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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저/전은경 역
푸른숲 | 2009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일상생활 속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저자의 안목은 이 세상을 여유롭게 살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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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고

피터픽셀 산문집/전은경 옮김

푸른숲/2015.02.05

sanbaram

 

저자는 1935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나 졸투른에 살고 있다. 1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1964<사실 블룸 부인은 우유 배달부를 알고 싶어 한다>를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47그룹상(1965), 스위스 문학상(1973), 요한 페터 헤벨 문학상(1986),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1999) 등을 수상했다. 뒤렌마트, 프리쉬어와 더불어 스위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스위스의 모든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려 있을 정도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책상은 책상이다>20여 개국에 소개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자들은 기다림과 씨름한다>, <못 말리는 우리 동네 우편배달부>, <사계>, <케루빈 할머니와 케루빈 함머>등의 작품집을 발표했다.

1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는 저자의 약력에서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며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에 실렸던 페터 빅셀의 칼럼들을 모은 것으로 원제는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 글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하는 옮긴이의 다음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장편(掌篇)이라는 형식을 통해 얼마 안 되는 낱말들로 아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는 위대한 이야기꾼이다.”라는 게오르그파처의 평처럼, 페터 빅셀은 짧은 이야기의 마술사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사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글은 당연해 보이는 익숙한 일들, 작고 큰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계기를 제공하며, 느림의 미학을 발견하게 한다.

그의 글에는,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하면서도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동네 바보는 기다림을, 모든 기차 시간표를 외우는 지적장애인은 존재 자체를 가르쳐주고, 교회종의 조율표를 여러 장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자의 하루를 구원해 준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행복한 만남이다. 저자의 글은 소통을 존재적인 요구로 보고, 이야기하기와 침묵하며 듣기의 힘을 믿으므로 따뜻하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소통과 융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효율만을 목표로 삼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의 문제점도 짚는다. 우리는 차표 자동발매기나 현금 인출기에게 자기도 모르게 인사말을 건넨다.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배워 우리와 융화하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과연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까? 민영화를 자유로 속이는 사람들, 권력자의 마음에 들었다고 스스로 권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규격화만 남은 학습 히스테리. “우리는 무질서만이 아니라 아마 질서 때문에 환경을 훨씬 더 많이 파괴할 것이다. 우리 마음에 들어야 할 뿐, 환경의 동의는 얻지 않는 질서 때문에라는 말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저절로 떠오른다.(pp.187-189)

다음의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좀 더 작품을 가깝게 느껴보자.

늦은 오후면 나는 대개 적포도주를 한 잔 들고 여기에, 입구 오른쪽 두 번째 탁자에 앉아 있다. 오늘은 일단 혼자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 탁자에 와서 함께 앉지만, 건너편 자리는 빈 채로 있다. 평소에 존슨이 앉는 자리다. 그는 오늘 오지 않았다. 수요일에 오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존슨의 자리는 비워두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그리고 오늘 그가 오지 않는 것도 우연일 뿐이다. 그렇다. 나는 존슨을 기다리지 않는다.(중략) 그래, 오늘은 아무래도 오지 않을 모양이다. 사실 이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오 분, 다시 십 분을 더 기다린다. 아니, 나는 존슨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건너편의 빈 의자가 나를 세차게 붙들고 기다리라고 강요한다.(p.9)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화자인 나는 평소의 습관처럼 적포도주를 한 잔 들고 입구 쪽에 앉아 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면서도 건너편 빈 자리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빈자리의 주인인 존슨을 기다린다.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서 5, 10분을 더 기다리는 것에서 존슨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빈 의자가 자기를 기다리라고 강요한다는 표현을 한다.

저자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추억과 생각을 불러내는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鄕愁)’에서 또 한 장면을 보자.

고향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언제나 냄새를, 특히 양배추와 파 또는 탄 음식과 같은 부엌 냄새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것들도 사라졌다.(p.26) 역이 더 이상 역에 대한 추억을 생각나게 하지 않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은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역에 다녀와도 이제 내 손은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마음속에 자리한 추억속의 고향이고, 역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도주를 기다림에서는 이런 표현이 있다.

