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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면1 원시신화》 리뷰를 쓰다가 일부내용 발췌하여 올림 | 헤아림 하나 2016-05-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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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1]"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0~2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3~2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5]"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9~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6~1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하나님과 예수님과 신앙인은 서로가 서로의 안에 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세계에 드러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단하나의 방법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모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조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자신의 영향력을 불어넣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분을 담은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을 담고 있는 우리는 애초에 우리의 근원이 사랑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삶이 우리 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우리이게 하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이미 말했듯 말씀을 정보를 담은 파동 (or 일정한 각 주파수 대역의 파동) 즉 의미를 담은 근원질료라 한다면 이를 통해 모든 차원의 만물이 이루어졌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셨다는 것은 존재적 차원의 태초(만물이 존재하게 되던 창조의 시작점)에서 당연할 창조와 운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파동학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존재 자체가 파동이며 초끈이론에서도 끈이 물질원소의 최소단위를 존재케하는 근원적 조건은 초끈의 떨림이다. 초끈을 떨리게 하는 파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원소의 최소단위는 없는 것이다. 말씀을 그러한 존재를 이루는 일정한 각각의 주파수 대역의 파장이라한다면 말씀이 없이는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만물은 애초에 하나님과 함께이신 말씀을 통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존재는 말씀 안에서만이 거하는(가능한) 것이며 그 말씀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 안에 말씀이 가능하고 말씀이 가능한 내에서만이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함을 가르침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만이 가능한 근원적 질료를 통해 존재하는 우리는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그 근원과 근원적 질료에 의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의 순차적 구성원리는 사랑이다. 


하나님 안에서야 말씀이 계시고 말씀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근원은 모두 사랑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그 근원적 질료이신 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너희 서로 사랑하라" 고 말이다. 


우리가 우리를 이 세계에서든 어느 차원의 세계에서든 존재케 한 것이 아니다. 근원적 질료인 말씀이 우리를 존재케 하는 원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는 말씀은 말씀 그대로, 우리가 우리를 존재케 한 원인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말씀을 원인으로 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가르침하신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우리의 육체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존재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애초에 우리의 속성이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기에 사랑이 우리를 존재케 하고 우리의 존재 자체와 사랑은 불가분의 것이다. 그러니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일 없이 에너지는 서로 형태만 바꾸어 일정하게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듯 애초부터 우리는 사랑 속에서 육적 존재에서 영적 존재로 위상변화만 거칠뿐 영원한 존재라는 말이다. 선악과라는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단하나의 유혹도 실락도 그 시기 함께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하나님의 저주인 사망도 오랜 방황과 고뇌 끝에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라고 안배된 하나님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략의 열매를 사람들이 맛보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이고 말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28절에서 말씀하신 땅이 이젠 사람에게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물질우주 차원 전체로 확장될 시대를 바로 눈 앞에 앞두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다스리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 잘못 정의 내리게 되면 우리를 존재케하는 근원(하나님)과 근원적 질료(말씀, 예수님)를 전면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로 우리가 존재하는 차원의 우주 전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존재하면서도 사랑이 아닌 짓밟고 핍박하고 군림하는 이상심리로 변질된 존재로서 우주에 나서게 되고 마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6~17]" 


우리가 맺어야할 과실은 예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 그 이상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불교적 가르침과도 같은 길이며 자이나교던 천도교던 심지어 이슬람에서도 실현하라고 하던 바로 그런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가르침들의 핵심인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의 자비의 실천이며 보살의 길 바로 대승적 삶이며 불살생을 근간으로 하는 자이나교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간다.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는 천도교는 말씀이 존재의 근원적 질료인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편협한 관점일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이 깃들어 있을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안에 거하고 자신이 안에 거하는 말씀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사랑이 근원이며 사랑 그 자체의 현현인 존재 차원에서, 우리는 서로(=만물)를 사랑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우주로 확장해 나가야 할 시대에 우리는 다스림의 근거를 사랑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 말은 번드르르하게 했는데 정작 내 안에서는 사랑이 단잠에 들어버렸고 그 잠든 내 사랑세포의 심장에 자꾸만 너나 할 것 없이 말뚝을 박으려 들고 있어! 아니 이미 진작에 그 말뚝 박혔나 보네... 

