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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미션 파서블!! 코드네임 시골아낙!! 하하핫 | 책과 나의 이야기 2018-09-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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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미션 완수했어요, 아!!! 이 첫경험 너무 좋네요~

 

제대로 된 서평에는 결국 실패했지만 도전은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의 독서 인생이 계속 핑계에 불과할 지라도 더 읽고 더 잘 써보려는 노력을 통해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착각하렵니다

 

끊임 없는 댓글로 쉼 없이 함께 해주신 블친님들께 감사와 하트를 날립니다

 

1. http://blog.yes24.com/document/10718480  헤밍웨이 * 백민석 에세이

2. http://blog.yes24.com/document/10706935  Lo-Fi * 강성은 시집

3. http://blog.yes24.com/document/10706844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시집

4. http://blog.yes24.com/document/10699546  그녀, 아델 * 레일라 슬리마니 소설

5. http://blog.yes24.com/document/10698203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유계영 시집

6. http://blog.yes24.com/document/10693304  여름, 스피드 * 김봉곤 소설집

7. http://blog.yes24.com/document/10688498  소년시절 * J.M. 쿳시 소설

8. http://blog.yes24.com/document/10675127  휘트니 * 휘트니 휴스턴 다큐멘터리 영화

9. http://blog.yes24.com/document/10663971  슌킨 이야기 * 다니자키 준이치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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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백민석(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 백민석 에세이 | 2018-09-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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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헤밍웨이

백민석 저
arte(아르테) | 2018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작가 헤밍웨이의 자취를 따라 걷는 백민석의 발걸음, 드라마틱, 초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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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백민석 작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다. 왜 그의 소설을 읽었는 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처음 그를 접한 것은 '장원의 심부름꾼'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야기와 불쌍한 유년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한동안 깊이 빠져 예전 소설을 거꾸로 읽어나가다가 최근작 '공포의 세기'까지 읽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그를 발견한 것이고, 그에 대한 소개글은 이렇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써나가며 1990년대를 풍미했었는데 2003년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다 10년간의 긴 침묵을 끝내고 독자곁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혀끝의 남자"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이 있다.

그가 집필한 책 중 "리플릿"은 미술작품, 미술관련 전시에 대한 감상을 일간지 등에 연재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미술에 대해 그렇게나 전문적인 안목을 발휘하여 정밀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그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백민석이 항해한 헤밍웨이의 세계는 과연 어땠을까? 한사람이 생을 살아냈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넓고 깊고 다양한 그의 삶, 어떻게 그는 그 많은 글을 쓰고,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사고를 당하고, 그 많은 병을 앓고, 그 많은 여행과 이사를 다니고, 그 많은 연애를 하고, 그 많은 전장을 쫓아다닐 수 있었을까.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 하루, 일 년은 내게 주어진 것과 다른 길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한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다. 지난 3년간 헤밍웨이를 쫓아다니고 읽고 쓰면서, 비로소 그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과 비참을 모두 겪은 초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헤밍웨이는 무려 4대륙 20여개의 나라에 흔적을 남겼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팜플로나가 배경이고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배경이고 마조레 호숫가의 호텔에서 쓰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의 전장이 배경이고 쿠바의 아바나에서 주로 쓰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가 배경이고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가 배경이다.

 

백민석은 그중에서도 네나라, 여섯도시를 중심으로 그를 탐험했다. 헤밍웨이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첫 번째 도시인 프랑스 파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다쳐서 머물렀던 이탈리아 밀라노와 베네치아,(헤밍웨이는 10대 후반 1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 전선에 참가해 구급차를 운전했다. 그는 다리와 발에 237개가 넘는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당했고 이 참전 경험이 평생 정신적.육체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동시에 창작의 동력으로 쓰였다).  헤밍웨이가 한때 매년 놀러갔던 축제로 유명한 스페인 팜플로나와 마드리드, '명예 쿠바인'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했던 도시, 쿠바 아바나이다.

