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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변화역량을 진실되게 그려냈다... | 소설,시 2007-09-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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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 이정명의 개인사는 별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천년 후에, 해바라기, 바람의 화원등 우리의 역사 저 뒤편에 숨겨진 한 조각을 오늘의 우리에게 반할정도의 아름다움과 식견으로 끌어내준 사람이라는 정도.

출판사에 툭 던져진 그의 원고 한 뭉치와 그 미려함과 탄탄한 소설의 구조를 흠모 하게 된 사람들에게 조차 자신을 보이지 않는 신비스러운 작가, 그에게 따라다니는 나타나지 않는 그 무엇을 이제서야 알아보는 우둔한 독자가 되었다. 근자에 출간된 ‘바람의 화원’으로 작가의 작품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그의 우리민족, 우리들에 대한 애정이 이정도로 아름답게 투영된 작품이 있었을까하는 뭉클한 정감이 솟아들었다. 다시금 그의 작품을 더듬어 손에 들었다.
역시 작품 곳곳에 스며있는 나라와 민족의 그 하부구조를 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삶과 그 힘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의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우매함과 극복에 대한 갈등의 인식은 오늘의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담겨져 있다. 왕의 신변보호를 위한 친위군인 겸사청의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젊은이의 거대한 기득권 사대부 계급과의 무언의 투쟁은 개인의 진실에 대한 본능적 실천을 넘어 시대의 정도를 위한 인간의 진정성 추구와 맞물려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과 호흡의 긴장감을 같이하게 해준다.

이야기는 한글창제라는 우리의 글이 얼마나 사무친 고난과 열정에 의해 탄생하였는가에 대한 진보와 보수, 양반사대부와 민중, 기득권층과 신진인재, 실사구시와 주자성리학의 투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조선조의 뿌리 깊은 유교와 사대주의로 인한 극심한 폐해와 고립의 무능함을 알고 있다.
작품은 일국의 왕으로서 세종이 아닌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되찾기 위한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진보세력의 리더로서, 그리고 백성에 대한 따듯한 어버이로서의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 또한 집현전 대제학 최만리는 천하의 대국인 명나라에 대한 사대정신이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시켜주고 있다는 중화와 유교사상에 찌든 극한적 보수 세력으로 등장한다. 한글이 가져올 그리고 실사구시로 인한 사회의 대변혁이 그들 기득권 계층의 계급과 부와 권력유지를 뒤흔들 것으로 예감한다. 작가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적인 피살이라는 허구로 작품의 긴박감과 재미를 풍부하게 하여주며 무수리인 여인소이와 반인(백정)가리온, 왕의 내시무사 무휼등의 등장인물들로 인한 복선은 책을 손아귀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또한, 우리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경복궁(왕궁)의 누각과 못, 궁궐등의 새삼스러운 의미와 장영실, 박연등 동시대의 발명과 천문연구등의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다만 작품의 소설적 성공을 떠나 훈민정음의 반포에 이르는 일련의 대립과 사건이 집현전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한정되어 기득권이란 것이 얼마나 무참하게 그리고 주자학(유교)의 관념론이 얼마나 지독하게 우리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암적 요인이었는가에 대해 폭넓고 냉정하게 그려냄에 다소의 부족함이 엿보이는 점이 안타깝다. 그러함에도 오늘 우리한국의 문학세계에 한 뛰어난 작가와 작품세계를 엿보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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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들의 인물사적 재미, 그러나.... | 자연과학 2007-09-2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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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베레스트에서 남극까지 인류를 빛낸 7대 탐험

크리스 보닝턴 저/이정임,정미나 공역
생각의나무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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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정보통신, 첨단시설로 무장된 이동장비, 인체공학적 의류와 도구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초로 더 이상 지구의 어느 곳도 인간의 발자취가 남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인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은 낭만적 모험과 탐험이 낯설게만 여겨지질 않을 정도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50여년전만 해도 인류의 발길을 거부하던 자연, 그래서 인간의 도전은 엄청난 위험과 경외를 가진 탐험이요 모험이었던 것이 이젠 산악가이드가 안내하는 에베레스트등산 관광, 기구를 타고 대양을 여행하는 체험관광프로그램, 쇄빙선을 타고 북극해를 여행하는 프로그램등으로 지극히 대중적 여가활동의 일원이 되었다.


