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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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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느라 혜화동에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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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 너머에 있는 ‘남아있는 것에 대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23-02-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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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백호 저
마음의숲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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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뉴진스’나 ‘르세라핌’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부지런히 섭렵해나가고는 있지만, 사실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노랫말은 내 어린 시절보다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야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곡들로부터 마주하게 된다. 최근에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정훈희의 <안개>, 우리네 인연을 ‘우연’이나 ‘필연’이라는 틀에 묶어두지 않으려는 의지로 채워진 노사연의 <만남>,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정서를 관통하는 신중현의 <미련>, 오늘 날 ‘방구석 여포’들의 존재를 예견하듯 쓰여 진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풍요에 잠식된 사회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식의 조소섞인 풍자가 담긴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한 개인이 몸소 감내해온 세월의 깊이에 따라 그 무게감이 달라지는 ‘낭만’을 생동감 넘치게 그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 이 노래의 작곡과 작사, 노래 모두를 겸했던 가수 최백호 개인의 체험이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을 이루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청춘을 흘려보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법한 정서를 노래가 품고 있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곡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곡을 토대로 최백호를 ‘한국의 빌리 조엘(Billy Joel)’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러고보니 대중으로부터 ’낭만 가객’이라고 불리는 최백호의 별칭과 빌리 조엘을 향한 ‘음유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언가 일맥상통해 보이기도 하다.

최백호의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자신의 대표곡인 <낭만에 대하여>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퇴색되거나 지워지고 흘러가버림으로서 결국엔 잃어버리게 되는 모든 순간들이 낭만이었음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 중 한 구절이기도 한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은 작가는 ‘잃어버린 것’을 향한 미련이나 ‘다시 못 올 것’을 향한 그리움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긴 세월을 감내하는 와중에 빛나는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디딤돌로 삼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그러한 삶 안에서의 매우 짧은 찰나의 순간들조차 영원을 품은 아름다움으로 창작해낼 수 있음을 고백한다. 세월의 흐름이 빚어낸 (잃어버린 혹은 다시 채울 수 없는)빈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창작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창작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삶을 향한 태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작가 최백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짚는다. 자신이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아련한 기억들, 어려웠지만 가수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내려 했던 이야기, 자신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에 얽힌 사연, 최근 젊은 가수들과 함께했던 작업과 가수이자 화가로서 맞이하게 된 새로운 도전, 칠십 여년을 살아오면서 쌓인 세상과 삶을 향한 개인적인 단상들 등을 전하며 잃어버린 것들 너머의 남아있는 것들에 시선을 둘 수 있는 여유를 공유한다.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들추어내며 그 안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하거나 한 달에 한 번씩은 홍대 근처의 만화방에 방문해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 지낸다는 고백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흘러가는 세월 앞에 무력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월의 흐름을 존중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산문집 곳곳을 채우고 있는 화가 최백호의 그림 작품들은 세월 앞에 무력해지지 않되 세월의 흐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증명해주듯 자리잡고 있다.

이제 일흔이 넘은 나이인 작가 최백호가 가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깔끔한 셔츠와 가벼운 청바지, 편안한 스니커즈 차림의 모습이 칠십 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진 주름과 흰 머리가 이질감 없이 나름의 조화를 갖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가장 유명한 곡을 통해서 ‘잃어버린 것’과 ‘다시 못 올 것’을 ‘낭만’으로 규정했던 최백호는, 이처럼 몸소 그 노래를 자신이 본인이 직접 살아내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산문집이 그가 자신의 노래를 몸소 ‘살아냄’의 일환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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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없다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 기본 카테고리 2023-02-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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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슬램덩크 리소스-THE FIRST SLAM DUNK re:SOURCE

이노우에 타케히코 글그림
대원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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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싯다르타가 열반에 들기 전에 남긴 내용을 찬술한 경전인 <열반경>에는 싯다르타가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처럼 던진 이야기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무상(無常)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직면해라’이다. 이는 인생의 덧없음을 똑바로 마주함으로서 인생의 덧없음을 두고 덧없어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나아가 타인의 인생까지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일깨우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인 즉, 삶의 유한함 앞에 허망해하거나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종속당하기 보다는 그 유한함과 속절없음을 직시함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와 그 하루 안에 함께 놓인 다른 존재들을 무한의 영역을 마주하듯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코믹스 원작을 기반에 둔 애니메이션 시리즈 <슬램덩크>의 새로운 극장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개봉 소식을 듣고 싯다르타가 직면할 것을 요구했던 인생의 덧없음, 즉 삶의 무상함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서 소싯적 그룹 ‘퀸’의 음악에 심취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던 50대 중년들의 모습이나 앞으로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더 이상 주인공 지우를 볼 수 없다는 소식에 아쉬워했던 2-30대들의 모습, 그리고 모 여자대학교의 축제 때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의 주제곡이 들리자 떼창으로 화답하며 눈물을 보인 여대생들의 모습처럼, 내 어린 시절의 온갖 추억이 서린 <슬램덩크>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오랜만의 조우로 인한 설렘과 더불어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세월을 직면해야 하는 고통도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 25년 전 TV 방영을 통해서 <슬램덩크>를 처음 접했던 점을 떠올리면, 그 25년이라는 세월이 까마득한 시간이 아닌 눈 깜짝할 새 흘러가버리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과거의 <슬램덩크>를 추억하며 이번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들이 느낄지 모를 세월의 무상함을 그들이 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오래 전 <슬램덩크> 속 주인공들과 함께 했던 시간 속에 그들이 파묻혀있지 않도록, 그렇게 ‘지금’이라는 새로운 시간 안에서 슬램덩크의 세계관과 주인공들을 새로이 받아들이고 추억해나갈 수 있도록 영화는 관객들을 다독인다.