 

1차 대전에 참전한 후 미국에 돌아간 그는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을 하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첫아들을 얻었으며 첫 소설을 출간했다. (그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지만 그의 삶에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피츠제랄드, 피카소, 달리 등과 교우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예술가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토론하는 예술가의 삶,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헤밍웨이는 의식 한편에  추방당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 코즈모폴리턴적 특성이 두드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도시에서의 헤밍웨이를 보시려면 책을 읽으시기를(실은 백민석이 낱낱이 밝힌 헤밍웨이의 삶의 궤적을 도저히 요약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백민석은 헤밍웨이의 고유의 소설미학을  하드보일드 스타일, 입말체 대화법, 빙산의 이론(감정과 스토리라인의 절제), 남근중심주의로 요약한다. 그의 미학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 그의 삶과 경험과 행동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기에 현재까지도 하드보일드 소설,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민석을 쭈욱 읽으면서 최근작에 이르러서는 조금 실망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항해한 헤밍웨이는 그가 여전히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쓴 프롤로그만 따로 떼어서 어디에든 자랑하고 싶다. 작가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적이고 간결한 최고의 명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사이즈의 삶을 산 헤밍웨이를 무려 3년여에 걸쳐 집념을 다해 추적한 그의 기록!!! 클래식 클라우드의 끝장판이다!!! 강추, 적극추천, 보시라 읽으시라 느끼시라~

 

백민석은 집필을 마치며 "헤밍웨이의 죽음이 어땠든 문화적 의미에서 그의 문학은 파멸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다. "백민석의 문학은 문화적 의미에서 파멸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다" 라고, 그가 나의 말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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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 서평단 신청 2018-09-2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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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 더불어 책 현암사 블로그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여성에게는 실패한 제도, 민주주의.

오늘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여성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라면서, 여성의 자리는 얼마나 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당시 “초기 내각은 여성 장관 30%로 시작하고,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당선 후 공약을 지켜 전체 장관급 고위 공직자의 30%를 여성으로 채웠다. 이와 같은 공약이 등장한 것은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우리나라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지역구 10.3%)로 193개국 중 116위에 불과하다. 스웨덴(43.6%), 노르웨이(39.6%), 네덜란드(38%), 독일(37%) 등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르완다(48.8%) 보다도 낮다. 성적 불평등의 문제가 정치영역에서부터 해소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안정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언제까지나 반쪽짜리 민주주의에 머물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스톡홀름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온 학자 드루드 달레룹은 전 세계를 돌며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자문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여성들을 저버렸는지, 그리고 이 실패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여성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제도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대통령이 여성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여성 국회의원의 수가 늘어난다고 정치적으로 남녀가 평등해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에는 여성 공직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넘쳐난다. 정말로 그들이 비난받을 만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여자이기 때문일까? 사실 우리나라보다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이 훨씬 높은 다른 국가들에서조차 여성들을 막아서는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로 인해 여성들의 권한이 약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1893년 전 세계에서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한 이래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성은 여전히 정치계의 소수자이다. 전 세계 국회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수는 전체의 4분의 1도 채 안 된다. 성별 간 불평등을 근절하는 것을 중요한 정치 안건으로 삼는 국가도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한 제도가 맞다. 그 증거를 들면,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은 남성이다. 세계 정상회담에서 흔히 찍는 단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단순히 인구 비율로만 보면 여성과 남성의 숫자는 거의 비슷한데, 왜 아직도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낮을까? 그리고 정치적 결정을 하면서 여성의 의사가 완전히 반영되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여성을 따돌렸다!


오랫동안 단지 성별이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은 정치에서 배제당해 왔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국민의 참여이다. 그러나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조건은 남성의 참정권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여겨져 왔다.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투표하고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데도 그걸 과연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학자들은 어떤 국가가 민주 국가인가 판단할 때 인종과 계급에 상관없이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보통 선거권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정작 그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이야기 할 때는 보통 선거가 시작된 시기를 따지지 않는다. 프랑스가 민주 국가가 된 건 19세기 중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후인 1944년이라고 해야 할까? 의회 민주주의의 요람이라 불리는 영국은 1918년부터 민주 국가였다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나이에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1928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힘겹게 참정권을 얻은 후에도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여성을 실망시켰다.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 도전장을 던지다 

남성들은 여성을 정치판의 침략자로 여겼다.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보다 여성들의 의회 입성에 대한 저항이 훨씬 더 맹렬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이었던 낸시 애스터 자작부인은 어느 날 윈스턴 처칠을 만난 자리에서 남성 의원들이 자신에게 전혀 말을 걸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처칠은 오히려 여성들이 남성들의 공간을 침략했다고 몰아세웠다.