인간의 호기심과 경쟁심은 모험으로, 또는 탐험이란 용어로 미지의 세계,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행위를 하도록 부추겨왔다. 자연에 대한 겸허한 외경심(畏敬心)으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등 고봉(高峰)을 오르던 무수한 알피니스트(alpinist)의 도전, 아프리카 밀림과 정글의 협곡을 탐험하고,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사막에서 생사의 사투를 건 모험, 혹한과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 대적하던 극지방의 탐사여행은 어느덧 그 용어가 가지는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린 듯 하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자. 이 서적은 개인의 성취와 자연에 대한 겸허한 인간의 도전, 인류에 대한 자연의 이해에 기여하던 그러한 모험이나 탐험의 의미가 퇴색된 지극히 이기적인 신기록과 서방중심, 계급주의적 사고 중심의 서술로 거북한 불편을 가져다준다.

특히, 대탐험이라 작가가 선정한 7가지의 내용은 영국인, 백인 중심의 국수주의적, 인종적 자긍심을 기초로 한 지극히 단순한 감상과 흔적의 열거에 불과하다. 인간적이거나 인류사적 어떠한 사유와 지평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만의, 그들 가문만의 위업과 잔치 이상이 아닌듯하다.


따라서 누군가가 아주 새로운 형태의 기록적 도전을 하였는가하는 인물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다소의 결여된 지적 양식을 보전할 수 있을 줄 모르겠다.

낭가파르바트를 오른 라인홀트 매스너의 무산소,단독등정, 유럽 대부호들의 무착륙 세계일주를 위한 기구경쟁(최종적 세계일주자는 물론 대부호가 아니다)과 그들의 인맥관계, 북극해를 횡단한 월리 허버트의 부모는 사병출신의 군인이었다는 것과 같은 출신성분의 구분등은 작가의 시종일관한 탐험에 대한 근원적 가치관을 짐작케 한다.


일부 1950~60년대의 고봉과 밀림지대,사막의 도전은 유럽의 자산가 및 귀족(군벌포함)계층의 전유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출신 성분과 탐험과 모험심은 이와 같은 사회계급적 관계 말고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작가의 기억할 만한 지구상의 인간 도전사에 왈가왈부할 의도는 없다. 그야말로 작가의 의지일 뿐이니까. 서론에서 작가는 이러한 몇 가지 대탐험 선정기준에 대한 이의에 대해 인류의 순수한 모험정신과 그 의지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일갈 하였다.


최신의 장비와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 진행된 탐험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치 않겠다. 다만, 온전한 인간의 극기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험으로 보여지는 몇 가지의 뿌듯한 탐험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독서의 지속을 돕는다. ‘윌프레드 세시저’의 모래사막 ‘엠비쿼터’의 횡단과 라시드족 배두인 ‘살림 빈 카비나로’와의 따뜻한 동지애와 그들 유목민족과의 삶의 동화와 이별은 감동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특히, 지극히 평범한 영업사원 출신 토목측량기사 ‘월리 허버트’의 인류최초이자 더 이상 같은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을 북극해 횡단의 등정은 그의 끈질긴 기득권 계층들에의 설득과 도전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깊은 애정과 진정의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4인으로 구성된 썰매단의 68.2.21~69.5.29에 이르는 장장 15개월여에 걸친 부빙과 부빙의 이동, 검푸른 북극의 심연을 드러내는 리드를 피해 겉고,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진다. 이로부터 2주후에 미국의 아폴로11호선 달착륙으로 그들의 지구상에서의 기원적인 대탐험의 성공은 묻혀지고 말았다니 그 안타까움이 지금에도 묻어난다.


