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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을 향한, 가이 없어라 | ↘『글짓기』 2006-04-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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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을 향한, 가이 없어라.

                                                                                                             천안오성중2 김만용

눈이 아릴듯이 푸른 하늘의 새하얀 구름.

온 세상을 덮는 잿빛 하늘의 구름.

품 안으로 맞아드리려 해도 도망가 버리는 구름.

정말 우리의 구름, 북은 품을 수는 없더라도 다가설 수 조차 없는 것일까.


 7·4 남북 공동 성명,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 7.7 선언 등을 통해서도 북은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2000년 남북 최초로 정상 회담이 열리게 되면서 북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까지 다가온 듯 했다. 허나 가까워졌다가도 떠나버리는 것이 구름인지 북도 다시 저만치 떠나버렸다. 2004년 서해교전을 계기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악화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새정부가 들어서도 여전히 북측에 지원을 蠻斂?있다. 쌀이며, 가축이며, 경제적 熾坪見?온갖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거리감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멀어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은 왜일까? 설마 우리가 잘못 된 날개를 달고 구름을 좇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날개 설계의 오류를 고쳐야 한다.

 가장 큰 오류는 바로 우리들의 이중적 태도이다.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잊어버리려고 하면 나오는 것이 바로 북의 식량난, 북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 탈북자들이다. 조선시대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결국 뼈도 남지 않은 몸으로 생을 마치는 백성들과 같은 북 주민들의 생활은 탈북으로 이어져왔다. 중국의 외국 공(영)사관으로 도망친 탈북자들을 보도해줄 때 우리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론으로 표출시키며 동정해왔다. “얼른 평화적 통일을 해서 같은 민족인 북 주민들을 돕자.”며 말이다.

 하지만 2004년 서해교전, 이산가족 상봉장에서조차 기자가 반공산적인 질문을 하였다고 모든 기자단을 좇아낸 일, 북한 경수로 건설 중단 비용 5억달러 전액을 남에 부담시킨일 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왔는지 기억해보아야 한다. 여러가지 잡다한 마찰이 있을 때는 북을 비난해왔고 서해교전 당시에는 전쟁까지 불사했었다. 이런 우리들의 이중적태도는 북의 변덕만큼이나 심하다. 당연히 이런 편협한 마음가짐으로는 북과의 거리를 줄일 수 없다.

 이 오류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면서 어렵다. 우리 개개인의 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의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북의 변덕이 심해도 여러 나라들의 속에서 궁핍한 처지를 고려해 이해해주고 북이 도발해 오더라도 비난하기에 앞서 그 원인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갖으면서 말이다.

 이제 드디어 날개 설계의 오류를 찾아 해결책을 찾았으니 구름을 좇아가 품을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있다. 날개를 달고 구름에게 다가가도 구름이 원하지 않으면 품을 수 없다. 오히려 구름은 가까이 온 우리를 천둥과 번개로 공격해 올지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전부터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대기업 현대의 가축 지원부터 쌀지원, 옥수수지원, 경제 자본 지원 등 식량과 경제를 넘나들며 꾸준한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 말이다. 물론 같은 민족인 북의 어려운 문제점들을 도와준다는 면에서 훌륭한 정책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서의 부차적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지원을 해줄 때 ‘퍼주기 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북 지원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적지만 확실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현재 대북지원을 반대하는 이유가 거의 대부분의 식량 지원이나 경제 지원을 북이 모두 군비를 충당하는데 쓰기 때문이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의도와 정반대로 전개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적은 물자를 지원하더라도 그 사용 방법 및 지원 대상, 효과 등을 알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첫번째 식으로의 지원을 계속할 수는 없으므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현재 북은 광복 후부터 국가 수입 대부분을 군비, 중화학 공업 발달에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북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발달은 미비하고 농업 발달도 저조한 편이다. 더군다나 농경지 부족으로 산을 깎아 다락논을 만드는 까닭에 자연재해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정된 곳에서 높은 수확을 얻을 수 있도록 집약적 농업 발달을 위해 기술 전달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냄비 등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북한 곳곳에 경공업 공단을 세우도록 장려해주어야 할 것이다.


