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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법의학 수사 사례와 실체 | 자연과학 2008-08-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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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마르크 베네케 저/김희상 역
알마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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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명 법의학, 법의학곤충학, 범죄생물학 저술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이 저술을 접했으며, 그리고 그 다른 시선의 읽기에서 나름 수확을 거두었다. 우리들이 CSI 등 TV시리즈물로 접했던 많은 과학수사물이나 추리소설, 스릴러, 공포 소설류에서 등장하는 범죄자를 추적하는 재미를 상기하면,‘마르크 베네케’가 소개하는 파리와 구더기, 변태의 껍질이 흥미롭기까지 할 수 있다.

이 책을 펼치면 사체에 버글거리는 곤충과 삽화, 사진들이 혐오스럽다는 첫 인상을 쉽게 떨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세에 그려진 사체나 해골, 그리고 비어져 나온 구더기의 적나라한 묘사, 바싹 말라버린 사체,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려 짓이겨진 듯한 부패한 시체의 사진이 뭐 그리 흥미롭고 매력적이기까지 하겠는가하지만 누구나 이해가 쉽도록 집필한 저자의 문장에서 법의학의 실체를 그려내는 것은 매혹적이라 할 수 있다.

사체의 주변에 어지러이 쌓여있는 곤충의 변태껍질과 시신에 깃든 곤충의 종류는 사망의 시기, 장소, 원인을 알려주기도 한다. 얼핏 총알에 관통상을 입은 듯 보이는 상처가 곤충의 짓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집안의 옷장과 같이 공기가 차단된 건조한 환경에서 발견된 피부가 바싹 말라 뼈에 가죽만 덧댄 듯 한 사체에서도 그 시기를 추정하는 수단은 역시 곤충이다. 옮겨져 오랜 세월 유기된 시신에서 조차 곤충들은 범죄의 흔적을 남김없이 증언해준다.

이렇듯 범죄현장의 흔적은 법의학곤충학에 의해서 여지없이 드러나지만 이 저술의 둘째장인‘유전자 감식’부분은 우리가 추상적으로 이해하던 유전자체취와 감식, 그리고 범죄자의 색출에 이어지는 많은 오해를 풀어준다. 오랜 기간 지문추적에 의존하던 범죄자 파악의 수단이 유전자감식을 통한 범죄수사방법으로 발전한 것은 불과 20년 남짓이며, 그 구체적 방법 및 검출장비 또한 비약적인 과학적 발전이 진행되어왔다. ‘단일 염색체 좌표를 이용한 고전적인 유전자 감식기법’인 RELF에서, 용의자로부터 체취한 면봉에 붙은 피부세포, 지워진 혈흔, 잘려진 머릿카락에서 조차 범죄자의 구별되는 유전자 데이터를 얻어내기도 하며, 완전한 DNA 데이터를 얻을 수 없을 경우 일부의 검출된 자료만으로도 매칭기법이나 확률적용을 통해 범죄자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 저술의 집필 의도는 법의학곤충학의 범죄수사에서의 가치와 그 적용의 효용에 대한 이해이며, 또한 유전자 감식이 가지는 혹시 모를 개인정보의 남용이나 오용,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 과학적 수사의 획기적 개가로 범죄 없는 사회의 이상을 추구하자는데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범죄스릴러나 추리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영상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지식의 제공으로 작가의 복선과 두뇌싸움을 하는 재미를 더욱 증폭시켜 줄 수도 있으며, 추리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말라버린 숲속의 저수지에 버려진 시체’나‘고양이털의 유전자’와 같은 사례처럼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감나는 작품 집필에 유용한 참고문헌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장인‘낡은 범죄 생물학’편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왜곡되어 전개되었던 인종개량이라는 인류의 대재앙에 대한 파렴치한 인종학자들과 나치에 대한 비판을 오늘의 분자생물학, 유전자, 게놈의 과학적 의미를 인용하여 신랄하게 전개하고 있다. 서구 백인 우월주의의 인종학적 편견은 지구상 많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철회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그 대중을 파고든 왜곡된 인식은 잠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대인의 골상과 성격은 독특한 유전인자가 있다든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인종은 서구백인과 다른 유전자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 말살하여야 한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입증하고 있다.

