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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했던 | 기본 카테고리 2021-10-3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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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서관 런웨이

윤고은 저
현대문학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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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게 동거에 따른 고독을 선택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예상 불가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보험사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게 아닐 듯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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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서점을 자유롭게 방문하고 책을 구입할 수 있기 전까지, 책을 만나러 가는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책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도서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의 ‘나’가 설레고 좋았다. 조용하고 정갈한 책의 거리, 서가 사이를 조용히 걸으면, 비염도 사라진 듯 책의 향기, 책 공간만의 냄새들이 심장을 떨리게 했다.

 

<도서관 런웨이>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독자 모두를 설레게 하는 작품의 시작은 이렇다.

 


 

‘뒷굽’이란 단어가 대학시절 도서관의 나를 소환한다. 브랜드 모델이 착용한 구두를 꼭 선물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굽이 딱딱한 신을 신고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던 서가, 오후의 그 시간. 산더미 같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흘낏 한 눈을 팔기도 했던 안온했던 장소였다.

 

그땐 도서관도 못 가보는 시절을 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휴관이 늘고 언제가 휴관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되어 불편해서 점점 더 안 가게 되었다. 지난 사진을 보다 마지막으로 찍은 도서관 사진이 작년 겨울이라는 걸 알고 놀랐고 슬펐다.

 

2년간의 영화와 책도 판데믹 시절을 굳이(?) 현실감 있게 묘사하거나 다루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시 잊기도 했고 그래서 현실감 없는 작품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이 작품은 코로나 판데믹을 다큐처럼 묘사에 활용한다. 도서관은 제한 운영을 하고, 머무는 방문은 안 되고 겨우 대출만 할 수 있고, 결국 문을 닫고, 친구와는 줌으로 대화하고, 구체적인 거리두기 지침까지. 내가 경험한 현실의 풍경들이 서사에 펼쳐진다. 안나는 내내 마스크를 하고 도서 대출을 받으러 갔을 것이다.

 

결혼준비를 하는 중에 제목을 보고 대출한 몇 권 중에는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책이 있었다. 가이드북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보험약관집’이다. 30년이 넘게 도서관을 열심히 들락거렸지만 보험약관집을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지 몰라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재밌기도 했다. 물론 내가 아는 그 매뉴얼 책자일 리는 없겠지만.

 



 

공공연한 비밀 혹은 상식처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양한 신화와 아름다운 스토리로 장식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해피엔딩의 종착지로서 결혼은 계약관계를 마무리하는 일이다. 연애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혼인 계약서에 양자가 합의하고 법적 관계를 성립시켰는지 아닌지의 차이이다.

 

혼인 외에도 현실에서 계약을 통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은 거의 없다. AS는커녕, 손해배상, 손실보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결혼과 보험약관집이란 설정은 전혀 우습지도 생뚱맞지도 않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은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다, 지그재그로 뻗은 핼리팩스 도서관 내부를 걷는 런웨이를 계기로 만난 남자 정우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극도로 낭만적인 서사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여기 안심결혼보험에서요. 비동거에 따른 고독 항목이 있고 보험금을 지급하잖아요. 그럼 동거에 따른 고독, 거기에 대한 보장도 있었을까요?”

 

“결혼이란 게 동거에 따른 고독을 선택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예상 불가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보험사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게 아닐 듯하고요.”

  

 

도서관이 들어간 제목에 끌렸지만, 대거상Dagger* 수상자인 윤고은 작가의 작품이 어떤 내용일지 설레며 읽었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요소가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에, 복선으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완독 후 남은 것은 감정도 관계도 뒤엉킨 등장인물 네 명의 관계와, 조금 멍하니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는 나였다.

 

“바닥을 보면 안나의 그림자와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가 이미 꼭 붙어 있어서 서로의 실루엣을 무너뜨린 상태가 되어 있다고. 창밖에 바람이 불면 잎사귀의 그림자들은 더 요란하게 흔들리고 그 요동 속에서 그와 안나는 키스를 한다고. 그림자는 실체보다 더 빨리 닿는 거라고.”

