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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고 싶은 여행일러스트 | 에세이 2017-11-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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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첫, 타이베이

오가와 나호 저/박지민 역
안그라픽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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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때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이 책의 작가 오가와 나호는 일러스트 작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때문에 일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노트북과 종이만 들고 훌쩍 떠나곤 한단다. 새로운 장소에서 익숙한 듯 신기한 장면들을 보고 영감을 받을 때가 많다는 작가는 운좋게도 여행을 떠난 타이완에서 보고 즐기며 느낀 것들을 책 전체에 걸쳐 일러스트로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여행 에세이인데 사진은 단 한장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흔한 카페와 거리 전경사진이 아닌 작가의 눈을 한꺼풀 거친 일러스트라 더 새롭기도 하고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거기다 책이 생각보다 너무 고급지다. 여행 일러스트 에세이라 얇은 책일거라 예상했는데, 꽤 많은 자료가 담겼는지 두툼하고, 표지도 양장으로 제본되어 있다. 일단 비쥬얼 면에서는 합격!

「저는 보통 집에서 일을 하다보니 매일매일이 마감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쉬는 날을 제 마음대로 정하고, 제 일정대로 여행 계획도 짤 수 있어요.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으니 종이와 펜, 노트북만 들고 자주 불쑥 떠나 여행하듯 일을 합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골목을 천천히 걷고 미술관과 서점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 책 《첫, 타이베이》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p. 4~5>

생각해보면 나도 집에서 일하고,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자유롭게 떠나지 못하는거지.. 앞으로는 집순이 기질을 좀 없애보는 걸로ㅋ






책에 나온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의 모습은 같은 아시아권이라 그런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울처럼 활기넘치고 시끌벅적한 도시 느낌의 타이베이는 친절한 사람들이 넘치고, 즐길 곳이 풍부한 재미있는 도시같다. 작가가 책에 그리고 있는 내용들은 짧게 관광으로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정보보다는 진득하게 지내면서 체험해볼만 장소와 요소들이 많았다.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생기는 책이다. 

다른 나라의 편의점에는 어떤 음료들을 파는걸까? 우리나라에는 팔지 않는 이국적인 음료들을 예쁘게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어 먹어보고 싶은 마음 만땅이다. 타이완에는 목이버섯을 음료로도 많이 활용하나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색다른 재료들, 타이완의 유명한 음식인 듯 보이는 더우장, 달콤해보이는 맥주까지 귀여운 일러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여행가면 꼭 가보고 싶은 맛집과 유명한 음식들도 여럿 소개하고 있는데, 요건 좀 그림보다는 실물이 궁금하긴 했다. 실제 어떤 비쥬얼을 가진 음식들일까, 인터넷을 뒤져봐야 할 것 같은 느낌.    

작가가 받았다는 이색적인 안마가 웃기고도 이색적이었다. 종이로 된 끈 팬티만 입고 들어가면 작고 마른 안마사가 온몸과 엉덩이까지 조물조물 안마해준다. 시원하긴 할 것 같은데 왠지 부끄럽고 민망할 것 같은 느낌이다. 궁금하긴 한데 이건 도저히 못받겠다 ㅋㅋ 

그 외에도 다양한 호텔의 구조와 서비스를 소개한 섹션도 있었는데, 호텔의 공동 공간에 오두막이 있는 곳도 있고, 자유롭고 예쁘다. 다양한 형태의 룸을 공간과 배치까지 함께 소개하고 있어 여행을 계획할 때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작가는 다양한 장소를 소개하면서 실제 그곳에 대한 정보를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주소등을 함께 적어놓았기에 실제로 여행가기전 정보를 알아보기 좋다. 

