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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와 ‘평등’의 시대로 | 기본 카테고리 2021-09-3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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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이, 차별, 처벌

이민규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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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복잡하게 애매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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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전까지 자신이 차별주의자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살았다. 오히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적지 않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달까. 그리고 본문을 읽기 전에 들어가는 글에서 무릎이 털썩 꺾이는 충격적인 자각을 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복잡하게 애매한 사람이다.”

 

김지혜 저자의 일화이기도한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나도 종종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고쳐야할 언어표현들은 계속 등장했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나는 변명의 여지없는 차별주의자였다.

 

모국어라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 세상에는 의지를 갖고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밀려나는 일들이 많다. 2년간 적어도 한 발이라도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긴 역사 동안 수많은 분류 기준을 만들어왔고, 분류 기준을 근거로 한 차이를 이유로 폭력과 억압을 멈추지 않았다. 이 같은 흐름이 완전히 역전된다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시대에 따라 폭력과 억압의 대상만 변화할 뿐,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외집단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하고 더 나아가 비인간화하는 본성이 단기간에 교화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인간은 차이를 발견하고, 그 작은 차이로 차별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는 지적과 논쟁은 20세기 학회에서도 논의가 적지 않았다. 그 시기에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면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얘기한다’는 반응을 받은 것처럼, 내가 속한 작은 세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과 세상의 반응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달랐다.

 

그래서 2021년 판데믹과 비대면의 엄중한 시절에 더욱 도드라지고 가시화되는 현실의 차별에 대해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짚어주는 이 책을 만나 반갑고 감사하다. 더구나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후 좀처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던 차별금지법이 얼마 전 정식으로 발의되었단 소식을 들어 시대적으로 시의적절하고 사적으로 간절한 심정에 의지가 된다.

 

이민규 저자가 담은 내용은 이전의 논의와 현재의 현실 모두를 포괄하는 총괄적 내용이기도 해서 나의 조각난 지식 정보를 쉽고 자세하고 더욱 면밀하게 복기, 복원, 보충시켜 주는 친절한 텍스트이다. 학문과 당위로 접근한 나와 달리 차별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자의 깊고 진지한 고민에 부끄럽고 뭉클했다.

 

오랜 세월의 고민이 시야를 좁고 깊게 하기보다는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전체적인 사회 구상으로 향하는 내용이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설득하게 위해 실제 사례들을 역사적인 중요성에 기반을 두고 짚어준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인류 역사에 만연한 폭력을 읽는 일은 쉽지 않지만 알고 기억해야할 것들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문제의식과 연계하여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미국의 민권 변호사로서 한국의 독자들은 전혀 알 수 없었던 인종 차별 피해자인 에밋 틸 피살사건과 성차별의 피해자 찰리 하워드 사건을 알려 주어 제한적 가치가 아닌 보편적인 장치로서 법의 의미를 고민해보았다.

 

“노숙인이나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전환자가 극단적인 고통을 받는 사회에서, 국민의 대다수가 피해 의식과 좌절감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느 계층에서나 불평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혼자만 초연하게,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리 없다. 온 세상이 울고 있는데 그 비극이 나만 피해 갈 리도 없다.”

 

아무리 저자가 쉽고 구체적이고 면밀히 분석하고 설득력 있는 제안을 해주어도 현실의 어려움과 차별 발생의 다양한 원인들 등 관련된 복잡성은 간명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출발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동조하고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더 진지하게 차근차근 접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 한 가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화법에 열광한다. 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편해지는지, 실제로 전문가의 조언을 접했을 때 뇌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기능을 아예 멈추기도 한다.”

 

오래 전 영국 유학을 시작할 때 학교에서 처음 받은 오리엔테이션은 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때의 대처법이었다. 차별적 언어와 행동, 폭력을 구분해서 필요하면 반드시 신고하고 처벌에 이르는 강력한 절차가 존재했다. 한국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교육이라 사회문화적 차이를 느꼈는데, 이후에 생각하니 차이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부재한 교육이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차별’과 ‘불평등’의 시대에서 ‘차별금지’와 ‘평등’의 시대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본 회의 심의를 기다리는 두 법안 - <평등에 관한 법률안>과 <차별금지법>이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여 미래의 모습을 바꾸는 그런 변화이길 바란다. 사적인 선의나 운에 맡기지 않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의 촘촘히 하는 그런 입법의 역사로 기록되길 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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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함께 생존 | 기본 카테고리 2021-09-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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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공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디플롯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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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승리의 전략임을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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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 분류, 내용까지 여러 장점이 있다. 혼자 읽는 것보다 같이 읽고 얘기 나누는 것이 좋은 나는 이 책을 다양한 내용으로 지인들에게 권해 보았다. 제목만 보고 인문학 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이란 짐작하는 이도 있고, 과학책이라 더 반갑게 읽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일독 후에 김초엽 작가가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접촉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거나, 혹은 타인이 나를 이해하게 될 때 느끼는 인식의 전환, 인식의 확장이 있잖아요.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한 문장이 생각나 반갑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SF팬이었던 친구는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해온 SF의 메시지라고도 했다. 부디 그 협력과 연대가 인간 한정이 아니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환경을 망가뜨리는 속도가 줄지 않는데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을까.

