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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이라면 - [궁금한 편의점] | 그.리.고(그림책 리뷰 창고) 2021-09-2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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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궁금한 편의점

박현숙 글/홍찬주 그림
북멘토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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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인간이라면

<궁금한 편의점>을 아이와 함께 보고 읽고

 

 


 

[편의점에 들어가며] "편의점이 뭐하는 곳이야?" <궁금한 편의점>을 받아든 아이가 책표지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여섯 살 아이는 물건을 파는 곳을 모두 마트라고 부른다. 아이에게 대형 마트와 동네 마트(슈퍼마켓)를 구분짓는 기준은 하나인데, 바로 셀프 계산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대형 마트에서 '삑삑' 소리가 나는 바코드를 찍는 기계로 물건을 직접 계산할 수 있지만, 동네 마트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동네 마트와 편의점에 대한 차이를 설명해줘도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궁금한 편의점>을 아이와 함께 보고 읽으면서 편의점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가고 또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궁금한 편의점>은 박현주 작가가 쓴 '수상한ㅇㅇㅇ'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으로 '궁금한 ㅇㅇㅇ'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다. 명탐정을 꿈꾸는 주인공 나여우는 고모네 아파트에서 귀신과 뱀 소동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룬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편의점으로 장소를 옮겨 펼쳐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 초등 미스테리를 표방하는 작품답게 '사건'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마침 최근에 읽었던 아서 코넌 도일의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에서 비오는 날에 사건 의뢰인이 셜록 홈즈를 찾아온 장면처럼, 친구 동식이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은 여우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비 내리는 날에 사건 현장으로 잠입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어. 가끔 천둥도 쳤어.

좀 무섭기는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기에 딱 좋은 날이야.

 

  편의점으로 들어가려다 잠시 서서 'DS25'라고 적힌 간판을 보는 순간, "앗, 'DS'는 동식이의 이니셜인데, 그렇다면!?", 혹시 동식이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아이에게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아이는 갸우뚱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자고 재촉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가 기대했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무장갑 삑! 면봉 삑! 젤리 삑! 구운계란?

 

   처음 삼 일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한 여자아이가 편의점에 들어와 이것저것 물건을 사며 계산을 하던 중 마침내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동식이에게는 구운계란 값을 받으려 했던 편의점 주인 아저씨가 의문의 여자아이가 가져온 구운계란에 대해서는 계산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우와 친구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보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과연 여우와 친구들은 편의점 미스테리의 전말을 밝혀낼 수 있을까? 정답은 그림책속에 있다.

 


 

편의점 아저씨는 팥죽집 할머니 아들.

팥죽집 할머니는 머리가 파란색 외계인.

외계 고양이 털도 파란색.

편의점 아저씨가 공짜로 구운 계란을 주는 아이.

아이가 가는 곳은 외계 고양이가 있는 곳.

 

  유치원생인 아이는 아직 추리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그림책 속 사건의 단서들로 추리를 해낸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궁금한 아파트>를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는 생각날 때마다 <궁금한 편의점>을 가져와 함께 보며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그림이 표현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를 따라해보는 방식으로 차츰 사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가운데 이번 사건의 핵심 장면이자 아이가 특히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편의점 주인 아저씨의 계산하는 신(scene)'을 그림책 놀이로 진행해 보았다.

 

 

 

[편의점을 나오며] 현대인이라면 편의점에 얽힌 사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학창시절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허기를 달래주었고, 자취생활자의 구멍난 양말과 닳은 면도날을 새걸로 바꿔주던 공간이었다. 편의점을 향한 나의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면, 아이들의 눈에는 편의점이 백화점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열대 위에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킬테니 말이다. <궁금한 편의점>도 그러한 점을 놓치지 않고 잘 반영한 그림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문 혹은 의혹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하는 자세와 더불어 사람 혹은 동물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까지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명탐정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나여우가 아파트에 이어 편의점, 그리고 다음에는 어느 공간에서 어떠한 사건을 마주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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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서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를 듣다 -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고 | 마흔의 서재(수리중) 2021-09-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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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이지수 역
바다출판사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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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서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를 듣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고

 

 

  어느 가족에게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또 다른 한 사람을 가슴이나 배로 낳아 한 집을 이루는 과정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가족'이라 부르며 가족이기에 모두 다 알고 이해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어느 가족》,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 등의 영화를 통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히려 가족이니까 서로 알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하는 건 아닌지 되묻는다. 개인과 사회라는 두 개의 웅덩이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 수많은 가족에 대해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물이 차고 넘거치거나 아예 말라버리듯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는 가족의 의미와 미래에 대하여 사회나 국가 차원의 큰 담론이 아닌 개인과 시민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기록한 창작자의 작지만 큰 생각과 노력을 담고 있다.