 되었다.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와 구름을 막아왔던 물리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시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어쩌면 10년이 될 수 있고 100년이 될 수도 있다. 왜 우리는 50여년의 세월을 견뎌왔는데 또 그만큼의 세월을 견뎌내야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지난 50여년 세월을 헛되히 보낸 벌이라고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서독과 동독의 주민들은 서로의 상황을 잘 알았으므로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동독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서독으로 22만명이 넘게 도망쳐올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과 전쟁이 맞물리게 되면서 빠른 시간내의 통일은 물 건너가 버렸고 그동안 사이의 골이 메워지려고 하면 다시 파는 식을 계속해왔으므로 당연한 결과이다.

 가이 없는 구름을 향한 마음. 구름을 좇아 품으로 맞아드릴 수 있건만 시간의 강 앞에서 피눈물이 흐를 뿐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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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소감문 | ↘『글짓기』 2006-04-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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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학습 소감문

중등수학 A반 김만용


 이번 체험학습을 다녀온 뒤 나는 한 마디로 꼭 ‘마르코 폴로’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상상에 빠졌다. 마르코 폴로가 말로만 듣던 동방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니 말이다. 사실 화석 채취, 큐브로, 천체 망원경 조립 및 분해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해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첫날 화석박물관 이후의 순서로 화석 채취를 할 수 있는 성주산으로 갈 때만 해도 설마 진짜 화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상복에 2명당 망치 한 개씩 들고 돌로 덮인 길을 걸어갈 때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10분 뒤 그 의심이 180도 변하게 되었다. 한참 검은 돌을 깨다가 식물 잎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화석이라고 하지만 내 손으로 찾은 트라이아스기의 식물 화석이라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엄청난 식물 화석을 발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외진 곳을 관찰해보고 깨어보았지만 당연히 희귀한 화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비록 식물 잎 화석, 고사리 화석, 대나무 화석 등 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말 했듯이 내 손으로 찾은 화석이라는 데에 큰 의의를 두고 유익한 활동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곤충 화석 채취장에 도착하였는데 시간 부족으로 돌 하나 만져보지 못하고 임해수련원에 입소한 것이다.

 임해수련원에 입소하여 거의 초면인 얼굴들과 맞대며 밥을 먹고 칠교놀이 등의 활동을 하다 보니 가장 기대했던 천체 관측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날씨가 흐린 까닭에 천체 망원경을 조립 및 분해 해보는 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천체 망원경 조립 및 분해도 흥미 있게 볼 수 있는 활동이었지만 무엇인가가 부족하여 허전한 느낌이었다. 숟가락, 젓가락은 있지만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랄까?

 드디어 마지막 날 오전 활동인 큐브로 시간이 왔다. 처음에 나는 시간표에 나와 있는 대로 큐브를 맞추는 활동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6층에 가보니 웬걸 어린이집에서나 볼 수 있던 나무토막들이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평범한 나무토막은 아니었다. 재미를 만들어내는 나무토막들이었던 것이다. 구멍 또는 홈이 파여진 나무토막들을 이어놓고 구슬들을 통과시킨 다는 것, 처음해 보는 만큼 기대도 컸다. 설명서에 있는 활동들을 해본 뒤 본 경기인 조별 창의적 작품 대회가 시작되었다. 痢?조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미끄럼틀을 만들어 검사를 맡았다. 그런데 다른 조들을 구경하고 나니 우리 조 작품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쌓아보고 몇 개의 블록을 바꾸어보니 구슬이 회전하면서 돌기까지 하였다. 허나 어찌하리. 이미 검사를 맡은 작품인 것을.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런 활동 외에도 칠교놀이 등 많은 활동을 더 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창의력이 생겼음은 물론 단체 생활을 하면서 사교성도 길러지고 자주성도 조금 생긴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멋진 기회를 만들어주신 여러 관련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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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기조발언> | ↘『글짓기』 2006-04-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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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원한 좌절을 안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속학교 : 천안오성중학교

학년 : 1학년

성명 : 김만용

 