실제 유전자의 차이는 인종의 차이를 구별하지도 않으며, 더구나 인간의 성격적 특성을 획일적으로 각성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결국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종(種)’일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곡해된 인종학이란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학문이 엉뚱하게도 범죄생물학에 활용되는 당혹스러운 세상이 한 세기 이상을 지배해왔다니 인간의 그 어리석음과 탐욕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경찰수사관, 법의학자, 범죄수사학 등 관련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 저술은 인간의 자연 속에서의 순환이나 현대 과학의 한 부분의 이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사유와 지식을 제공한다. 또 필자와 같이 예술의 한 장르에 대한 창의의 샘으로서도 활용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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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강렬함과 그 숭고함 | 에세이,평론 2008-08-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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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표류

스티븐 캘러핸 저/남문희 역
황금부엉이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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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항해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가혹한 일이다. 내 마음속의 가장 극악한 부분을 찾아 진짜 지옥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면 지금이 정확히 그 장면이라 할 것이다.”거대한 파도와 누더기가 된 구명보트에 실려 오직 죽음만이 엄습하는 검푸른 대양의 한가운데 절망에 빠진 나라면 내 육신에 영원한 안식을 주고 말지 않았을까? 그 고통과 실의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을까?

육신이 흐물흐물 완전히 곤죽이 돼 이성의 명령을 잘 이행하려 들지 않고, 그저 휴식만을 원하고 고통에서 구제받을 길만 찾으려 할 때, 그리고 영원히 구원의 손길에 닿을 수 없는 끝나지 않을 극악한 환경의 연속이라면, 우린 그 때에도 살아낼 수 있다고 자아를 재촉할 수 있을까?

대서양의 한가운데 저자‘스티븐 캘러핸’의 6.4M 소형 순양함‘솔로’호가 침몰하고, 구명보트에 다급하게 생존을 의지하기위해 몸을 옮길 때, 그의 뇌리에 수없이 교차하는 당혹스러움과 절망감, 그리고 죽음의 공포, 살기위한 본능적인 구상들이 나의 뇌에서도 공감을 일으킨다. 이제 망망대해에 그야말로 漂流(표류)가 시작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76일간의 잔혹한 삶과 죽음의 시험의 여정에서 오늘에 이르는 나의 인생여정이 이처럼 표류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은 지나친 비유가 아닐 것이다.

“어제는 내리쬐는 햇빛으로 600그램의 신선한 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구름덕분에 살이 타 들어갈 것 같은 오후의 햇살은 피할 수 있었지만, 나의 생명수는 그 양이 줄어들 것이다. 삶은 모순투성이다.”이처럼 삶은 양면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大海(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저 끈질기게 반응하는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캘러핸의 감정에 불쑥 불쑥 끼어들던 그‘정신적, 육체적 신경의 모든 방어막이 벗겨 나가고 완전히 맨 몸뚱아리가 노출되어버린 듯’한 절망만이 맴돌고 있을 때, “넌 죽어!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하고 정신과 육체의 방임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 그래. 반드시 이 고비를 넘기고 말겠어. 다시 시작해. 문제를 가려내.”하는 이성의 승리를 견인하는 독백에서 절로 숙연해짐을 느낀다. 주변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평온한 환경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나약해빠진 회피와 절망, 의기소침이 부끄러워진다.

76일간의 표류를 가능케 해준 그의 생명선인 구명보트‘러버더키3호’,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主食(주식)이 되어 준‘만새기’와의 생존을 둔 혈투는, “자연의 경이란 추한 공포에 둘러싸인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라는 그의 표현처럼 살아남기 위해 반응하는 강렬한 깨들음과 엄청난 열정의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각인된다.