“윈스턴 처칠이 한 번은 내게 ‘우리는 당신을 몰아내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당신이 하원에 들어왔을 때 마치 내 욕실에 여자가 하나 들어왔는데, 목욕 스펀지 말고는 나 자신을 가릴 게 아무 것도 없는 기분이었다’라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는 문화적 관성, 혹은 정치 제도의 ‘고착성’을 보여준다. 남성의 정계 장악은 그저 수적 우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권자들이 투표소로 들어갈 때 후보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리고 예비 선거 제도가 없는 이상, 일반 투표자들은 어떻게 이 후보들이 선발되었는지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정치학에는 ‘정치의 비밀 정원’이라는 말이 있다. 선거 후보를 선발하고 지명하는 과정이 마치 비밀 정원처럼 은밀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에 여성이 왜 필요할까?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해왔다. 그런 만큼,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여성과 남성이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정치계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론, 정책 결정에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하면 그 균형성이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 여성과 남성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론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모든 인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낭비이며, 여성들을 포용하면 분명 더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도 별개의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서 당연히 남성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론을 「정의론」이라고 한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치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문제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의석수도 절반을 얻어야 한다!



여성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출마하려는 사람도 적다고?

정당들은 흔히 여성 의원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적임자를 찾기 힘들어서라는 핑계를 대곤 한다. 실제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남성 당원이 여성보다 많으며 공직에 출마할 뜻이 있는 사람도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불공정한 후보 선정과, 수요와 공급 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무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정당 권력자들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권력자들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기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찾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당은 정부의 많은 임명직과 선출직을 결정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어떤 정당은 공식화된 절차에 따라 후보 지명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어떤 정당들은 소수의 지도자들이 비밀 회동으로 후보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후보 선정에 인맥이 주요 변수가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이나 소수자, 이민자처럼 정치 대표성이 낮은 집단들이 불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선거 여성 할당제이다. 할당제는 여성들에게 정치 입문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할당제 덕분에 능력 있는 여성들이 출마를 고려하게 되었다.



할당제로 선출되는 것은 민주적으로 정당한가?

할당제란 무엇일까? 선거 여성 할당제는 일정 비율의 여성이 후보로 지명되거나 선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이다. 오늘날 정치판에서 여성 할당제는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여성 할당제가 왜 이리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걸까?


할당제 반대자들은 여성 할당제가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들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할당제 지지자들은 지금까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저조했던 것은 민주주의, 아니 사실상 모든 정치 체제가 계속 여성들을 따돌리고 있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좀 더 효과적이면서도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 국가들에서 선거 여성 할당제가 시행되고 있다. 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 국가들에 선거 여성 할당제가 빠른 속도로 퍼질 거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할당제의 찬반을 두고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선거 여성 할당제라는 제도는 남성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에서 통과되어 실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남성 의원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 할당제를 채택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선거 여성 할당제는 실력 우선주의와 경쟁을 통한 선거 원칙을 침해하는 제도일까, 아니면 민주화 과정에 기여하는 제도일까? 무엇보다 과연 선거 여성 할당제란 제도가 효과가 있긴 한 걸까?



여성 정치인이 처한 딜레마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자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이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여성 정치인들은 선거구 대변자로서의 의무, 그리고 당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 외에도 여성 정치인이기에 여성 단체 등으로부터 받는 요구 사이에서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여성 정치인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여성 정치인들이 성평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실 모든 여성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며, 모든 페미니스트가 여성인 것도 아니다. 


각종 국제 선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연구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여성의 최소 비율은 30∼33%라고 한다. 그런데 단순히 여성의 숫자만 늘린다고 과연 변화가 일어날까? 이 이론은 원래는 여성 정치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여성 정치인들이 선출 후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맞서 스스로를 변호할 때 주로 사용된다. 물론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여성 정치인이 정치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 하는 점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 정치인이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는 상관없이 말이다.