  안녕하세요? 저는 천안오성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만용이라고 합니다. 옛날 조상들은 이맘때 쯤 냉기와 온기를 같이 품고 안겨오는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비우고 학문에 열중하셨지요. 지금 저는 이 조상들처럼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토론에 임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뒤 정조를 잃고 돌아와 화냥년이라는 욕을 들으며 차례차례 목을 매달고 물에 뛰어들은 환향녀[화냥년]. 일본에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 왜놈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간 포로들. 요즘 이들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천 명을 넘어 만 명을 향해가는 새터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과연 우리는 매년 수백억 원 씩을 들여가면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이다. 남해도에 살고 있던 ‘나적응(가명)’과 ‘나몰라(가명)’는 항우와 유방처럼 대결을 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성과 한음 같은 우 나누기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들이 임진왜란 개전과 동시에 일본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여러 고문에도 용케 종전까지 살아남았다. 종전 뒤 포로협상에 끼어서 돌아온 이들은 걱정이 앞섰다. 고향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장장 7년 동안 일본에서 살던 턱에 조선의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임진왜란 전 남해도에서의 삶도 작은 섬에서의 외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적응’은 ‘나몰라’와 헤어져 예전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이 될만한 일을 배우러 다녔다. 그러나 결단력이 부족해 거리를 전전하던 ‘나몰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도성에 살던 그의 할아버지였다. 전쟁 후 큰 부자가 된 그들의 할아버지는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해 주고 생활에 필요한 돈들을 대주었다. 한동안은 그 도움으로 잘 먹고 살았지만 불행히도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돈줄마저 끊기게 된 ‘나몰라’는 남은 돈들을 노름에 탕진한 뒤 울화병으로 죽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나적응’의 옆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여기서 똑같이 일본 생활에 물들었지만 살아남은 ‘나적응’과 죽은 ‘나몰라’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물고기를 잡아서 먹여준 사람과 물고기를 잡을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의 차이점 말이다.

  지금 우리는 새터민들이 하나원을 퇴소하면 정착금으로 먼저 2천만 원이란 돈을 받게 된다. 만약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이 충분히 사회적응 훈련을 받았다면 이 돈을 기반으로 직장을 구하거나 잘만 하면 소규모 창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TV를 보면 불과 몇 백만 원으로 시작하는 창업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3D직종이라도 초봉 100만 원 이상을 주는 곳이 많다. 결국 새터민들이 자립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응 훈련의 부족과 우리들의 인식에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몇 백억의 정착금을 더 지원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신 사회적응 훈련 기간을 늘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꾸어야할 것이다.

  먼저 하나원에서의 교육 기간을 늘리고 부산 YWCA 새터민지원센터 같은 곳들을 다른 지역에도 신설해야할 것이다. 모 신문사 설문조사에 의하면 언어의 이질성이나 사회주의적 생각에 의해 취업이나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30%에 이르고 있었다. 수십 년을 겪은 사회주의 문화를 단 일 년 만에 바꾸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남한 사회에 동화가 잘 되지 않는 새터민들은 몇 년의 시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은 충분히 동화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사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제도적으로 새터민창업지원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겠다.

  실제로 새터민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취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첫 주자는 김혜영 씨였다. 탈북 3년차인 김혜영 씨는 이 곳의 도움으로 부산에 고기 음식점 창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손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의 지원센터들로 모든 새터민들을 도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지원센터의 부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충격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새터민들을 더 깔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는 응답이 40%(복수응답 설문조사였다.) 가까이 나왔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인식 속에는 서로가 피를 나눈 한 민적이라는 생각보다는 6․25전쟁을 통해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주모자, 공산주의자 등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불만을 느끼고 자유세계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내려온 그들을 또 한번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돈’이 아닌 우리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나는 위의 글을 쓰며 여러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한 가지 씁쓸한 점을 느꼈다. 그들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내놓은 것이 겨우 취업을 위한 더 많은 정착금뿐인지 말이다. 물질만능주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새터민들이 『감자』의 주인공 복녀 같이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정착금만을 주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생활능력이 없이 정착금만으로 생활한다면 얼마 못가 그 돈을 다 잃고 생활하게 될 새터민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도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달을 살아갈 수 있는 돈이 아닌 몇 십 년을 걱정 없이 살아가게 하는 일자리와 우리의 따뜻한 배려라는 것을.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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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최종발언> | ↘『글짓기』 2006-04-2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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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학교 : 천안오성중학교

학년 : 1학년

성명 : 김만용


  안녕하세요? 천안오성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만용입니다. 약 일주일 전만해도 저의 글은 작은 소금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여러분들의 비와 햇빛을 맞으며 작은 생각들이 응결되기도 하고 증발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그 안의 소금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생각들을 내보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은 그 핵을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한 가족이 황무지에 서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수많은 고난의 강들 뒤에는

  억압의 땅이 펼쳐져있다.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고난의 산맥들 앞에는

  자유의 땅이 펼쳐져있다.