<첫, 타이베이>를 서울로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서울이라는 도시 곳곳의 맛집과 예쁜 카페, 즐길 거리들, 사람들의 모습, 호텔, 도시공원 등을 소개해주고 가이드 해주는 책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페이지들이 곳곳에 있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여행에 대한 정보위주 보다는 개인의 여행 다이어리 같은 느낌도 물씬 풍긴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자세하게 일일히 다 그림으로 그리고 표현하려면 작가가 정말 다리품을 많이 팔았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사실 이국의 여행지 다운 색다른 맛이 별로 없고, 일반적인 도시와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작가의 개인적인 여행 다이어리를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만족하는 걸로 ㅋ 타이베이를 갈 계획이 있거나, 갔다온 사람들은 계획이나 추억삼아 한번쯤 넘겨봐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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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달콤씁쓸한 노래 | 소설 2017-11-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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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저/방미경 역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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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만에.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강렬한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이었다. 남자아이 아당은 이미 죽었고, 딸아이 밀라는 강렬하게 저항하다 죽어가고 있다. 아이를 죽인 보모는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팔목을 긋고, 목에 칼을 꽂았지만 결국 죽지 못했다. 그녀는 왜 아이들을 죽였는가.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끔찍한 살해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함께 시작하는 이 소설은 긴장감 가득하게 시작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알쏭달쏭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이 책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두번째 책으로 <달콤한 노래>를 내고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2016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여성으로서는 역대 12번째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게 된 그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엄마 미리암과 보모 루이즈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와 완벽한 듯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한 보모 루이즈의 속마음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리암과 폴은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얻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리암은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육아에 매진하게 된다. 처음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 초라한 모습으로 외출했던 어느 날, 미리암은 법대에 같이 다녔던 친구 파스칼을 만나게 된다. 파스칼을 보자 자신의 처지가 더욱 한심스럽게만 느껴지던 차, 파스칼이 뜻밖의 일자리를 제안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여기며 미리암은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자기를 대신해 아이들을 봐줄 보모를 찾게 된다. 

부부는 여러사람을 면접 했지만 그 중 루이즈는 단연 완벽했다. 루이즈가 그전에 아이를 봐줬던 주인집 사람들도 루이즈에 대해 너무나 칭찬일색이다. 우아한 말투와 조용한 행동거지를 가진 루이즈를 보모로 맡게 되어 미리암과 폴은 너무나 만족스럽다. 루이즈는 보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미리암이 잘 하지 못하던 집안 청소와 식사 준비까지 완벽하게 해내기 시작한다. 어느새 루이즈는 미리암과 폴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작품 속 보모 루이즈의 캐릭터는 참 독특하다. 보모로써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아이들과 진심으로 동심에 젖어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딸 스테파니는 방치하고 심지어 학대하기도 한다. 딸이 끝내 사라졌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미리암의 집에서 그토록 완벽하게 살림을 하고, 척척 음식을 해내던 루이즈는 막상 자신의 원룸 아파트에 도착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가 자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다. 주변의 다른 보모들과는 전혀 사적인 것을 공유하려 들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려 들어서 루이즈는 그들 사이의 암묵적인 왕따같은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가지 사건을 겪고 난 후, 미리암과 폴은 점점 루이즈에게 불편한 기색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지만, 각자의 일이 성공가도를 타기 시작한 참이라 너무 바쁘다. 루이즈가 당장 그만둔다면 생활이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이 의지하게 된 것이다. 루이즈는 완벽하게 이 가족에게 동화되고 싶다.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에 가게 되어 보모가 필요없어지게 될 상황이 두려워진다. 그녀는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서가 아닌 다른 가족 안에서 동화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자신의 삶, 자기 딸의 삶보다 자기가 보모로써 돌보는 아이와 그 가족이 우선이 된 삶, 그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알쏭달쏭한 느낌과 함께 먹먹한 감정이 올라온다. 주인집 아이들을 죽이고 자기도 죽고자 했던 여자, 인형처럼 가녀린 몸을 지니고 평생을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여자, 그녀의 속엔 도대체 무슨 마음이 숨어있었던 걸까. 하루아침에 아이를 다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은 미리암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가 <달콤한 노래>를 통해 여자들의 어떤 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 궁금해 진다.   
달콤한 일상 속에 숨어있던 전혀 달콤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은 루이즈, 
나는 아직도 그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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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명을 누가 결정하는가 | 소설 2017-11-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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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 저/이지민 역
SISO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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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이유가 그 형제를 살리기 위해 장기와 피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그건 좀 슬픈 일이지 않을까?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같은 피를 나눠가진 만큼, 부모에게 똑같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경쟁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어려서 자기 몸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모 마음대로 아이의 몸에서 피와 골수, 장기를 빼서 그애의 언니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나의 입장에 동화된 나머지, 그녀의 부모들을 내심 불만에 찬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영화원작소설 이며, 다양한 도덕적 관점이 충돌하는 소재를 활용해 충격적이고도 기가막힌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소름끼치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감출수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언니에게 준 건 제대혈있었어요. 신생아 때였죠. 언니는 급성전골수세포성백혈병(APL)을 앓고 있었고 제 세포 덕분에 나아졌죠. 다음 번 병이 재발했을 때 저는 다섯 살이었고 의사는 제 몸에서 림프구를 뽑아갔어요. 세번이나요. 첫 시도 때 충분한 양을 뽑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그마저도 효과가 없자 이식을 하기 위해 골수를 뽑았어요. 언니가 감염되자 과립 백혈구를 기증해야 했고요. 언니가 다시 재발했을 때에는 말초조혈모세포를 기증해야 했지요." 」 <p.31>