기차는 잠시 뒤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옷걸이에서 외투를 꺼내 서둘러 입고 가방을 들고는, 마치 달리기에서 가장 좋은 출발 지점을 차지하려는 것처럼 기차 복도에 줄을 선다. 앞뒤로 모두 비좁게 붙어 서서. 아마 오 분이나 칠 분쯤 뒤에 내리게 될 문을 바라보고 있다.(p.53) ‘우리는 왜 기다리는 걸까? 왜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복도에 서서 기다릴까?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 건 없기 때문일 테지.(p.18)’하면서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배웠기 때문에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추억은 지난 시간의 고통도 아름답게 그리워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일상생활에서 철학을 발견해 내는 솜씨를 발휘하는 것을 다음에 나오는 과거가 없는 자그마한 술집을 통해 감상해 보자.

초대 받아 간 친구 집에서 어린 소녀를 만났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 소녀는 문으로 들어서다가 뭔가를 보고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과거를 소유하는 일은 이렇게도 일찍 시작된다! 과거,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지금보다 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것. 여기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 아주 달랐을 때 자기도 그걸 경험 했다는 기억도 포함된다. 노화 현상중 하나다. 앞에서 말한 어린 소녀도 겪는 노화현상, 이 현상은 얼마나 일찍 시작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린 소녀도 나이가 있다는 걸 얼마나 쉽게 잊고 사는가.(p.29)

어린 아이들도 매혹적이다. 아이들은 학습하는 게 아니라 발견한다. 날마다 세상을, 그리고 그저 배우고 가르치는 일밖에 없다. 이제는 습득만, 규격화만 남아 있다.(P.113)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칼럼은 화려하지 않으나 늘 옆에 있는 화분이나 분재처럼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저자처럼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가 발견한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면서도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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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기본 카테고리 2015-12-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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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장희창 역
민음사 | 200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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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고 외친 차라투스트라는 무엇을 위해 산을 내려와 인간의 세상을 방랑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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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장희창

민음사/2012.9.28.

sanbaram

 

니체는 1844년 프로이센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1864년 본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유럽 문명의 몰락을 예언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초인, 힘의 의지, 영원회귀 등, 니체의 핵심 철학이 장쾌하고 시적인 언어로 집약된 그의 대표작이다. 저서로는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힘의 의지>, <이 사람을 보라> 등이 있다.

 

신의 죽음은 곧 <차차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출발점이며, 이후 그의 방랑과 여정도 신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더불어 눈앞에 펼쳐질 인간의 대지에 대한 탐색이다. 이전에 신의 율법은 인간의 선악을 규정하는 절대 명령이었다. 선악 그 자체는 고정불변의 것으로 여겨졌고, 그것에 대한 반성적 인식은 용납되지 않았다. 폐허의 신전, 그 자리에 이제 주체적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창조란 달리 말하면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니체의 해석은 지배적 가치라는 닫힌 공간을 헤치고 들어가 그것에 균열을 내는 실천이고, 인습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자유정신의 냉철한 시선이며, 또한 관점을 설정하는 힘이다.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신의 죽음은 인간적 형태의 온갖 우상 숭배의 종식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의 죽음을 전하는 곳에서 초인을 가르치려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초인으로의 변신은 자기 바깥에 가치의 기준을 두고 그것에 복종해 온 인간이 마침내 노예 생활을 끝내고 자기 가치의 주인이 됨을 말한다.(p.58)”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니체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란 결국 신을 중심으로 한 생활이 끝나고 인간 중심의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신 중심에서 인간중심의 생활을 영위하게 되면서 대두한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대들이 국가를, 이 새로운 우상을 숭배하면, 국가는 그대들에게 무엇이든 주려 한다. 그렇게 하여 국가는 그대들의 빛나는 덕과 그대들의 자랑스러운 눈길을 매수하는 것이다.(p.82)” 이렇게 국가가 바로 신의 위치에서 개인들의 자유와 권력을 회수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 오면서 초인들이 필요하게 되며 차라투스트라는 초인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신 앞에서라고! 그러나 이제 이 신은 죽었다! 그대들.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이 신은 그대들의 가장 커다란 위험이었다. 신이 무덤 속에 드러눕고 나서야 그대들은 비로소 부활했다. 이제 비로소 위대한 정오가 오고 있으며, 이제 차원 높은 인간이 주인이 된다! (p.503)”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듯 신이 인간생활의 중심에서 물러나면서 인간이 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때문에 초인에 의한 도덕이 질서유지를 위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서른이 되었을 때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인간 세상으로 다시 나온다. 인간 세상에서 방랑하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이상적인 사람은 가치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이상적인 사람인 초인은 말종 인간과는 반대되는 존재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은 이러한 말종 인간과 초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체험하며 초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신에게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초인을 찾고 알리고자 함이다.

