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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ㅁ(네모)'이다 - [아무튼, 메모]를 읽고 | ㄴ아무튼, 서평 2021-10-3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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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메모

정혜윤 저
위고 | 2020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메모주의자의 메모에서 발견한 일, 알, 꿈, 길, 삶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메모로 내 인생이 만들어질 수도 있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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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ㅁ(네모)'이다

<아무튼, 메모>를 읽고

 

 

  "메모 남겨 드릴까요?" 같은 사무실에 동료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으레 하는 말이다.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이, 전화를 건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 메모지에 남겨진다. 그렇다. 메모는 '일'이다. 일하는 직장생활자로서 날마다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어떤 날은 카톡 메신저 혹은 예스블로그를 가장 먼저 열 때도 있지만) 메모장부터 연다. 퇴근 전까지 수시로 업무 관련 내용을 일지처럼 기록하기 위해서다. 아주 가끔 메모들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아니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보르헤스 

 

  "아주 좋은 생각(이야기)이에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휘발되지 않도록 어딘가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홀려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메모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메모>를 쓴 정혜윤 피디는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풍경이 아름다우면 카메라를 꺼내는데 자신은 이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있기에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마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에서 찾아낸 전설의 사진 작가가 눈표범을 보고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 오롯이 그 순간 속에 머물렀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볕이 흐릿하게 사라질 때 해변을 걸으며 상상하는 것이 진실"

-휘트먼

 

  저자 역시 좋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어디든 메모해둘걸 하는 후회를 한다. 곧이어 상실의 고통이 시작되지만 그는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즐기며 자신의 하루를 심문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어디가 어떻게 왜 좋았는지를 복기하면서 마침내 이야기와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예전에 스스로를 문장 수집가로 부르며 자기만의 인생을 담아놓을 가치가 있는 문장들만을 쫓았던 그가 현재는 듣는 자이자 이야기 채집가로 살면서 최고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전달하기 위해 메모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모는 관능적인 일이기도 하다. 내 몸에 좋은 이야기를 붙이고 그 이야기에 몸과 마음이 섞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모는 좋은 쪽과 한편이 되어 치르는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나씩 하나씩 답을 찾고 그 작은 답을 모아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랑스러운 흔적이기도 하다.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63~64쪽,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中)

 

  그에게 메모는 '알'이다. 그 알 속에는 가장 좋은 삶으로 부화될 재료와 준비가 차곡차곡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메모는 '꿈'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꿈, 누구도 혼자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 꿈에 관한 메모를 수없이 쓰고 지우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메모는 나 그리고 우리 모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각자가 소중히 여기고 싶어하는 가치를 품고 있다고 믿는 저자의 신념은 『새벽 네 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 등 여러 편의 라디오 다큐멘터리에서 우리 사회를 향한 고요한 외침이 되어 청취자들에게 울림을 전해준다. 책의 후반부에 '나의 메모'들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노래하지 않은 작은 단어들"

-네루다

 

  에필로그에서 앞으로 삶에서 길을 잃으면 메모장을 펼쳐보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뿌렸던 조약돌과도 같은 메모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메모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말 그대로 메모는 '길'이자 '삶'인 것이다. 책을, 아니 메모장을 덮으려는데 문득 오래 전 읽었던, '메모' 하면 퍼뜩 떠오르는 수필 한 편이 생각났다. 어쩌면 <아무튼, 메모>가 메모광의 계보를 잇는 메모주의자의 '메모예찬' 시리즈의 최신작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 끝나지 않은 메모에 관한 다음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내 메모는 내 물심 양면(物心兩面)의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의 설계도(設計圖)이다. 여기엔 기록되지 않는 어구(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범위한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의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윤作(1958년), 『메모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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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책방님 또또 감사합니다!!! | 감사일기 2021-10-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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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추억책방님께서 열어주신 '책나눔 이벤트'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시고 돌아서려는 찰나, 그동안 도치에게 잘 보였던 덕분인지 본상보다 더 받고 싶었던 '도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ㅎㅎ;;

"도치야, 고마워!!"