안나는 언니 케이트에게 유전적으로 딱맞는 기증을 할 수 있도록 태어난 유전자 맞춤아기였다. 어쩌면 복제인간과 약간 비슷한 개념으로 태어난 셈이다. 태어날 때부터 언니에게 자신의 피와 골수와 백혈구를 끝없이 기증해야 했던 아이, 이제 언니 케이트는 백혈병이 아닌 신부전증으로 문제가 생겨 신장이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신장은 2개가 존재하고 하나만 있어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부모는 안나가 당연히 기증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제 안나는 더이상 언니에게 기증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자신에게 기증을 강요하는 부모님을 고소하겠다며 변호사를 찾아간다. 13살이라는 아직 어린 나이에 어려운 전문용어를 줄줄 외며 반쯤은 어른이 된 모습으로 변호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안나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부모의 관심은 항상 아픈 케이트였다. 아픈 케이트가 제일 괴롭긴 하겠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은 부모의 무관심 앞에 소외감으로 점점 삐뚤어져간다. 소설에서 비중은 작지만, 케이트의 오빠 제시는 동생에게 기증도 할 수 없는 입장이고, 부모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커갈수록 점점 삐뚤어지며 마약과 술에 쩔어지내고, 방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부모는 계속해서 속을 썩이는 제시를 마음속으로 포기하게 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제시의 상처받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소설은 모든 등장인물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자신의 변호사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여겼던 엄마 사라,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매일 위급상황을 맞이하지만 집에서 언제 케이트가 쓰러질 지 몰라 발을 동동 굴리는 상황이 더 힘든 아빠 브라이언, 언니를 살리고 싶은데 반대로 죽여야 하는 입장에 처해 복잡한 심경의 안나, 이 모든 불행에 괴롭고 거기에 외로움까지 더한 제시 등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 한명이 나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겼을 때 모든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괴로운 상황들과 함께 그 중 한 아이의 희생을 동력으로 다른 아이를 살려야만하는 특수한 상황을 끼워넣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만한 인생문제를 던져준다. 

책을 읽을 땐 안나에게 몰입한 나머지 부모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는데, 리뷰를 쓰면서 감정에서 좀 벗어나 생각해보니 부모들의 결정이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기에 도저히 한쪽 편을 들어주기가 힘든 이야기다. 물론 소외받은 자식들의 외로움은 어디가서 보상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특히 소설의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결말은 책의 여운이 오래도록 뇌리에 박히게 한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설, 영화도 찾아봐야겠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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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걷기의 비밀 | 인문학 2017-11-2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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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로제 폴 드루아 저/백선희 역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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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행위를 좋아한다. 심심하면 집앞 공원에 산책을 나가서 정처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일부러 도보여행으로 일정을 잡아서 4박 5일동안 미친듯이 걷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자동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른, 걷는 것만의 낭만이 있다. 주변의 배경이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지나가고,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내 생각도 흘러간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걷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걸으면서 이야기하다보면 서로가 품고있던 문제들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때가 많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다리와 함께 생각도 함께 걷는걸까? 그러고 보면 생각을 많이 하는 옛날 철학자들은 항상 걸으면서 진실을 탐구했던 것 같다. 걷는 행위 안에는 뭔가 특별한 힘이 숨어있는 걸까?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과 인생을 살펴보는 책이다. 