유리 천장과 유리 절벽

전 세계의 정치 지도부에서 성평등이 실현되려면 한참 멀었다.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국회 수장은 여전히 남성이다. 그러나 정부 관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위원회 위원장과 당대표를 맡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 국회의장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53명 이상의 여성들이 국회의장으로 활약 중이다.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는 여성이 정치계든 실업계든 학계든 정상에 올라가기 직전 마주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한 은유로 흔히 사용된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유리 천장을 힘겹게 깬 여성들이 훨씬 더 심각한 ‘유리 절벽’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여성이 중요한 직책에 임명되는 시점이 주로 기업이나 정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위기 후에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가?


현재 여성들이 정치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통주의자들은 여성들을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여성들은 수많은 문화적 장벽들을 극복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여성 할당제 같은 정책을 통해 전통적 민주 국가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세계 정치와 여성

지역적 또는 세계적 차원에서 권위 있는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 기관에 비해서 세계 정치 체제에서 성차별이 더 심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확실히 그렇다’이다. 아직까지는 단일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결정보다 국제 정치계에서 확실히 성비의 불균형이 심하기는 하지만 세계 통치 기관들은 여성 권리 옹호자들과 초국가적 여성 운동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어쨌든, 세계 통치는 지구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세계가 하나의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유엔을 비롯한 세계 통치 기관들을 개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다국적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소수의 세계 지도자들이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보다는 세계 통치가 분명히 낫다. 최근 세계 리더십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 후자의 시나리오가 좀 더 우세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우리는 여전히 성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정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유엔은 2030년까지 ‘정치·경제·공적 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참여 및 평등한 기회 보장’을 목표로 삼았다. 과연 이를 달성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는 너무 의욕만 앞세운 목표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안티 페미니스트와 여성 권리 옹호자 사이에 점점 더 많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여성 세력화와 성평등의 진전은 미리 완성된 시나리오를 따르기보다는 각양각색의 요인들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여성 운동은 고된 노력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성공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이 책은 어떻게 민주주의가 처음부터 여성을 저버렸는지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그 체제가 탄생하면서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의 의견과 목소리를 전부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남성들이 정치계를 장악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통해 보더라도 국회와 정치 지도부에서의 여성 과소 대표성, 장관직의 수평적 성별 구분, 남성 중심적 규범 및 관례, 정치인들의 성 차별적 인식, 그리고 선거 운동이나 거의 모든 정치 플랫폼에서 우선시되거나 부각된 적이 없는 성평등 쟁점에 대한 관심 부족 등등 정치계는 여전히 남성에게 주도되고 있다. 정치는 여전히 여성을 저버리고 있지만, 동시에 지난 20년 동안 명백한 진전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현재 여성들은 분명히 정치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주의자들은 여성들을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여성들은 수많은 문화적 장벽들을 극복했다. 물론 성별 할당제가 여성들의 부족한 선거 자금이나 선거 운동 중 당하는 위협까지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여성 대표성은 ‘민주주의’와 ‘현대성’의 상징이 되었으며 여성 권리 옹호자들은 이를 운동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올바른 정치제도라면, 남녀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공평하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서야 비로소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실패하지 않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벤트 도서 :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이벤트 기간 : ~ 2018년 9월 27일 / 당첨자 발표 : 2018년 9월 28일 / * 모집인원 :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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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 강성은 시집 | 2018-09-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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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Lo-fi

강성은 저
문학과지성사 | 2018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저음질로 나에게 말을 거는 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나에게 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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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을 알지 못했다. 블친이신 돼쥐보스님께서 쓴 이 시집에 대한 리뷰가 너무 좋아서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시집은 진즉 도착했는데 손이 가지 않다 다른 책에 대한 리뷰를 써야 되는, 의무이행을 해야 되는, 지금! 이 책에 손이 갔다. 의무감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책을 읽게 하는 이 현상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다.

