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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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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잠못이루는밤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느라 혜화동에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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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감당했던 여름. | 기본 카테고리 2022-10-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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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름과 루비

박연준 저
은행나무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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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을 다녔을 때의 기억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수업 도중에 종종 향수를 뿌리곤 했는데, 향수를 뿌리는 일을 마치고 나서 종종 한창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나에게까지 그 향수를 딱 한 번씩 뿌려주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공된 향이 나의 몸을 감도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 느낌이 나름 ‘어른이 된 느낌’으로까지 나를 이끌어주었다.

문제는 매번 피아노 학원을 다녀올 때마다 낯선 향을 묻히고 오는 나를 어머니께서는 달가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너에게 왜 향수를 뿌려주느냐며 다그치듯 묻던 어머니는, 다음에 또 다시 선생님이 나에게 향수를 뿌리려고 하면 뿌리지 말아 달라 요구하라고 단단히 이르셨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선생님에게 향수를 나에게 뿌리지 말아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하지 않았다. 당시 나의 성향 상 설령 선생님이 뿌려주는 향수의 향이 거북했더라도 직접 말하지 못했겠지만, 사실 나는 선생님께서 뿌려주는 향수의 향을 남몰래 즐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소심하거나 줏대가 없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결국 어머니는 직접 선생님에게 향수를 뿌리지 말아주길 정중히 요청하셨고, 선생님 역시 이에 수긍하며 이후 어머니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결국 나는 ‘향수의 향이 좋아요’라는 진심을 마음에 묵힌 채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이처럼 유년시절이라고 불릴 당시의 나는 나의 욕구에 솔직하지 못했고, 그 욕구를 본의 아니게 충족시켜준 선생님의 편에 서주지도 못했다.

박연준 시인의 소설 <여름과 루비>의 주인공 ‘여름’을 마주하며 자연스레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년이라는 단어에 강제적으로 내포된 순수함이나 풋풋함과는 결이 다른, 어쩌면 나도 모르게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숨겨두었던 기억을 말이다.

유년시절에 놓인 이에게 으레 요구되는 모습들이 있다. 어른들의 요구에 반항하지 말 것,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갖지 말 것, 어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 것, 고민거리가 있으면 친구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말할 것 등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소설 속 여름과 루비는 저 같은 요구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삶에 놓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년들에게 적용되는 저 같은 요구사항들의 부당함을 깨우치게 된다. 하지만 그 깨우침의 여정은 매번 급작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고되기 그지없다. 어른들로부터 밀려오는 상처들,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또래들로부터 오는 상처들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소설 속에서 그 상처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이는 여름이고, 그 상처를 무심하듯 남몰래 조심스레 보듬어주는 역할을 루비가 맞는다. 어른들에게는 내비치지 못했던 감정들, 누군가에게 드러내기 힘들었던 고민들을 여름은 루비에게 털어놓는다. 루비는 이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 조언해준다. 판에 박힌 어른들의 충고보다, 루비의 무심한 듯 내비치는 조언이 여름에게 더 큰 위로와 위안이 되어준다.

하지만 소설이 그리는 루비의 삶 역시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나름의 안정성을 어렴풋이나마 유지하는 여름의 가정과는 달리, 루비는 그 안정성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도 속내를 감추고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는 것처럼 꾸며내는 것에 능통한 여름과 달리, 루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흐름으로부터 오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보석으로서 루비가 품은 붉은 빛과 같은 태생적 위험이, 소설 속 루비에게도 도사리고 있어 보인다.

어쩌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꿈틀거리는 내면의 욕구와, 그 욕구를 피아노의 음을 맞추듯 조율하기 위한 외면의 노력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때가 유년시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여름의 모습처럼 매사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러워하다가도, 루비의 모습처럼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듯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밀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보호하는데 앞장서기 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앞장서는 루비의 모습도 그렇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등장하는, 루비를 향한 세간의 평가를 향한 여름의 결단 섞인 외침도 그러하다. 더불어 마음 깊숙한 곳에 억지로 밀어 넣었던 향수의 향을 향한 유년시절의 내 욕구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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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 | 기본 카테고리 2022-10-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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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저/박다솜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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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극중 기업의 부당함에 저할하는 주인공들을 직장 내 기성세력들은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고졸 주제에, 여자 주제에,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라는 말을 입에 붙이며 ‘너희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라는 식의 폭력적인 조언을 던진다. 그런데 이러한 부당함에 저항하는 여직원들의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기성세대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봉현철 부장(김종수 扮)이다. 여기서 봉 부장은 회사가 저지른 비도덕적인 행태에 후배 여성 직원들이 저항함으로서 발생한 책임을 오롯이 본인이 지기로 결정하고, 이후 후배 직원 중 한 사람인 보람(박혜수 扮)에게 편지를 통해서 다음의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 옛날에는 하늘이라든가 사람들이 참 좋았거든? 근데 요즘엔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거 같고, 사회는 점점 썩어가는 거 같아. 그래도 말이야 ‘옛날이 좋았다’, ‘옛날이 좋았다’ 쉽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옛날을 안살아 본 사람들한텐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지나간 시간이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 또한 누군가에겐 좋은 시절이었으면 좋겠어.”

