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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저
문학동네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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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연애소설집?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저자는 상술이라 했으나 이 소설집은 내게는 연애소설집이 맞다. 연분을 나타내는 실과 말과 마음이 모여있는 연()을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매이고 얽힌 이들의 관계 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들추며 새로운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기에 내게는 연애소설집이다. 황당할 수 있는 기발함과 유쾌함 속에서 마음으로 연결하는 진지함을 본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모하는 마음을 그려내는 연애 소설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슬픔 속에서도 서로 어루만지는 사랑의 마음을 느끼는, 관계가 주는 희망의 연애 소설이다.

 

저자의 상상력에는 항상 두 손을 든다. 많은 관심과 지식에 기반을 둔 기발함이 곳곳에서 어김없이 발휘된다. 소설의 제목보다 강의 제목으로 어울릴 듯한 단어들을 제목으로 사용한다. 헌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목이 말하는 것 이상의 비율과 힘을 보여준다. 이런 기발함 속에서도 진지함을 담아낸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곳곳에 구멍이 뚫리는 급박함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헛된 꿈인 것처럼 펼쳐지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면서 누군가의 손을 구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

 

첫 작품부터 뒤통수를 친다. 포르노 영화라니. 그 속에서 상황과 비율이라니. 16:9 화면으로만 보아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외로워서 그럴 것이다. 다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상황과 비율, 41)

 

무수히 만들어지는 비정형 데이터들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어느 사이에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데이터를 외로움과 서로의 위치 확인으로 연결한 생각에 무릎을 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정말 외로움을 숨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답답한 방을 벗어나 시원한 바다가 있는 도시로 향하는가 했더니 여전히 방 안이다. 한 가수의 실종과 이를 찾아나선 이들의 무작정 여행. 우리가 관계를 맺는 대상이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뒤집는다. 매체를 이용한 관계 또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매체 속의 주인공은 뜻밖의 말을 한다.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 비밀을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군가 바깥에서 자신의 창문으로 돌을 던져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벽을 쌓는 것보다 창문을 만들기가 훨씬 어려웠다. (픽포켓, 87)

 

그 또한 사람이었다. 그리운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모두에게 까발려져 자신의 것을 갖지 못한다는 의식이 창문 안의 비밀을 생각하게 한 것이 아닐까? 조용히 창문을 닫아 그 만의 비밀을 지킬 수 있게 하고 싶다.

 

소설집의 제목인 소설이 뒤따른다. 제목 만으로 어떤 내용인지 상상해본다. 가짜 팔, 포옹. 다른 이를 감싸는, 혹은 다른 이가 나를 감쌀 때 감은 팔이 가짜라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소중한 순간에 나를 감싼 존재조차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알코올에 의지하여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자신을 이야기 하는 이에게서 혼자인 존재로 느끼는 우리를 비추어 본다.

 

고통 같은 것은 말입니다. 절대 얼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게 다 어디 붙는지 아십니까? (117)

여기에 왜 맺히는지 압니까?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겁니다.(가짜 팔로 하는 포옹, 117)

 

그를 감싼 고통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내면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으려면 진짜 팔로 꼬옥 껴안아야 한다. 맺힌 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뜨겁게 안아야 한다. 그래야 그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 같다. 나 또한 맺힘을 감추지 않을 것 같다.

 

땅 속에서 뱀들이 꿈틀거린다. 뱀들의 움직임은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뒤흔든다. 건물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전부를 뒤흔든다. 이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아니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게 된다.

 

정민철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눈에서 뭔가 발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 이상한 호기심과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도 몰랐다. (뱀들이 있어, 149)

 

그랬다.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렇게 보았다. 내 자신이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아프다. 뱀들의 꿈틀거림 위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모습은 불안하다. 그래도 믿음과 기댐 속에 다시 잠시나마 평온의 시간을 생각한다.

 

명사 분실증. 심각한 질병이다. 병의 원인은 모른다. 다만 현상이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생기는 건망증과는 다르다. 단지 명사 만을 기억하기 어려워할 뿐이다. 과연 이런 병이 있을까? 저자가 만든 병이다. 명사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본다. 의욕, 감정, 시간 등등.