 

시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의 리뷰, 평론가의 해설 등 도움을 얻어 읽게 되면 안개낀 장막이 걷혀지고 새로운 느낌이 찾아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나는 모르는 시집도 좋아한다. 물론 모르는 채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하는 상태에만 놓여 있게 하는 시집도 있다. 그래도 나는 시가 좋고 시집이 좋다.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현저하게 낮은 나지만 시에 대한 탐험에 조금은 부지런하다. 시 읽기를 계속 하도록 나를 채찍질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를 쓰고 말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의 반영일 것이다. 시를 많이 읽으면 그 상상력 문장력 등이 내게 오지 않을 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마음의 반영, 이처럼 나의 생각은 허황하지만 시를 만나면 무턱대고 또 좋다.

 

이 시집 제목 Lo-fi는 저음질을 뜻하는 음향용어이다. 시집 제목처럼 그의 시들은 죄다 저음질이다. 어떤 현상을 말하다가 다른 차원으로 자주 점핑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미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식간이다. 읽는 사람이 그것을 쫓아가던지 낙오되던지에 대해서는 관심밖이다.

 

그렇지만 간혹 시의 문장 몇개가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그 순간 외롭게 놓여진 가여운 이에게 손을 내밀고 싶게 한다. 시 속에 나오는 아이는 시인일까 아니면 그가 아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누구일까? 예민하고 공감받지 못한 외로운 아이의 뒤 늦은 고백을 나라도 공감해야겠기에 시를 다시 또 읽는다. 또박 또박!

 

-Ghost-

 

나는 식판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는 아이였다

식은 밥과 국을 들고 서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문득 오리너구리는 어쩌다 오리너구리가 된 걸까

오리도 너구리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긴 복도를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아무도 없고

햇볕만 가득한 삼월

 

 

-거울-

 

한 아이가 골목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후렴구만 계속 부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

아무도 본 적 없는 골목

겨울의 환한 빛과

여름의 서늘한 이끼와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고여 있다

이따금 옆집 새와 고양이가 따라 부른다

아이를 찾던 사람이 홀린 듯 걸어 들어와 울다 지쳐 잠든다

고요한 물결에 휩쓸려 거울 밖으로 밀려난다

한없이 맑은 날

골목의 담이 모두 허물어지고

아이는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제 아무도 울지 않는다

거울 속은 텅 비어 있다

 

 

-섣달그믐-

 

고양이가 책상위에 잠들어 있다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나는 따뜻한 음식을 만들기로 한다

손에 든 감자 가루를 놓치자

작은 감자알이 끝도 없이 굴러 나온다

쏟아지는 감자를

어찌할 수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라디오가 저절로 켜지고

어제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와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

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은데

집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고양이가 너무 오래 잔다

 

 

-죄와 벌-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나는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쌀을 씻고 두부를 썰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섣달그뭄은 시집의 첫번째 시이고 '죄와 벌'은 마지막 시이다. '죄와 벌'에 대한 장은정 평론가의 좋은 해석이 있어 덧붙인다.

 

'이 시가 시집을 닫는 마지막 시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좋은 사람"의 자리에 "좋은 시"라고 바꿔 써 넣을 때, 이것은 온전히 읽는 자들의 시가 되기 때문이다. 좋은 시들이 몰려와 우리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우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좋은 시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식사를 차리고, 약속을 잡고,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이 시집을 읽기 전과 다름없이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시간 사이마다 견디기 어려운 평화가 끼어들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면, 시에서만 가능하던 '지금'이 살아가는 '지금'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물론 그것은 시를 읽은 자들이 겪어야 할 죄와 벌이겠으나, 그때에야 가능한 당신의 삶이란 무엇일까. 이제 당신에게 들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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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시인 | 2018-09-2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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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대흠 저
창비 | 2018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시, 애달픈 첫사랑에 눈물 짓게 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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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이 오랜만에(8년만이라고 한다) 시집을 냈다. 이대흠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토속적인 정서를 서정적으로 노래한다. 그는 나의 고향의 언어로 말하고 쓰고 노래한다. 몇십년동안 귀에 익었던 사투리로 한참 전에 잃어버린 그 마음을 표현한다.

