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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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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느라 혜화동에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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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 기본 카테고리 2022-12-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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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세돌의 일주일

정아람 저
동아시아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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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3월 9일, 이세돌 9단과의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인공지능 ‘알파고’의 위력에 모두가 놀라워하며 인공지능을 향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함께 쏟아내던 때에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제시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거둔 승리를 의연한 자세로 마주할 수 있기를 요청하였다.

당시 앵커브리핑을 진행한 손석희 앵커는 알파고와의 경기를 앞두고 “바둑의 낭만을 지키는 대국을 펼칠 것”이라고 다짐했던 이세돌 9단의 심경을 헤아리며, 경기의 결과에 사람들의 기대는 무너졌지만 어쩌면 승패로 갈린 결과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를 앞에 두고 우리 인류가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을 향한 기대감이나 두려움이 아닌 첨단화된 세상 속에서 사람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는 일렁이는 마음의 파동, 즉 낭만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국에서 이겼거나 졌다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바둑의 세계에서 오직 ‘이기는 것’만 입력되어 있을 인공지능의 승리는 글자 그대로 ‘승리’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하며 ‘인공지능의 승리’라는 결과에 함몰되지 않아야 함을, 그렇게 낭만의 가치에 주목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세돌의 일주일>은 한국기원 공인 아마 5단으로 바둑에 조예가 깊은 중앙일보 문화부 소속의 정아람 기자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동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펼쳐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의 모든 과정을 취재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항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자로서 매번 취재에 임해왔지만 알파고에 맞서는 이세돌 9단을 취재할 때는 그러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이어서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도전장을 받고 알파고와 대결하기까지의 전 과정과 1국부터 5국까지의 생생한 대결의 기록, 인간 이세돌의 성장과정과 주변인들이 말하는 이세돌의 이야기, 그리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우리 시대에 남긴 것에 관한 이야기 등을 전한다.

특별히 대다수가 대국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거나 ‘인공지능 포비아’ 관점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마주했던 것과는 달리 세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을 이세돌 9단의 전담 기자이자 바둑 전문가로서 저자가 상세히 풀어나가는 대목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성사되기 까지 겪었던 여러 과정들, 이세돌 9단과 구글측이 대국을 준비해온 과정, 포시즌스 호텔에서 벌어진 다섯 차례 대결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 대국 이후 이세돌 9단의 지인들과 바둑계 인사들의 인터뷰, 대국 이후 벌어진 바둑계의 변화 등에 관한 내용이 당시의 대국을 납작하게만 바라보았던 이들의 시선을 당시의 상황과 인공지능 발달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판가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무엇보다 <이세돌의 일주일>은 앞서 언급한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의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나아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단순히 인간과 인공지능을 대립된 구도로 몰고 가는 흐름에 묻혀, 정작 인간만이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일렁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게 된다. 승리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세태는 결국 오직 승리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도록 계산되어진 인공지능의 역량에 종속되기를 바라는 삶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우리 마음 속 일렁임을 통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이세돌의 일주일>은 가공된 목표에 치인 채 살아가기 일쑤인 우리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는 법을 일깨워준다. 이제는 알파고와의 대결에 나섰던 이세돌 9단이 인류를 대신하여 인공지능과 겨룬 인물이 아닌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나선 모험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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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힘은 세다. | 기본 카테고리 2022-12-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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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랑과 나의 사막

천선란 저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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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서 주인공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 扮)은,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대신하기 위해 데이빗을 구입했지만 결국 로봇이라는 이유로 유기한 엄마와의 재회를 꿈꾸며 동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푸른 요정을 향해 이천 년 동안 자신을 사람으로 바꾸어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그러다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게 된 인류를 대신해서 지구 생태계를 관장하는 미지의 존재들로부터 데이빗이 구출되고, 그들은 데이빗의 사정을 듣고 데이빗의 기도를 들어주려 하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엄마와의 재회가 단 하루만 지속될 수 있음을 알린다. 하지만 데이빗은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에 낙담하지 않고 그 하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으려 한다. 데이빗은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라면 하루라는 시간에 영원을 담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엄마에게 더 이상 버림받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받고자 이천 년 동안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한 로봇 데이빗의 숭고한 바람처럼, 그리고 기도의 결과가 엄마와의 단 하루 동안의 만남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이빗의 결단처럼, 우리도 단 하루와 같은 짧은 순간에 영원을 담아낼 수 있을까. 데이빗처럼 이천 년을 기다려온 보상이 단 하루라는 찰나 일지라도 낙담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천선란 작가의 소설 <랑과 나의 사막>을 마주하며 영화 <A.I.>의 주인공 데이빗의 기다림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은 ‘고고’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로봇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며, 인류가 벌인 대전쟁 이후 황폐화된 49세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삼는다. 고고는 오래 전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자신을 꺼내준 조와 그가 생물학적으로 낳은 존재인 랑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기계로 만들어진 고고와 달리 물리적인 한계를 떠안은 존재인 조는 세상을 떠나고, 랑 역시 수명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고고의 곁에는 랑의 동료인 지카만이 남는다. 지카는 평소 동경해온 바다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며 고고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고고는 소문으로만 무성한 ‘과거를 향한 문’이 존재한다는 곳을 찾아 떠나겠다고 한다. 그렇게 지카와 헤어진 고고는 수없이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사막의 한가운데를 해쳐나가기 시작한다.