 

"이 공격성에 관한 비용대비 이익비중을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아도 친화력이 호전성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도덕 원칙을 고심해서 세우고 다양성을 잘 배워 익히지 않고도 운이 좋아 우연히 환경이 마련된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다양성과 관용에 익숙해진 경험을 했다. 영국에 유학을 가보니 동기가 25명인데 국적이 17개였다. 세상엔 거의 유엔 가입국만큼 다양한 영어가 존재했고,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우리는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사회화되면서 정답과 최선이라 여기던 많은 것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살아가는 일은 온통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반복되는 일이었고, 덕분에 한편으로는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하기 때문에 남은 관념이 구체적 현실의 모습으로 완성되며 퍼즐이 채워지는 효과도 있었다.

 

“우리는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 늘 도덕과 윤리의 하한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고 믿던 태도가 함께 잘 살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고, 무척 부담스러웠던 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그제야 깨달았다. ‘비용편익계산’처럼 정성적인 모든 것을 정량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류 사회와 대비되는 정성 평가법 수업도 들었다. 동일한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눈으로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은 논쟁이 불필요한 팩트이고 관용, 친절, 상냥함, 다정함은 생존의 필수 양식이었다. 타인과 맺을 수 있는 느슨하지만 견고한 최고의 연대는 우정이며, 이는 동종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종과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도 경험했다.

  

동물에 관한 글을 두 편 썼다. 시선The sense of being stared과 의식Animal consciousness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눈’이란 외부에 노출된 중요한 감각 기관이자 ‘뇌’에 다름 아니라는 것,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맺음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보다viso’라는 것, 자신조차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담았다. 다 잊고 살다 이 책을 만나 복기해보았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존재했던 개 오빠, 사랑했음이 분명한 함께 꼭 붙어 찍은 사진들, 함께 잠들고 혼자 깨어난 아침의 이별, 꼬리가 잘리는 학대를 겪고도 씩씩하게 자라 평생 고양이 좋다는 말씀 없으셨던 부모님께 막내 자식으로 효도하는 냥이 동생. 이들의 다정함을 떠올려본다.

 

“동물과의 유대 : 그것은 우리종이 특별하고 동물들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그토록 효과적인 비인간화 전술이 된 것이다.”

 

숫자로 평가되는 물질화되는 것들이 중요한 인간들이 서로를 비인간화하고 은밀하게 무시하는 동안, 이들은 다정함의 위력을 더 잘 알고 활용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인간을 인간 세상의 기준들로 판단하지 않고 한결같이 전면적인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감동과 자발적 돌봄을 끌어내는 이들이 진화적으로 앞섰다는 실증인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승리의 전략임을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주의! 참고문헌 재미있습니다. 포기 말고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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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봐도 모를 일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9-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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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창작과 비평 (계간) : 193호 (2021년 가을호)

창작과비평사편집부 편
창비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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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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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마주>

 

연재소설이라 이전 계간지를 다시 펴고 내용을 복기해야하지만, 이번 에피소드가 특히 강렬해서 별개의 단편처럼 읽었다. 투명할 수 없는 두께가 꽤 되는 감정들이 들춰지는 기분이 때로 들어 혼란과 애틋함을 오가며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중해 보았다. 기회나 계기가 되면 묵혔던 것, 깊숙이 넣어 뒀던 것들을 실수로라도 털어 내고 싶은 필요와 끝까지 완전히 솔직해 질 수는 없다는 세상살이의 방식이 콩콩 부딪히는 기분이 드는 내용이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말인지, 작가의 속말인지, 내 말버릇인지 불편한 문장들을 자꾸만 만나 곤란했다.

 

“나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들을 알고 있었다. 살다보니 죽었지만 다시 살릴 엄두를 못 내는 것들. 다시 살릴 의욕도 기력도 없는 것들. 혀와 살갗으로 맛볼 수 있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것들, 살아 있으면서 아름다운 것들, 누군가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 의논이 아닌 대화를 하는 것, 대등한 존재와 눈동자를 맞추는 것, 자잘한 오감에 나는 맡기는 것…… 언젠가부터 접어두고 사는 것들, 잊고 사는 것들, 그러니까 ‘생기’라고 말해지는 것들.”