  그들은 전진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의 땅도 자유의 땅도 배려의 땅도 아니었다.

  그들이 찾아온 곳은

  빙하기의 가나안이었다.


  과연 새터민들은 왜 사선을 넘어가며 죽음을 무릅쓰며 이 곳, 한국에 오려한 것일까요? 위의 글처럼 새터민들은 자유와 희망을 갖고 배려를 받으며 살고 싶어 합니다. 불행히 한국에서도 그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구성요소인 충분한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정착금을 지원해주어야 합니까? 정신적 고통, 물질적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수많은 정착금을 추가로 지원해주어야 합니까? 같은 민족으로서의 의무이기는 하여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불가능한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예산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해 압박할 수도 있고 그 정착금을 노리고 온 새터민들이 생겨날 텐데 그에 따른 북한의 반발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착금을 몇 천만 원을 더 올려준다고 해서 평생 새터민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돈들을 갖고 계산해보면 2년 안에 6천만 원 정도의 돈이 사라집니다. 결국 정착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으로는 새터민들을 평생 동안 살아가는 수단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착금을 더 지원하는 대신 다른 대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정부에서는 새터민들에게 돈만 던져주고 뒷짐만 지는 태도를 탈피해야합니다. 그들이 그 돈을 벌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또한 알선해주어야 합니다. 실업률이 늘어나는 실정이어도 3D 직종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은 아니지만 그런 곳에서라도 임시직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고 한국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얼마큼 적응했다고 생각되는 새터민들에게 국가가 담보를 서서 대출 형식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해주며 창업을 권장하는 태도를 취해야합니다.


  둘째로 새터민들에 대한 사회적응 훈련을 더 현실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벗어난 이야기 일지 몰라도 요즘 대학교 교육이 나중 취업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되어 실전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새터민들에게 대학교나 다름없는 하나원에서 이론적인 훈련보다는 실제로 밖에 나가 우리들 하나하나와 같이 대화도 나누어 보고 행동하면서 익히는 실전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정부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창업을 도와주어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변해야만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새터민들이 우리 사회 형식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얻어도 또 하나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빙하기가 된 우리의 마음이다. 6·25전쟁이 일어난지 벌써 5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북한에 대한 반대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이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우리는 새터민들을 자유를 찾아온 사람이 아닌 일명 빨갱이로 밖에 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간신히 사회에 적응한 새터민들을 좌절시키지 않기 위하여 ‘사랑’과 ‘관심’의 부재를 해결하여만 합니다. 제발 새터민들을 잠시 떠나있었던 가족이라 여기시고 돈만 주고 그들에게서 회피하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진정 원한 것은 돈보다도 자유니까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새터민들에게 지원하는 정착금은 지금의 수준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새터민 개인에게 지급되는 더 이상의 추가 정착금 지원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저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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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아닌 ‘너’ | ↘『글짓기』 2006-04-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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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저/조경숙 역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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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이 아닌 ‘너’ (독서논술)


  오랜 세월을 거쳐, 마음이란 돌 위에 ‘너’를 새겨 넣은 이들을 쫓아내고 그 돌 위에 다시 ‘나 자신’을 새겨 넣은 사람들.


 ‘나 자신’을 새겨 넣은 이들의 인생은 ‘나 자신만이 꾸려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루어 낸 것은 자기 발전과 자아실현으로 인한 행복’이다. 하지만 ‘너’를 새겨 넣었던 이들이 이루어 내었던 것은 ‘비가 내릴 때 피할 수 있는 곳, 외로울 때 읽을 책 한 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한 행복’이었다.


 과거에는 ‘너’를 새겨 넣었지만 현재에는 ‘나 자신’을 새긴 우리들은 과연 미래에 새겨 넣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너’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작고 평범하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심을 가진 체로키족 아이의 짧은 유년기가 제공해주고 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작은나무’는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작은나무’에게는 성공의 스승이 아닌 인생의 스승이 기다리고 있었.慕?체로키족 할머니와 혼혈 체로키족인 할아버지였다.