미국의 유명 기고가 앤 헬런 피터슨의 저서 <요즘 애들>은 저자 본인을 포함한 미국의 대다수의 밀레니얼세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상세하고 섬세하게 비춤으로써, 그들을 향한 편견어린 사회적 시선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특별히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그들의 대입과 취업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베이비부머세대의 어린 시절부터의 사회적 상황을 되짚어봄으로써 현재 밀레니얼세대가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한다.

저자는 정확하고 방대한 데이터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 인용 및 여러 개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에 둔 사례들을 기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등의 상황이 현재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밀레니얼세대는 소득과 자산, 부채, 소비와 같은 경제 항목 측면에서는 이전 세대들보다 굉장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1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의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는 베이비부머세대보다 순자산이 20% 적다.

여기서 저자는 미국의 베이비부머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있어서 아동의 모든 일정에 부모의 일정이 앞서며 아동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훗날 일터에 진입할 때를 대비한 최적화 과정인 ‘집중양육’이라는 시스템을 적용시킨 점이 밀레니얼세대가 현재 겪는 경제적 부당함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얻게 된 대학이라는 타이틀마저도 밀레니얼세대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제위기와 개인의 취업 준비 시기를 동시에 맞이한 미국의 밀레니얼세대는 이전보다 2배 증가한 실업률과 860만 명이 감소된 고용인원이라는 현실 앞에 대다수가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급급해지게 된다. 그렇게 임금이나 근무환경, 근무스케줄과 같은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으며, 과로를 유능함으로 포장하여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사회가 형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모순에 맞서 밀레니얼세대가 적극적으로 저항해나가길 촉구한다. 사회적 불안정을 개인의 불안정으로 엮지 않고, 기성세대들이 구축해놓은 세대론에 잠식당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이 당연하다는 듯 구현해놓은 구조적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요즘 애들>은 미국 사회에 국한된 저자의 분석과 진단을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임을 충분히 맞물려 체감할 수 있다. 세대론에 파묻힌 채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이전 세대를 혐오하는 차원에 머물도록 우리가 속한 시스템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어 보인다. 결국 <요즘 애들>이 제시한 진단을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언론을 필두로 사회 전체가 MZ세대라 칭하는 ‘요즘 애들’을 마주함에 있어 우리 사회의 태도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봉 부장의 시선을 닮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MZ세대가 마주한 절망을 단순히 그들의 나약함이나 부족함의 결과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이전 세대들의 부덕함이 낳은 결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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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대신 다정함의 유전자. | 기본 카테고리 2022-10-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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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공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디플롯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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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 존재로 성장해나가는 과정 중에 우리 안에 내재 된 동물적 본능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예컨대 고등학생 시절 국사 과목 시간 때 선생님께서는 사회화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유인원들이 주변의 다른 유인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놓고 짝짓기를 하는 것을 예로 들며 이러한 본능을 통제하고 조절함으로서 사회화를 이룬 인간종의 우월함을 설파했다. 또한 지난해 총선 때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한 막말로 논란이 되었던 차명진 전 국회의원은, 과거 본인이 출연한 모 TV 프로그램에서 생물학적 관점에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며 음욕을 품는 것이 남성에게 내재 된 생존 본능이기에 이 본능을 제어하고 통제하며 살아가는 남성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결국 우리에게 본능이란, 사회화를 일군 인류에게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간혹 차명진 전 의원의 경우처럼 동물적 본능이라 일컬어지는 ‘그 본능’에 우선적으로 충실했던 이들이 자기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도 활용이 되는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함께 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생존을 위한 본능을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승자독식 시스템에 종속된 맥락으로 보는 시선에 반하는 다양한 실험 데이터들을 토대로, 인류에게 내재 된 생존을 위한 본능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며 협력과 협동을 가능케 하는 차원으로 진화되어 왔음을 증명해나간다. 강한 물리적 힘과 낯선 대상을 향한 맹목적인 경계, 배타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방어 능력이 무조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당장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해도 서로를 품어주는 다정함과 긴 호흡으로 서로를 마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친화력이 생존에 적합할 수 있으며, 이를 인류를 비롯한 몇몇 동물종들이 진화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책은 인류가 이 본능을 망각한 채 서로를 향한 무분별한 분노와 혐오, 갈등과 적개심 등을 생존 동력으로 삼도록 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 인류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 즉 다정함과 친화력의 맥락에서 제거할 능력도 지닌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의 본능은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게 변한다. 그리고 그 악행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 내재 되어있는 다정함이라는 본래적 차원의 본능을 일깨워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다름을 존중하는 만남의 과정, 나의 주관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나가는 태도를 바탕으로 가능해진다