 

이벤트에 참여하신 많은 이웃님들께 보내드릴 책과 마음이 담긴 선물들을 포장하시느라 독서시간도 반납하신 채 일주일을 꼬박 이벤트 마무리를 하셨다는 얘기에 괜스레 '도치, 아니 눈치상을 받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보내주신 책, 핫팩, 마스크, 연필 그리고 손편지를 하나하나 보듬으면서 어느 이웃님의 말씀처럼 '추억책방님의 마음이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추억책방님의 애정하시는 연필을 보면서 불현듯 <아무튼, 연필>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ㅎㅎ;;

무엇보다도 손편지를 쓰신, 제가 가끔 필사에 관한 포스팅을 올릴 때마다 본인께서는 악필이라 필사할 엄두가 안난다고 하셨던 추억책방님께 감히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필사하셔도 될 만큼 충분히 어여뿐 글씨체입니다!!"

 

아울러 <오늘 뭐 먹지?>는 제게 작은 사연이 있는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빌어 정식으로 읽어볼 수 있게 되어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두 해전에 같이 일했던, 요리를 참 잘했고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분식가게 일도 곧잘 도와줬던 동료가 개인사정으로 퇴사할 때 어떤 책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책제목처럼 오늘 저녁은 뭘 먹으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시 한 번 이 포스팅을 빌어 추억책방님께 감사드리며, 가족분들과 맛있는 저녁 드시면서 남은 주말도 즐겁게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저
한겨레출판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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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님 또또또 감사드립니다!!!! | 감사일기 2021-10-3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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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이벤트 중독의 달'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던, 지난 10.16.~10.18.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던 Joy님의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 세 편 찍기' 이벤트에서 명예롭게 '눈치작전성공상'을 수상했습니다.

Joy님께 살짝 눈치없는 짓을 하고도 짐짓 태연하게 받은, 이 가을에 만나고 싶은 책은 바로 장 그리니에가 쓴 <섬>이라는 책입니다.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에서 김현 시인이 가을마다 꺼내 읽는 에시이라고 하길래 작가의 이름만 낯이 익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끌림으로 선택한 책이기도 합니다.

장 그르니에가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라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이 책의 서문까지 썼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 책 속에 섬들을 하나씩 다 돌아봤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오하여 다시 찬찬히 섬들을 둘러봐야할 것 같습니다.ㅎㅎ;;

책을 받자마자 감사일기를 써야했는데, 갑자기 아무튼 시리즈에 꽂혀서 '아무튼, 서평'을 써대느라 감사의 인사가 좀 늦었습니다.ㅠㅠ

모쪼록 제게도 이 책이 가을마다 펼쳐보게 될 에세이가 되길 바라며, '섬으로의 여행 티켓'을 보내주신 Joy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섬 LES ILES

장 그르니에 저/김화영 역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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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라면 -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 ㄴ아무튼, 서평 2021-10-3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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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저
제철소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하루키의 책과 문장이 등장하는 인생 장면 몇 가지씩은 갖고 있는 하루키스트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고 또 들으며 서로 대화하게 만들어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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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라면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아무튼 시리즈 세계관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실존 인물을 다룬 책은 현재까지 두 권이 나왔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장국영 순으로 출간되었다. '하루키스럽다', '하루키스트', '하루키 월드' 등과 같은 신조어는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때마다 열성 팬들이 모여 결과를 기다린다는 소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루키는 현대 문학계에 살아 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아무튼, 하루키>는 그의 원서를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하고 그의 책을 의뢰받는 날까지 번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를 좋아하는 저자가 쓴 '하루키스트의, 하루키스트에 의한, 하루키스트를 위한' 책이다.