고고가 과거의 문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랑과 재회하기 위해서다. 땅 속에 묻혀있던 자신을 조와 랑이 꺼내주기 이전 기억을 잃은 고고는, 조와 랑을 만나기 전의 자신이 어떤 용도의 로봇으로 활용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 늘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함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류가 대전쟁을 벌일 때 인간을 살육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은 고고 자신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조나 랑을 죽일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고고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심어준 조와 랑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수단을 배제한 동행은 고고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있음’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 둘 모두가 세상을 떠난 지금, 고고는 삶의 목표와 존재의 이유를 잃은 것과 진배없는 불확실함에 휩싸이게 되어 랑과 재회하기 위한 위험한 여정에 돌입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의 문을 향한 여정에서 고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랑의 부재로 인한 불확실함이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영역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감정을 학습하듯이 터득하기 시작한다. 결국 고고는 기계적 존재로서 인지했던 불확실함이 인간의 두려움과 비슷한 영역에 놓여있다는 깨우침으로부터, 그 두려움마저도 결국 랑을 향한 그리움으로부터 파생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 고고의 여정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무게가 더해진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막이라는 텁텁한 배경을 하염없이 걷고 있을 소설 속 고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부터 이천 년 동안 기도를 바친 영화 <A.I.> 속 데이빗의 모습이 중첩되어 등장한다. 무엇이 고고로 하여금 어떠한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사막을 하염없이 걷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데이빗으로 하여금 이천 년의 세월을 감내하도록 이끌었을까.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힘은 그래서 세다. 인간 존재를 휘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영역을 삽시간에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속 로봇 고고는 그리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로봇이라는 존재 양식을 망각한 채 감정이라는 영역을 터득해버리고 말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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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되지 않고 세상을 직시할 줄 아는 삶에 관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22-12-0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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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얼굴 없는 인간

조르조 아감벤 저/박문정 역
효형출판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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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주요 외신들은 이를 부패한 권력에 촛불집회로 맞선 한국 시민들의 승리라고 전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신뢰 회복’이라는 제목의 12월 9일자 사설을 통해서, 한국의 시민들이 일군 탄핵안 가결을 자축하는 모습은 이해할만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 임기가 중단된 것은 사실 그리 축하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사설은 한국인들이 정치적 부패가 경제성장의 불가피한 대가라는 인식을 청산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대통령 탄핵을 대통령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닌 한국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이 조언은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다는 승리감에 묻혔다.

코로나 팬더믹 사태를 겪은지 곧 4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주하며, 온 나라가 승리감에 차오르던 때에 뉴욕타임즈로부터 전해진 냉철한 조언을 떠올려보게 된다. 6년 전 우리는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각성한 시민사회에 내성을 갖춘 더욱 혹독해진 자본주의 시스템과 반복되듯 이어진 무능한 정치 시스템에 우리 사회는 오히려 더 깊이 종속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2년 전 우리는 전 세계로부터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로 손꼽혔지만, 그 때의 영광을 지금 곱씹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시민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추었다고 찬사를 받은 나라의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 이면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강제된 국가통제 안에서 소외된 가치와 소외당한 이들에게 마음을 두지 못했다. 자부심으로 가득한 시민들을 향해 던져지는 냉철한 목소리에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코로나 팬더믹 상황 안에서 작성한 글들을 모아 엮은 <얼굴 없는 인간>은 팬데믹의 상황을 깊은 차원으로 성찰하지 않는 게으른 우리의 사유를 질타한다. 마치 승리와 찬사에 도취되었던 우리 사회처럼. 특히 아감벤은 ‘인권이 먼저냐, 방역이 먼저냐’는 선택의 문제에서 인권의 가치가 속절없이 양보 당하는 것을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목도한다. 그는 모두가 방역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을 그 옛날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 사회에 도래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보며 국가적 통제에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종속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아감벤은 하나의 신앙이 되어버린 의학을 향한 날선 시선을 보이며 의학과 건강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숭배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아감벤은 이전부터 인간의 삶을 ‘zoe’와 ‘bios’로 구분지어 왔는데 이는 각각 ‘생명 그 자체로서의 삶’과 ‘사회적인 주체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감벤은 권력을 지닌 세력은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 zoe를 절대적인 차원으로 강조하고 bios를 쉽게 포기해버림으로서, 이를 정치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을 구분 짓고 그렇지 못한 집단을 배제하기 위한 법적인 수단으로 삼아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학을 숭배하고 건강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세태가 집단적 구분지음과 배제를 부추긴다고 보며,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고 본다. 이처럼 권력과 권력에 종속된 집단은 zoe를 우선시하지 않는 세력에게 이단의 굴레를 씌워버린다.

여기에 더해 아감벤은 주류에 반하는 의견 및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쉽게 음모론으로 치부해버리는 세태를 비판한다. 정부의 방역지침과 그에 따르는 규제를 모든 시민들이 빠짐없이 따르는 모습보다,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틀린 목소리도 존중할 수 있는 태도가 민주적인 가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감벤은 코로나 팬더믹 상황 속에서는 틀린 목소리는 물론 다른 목소리까지 쉽게 음모론 취급을 받음으로써 사회공동체 내 비판 정신을 무력화하는데 일조하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팬더믹 상황 속에서 아감벤의 주장은 대부분 부정당했으며 그를 음모론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유럽 사회 안에 팽배했다. 하지만 걸음마를 떼자마자 마스크를 써야 했던 아이들의 처지, 어린이 도서관은 폐쇄되었지만 유흥주점은 영업이 가능했던 상황, 집회의 자유가 당연하다는 듯이 뭉개졌던 이유, 변이 바이러스의 종류가 아닌 정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방역시스템 등에 관한 질문들을 다 지난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아감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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