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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울리는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 | 자연과학 2007-08-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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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저/강수정 역
김영사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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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문구처럼 “인도를 넘어 세계인의 가슴을”울리는 희망의 이야기이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달리트’라 표현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은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의 상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같이 호흡하는 것도 모든 사물에 손이 닿는 것조차 금지된 인간들, 아니 인간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아니다. 가축보다도 못한 삶이 그들의 출생과 죽음의 세월인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침은 땅위에 뱉어내지 못하는 그래서 목에 침받이 통을 매달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 지체 높은 (브라만, 크샤트리아)자들의 죽은 시체조차 만질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 시체를 치워야 사람들이기도 했다.

힌두교의 성전이라는 ‘리그베다’가 구분지어 놓은 카스트제도의 어처구니없는 인간모멸의 저항에 대해 지은이인 ‘나렌드라 박사’는 아버지 ‘다무’의 이야기로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최초의 도전을 보여준다.

마을의 지체 높은 가문의 자살한 여성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 온다. 다무는 하루 종일 굶었다. 그러나 일개 바이샤(평민)계급인 순경의 욕설과 구타와 윽박지름에 밤새 시체를 지켜야만 한다. 경찰서장의 시체를 건져 올리라는 지시에 다무는 불가촉천민이 어찌 지체높은 가문의 여성에 손을 댈 수 있느냐고 거절한다. 그리곤 막무가내의 구타를 당한다. 시체를 건져 올려도 마을에 돌아오면 불가촉천민이 높은지위의 가문사람에 손을 댔다고 혼줄이 날것이 당연했다. 이 사건은 같은 처지의 달리트들에게도 원성을 듣는다.

달리트의 삶은 이러했다. 그들의 자유를 향하는 길은 긴 고통을 수반했다. 1950년대가 되어서야 달리트들의 목에서 침받이통은 떼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발을 신고 다닐 수 는 없었다. 지은이의 아버지 ‘다무’(애칭 ‘다다’)의 용기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오늘날 인도 최고의 대학중 하나인 ‘푸네대학’총장으로 지은이(애칭: 두르바 또는 바이,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를 길러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린 인도의 영국 식민지배 시절의 ‘간디’의 카스트제도에 대한 정치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보장에 일생을 마쳤던 ‘암베드카르 박사’(인도 독립후 초대 범무장관등 역임)와의 대립각을 세웠다는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던 ‘마하트마 간디’가 아니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카스트제도의 수성을 고집했으며, 불가촉천민의 자유와 국민의 권리 부여에 냉담했다. 우리가 아는 성인(聖人)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왜곡되고 변형되었는지, 인간의 추악한 권력욕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한다.

막내인 지은이와 아버지 ‘다다’(지은이가 아버지를 다무를 부르는 호칭)와의 친밀감은 유독 강했던 모양이다. 늙은 아버지와 막내아들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다다의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은 유쾌한 에피소드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차비를 절약하여 군것질을 하려던 지은이의 거짓말은 아버지로부터 커다란 웃음과 ‘최고의 사기꾼’이란 별명, 그리고 삶의 끈적한 교훈을 얻게 된다.

거짓말을 해도 최고의 거짓말꾼이 되라! 공부를 해도 최고인 1등이어야 한다. 도둑놈이 되도 최고의 도둑놈이 되라! 배우지는 못했으나 삶의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투박한 그의 열망이 지은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훗날 다다는 병석에서 미국에서 급히 돌아온 지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박사가 되어서 무얼 할거냐? 돌아와서 다시 인도중앙은행 고위관리가 되는 것은 달리트들의 권리신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지 않느냐? 정치를 해라! 암베드카르 박사처럼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그 배운 학식을 베풀어라! 지은이는 아버지에 저항한다. “정치하는 자들은 모조리 사기꾼, 도둑놈들이에요! 그런 자들이나 설쳐대는 곳이 정치판이라구요!”

아버지 다다는 그때 나렌드라 박사에게 미소지으며 “그럼 너에게 딱 맞는 것 아니냐? 너는 천하 최고의 사기꾼 아니냐?”라고....