 

“한 사람이 말하지, 우리 그럼 눈이 녹기 전에 끌어안읍시다.

눈이 있는 동안만 가능한 것처럼 서둘러 끌어안읍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거야. 그럽시다.”

 

친구 관계인 안나와 유리의 관계 묘사 중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무척 많다. ‘어느 시기에는 많이 뭉쳐 있고 어느 시기에는 또 완전히 공백상태인 그런 관계’, 나도 이런 오랜 친구들이 있어서 읽는 중에도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보곤 했다. 둘의 근무지가 이야기 소재와 찰떡인 여행사와 보험사인 것도 재미있다.

 

다소 평범하게 시작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서늘하게 내려앉기도 했고, 설레며 긴장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과 밖에 할 수 없는 찰나적이지만 체온을 교환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라니! 결론이 예상보다 따스해서 상상 속에서 뽀얗게 내린 눈보다 마음이 먼저 녹는다.

 


 

추리소설이라면 떡밥 회수를 잊으셨다고 알려 드리고 싶은 죽음도 완독을 하고 나니 따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 런웨이>가 꽂힌 서가 사이를 포스트잇을 붙이는 느낌으로 뒷굽을 내려놓으며 소심하게 걸어보고 싶다.

 

! 주의. 소설보다 더 공을 들인 것은 아닌가 싶은 ‘683쪽이나 되는 양장본 <안심결혼보험 약관집>’의 소개된 내용들이 기막히게 구체적이고 감탄스러워서 구해 읽고 싶은 기분이 든다.

 

.............................................

 

* 1953년 창립된 상. 추리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상 중 하나. 영국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는 각 부문별로 '대거(Dagger)' 상을 제정하고, 최고의 범죄, 스릴러 소설을 가리는 영예로운 상의 주인공들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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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라비니야 글그림
스튜디오오드리 | 202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는 만만한 사람보단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하는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경험상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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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은 다르지만 결국엔 힘내라 토닥토닥하는 책을 두 권째 읽으며 뜬금없는 상상을 해본다세상에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겪고 있다면 어떤 감정일까그래서 아무도 내 상황을 이해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게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통계이기도 해서나 혼자 빠져나오기보다는 함께 해결할 부분을 찾아보자이렇게도 된다최종 해결이 오래 걸린다 해도 그 과정에서 비슷하게 느낀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살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이 모두 달라 정확한 해법도 위로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누구의 말이 다른 누군가의 구원이 될 지는 당사자밖에는 모를 일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라서우리는 간혹 속속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기도 한다악의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개인에게 돌리는 세력도 있을 수 있고명백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범죄마저 피해자 탓을 하는 일도 있다.

 

정교한 사회화와 교묘한 가스라이팅 사이에서 우리가 내면화한 자기비난의 뿌리는 튼튼하게 깊이 내려갔을 지도 모른다작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아 일상의 언어로 깊은 고민과 다짐을 들려주는데 내 감상글은 왜 대적하듯 이런 투로 이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는 무척 고단한 시기를 지나는 중에도 자신이 마주한 일상을 흘려버리지 않고 담았다가 자신만의 글로 전한다더 이상 꿈을 물어주는 나이도 아니고현실이 반겨 주지도 않고안정된 생활을 하기엔 부족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직장생활도 선택하기 어렵다.

 

내가 먼저 나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할 때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작품에 대한 애정의 부족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향한 애정에 인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작품은 곧 나고내가 나를 해체해서 풀어낸 것이 바로 작품이니까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에게 애정을 보낼 때 타인도 나를 내가 쓴 글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한 적도생활을 책임이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음에도사회가 제공하는 선택의 폭은 참 야박하다연재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니 뒤늦게라도 기쁘다갈등이 심해 힘들었을 모든 순간에도 글쓰기를 계속한 용기가 대단하다이제는 도전하는 사람에서 도전하는 다른 이들의 격려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

 

내 삶을 설명하는 방법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주 사소한 것들임을 깨닫는다누가 보든 보지 않든 정성스럽게 삶을 일구는 자들에게서 흐르는 그 멋이 (...) 그 우아함을 본받고 싶다.”