 다정하고 전통적인 인디언인 할머니와 과묵하지만 다정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작은나무’는 ‘너’라는 개념을 배우게 된다. 감사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줄 때 좁은 의미의 ‘너’를, 필요한 것만 자연으로부터 빌려갈 때 넓은 의미의 ‘너’를 말이다. 그래서 ‘작은나무’는 처음에 자신을 제외한 것들을 모두 ‘너’라는 개념으로 보아 자기 자신과 같은 격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따라 여러 사람들을 겪고 거래를 해보면서 ‘나 자신’만 생각하고 사는 백인들을 알게 된다. 한번은 자신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열심히 도와서 자신에게는 많은 돈인 50센트를 모으게 된다. 그런데 이 돈을, 자기 자신을 아주 착한 기독교인으로 소개한 사람의 먹지도 못하는 병든 송아지와 바꾸게 되면서 잃게 되었다. 비록 경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치인들이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작은 몇 에이커 땅에 온 가족의 희망을 걸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땅을 총으로 빼앗은 일도 알게 된다. 선량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겉으로는 위선을 행하고 나 자신의 부귀영화만 꾀하는 정치인들도 보게 된다.


  잠깐 우리 주위를 살펴보더라도 많은 경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뺏기는 아이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 나 역시 대중교통 이용 시에 노약자분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적이 없다. 그대로 앉아서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것들도 ‘너’를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경우들이다.


  그러나 ‘작은나무’는 이런 백인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더더욱 ‘너’를 새기게 되었다. ‘너’를 도와서 얻은 돈 50센트가 ‘너’를 속여서 얻은 돈 50센트보다 값진 것을 알았고 자신과 함께 걸어온 개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부가설명을 하자면 지금의 우리들처럼 개를 관상용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아니고 옆에 항상 있는 ‘너’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나 자신’이 아닌 ‘너’를 새겨 넣어야 한다. 불행히, 요즘 시대에 다른 상대를 생각한다면 손가락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 자신’을 중요시 할 때 한 사람만이라도 ‘너’를 중요시 해준다면 우리의 사회는 많이 변모할 것이다. 사회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교통사고나 범죄 등의 발생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게 비를 막아주는 처마가 되어 행복을 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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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도 적당히 부리면 약이 되고 지나치게 부리면 독이 된다. | ↘『글짓기』 2006-04-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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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 : 욕심도 적당히 부리면 약이 되고 지나치게 부리면 독이 된다.


<공공의 후원자이자 심판관>


 GNP 80달러의 나라를 세계 경제 12위로 만들고 첨단제품 선두권을 형성하게 만들었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사건의 내면에는 욕심이 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이후 AP통신에서는 한국인의 ‘빨리 빨리’ 문화가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지만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같은 문제점을 낳았다고 했다. 이 ‘빨리 빨리’문화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빨리 얻으려는 욕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 aliens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래에 우주를 개척할 때 나타날 생명체들에 대한 경고? 아니면 진보된 우주과학기술의 유용성? 모두 아니다. 바로 인간의 욕심이 부른 화를 보여준다. 버크가 자신의 회사를 위해서 행성 폭발을 반대하고 리플리와 뉴트를 숙주로 삼아 alien을 지구로 들여오려고 하며 교전 중 연구실로 가는 문을 막음으로서 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 대신 동료들에 대한 동료애가 있었다면 일찍 후퇴하고 빨리 실험실로 퇴각하여 많은 대원의 목숨을 살렸을 것이다. 결국에는 혼자 도망치다가 alien에게 당했지만 말이다. 여기서 욕심은 버크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처음에 버크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진하였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당한 욕심이 버크에게는 약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욕심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에게도 화를 미치게 되었고 결국 자신에게도 독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 욕심을 과연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적당한 욕심이 어떻게 약이 되는지 알아보자.

 ‘나는 세계 최고의 ○○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을 만들기 위해서 잠도 안 자야지.’, ‘○○을 달성하기 위해서 ○○와 경쟁해야지.’ 이런 다짐들이 모두 자기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욕심들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와 이런 욕심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짧은 기간에 큰 발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욕심을 부리다 보면 자기희생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냥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없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나에 만족한다면 결코 그 자리조차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을 보자. 80, 90년대만 해도 일본의 반도체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만족하고 발전을 도모하지 않다보니 큰돈을 투자하면서 반도체 제 1인자를 꿈꾼 삼성에게 지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예가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에 장사성이란 사람이 있었다. 장사성은 꽤 많은 지역을 복속시키고 나라를 세운 뒤 호위호식하며 편한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봉기를 일으키고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은 주원장에게 망하고 만다. 결국 부리기 싫은 사람도 자신을 위해서 부려야 하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그리고 욕심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고 의무를 안겨줄 정도로 부려야 한다. 자신의 목표가 아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부리거나 남들에게 큰 피해가 갈 정도로 부리게 된다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욕심을 다루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습득했을 것이다. 이제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욕심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버리고 지나친 욕심을 버릴 때 우리 모두 최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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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 | ↘『독서후기』 2006-04-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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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영의 신 잭 웰치