널리 알려진 고전인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신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사유를 폭 넓게 할 수 있는 책이다.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읽고 생각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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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기본 카테고리 2015-12-2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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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담론

신영복 저
돌베개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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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에 대한 깨우침을 전하는 책이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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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관점에서 본 담론

sanbaram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담론의 주제는 세계인식과 인간의 이해 공부.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강의는 사람과 삶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며. 사람과 삶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이다(p.13)’ 라고 이 책의 전개 방향을 알려준다.

우리가 흔희 공부라 하면, 핵심을 요약하고 추축할 수 있는 추상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지혜가 공부인데, 그 주체가 사람이며, 혼자 보다 함께 하는 것이 능률적인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어떤 대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인식 틀을 깨기 위한 것이다. 그 인식 틀은 시인들의 시를 암송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내 인식 틀을 깰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암송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는다 하여 공부하지 않아 획일화된 생각 틀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고정된 시각은 혁신적인 발상을 하기 어렵고, 사유의 발전에도 저해가 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대학입시만 신경을 쓰다가,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격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300수의 시를 암송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다양한 시를 암송하면서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 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발까지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발까지의 여행이란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공감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공부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고전공부의 목적은 현재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p.19)’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인식중 하나가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문사철(文史哲)로 대표 되는 인문학을 통한 이성훈련 공부이고, 다른 하나가 시서화악(詩書畵樂) 등의 예술을 통한 감성훈련 공부다. 우리는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 영상서사의 압도적 전력을 소중하게 계승하되, 이것이 갖고 있는 결정적 장단점을 유연하게 배합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철기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농업혁명을 불러왔고, 농업혁명은 비약적인 생산량 증가와 넓은 농토의 경작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종법시대에 제후가 통치하던 국읍(國邑), 제후의 아들 경대부가 통치하던 도읍(都邑)에서, 협동 농업위주의 생산 활동이 가족 단위 생산 활동으로 변한다. 버려졌던 변방의 비읍(鄙邑)에 자치권을 주게 되자 변방의 넓은 땅이 단일가족(單一家族) 생산 농지에 편입하게 된다. 그 결과 비약적인 생산량 증가를 가져오게 되었다. 잉여 생산량이 많아지자 이것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 국가 간 전쟁으로 사회가 혼란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가 되어 사회가 혼란하게 되자 질서를 잡기 위해 제자백가 사상이 등장한다. ‘춘추전국시대의 고전 담론은 고대국가 건설 담론이다.’라고 저자가 말하는데, 고대국가 통치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자와 맹자, 순자를 대표로 하는 유가. 한비자, 이사, 상양을 중심으로 하는 법가. 유무상생과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노자와 장자. 겸애사상을 위주로 하는 묵가 등을 들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고전 중에 43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논어와 맹자, 중용과 대학을 4서라 하여 중요 교과서로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제자백가 사상 중에 유가의 학문이다. 3경중에 첫째, 시경에 실려 있는 300여수의 시는 북방의 문학이며, 그중 반 이상이 고대민요인 4언체로 된 이다. 시경의 시들은 사실적인 내용이 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남방문학인 초사는 6언으로 되어 춤을 추듯 대단히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초사는 삿된 생각의 표현이라 하여 등한시하였다. 둘째, 서경에서는 선왕들의 업적을 공부하여 본받으려 하였으며, 셋째, 역경은 주로 주역을 공부했는데, 음양의 변화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였다.