말뚝 박히면 뱀파이어도 못살아날텐데... 그냥 잘 자라 내 (연애)세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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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On Me / A-Ha [1985.06 , 1집 Hunting High And Low] | 불후의명곡 2016-05-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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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PAwp_1wYz8


We're talking away
I don't know what
I'm to say I'll say it anyway
Today's another day to find you
Shying away
I'll be coming for your love, OK?

우리는 말은 하고 있지만
난 무엇을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쨋든 말을 해야겠죠
오늘 당신을 찾게 될 테니까
부끄러움은 다 저버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지금 가고 있어요

Take on me, take me on
I'll be gone
In a day or two
So needless to say
I'm odds and ends
But that's me stumbling away
Slowly learning that life is OK.

나를 받아 주세요 저와 사랑을 나눠 보세요
하루 이틀 후면 
저는 떠나고 없을 테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희망도 있고 끝도 있는 나이지만
비틀거림이 없이 떠날 거예요
인생이 괜찮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면서...

Say after me
It's no better to be safe than sorry
Take on me, take me on
I'll be gone
In a day or two

제 이야기가 끝나면 말을 하세요
후회하느니 안전한 것이 좋을 수만은 없어요
저를 받아 주세요 저와 사랑을 나눠 보세요
하루 이틀 후면 
저는 떠나고 없을 테니

Oh the things that you say
Is it live or just to play my worries away
You're all the things I've got to remember

그대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진실인가요 아니면
제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가요
당신은 제가 기억해야만 할 모든 것들입니다

You're shying away
I'll be coming for you anyway
Take on me, take me on
I'll be gone
In a day or two

부끄러움은 다 떨쳐버려요 
당신을 향해 다가가고 있어요
저를 받아 주세요 저와 사랑을 나눠 보세요
하루 이틀 후면 
저는 떠나고 없을 테니


가사출처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203&docId=47224801&qb=7JWE7ZWYIHRha2Ugb24gbWU=&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1&pid=S0rAKwoRR0ossvFAdzdsssssssG-471829&sid=g78eCe7lf8lqr2YmtpAvSw%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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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 名詩 2016-05-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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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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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원제: 단 하나의 생각) - 폴 엘뤼아르 | 名詩 2016-05-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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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생 때 노트 위에  On my school notebooks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On my desk and on the trees 
모래 위에 눈 위에  On the sands of snow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On the pages I have read 
모든 백지 위에  On all the white pages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Stone, blood, paper or ash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황금빛 조각 위에  On the images of gold 
병사들의 총칼 위에  On the weapons of the warriors 
제왕들의 왕관 위에  On the crown of the king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밀림과 사막 위에  On the jungle and the desert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On the nest and on the brier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On the echo of my childhood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밤의 경이 위에  On the wonders of the nights 
일상의 흰 빵 위에  On the white bread of the days 
약혼 시절 위에  On the engaged seasons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On all my scarves of blue 
태양이 녹슨 연못 위에  On the moist sunlit swamps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On the living lake of moonlight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On the fields, on the horizon 
새들의 날개 위에  On the birds' wings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And on the mill of shadows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새벽의 입김 위에  On each whiff of daybreak 
바다 위에 배 위에  On the sea, on the boats 
미친 듯한 산 위에  On the demented mountaintop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구름의 거품 위에  On the froth of the cloud 
폭풍의 땀방울 위에  On the sweat of the storm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On the dense rain and the flat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On the flickering figures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On the bells of colors 
구체적인 진실 위에  On the natural truth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On the high paths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On the deployed routes 
넘치는 광장 위에  On the crowd-thronged square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불켜진 램프 위에  On the lamp which is lit 
불꺼진 램프 위에  On the lamp which isn’t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On my reunited houses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둘로 쪼갠 과일 위에  On a fruit cut in two 
거울과 나의 방 위에  Of my mirror and my chamber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On my bed, an empty shell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On my dog, greathearted and greedy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On his pricked-up ears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On his blundering paws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내 문의 발판 위에  On the latch of my door 
낯익은 물건 위에  On those familiar objects 
축복된 불길 위에  On the torrents of a good fire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포옹하는 모든 육체 위에  On the harmony of the flesh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On the foreheads of my friends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On each outstretched hand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On the window of surprises 
긴장된 입술 위에  On a pair of expectant lips 
침묵을 초월한 곳에  In a state far deeper than silence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On my destroyed shelters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On my sunken lighthouses 
내 권태의 벽 위에  On the walls of my boredom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욕망 없는 부재 위에  On the absence without desire 
벌거벗은 고독 위에  On naked solitude 
죽음의 계단 위에  On the steps of death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회복된 건강 위에  On the returning health 
사라진 위험 위에  On the disappearing risk 
회상 없는 희망 위에  On the unremembering hope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I write your name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And for the want of a word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I renew my life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For I was born to know you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To name you 

자유여.  Liberty. 