무식하고 천대받던 불가촉천민 다다의 인생 전반에 걸친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와 희망에 대한 멸망은 그의 자식들의 처지를 세계최고의 지성인들로 키워냈다. 그의 아내 소누(애칭 : 소니)의 헌신적이고 소박한 내조는 눈시울이 뜨겁게 하기도 한다. 지은이가 의지하며 바라보았던 그의 부모님 ‘다무와 소누’의 온화함, 그리고 삶에 대한 열성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책의 말미에 부록처럼 덧댄 글에는 지은이의 딸 ‘아푸르바 자다브’의 21세기 인도에서의 자신의 지위와 가치관에 대한 관계의 상념이 실려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3학년인 20세의 발랄한 아가씨, 글로벌세계에서 어느 누구도 인도의 카스트계급을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인도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호칭앞에 ‘달리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인도 인구의 육분의일인 1억6천만명이 불가촉천민이란다. 아직도 그 황당한 계급제도의 굴레 아래에서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신음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에게, 아니 우리에게도 새롭게 다가온 사회양극화의 그늘에서 여전히 인간 보편의 권리확보에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다. 희망을 가져야한다. 찾는 자에게, 노력하는 자에게 멋진 삶의 세계가 선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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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문학의 진수-삶의 해학이 은은한 미소로... | 소설,시 2007-08-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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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류헝 저/홍순도 역
비채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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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도시 노동자의 일상과 삶의 철학이 위트와 유머로 버무려져 있다. 우리의 주인공 장따민(張大民)의 고통을 느끼는 방식 또한 그 자체가 해학이다. 그래서 그는 행복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보온병공장 보일러공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대신해 노모와 다섯남매의 생활을 꾸려가는 가장이다. 작달막한 키에 볼품없는 모양새, 그러나 그는 수다스럽다. 뱉어내는 그의 뜻 없어 보이는 말들은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를 표현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미소를 선사하는 행복전파이다.

 

따민(大民)에서 얼민(二民), 싼민(三民), 쓰민(四民), 우민(五民) 이렇게 다섯남매와 따민의 아내 리윈팡, 노모 7명의 성인이 총 16.5평방미터(5평 남짓)의 방2개짜리 집에 닥지닥지 메달려 살고 있다.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싼민이 아내를 맞이하겠단다. 신방을 마련해달라고 막무가내인 그들의 기지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베니다 합판을 경계로 나란히 한방에 기거하는 이들 형제부부의 동거가 그려지는가? 싼민의 처가 밤마다 질러대는 교성은 따민을 철저하게 처절하게 내몬다. 석류나무가 침대 중앙부에서 천장을 뚫고 하늘로 뻗어있는 옹색한 따민내외의 방을 상상해보라!

고집스런 여동생 얼민의 출가, 우유부단과 탐욕스런 남동생 싼민의 분가, 조용하고 고독해보이는 간호사인 여동생 쓰민, 형제들의 도움으로 대학공부를 마치고 관료가 된 우민의 배은망덕한 교만과 영악스러움이 인간들의 고독과 악취를 드러내기도 한다.

 

배운것, 가진것 없지만 순박하고 가족애를 소중히 하는 가장 장따민, 그러나 찢어지게 곤궁한 그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공장 페인트공의 월급은 끼니를 맞추기에도 버겁다.... 그래서 장따민은 불행할까? 그는 자신보다 똑똑하다고 믿는 아들 장샤오수(張小樹)를 두었고 남편의 고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줄줄 아는 아내 윈팡이 있다. 그는 행복하다....

이 작품집은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을 포함하여 작가 유헝(劉恒)의 두편의 중편과 한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다. 단편 “빌어먹을 식량”은 산골마을 소작농 양텐관이 곡식 200근으로 사온 아내 싱화(杏花)와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이야기이다. 커다란 혹이 달린 여자 싱화의 그악스러운 생활력에도 가족의 생계는 아득하기만 하다. 없는 살림에 왠 자식농사는 그렇게도 잘되는 것인지, 우리 부모님네들의 많은 형제들이 그닥 없이 떠오른다. 곡식 배급표를 잃어버린 싱화의 변명없는 죽음은 어두운 삶의 저편을 시리게 시사한다.