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길흉화복이나 운명을 읽으려 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돕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주역이 바로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 전한하는 것이며, 상괘와 하괘가 결합하여 64괘가 되는데, 괘사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공자로 대표되는 유가는 종법(장자상속)시대를 대표하는 주나라 정치체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방안을 주장했다. 유가는 통치자를 정점으로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어서 군자가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사람을 인과 민으로 나누었는데, 인은 중간계급인 , 즉 군자라고 하는 지식인을 말하며, 민은 노예와 생산자를 지칭하는 소인을 말한다. , 그리고 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생산과 국가유지를 위한 국방과 납세 의무만 있을 뿐 권리는 없는 반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공자가 유가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14년을 돌아다녔지만, 유가 사상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없었다. 당장은 국가 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문제였고, 질서 유지는 그 다음 이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를 대표로 하는 법가가 현실에서 강력한 통치수단을 제공하였다. 한비자와 동문수학한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 한다. 법가의 주장은 절대 권력을 가진 통치자가 법을 앞세워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너무 집중된 권력의 남용으로, 가혹한 정치를 하게 되는 폐단을 낳게 되어, 나라가 오래 유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천하를 오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유가의 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가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워 유교 국가를 표방하면서, 질서는 법가의 실천력을 받아들여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노자의 유무상통과 무위자연 사상은 민초들의 정치학이라 할 만하며, 상선약수라 하여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생활을 할 것을 주장했다. 지방정권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사상이었지만 고대국가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이상적인 사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장자의 탁정 사상은 갇혀 있는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갇혀있는 좁고 완고한 사유의 우물을 깨닫는 것이다.(p.146)’ 라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탁정사상은 민초들의 정치학으로, 자유를 주장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묵가는 기층민을 대변하는 사상 이며, 우임금 당시의 공동체 사회를 모델로 설정된 사상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이 주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묵가는 실천을 강조하는 학파였으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제자백가 사상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두 대상간의 대비와 관계 형성을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에서의 사실, 주역의 음양, 노자의 무와 유, 장자의 생명과 기계, 묵자의 겸과 별, 한비의 탁(발을 본뜬 것)과 발이 그것이다. 두 대상의 대비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하게 되는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는 부작용이 생겨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가 원인과 결과로 작용하고,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의 조직이며,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영위되는 인격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꽃은 훨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하물며 열매는 더 먼 미래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씨앗과 꽃과 열매의 인연 속 어디쯤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고전의 아득한 미래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 인지도 모른다. 그 미래역시 아직은 꽃이 아니라고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2부에서 저자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계에 대해 자기의 경험을 중심으로 실천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왕따였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주변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리기 위해 자기의 생활방식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즉 고전을 읽으면서 깨우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는 단계인 발로 뛰기 시작 한 것이다.

교도소 내에서 축구선수도 하고, 도서대여 사업(?)도 하였으며, 간식으로 동료들에게 다가가기위해 떡신자(모든 종교 집회에 다 참가하는 사람) 노릇도 했다. 이렇게 그들과 어울리려고 무단히 애를 쓴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며 고전에서 얻은 지식을 생활에서 활용하는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다.

한편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는데, 사회에서 목수였다는 노인에게서 기술자의 독특한 사유체계를 보면서 충격을 받아, 자기의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된다. 예술은 사물이나 인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이것이 바로 나만의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젊은이들은 겉으로 들어나는 면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노인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사람만 보는 법이 없으며,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본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사람을 평가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저자는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 한다. 그래야 가슴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편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세울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콜럼버스처럼 한쪽을 깨서 생명을 해쳐가며 세우는 것이 과연 혁신적인 생각인가하는 문제도 제기한다. 여기서 평소에 저자의 생명존중 사상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은 입니다. 숙지성이 그 본질입니다. 오래되고 친숙한 것이 아름답습니다.”라고 아름다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표현한다. 한자의 아름다울 미()자는 양()+큰 것()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양이 커야 털과 가죽이 많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기도 많아 식량으로 충분히 쓸 수 있기 때문에, 양은 큰 것이 아름답다는 실용적인 견해를 나타낸 것이다.