 

“죽이고 사는 감각 하나가 깨어나 무언가가 열리면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견뎌온 것들을 더는 못 견길 수도 있다. 그것이 깨어나 삶에서 다시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면, 누군가를 죽이러 출발하게 될 수도 있다. 겨우 살아내고 있던 하루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만 해도 두렵고 피곤해서, ‘그냥 산다’. ‘이렇게 살다 죽겠지’ 생각하면서.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서.”

 

 

 

강화길 <복도>

 

기대가 커서 살짝 두렵고 떨리는 기분으로 읽었다. 지극히 일상적이기만 한 소재가 가장 기괴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서사에 기막혀하며 저항 없이 휘둘렸다.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 거주지가 없이는 일상도 존재의 정체성도 온전하지 못한 생명체로서 당연한 두려움인 걸까.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온갖 느낌을 거친 듯 지친 기분이다. 필력에 위력이 느껴지는 강화길 작가의 글은 때론 이처럼 무섭다.

 

 

 

김려령 <기술자들>

 

기둥이 박히지 않고 대신 바퀴가 달린 거처에 머무는 이들, 집이란 공간이 없을 뿐이지만 세상에서 뽑혀 나간 듯 부표하는 이들, 그럼에도 누구보다 더 생활에 충실한 이들이 다시 등장한 작품이다. 엄정한 현실 분석은 그만두고 부디 열심히 사는 모든 분들을 힘껏 응원하고 싶은 기분만 가득하다.

 

“삼년은 빚이고 그뒤부터가 진짜라고 했다. (...) 굵직한 건설사의 협력사나 하청업체가 아니면 일을 따내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랬기에 동네 일이나 빼앗기지 않으면서 밥값이나 벌면서 살 요량이었다. (...)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계량기 하나를 교체하더라도 우선 검색부터 하는, 이른바 검색의 시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된 내에서도 눈에 띄어야 선택됐다. (...) 삼년고개 겨우 넘었더니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 얄궂은 세상이었다. 가게 하나 가졌을 뿐인데 돈은 점점 줄고 빚은 복리로 늘어났다.”

 

“가게가 자꾸 무언가를 갚도록 만들었다. 그중 지독한 것이 월세였다. 다른 빚들은 여하튼 끝이라도 있었지만, 월세는 끝과 시작이 맞물렸다. 밀린 세를 업고 다시 시작되는 원점. 숨이 막혔다. (...) 최는 밀린 월세를 대신 지불하는 조건으로 가게를 넘겼다. 약간의 권리금으로는 은행에 남은 대출을 정리했다. 최의 몫은 구인승 승합차 한대뿐이었다.”

 

마감과 시작이 이어지는 내 처지와도 같아 월말에 깊은 호흡과 함께 읽었다.

 

 

 

손보미 <불장난>

 

실제로 불을 쓰는 장면도 있지만 비유적으로 불장난처럼 홀려서 위험한 결정을 하는 일들도 담겨 있다. 불장난이란 말이 품은 의미와 이미지처럼 아슬아슬하고 서글픈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지만, 뜻밖에 상상도 못한 따뜻한 풍경처럼 남은 추억도 있다. 평생 제 몸을 36.5도라는 온도로 태워가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간혹 더 뜨겁고 위험한 불을 질러 삶을 이어가기도 망치기도 하는 모습을 망연히 읽었다.

 

“정말 어리석은 여자야. 대단치도 않은 남자 때문에 직업까지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직업을 버린다는 건 삶을 버린다는 거나 마찬가지야. (...) 남자에 미치면 여자가 그렇게도 되는 거다. 알겠니?”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원고지에 쓰이지 않은 부분들을 즉흥적으로 채워 넣으면서! (원래 글에는 없었던) 싱크대에서의 불장난과 25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동안 비 오듯 쏟아지던 땀에 대해, 그 여름 내가 잃어버린 몸무게와 옥상의 자세한 풍경에 대해, 그리고 기타 등등에 대해.”

 

“정우맨션의 25층 옥상에 작은 소각장과 불탄 종이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저분하고 난잡하게. 그래서 언젠가는 그게 꼭 발각되기를 원한다고. 누군가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불장난한 아이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기를 바란다고.”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성혜령 <윤소정> 제24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윤소정은 한 인물이 아니었다. 윤, 소, 정이라는 세 명이다. 그리고 무척 아프게 놀랐다. 두 해 전 내 오랜 친구도 갑작스럽게 삶을 끝내었기 때문이다. 별 의지가 되지 못했는지 사정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사별 전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내 친구도 '정'처럼 자신의 사진을 모두 지웠을까. 친구 간의 애정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가능할까. 혹은 그저 잠시 부딪친 김에 멈춤 상태로 머물다 멀어질 운명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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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본질을 고발하는 불온한 방식 | 기본 카테고리 2021-09-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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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소호 저
현대문학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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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시가 뭘까. 이미지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 글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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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함께 해도 이해할 수 없어 근원적인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나 자신인 경우가 있다. 타인은 다른 존재라서 그러려니 하는 관대함이 가능하고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한 오해와 무지도 당연한 귀결이라 여기면 그뿐이다. 하지만 최초의 이유가 무엇이건 자신과 불화하기 시작한 이는 해법도 중단도 탈출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불화의 시간이 오래되고 내용이 구체적일수록 생존을 위해 일정 정도의 자아 분리는 필수불가결하게 된다. 자신을 타인처럼 뜯어낼 수 있다고 믿어야 바라볼 대상으로 대상화할 수 있고, 그 얼마간의 거리만큼 불화의 속도는 느려진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신만의 요령과 비법으로 거듭 시도와 실패를 거듭해야하는 실험의 주체자로 상당한 시간을 살아야 한다.