끝으로 남극탐험과 에베레스트등 지구상 고봉에 도전했던 유명한 등반대등의 알만한 인물들의 탐험사와 신상등이 내용 중간 중간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어 인물사적 사료의 가치도 부분적으로 갖추고 있다할 수 있겠다. 어쨌든 ‘세계의 대탐험’은 산과 바다와 사막, 정글, 두 극지역에 대한 최근의 인류 도전에 대한 그 면모를 둘러볼 수 있게 해준다. 여전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구의 오지가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것이다. 자아성취이건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이름을 알리고 싶든, 인류의 과학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든 이제 우리사회도 여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구인들이 시도하지 않은 멋진 탐험을 구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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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각에 익숙한 현대인의 자화상... | 소설,시 2007-09-2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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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저/김민정 역
문학세계사 |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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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자화상 아닐까? 감각을 잃어버린 듯이 무심한 신경과 오랜 억제로 기억되지 않는 상실된 감성의 찌꺼기들이 그저 하찮아 보이는 그런 삶의 순간 순간들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향긋한 여성의 체취가 코앞을 스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맥없는 눈꺼풀만 꿈적대는 건조한 일상, 낯선 이가 어깨를 부딪쳐도, 상사가 윽박질러대는 그 아우성도 그냥 그런 것일 뿐, 감정의 기복을 느낄 이유가 아니 그 어떤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 무감각의 삶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그런 기억 말이다.

 
그저 ‘도시인’이라 생각되어 ‘위르뱅’이라 이름을 둘러대 붙이고 사는 오감을 잃은 사내의 뒤늦은 사랑이야기이다. 직업은 살인청부업자! 의뢰받은 대상자의 머리에 빵! 빵! 총알 두발을 머리에 박아 넣고 그 환희와 들뜬 쾌락에 몸서리치게 흥분하는 미친놈이다.

 

지금 도시의 무미건조하고 타인에 대한 무감각적 삶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 잃어버린 감각은 살인에서만 말초적이고 성적인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거듭되는 살인에서도 그 흥분과 쾌락은 오히려 증폭되고 희열로 또 다른 살인을 기대한다. 잊을 수 없는 감각 회복의 희열이 무작위적인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쫓겨난 직장이외에는 아는 자(者)도 없다.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가 아침에 깨어날 때 마다 느끼는 진공의 백짓장 같은 뇌, 오직 죽음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바쁘게 일하는 인간 군상들은 그 짧은 순간의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한다.

 

선과 악에 대한 관념적 구분의 감각까지 상실한 미친놈이 사랑에 빠졌다. 여성 살인청부업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 아버지를 담백(?)하고 명료(?)하게 살해하는 18살의 소녀. 그가 그렇게 보기를 갈구했던 그 대상을...., 그녀의 일기,자신의 구구절절하고 시시콜콜한 사정이라곤 눈꼽만치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그녀의 일기에 그는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다. 집안에 들어온 한 마리의 제비는 사체가 되어 그의 품에 안긴다. 그는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다. 그러나 사랑의 환상에 돌려받은 감각이란 것이 고작 성적 흥분으로 뻗뻗해진 몸에서 분출되는 찌꺼기의 방출이란 왜소하고 취약한 활용일 뿐이다.

이제 그는 ‘이노상’(죄 없는 자)이란 역설적인 이름을 갖는다. ‘위르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의 환희를 위해 살인을 밥 먹듯 하던 청부살인업자, 그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잘못된 살해라는 모순된 자기연민으로 모처럼의 감성을 회복한다. 우리가 그렇듯이..., 뱃속에 우겨넣는 그녀의 일기와 그는 영원히 사랑을 간직할 수 밖에 없다. 그 애는 천천히 내 뱃속에서 나를 죽이고 있다...바로 우리들의 초상처럼....

 

Tip. 작가의 전작인 “황산”의 집단살인극에 대한 리얼리티쇼가 말하지 않는 대중들의 모순되고 자가당착적인 열광에 대한 냉소라면 “제비일기”의 무작위적이고 무차별적 무감흥의 살인은 자기연민에 급급해하는 현대의 대중 개개인에 대한 비웃음처럼 다가온다....

