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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힘든 슬픔... 일상이 아니어야 할 죽음 | 기본 카테고리 2022-10-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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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은 자 곁의 산 자들

헤일리 캠벨 저/서미나 역
시공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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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보는 것은 애도하는 과정의 이정표이자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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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상가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문상(問喪)’이나 조문(弔問)’물을 문()’자가 있는 것은,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의문과 애도가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전우용 사학자 @histopian

.

.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읽으며 다시 복기한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애도도, 문상도, 헌화도, 추모도... 살아남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망가지지 않게 도우려는 안간힘이다. 그걸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번에도 추악하게 돈 얘기 - 위로금 - 를 꺼낸다.

 

말도 글도 무용한 참상 앞에서 조용히 귀를 막고 일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책을 붙잡고 읽는다. 추모를 통해 나는 아직 세상에 남아 살아갈 것이다. 잊지 않고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에 함께 할 것이다. 뜨겁지 않아도 확실하게 베는 칼처럼 원인을 찾고 추궁을 벼릴 것이다.

.

.

가족과 친지, 친구, 지인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20대에는 삶을 주체할 수 없어 쩔쩔 매면서도 가끔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다. 삶도 죽음도 숙고할 경험이나 지식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운동처럼 시작된 유서쓰기는 이제껏 이어오고 있다. 삶이 더 간소해지고 도전도 모험도 없어지자 매년 새롭게 유서를 쓰는 일이 쉬워졌다. 고칠 게 별로 없다. 삶이 단조로워질수록 수명은 빨리 줄어들고 사라지나 보다.

 

죽음과 늘 동행하는 줄 모른 채 사느라 바빴던 시간을 지나, 운이 좋게도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만났다. 김완 작가님은 죽음 현장 특수청소부로 자신을 소개하지만, 늘 다정한 시선으로 삶과 사람에 대해 눈물이 송송한 시를 쓰신다. 출간된 시집이 어딘가 꼭 있을 듯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쯤은 철이 들었다.’ 타인의 죽음, 사회 현상으로서의 죽음을 접하고 나자, 내 죽음도 실체로 이해되었다. 강박이 없지 않아서, 불안이 잦은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두었다. 장기기증도 연명의료거부도.

 

다다음 세대를 잘 보살피고 다음 세대를 훈련하는 마음입니다. 장의사로 일한 경험을 비춰봤을 때 매장하거나 화장하면 거기서 끝입니다. 사회에 기여할 기회도 끝이지요.”

 

이 책에는 상상을 띄우기가 힘들 정도로 생경한 직업들도 있다. 덕분에 한권의 책에서 죽음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오래 멈춘 이야기는 사산 전문 조산사였다. 몸속에 키우던 아이가 죽어서 몸 밖으로 나온 경험을 설명할 말이나 글이 있을까.

 

죽음을 보는 충격과 슬픔의 충격을 분리해야 해요.”

 

정말 다행이게도 도움을 줄 분들이 계셔서 나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아이를 차마 볼 수 없는 부모를 헤아려서, 아이의 사진과 손발 도장을 보관했다 나중에 찾으면 전해주기도 하고, 생김새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아이를 다 감싸고 발만 보이게 해서 안겨주기도 하고...

 

시신을 보는 것은 애도하는 과정의 이정표이자 흔적이다.”

 



 

수학여행 가서...

일하다...

주말 축제에 가서...

 

전쟁도 재난도 아닌

수도 한복판에서

헤어진 지, 통화한 지 몇 시간 후에...

 

자식을 가족을 친구를 친지를 지인을... 잃은 이들이 또 다시 이렇게...

도무지 이을 말을 못 찾겠다.

모두들 부디...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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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는 질문 | 기본 카테고리 2022-10-3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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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최근담] 하트모양 크래커

조예은 저
예스이십사 | 2022년 10월

        구매하기

“실제로 본 심장은 그저 징그럽고 메마른 살덩이에 불과했다. 하트 같은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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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좋아하던 것이 엄청나게 싫어지는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첫 눈에 반해서 백년해로를 하는 이들이 - 그 대상이 사람이든 다른 무엇이든 - 얼마나 될까.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식별하는 능력이 있고, 운이 좋아 우연히 그런 존재(나 대상)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나는 그런 조우가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종종 평생 함께 하고 싶은 물건들은 만났다. 나는 구매에 무척 까다로워서 함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결국 사지 못한다. 기능에 맞춰 산 물건을 한숨을 쉬며 헤어질 시기만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신주처럼 강도와 기간이 선명한 경우도 있고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애정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을 따를지 모른다. 결국 애정을 유지하는 건 유지가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 가는 노력일 지도.