  엇비슷한 모습의 행복한 가족과 달리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가족일지라도 그 시작은 결여와 결핍, 즉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곳에 있지 아니하므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그는 가족에서 분리 혹은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시화시키는 데에  계속해서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인다. 영화 이전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잣말하며 일방통행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영화의 결점을 타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메운다.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타자의 언어로 말하고, 그러기 위해 타자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타인에 대한 상상력, 나아가 공감력으로 연결된다.

  "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요시노 히로시의 시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서 결여와 부재가 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린 가능성으로 표현되고 인물들이 자기 욕구를 해소하는 데 작은 불씨와도 같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에서 마주하는 부모와 자식 또는 어른과 아이는 모두 결핍감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자식이나 아이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할 수 밖에 없다. 때로 관객에게 불편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이야기라면서 창작자에게 영화가 초래할 사회적 영향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항의하는 이들에게, 그는 되려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창작가가 더 위험하며 감독이 관객의 심리변화까지 책임지지도, 책임질 수도 없기에 영화란 거기에 비춰져 있고 나타나 있는 것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응답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과 마음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들이 어두운 현실을 햇볕 아래로 끌어내 말리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씨앗에 비유하자면, 영화 속에 그것을 심으면 어떤 것은 말라죽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햇빛을 향해 가며 저 나름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일테면 세상 사람들(어른들)의 눈에 비친,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버지가 각기 다른 동생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다가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상황에 처한 주인공 아키라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아키라의 내면에서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 즉 도둑질을 하지 않는 전개로 극적 갈등을 풀어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고속열차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형제가 헤어진 부모와 다시 함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형 코이치는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하면서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가족》에서 친부모로부터 부정당하고 사라질 뻔한 유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로 '보이는' 좀도둑 가족에게 훔쳐진 후부터 그들에게서 차츰 가족의 사랑을 배우며 스스로 부모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아이들의 용단은 자신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만 쓰이지 않고, 어른들의 불안과 공허를 채워주는 데에도 큰 몫을 해낸다. 커가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의 성장통을 치유해주는 처방전처럼 말이다.

  개인과 사회가 지닌 만병의 근원 중 하나가 가족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따라 건강한 개인과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결코 작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을 좇아가려 한다. 그의 작은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작은 것들을 다르게 들여다보고 상상해 나가다보면, 언젠가 가족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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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 일일독서 2021-09-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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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11쪽)

 

 

  <백야>의 첫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가 떠오르고 여러 가수들의 노래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듯했다. '감상적 소설, 어느 몽상가의 회상 중에서'라는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는 몽상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책제목과 연결지어 보아도) 참으로 독특한 밤, 백야에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쓴 작가를 알게 된다면 흠칫 놀랄 사람이 나혼자만은 아닐 듯한데, 그는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다. (언젠가는 읽겠노라 다짐하지만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그의 작품을 포함하여 러시아 문학이 내게 남긴 인상은 진중하고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함께 <백야>를 보낸 시간은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들은 물론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안다. 나는 그들을 아주 잘 안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학습하다시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즐거울 때는 나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그들이 우울할 때는 나도 마음이 착잡했다.(12쪽)

 

  나는 또한 건물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내가 걸어갈 때 건물들은 나보다 앞질러 거리로 뛰어오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건강은 어떠세요? 저는 덕분에 건강하답니다. 5월에는 한 층을 더 올려 줄 거랍니다" 혹은 "건강은 어떠세요? 내일은 집 수리가 있답니다" 혹은 "저는 하마터면 불에 홀랑 탈 뻔했어요. 그래서 어찌나 놀랐던지요" 등등.(13쪽)