-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 자유(Liberté) -


Sur mes cahiers d’écolier 
Sur mon pupitre et les arbres 
Sur le sable sur la neige 
J’écris ton nom


Sur toutes les pages lues 
Sur toutes les pages blanches 
Pierre sang papier ou cendre 
J’écris ton nom


Sur les images dorées 
Sur les armes des guerriers 
Sur la couronne des rois 
J’écris ton nom


Sur la jungle et le désert 
Sur les nids sur les genêts 
Sur l’écho de mon enfance 
J’écris ton nom


Sur les merveilles des nuits 
Sur le pain blanc des journées 
Sur les saisons fiancées 
J’écris ton nom


Sur tous mes chiffons d’azur 
Sur l’étang soleil moisi 
Sur le lac lune vivante 
J’écris ton nom


Sur les champs sur l’horizon 
Sur les ailes des oiseaux 
Et sur le moulin des ombres 
J’écris ton nom


Sur chaque bouffée d’aurore 
Sur la mer sur les bateaux 
Sur la montagne démente 
J’écris ton nom


Sur la mousse des nuages 
Sur les sueurs de l’orage 
Sur la pluie épaisse et fade 
J’écris ton nom


Sur les formes scintillantes 
Sur les cloches des couleurs 
Sur la vérité physique 
J’écris ton nom


Sur les sentiers éveillés 
Sur les routes déployées 
Sur les places qui débordent 
J’écris ton nom


Sur la lampe qui s’allume 
Sur la lampe qui s’éteint 
Sur mes maisons réunies 
J’écris ton nom


Sur le fruit coupé en deux 
Du miroir et de ma chambre 
Sur mon lit coquille vide 
J’écris ton nom


Sur mon chien gourmand et tendre 
Sur ses oreilles dressées 
Sur sa patte maladroite 
J’écris ton nom


Sur le tremplin de ma porte 
Sur les objets familiers 
Sur le flot du feu béni 
J’écris ton nom


Sur toute chair accordée 
Sur le front de mes amis 
Sur chaque main qui se tend 
J’écris ton nom


Sur la vitre des surprises 
Sur les lèvres attentives 
Bien au-dessus du silence 
J’écris ton nom


Sur mes refuges détruits 
Sur mes phares écroulés 
Sur les murs de mon ennui 
J’écris ton nom


Sur l’absence sans désir 
Sur la solitude nue 
Sur les marches de la mort 
J’écris ton nom


Sur la santé revenue 
Sur le risque disparu 
Sur l’espoir sans souvenir 
J’écris ton nom


Et par le pouvoir d’un mot 
Je recommence ma vie 
Je suis né pour te connaître 
Pour te nommer


Poésie et vérité 1942 (recueil clandestin) 
Au rendez-vous allemand (1945, Les Editions de Minuit)


우리나라에선 시인 김지하님이 '타는 목마름으로'로 표절했다 하여 더 유명해진 폴 엘뤼아르의 대표작. 


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 http://blog.naver.com/new2all/22063277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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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저리 2016-05-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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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거듭 말씀 하셨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1]"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0~2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3~2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5]"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9~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6~1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과 신앙인은 서로가 서로의 안에 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세계에 드러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단하나의 방법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모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조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자신의 영향력을 불어넣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분을 담은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을 담고 있는 우리는 애초에 우리의 근원이 사랑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삶이 우리 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우리이게 하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이미 말했듯 말씀을 정보를 담은 파동 (or 일정한 각 주파수 대역의 파동) 즉 의미를 담은 근원질료라 한다면 이를 통해 모든 차원의 만물이 이루어졌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셨다는 것은 존재적 차원의 태초(만물이 존재하게 되던 창조의 시작점)에서 당연할 창조와 운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파동학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존재 자체가 파동이며 초끈이론에서도 끈이 물질원소의 최소단위를 존재케하는 근원적 조건은 초끈의 떨림이다. 초끈을 떨리게 하는 파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원소의 최소단위는 없는 것이다. 말씀을 그러한 존재를 이루는 일정한 각각의 주파수 대역의 파장이라한다면 말씀이 없이는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만물은 애초에 하나님과 함께이신 말씀을 통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존재는 말씀 안에서만이 거하는(가능한) 것이며 그 말씀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 안에 말씀이 가능하고 말씀이 가능한 내에서만이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함을 가르침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만이 가능한 근원적 질료를 통해 존재하는 우리는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그 근원과 근원적 질료에 의해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의 순차적 구성원리는 사랑이다. 