 

꾸준히 정성을 들여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가진 힘은 엄청나다작가는 사소한 것들이라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 자존심이 강한 선한 사람들이 우아하게 계속 살 수 있기를세금을 내고 사과 편지를 쓰며 남은 책임을 최대한 다하고 삶을 중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증언하는 사회의 병리를 더 귀 기울여 듣는 사회이기를.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의미이며 잘 지내냐는 안부의 표현이니까그 소중한 말을 단순한 빈말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게 나의 마음이다따뜻한 끼니로 허기진 가슴을 가득 채울 누군가가 내게도 있으므로.”

 

나는 밥 먹자는 제안을 참 안 하는 편이다먹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그래도 빠트리지 않고 불러주는 자리는 감사히 출석했는데그런 약속도 만남도 참 옛 일 같다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회복될지 모르겠지만언젠가 반갑게 만나 밥 한번 먹자!

 

굳이 내가 느낀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부조리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게 마음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는 만만한 사람보단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하는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경험상 더 나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따져 묻는 게 정체성의 일부이고연령주의가 공고한 한국사회에서 나이 덕도 보는 나는 여기까지라는 경계도 분명히 할 수 있고불편한 사람이 되는 일이 두렵지도 않다하지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역사상 사회적 최약체가 되고 만 가장 많이 배웠고 가장 오래 일하나 가장 가난한 - 20대들은 작가처럼 이런 마음을 먹고 단단히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크다무조건 힘껏 끝까지 응원한다.

 

대단한 자아실현이나 내적 성장은 아니더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업무의 즐거움을 찾고 나니 의욕적으로 일과 생활을 병행할 힘이 생겼다 이 변화만으로도 난 충분히 사회에서 오래 버틸 만한 단단한 볼트가 된 게 아닐까 싶다.”

 

: 10월 마지막 주는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하다 위경련과 비염의 공세로 육체적 고통이 커지니 정신의 아픔이 밀려난 괴이한 시간이었다추가근무를 하고서야 마무리가 된 것은 아쉬우나 어쨌든 잠시 끝이다최선업무의 즐거움의욕이란 단어들을 내 것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버티려면 버틸 수 있다는 생각.

 

충분히 이기적으로 살면서 여전히 타인에게 무해한 존재이고 싶은 욕심이 내게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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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 글은 늘 힘이 세다 | 기본 카테고리 2021-10-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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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김다슬 저
스튜디오오드리 | 202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관계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나를 아프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알 수 있다. 즉 신뢰는 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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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예전 어느 날 내 결심과 같고도 조금은 다른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못된 마음을 먹고... 누가 잘 못 알고 있어도 애써 설명하며 살기 싫다고 생각한 날의 내가 소환된다. 잘 못 알고 있는 대상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지식을 설명할 능력은 없다.

 

요점은 지식정보의 대상이나 정확성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로도 흐르던 체력과 정신력과 친절과 다정함을 거두어들이기로 한 날, 의 나의 문제이다. 지쳤고 좀 더 단순하게 말끔하게 집중해서 살고 싶었다.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걸 모른다. 당신이 실망스러운 행동을 했음에도 별말 하지 않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게 아니라, 거듭된 실망 끝에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외면하는 단계란 의미다.

 

당신에게 쓰이는 모든 감정이 낭비라고 선을 그은 거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는 것.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게 없다. (...) 이 순간 이후로는 모든 것이 늦다. (...) 이는 깊게 새겨져 평생 바뀌지 않는, 저주에 가까운 일이다.”