「이내 명백한 사실이 눈앞에서 확인될 것이다. 걷기가 추락의 시작이라는 것, 추락의 발단이라는 것. 추락은 촉발되었다가 이내 저지당하고, 다시 시작되다가 또 저지당하고……. 그렇게 무한히 이어진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건 거의 자신을 넘어뜨리다가 균형을 회복하고, 다시 거의 넘어뜨리다가 만회하기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일이다. 변함없이 시도되었다가 중단되는 이 추락을 시작으로 움직임이 생겨난다. 우리는 그걸 직감적으로 안다. 매일 걷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p.13>  

걷는 것이 추락의 시작이고, 이내 그것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저 다리가 움직이는대로 걸을 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그 행동을 쪼개서 생각해보니 새삼 새롭다. 그러고보면 친밀한 사람끼리는 멀리서 걷는 모습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얼굴과 생김새는 숨겨도 걸음걸이는 못 숨긴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것이다. 그 걸음걸이 마저도 기분에 따라 씩씩하고 당당해지기도 하고, 어깨 축쳐진 터덜터덜한 발걸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걸을 땐 생각도 함께 걷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겠다."」<p.26> 이 말처럼 걷는 행위가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언제나 철학은 확신에 딴지를 거는 일부터 한다. "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정말 그렇게 확신해?" 이 시비 걸기는 명백히 안정을 깨뜨리는 일이다. (...)어떤 경우건 철학을 통해 친근한 확신을 흔드는 일은 걷기의 첫 움직임이 촉발하는 추락의 시작에 비교할 수 있다. 명백한 사실에 틈을 만드는 의심은 곧 넘어지겠다는 느낌을 준다. 친근하고 확실하던 세계가 갑자기 의심스러운 것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기대고 있던 기둥들이 무너진다. 이 균형 깨기는 매번 동일한 동요에서 비롯된다. "안다고 믿었죠? 알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친근하다고 확신하십니까? 다르게 보세요. 놀라시게 될 겁니다."」 <p.108>

철학자들의 생각이란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관념을 깨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을 어느새 다른 눈으로 보게된다. 걸으면서 생각이 흐르는데로 놔두다 보면 어느새 '왜?'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 아닐까? 걷다보면 나무, 풀, 건물, 지나다니는 사람들, 강아지, 고양이 등 수많은 것들을 지나치기 마련이다. 눈으로 보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보다 생각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속엔 물론 쓸데없는 생각들이 더 많겠지만 복잡한 머릿속에 산소를 공급해 생각을 유연하게 해주는 작용을 할 것이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에 나오는 철학자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사례는 노자의 이야기였다. 
「바람은 작고 미미하지만 산을 깎을 수도 있고 나무들을 눕힐 수도 있다. 바람은 우리가 그 둘레를 구분하지 못하게 움직이며 경게가 없다. 그저 달아나며 미끄러지듯 지날 뿐인데 바람은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 바람의 힘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제 자신을 관통한다. 바람은 그 힘을 소유하지 않고, 그 힘에 소유당하지도 않는다. 세상이 제자리에서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며 스스로를 지우기 때문이다. 
현자는 정확히 바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므로 걷는 것은 당나귀이지 현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자는 일정한 방식으로 걷는다. 그가 가만히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이 절대적 수동성 속에서 그는 실재적이고 궁극적인 힘을, 만물의 내적 작동과, 만물의 내밀한 전진과 하나가 되는 힘을 발견한다. 따라서 걷는 건 세상이지 현자가 아니다.  현자는 그럼에도 걷지 않으면서 나아가고, 전진하고, 자기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는 것보다 더 잘 걷는다. 노자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런 문장이 있다. "진정한 말은 역설처럼 보인다." 정말 그래 보인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p.83~84>

직접 두발로 걷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걷도록 하는 사람, 절대적인 수동성으로 자연을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걷지않고도 전진한다는 것, 그 자신이 보이지 않는 바람이 된다는 것, 왠지 멋져보였다.

책을 읽고나니 더욱 더 걷고 싶어졌기에 밖으로 나갔으나, 이제 완연한 추운 겨울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뼛속 깊숙히 찬바람이 들어와 오래 걸을 순 없었지만 다음번엔 내복에 목도리까지 돌돌 말고 나가서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만큼 건전하게 기분을 환기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흔치 않으니까. 걷다보면 나도 언젠가 감추어져있는 세상의 진리를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걷는다, 또 걷는다. 