저자는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性卽理)였습니다. 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천명(天命), 천성(天性), 천리(天理)가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실천이 진리를 담보한다는 주장입니다.(p.400)” 그러나 양명학의 핵심은 심즉리(心卽理)’입니다. “마음이 진리라는 것이며, 이것은 주체성의 선언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주자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천성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명학에서처럼 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에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여 현실에 맞는 실천으로 옮기려는 것에는 소홀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특권과 이권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권력을 잡기위해 작은 것에 제동을 걸고 시시비비를 일삼다 보니 국력은 고갈 되고, 백성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쓸데없이 큰소리만 치고, 자신들의 권력욕에 사로잡혀 여러 차례의 사화와 당쟁이 끊이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의 사고 틀에 갇혀서 생긴 문제였다.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면 좋았을 것인데, 시를 읽고 암송은 했어도 그 고정된 틀을 깨지 못하고, 문장의 자구와 고전의 전적을 찾아 설명하려는 훈고학에만 집착을 하다가 생긴 병폐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동양의 고전 공부를 훈고학적 위주로 접근하여 연구한 결과, 실천적인 학문을 천시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 왔었다. 이런 현상은 동양의 고전 공부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은 물론, 다리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소홀한데서 생긴 병폐라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동양의 고전 공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공부로 치부되어 더욱 등한시 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 인문학의 붐을 타고 새로운 시각에서 동양의 고전을 해석하고 실천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강연이 이루어져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다. 혹자는 동양 사상을 폄하 한다거나 잘못된 해석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학문이란 사람의 생활에 도움을 줄 때 존재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즘 동양고전의 재해석은 바람직하다고 생각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공감하고 실천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는 것으로 그치거나 공감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동양 고전 공부의 목적은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여, 점점 좁아져 가는 세계를 하나로 인식하고 서로 소통함으로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들의 행태가 자꾸만 머리에 떠올랐다. 정치가들은 특권의식을 갖고 제왕적 행태를 보이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또한 원칙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고위공무원들은 일벌백계를 주장하기도 한다. 원칙이 없이 집행되는 법은, 법이 아니라 법을 빙자한 권력의 폭력일 뿐이다. ‘유전무죄라는 자조적인 말이 국민들의 의식에 보편화된 현실에서 법치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도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 청렴도에서 우리는 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패 공화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200여년이 걸린 경제 발전을 우리나라는 50년의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으로 이뤄냈다. 이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관주도 정책이나 정경유착을 통한 뿌리 깊은 부정부패의 사슬이 만들어 졌다. 그 권력과 이권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정치인들의 통렬한 반성이 없는 한, 우리는 많은 문제를 가진 나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슬기로운 우리 국민들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하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훌륭히 민주주의의 꽃을 이 땅에서 피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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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논어를 읽다

양자오 저/김택규 역
유유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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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각도에서 논어를 읽고 해석해야 논어를 입체적으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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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자

양자오/김택규

유유/2015.6.24.

sanbaram

 

논어를 모르는 동북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북아에서 옛날부터 고전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책이 논어다. 그러나 너무 틀에 박힌 주입식 공부 방법에 의하여 정작 논어의 참 뜻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념을 단번에 깨게 만드는 책이 양자오의 <논어를 읽다>이다.

저자 양자오는 중화권의 대표적 인문학자다. 타이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언론, 출판, 교육 분야에서 다채롭게 활약했으며, 저서로는 <색소폰을 부는 혁명가>, <위대한 사랑>, <지식의 눈부신 황혼>, <나의 21세기> 등 다수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첫째, 논어를 읽을 때 자구에 억매이지 말고, 이 책을 엮은 그 제자들에게 주목하여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만 공자의 교육철학이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어>를 읽을 때는 반드시 공자의 제자들이 지닌 다양한 개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마우의 개성을 이해하면 공자가 그에게 한말의 의미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사마우에 관한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대조하면 공자와 그의 대화 속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p.123)

 

둘째로 공자는 왕족이나 귀족 중심의 교육을 일반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귀족을 위한 교육에서 귀족이 아닌 사람들로 교육의 대상을 확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자는 글쓰기 교육을 통해 귀족 교육을 완성하였다.

귀족 교육의 핵심인 글쓰기가 공자를 통해 확대되고 전파되어 그 결과, 중국 최초의 민간 저술이 탄생했습니다. <논어>이전의 다른 문자 기록은 모두 왕조의 봉건 귀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시경>, <서경>, <춘추>는 다 귀족 교육의 중요한 교재였기에 문자로 기록된 겁니다. (p.39)

제자들이 수시로 기록한 글이기 때문에 <논어>의 단어는 통일되고 일관된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군자/소인이나 이 글의 군자/야인의 대조는 서로 다른 문맥에서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군자야인이 전통적인 의미로 쓰여 주로 신분의 차이를 가리킵니다. 대부 이상의 인물은 군자라 불렀고 대부보다 신분이 낮은 인물은 야인이라 불렀지요. 때로는 야인대신 소인이라하기도 했습니다. ‘야인소인보다 더 오래된 용어로서 본래 국인과 짝을 이루었습니다. ‘이라는 글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키므로 국인은 곧 성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성을 둘러싼 주변 지역에 사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습니다.(p.51)