 

실제로 본 심장은 그저 징그럽고 메마른 살덩이에 불과했다. 하트 같은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인간의 모든 인지와 반응이 뇌의 기능이라는 것을 뇌과학을 통해 배운 후에도, ‘마음이 아프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분명 뇌가 아픈 것인데, 심장과 명치 어디쯤이 아프다. 아마 뇌신경망이 거기까지 내려온 모양이지... 싶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잘 하는 걸 계속하는 건 나쁘지 않지.”

 

잘 봐, 이 중에 정답이 있어.’

 

나는 어릴 적에 믿는 것이 많은 어린이였다. 상상 속 미래는 신나고 즐거운 곳이었다. 어른들은 모르는 게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언젠가 나도 그런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답을 열심히 찾아 표시했고, 하고 싶은 것보다 잘 하는 것을 소명처럼 하려 했다.

 

어떤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틀리거나 틀리지 않는 건 흙바닥에서 낚시를 하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다 보니 이 세상이 나를 표적 삼아 속이고 사기를 친 기분이 들었다. 산다는 일에는 깔끔한 정답 따위가 없었다. 인간관계도 아니 그 무엇도. 심지어 우주과학은 생명 자체가 계획도, 의지도, 의미도, 의도도 없는 원소들의 일시적 결합 상태라고 한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인정받기엔 부족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애매한 걸림돌이라는 진실.”

 

그리고 사람들은 공정하지 않았다. 재능을 반기는 건 어릴 적뿐이다. 사회가 바라는 구성원은 각자의 빛을 잃고 비슷하게 흐릿한 모습으로 빈 자리를 채워주는 인력일 뿐이다. 내가 가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재능은 저항에도 변화에도 애매한... 그런 것이었다.

 

짧은 단편 속에서 살아온 지난 시간이 쇼처럼 지나갔다. 많이 아프고 슬프고 그리웠다. 문학이 가진 힘이란 늘 이렇게 대단하다. 조예은 작가의 작품을 나는 늘 고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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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응원하며 함께 분노하며 쓰신 글 | 기본 카테고리 2022-10-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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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른 사람

강화길 저
한겨레출판 | 202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수진이 생각하기에 강간은 단순했다. 정말 쉽게 분류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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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2017년 출간된 장편소설 속 사건과 대사와 인물들이 2022년이 되도록 자주 만난 이들, 지치도록 들은 대화 같다. 한편으로는 논의가 그토록 뜨겁게 이어졌구나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형편없는 무논리의 주장들이 득세한 세월이 길기도 하다 싶다.

 

화를 내려고 읽은 건 아닌데 화가 난다. <메모리얼 드라이브>에서 서술자가 한 명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생존자로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피해의 정도는 다르다고 해도, 반응도 이후의 삶(혹은 삶의 중단)의 형태도 다르다고 해도.

 

플로깅 - 의지적인 것은 아니고 산책 때마다 눈에 띄는 걸 조금 줍는다 - 을 할 때마다 생각없이 쓰레기 줍는 행위에만 집중하자고 결심하지만, 현존하는 교육과 문명의 무용함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와 유사하게 폭력은 폭력, 범죄는 범죄, 싫다면 싫은 줄 알아! 라고 발작처럼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은 섬세하게 고려된 요리조리 법망과 영리한 변호가 역겹다. 잠시 숨을 내 쉬고 나니 그 기막힌 순간마다 방어하고 거부하고 설득한 모든 분들의 노고가 뼈아프다.

 

수진이 생각하기에 강간은 단순했다. 정말 쉽게 분류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

 




 

페미니즘을 논하는 남자 교수들은 여성 인권까지 신경 쓰는 진보주의자로 통하지만, 여자 교수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꼴 페미가 될 뿐이다.”

