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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엉엉 울었다... | 소설,시 2008-09-2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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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울었다.  그 상실이 너무 간절하고 애틋해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훔쳐댔다. 어, 지운이 녀석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하나, 다시금 그리움에 절망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별조차 잃어버린 이 지독한 역설이 사무치도록 아플 것이라는 걸 몰랐다. 사랑이란, 행복이란, 그리고 삶이란, 그것은 이미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서 세상의 한 축을 떠받치고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인 경찰관 ‘진수’의 고단한 일상 속 작은 행복의 커다란 이야기이다.  진수는 정말 이별을 잃는다. 은빛 칼날이 그의 몸 깊숙이 들어와 헤집고, 수 없이 뚫려버린 구멍들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에 젖은  자신을 부여잡고 추적추적 뿌려대는 빗속에서 아스팔트 도로위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시신을 내려다 볼 때,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이별조차 앗아가 버렸음을 이해한다.

아내 ‘수경’과의 수줍고 마냥 설레기만 했던 만남과 아이들의 출산, 그리고 깊은 속 내비칠 줄 모르시는 어머니는 그에게 행복 그것이었으며, 삶의 의미 자체였다. 자신의 죽음에 비통해 하는 가족과 친지, 동료들과 지나온 날을 바라보고, 살아있는 그들의 슬픔에 한없는 연민을 보내는 여정은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작품이 살아있음에 대한 고귀함과 가족이란 그 애절한 관계의 본성적 사랑, 그들과의 작은 일상들이 바로 행복이라는 삶의 한 시선을 던져주고 있지만, 주인공 진수의 직업적 신분인 일선 범죄 수사관들이 처한 우리사회의 후진적 구조와 위험에 내몰리고 혹사되어 피곤에 찌든 그네들의 현실이 작품의 중요 배경을 형성하고 있음은 그저 지나치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네 가족이 살기에 빠듯한 소형공동주택과 소형 중고 자동차, 생계와 소박한 미래를 위해 허드렛일을 해야만 하는 아내,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란 거의 존재가 불가능한 업무현실 등은 소설이 제공하는 또 다른 고발이라 할 수 있겠다.

살아있음의 감동과 곁에 있어주는 가족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이 마구 솟아나게 하는 작품이다. 그저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표현이외에 어떤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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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가치의 전환시대에 필요한 지식 | Wish List 2008-09-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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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저항 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공포스러운 양극화의 그늘,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라는 편협된 강자중심의 논리, 서구문명의 비서구지역에 대한 허세와 왜곡, 근본주의 종교의 극한적 대립으로 인류의 이성은 이제 가치의 무질서와 혼돈에 휩싸여 있다. 인류, 전지구적 보편적 가치란 없는 것인가? 이들에 대한 지성들의 역설과 인류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이를 위해 다음의 책들을 선정해보았다. 아무쪼록 순서를 불문하고 근간부터 착수해서 읽기 시작했다.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저/박홍규 역 | 교보문고 | 2007년 03월

 

세계화의 덫
강수돌 역 | 영림카디널 | 2003년 05월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제레미 리프킨 공편/자크 데리다 공편/쟝 보드리야르 공편/제롬 뱅데 편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06월

 

유럽적 보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저 | 창비 | 2008년 08월

근본주의의 충돌
타리크 알리 저 | 미토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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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 추천 1        
우린 보편적 보편주의를 발견 해 낼 수 있을까? | 인문,사회 2008-09-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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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럽적 보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저/김재오 역
창비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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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시기라는 서구화의 물결에 거세게 휩싸인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신념 깊숙이 자리한 보편주의란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신봉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편주의라 말하는 것은 진정 전 지구적인 보편주의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보편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의 지성은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미(美)대륙 발견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를 세력범위로 통합하는 지구상 유일한 역사체제로 지속되어온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를 구성하는 지식기둥 모두가 견고함을 상실하고 있으며, 체제의 진동이 격렬해지고 무질서해지는, 그래서 근대세계체제의 권력들이 지난 5백년간 정당화시켜온 일련의 이념들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기에 도달해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2001년9월11일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새롭거나 통합된 전 지구적인 보편주의에 대한 고민을 가속화시켰다.

