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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 끝내주는 책. | 기본 카테고리 2012-11-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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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정진홍 저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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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친다. 

‘변화는 기다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저자가 직접 준 글이다. 가슴 한 가운데로 찌르고 들어온다. ‘한결같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그 말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지내온 내게 ‘변화’ ‘행동’은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날카로운 칼끝과 다름 없었다. 변화는 무엇에 대한 변화이고 무엇을 위한 변화이며 어떤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다시 마음 속에 큰 파도를 만들었고 또 하나의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 책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어?’ 

가제본을 받았을 때, ‘어떤 책이야?’라고 물었고 ‘산티아고에 다녀왔는 데 그 후에 쓴 책’이라는 답에 ‘별로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던 이가 책을 읽은 후 던진 질문이다. 

‘어떤 생각?’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끝내준다’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산 넘고 물 건너 마지막 한 걸음까지 걸어가는 것도 끝내주었고, 눈보라 속에서,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목적지를 향해 내디딘 걸음도 끝내주었고, 이전의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움을 들어올리는 것도 끝내주었고 마음 깊은 곳에 숙변처럼 쌓여있던 울음을 토해내는 것도 그러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길을 가다 만난 이들과의 열린 마음으로 통함도 끝내주었다. 끝내주게 힘든 길 위에서 깨닫고 전해주는 것들은 진심으로 끝내주는 조언이 되었다. 저자가 왜 이런 길을 걸었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내게 ‘끝내주는’ 생각이 들게 했는지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걸음은 길을 만든다. 수 많은 이들이 길 위로 걸었고, 길은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담는다. 길 위의 주인은 발을 딛는 바로 그 사람이다. 길은 등에 멘 짐의 무게뿐 아니라 걷는 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지쳐 발을 끌며 걷는 걸음에도,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에도 길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존재하며 받아들일 뿐이다. 험한 눈보라와 비바람 또한 맨 몸으로 받아들인다. 길을 걷는 순간 모든 것은 발을 통해 길에 맡겨질 뿐이고 길은 그저 앞으로 보여질 뿐이다. 길 위에는 이전에 지나갔던 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다. 힘들 때 쉬었던 쉼터가 있다. 혹시나 길을 잃지 않을까 염려해서 만든 표지가 있다. 걷는 이에게는 친절한 안내자이다. 저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거쳐간 길을 걷는다. 그러나 같은 길이 아니다. 오직 그 만의 길이다. 길 위에서 울음을 토해내며 생각하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는 고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만난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만 맞는다. 그러나 곧 엄청난 기운에 휩싸인다. 조용히 던지는 말 속에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함을 담고 깊이 자리잡은 나태함에 대한 맹렬한 꾸짖음을 담는다. 자신을 향한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그 울림은 어느 눈보라나 비바람 보다 더 강렬하게 내 마음 속으로 휘몰아친다. 


900킬로미터의 긴 여정의 기록으로만 생각했다. 이미 산티아고 길을 걸은 이들의 글을 몇 편 보았기에 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산티아고의 길 위에서 느끼는 점들은 각 여행자들마다 다르겠지만 작가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기록했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나 처음부터 날라오는 메시지는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비워내고 새롭게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 것을 고백을 통해 이야기하는 처절한 고행의 기록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비장한 맞섬이었고 본질에 대한 투철한 탐구였다. 고통과 좌절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 만의 속도로 자연과 부대끼고 사람과 만나며 얻은 경험들을 녹여 자신 만의 길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다. 대륙의 끝에서 만난 바다를 향해 다시 시작임을 선언한다. 또 다른 시작점임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머물러 있음을 경계한다. 책을 읽는 내내 편안할 수 없었다. 저자가 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저자가 던지는 한 마디 한마디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정말로 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배워라. 핵심을 꿰뚫어라. 내려 놓아라. 처절하게 고민하라. 새로 채워라.’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에도 적혀 있는 말들이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확히 핵심을 파악하고 변화하라는 일반적인 조언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만 반짝하는 것이 문제였다. ‘잘 하고 있다’고 하며 자신의 진정한 문제를 회피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들이 책 속에서 용틀임을 하며 움직인다. 몸으로, 마음으로 겪고 느낀 것들이 하나 하나의 단어들로 모아져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땀과 눈물이 흠뻑 밴 진정한 조언으로 다가온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었기에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 것에 대한 집착, 내 안의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본능으로 주변의 것들을 보지 않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게 걷고 있다. 아니 떠밀리고 있다. 내 걸음을 내가 모르고, 심지어 걷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내게 맞는 짐, 내게 맞는 속도를 알지 못한 채 걷고 있다. 아뿔싸. 머무르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 변화해야 한다. 저자가 준 글처럼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삶을 깊이 생각하며 나는 어찌 걸을 것인가, 무엇을 향해 걸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전까지의 걸음과 다른 걸음이 될 것을 약속한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덩달아 기운을 얻고 새롭게 행동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음을 믿게 된다.


이제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어떤 책이야?’