특별히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인류가 지닌 하얀 공막의 진화에 관한 내용이다. 인류는 다른 동물종들 달리 하얀색의 공막, 즉 커다란 흰자위를 가지고 있다. 보통의 동물들은 사냥감이나 포식자에게 자신의 다음 행동을 예측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공막과 눈동자 색깔을 비슷하게 지니도록 진화했다. 즉 직접적이고 단발적인 생존을 우선시하는 진화적 선택을 하여 눈동자가 드러나지 않는 공막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하얀색의 공막을 지니도록 진화함으로써 서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감추어진 감정을 조심스레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굳이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하지 않더라도 눈빛만으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를 통해 깊고 입체적인 감정의 교류가 가능해진 점이, 당장 사냥 성공률을 높이거나 포식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 것 이상으로 우리 인류의 생존률을 높여줄 것이라는 진화적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류의 진화적 방향성이, 다정함과 친화력을 생존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다른 이의 눈빛을 마주함으로써 밀려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다정함을 필두로 생존하기 위해 애쓴 인류의 조상들이 품은 본능과 의지의 소산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가 품은 눈빛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동시에 서로의 눈빛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어떠한 구별지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정히 어깨동무를 한, 책 표지 속 두 사람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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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과 ‘최소한’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희망가. | 기본 카테고리 2022-10-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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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저
김영사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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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한 사람이 살아오며 큰 흐름으로 겪어온 역사와 그 역사를 일군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맺어온 관계들이 한 사람의 삶의 양태를 규정짓는다는 뜻에서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달라질 여지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수없이 마주한고, 심지어 변하지 않음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주체인 나 자신마저도 달라지지 않음의 영역에 두고 볼 때가 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과 비교해보았을 때 180도 차원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목도하게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잦다.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사상가들, 이전에 자신이 내세운 과학 이론을 뒤집는 새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앞선 사례들과 결은 다르지만)얼마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문수 전 경기지사처럼 품어온 신념의 변화를 보여준 이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비건이 아니었던 과거의 나와 비건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보통의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매일 분투하고 있으며, 어제보다는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에 어제보다 더 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인정하고 싶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어제의 나와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간다. 큰 흐름 안에서 볼 때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사람도, 그 사람을 구성하는 속성들과 그 사람이 내비친 다양한 의견들을 세세하게 따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결코 어제와 같은 내가 될 수 없다.

허지웅 작가의 신간 <최소한의 이웃>은, 그간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허지웅 작가의 변화된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대표 에세이 모음집인 <버티는 삶의 관하여>가 2014년에 출간되었음을 감안하며 이를 올해 출간된 <최소한의 이웃>과 비교해보면 8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에 놓인 두 책에 드러나는, 작가가 의견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에 담긴 결의 차이가 세월만큼이나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대목이 그러하다.

‘켄 로치의 좌파 영화든, 이스트우드의 우파 영화든, 리펜슈탈의 선동영화든, 나는 그저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싶다. 외부의 결기가 영화의 당위나 핑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중, ‘좋은 정치영화의 조건’ 중에서

‘윌리엄 골딩은 소년들 사이의 살육에 동의해서 [파리대왕]을 쓴 게 아니고,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정부에 의해 지배당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1984]를 쓴 게 아니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미성년자와의 사랑을 널리 권하기 위해 [롤리타]를 쓴 게 아닙니다.’
- 허지웅, <최소한의 이웃> 중에서

<버티는 삶에 관하여>의 문장이 마치 ‘내가 본 영화는 내가 알아서 보고 평가할 테니 너희는 신경 쓰지 말아라’는 식의 엄포처럼 들렸다면, <최소한의 이웃>의 문장은 ‘이 작품들 꽤 읽을 만한데 너희도 오해를 풀고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라는 식의 제안의 표현으로 들린다.