 

셋째로 공자의 교육은 춘추시대에 쓸모 있는 교육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는 제자들을 현실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4년 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제자를 군주들에게 천거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한 스승이 제자들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제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줄 군주를 찾았던 겁니다. 내일은 어떤 곳에 닿을지, 또 어떤 권세가의 후원으로 다음 끼니를 때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은 밤낮으로 위험천만한 생활을 함께 했습니다. (p.58)

 

넷째, 공자가 효와 인을 중시한 까닭은 춘추시대의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공자는 이상적인 사회로 주나라의 봉건 질서 회복을 꿈꾸고 있었다.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효와 인의 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은 본래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다가 춘추 시대에 이 글자는 어느새 추상화되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하는 원칙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소양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p.107)

 

끝으로 저자는 논어를 읽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하였다. <논어>를 추상적인 이치로 받아들여 암송하기보다는 <논어>를 통해 춘추시대의 특수한 상황, 공자라는 훌륭한 인물, 그리고 그가 시대의 격변 앞에서 내놓은 갖가지 주장과 함께, 그 주장들에 통합된 근본 신념들을 살피는 편이 낫다는 사실입니다.(p.187)이와 같이 공자의 사상과 논어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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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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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와 서양 고전 10편 우리나라 작품 2편을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맛갈라게 소개하면서 고전의 향기를 전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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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2010.2.5.

sanbaram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영화관 옆 철학카페>, <테칼로그>,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화를 철학과 신학으로 해석해 주는 등 인문학과 철학의 풍부한 재료를 맛깔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이번엔 문학 작품에 대한 기초지식부터 인문학을 넘나들며 철학의 멋과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펴냈다.

 

고전에 속하는 총 13편의 소설과 희곡들에 대해 독자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작품의 내용을 풀이한다.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괴테의 <파우스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11편의 서양 문학작품과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설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저자 나름의 철학과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해설로 이야기를 시작 하는 데, 우선 파우스트의 역사적 실존인물과 행적부터 신화로 쓰여지게 된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파우스트 내용의 소개를 “1부에서 보여준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 이야기는 질풍노도 운동을 일으켰던 당시 낭만주의 작가들이 좋아할 만한 사실적 가정극의 성격을 띠고 있지요. 하지만 2부는 시간적으로는 약 3000년을 망라하고 공간적으로는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환상세계, 지하세계와 지상세계 그리고 천상세계까지를 아우르며 전개되는 일종의 환상극입니다.(p.35)”와 같이 요약해서 말하며 여러 가지 죄를 지은 파우스트가 어떻게 돌연히 구제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고 언급한다.

섹스피어의 유명한 비극 오셀로를 해설하면서 사랑을 에로스와 아가페적인 사랑에 대한 설명, 질투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하면서 2005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권지예의 단편 <꽃게 무덤><오셀로>를 비교하여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여 질투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질투란 오셀로가 가졌던 진화심리학적 질투든, <꽃게무덤>에 나타난 존재론적 질투든 분명 일종의 신경증 증상입니다. 일종의 심리적 질환이라는 말이지요. 프롬의 관점에서는, 질투는 사랑의 다른 얼굴이 아니라 소유욕의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p.114)” 결국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고정된 공간에서 시간이 반복됨을 보여줌으로 해서 변화 없는 시공간을 창조한 것을 설명하며 시공간의 무의미성을 이야기 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시간은 반복되고 공간은 고정되어 있지요. 여기에서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자체가 부조리인 것이죠.(p.170)” 이와 같이 말하면서 부조리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베케트는 또 하나의 성격 없는 인물을 창조했다고 이야기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설명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은 단순히 잊어버린 시간이 아닌 자기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주체를 나타낸다는 설명을 한다. “‘무의지적 기억이 강렬한 쾌감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잊었던 기억들을 떠올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회상이 단순히 잊었던 기억, 곧 망각을 회복시켜주기만 한다면, 이 작품의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아니라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었겠지요.(p.322)”이와 같이 저자는 작자의 의도를 독자가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철학이나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다.

 

13편의 고전문학작품을 설명하면서 그 책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사상, 성장배경 등을 친절히 설명하여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고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문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기초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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