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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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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잠못이루는밤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느라 혜화동에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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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이 선사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 기본 카테고리 2022-11-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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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의 위로

마이클 프레임 저/이한음 역
디플롯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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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생불멸이자 유일불가분의 실체이며 일체의 변화나 구별은 가상일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존재하는 것의 실체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저지르는 착각이라는 것이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2천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20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으로 ‘시간은 우주의 곳곳마다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뉴턴이 상정해둔 절대시간에 반해, 한 관찰자가 보기에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이 다른 곳에 있는 다른 관찰자에게도 동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엉켜있음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즉 인간이 감각하는 것과 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훗날 철학자 퍼트남에 의해 ‘시간 기하학적 결정론’이라 불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친구인 수학자 미셸 베소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물리학자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착각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존재하는 것의 실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저지르는 착각일 뿐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순간이 선사하는 슬픔을 인간의 한계처럼 떠안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여지를 상대성이론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상실을 염두에 둔 마음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자 마이클 프레임의 저서 <수학의 위로>는 상실을 바탕으로 경이를 체험하는 내용을 품으며, 수학자의 관점에서 기하학을 통하여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헤아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 안에서 실존적인 상실의 체험으로 인하여 여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슬픔의 감정을 마주한 순간, 즉 ‘비탄(Grief’)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저자는 수학자로서 기하학의 눈을 빌어 비탄을 정의한다. 여기서 비탄은 슬픔과 유사한 감정적 반응이지만 단순한 슬픔과는 구분되는데, 돌이킬 수 없고 엄청난 감정적 무게를 지니며 초월적인 특성을 가짐과 동시에 자기 유사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하학을 상실에 따른 고통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 제시한다. 서로 만나지 않도록 그려진 점 혹은 선으로 불가역성, 도약 등의 의미를 전달한 저자는 엄마가 있는 세계와 엄마가 없는 세계를,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반려묘와 함께했던 놀이와 이후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재조정한 실마리를 이 공간에서 찾아낸다. 더불어 이제는 마주할 수 없게 된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하고 싶었을지, 또 그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의 선의가 닿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행동을 투영해보는 과정으로 비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한계로부터 기인한 비탄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감정적 반응이면서도 삶 안에서 필연적으로 여러 차례 마주해야만 한다는 딜레마를 지닌다. 그래서 저자는 돌이킬 수 없다는 한계를 기학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봄으로서 이를 비탄과 연결시키게 되었고, 비탄의 폭력으로부터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저자는 꼭 기하학이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토대로 세상을 떠난 친구로 말미암은 비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이 삶을 무상하게 여기는 태도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이끄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서 와타나베 히로코는 남편 후지이 이츠키의 죽음으로 인한 비탄을 남편의 중학생 시절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떨칠 수 있게 된다. 반면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의 동창생인 후지이 이츠키는 잊고 지내온 그의 존재를 새로이 깨우침으로서 비탄에로 발을 들여놓는다. 크나큰 상실의 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닫아버리지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수학의 위로>는 아인슈타인의 방식으로 비탄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패기를 제공해줌과 동시에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들처럼 ‘돌이킬 수 없음’의 상태를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의 상황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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