  책장을 넘기기 전, 책표지에 그려진 '곰''맥주' 그리고 '이지수'라는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최근 읽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의 옮긴이로서 역자의 말에서 만났던 터라 구면이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했던 곰이 하루키가 즐겨 마신다는 맥주병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이의 이름이 '김참새'라니 여러모로 예사롭지 않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타나베: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놀이 안 할래요?'하고. 그래서 너와 아기 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미도리: 아주 멋져.

와타나베: 그만큼 네가 좋아.

(331쪽, 『상실의 시대』 中)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

(24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저자는 책의 원고를 쓸 때면 하루키의 책이 등장하는 자기 인생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뒤져봤다고 말한다. 홀로 타향의 침대 위에서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며 청춘의 일과 사랑을 추억하고, 하루키의 미국 생활이 담긴 에세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 속 한 문장인 "외국어를 말하는 작업에는 많든 적든 '안됐다면 안됐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운' 부분이 있다"처럼 '낭패(狼狽)투성이'였던 일본 유학생활을 들려준다.

  또한 육아로 인한 손목 통증을 견디며 귀중한 시간을 바쳐 읽었던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넘어선 배신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찐팬으로서 다음 작품은 하루키스럽길 바라며 계속 응원하기로 한다. 『1973년의 핀볼』의 문장은 반려묘 '디'와 처음 만나서부터 헤어지기까지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데, 하루키가 고양이에 관해 쓴 에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떄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107쪽,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1973년의 핀볼』中)

 

  무엇보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회사와 출판사를 거쳐 마침내 번역하는 사람이 된 마법같은 순간과 번역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키가 어느 날 야구장에서 타자가 친 2루타를 보고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찾은 송정역 맥도날드 2층에서 저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원문을 한 줄 쓰고 번역하기를 반복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대체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와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처음부터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이류이며, 번역의 참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에 있다"는 하루키의 말들에 적극 공감하며 저자는 시대를 견디는 번역을 해나갈 것을 다짐한다. 

 

구달: 난 일문과 학생들이 하루키 팬이라는 걸 숨기는지 밝히는지가 궁금해.

(<아무튼, 양말>을 쓴 그 '구달' 작가다.)

지수: 우리 세대는 다들 좋아했으니까 그냥 좋아한다고 말했어. 나도 일문과 왜 왔냐고 물어보면 하루키 좋아해서 왔다고 하고. 근데 다자이 오사마는 좀 다른 것 같아. 다들 다자이는 속으로만 좋아하지 겉으로는 떳떳하게 말을 못 하더라고.(웃음) 너무 자기도취에 빠진 것 같고, 풋내 나는 청춘 느낌이 있어서겠지.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 자기 연민이나 자기도취 없이 담백하잖아.

(145쪽, 「작가에게 바라는 것」-『양을 쫓는 모험』中)

 

  군복무 시절 선임의 관물대(내무반에서 옷이나 물품, 장비 따위를 정리하여 놓는 장) 한 편에 꽂혀 있던 <상실의 시대>를 보고 난 뒤 호기심이 일어서 휴가 때 찾아 읽었던 것이 나와 하루키의 첫 만남이었다. 이제는 흐릿해진 스무살 청춘의 멜랑콜리를 알려준 책이었고, 뒤이어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끝으로 그의 소설은 더이상 읽지 않고, 이따금 에세이를 집어들어 하루키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어쩌면 책속에 저자와 출판계 친구들의 대화처럼 그 말랑말랑함이 예전엔 좋았으나 하루키도 변했고 나도 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하루키는 하루키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떠난 게 아니라 작가와 번역가 그리고 루티너로서의 다양한 삶을 계속해서 작품들 속에 변주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여러 세대의 하루키 팬들 안에 잠재된 그에 관한 기억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어쨌든, 하루키>, <여하튼, 하루키>, <좌우간, 하루키>와 같은 책들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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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 - [아무튼, 스릴러]를 읽고 | ㄴ아무튼, 서평 2021-10-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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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저
코난북스 | 2018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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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

<아무튼, 스릴러>를 읽고

 

       

스릴러(thriller)

【명사】

1. 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연극ㆍ영화나 소설 따위.