이 저술은 500년간 지속되어온 보편적 가치의 실체를 그 역사적 배경 하에서 조명하면서, 그 허세와 독선, 편파적이고 왜곡된 강자들의 기본적인 레토릭(rhetoric)으로서, 또한 범 유럽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근대세계체제 지배계층의 이익을 도모 할 강자들의 자기정당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美 예일大 석좌교수인 저자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박사는 이렇듯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범 유럽 세계의 오만과 허세로 가득한 그들의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라 명하고 이들, 즉 서구문명이 16세기 이후 근대세계체제의 역사 내내 그 밖의 세계에 팽창, 확산시킨 보편주의의 모순되고 폭력적이며, 탐욕으로 일그러진 상(像)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적 보편주의, 다시 말해 오늘 우리의 가치관 중심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의 다른 표현인 이 가치의 근원적이고 시계열적인 성찰에서 나 자신과 우리들의 무분별하고 무지한 가치사유와 그 무비판적 수용에 초라하고 궁색한 그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페인 인들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침탈, 원주민 인디오들에 대한 추악한 범죄로 야기된 ‘후안 히네스 쎄뿔베다 와 바로똘로메 데 라스까싸스’의 1550년 논쟁을 근대세계체제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인식기반으로 하여, 18세기, 19세기, 그리고 1945년, 1968년의 인류 지식기반의 대 격변기별로 그들의 정당화된 보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최초의 ‘개입’에 대한 라스까싸스와 쎄뿔베다 논쟁의 핵심인 “누가 개입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와 언제 어떻게 개입 할 것인가?”는 오늘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폭넓은 갈등의 중심에 놓여있는 정의의 문제이다. 16~7세기 비 유럽권에 대한 악랄한 침탈과 팽창은 비 기독교인인 이종교자의 개종, 그리고 야만인의 교화라는 명분으로, “ 그 팽창이 문명화, 경제성장과 발전, 그리고 혹은 진보”로 불리는 어떤 것을 확산시키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가치체계였다는 것이다.

이는 스페인이라는 서구의 신대륙이라는 그 밖의 세계에 대한 탐욕스럽고 잔인한 수탈행위가 자행된 이래 21세기 미국의 이라크 전(戰) 개입에 있어서도 동일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미국이 허구적이기 짝이 없는 ‘국제사회’라는 것에 주장하는, 인류사회에 위협이 되는 악으로서 이라크의 ‘야만성’이란 정치적 이고 자의적 수사로 치장된 구실을 내세워 그들이 이라크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누가 그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했으며, 그 행위들이 저질러졌을 때 그렇게 범죄로 규정되는가? 누가 처벌할 사법권을 갖는가? 처벌이 마땅하다면 처벌에 참여하는데 우리보다 더 적합한 다른 어떤 이는 없는가?”,  결국 이는 누구의 개입할 권리인가의 문제이며, 실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행동결의에서 15표 중 4표의 동의를 받는데 불과했던 이라크 개입은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자신(미국)의 의사를 밀어 붙였으며, 강자에 의해 전유된 전 지구적 보편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그들만의 정치적, 윤리적 가치의 실행임을 드러나게 한다.

한편, 18세기 서구열강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향한 인식체계에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16세기 “쎄불베다의 교묘한 변주곡”이 있다. 이 변주곡은 고도의 “고급 문명세계”인 동아시아와 인도라는 잠재적 적(敵)이자 일정한 존중을 갖도록 한 낯선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유럽 문명만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흥성한 관습, 규범, 관행”을 가지고 있다는 서구의 본래적 우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들은 '윤리적 선이자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오만한 “서구 관찰자의 발명품”으로 근대성(Modernity)'을 산출해낸다.

이들의 보편주의가 자민족중심주의이며, ‘특수주의’的이라는 역설을 낳게 한다. 이렇듯 위선과 왜곡의 보편주의가 19세기에 이르러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전 지구를 세력범위로 하는 역사체제의 고착과 함께 독창적인 인식론인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이분법적 구별을 구체화하여 자기본위적, 윤리적 확신이라는 오만의 뿌리를 내린다. 서구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나 그 밖의 세계는 특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편협한 인식론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인 대규모 탈식민화 기간은 새로운 추동력을 요구하게 되었고, 더 이상 ‘쎄뿔베다’ 식(式)기독교 복음전파라는 방식은 합당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자연법적 견지의 윤리의식에 호소하게 된다. 나아가 이의 합리화를 위해 “폭력수단의 사용만이 자신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명백한 악(惡)을 박멸할 수 있다는 구실”로 ‘꾸시네’ 식 민주주의 전파라는 왜곡된 정당화의 질서로 재빠르게 갈아탄다.