스칠 듯 지나가는 대형선박들을 향해 쏘아 올리는 조명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나쳐버리고, 아련히 그 모습이 사라짐을 바라보는 표류자의 심경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구명선 바닥이 찢겨 생존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버리는 극한적 좌절에서 취약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지만, “신체적 자아와 본능이 일종의 무대 감독으로서 모든 현실을 재배치하고 통제”하는 캘러핸의 ‘생존의 세계’에서 인간의 숭고한 정신적 승리를 보게 된다.

항로의 끝이 어디가 될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니면 영원히 그 끝에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르는 표류자로서 그의 역할 - 그저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구명보트에서 기다리기, 어패류를 잡아먹을 것, 잡은 물고기를 잘 손질해서 저장하고 배분해서 먹기, 증류기를 소중히 다루어 식수를 확보하기 -이지만, 그는 이렇듯 단순하기까지 해 보이는 역할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때 마다 결정적인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심각한 파장이 들이친다. 나는 정말 죽고 말았을 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서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 머리로 상상하는 것은 실제로도 존재할 수 있다. 마음속 창조의 세계는 결코 물리적인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인 음식공급이 결핍된 조난의 혹독한 생존을 위한 시간 속에서 “내 몸에 양분을 공급하기위해 내 감정에게 살해를 강요한다. 나 자신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나의 팔과 다리에게 노역을 강요”하는 처절한 극기에서 다시금 작은 장애에도 엄살을 부리기만 하던 내 인생항로의 왜소한 굴절이 가소로워지기도 한다.

아홉 척의 선박이 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고, 열두 마리의 상어가 그를 위협했다. 그리고 생존과 죽음의 아슬한 싸움의 76일째, 세 명의 검게 그을린 사람들, 그들의 배 ‘클레망스’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캘러핸, 그의 앙상하고 상처투성이의 몸에 번지는 환희가 바로 나의 감동이고 승리이고 기쁨이 되어 “삶이란 바로 권리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점”을 깊게 이해케 된다.

우리네 삶이 캘러핸의 표류보다 더 악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공포에서 그리고 생존을 위한 정신과 육체의 갈등에서 바로 우리 인간 본연의 숭엄한 이성과 행동을 본다. 또한 그의 표류처럼 그 항로의 끝을 모르는 여정처럼 우리의 인생항로의 끝을 알기도 힘들다. 그러나 “도전이란 늘 위기를 통해서 우리를 혹독하게 시험”하지 않는가? 그 시험을 끝내고 나면 바로 달콤한 가정이 있고, 평온한 침대와 사랑스런 가족이 있음을 새삼 고맙게 느끼게 되지 않는가? 그의‘숱한 약점과 절망’, ‘존재의 무의미함’에 대한 깨달음에서 삶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캘러핸의 표류는 정말 값진 고귀한 경험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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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논쟁을 야기하는 공부 | 에세이,평론 2008-08-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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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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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물은 논쟁적이다. 그러나 가치의 진지한 논의는 아니다. 다만 정치적 의사와 신념이란 본질적이지 않은 부차적 식견을 수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장정일이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 민족,국가,그리고 정치사회에 대한 자신이 일관되게 지속해온 학습의 감상, 아니 그 학습을 통해 그에게 축적되어온 신념을 들려주고 있다. 그가 머리말에서도 표명하고 있듯이 자신의 분명한 의지, 즉 한국사회에 대한 소신을 관련 독서를 배경으로 하여 작성하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아니면 중도냐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지극히 편향된 논쟁을 의도적으로 전개하고 있어 독자들의 성향에 따라 거북하거나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 열렬한 공감으로 환호를 질러댈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저작물은 좌향보수의 성향에 가깝다.

미래지향적, 혹은 새로운 인류사회에 대한 대안 모색이나 보편적 가치의 우려할 만한 움직임 등에 대해서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익 보수세력의 케케묵은 기득권 투쟁과 퇴행적 역사에 사로잡힌 이기적 기만행위와 차이를 드러내고 있지 못하기에 그렇다.