‘너를 확 뒤집어 놓을, 끝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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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넉넉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 기본 카테고리 2012-11-1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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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저
마음산책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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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도서전에서 열렸던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기억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책에 사인을 해주고 카메라 앞에서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멀리 떨어져서 보았다. 다음 해 어느 작가의 강연 행사장에 조용히 계신 모습을 보았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타계 소식을 들었다. 모든 이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한 시대를 살고, 기록한 작가의 마지막 길에 고개 숙였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담담히 세상을 바라보고, 또렷이 기록한 이에 대한 추억은 자꾸만 새롭게 떠오른다. 직접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단지 작품을 통해서만 만났을 뿐인데 작가에 대한 이런 단편의 기억들이 뒤섞이며 뚜렷이 마음 속에 남는다.

 

지난 5월. 봄이라고는 했지만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한 걸음 앞선 계절을 느끼게 했다. 영인문학관에서 ‘엄마의 말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고 박완서 작가 1주기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장 안은 난향이 그윽했다. 단순히 난초의 향기가 아니라 전시장 한 가득 채운 박완서 작가의 향기였다. 작가의 원고, 생전의 모습들, 여러 작가들이 회고하는 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고 있었다. 고인의 마음과 남아있는 이들의 추억이 가득했다. 작가가 남긴 자취를 찾으며 사진 속의 해맑은 미소 앞에서 글 속에 담긴 ‘사람’을 생각했다.

 

더 이상 그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억조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글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고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과거에 대한 아련함으로 남을 지라도 작가가 던져 놓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이것이 확실함을 다시 보았다.

 

세상에 예쁜 것.

 

예쁜 제목이다. 지인을 병문안 하던 중, 병실에서 포대기 밑으로 보이는 아기의 발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라고 한다. 고목의 뿌리 곁에서 솟아오르는 새싹처럼 생각하니 더욱 예쁘다고 했다. 새로운 생명의 자라남은 언제나 예쁘다. 하지만 내게는 이 책이 ‘세상에 예쁜 것’으로 다가왔다. 이 또한 세상에 없는 작가와 작가가 남긴 자취가 중첩되었기 때문일까? 박완서 작가가 남긴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딸의 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여전히 우리 곁에서,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이야기해주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모습, 생활인의 모습, 지인에 대한 추억 들이 공간을 채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도 있고 새롭게 보는 내용들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담았다.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작가에게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이 불편함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간의 글들에서, 그간의 말들에서 작가의 삶이 평범함과 격랑의 파도 사이를 오갔고, 그것을 진솔하게 이야기 해왔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기에 했던 말들과 행동에서 ‘그 또한 한 인간이구나’를 느낀다. 그렇기에 작가가 준 한 마디 한마디는 내게 생활 속의 깨달음을 준다.

 

순우리말 중 제일 좋아하는 말로 '넉넉하다'라는 단어를 든다. 넉넉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삶의 끈을 찾아 알려주던 이가 던지는 ‘넉넉하다’라는 단어는 더욱 실감 있는 단어로 태어난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세상에 예쁜 것들이 글 속에 넉넉히 담겨 있다. 작가의 마음이 예쁜 것을 찾아낸다. 바람 한 줄기, 꽃잎 한 잎, 땅을 뚫고 솟아나는 잡초의 모습에서도 작가는 예쁜 것을 찾아낸다. 모습이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쁜 의미를 찾아내서 그 의미를 그대로 전한다. 박완서 작가의 생활 자세였음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여기 저기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커다란 강을 이루고 있다. 작은 일들 속에서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다. 아무리 작게 나뉜 생각의 조각들이어도 원래의 생각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기 때문일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일까? 다시 한 번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다. 그만큼 작가로서의 삶, 생활인으로서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여러 층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준다.

 

어쩌면 이렇게 어느 것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글을 만들어낼까? 글재주만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는 헛된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더욱 크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작가의 글은 명치 끝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참아내며 쏟아낸 글이라는 평이 기억이 난다. 그러한 아픔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작가와 같은 시대를 조금이나마 공유했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눈과 말과 몸짓은 아픔 속에서도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따스한 온기를 지닌 채 나를 감싼다.

 

과연 내게 세상에 가장 예쁜 것은 무엇일까? 과연 예쁜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은 갖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엄청난 시련 속에서 일어나 또다시 희망의 글을 던져준 작가를 그리워하는 것 만으로 소임을 다한 것일까? 예쁜 것은 생활 속에 있다. 동떨어진 곳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사물을 예쁘게 만들고 세상을 예쁘게 바라본다. 그래서 넉넉하다라는 단어를 새롭게 본다.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련다. 살아 있는 세상 속에서, 웅크리지 않고 세상 어느 곳에라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책을 다시 펼친다. 세상에 예쁜 것, 내게는 작가의 손이다. 그 손 끝에서 나온 글이다. 글이 모인 바로 이 책이다.

 

이제 그는 이곳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프다. 그러나 작가의 글과 소리는 남아 있는 이들이 슬픔 속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작가의 글로써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렇게 예쁜 글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속삭여본다. 세상에 예쁜 것. 작가의 글이었고 작가의 마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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