영화는 코믹스 원작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북산 고등학교와 산왕 공업 고등학교의 전국대회 2회전 경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린다. 특별히 북산 고등학교 농구부의 스타팅 멤버들이자 이야기의 주된 흐름을 이끌었던 다섯 명의 선수들 중에서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포인트 가드 송태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핵심에, 어린 시절 경험했던 형의 죽음을 조금씩 직면해나가는 송태섭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농구 유망주였던 형을 통해서 처음 접했던 농구는 송태섭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피하고 싶은 무상함 혹은 덧없음처럼 다가온다. 그런 송태섭은 형이 그토록 이기고 싶어 했던 산왕 공고와의 경기를 앞두고 더 이상 농구를 무상함이나 덧없음의 영역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원작 코믹스를 통해서 오래 전 이미 결과까지 확인한 북산 고등학교와 산왕 공고의 전국대회 경기는, 그렇게 무상을 극복한 송태섭의 성장기가 더해지면서 감동이 배가 된다.

그래서일까.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원작 코믹스에서는 매우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던 전국대회 3회전 지학 고등학교와 경기에서 북산 고등학교가 참패했다는 내용과 북산의 주장 채치수가 더 이상 농구를 하지 않고 수험생이 된 결말이 더 이상 허무하게 느껴지거나 아쉽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준 북산 고등학교 농구부가 염원했던 전국재패가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채치수가 농구선수가 아닌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소연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농구를 시작했던 강백호가 소연이의 마음을 끝끝내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슬램덩크> 속 등장인물들 모두는 후회하거나 방황하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슬램덩크>의 SBS TV 방영 버전의 주제곡 ‘너에게 가는 길’의 2절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담겨있기도 하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잊지 말아줘 난 언제나 널 향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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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안중근. | 기본 카테고리 2023-02-1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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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얼빈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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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스물 세 살 의대생 시절 모습을 담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는 세기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혁명에 몸담기 이전을 조명한 작품으로, 그가 대학생 시절에 겪은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마주하는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인간적으로 그려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체 게바라가,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었던 거대한 시류를 마주한 뒤에 군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혁명가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 이유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성경 속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마태복음(1964)>은 예수 역의 배우 앤리케 이라조퀴를 비롯하여 비전문배우들을 대거 기용하였는데, 배우들의 신선함과 미숙함은 아직 불확실하고 무정형적이었던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의 허술함과 빈약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주었다, 1950년대 붐처럼 일어난 할리우드의 시네마스코프 영화들이 성경 속 이야기들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펼쳐내어 종교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하였다면, 파졸리니 감독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일종의 반동과도 같은 연출을 고수함으로서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을 더욱 객관적이고도 실존적인 차원으로 다룰 수 있었다. 아직은 미천한 세력을 지닌 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앞에 선 청년 예수의 결단으로부터 예수가 펼친 종교적 혁명이 가능해졌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싶어 한다.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청년 체 게바라를 마주하는 시선이나 영화 <마태복음>이 청년 예수와 그를 따르던 청년 제자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청년 안중근’을 그리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차근차근 뒤따른다. 이는 난세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 미약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해온 김훈 작가가 이미 역사 속 실존 인물이자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청년 이순신’과 ‘청년 황사영’에게 보인 시선이기도 하다.

안중근을 소재로 삼았던 기존의 영화와 도서들이 위인의 업적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안중근을 그려왔다면, 소설 <하얼빈>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두렵지만 결의에 찬 심경으로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안중근을 그린다. 그렇게 <하얼빈>은 시대를 벗어나면 평범하기 그지없었을지도 모를 안중근에게 있어서 시대와 실존 간의 가장 큰 충돌이 벌어진 강렬했을 며칠간의 일들을 선명하게 재구성한다.

특별히 소설 안에서 김훈 작가의 또 다른 소설 <흑산>의 주인공이자 역사 속 실존인물인 황사영을 소설 속 안중근과 비교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조선대목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거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서구 열강에 요청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황사영이 남긴 보자기글을 훗날 번역한 뮈텔 주교의 모습은 교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가 앞에서 종교도 없다’는 신념하에 교회 밖에서 이토를 죽인 안중근의 모습과 대비되어 등장한다. 여기서 소설은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고 말하며, 시대에 종속된 젊은이가 자신이 시대에 종속되어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그 종속된 처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온몸으로 길을 내며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린다. 여기서 뮈텔 주교는 시류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 그 중에서도 시류에 적극적으로 맞서려는 청년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듯 그려진다.

이렇게 소설 속 청년 안중근의 모습은 각자가 속한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든 청년들을 대변해준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한 나머지 시대의 아픔을 바라볼 여유조차 갖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청년들의 심경을 해아려려준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고,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여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에게 작가는 소설 속 안중근을 통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동시에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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