4.19, 5.16 이후의 세대로서 그만의 취사선택에 의한 자료와 몇몇 서적에 의해 자신의 신념이라고 후배들에게‘공부’라는 제하의 감상문을 쓸 수 있는 용기는 부럽다. 나치즘, 파시즘 등 전체주의, 그리고 이를 통한 박정희 정권의 해석은 1970년대 대학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당시 ‘의식화’란 의미로 기본적으로 학습하였던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철저하게 차단된 금서목록으로 인해 일본어서적을 통해 또는 서로서로 번역하여 학우들과 의식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돌려보곤 했었다. 결국 저자가 말하듯이 ‘Red Complex'의 또다른 호기심이었다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인텔리겐차’연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민족주의의 극단적 폐단의 형태로서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반공에 대한 세뇌와 전체주의적 권력의 폐해는 이젠 진부할 정도로 구태스럽다. 이를 장황한 인용과 비유로 젊은 세대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사상을 만들고 그것을 퍼뜨리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심성에 대한 새로운 효소를 집어넣는 것”이라는 신념의 소산인가? 인류가 지금까지 행해온 ‘악’의 의미가 비로소 새삼스럽다는 것인지? 단지 근대사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리고 편 가르고 중도는 회색분자라 칭하여야 하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인지?

이는 그가 인용하는 막스베버의 “종교적 주술로부터 벗어나 개개인의 합목적적인 의지를 발견하는 것이 근대성”이라는 맥락의 다른 주술처럼만 보인다.

지금 인간사회는 아니 지구사회는 좋든 싫든 ‘세계화’란 불안한 가치로 이행하고 있으며, 우리가 믿어왔던 20세기의 이성과 보편성이 대혼란에 휩싸여있다. 우리가 소속된 한국이란 사회, 그리고 구성원들은 무얼 준비하고 학습하여야 하는가? 박정희의 전체주의와 이승만의‘Red Complex', 그리고 그들이 자행한 폐해를 진단하기위해 전 국민이 골몰해야 하는가? 더구나 “점수의 노예로 훈련된 엘리트”로 제도권에 승부하는 삶을 극단적으로 폄훼하고 “그들은 장차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는 우두머리들, 세상을 모르는 정치가,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행정가들이 된다.”고 까지 근거 없는 주장을 진실처럼 왜곡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의 정립과 우리사회의 진보에 어떠한 실익이 있다는 것인가?

저술자가 짧게 언급하고 있는 또다른 시선인 분자생물학, 뇌과학이 전통적인 인간의 정신과 심리의 분석에서 극히 부분적으로 명료한 진단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 또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보편성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며, 과거에 진실이라 믿었던 것보다 명료한 것에 자리를 내어주는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치로서 동의를 획득하는 것일 뿐이다.

세상의 젊은이들을 향해 공부하라고 하여야 할 것이 진정 무엇인가? 21세기 인류가 지향하여야 할 가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민족이란? 국가란? 종교란? 정치란? 경제란? 과학이란? 그리고 인간의 삶이란? 물론 저술자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부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과두적 국가로 바뀌었다, 서서히 그런 자유민주주의적 내용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세계화는 부자와 빈자를 양극화 시킬 뿐 아니라, 권력과 부를 쥔 자들의 과두정을 불러온다.”와 같이 부분적으로 이해를 같이하고 있으나, 이는 왜곡된 현상을 표현한 것이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인지를 오히려 훼손하고 분열만을 초래하고 있음 이상이 아니다.

본질적인 가치, 근원적 요인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 어느 하나의 주장이 항상 옳을 수 없다. 중도란 저술자의 주장처럼 가운데의 회색지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균형이란 치우침의 보완이지 어정쩡함이 아닌 것이다. 광대한 시선, 수용의 넉넉한 여유, 그래서 본원을 탐색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지점이다. 공부는 보다 폭넓게 수행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저술자의 말대로 “사회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들의 의식의 합”이다. 니체와 하이데거, 조봉암, 이승만, 박정희, 이종오, 베버등에 대한 저술자의 감상과 이해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나의 신념만이 진실이라는 주장은 저술자의 주장과 모순된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한다. 일방은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아집이고 주술이 되어버린다. 그의 말대로 “포용력 있는 시민정신이 함양”되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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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영업과 그 실천방안 | 나의 리뷰 2008-08-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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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진, 챔피언의 법칙
차태진 저 | 지식노마드 | 2008년 07월