특별히 허지웅 작가는 ‘예스티비’와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한 것 같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싫어했고 책을 쓰면서도 의도적으로 딱 떨어지는 확고한 문장을 쓰는데 주력해왔다면 이번에는 작가로 활동해온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글들을 꽤 많이 남기며 자신의 주장과 의견에 여지를 두는 작업에 몰두해보았다’고 말하였다. 작가의 이 말은, 이번 책에서 드러난 작가의 달라진 면모와 이번 책이 품은 ‘이웃’이라는 주제가 함께 맞물려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물론 나는 8년 전 허지웅 작가의 글도 지금 허지웅 작가의 글도 좋아하지만, 8년의 간극을 두고 달라진 그의 결기가 희망으로 다가온다는 점은 감출 수 없다. 매사 누구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고, 그 엄격함을 뚫고 자라난 자신의 잘못 앞에 솔직할 줄 아는 태도를 지니며, 이웃의 삶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려 들지 않고, 세계를 납작하게 두고 보지 않으려는 노력에 힘을 쏟는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작가의 의지가 8년의 간극을 두고 달라진 글의 분위기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게 작가가 독자에게 제안하는 ‘최소한의 이웃’으로서의 삶이, 내가 달라지기 위한 희생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상대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 않음으로서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달라질 수 있음을 희망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함으로써 우리에게 최소한의 이웃의 영역이 어제보다 더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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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품격. | 기본 카테고리 2022-10-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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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른다섯, 늙는 기분

이소호 저
웨일북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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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은 세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대략 7년을 주기로 모든 세포를 점진적으로 새로운 세포로 교체해나간다. 우리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가 몇 번이고 계속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리적 차원에서 우리는 7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7의 배수로 딱 떨어지는 나이들은 무언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일곱 살, 열네 살, 스물한 살, 스물여덟 살 그리고 서른다섯 살 등등.

이소호 시인의 산문집 <서른다섯, 늙는 기분>은 우리 몸의 세포가 다섯 번째로 새로이 교체되는 시기인 서른다섯의 나이에 접어든 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 사람을 나이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하려드는 세태와, 그러한 세태 안에서 특히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가해지는 편견을 작가는 개인의 체험과 감정을 토대로 여과 없이 고발하듯 드러낸다. 결혼정보업체로부터 나이를 토대로 흡사 진단을 받듯 가감 없이 매겨지는 개인의 평가에 관한 체험담, 같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거침없이 ‘애기엄마’라고 불렸던 때의 심정, 흰머리와 주름 그리고 탈모로 대변되는 나이든 이들의 신체적 변화를 마주하며 드는 감정, 나이가 들면서 더 크게 밀려오는 벌이에 대한 강박, 호스텔의 낭만보다는 오성급 호텔의 안락함에 더 마음이 끌리고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타야만 스스로를 챙길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이야기 등으로부터 서른다섯이라는 의미심장한 7의 배수의 나이에 접어든 저자의 처지와 심경이 드러난다.

그러나 저자는 다섯 번째 7의 배수의 나이가 품은 의미심장함에 대단한 가치나 의미를 두지 않기를 소망한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이제 시들어갈 일만 남은 시기라는 듯이 바라보는 편협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사실 이때는 ‘또 다른 성장판이 열리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선언하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랑해주기 어려웠던 때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삼십 대들, 그 중에서도 시인과 같이 다섯 번째 7의 배수의 나이에 접어드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다독임이 되어준다.

반갑게도 저자가 맞이한 서른다섯 살은 내가 맞이한 삶의 햇수와 같다. 다섯 번째 7의 배수는 나를 괜한 조바심에 휩싸이게 만든다. 지금껏 이루어온 것과 앞으로 이루어야할 것 모두 부족해 보이는 시기처럼 다가온다. 우리 몸의 세포가 다섯 번 교체되며 신체적으로 거듭나는 동안, 과연 나는 실존적 차원에서의 거듭남을 함께 겪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이와 같은 조바심에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을 통해서, 이제는 7년에 한번 씩 나의 몸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는 생물학적인 깨우침을 실존적 차원으로 옮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리적으로는 7년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내가 다른 존재가 되었을지언정, 그럼에도 7년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가 여전히 동일한 나로써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꾸준히 증명해나가는 것이 나이듦의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닳음은,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듯 달라진 나의 존재가 ‘변화하듯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세계’를 이제는 ‘변하지 않는 듯 변화하는 세계’로 바꾸어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P.S. 특별히 이 책을 나에게 소개해준 사람의 의중을 헤아려보게 된다. 아마도 나를 애정하는 만큼 나를 감싸고 있는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를 단순히 내가 감내해온 세월로 여기는 것이 아닌, 황지우 시인의 어느 시구절처럼 ’쌓아 올린 경력‘으로 여겨주었기에 가능한 소개이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늙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낡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멋지게 늙고 싶다. 그것이 나는 낡지 않고 늙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 서른다섯 살에 이런 글을 쓰지만, 마흔에도 그리고 칠순 잔치에서도 후회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단 하루도 어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누구나 부러워할 아주 멋진 삶을 나는 살아왔다고.’
- 본문 중,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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