 

 

  누군가에게 "스릴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마이클 잭슨의 노래 「Thriller」라고 답하고 싶으나) 콕 찝어 무엇이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 학창시절 아르센 뤼팽과 셜록 홈즈가 나오는 추리소설을 탐독했음에도 그 장르를 스릴러라고 부른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스릴러>를 쓴 이다혜 기자가 치밀한 범죄와 그것을 반드시 해결하는 스릴러 장르를 애정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겁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공공연한 비밀에 부쳐 두기로 하자. 스릴러를 정의하는 게 쉽지 않지만, 어떤 소설이나 영화가 스릴러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다는 저자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에 총이 등장했다면 그 총은 발사되어야 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이 하나의 규칙이라면, 스릴러는 변칙적으로, 다시 말해 모두의 관심을 총으로 쏠리게 한 뒤 누군가 뽑아든 칼이 당신의 등을 찌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치밀한 연구 조사와 정확한 세부 묘사를 바탕으로 한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유의미한 인물들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도록 도와준다"는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의 말을 인용해 독자를 스릴러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 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36~37쪽, 베이비, 세 권만 참고 읽어봐 -스릴러의 끓는점)

 

  물질에 따라 '끓는점'이 다른 것처럼 스릴러는 로맨스나 판타지에 비해 끓는점이 낮다. 추리물은 살인사건이, 시리즈물은 탐정이 나타나면 끓기 시작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는 반전처럼 서서히 끓기 시작한 이야기도 반전(反轉)을 향해 나아가는데, 스릴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반전이다. 신작 영화나 소설이 나오면 팬들은 반전의 극적 효과가 반감되는 걸 막기 위해 스포일러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스포일러라는 단어는 반전 영화라는 말과 함께 널리 알려졌고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는 반전 영화의 대명사로, "ㅇㅇㅇㅇ가 범인이다!"와 "ㅇㅇㅇ ㅇㅇㅇ가 귀신이다!"라는 말은 스포일러의 대명사로 굳어졌다.

 

(45쪽, 꼬마가 귀신을 본다 한들 -반전 강박증과 스포일러 포비아)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이라는 숲보다는 반전과 스포일러라는 나무에 시선을 집중시키다 보니 이른바 반전 강박증스포일러 포비아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반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작품을 보면서 누가 범인일지 모든 등장인물을 의심하게 됨으로써 이야기의 감정선과는 멀어지며, 몰입도를 낮추고 피로도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다거나 스포일러를 당한 작품은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면서 정작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의 안녕을 있는 힘껏 빌어주어도, 일간지 사회면에는 범죄가 넘쳐나리라.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사건 뒤에 사람 있어요.

 

(117쪽, 사건 뒤에 사람 있어요 -흉악범죄와 추리소설 애호가의 동거)

 

  사람을 죽이는 사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의 심리가 궁금하기 때문에 범죄물을 좋아한다는 저자는 점점 소설이나 영화 속 세계가 현실의 그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일테면, 어떤 범죄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앞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기보다는 댓글 등을 통해 소설 혹은 영화 같은 실제 사건에 감탄하고 누가 더 범인을 잘 맞히는지 마치 경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스릴러 팬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작품 속 주인공의 탁월한 추리력과 수사력이 필요치 않는 세상이 온다면, 즉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인간의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범죄도 없고, 이를 반영한 범죄물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 스릴러 팬들은 과연 그곳을 낙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138쪽, 픽션은 하고 논픽션은 하지 않는 것 -당신은 결국 논픽션을 읽게 되리라)

 

  리뷰를 쓰는 내내 글로 적은 모든 게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리뷰를 쓰는 까닭은 이 책, 나아가 스릴러물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스릴러물을 통해 속도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작품을 즐기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나아가 작품에 투영된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세상을 향한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아무튼, 스릴러>와 스릴러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반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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