 

또하나의 중편 “푸시 푸시”는 국두(菊豆: 쥐더우)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방에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로 수차례 소개된바 있다. 새삼스레 줄거리를 늘어놓지는 않겠다. 다만 영화와 소설에서 52세의 탐욕스런 양진산의 직업이 다를 뿐이다.(소설-中上農, 영화-염색공장주)그러나 영화처럼 검붉은 어둠과 눅눅한 습기가 전편에 흐르는 듯하다. 200무의 토지에 팔려온 20세의 아름다운 여색 ‘쥐더우(菊豆)’와 50세의 욕망에 찌든 남편 양진산, 16세의 청년인 남편조카 양텐칭의 기구하고 구슬픈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재미와 50~60년대 중국의 농촌생활상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에게 중국문학의 친근함을 가져다줄 명작의 대열에 놓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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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현대인의 자아이중성 해부... | 소설,시 2007-08-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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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아니 정제된 문장에서 젊은 작가의 고된 노력이 묻어난다. 그리고 우리 현대인들의 자의식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에 그 흡입력은 대단하다. 아홉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전편에 흐르는 그 치부의 모욕감이 나, 범부의 찌든 심장을 그냥 퍼렇게 멍 들인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이 A동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럭키의 죽음]에서

작품 속에서 난 어쩌지 못하는 내 인생길을 본 듯하다. 좌절과 무력감 말이다. 비루하고 곤궁한 일상에의 부적응과 갈등, 그래서 삶은 방황과 회의가 주도하고 고작 벗어던지고 떠나보아야 다름 아닌 누추한 그리고 궁색한 일상이다.

이러한 침울한 삶의 무력감과 우유부단한 대중들의 고뇌, 그리고 먼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뿜어내는 우리네 인생의 쳇바퀴는 급기야 이렇게 외쳐댄다.

“돌아왔어, 씨발 돌아왔어”하고 처량하게 읊조리는 말만을 들을 수 있었다.“ [위안]에서

이 단편집의 각 작품들이 주인공은 바로 지극히 평범하거나 그렇지도 못한 나와 이웃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사람들이다. 삼류잡기기자, 학원강사, 제빵공장 작업자, 아파트경비, 실직자등 도시서민들이다. 작가는 “균형 잡히고, 긍정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없었다(럭키의 죽음 中)와 같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주어지는 여건에 종속되어 몸부림치다가 그냥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타인을 멸시하고, 또 무시하고, 그러나 그런 타인으로부터 사랑의 구원을 기다리며, 자존감은 높기까지한 이 기형적 현대인들의 모순을 심리의 밑바닥까지 헤집는다.

이렇듯 자기연민에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의 영악한 자기애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기도 한다. 마치 ‘억압된 기억’(프로이드를 염두에 둔 것 같음)이란 표현처럼 피동적인 상처와 억눌림이란 외부의 가해자(가해환경, 조건등등) 존재를 암시하고 자신의 몰염치나 이기심, 탐욕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젊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망쳐놓는가?]의 주인공 유내춘과 그의 부친 유봉길, 아들 유형규의 세대간 무지와 무관심을 빙자해 “ 이 땅위의 광기는 마치 유령처럼 번져있고 이 땅위의 그 어떤 세대도 그것을 피할 수 없어”라고 외친다. 또한, “윈도에 비친 두 사람은 분명 자신과 아들을 닮아 있었지만 현실과 분리된 어떤 세계 속에서...”와 같이 ‘자아의 이중성’ 즉, 자아(自我)와 객아(客我)를 분리해 모호성, 삶의 모순을 합리화하려는 증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모순 되고 왜곡된, 그리고 모호한 내면의 혼란을 시발점으로 하여 사회, 인간들의 불가피한 관계론적 허위성을 일갈한다. [인터뷰]에서의 좌파출신 정신사연구소 전학태소장의 천박한 속물근성과 ‘진보의 정신과 영혼’운운하는 그의 세치 혓 바닥 에서는 울컥하는 모멸감으로 탄성을 내지르게도 한다.

