고 봐오면서 순간적으로 떠올렸던 생각들을 다시 기억해본다. 과연 그것들이 나와 어떤 인연을 만들어 주었는가?

 

<예술에 주술을 걸다>는 이런 의문에 답을 주고 인연의 끈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갔는지를 살펴 본다. 그런데 그 설명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외에 그것이 탄생하게 된 뒷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와 연결되며 뒤따르는 그림에 대한 설명은 음악과 어울려 때로는 음악을 뒷받침하며, 때로는 음악을 뛰어 넘으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림 뒤의 이야기, 그림에 사용된 새로운 기법, 그림의 풍조 등이 음악의 그것과 함께 나란히 한다.

 

매우 많은 작곡가들과 화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유명한 작곡가의 이름을 겨우 기억할 뿐 음악의 제목만으로 그 음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음악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화가의 그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림이 전해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주문을 외워봅시다.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히 비는 주문은 분명 이루어질 테니까요.” (283)

 

책에서 다루는 음악이나 그림은 참으로 다양하다.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회의 이슈가 되는 것도 있으며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어떤 형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감정으로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메시지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주문이다. 이 주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 또한 음악과 미술을 접하면서 얻는 큰 기쁨이다.

 

그렇다. 음악과 그림이 주는 마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편안함을 찾거나 열정을 찾거나 심지어 고독을 찾고자 할 때도 예술 작품은 충실한 징검다리가 된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은 자신을 더욱 키운다. 음악을 그린 그림, 그림을 그려낸 음악. 어느 것도 홀로 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로 연관 없는 듯 하면서도 어느 끈에 의해서든 연결된다. 그것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끈은 아니다. 사람의 감정에서 유발되는 자연스런 끈이다. 그 끈의 존재를 찾아내고 그 실체를 보게 해준 것이 저자의 주술이다.

 

똑 같은 음악이라도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해설에 귀 기울이기 전에 내 안에서 답을 구해보세요. 오로지 나와 예술 작품 사이의 비밀스러운 소통이니까요.” (295)

 

바탕에 음악이 깔린 후 그림이 얹혀지며 만들어낸 비밀 통로로 걸어 간다. 음악이 흐르는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비치는 음악이 되기도 한다. 서로 떨어져 있는 사물들이 한 지면으로 모여 든다. 그를 찾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재료를 모두 펼쳐 놓고 독자는 자신의 기호대로 비벼서 감상하면 된다. 그것이 주술이고 예술을 대하는 마음이다.

 

융합이 대세라고 한다. 융합은 조합에서 시작한다. 음악과 미술의 만남도 조합이고 융합이다. 융합은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마당이 펼쳐졌다. 주술은 무언가에 혹하게 하는, 혹은 떨쳐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이루도록 하는 주문이다. 이를 예술 속에서 펼친다. 새로운 결과와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주문이다. 오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와 다양한 그림들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에서 생활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주문을 걸어 본다. 그리하여 음악과 미술이 별개가 아니고 생활 속의 이야기이며 나타냄의 통로이며 소통의 경로임을 확인한다.

 

하나의 음악과 그림 뒤에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 대상을 보고 기쁜 마음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마음에,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음악과 미술 뒤에 숨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음악을 듣는다면 새롭게 들릴 것이다. 음악에 걸맞게 배치된 그림들은 음악 이야기를 보완하며 때로는 더욱 감정을 드높이며 함께 한다.

 

감각으로 느끼는 세계만큼 삶의 영역도 넓어진다는 저자의 머리말을 되새겨본다. 예술에 거는 주술의 의미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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