 

한때 외자계 경영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였던 경력을 가졌으며, 외자계 보험회사에서 판매왕을 했고, 보험회사의 지점 대표를 맡고 있다는 내용에서는 별로 읽어낼 것이 없다. 다만, 보다 풍족한 재화와 안정적 지위를 집요하게 쫒는 한사람을 응시 할 수는 있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추구하는 삶의 가치, 인생의 본원성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물론 이 저작물이 추구하는 가치가 부(재화)의 확보에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음은 제목의 ‘챔피언’에서도 읽힌다. 그러나 자기계발의 일화로서도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진정성이 결여되어있고 삶의 시선과 가치가 왜곡되어 있음을 보게 되어 안타깝다.

이 저작물이 주장하는 것은 세일즈기법 중 ‘소개영업’의 중요성이며, 그 성과에 대해 영업맨들을 위한 저자 나름의 경험적 가치를 주입하고 설득하는데 있는 듯하다. “제삼자로부터 소개 받아 또 다른 제삼자에게 전개하는 영업방식”이라 정의하고 있는 소개영업의 장점에 대해 “한 명의 고객 뒤에 감춰진 실제 가망고객은 이 숫자(3의 배수)를 능가할 수 있다.”고 화려한 희망을 제시하고,“소개자의 영향력에 의해 판매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증대”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이들의 실천 방안으로 KASH(knowledge, attitude, skills, habits)를 예시하며, 이 중 태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태도는 전염되는 속성이 강하기에, “모든 가망 고객은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세일즈맨과 거래하길 원”하듯이, 확신이라는 태도를 구성하는‘강한 동기’와 ‘긍정적 마음가짐’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열정을 뿜어낸다. 사회심리학에서 늘 소개되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관계의 한 측면으로서 새삼스러운 느낌마저 갖게 한다.

이렇듯 이 저작물은 보험영업사원을 모집하고 해당 보험영업직을 위한 초보 지침서로서, 보험영업의 판촉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성공’이란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호도하고 왜곡하여 자칫 사회를 출발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허황된 욕망의 길로 안내하게 될까 저어되기까지 한다.

또한 엑센추어란 외자계 컨설팅업체의 신입사원과 보험영업의 경력이 전부인 저자가 일반기업 종사자들의 집중력이 낮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무지와 터무니없는 자기연민에 도취해있음 이상이 아니다. 게다가 전문가만이 살아남는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오늘의 경영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무지라 할 수 있겠다. 시스템으로 복잡하게 얽힌 조직, 그리고 리더가 기능간의 폭넓은 지식과 조화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에 있으며, 지난날의 저차원 제네럴리스트가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제네럴리스트가 요구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한편, 삶의 가치에 대한 측면에 있어서 “일 자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풍족한 일상의 자유와 여유를 버리”라고 하고 있다. 삶의 자유와 여유는 재화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빈곤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위한 방안에는 실로 다양한 방법과 가치가 존재한다. 물질유일의 이 처럼 퇴색되고 왜곡된 가치는 지양되어야 한다. “버려야만 얻는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다.”옳은 이야기이다. 자유와 여유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속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버려라, 그것이 바로 삶의 진실인 것이다!

이 저작물은 이렇듯 기업경영 아니 의미를 좁혀 마케팅 및 영업측면에서도, 그리고 자기계발측면에서도 진정한 성공의 법칙이나 성공의 가치를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제삼자를 소개받아 보험실적을 쌓아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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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우주 역사의 철학적 탐사 | 자연과학 2008-08-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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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오선 여행

쳇 레이모 저/변용란 역
사이언스북스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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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나아가 천체, 우주의 근원적 발생까지, 우리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소산에 대한 자연과학적 발자취를 기반으로 한 철학적인 사색의 여정이다. 오늘의 인류에게 자오선이 갖는 의미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지구시간, 아니 우주시간의 기준선이다.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수직의 선인 본초자오선을 경계로 15도 마다 1시간씩의 시간이 빨라지거나 늦어지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자오선이 오늘 왜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것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해관계국의 갈등과 확정에 이르는 역사적 일화를 소개하며, 인류의 합일점으로서의 그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를 사유한다. 이렇듯 인류 정신의 합의가 가능하듯이 오늘의 종교간 갈등, 인종간의 갈등도 인간의 위대한 행로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으로 연결 짓기도 한다.

