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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의 또 다른 독법을 발견하다 - [명작의 공간을 걷다]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0-09-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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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작의 공간을 걷다

이경재 저
소명출판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들 속 공간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문학과 실제의 공간을 넘나들며 현장감 넘치는 한국 현대문학사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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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의 또 다른 독법을 발견하다

<명작의 공간을 걷다>를 읽고

 

 

 

[책을 열며] 요즘 '#랜선#인문학#여행'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여러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머물던 공간을 톺아보면 그가 남긴 작품들을 한층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외국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으나 정작 우리나라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들 속 공간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명작의 공간을 걷다>라는 책을 통해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마지막까지 '공간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을 이 책의 제목으로 고민했다고 말한다. 공간(空間)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지만, 그 빈 곳을 어떠한 것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묘한 매력을 가진 낱말이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당대의 시대정신을 투영시킨 곳이 바로 작품이라는 공간(혹은 세계)이 아니던가. "친구네 집에 가보면 그 친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냐?"는 저자의 인터뷰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문학과 실제의 공간을 넘나들며 작가와 작품을 안내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책속으로] 이 책은 최초의 신소설로 일컬어지는 이인직의 『혈의 누』부터 권정생이 마지막으로 창작한 장편동화 『랑랑별 때때롱』까지를 각 작품이 발표된 시대순으로 한국 현대문학의 명작 39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데 저마다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동시대를 살았던 이유에서인지 각 마당에 자리한 작가와 작품들이 어떠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말해 작가들의 인맥 관계도에 교집합을 확인하며 다소 놀라기도 하거나, 한 작품 속 공간이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여 '같은 공간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책에 따르면 개화기의 시대적 과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소설로 신소설과 역사전기소설을 들 수 있다. 반봉건 근대화를 주제로 한 신소설을 대표하는 이인직의 『혈의 누』에는 평양에서부터 오사카를 거쳐 워싱턴까지 달려간 옥련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의 문명개화라는 절대적 이념 앞에 조선이나 민족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에 반해 과거의 영웅을 통해 외세의 위협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역사전기소설 가운데 장지연이 쓴 『애국부인전』이 눈에 띈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지은 장지연이 이러한 소설을 썼다는 점도 놀랍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잔다르크로서 그가 당시 여성들의 계몽에도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8일이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날임을 생각해 볼 때 장지연이 소설에 담은 염원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무정』은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풍성하고도 정밀한 당대 여러 공간들의 로컬리티를 주밀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공간에는 고유한 의미와 사상, 이념 등이 새겨져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무정』의 전반적인 의미망을 형성한다. 『무정』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공간이 지닌 뚜렷한 성격을 보여주는 최초의 소설이다.(40쪽)

    최초의 한국근대장편소설로 알려진 이광수의 『무정』과 평생토록 평양을 애정했던 김동인의 『감자』는 '칠성문'이라는 공간을 공유한다. 『무정』에는 칠성문 밖 지역이 빈곤과 낙후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그려지며 이를 대표하는 존재가 "낡디낡은 탕건을 쓴 노인"이다. 저자는 『감자』가 이 노인의 후일담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시대와는 담을 쌓은 채 낙후되어가는 칠성문 밖 빈민들 중 주인공 복녀의 처참한 삶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가 직접 가본 후에 쓴다는 이 책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유일한 곳이 평양으로 그 안타까운 마음을 책으로 전하기도 한다.

 

    『운수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으로 유명한 현진건이 쓴 『고향』에는 경성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내'가 만난 '그'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기묘한 행색을 한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포인트라고 말한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제목이 '그의 얼굴'이었다가 '고향'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려준다. 실제로 대구는 현진건의 고향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갖고 도시이다. 대구에서 죽마고우로 지냈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이상화 시인과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둘의 인연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던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옥고를 치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 견디던 한국문인 중의 가장 큰 욕심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알던 탐미파 중의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에 떠오른 기묘하게도 아름다운 무지개여!"(101쪽)

    미당 서정주가 김동리의 묘비에 남긴 글이다. 저자는 김동리는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에서 나고 자라며 뼛속까지 경주의 정신으로 새겨진 작가라고 말한다. 그의 출세작인 『무녀도』의 공간적 배경 역시 경주이고, 무당인 모화와 기독교인인 아들 욱이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 세 번이나 개작할 만큼 작가 스스로도 아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모화를 거대한 시대의 변화에 맞서 무력하게 패배한 사람으로만 볼 게 아니라, 만물을 영혼이 있는 존재로 여기는 그녀의 정신과 태도를 인간 우월주의로 인해 발생한 작금의 재앙을 극복하는데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132쪽)

 