더구나 1945년 이래 의심 할 여지없는 서구 보편주의의 가장 유력한 형태인 ‘과학적 보편주의’의 대두는 “보편주의를 문화의 외부, 정치적 싸움과는 무관한 이데올로기적 중립에 위치시켜 강자들의 가장 교묘한 이데올로기 정당화 방식”으로 정착 시켰으며, 이는 즉시 “선(善)에 대한 추구를 우월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윤리적 비판의 가능성과 객관성을 평가절하 함으로써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강자를 지켜주는” “자기정당화 과정의 최종적인 못질”이 되었다.

이렇듯 500년간 대단히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전 지구를 지배해 온 그들의 보편주의가 기술과 부(富)의 엄청난 팽창으로 야기된 20:80과 같은 세계체제의 뒤틀린 양극화를 낳고, 무자비한 권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독트린으로 전락하였으며, 선과 윤리의 평가절하와 장기 추세적 균형상태의 이격으로 더 이상 지식기둥으로서의 역할이 작동되지 않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제 이 왜곡되고 편협하며 독선적이고 자의적인 유럽적 보편주의를 대체할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를 찾아야 할 터 인데, 우리는 모두 어떻게 서로 주고 받는 그런 세계에 도달해 낼 수 있겠는가? 저자는 “모든 지식의 재통합에 대한 희망을 유지시켜줄 유일한 종류의 인식론 - 배제되지 않은 중도(unexcluded middle)론 - 을 제안하지만 이 역시 그의 지적처럼 또 하나의 딜레마를 낳는다.

“성취할 가능성은 있으나 자동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실현될 거라는 보장은 없는 보편주의를 선언하고 제도화 할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지식인들의 필연적 소명이다.

서구인들의 비 오리엔탈리스트가 되려는 노력, 보편주의가 특수주의를 포용하고, 특수주의가 보편주의가 되는 “일종의 끊임없는 변증법적”교환이 지속되는 그런 세계의 도래를 기대해 본다. ‘가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동서(東西) 지식인들의 고뇌가 도처에서 진중하게 논의되는 오늘은 보편적 보편주의를 발견해 낼 그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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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음의 고귀한 가치가 수북하다! | 에세이,평론 2008-09-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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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이권우 저
그린비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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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물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실로 무수한 저술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낯익은 내용이 아니다. 그럼 나는 왜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30여 년 전인 대학시절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며, 그것은 철저하게 지금에도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나는 저자가 정의하듯이 분명 “사회적 신분상승이나 존재론적 변신”에 독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달리 표현해서 지식습득과 인격형성에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또한,“책을 읽으면서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숨어있던 악의 요소를 깨끗이 씻어냈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다. 누군가 나와 같은 이는 없을까 하던 중 출판평론가 이중한 선생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그처럼 나는 “그저 스스로 사는 것에 대한 희로애락을 좀 더 폭넓게 느끼기”위해서였으며, 타인과 쉬이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으로 비교적 많아진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의도일 뿐이었다.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무하여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겠다는 정서적 위안이었고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절대적 도구였다는 점이다.

이렇듯 독서는 책을 읽는 사람마다 독특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옳다. 이 옳은 조언들을 수식하기 위해 인용하고 비유하여 부연된 구구절절에서 그가 우리사회에 들려주는 지혜들 모두 아름답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의 일화부터, “도리는 이미 주어진 것인데, 아직 그 실체를 우리가 모르므로 책을 읽어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책은 나를 성장하도록 이끈다, 책은 징검다리이니,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처럼 책 읽음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명료하게 설명되고 있다.

한편, 책을 읽지 않는 우리사회, 그리고 청년들을 향해 뱉어내는 그의 패러독스는 멋지다. “오늘의 청년들을, 역설적인 의미에서 이해할만하다는 상념이 불쑥 들었다. 먼저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우리사회에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금력과 권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지식과 지성의 가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천박하게 동냥한 몇 줄의 지식으로 권력과 영향력의 속성만을 꿰어 차기만 해도 살 수 있는 사회이기에 그렇다는데 공감한다. 여기서 이 저술이 부분적으로 지적하는 독서와 교육계에 대한 상념까지 서술하는 것은 피하련다.