 

: 이런 태도의 변화가 참 나쁜 것은 이런 결심 이후로 나는 좀 더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란 평이 조금이지만 늘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진실로 무슨 생각을 하고 타인을 대하는 지 알 도리가 서로 없겠구나, 싶어 서럽고 암담했던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그 후로 여러 다른 실험을 거쳐 지금은 다른 태도, 다른 생각, 다른 절망, 다른 결론을 배웠지만 나이와 체력 탓을 하며 더 말을 아끼고 더 성격 좋은 사람이 되는 이율배반의 방향만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예전엔 너무 억울해서 하나씩 따지고 바로잡기 바빴다. 굉장히 피곤한 소모성 일이더라. 더는 그러지 않는다. (...) 보잘것없는 인연이나 멋대로 오해하고 마음대로 떠들고 다니더군. 그런 사람은 부디 오해한 채 그대로 멀리 사라져주길.”

 

: 별 인기가 없는 덕분에 극렬하고 억울한 오해를 받고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펄펄 난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4학년 때 수업 들어가기 전 후배 두 명이 반갑게 인사하며, “약혼하셨다면서요?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신다면서요?” 하고 물었다. 금시초문이라고 하니 재밌어하며 크게 웃었다. 강의실에 들어와 거의 매일 보고 사는 동기들에게 그런 얘기 들어봤냐고 하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지도교수가 되어 주실 분과 약속을 정하고 학교를 방문했다. 후배 한 명을 우연히 건물 앞에서 만났는데, “결혼하셨다면서요? 못 가서 죄송해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그 결혼식 나도 못 갔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하니 엄청 재밌어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와 내 친구들은 모르는 약혼과 결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그 결혼식에 갔다는 사람이 있을 지도. 도플갱어가 떠올라 잠시 오싹하기도 했다. 출국 전 아들 돌잔치 얘기까지 들었는데, 지금도 누가 시작한 굴뚝 연기인지는 모른다. 정말 도플갱어라면 끝까지 잘 피해 살아보자.

 

힘든데 괜찮다고 속인다. 타인을 속이는 김에 나마저 속여 버린다. 힘듦을 일일이 말로 풀어서 전달하기엔 구질구질하다.”

 

: 구질구질이라기보단 모두 다 정확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고, 결국 결정도 선택도 내가 할 일이라 타인이 알아주기를, 타인에게 잘 하소연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은 잠시 징징거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일은 더 침묵하게 된다. 설마 나만 그럴까.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관계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나를 아프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알 수 있다. 즉 신뢰는 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다.”

 

: 그래서 나는 신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아주 잘 듣는 귀로 산다.

 

시간이 흘러,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헤매야만 하는 일이 없도록, 세상에 단 하나만 붙잡을 수 있다고 하면 시계추를 붙잡겠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진리가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다.”

 

: 괴로운 사실은 시계추를 붙잡아도 시간은 간다는 것. 지구를 멈춰야하는데, 그 대가는 절멸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여러 분 떠나신 올 해는 힘들고 아프고 무참했지만, 감정 역시 살아 있는 존재에게만 머무는 것.

속을 들여다 본 듯한 내용을 짚어 써 준 내 이야기라 느낄 독자들이 많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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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야말로 과학의 역사 | 기본 카테고리 2021-10-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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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자의 흑역사

양젠예 저/강초아 역/이정모 감수
현대지성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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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의미에서 상상력은 과학 연구의 실재적 요소다.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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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여전히 수학만 하고 있는 전공 수업들과는 달리 과학의 전체 모습, 관련된 사람들, 시대적 배경과 필요가 사적으로 순서대로 설명이 되니, 왜 이 시기에 이 과학이 필요했는지, 온기라곤 없던 공식들을 연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니 비교할 수 없이 재밌게 느껴졌다. 덕분에 역사 기록의 가치도 배웠다.

 

제목이 아주 고혹적인 책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논리적일 듯한 과학자들의 흑역사니까. 그래도 나는 전공자니 과학연구가 얼마나 처절한 실패와 헛발질로 점철되며 이어지는 지를 조금은 안다. 그래서 제목이 재밌기도 하면서 짠하기도 하다.