그대도 걸으며 세상의 숨은 진리를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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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소설 2017-11-20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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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배반

폴 비티 저/이나경 역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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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노예제도와 인종분리제도 부활을 시도하다 끌려가다?! 
이런 줄거리 만으로도 잉?하는 소리가 나오는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다. 폴 비티는 <배반>으로 미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그것도 만장일치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어떤 점이 심사위원 전체의 마음을 휘어잡은걸까. 이 책은 사회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을 유쾌하게 꼬집은 책으로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사실은 책 소개를 보고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펼쳤지만, 책의 처음부터 중반까지 도무지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미국식 조크와 미국에 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표현들 때문에 각주가 수없이 붙어있었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기에도 역시나 쉽지는 않은 텍스트였다. 힘겹게 정신을 부여잡고 읽다가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 드디어 좀 읽히기 시작한다. 그가 표현하는 코미디와 위트와 조롱을 100%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실은 아직도 내가 이해한게 맞는지 정확히 확신은 못하겠다. 힘겹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한번 더 읽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인종 분리? 노예 제도?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네 부모가 널 그렇게 키우진 않았을거다! 그러니 이 놈의 파티를 시작해보자!」 
< 폴 비티 《배반》 p.40>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잡혀가서 재판을 받는 처지이지만 주인공은 여유롭고 심지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사회학자인 아버지에게 홈스쿨링을 받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현재가 되기까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에는 흥미롭고 특이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릴 적 만화영화에 등장하던 스타배우였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호미니, 그는 주인공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며 항상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날 기쁘게 해주고 싶으세요?"
"네, 알잖아요."
"그럼 날 때려주세요. 이 쓸모없는 시커먼 몽뚱이가 죽기 직전까지 때려 주세요. 하지만 주인님, 날 죽이진 마시고요. 내 허전함을 채워 줄 정도만 때려주세요."」 
< 폴 비티 《배반》 p.113>

자살을 시도하던 호미니를 살려줬더니, 자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노예처럼 부리고 때리는 거라며 자유를 준다고 해도 절대 싫다고 하며 주인공 옆에 붙어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장일을 한다거나, 주인공이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을 노예처럼 때려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호미니는 어느날 생일선물로 주인공의 여자친구이자 버스기사인 마페사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버스 좌석에 <노약자, 장애인, 백인 우대석> 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자리를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인종차별을 받고 싶다는 호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처음 버스에서 그 스티커를 발견한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왠말이냐며 불만을 표하지만 스티커는 계속 그 자리에 붙어있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그 스티커가 붙은 버스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버스에서는 절대로 싸움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러운 화장실 문에 새겨진 <백인 전용>이라는 글자 밑,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어 <다행이다>라고 적고는 개미집 위에다 오줌을누었다. 그곳 이외에 지구상의 모든 곳이 <유색인 전용>인 모양이니까.」 
< 폴 비티 《배반》 p.247>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삼아 인종분리 학교를 짓는 것을 추진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디킨스가 어느 날 경계점이 다 지워져 지도에서 사라져버리자 스스로 마을경계에 줄을 긋고, 표지판도 세워서 디킨스는 여기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알린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엉망인 마을이지만 분명히 물리적으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농부이고, 농부들은 타고난 분리주의자이다. 우리는 밀과 겨를 분리한다. 나는 루돌프 헤스도, P.W.보타도, 캐피틀 레코드도, 현재의 미합중국도 아니다. 그 자식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분리를 원한다. 나는 농부다. 우리는 모든 나무, 모든 식물, 모든 가난한 멕시코인, 모든 가난한 흑인에게 햇볕과 물을 동등하게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분리한다. 우리는 모든 생물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  
< 폴 비티 《배반》 p.290>

어설픈 통합은 오히려 그 속에 존재하는 차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주인공은 모두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오랜시간 착취당했고,  노예로 부려진 인종차별의 역사가 법적으로 통합된다고 한번에 바뀌지는 않나보다. 흑인이 2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인종차별, 그걸 오히려 역이용해서 분리를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흥미롭고 꽤 그럴듯 하다. 그만큼 현재의 통합된 인종 세계에서도 암암리에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비틀고 싶은 거겠지? '이럴거면 차라리 분리해!' 하고 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렵긴 하지만 웃긴 포인트들도 꽤 많다. 처음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몇번 키득키득 웃으며 읽었던 것 같다. 미국문화를 좀 더 많이 알고서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쉽다. 번역도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번역가가 머리를 쥐어뜯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읽은 걸로는 70% 정도 이해한 느낌인데 다음에 다시 읽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이 책으로 차별이라는 행위에 대해 완전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인종차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차별에도 적용해서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듯 하니까. 

인간은 왜그리 편을 나누고 차별하는걸 좋아하는지, 아무리 똑같은 인간들만 모아놔도 아마 시간이 지나면 그들끼리 외모, 경제력, 계급, 성별로 나누어 서로 차별하고 있을거다. 
에고, 인간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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