정산 저
자음과모음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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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대국, 미국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영자 10위에서! 당당히?? 1위로 뽑힌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잭 웰치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잭 웰치는 타고난 사업가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이전에 벌써 인원 감축을 시도하였고 좋은 회사와 능률적인 사원들만 뽑으려 노력하였다. 그덕분에 살아난 기업이 바로 GE다.
 GE는 무슨 기업일까? 의외로 GE는 에디슨을 계승한 기업이다. 대기업인 만큼 분야도 여러 분야가 있었다. 그러나 에디슨이라는 위인이 계보에 존재하지만 점점 쓰러져 가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 GE를 잭 웰치가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것도 말단 사원에서 회장이 되면서 말이다. 잠깐! 미국 회사는 여기서 보듯이 우리나라처럼 친족으로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가장 회사를 성공시킬 것 같은 사람을 대로 잇는다. 이런 점에서 짧은 기간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 않느냐...하는 생각일 하게 된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는 종사하는 직업은 다르지만 사원들을 다루는데에 있어서 정말 현명하다. 빌 게이츠는 말단 사원의 메일까지도 받아보며 회사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하면 다시 살펴본 뒤 옳은 말이면 무조건 수용한다. 잭 웰치 역시 고위 간부들 보다 좋은 의견이 사원에게서 나오면 무조건 수용했다. 그리고 사원들을 무자비하게 퇴출시켰다고 하지만 그 것은 좋은 사원들을 골라내기 위한 수단이었고 끝까지 남은 최고의 사원들에게는 회사 안에 운동 시설, 휴게실 등을 만들어 주며 좋은 일터에서 일하도록 격려하였다.
 잭 웰치가 이렇게 GE를 살리는데에 열성을 보이고 GE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미친것처럼 집착하는 점 때문에 심장발작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잭 웰치의 반 만이라도 닮은 엘리트 회장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본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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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독서후기』 2006-04-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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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퀘스트

크리스 보닝턴 저/이정임, 정미나 공역
생각의나무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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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제목만 봐도 관심이 가는 책이다.
 자세한 뜻은 모르지만 퀘스트는 모험에 관련된 뜻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당연히 이 책은 인간의 최대 도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65세의 나이에 한 번 기항하고 세계을 요트로 돌았다는 이야기를 믿겠는가? 그것도 폐암을 이긴 상태였고 최근 일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치체스터이다. 치체스터는 모험기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요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비행기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사이를 비행하는 도전을 하였고 그 다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부터 유럽까지의 비행을 시도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요트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대서양횡단 대회에서 2회연속 우승을 하기도 하였지만 3번째 출전 때는 자신의 기록을 앞당기기는 하였지만 젊은 프랑스인에게 지고 말았다. 여기에는 배의 성능도 한몫 하였다. 치체스터의 집시나방4호는 그렇게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요트였기 때문이다. 이미 65세가 되어 폐암도 간신히 넘긴 치체스터는 결국 1기항 세계일주를 시도하였다.
 영국 플리머스항에서 출발한 그는 시드니까지 100일, 시드니에서 플리머스까지 100일을 잡고 출항하였다. 그러나 여러 악조건을 만났고 다행히 107일만에 도착하였다. 늙은 그가 시드니까지 온 것만 하여도 주목받을만 하였는데 시드니에서 건강상태가 안좋아 모두 출항을 반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치체스터는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다시 출발하였다. 중간에 큰 태풍으로 요트가 90도 가까이 전복되었으나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감격스럽게도 플리머스 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65세의 인간승리...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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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지배한 빌 게이츠 | ↘『독서후기』 2006-04-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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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래를 지배한 빌 게이츠