 

어쩌다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고 새로 만들 수 없는 혐오vs혐오의 대결이 다른 것들을 다 집어 삼킬 듯 요란한 걸까. 댓글에서는 거칠 것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여전히 좋은 이웃의 얼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은 뭘 읽든 글이 죄다 사회과학식(?) 분풀이가 된다. 소설을 감상하고 문학을 만나는 법을 모두 잊은 것처럼. (강화길 작가님 죄송합니다...) 뉴스를 모른 채 살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된다는 논리가 또 설득적이다. 견디고 기다리는 일을 못하는 시시한 깜냥이라 그렇다.

 


 

강화길 작가님의 이 작품에는 물론 피해 상황이 자극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스스로 이겨내는 과정을 내내 응원하는 글이다. 얇은 성냥처럼 화르륵 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침착하게 그리고 깊이 함께 분노하며 쓰신 글이다.

 

많은 문장들이 피해자가 갇힌 생각 없는 폭력적인 말들에서 빠져 나오라고, 그건 모두 잘못이라고 확신을 주는 손길이다. 체력을 안배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연대다. 전체 내용을 잘 전달할 능력은 없지만 읽어 주실 분들은 언제든 그러실 거라 믿는다.

 


 

[판의 공식] 출처 :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소호 시집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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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느끼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 기본 카테고리 2022-10-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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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금봉 저
좋은땅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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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쪼갠 후, 또 쪼개고 또 쪼개 내어 일 초를 느끼고 또 일 초를 느끼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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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이 눈에 띄는 이 책은 제목이 아주 특이하다. 이리저리 짐작해봐도 뜻을 알 수 없는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했다. 책을 만나기 전 광과가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찾을 수 있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광과 廣袴

 

여자의 한복 차림에서, 단속곳 위에 입는 속옷. 단속곳과 비슷하나 밑이 없는 긴 속곳으로, 흔히 명주붙이로 짓는다.

 

이 뜻을 적용해봐도 제목에서 무언가를 유추할 수는 없었다. 바지 모서리를 닮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리고 책 도착! ‘광과... ‘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과’... 라는 뜻이었다.

 

문장부호에 대해 어디서 공부하고 시험이라도 보고 싶은 심정... 쉼표... 그래... 물론 그래도 궁금한 점은 여전하다. 모서리를 닮은 여자라니!

 

이라는 인물을 작품 속에서 빨리 만나고 싶었다. 연애소설이니 어떤 캐릭터와 역할인지가 더 궁금했다. 모서리를 닮았다는 건 성격이 sqaure*하다거나 edge**하다는 것일 수 있고, 그럴 경우 당사자들은 시난고난하겠지만 독자는 즐겁다,

 

* 고지식하다

** 날카롭다

 

숨 쉬는 것,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활동마저 힘든 더운 여름이다. 작품 속 갈등이 아주 특별한 것들은 아니지만, 언제가 그렇듯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힘듦이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한다. 직장 내 갈등은 종종 마땅한 해법도 없고 처리속도도 느려서 더 그렇다.

 

퇴사와 이혼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이 결국 발생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드문 건 아니다. 물론 모든 장면마다 느껴지는 인물들의 간절함과 애씀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고민이란 참 무겁고 진한 물질이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라는 이름에 휘둘렸지만, ‘’ ‘시소그리고 설휘’... 다른 이들의 이름도 가만 보면, 삶의 여러 모서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여러 요소들과 풍경 같기도 하다. 지쳐서 무감해지는 분위기가 아닌 감정이 풍부한 대화가 작품의 분위기를 표지처럼 다채롭게 이어간다.

 

소설 장르의 특성 상, 절정이라 할 만한 갈등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에이즈 감염은 이제 당뇨와 비슷해서 복약으로도 장수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충격이 덜하다. 격세지감이라는 느낌이 드니, 새삼 내가 꽤 오래 살아 많은 걸 목격했다 싶었다.

 



 

이들은 모두 무탈하다.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과 단단하게 삶을 살겠다는 태도가 느껴진다. 주말에 어울리는 편안한 이야기를 만났다. 단지 연애 소설 읽기에는 나의 세심한 감정의 결과 표현에 많이 낯설어졌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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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의 기록 | 기본 카테고리 2022-10-2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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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메모리얼 드라이브

나타샤 트레스웨이 저/박산호 역
은행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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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잊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당신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 않은 채 아주 오랫동안 앞으로 갈 수 있지만, 기억은 고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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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memorial 드라이브... 회상록memoir... 시인이 쓴 에세이...