 

물리학자인 저자 역시 실패 없이 배울 게 없는 게 과학의 속성이라 하니 단지 우스꽝스러운 과학자들 26명 놀려 먹고 재밌으란 책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반전들이 기대된다고 할까. 물론 그 전에 과학자들 역시 여러 인간적인(?) 면모들로 인해 해서는 안 될 끼워 맞추기를 하는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게 우주상수 포기하시라 전하고 싶다.

 

양자역학의 개념이 아닌 듯도 한 개념이 너무 싫어서 덩달아 닐스 보어 Niels Henrik David Bohr  역시 싫었다. 아인슈타인이 공공연히 양자역학을 싫어하고 도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그러다 보어가 죽기 전 날까지 연구실에서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문제를, 그것도 자신이 이미 옳다고 증명된 문제를 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숙연해졌다.

 

유사한 역사가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과 스타인하트Paul Steinhardt 사이에서 반복되었다. 당대 세계최고의 지성에게서 지적당하고 공공연히 반대당하는 과학자의 심정은 어떨지 잠시 상상만 해본다. 누구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성실하게 자신의 이론을 연구하고 증명해온 과학자일수록 연구결과에 오류가 있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중에 사과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과학자들은 사고방식 상 확실한 물증으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신 입증 후에는 누구보다 빨리 혁명적이라 느낄 사실도 받아들이는 면이 공존한다. 이렇게 쓰면 과학자들이 균형 잡힌 이상적인 이들로 보이고 큰 실수나 문제가 없을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다. 이론물리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눈 먼 과학, 철학적 성찰이 없는 과학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여전히 유의미한 지적이다. 이 책에서 다룬 독가스를 개발한 하버Fritz Haber의 사례는 이토록 아무 예측도 못할 수 있나 싶은 과학자의 참담한 연구 열정과 결과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진행중인 형편은... 과학기술이라기보다 공학기술과 이들을 바로 활용해서 이윤을 낼 산업자본의 결착으로 대부분의 연구 영역이 대체된 듯한 분위기라 속사정은 더 복잡하고 우울한 면도 크다. 하지만 미래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 근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그런 희망을 다 포기하지 않은 채로 흥미롭고 가독성 좋은 방대한 대중과학서를 무척 즐겁게 탐독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유한하지만 상상력은 세상 전부를 담을 수 있고 발전을 유도한다. 또한 상상력은 지식 진화의 원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상상력은 과학 연구의 실재적 요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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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윤주 저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내가 보낸 글들은 어디를 헤매고 있으려나. 언제쯤 당신에게 이윽고 한 끼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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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울컥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쓰기보다 읽기를 하는 입장이지만 동기화되는 부분이 있다. 할 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살면서 한 번 화르륵...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몇 달 전 듣고 깊은 공감을 한 말, 깊은 빡침을 여러 이유로 - 상처 주기 싫고, 주목 받기 싫고, 후회하기 싫고, 정리 안 된 생각이 싫고 - 사르르 꿀꺽 삼키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한다. 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많진 않을 듯하다.

 

“괜찮아,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 이 선량하고 무해한 저자의 문장을 나는 “책 읽자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아.”로 바꿔 읽는다. 저주하는 버릇 빨리 그만둬야 하는데……. 책과 영화는 들썩거렸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의식이다. 책은 나의 속도로 읽을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고 영화는 책장 넘길 기운도 없다 싶을 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좋다.

 

저자에게는 의식 같은 동아줄이 글쓰기이다.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라 흉내내볼 엄두가 안 나는 대단한 방식이다. 내 의심이 정당(?)했다는 것이 완독 후에 확신으로 증명되었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는 해소가 아니라 충전의 방식으로 작가를 돕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대화, ‘말’보다는 어쨌든 누군가의 거름망이라도 한 번 거친 ‘글’이 편하고 그래서 읽기가 편한 나는 저자가 ‘쓰기’라는 방식을 ‘글’을 택한 것을 또한 접점이라 여기고 묘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러면서 말하듯 글 쓰는 내 이율배반은 어쩌나…….