 

나처럼 대체로 평범한 불화를 겪으며 적당히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견딜만한 경우와 달리, 존재의 구성물들을 철저히 분석하려는 이소호 시인이 불화를 대하는 방식은 신랄하게 해체적이고 지독스럽게 구성적이다. 전작에서 가족과의 불화에 결별을 고하고 난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듯 자아와의 불화를 총체화한다.

 

“작품으로 남기로 한 이상, 원래 소호가 무엇이었는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이 시는 ‘나’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나는 쉽게 불행해졌고 소비했고 앙상하게 껍데기만 남은 진짜 나를 남기고 싶었다. 읽고 싶은 소호를 배제하고 배열된 이 ‘시’는 어떻게 읽히는가. 다행히 이 시를 쓰는 동안 나는 열렬히 사랑했고 처절하게 버림받았다. 조금 더 죽고 싶고 조금 덜 살고 싶었다. 이 작은 차이. 하나이면서 다수인, 영원히 반복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언급했듯이 시인은 분리와 해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과 작품과 전시와 설명의 방식을 동원해서 스스로의 불화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정리함으로써 재구성한다. 분명히 활자화된 기록이자 시의 형태를 유지하는 텍스트이지만, 일부의 구절을 떼어내어 유의미하게 보고 듣고 감상하기란 힘들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것』을 작업하던 이소호 시인은 “데페이즈망 시는 이미 존재하지만 진정한 본질로 돌아가 오로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보겠다”고 밝혔다. (...) 매일 꿈을 꾸고 꿈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오브제를 현실로 가져와 창작자 말고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시인의 만족감 외에는 전부 배제된 초현실의 평행세계를 만들어, 고립시키고, 혼합시키고, 수정하고, 우연히 만나고, 크기를 변화하고, 개념에 개념을 붙이고, 이중 이미지를 덧대면서 비논리를 논리적으로 쓰는 것이다.

 

시집처럼 보이는 이 책은 참전 기록이자 전시도록이자 오직 독자와 관객의 참여가 더해졌을 때 감각적 감상이 작동하는 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던 방식으로 명명할 수 있는 기법과 소재들 - 사진, 그림, 텍스트 - 로 구성된 점이 평범한 독자로서의 나의 접근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느꼈다.

 

최초의 일독 후에는 할 말이라곤 떠오르지 않았다. 가까이 쳐다본다고 작품 이면의 메시지가 패턴처럼 떠오르지는 않았다. 옅은 감각처럼 남은 감상을 차라리 그림이든 몸부림이든 고함이든 여타의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표현 가능한 방식인가 생각해 해보았다.

 

“글쎄, 시가 뭘까. 이미지를 포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 글씨로.”

 

한동안 책과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시인이 불온하게 직시하는 것을 나도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뭐라도 써보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뜨거운 불화들은 주체의 별스러움 탓이 아니다.

개별적 욕망이 끌어낸 사적 해프닝이 아니다.

오직 지난하고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여성들을 조련하고 학대하는

폭력적 사회의 시선과 강고한 시스템을 고발한다.

 

우리끼리 통하는 언어로 쓰인 편지를 주고받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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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9-2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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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소호 저
현대문학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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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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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짜 넣은 의 공식인가

수학인 척하는 헛소리들

 

지워진 것인지

처음부터 채워지지 않은 것인지

 

불완전하다는 것은

불온한 것일 수밖에 없는지

 

누군가의 뮤즈로 머물지 않고

스스로 창작자가 된 시인을

경애하며

 

음탕하고,

깨닫지 못하고,

살찌고,

거역하고,

시기하며,

교만하고,

미련하고,

투기하며,

깨끗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방황하고,

모함하고,

추하고,

경솔하고,

아무 생각이 없고,

어수선하고,

간음하며,

거만하고,

번거롭고,

간사하고,

방해가 되는 창녀,

세상에서 가장 퇴폐적인 나.

여자.”

 

계집 녀여자 녀로 고쳐 부르면

이 모든 의미들도 사라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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