 

어디서든 무슨 이유로든 친분에 관계없이 죽임 당한 지금도 죽임 당하는 여성들... 저자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저자의 새아버지에게 살해당했다. 애가, 비가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기록되었다.

 

표백하지 않은 듯한, 형광빛이 아닌 종이색과 클래식한 폰트가 좋다. 추모와 애도의 빛과 형태처럼 느껴진다.

 

딸은 오랜 침묵을 깨고 비로소 엄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남겼다.

이번에는 딸이 자신과 엄마를 구하려 한다.

나는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글쓰기를 처음 본다.

무섭도록 소중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딸이 엄마의 손을 다시 꼭 잡고 문지방을 넘은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김소연(시인)

 


 

 

 

나는 항상 책의 감촉을, 책이 말에 실질적인 무게를 실어주고 내가 쥘 수 있는 신성한 물건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사랑했다.”

 

생존자의 기록, 도움이 되었을까 걱정부터 앞서는 글쓰기다. 어머니가 살해된 기억을 상기하여 서술하는 일의 무거움이라니. 마무리를 하고 출간을 했다는 것이 내 염려가 무용할 강인한 이라고 느끼지만, 읽는 내내 숨 쉬기를 잊었다 내쉬었다... 를 해야 했다.

 

숨겨지고, 위를 덮어버려서, 거의 지워진 흔적. 나는 이제 우리의 역사를, 엄마 인생의 비극적인 경로와 그 유산으로 인해 내 삶이 빚어진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운 추억을 담지한 공간이 아닌, 치명상을 입힌 시절의 공감, 285번 도로의 윤곽과 풍경은 아직 저자의 심장에 찍혀있다고 한다. 선명한 상처가 흉터가 되지 못하고 피도 멈추지 못한 것인지 뜨겁고 아프다.

 

내가 해야 할 모든 말이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일기장에 적혔다. 그리고 나는 새로 얻은 이 목소리에서 생전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자아의 깊이를 느끼게 됐다.”

 

쓸 수밖에 없어서, 살아야 해서 글을 쓴다는 현실은 저자에게도 다행히 유효했다. 글쓰기는 자아가 분열되는 것을, 안으로부터 잡아먹히는 것에 저항하는 자구책이었고, 형언하기 힘든 참담한 현실에서 생존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왔다.

 


 

개인적으로 '혐오'라는 표현방식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며, 모든 사회인 역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혐오스럽고 역겹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마땅할 만큼 충분히 분노해야 한다.”

 

희생이 너무나 크고 아픔과 분노가 거대해서 상황이나 심정에 동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절박함을 나는 분명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를 혐오하자는 따를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그건 의지이고 결심일 뿐, 내 감정적 반응은 아주 거친 분노와 폭력성을 띤다. 그래서 더욱 자제하려 애쓰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지만,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포함한 모든 관련 범죄를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문장을 쓰면서도 화가 솟구친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집에 머물라는 행정명령에 나는 두려웠다. 집 밖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집 안에서 맞고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피해갈 곳은 여전히 운영되는 건가...

 

며칠 전 팬데믹 시절 가정폭력과 범죄에 대한 분석자료가 발표되었다. 틀리길 바라는 것들은 늘 예상 범위에 있는 슬픈 현실이 증가된 숫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저장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머리가 뜨거운 상태의 작업이라 기억도 흐릿하다.

 


 

사적인 글이 작품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것 같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살해 범죄사건에 집중한 책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인류가 정상과 위계를 내세워 저지른 오래되고 더 거대한 폭력이 있다.

 

1970년대 인종차별은 알고 봐도 충격적으로 극심했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결혼은 해당 주에서 불법이었다. 저자는 태어나보니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를 둔, 혼혈, 잡종, 깜둥이 등으로 불릴 운명이었다. 더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백인 아버지의 무력한 이상주의와 결국엔 회피를 갑갑하게 느낀다.

 

인간의 수명으로 역사를 보면, 느린 변화의 속도와 빠른 퇴행이 기가 막히고 절망스럽게 보인다.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 여기의 현실도 암담하고 가차없다고 느낀다. 바로 앞의 미래도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끝까지 해나가겠다는 사람들만이 확실한 희망의 근거이자 실체이다.

 



 

당신은 잊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당신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 않은 채 아주 오랫동안 앞으로 갈 수 있지만, 기억은 고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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