자오선을 여행하기로 한 저자의 위와 같은 인류정신의 숭엄함 위에 놓인 과학적 발견과 그 발견을 위한 노력들의 자취를 시(詩)가 흐르듯 저작의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철저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적 환경과 가치에 둘러싸여 성장한 저자가 “신이 우주를 만들어낸 단 한 가지 이유는 죄와 구원의 인간 드라마를 위한 무대로 쓰기 위해서일 뿐이었다.”고 인간 중심적인 종교에 헛웃음을 날리고, 서구중심의 역사적 추진력에 대한 허위에 대해 각성을 하기에는 진실을 쫒는 과학적 탐구의 산물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아중심적인 세계에서 직접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공간으로, 우리가 결코 경험한 적 없는 과거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미래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여행을 시작” 하는 인간의 과학적 창의성에는 절로 숙연해진다. 이 저술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서 시작하여 케플러, 뉴턴에 이르는 지구와 우주의 탐구에서 퀴비에,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과 같은 지구역사의 가설에 이른 탁월한 인간들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다.

“허턴은 바위의 흔적을 설명하는 데 신의 간섭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오로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자연의 힘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질학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그토록 거대한 시간의 심연을 바라보려니 현기증이 날 만큼 마음까지도 넓어지는 듯 했다.”고 지질학적 시간의 탄생에 열정적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헉슬리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문을 인용하면서 과학적 가르침은 “도덕심이 향상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 새로운 천상세계, 새로운 지상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널리 퍼지기 바랐다.”고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믿음에 대한 지식을 주장한다. 많은 과학적 발견이 당시대에는 진실이라 여겨졌지만 오늘에서는 그 과학적 진실이 오류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과학이 밝혀내는 것은 본원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하며, “자연 자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도록 이끄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보장된 방법, 즉 절대 오류가 없는 불변의 진리를 낳는 “과학적 방법”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다른 대안보다 믿음직한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저술에 매료되는 것은 이와 같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색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분명 거대한 인간 역사 드라마의 일부로서 우연이든 고의이든 같은 종 내의 대량 살상이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증거일 뿐 만 아니라 ‘호모사피엔스’ 때문에 생물의 다양성에 발생한 가장 중대한 손실이다.”라는 인류기원에 대한 탐험과,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인간 본성에 대한 연민으로서 “딸의 죽음은 자연에 도덕율 따위는 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그의 주장에 통렬한 의미를 선사했다.”와 같이 흥미로운 공감을 조성하는 문체에 있기도 하다.

“과거나 미래의 누구보다도 심오하게 우주의 본성을 들여다 보았는지 모르지만”하고 뉴턴의 우주에 대한 겸허의 소박한 한 구절이 절로 오만한 나의 이성을 잠재운다. “거대한 진실의 바다는 고스란히 미지의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 있는데 나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이따금씩 좀 더 매끄러운 자갈이나 조개보다 모양이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듯하다.”

자오선을 따라 영국의 남부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하여 울스소프, 배로올험버에 이르는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따라 거니는 사색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지를 인정하고, 진정한 믿음의 버팀목 없이 단지 두발로 서서 존재의 신비를 맞딱뜨리기 위한 용기를 보게 된다. 저술의 말미에 자오선이 갖는 인류의 의미로 “저마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려는 뿌리 깊은 경향을 뒤엎은 과학적 사고의 승리이며, 아직도 격렬하게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종교와 정치, 인종의 차이가 언젠가는 무의미한 것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희망의 징조다.”라고 하는 저자의 인류화합과 과학적 가치에 대한 기대에 그저 감정을 편승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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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6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