       [2007.10.2(화)字 데일리줌 20면에 게재된 저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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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오만한 인류에 대한 불카누스의 징벌! | 소설,시 2007-09-1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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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저/박아람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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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고 탐욕스런 인류에 대한 로고스의 상실과 불카누스(불의 신)의 징벌에 대한 이야기이며, 서기 79년 이탈리아 캄파니아지방 고대도시 폼페이의 화산폭발일인 8월24일을 전후한 4일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베수비우스 화산폭발은 악취나는 문명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그 종교적 위엄에 인간의 왜소함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류의 자연에 대한 오만불손함, 그 파렴치함과 부정,욕망에 제동장치를 잃어버릴 때 자연은 엄격한 재해를 던져주었다. 베수비우스는 평화롭게 더욱 심한 재난을 인류에게 보내기위해 오래고 더디게 준비하고 있다.

 

작가가 무수히 인구에 회자(膾炙)되었던 폼페이의 재앙을 다시금 소설의 소재로 삼은 의미는 작금의 우리인류세계의 겸양을 잃어버린 그 방자함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은 아닌가?

 

귀족들의 관광과 휴양의 거점지역인 네아폴리스(폼페이,헤라클라내움,스타비아이,미세눔등)의 도시들에 상수를 공급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 책임자(아쿠아리우스)로 부임하는 젊은 수도기술자 아틸리우스를 주인공으로 하고있다. 고대 로마의 물은 상상이상의 권력이자 자원이다. 로마는 물로 망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중목욕탕 시설과 공창, 그리고 발굴된 그 음란한 모자이크화와 조각상, 암각화는 그들의 퇴폐와 향락의 극한적 단면을 이야기한다. 화산 재앙의 기술적 이해와 추악한 그들의 문화에 침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배역으로서 물의 관리자는 정말 안성맞춤이다.

 

권력과 더러운 부정의 기반위에 쌓여진 재화의 위용을 악행과 이기적 욕심에 삶을 바치는 암플리아투스, 실종된 수도교의 전임 아쿠아리우스인 엑솜니우스 행방의 추적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탐욕과 이중성의 현실, 순수함과 악의 근원에 저항하는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 마지막까지 한 문명의 저주를 기록한 학자이자 제독이었던 플리니우스를 통해 인간사회의 그 보편적 당위성과 나약함, 그리고 후대 인류를 위한 절망적 희망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

작품의 진귀한 사실성으로부터 그들의 내밀한 문화와 도시 기간망, 선거와 정치 이면의 몰염치와 부패성, 그 화려한 규모와 시설의 현대성에 독자들은 압도된다. 오늘의 문명을 자만하는 21세기의 우리들은 그들보다 조금도 진전된 존재가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부와 권력앞에 귀족의 자존심은 버려진다. 우리사회의 노블리스오브제의 결여와 자신의 이권에만 어두운 그 어두운 양면성까지 유전인자의 돌연변이는 발생치 않고 전달되어 오고 있다. 2000년전의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와 오늘의 우리 인류와의 오버랩이 착잡함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의 소설적 재미는 거대한 로마제국의 상수원 관리 즉, 수도관의 정밀한 네트워크, 공급되는 수량의 감소로 야기된 그 기술적 추적과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 코렐리아와의 순수한 사랑, 노예출신의 귀족 암플리아투스의 악행, 플리니우스 제독의 인간적 진정성이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의 통합된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는 날, 우리 인류는 겸허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린 모두 망각하고 있다. 다시금 베수비우스 화산은 그 폭발을 벼르고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인류는 오만과 그칠 줄 모르는 영악스러움과 탐욕을 버려야 할 것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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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보편적 삶의 진정성을 찾아서.... | 소설,시 2007-09-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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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과 자유에 대한 감동의 대서사시이다. 지중해의 에머랄드빛을 온통 감싸안고 까따루냐의 한 언덕에 자리한 산따마리아성당, 넉넉한 가슴을 모든 인간에게 내어주는 민중의 안식처가 그들로부터 지어지고 있다.