한편, [신년연하장]에서는 알량한 자부심과 자존심만이 남아있는 52세의 아파트 경비원 ‘진생’의 독백에서 “ 어째서 인간이 일을 처리하는데 인간을 거쳐야 하는 걸까?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낭비이자 비극이다.”라고 짓뭉개진 가슴을 움켜쥐고 자기연민으로 갈등한다. 경비원 자리를 마련해준 대학은사와 관리소장, 경비반장에게 보내려던 신년연하장은 이 지독한 자기에로 보내지지 않았으며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만다.

뛰어난 문장과 명쾌하고 직설적인 이야기로 젊은 작가가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심연을 마구 헤집어 놓고서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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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그것이 삶의 보편성... | 소설,시 2007-08-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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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실린나의 여러 작품에서 북유럽 끝자락인 ‘라플란드’의 눈덮인 숲과 산장이 등장한다. 바로 이곳은 삶의 찌든 때를 정화시켜주는 경이롭지만 순박한 자연과 자유로움의 성지이다. 제목인 ‘목매달린 여우의 숲’은 작가 특유의 해학이자 작품의 무대를 의미한다. 여우를 잡기위해 자작나무에 매단 60여개의 올가미에는 사람(人間)들이 대롱대롱 매달린다. 엽기라고? 그럼 공포 스릴런가? 아니다. 괴기스런 모양이겠지만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나오는 이유는 뭔지... 작가 파실린나의 작품은 여지없이 이러한 블랙유머가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크~하하하, 후후훗...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여운은 지속되는 미소로 오래오래 남는다.

이제 작품속으로 들어가 보자. 좀도둑질에 염증이 난 오이바, 공모하여 금덩어리를 손아귀에 넣자 공범자들과 나누기가 싫어진다. 사회의 악이자 쓰레기라고 동료들을 비하하고 자신만이 금을 제대로 보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터무니없는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리곤 그들을 피해 도피한 곳, 그 곳이 라플란드 숲속 산장이다. 여기에 알콜에 절어사는 핀란드 공병출신 보병대대장 레메스 소령의 현실로 부터의 불가피한 일탈은 두 아웃사이더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아웃사이더라는 표현은 내 생각일 뿐이다. 다른 독자는 달리 생각 할 수도 있겠다.) 교활한 도시의 도둑놈과 투박한 시골장교와의 이 부조화스런 만남이 만들어내는 일상이 갈등과 순화로 유쾌하게 그려진다. 금을 가진 도둑놈 오이바와 재화의 힘 앞에 복종하는 중년의 군인과의 동거는 초반 거짓과 의심, 위선으로 삐걱대지만 대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움은 이들의 감성과 이성의 교감을 일치시킨다. 한편, 90세의 사미족 여인 ‘나스카’의 양로원 강제이송은 그녀의 탈출로 이어지고 세상을 피해 모처럼의 삶의 행복을 늘려가는 오이바와 레메스에게는 느닷없는 불청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모두 ‘자유로움’을 찾아 모여든 곳 아닌가? 90세의 여자와 두 남자의 동거는 이내 조화로운 삶의 패턴을 일구어낸다.

자연스런 부(재화)의 나눔, 버려질뻔 한 외로운 노인의 삶에 잊혀졌던 사랑의 훈훈함이 찾아오고 사람간의 보편적 도리와 이해를 쌓아간다. 그리곤 초대하지 않은 이들이 이들의 평온한 삶속에 스쳐간다. 수렵감시 경찰관의 탐욕과 부조리, 창녀들과의 꿈같은 나날, 금괴 공모범인 살인자 ‘시라’와의 타협과 그의 우발적 사망들이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어떠한 자극도 없이 담담하게 일상처럼 흘러간다.