김이진 저
자음과모음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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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데에도 윈도우 XP에서 Internet Explorer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이런 것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컴퓨터를 재미있고 유용한 존재로 만들어준 사람이 이런 소프트웨어 뒤에 있다. 바로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프로그래머들...
 빌 게이츠가 어렸을 때만해도 컴퓨터는 지금과 아주 달랐고 자동차 수십 대를 살 수 있을 만큼 비쌌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GUI형식도 아니어서 아주 복잡한 소스를 짜야해서 마우스, 모니터 등은 필요도 없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본체와 키보드, 코드를 기록하는 종이만 있으면 되었다. 당연히 이 때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은 프로그램을 잘 짜는 사람으로 통했다. 빌 게이츠도 이런 시대에 태어났으니 컴퓨터를 할 형편만 되었다면 우리보다 프로그램 제작을 더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빌 게이츠의 학교에는 컴퓨터가 생겨 컴퓨터에 미친 다른 친구들과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짜고 그 속에 푹 빠졌다. 가히 폐인이라 해야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엄청난 돈을 내야했고 결국 빌 게이츠와 친구들은 포기해야했다. 이 때 행운이 찾아왔으니 바로 C-큐브드 사의 무료 컴퓨터 제공이었다. 여기에서 빌 게이츠, 친구들은 뛰어난 프로그래머로 성공해 갔고 얼마 후 이 컴퓨터 사는 파산하였으나 빌 게이츠와 선배 폴 앨런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창건하였다. 그 전에는 여러 성과를 거두었으나 사회에서는 이 들을 고등학생으로만 여기거 차별하였다.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제대로 운영될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컴퓨터 세계에 혁신이 다가와 미니컴퓨터가 생겼고 빌 게이츠는 여기에 넣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것이 바로 MS-DOS였다. 하지만 MS-DOS는 조금은 야비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빌 게이츠가 다른 컴퓨터 사의 Q-DOS를 싸게 사들여 조금만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을 하려면 이런 부분들이 필요했기에 빌 게이츠는 나중에 경쟁자가 GUI를 도입한 매킨토시를 만들자 똑같이 배껴 윈도우 1.0과 윈도우 3.0을 만든 뒤 윈도우 95, 윈도우 98로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었으며 그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세계에 우뚝 서게 한 것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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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곤 | ↘『독서후기』 2006-04-2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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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라곤 (상)

크리스토퍼 파올리니 저/정영목 역
청미래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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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살 학생이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에 버금가는 판타지 소설을 썼다는 말에 내가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사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판타지 소설은 대게 만화책 비슷하게 나가서 특별한 몇 권을 빼면 별로 내 마음에 드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있어서 보기로 결정하였다. 역시 이 결정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주인공 에러곤은 어느날 사냥을 하다가 푸른빛이 나는 큰 돌을 발견하였다. 에러곤은 그 돌을 팔려고 했으나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집에 두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돌에서 용이 나왔고 에러곤은 그 용과 마음의 통화를 하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시내에 간 사이에 라젝이라는 왕의 심복이 그의 집에 와 삼촌을 죽이고 집을 파괴시켰다. 그 후로 에러곤의 집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에러곤은 용과 함계 라잭을 죽으려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야기꾼으로만 알았던 브롬이 여러가지 임무를 말해주며 마법이며 검술 등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이 다시 나타난 드래곤 라이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라잭을 찾아 여러 곳을 방랑한다. 그 와중에 라잭의 기습으로 브롬을 잃지만 그가 살아남은 마지막 드래곤 라이더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후 길리어드에서 감옥에 갖히지만 중간에 알게된 사나이 머태그의 도움과 자신의 마법, 용 스피어러의 마지막 도움으로 최강적 셰이드의 칼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그는 아름다운 요정을 구했는데 독에 중독된 상태여서 숨겨진 채로 왕국에 도전하는 바든까지 가야했다. 다행히 그는 때를 맞추어 도착하였고 치료된 요정 아리어와 머태그, 용 스피어러와 바든을 도와 어걸 대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다행히 셰이드에게 죽을 위기를 맞았던 에러곤이 브리싱그르를 외치며 자록을 셰이드의 심장에 꽂아 셰이드는 죽었고 어걸들은 혼란에 빠져 결국 바든은 승리하였다. 에러곤에게는 이제 타락하여 드레곤 라이더를 멸망시킨 악의 드래곤 라이더 왕국의 왕, 갈버토릭스에 맞서 싸우기로 하였다. 아직 힘이 부족한 그여서 아리어의 충고대로 요정들의 나라로 가 드래곤 라이더 수업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동중에 에러곤은 아리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으로 상 하가 끝났고 크리스토퍼 파올리니는 후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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