 

깎지 낀 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시간이 보이질 않아요. (종이 위의 욕조, 189)

 

명사를 빼고 읽어본다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질 않아요.

무엇이 보이질 않는 걸까? 무엇을 보려고 했던 것일까? 여러 작품들을 전시 공간에 배치하는 주인공은 그 공간 속에서 자신 만의 시간을 만들어내려 한다. 관객들이 관람 동선을 따르면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잊은 듯한, 무언가 모자란 듯한, 마음 한 구석의 빈 공간은 여전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 공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주위에 있으니.

 

보트가 가는 곳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는 여러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비행물체, 그들의 공격, 땅에 생기는 많은 구멍들과 그 속에 빠지는 사람들, 안전한 곳을 찾아 피난하는 사람들, 모두 뒤섞이면서 혼돈스런 장면이 연상된다. 그 속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크게 확대되어 들린다.

 

며칠째 모든 삶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가끔 개인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딱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바닷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바닷물의 일부가 되는 물의 심정, 그런 게 한 개인의 종말일 것이다. (보트가 가는 곳, 222)

 

이처럼 무심하게 종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바로 삶 속에서 만남이 주는,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이 주는 기대감으로 이러한 무력감을 날려버린다. 다행이다. 바나나와 보트라는 단어에서 물 위에서 힘차게 전진하는 바나나 보트가 생각난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붙어 있지만 기어이 떨어지고야 마는, 그리고 즐겁게 웃어대던 바로 그 바나나 보트이다. 떨어짐은 언젠가는 맞게 되는 것이지만 보트를 타기 전에는, 보트 위에 있는 한은 즐거운 그런 마음을 기억해본다.

 

다음은 돈을 위해 차량으로 뛰어드는 무지막지한 이들의 무서운 이야기다. 그들은 힘과 가속도를 정확히 계산하고 행동하여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것이 참 슬프다.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과 하루라도 빨리 다음 생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조급함 사이의 균형 속에서 텅 비어 있는 한 가운데 마음 (힘과 가속도의 법칙, 235)

 

불안정한 마음 상태의 표현이다.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과연 어떤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까?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분명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간절함은 간절함으로 그칠 뿐 남는 것은 조급함이다. 조급함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더라도 조급함의 결과는 또 다른 간절함을 바랄 뿐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은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요요는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놀이기구이다. 줄을 따라 바퀴가 이동하는데 요요는 다시 돌아온다는 필리핀 언어라고 한다. 다시 돌아옴의 의미가 새롭다.

 

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고리를 끊는 사람이다. (요요, 265)

 

관계를 부수는 것은 모든 것을 깨뜨린다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다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주인공은 오히려 관계를 찾아 맞추고 끈질기게 고리를 잇는 사람이다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부품들의 관계 속에 동작한다. 초침, 분침, 시침이 있는 경우 그들 사이의 고리를 유지하며 시간을 나타낸다. 그것들이 원하지 않았어도 시계는 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관계를 부순다고 했을까? 세상에 깔려있는 기존의 생각을 부순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러나 부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가야 한다.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시계가 그러하다. 같은 시간을 보여주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부서진 관계 속에서 또 다른 관계가 생김을 보여준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각 장을 차지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 슈퍼맨 같은 이가 나타나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극적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이들을 함께 놓는다. 서로의 상처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을 함께 하게 한다.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손을 내밀거나 아니면 조용히 마음 속에 담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지켜볼 수 있게 한다. 상처를 치유한답시고 나대지 않는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것 또한 치유의 방법이다. 그들이 함께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서 공감의 깊이는 더욱 깊어간다.

 

빈틈이 많이 느껴진다. 글의 짜임에 빈틈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뜻이다. 툭툭 던지는 대화 속에서,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듯한 상황 속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비어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이성과의 만남과 헤어짐 때문이건 다른 이유 때문이건 마음 속에 빈 공간을 크게 느끼는 이들이다. 이러한 그들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뜻밖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며 마음의 공간을 채워가는 시간을 느낀다. 상실의 아픔을 한 구석에 담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상처까지도 어루만진다는 것을 모르는 채.

 

다시 한 번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를 감싼 포옹에서 허전함을 느낀다는 것은 나 또한 그들을 제대로 껴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픈 이들이 서로 감싸는 이야기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던 멋진 연애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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