 

작품은 14세기 중세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회와 왕의 권력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그래서 민중들의 삶은 한낱 그들의 소도구에 불과한 그러한 세상이다. 작가는 대지의 종이자 귀족의 종인 그리고 운명의 종일 수 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진정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진실성을 쫒는다.

교회의 권위를 앞세운 성직자들 이면의 악취나는 탐욕과 왕과 귀족들의 끊임없는 권력욕구에 한 없이 왜소해지기만 하는 민중들의 고난의 역사이다. 주인공 ‘아르나우 에스따뇰’은 영주의 초야권 행사라는 어처구니 없는 능욕 속에 출생한 소작농의 아들이다. 아버지 ‘베르나뜨’의 대지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희생적 도피를 통해 번영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에 찾아든다. “아들아, 이 아비는 너의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이다!”

 

작품은 중세 교회의 모순적인 권위, 지속적 권력유지에 몸부림치는 왕과 귀족들의 연합과 배반, 유태인에 대한 배타와 압제, 민중들의 순수한 자유에 대한 갈구를 정교한 플롯으로 이야기 속으로 유연하게 독자를 흡입한다.

도공으로 부를 축적한 사촌집안의 귀족가문과의 혼인, 그리고 그들의 잔인하고 냉혹한 죽음의로의 내침에 아버지 베르나뜨는 아들 아르나우에 ‘삶의 자유’를 각인시키기 위해 의연히 죽음으로 내닫는다. 귀족들의 이기적 허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소설의 팩션적 요소는 14세기 전 유럽에 창궐하여 무수한 민중들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페스트와 교회의 권위와 권력의 확보를 위해 자행되었던 종교재판이 작품의 배경속에 녹아있다. 페스트는 주인공의 삶에 새로운 반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사건으로 유태인 환전상과의 인연, 카톨릭과 유대교 그리고 이방인인 노예 무어인(지금의 아랍권)의 등장으로 유럽인들의 절대적 유일종교에 대한 모순성과 허위성을 은밀하게 내비추기도 한다.

또한 의형제 조안의 사제로의 성장, 그리고 ‘아르나우’의 조국에 대한 헌신적 행동(적의 침입에 대한 해안봉쇄라는 기지의 발휘)으로 맺어지게 되는 왕족과의 불가항력적 혼인, 귀족 칭호(남작)의 사사로 사악한 귀족들에 대한 대항의 기틀이 마련된다. 그러나 진실이라는, 즉 인간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농도들의 영주에 대한 부당한 억압의 해방, 핍박받는 가난한 민중들의 지원으로 이어지나 사제인 동생과 왕을 후견인으로 하고 있는 아내와의 밀약은 그를 다시 나락으로 내몬다. 여기서 작가는 동생 조안을 사제로서 교회의 추악하고 불안한 권위로 그의 형식상 아내인 귀족의 욕망과의 결탁을 보여준다. 즉, 종교의 이면에 숨어 파렴치하고 탐욕적이기만 했던 성직자(사제)들의 모순된 가치와 귀족들의 속물성과 상실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역사속의 진실성을 대중적 이해에 쉽게 접근케 하여준다.

 

한편,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정념에 시선을 고정하여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도 한다. 어린시절 이성에 대한 사춘기적 호기심과 그 속에 피어나는 순박한 떨림과 육욕,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던 아내와 그녀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 재회한 어린 시절 여인과의 육체에 대한 탐닉과 고뇌, 수양딸에 대한 이타적 사랑과 그의 결실까지 삶의 의욕과 상실과 그의 이해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매혹적으로 피어난다.

 

종교에 대한 보편적이고 폭넓은 관용과 이해, 민중 나아가 인간 삶의 진정성에 대한 그 균형적 시각, 사랑과 배반의 일상적 삶의 의미, 그리고 중세의 다양한 역사적 궤적이 그 넓은 산따마리아 델마르 성당에 은은히 울리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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