    학창시절 읽었던 많은 한국 현대소설 가운데 현재까지도 이따금 떠오르는 몇 안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메밀꽃 필 무렵』의 이 문장 속에 나온다. 여담을 보태자면 이 대목에서 공감각적 심상이라는 개념을 묻는 시험문제가 단골처럼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속 무대 공간이자 작가 이효석의 고향인 봉평은 오늘날 소설 속 핵심공간들을 그대로 옮겨놓음으로써 고장 자체가 문학작품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한 명의 평창 출신 작가 김도연이 쓴 『메밀꽃 필 무렵』에 묘사된 21세기 봉평의 달라진 모습과 허생원의 후예들에 대한 소개도 퍽 흥미롭다.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하는 『청포도』와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로 끝나는 『광야』를 지은 이육사는 우리에게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두 편과 『자야곡』을 '이육사의 고향 3부작'으로 규정한다. 이육사의 고향은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한 안동의 원촌이며, 그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선비정신이 그에 이르러 저항정신으로 승화되어 독립운동으로 연결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청포도』에 나오는 '고장'과 '마을'이 그 어떤 불의의 세력으로부터도 훼손되지 않는 숭고한 공간이자 반드시 되찾아야 할 공간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매화향기'에 대한 분석을 통해 『광야』 속 광야를 만주 대륙과 연결지어 바라본 그동안의 논의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매화는 황대도 이남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만주에서 매화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시인이 말하는 광야는 만주가 아니라 그의 고향, 원촌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고향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공간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거야" - 『강아지똥』中

 

    그림책 육아를 하거나 해본 사람이라면 『강아지똥』이라는 책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아지똥, 즉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내기 위해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를 지은 이가 권정생 작가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가 가난과 병환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고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걸 새로이 알게 되자 잠시 가슴 한 편이 먹먹해졌다. 이 땅에 태어나 삶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강아지똥이 소리 없이 피운 민들레꽃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희생과 사랑이라는 낱말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을 되내이며 딸아이와 다시 권정생 작가의 바람이 담긴 그림책을 다시 보고 읽어본다.

 

 

[책을 닫으며] 이 밖에도 <명작의 공간을 걷다>에는 백신애, 장혁주, 한흑구 등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이문열, 성석제, 김연수 등 최근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그러고보니 여태껏 소설이나 시를 대할 때면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특징, 인상깊은 문장과 작품이 가지는 현대적 의의 정도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품의 안팎에 존재하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곳이 갖는 의미를 찾아본 이 책을 읽고나서는 또 다른 방식의 문학 독법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한국 현대문학을 꺼내 읽어본다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재발견하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울러 훗날 딸아이가 학교에 가서 한국 문학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이 책을 꼭 함께 읽으라고 권해줄 것이다. 단순 암기식의 시험공부가 아니라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문학과 실제의 공간을 통해 현장감 넘치는 한국 현대문학사를 알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득이 지금의 언택트 시대에는 이 책에 심어진 글자들을 눈으로 차근차근 밟아본 뒤, 다시 일상이 우리 곁을 찾아왔을 때는 두 발로 명작의 공간을 거닐어 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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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저/애니 데이비드슨 그림/김현수 역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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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추적단 불꽃 저
이봄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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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강요배 저
돌베개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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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강요배

그의 삶과 예술을 응축한 첫 산문집


강요배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에 들어서면, 우선 압도적인 작품 스케일에 놀라 숨을 멈추게 된다. 그런데 작품에 몰입하기 전부터 관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것이 있다. 강요배의 글이다. 작가의 심상을 표현한, 생생하고 강렬한 뜻과 따뜻하고 풍요로운 마음이 담긴 글은 관객이 그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관람을 마친 관객에게 강요배의 글은 그림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강요배의 글은 한두 편에 불과하다. 이 책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강요배의 글을 지속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나아가, 글과 그림을 한데 모아서 오랜 시간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풍경의 깊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강요배의 삶과 예술을 응축한 산문집이다. 강요배가 평생 그려 온 2,000여 점의 그림과, 그림에 담긴 뜻을 표현해 온 수많은 글과 말 가운데 독자에게 그 요체를 전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어 실었다. 강요배는 그림 작업이 “평평한 곳에 몸을 써서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책 역시 납작하고 압축된 공간이지만, 『풍경의 깊이』에는 화가 강요배가 사람·역사·자연을 직면하는 뜨거운 마음, 그가 지닌 오랜 연륜의 흔적, 예술을 향한 깊은 사유의 향이 짙게 배어 있다. 강요배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이 품은 그윽한 향기가 독자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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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고래를 찾아라 -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0-09-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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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오찬영 저
북드라망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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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속 인물들을 거울삼아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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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고래를 찾아라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를 읽고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god, 『길』中) 

 

 

[들어가며] 삶은 길이다. 『가리워진 길』에서 가수 유재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노래했고,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늘 같은 길을 걷듯 똑같이 느껴지는 일상도 삶의 마지막 지점에서 되돌아본다면, 결국 가지 않은 길을 하루하루 계속해서 걸어온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줄곧 길하면 땅 위에 놓여진 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바다로 눈을 돌려보면, 그 위에 펼쳐진 항해로(航海路)와 그 길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고전 소설 『모비딕』 속 인물들을 거울삼아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진 책, 바로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를 통해서 말이다.