 

 

  '나'의 몽상가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그는 행복과 우울의 경계를 넘나들며 '밤을 걷는 밤'을 즐기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밤에 취객으로부터 '나스쩬까'라 불리는 한 소녀를 구해주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사랑의 감정을 말하고 나스쩬까는 우정을 말하는) 두 사람의 '동상이몽'과도 같은 관계가 시작된다. '나'와 나스쩬까의 첫 번째 밤부터 내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손'이었다. 취객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았으며 취객이 물러나고도 서로의 떨림을 느끼며 두 손을 놓지 않았고, 그 다음 밤에도 맞잡은 두 사람의 손에 왠지 모르게 계속 눈이 갔다.

  

 

  "자, 을 이리 주세요." 나는 나의 수수께끼 여성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자도 더 이상 감히 추근대지 못할 겁니다."(22쪽)

 

  "만일 나의 이 떨리다면 그건 여태껏 한번도 당신의 손처럼 작고 예쁜 에 잡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성이란 존재에게 완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한번도 그들과 가까웠던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나는 혼자라서······나는 그들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조차 모릅니다."(23쪽)

 

  "저는 당신을 속속들이 알아요. 그렇지만 만나는 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중략) 저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그건 안 됩니다. 우정은 얼마든지 좋아요, 자 여기 제 을 잡으세요······. 그러나 사랑은 안 돼요. 부탁이에요!"(30쪽)

 

  이때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행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둘 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나는 그녀의 을 뿌리치고 그녀한테서 물러서는 듯한 동작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 안 거였다. 그가 아니었다.(83쪽)

 

 

  "들어주세요!", "말해주세요!" 쉴 새 없이 '티키타카'하며 한밤의 수다, 아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서 때때로 답답함을 넘어 그들만의 귀여움마저 느껴졌다. 도스토옙스키가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쩌면 그에게도 이러한 면모가 있었을텐데 하며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스쩬까 역시 그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1년 전 떠나면서 1년 후 다시 돌아오면 결혼해달라는 한 남자가 있었노라고. 아직 그를 만나지 못해 슬픔에 빠져 있는 나스쩬까를 '나'는 사랑하기에 기꺼이 도와주기로 한다. 과연 딱 '네 번의 밤'과 '한 번의 아침' 사이에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답은 책속에 있다.

 

 

  지금 이미 당신 곁에서 이토록 행복한데, 뭐 때문에 또 꿈을 꿔야 하겠습니까! 오, 어여쁜 나스쩬까, 당신은 축복받을 겁니다. 애시당초 나를 쫓아 버리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이제 이 세상에 나서 적어도 두 밤은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53~54쪽)

 

 

  책을 덮으며 두 세기가 지난 지금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2004년 '더 넛츠'가 부른 「사랑의 바보」의 노랫말 하나하나가 마치 '나'가 쓴 것만 같은데, 그가 마지막 소절을 부른다면 왠지 보드카 한 잔을 기울이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그녀를 보내주는 날 그때 술이나 한잔 사주면 돼'

 

 

[출처 : The Nuts (더 넛츠) - 사랑의 바보, https://youtu.be/bJxcFpSVZQY]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세트 : NOON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조지 오웰,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저/황현산,박경서,이종인 등역
열린책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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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십자가 | 일일독서 2021-09-2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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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십자가

 

 

이성을 공격하지 않았나. 그건 잘못된 신학이라네.(37쪽)

 

 

  지난 (MIDNIGHT세트와 함께 했던) 한밤산책에서 에드거 앨런 포(『도둑맞은 편지』 포스팅 바로가기)를 만났다면, 이번 (NOON세트와 함께 하는) 한낮산책에서는 이미 아서 코넌 도일(『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포스팅 바로가기)을 만난 바 있다. 즉 추리 소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키는 장르라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러 의미에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해준 책 한 권을 한낮의 런던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푸른 십자가>라는 제목만 놓고 어떤 소설일까 예상했을 때 추리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울러 영국에는 아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만 있는 게 아니라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라는 작가도 빼놓을 수 없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에드거 앨런 포를 언급한 대목이 그에 대한 오마주로도 느껴졌다.