 

울적하고 허전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꼭 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을 찾기 힘들 때 나는 그의 시집 '귀가 서럽다'를 펼치곤 했다. 거기에 나온 시들이 나의 고향을 정서를 소환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너무 좋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안에서 그런 정서는 생기지 않는다.

 

그는 장흥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타지를 떠돌다 다시 장흥으로 돌아왔다. 난 시골에서 나고 자랐긴 하지만 어린 시절 기억이 희미하다. 모든 것이 어렴풋이 기억될 뿐 명확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시인의 기억은 유별나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 동네사람들, 유년 곳곳의 모든 사람들을 소환한다. 그는 기억을 각인해놓고 언제든 그 곳을 다시 소환하고 사람과 감정을 불러와 그때의 그사람들을 되살려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시인이 되나 보다. 그러니 나는 애시당초 시인이 되긴 틀렸다.

 

그는 주술사에 가까워진 사람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어렴풋한 기억이 다시 선명해지고, 그 마음을 심장에 갖다 대면 다시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일렁이고, 나의 닫힌 눈물샘을 열어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이 그의 시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수 도 있겠지만 그는 유년시절을 그리워할뿐 아니라 지금의 소박한 풍경과 애달픈 사랑까지 노래하는 시인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의 시집을 펼치시기를!  그의 마음에 풍덩 빠져보시기를!! 한때나마 근심 걱정 모두 잊고 온전히 시에 집중해보시기를!!!

 

-장흥-

 

장흥에서 조금 살다보면 누구든지

장흥사람들이 장흥을

자응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다

 

하지만 자응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장흥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흥 사는 사람과

자응 사람은 다르다

 

자응 장에 가서

칠거리 본전통이나 지전머리를

바지 자락으로 쓸어본 사람이라야 겨우

물짠 자응 사람이 된다

 

독실보건 백룡쏘건

예양강에 붙은 어느 또랑에서라도

뫼욕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자응에 간이 배고

자응으로 척척해진 사람이랄 수 있다

 

자응에 아조 뿌리를 내리면

장서 나서

장서 자라고

장가 있는 장고나

장여고를 나온 토백이가 된다

 

장흥에서 자응으로 가는 데는

십년이 족히 걸리고

자응에서 또 자앙, 장으로 가는 데는

다시 몇십년이 걸린다

 

거기다가

'자응가'라는 말이

'장흥에'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데다

비포장도로라서

어지간한 사람은

돈밧재를 넘기도 전에

힘이 파하고 만다

 

 

-물은 왜 너에게서 나에게로 흘러오나-

 

 그녀는 내게 손목을 주었을 뿐인데 내 손바닥에 강이 생

겼다 어린 그녀의 손금 같은 강이 흐르고 강가의 돌멩이처

럼 작아진 나는 굳어버린 귀로 물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손

금의 강에 스며든 말은 얼마나 많은 모래 알갱이가 되었을

까 희미하게 그녀가 모래알처럼 웃을 때 나는 모래알 같은

그녀의 웃음에 조금씩 부서져내렸다 그녀의 손목이 모래

톱 같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내일은 모래가 되고 오지 않

을 손목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던 나는 울며 졸이며 굳어가

는 조청 같은 나의 생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여린 손목

하나를 강으로 놓아두었다

 

 

-칠량에서 만난 옹구쟁이-

 

 요새는 유약이라고 허제 요런조런 색깔을 이삐게도 내

싸제 시체에 화장빨 세우는 격이여 기둥 썩은 집에 뼁끼

칠한 식이제

 

 옹구쟁이 잿물은 딴 거 없어 솔가리 태운 재는 솔가리

태운 재대로 짚가리 태운 재는 짚가리 태운 재대로 뻣신

억새 태운 재는 또 그것대로 색깔이 적저금 달부제이잉 옹

구쟁이라 하면 설익은 잿물은 안 쓰는 벱이여 얼렁뚱땅 만

든 잿물은 겉만 빤지르한 것잉께 잿물이라먼 그래도 한 삼

년은 푹 삭어사써 그런 잿물로 그륵을 궈사 색에 뿌리가

생기제

 

 사람도 그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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