하나님 안에서야 말씀이 계시고 말씀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근원은 모두 사랑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그 근원적 질료이신 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너희 서로 사랑하라" 고 말이다. 


우리가 우리를 이 세계에서든 어느 차원의 세계에서든 존재케 한 것이 아니다. 근원적 질료인 말씀이 우리를 존재케 하는 원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는 말씀은 말씀 그대로, 우리가 우리를 존재케 한 원인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말씀을 원인으로 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가르침하신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우리의 육체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존재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애초에 우리의 속성이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기에 사랑이 우리를 존재케 하고 우리의 존재 자체와 사랑은 불가분의 것이다. 그러니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일 없이 에너지는 서로 형태만 바꾸어 일정하게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듯 애초부터 우리는 사랑 속에서 육적 존재에서 영적 존재로 위상변화만 거칠뿐 영원한 존재라는 말이다. 선악과라는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단하나의 유혹도 실락도 그 시기 함께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하나님의 저주인 사망도 오랜 방황과 고뇌 끝에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라고 안배된 하나님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략의 열매를 사람들이 맛보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이고 말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28절에서 말씀하신 땅이 이젠 사람에게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물질우주 차원 전체로 확장될 시대를 바로 눈 앞에 앞두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다스리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 잘못 정의 내리게 되면 우리를 존재케하는 근원(하나님)과 근원적 질료(말씀, 예수님)를 전면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로 우리가 존재하는 차원의 우주 전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존재하면서도 사랑이 아닌 짓밟고 핍박하고 군림하는 이상심리로 변질된 존재로서 우주에 나서게 되고 마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6~17]" 


우리가 맺어야할 과실은 예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 그 이상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불교적 가르침과도 같은 길이며 자이나교던 천도교던 심지어 이슬람에서도 실현하라고 하던 바로 그런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가르침들의 핵심인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의 자비의 실천이며 보살의 길 바로 대승적 삶이며 불살생을 근간으로 하는 자이나교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간다.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는 천도교는 말씀이 존재의 근원적 질료인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편협한 관점일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이 깃들어 있을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안에 거하고 자신이 안에 거하는 말씀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사랑이 근원이며 사랑 그 자체의 현현인 존재 차원에서, 우리는 서로(=만물)를 사랑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우주로 확장해 나가야 할 시대에 우리는 다스림의 근거를 사랑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서들에서 갖추어 대중에게 제시한 모습대로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행하시고 사망을 끝내 이겨내는 과정을 걸으시며 사람들이 그 과정을 목격하게 하셨다. 그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실락의 날에 하신 저주가 결국 깨어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대로의 원리를 인간이 구현해 내는 순간 인간이 보여줄 수 있을 하나님을 닮은 능력들을 인류에게 몸소 보여주시며 경험케 하고자 행하신 것이다.


이 놀이이자 한편의 극에서 연기자이자 연출자였던 그에게 무대 위에서 공연될 각본 따위는 동참하여 써내려 가고 또 사건 하나하나가 충분히 고려하며 그가 스스로 안배하기도 한 이미 숙지한 대상들이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하기만 하였나?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잔을 옮겨 달라고도 부탁하였었고 (물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도 하였으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며 저희(저들)를 (죄를) 사하여 달라고도 기도했다. 못박히고 십자가가 세워지고 난 이후 "다 이루었다" 며 이루어야 할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말씀을 하시고도 다음 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한탄을 하셨다.


도대체 이 연극에서 그의 각본 연출의 참여도는 얼마나였으며 자신이 행해야 할 역할 겪게될 사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대개의 경우는 생방송에 육박한다는 미니시리즈 쪽대본 같은 걸 받으며 연기했고 때로는 약식 설정만 주어지고 촬영하는 리얼리티 상황극처럼 대본에도 없던 돌발상황까지 연기해야만 했던 게 아닐까?  


만일 그가 보여준 다중인격 성향 다분한 여러 모습들에서 일관성을 찾아 맥락을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1]"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0~2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3~2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5]"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9~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6~1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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