 

 

  에드거 앨런 포의 역설이 잘 드러내듯, 지혜는 뜻밖의 것을 예상해야 하는 법이다.(14쪽)

 

 

  "범죄자는 창조적인 예술가지만 수사관은 비평가일 뿐이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고는 커피 잔을 천천히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가 황급히 내려놓았다. 짠맛이 났던 것이다.(16쪽)

 

 

  파리 경찰청장이자 최고 수사관인 발랑탱이 변장의 귀재이자 희대의 도적인 플랑보를 체포하기 위해 런던으로 잠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성체대회(聖體大會)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인파의 어수선함 속에서 플랑보가 노린 것은 바로 '푸른 십자가'였다. 변장의 달인인 그도 가릴 수 없는 한 가지가 190센티미터 정도에 달하는 유달리 큰 키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발랑탱이 거듭 수사에 난황을 겪던 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생각에 한 카페에 들른다. (그가 현재에 살고 있다면 소금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겠으나) 커피에 설탕을 넣은 뒤 마시다가 짠맛을 느끼고 설탕통에 소금이 들어있는 연유에 대해 까페 종업원과 얘기하다가 키다리 신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지 범죄는 완벽했다. 발랑탱은 무력한 신부에게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그렇게 허술한 희생자를 상대로 삼은 플랑보에 대한 증오가 치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 그를 이 승리까지 이끈 일들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뒤엉켰다. 에식스 신부에게서 귀한 십자가를 훔쳐 내는 일과 벽지에 수프를 엎어 버리는 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호두에 오렌지 푯말을 붙이는 것은? 먼저 유리 값을 치르고 그다음엑 깨뜨린 행동은? 추적이 끝난 단계였지만 영문을 알 수 없었다.(28쪽)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발라탱의 시선이 점점 키다리 신부 옆에서 계속된 기행을 벌이는 키작은 신부, 즉 브라운 신부에게로 가닿는다. 반전이 펼쳐지는 결말에서 그동안 갖고 있던 탐정에 대한 이미지가 균열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도대체 브라운 신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푸른 십자가의 행방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정답은 책속에 있다. 뛰는 플랑보 위에 나는 발라탱이 있다면, 나는 발라탱 위에 브라운 신부가 있었으니, 그는 두사람을 속이고 나도 감쪽같이 속였던 것이다.

 

 

  "아마 숙맥 얼간이여서 그런 모양이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들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인간의 악을 전혀 모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단 말인가? 내 직업의 또 다른 면에서도 자네가 성직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네."(37쪽)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세트 : NOON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조지 오웰,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저/황현산,박경서,이종인 등역
열린책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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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님 또또 감사드립니다!!! | 감사일기 2021-09-2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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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낙엽수집가로의 탈바꿈을 눈앞에 둔 열매수집가와 어린이 도서관 순례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작은 택배 상자가 저희 부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문한 책이나 서평단 도서가 올 게 없는데' 하면서 상자를 열어본 순간,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학창시절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에버그린 공책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 시절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책표지가 너무도 어여쁜 <비밀의 화원>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바로 최근 Joy님의 깜짝 이벤트에 당첨(이라 쓰고 저혼자 북치고 장구쳤다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ㅎㅎ;;)된 후 고민 끝에 제가 선택한 책입니다.

Joy님의 깜짝 이벤트1 관련 포스팅 바로가기

Joy님의 깜짝 이벤트2 관련 포스팅 바로가기

<비밀의 화원> 밖에는 자타공인 예스마을 골드핑거이신 Joy님의 손글씨가 쓰여진 (저를 포함한 여러 이웃님들의 '마음의 친구들'인 앤과 다이애나가 그려진) 엽서, 그리고 이번 걸클래식 시리즈 서평단의 한 축을 담당했던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퍼즐이 들어있었습니다. 퍼즐광이기도 한 열매수집가가 저보다 더 기뻐하였답니다.ㅎㅎ

 


 

이 포스팅을 빌어 Joy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깊어갈 가을밤에 비밀스럽게 아껴가며 읽겠습니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하여 부른 「비밀의 화원」을 화답으로 보내드립니다.^^

 

 

[출처 :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https://youtu.be/eGXJs7zOHC4]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저/이경아 역
윌북(willbook)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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