 

    그(허먼 멜빌)가 지닌 야생성의 정체는 뭐였을까? 유한함으로 규정된 육지가 아니라 무한한 바다의 심연을 감지하는 능력 아닐까? (중략) 비극을 동반한 실존적 투쟁을 가장 잘 그려 낼 수 있는 무대로 바다만 한 곳이 없으리라.(37쪽)

 

 

[책속으로] 작년 가을 무렵, 직장 내 독서모임을 통해 『필경사 바틀비』라는 소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주인공 바틀비의 "선호하지 않습니다."라는 명대사는 여전히 뇌리 속에 박혀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의 작가가 다름 아닌 『모비딕』을 지은 허먼 멜빌이라는 사실에도 적잖이 놀랐다. 학창시절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고 지금껏 막연하게 바다 사나이들의 고래잡이에 대한 이야기로만 여겨왔다. 내친김에 200여쪽의 축역본으로나마 읽었던 『모비딕』은 에이해브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 두 인물 간의 구도에 집중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소설 속 에이해브 선장은 광기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흰고래, 즉 모비딕을 찾으려는 그의 집념은 끝내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깊은 바닷속으로 데려가고 만다. 오로지 자신의 복수를 위해 타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행동이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의 저자는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맹목적인 운명과 삶에 대한 수수께끼를 흰고래에게 대입하여 전혀 다른 항해를 펼친 그에게서 철학과 진리를 좇아 그 극한까지 파고드는 인간의 위대한 힘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여기서 흰고래는 생물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에이해브 선장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스타벅이 아닌 '이슈메일'을 지목한다. 이슈메일은 피쿼드 호의 유일한 생존자로 침몰하는 배와 함께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평면적 인물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슈메일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입체적 인물로서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다의 방랑 철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아무리 고래를 해부해 보아도 피상적인 것밖에는 알 수 없다.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고래의 꼬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112쪽, 『모비딕』中)

 

    『모비딕』 속 '알쓸신잡'을 연상시킬 만큼의 고래에 관한 박학다식한 지식을 선보이는 이슈메일이지만 항상 고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삶도 고래와 마찬가지로 모든 걸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다 알 수 없고,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삶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에이해브와 이슈메일 모두 '고래'에 운명 혹은 삶을 투영시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래(운명 혹은 삶)를 향한 두사람의 시선과 마음가짐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확고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에이해브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혹은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돌진하는 방향성을, 이슈메일은 모든 것이 그에게로 와 자신을 통과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고래사냥은 삶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 앎의 행로를 따라가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에이해브와 이슈메일은 둘 다 통찰력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전자는 이 때문에 괴롭다. 그가 추구하는 시선의 높이는 날카롭지만 그 예리함만큼 무겁고 비극성이 짙다. 반면 이슈메일이 확장시키는 시선의 넓이는 수평으로 확장되며 끊임없는 여백을 확보하고, 그 여백만큼 웃기고 쾌활하다.(121쪽)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는 에이해브와 이슈메일을 중심으로 선장, 항해사, 선원들이 살아낸 다양한 삶을 통해 우리가 바다를 헤쳐나가는데 참고할 만한 여러 갈래의 항해로를 제시한다. 여기에 더해, 작가 허먼 멜빌과 이 작품 전반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써 『모비딕』을 이미 읽었더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처음 읽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해설서의 역할도 같이 한다. 허먼 멜빌이 작품을 통해 그 당시 여러모로 모순투성이였던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거나, 작품 속 인물과 이야기 구성이 성경을 오마주한 것이라는 사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완역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책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 난롯가에 (편안하게)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122쪽, 『모비딕』中)

 

[나오며] 침몰하는 피쿼드 호와 운명을 같이 한 에이해브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기사회생하여 또 다른 삶을 맞이한 이슈메일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고래를 찾으러 길을 떠났고, 그 길의 끝에서 각자의 고래를 발견했으리라 믿는다. 정해진 삶은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일 뿐. 그럼에도 사람들은 걸어가고 있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항상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는 작은 위로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 같다. "두려워 말고 자신만의 나침반과 지도를 꺼내어 미지의 고래를 찾아 떠나라!"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 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송창식, 『고래사냥』中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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