작가는 작품의 서언에서 ‘어디에 살든지 인간의 삶은 보편적’이다.라고 했다. 그리곤 평범한 일상이 우리 인간들의 최선이 아닌가 하고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그들은 도시와 그들의 직업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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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오늘 우리의 세계에서 최고의 '선' 아닌가? | 소설,시 2007-08-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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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투자가 막스귄터는 “당신이 부자가 되는 일에 신(神)은 무관심하다”라고 했던가? 실제 우리의 세계에서 돈은 신에 빌어도 요행수와도 관련이 없다. 노력하고 연구하고 그를 실행하는 자에게만 재화는 이동한다. 오늘의 세계는 그 윤리적, 철학적 의미야 어찌되었건 금융자본이 인류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해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돈을 벌어들이지 않은 부자”인 23세의 청년 ‘시라토 노리미치’의 마켓(주식시장 또는 광의의 금융자산 거래시장)에 본의 아닌 입문과 그 생리의 이해와 냉정한 머니의 세계에서의 성장기이다.

작품속에서 우리는 몇가지를 구분하여 읽어 낼 수 있다. 초반부에서는 주식차트를 그리고 그 파동의 모양을 해석하고 주가의 상승과 하락의 주기가 가지는 의미를 스터디하는 내용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주고 있다. 주식초보자들에게는 읽을 거리가 풍요롭다 느낄 수가 있다. 여느 주식투자의 초보 입문서를 사례 연구식으로 풀어 제친 것 같은 흥미를 준다.

중반부는 우리나라식의 표현을 빌리면 주식시장의 소위 ‘작전세력’이라 불리우는 이들의 치밀한 주가조작의 노고(?)와 그 엄청난 수익의 실현, 사회적 파장을 목격할 수 있다. 다만 작품은 재화의 축적에 온통 눈이 뒤집힌 은행과 보험회사와 소비자의 뒤엉킨 사기행각을 소재로 물질의 이면에 있는 탐욕을 소리치지 않고 보여주려 한다.

‘담보부 변액보험’이라는 웃지 못 할 금융상품이 정부와 법의 보호아래 소비자를 기만하는 내용은 우리의 사회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은행은 어떠한 투자도 없이 소비자의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하고 그 대출자금은 보험회사에 보험금으로 입금된다. 은행은 어떠한 위험요인도 없이 돈(수수료,이자)을 벌어들인다. 그리곤 부동산 가격하락이 있으면 바로 경매를 통하여 회수하면 끝이다. 돈은 보험회사와 은행만 번다. 소비자는 알거지가 되어버린다.)

소설의 재미는 막 시작된다. 소비자를 울린 은행에 대한 복수(?), 자본시장의 대국인 미국의 거대자본과 한 야심가의 이해가 일치한 목표회사 주가 대 폭락의 견인등 주인공이 내내 주장하는 마켓의 흥미진진한 분석과 투자의 재미가 쏠쏠하다.

끝으로 자본의 논리에 슬그머니 사라지는 법과 정의가 상실되는 사회, 거대 미국자본에 몸사리는 정부의 비도덕성, 그리곤 다시금 아무런 일 없었던 듯 평상으로 돌아가는 금융시장의 뻔뻔한 생리는 우리의 금융현실과 다르지 않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의 산물이라도 손아귀에 넣어진 재화는 오늘 물질우위의 기조위에서는 최고의 ‘선’임에 어떠한 이의도 의미가 없어진다. 주인공은 마켓으로 돌아간다. 미래의 세계는 더욱더 금융자본만이 정의라고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은유된 기업들의 명칭도 실제세계의 기업들을 상징하고 있어 1997~1998년도의 우리의 금융대란과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등 그 실상들과 어울려 읽는 이들의 재미를 돋구어 주는데 일조한다. 우리의 한동안 치솟던 주가의 행진이 요즘 주춤하고 있다. 거시적 안목을 잃지 말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이와 국내정치상황, 자본의 움직임과 그 이면의 의미를 헤아려야 할 것 같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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