“책은 거짓과 위선, 그리고 권력의 타락을 눈치 채게 해준다.”, “책 읽기는 마치 여투는 것과 같다.... 온축되면 절로 큰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세속적 의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실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삶의 지혜로 드러나기도 한다.”와 같이 무궁무진한 책읽기의 효능을 서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의 의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나의 독서관(讀書觀)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키게 했음에 틀림없다. 바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려 해서이다.라는 언급이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란 공감이 바로 우리를 독서로 견인하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각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끝으로 저자가 우리 인간들의 자제력 상실과 오만을 경계하는 언어로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귀중한 조언 - 지식에 대한 열망에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쌓은 바벨탑은 그래서 위험하다. 무조건 앎만 추구하는 삶은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는 파우스트다. 앎의 궁극에 이르면서도 지배와 권력의 욕망을 경계할 줄 아는 것. 이 역설을 부여잡고 있을 적에 진정 책의 주인이 된다. - 은 오늘의 혼돈된 우리들의 가치에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즐겁게 읽었고, 공감했으며, 책 읽음의 고귀한 가치를 얻어간다.

주1)여투다: 돈이나 물건을 아껴 쓰고 나머지를 모아두다.

주2)온축(蘊蓄): (오랜 연구로 학식을 많이 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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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정겨운 사람풍경 | 에세이,평론 2008-09-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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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속 우산을 펼치다

최안희 저
에이지21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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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우리네 삶의 여정이란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우연과 선(善)의 발견과 되새김이지 않을까?

샘과 애니 두 사람의 여행은 “세상소리에 귀 닫고 눈 닫고 우리만의 여행을 떠나보자” 했다지만, 아마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출발이었든 싶다. 낯선 이들의 삶을 넉넉히 들여다 보는 여유와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라는 자기실현과 베풂이 가져오는 만족감을 과시하고자 하는 일거양득의 의도된 목적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삶의 고귀함, 무소유, 삶의 향기라는 새로운 시선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기억을 걷는, 가슴에 물든, 그리고 향기로운 사람풍경”이란 구성은 그들의 여정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단상으로서 진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삶의 고됨이 그대로인 릭샤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따뜻한 연민의 마음으로 베풀어지고, 작은 마음 씀이 타인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이해는 쪼그라든 우리들의 가슴을 관대한 여유로움의 가치로 넓게 채워준다. 나는 너와 그러한 애석함과 사랑으로 소통하고, 그래서 시작된 그들을 위한 한 장의 사진들, 그 속에 있을 미소들이 잔잔한 행복감을 던져준다.

현실을 떠나 훌훌 떠 날 수 있는 용기는 이미 여행의 시작이리라. 찌든 욕망과 팍팍한 부딪힘의 일상을 떨치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다른 세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여행하는 것은, 바로 주어진 짧은 생(生)의 소중함과 자신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자 가치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갑자기 내린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 “인생은 흐른답니다. 당신이 이 순간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는 생긴답니다 ~ ” - 낯선 중얼거림이 짓눌린 삶의 무게를 가벼이 해주고, 문득 우리가 필요치 않은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각성이 짐을 벗어버린 듯 더욱 홀가분하게 한다.

“작은 음식에도, 작은 베풂에도, 따뜻한 방에도, .... 그렇게 가난한 삶속에 작은 행복은 축제와 같다.”는 이들의 인도여행 정리는 긴장된 삶을 평온하게 해준다. 그리고 손해를 입은 듯하지만 오히려 ‘굿 카르마(業)’라 일갈하는 인도 시장상인의 넉넉함에서,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순간 재로 환원하는 우리들 육신에서, 드루실라 수녀님의 무소유의 삶에서, 이별에 무덤덤한 쉬바카쉬 게스트 하우스의 아이들 표정에서 소박함과 여유로운 행복이 묻어나고, 덧칠하지 않은 사람이 중심이 된 정겨운 풍경사진들의 순수함에서 즐거움, 사랑, 행복이란 어휘들이 어느덧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따뜻하고 정겨운 여행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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