 

일기도 아니고 사회과학서와 에세이를 오가며 매서운 타격과 웃겨주는 위트를 겸비한 필력의 글을 두고 이 무슨 건방진 비교인가 싶기도 하다. 뜨끔한 각성을 일으키는 진지한 글도 많고 재미난 글도 많지만 감탄이 나오는 적절한 어울림은 많지 않다.

 

나이 드니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자꾸 울컥거린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찾지 않아 혼자인 시간은 더 절실해진다. 게으른 성격 탓에 남이 다 해놓은 결과물을 적당히 이용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뭘 써야 할지 모르면서 뭐라도 써볼까 싶기도 하다.

 

“내가 보낸 글들은 어디를 헤매고 있으려나. 언제쯤 당신에게 이윽고 한 끼가 되려나.”

 

: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감사한 여러 끼가 되겠습니다.

 

“글을 쓰다 한 번씩 두려워질 때마다 나는 외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은 결국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글이다.’”

 

: 제목에 끌린 이들에게는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필요가 있을 거라 믿는다. 비슷한 통증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서로를 잘 알아본다.

 

“저자로서, 글을 썼다기보다는 똥을 쌌다고 느껴질 때 마음을 붙잡는 법.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겪고 많이 써본 사람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더 많이 알고 겪고 써도 두 개의 프리즘을 가질 수는 없다.”

 

: 공들이지 않는 내 글에는 깨소금처럼 뿌려지는 묵은 버릇이 있다. 원칙은 그냥 써라, 쓸 말이 없어질 때까지, 막 써라, 이지만 아주 오랜 제도권 교육 탓에 나중에 읽어보면 교훈과 권유와 비판 등이 흩뿌려져 있다. 이 무슨 추태인가 싶지만, 양질전환이 일어날 때까지 그냥 막 써보기로 했다. 저자의 프리즘을 통과해서 만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 ‘똥’을 찾지 못했다.

“흔히 책을 읽는 것도 소통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현실 소통' 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재밌다. 행간을 잘못 읽어도 책은 잠적하거라 꾸짖지 않으니까. 내 멋대로 해석하고 오해해도 내게 피해가 돌아오진 않으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 요즘 내 삶에 뚜렷하게 등장한 소통. 말로 하는 소통은 쉬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나는 낯선 사람의 육성도 처음엔 잘 안 들린다. 그 점이 외국어 공부할 땐 뻔뻔함으로 도움을 주었다. “난 원래 모르는 사람 말 잘 안 들렸어.” 어쨌든 소통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내 책읽기에는 ‘현실소통’이란 진화한 목표는 없다. 현실에서 가능한 삶이 제한적이라, 다른 사람들 무슨 생각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이 주목적이다. 예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어딘가 머물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며 겪은 것들은 참 느린 과정 같지만 오래 떠나지 않는다. 그런 경험과 이해는 해를 거듭해서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탄탄한 바닥이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책읽기는 저자의 말처럼 지나치게 쉬운 경험에서 오는 부작용이랄까, 반응, 반작용, 티키타카가 없으니 아까울 정도로 빨리 흐릿해지기도 한다.

 

“글을 쓰려는 마음의 저 어디 한구석에도 '남겨질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살짝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릴없이 소멸해가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안간힘. '내가 있(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

 

: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기록이란 매일 사라지고 있는 인간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불멸에의 기도와 같다고. 20세기에 태어난 나는 4000년 전에 기록된 수학책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은 짧디 짧은 인간의 수명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까. 불안이 거센 시절이다. 전혀 심각하지 않았던 옛날 옛적 질문이, 오만하고 자신만만했던 내 대답이 자꾸 떠오른다. 그 대답은 내게 아직 유효한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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