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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서울 국제 도서전 | My Favorites 2009-03-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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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09. 5. 13(수)부터 5.17(일)까지 5일간 <서울 국제 도서전>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 홀 및 인도양에서 개최됩니다.

 


올해의 주빈국은 '일본'으로 온다리쿠,요시다 슈이치,에쿠니가오리 등 유명작가들이 대거 내한하여 한국의 독자들과 만남도 이루어질 예정이란다.

또한, 해외 출판사들의 저작권 담당자들이 대거 내한하여 미처 국내독자들에게 선을 보이지 못했던 많은 우수도서들이 이번기회를 빌어 소개가 가능한 결실을 맺을수도 있겠다 싶다.

 

한편 2009볼로냐 아동도서전 주빈국관 일러스트레이션 그림책을 이번 도서전에서 다시 소개하는 행사도 갖게되며, 이외에 영화화된 원작도서들과 해당 영화의 시사회도 병행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오는 4.30까지 옆의 사전등록 주소로http://www.sibf.or.kr/kor/html/visitors/pre.php 이동하여 사전등록하는 참가자들에게는 입장료(3,000원)없이 무료로 입장가능하며, 응모권 추첨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전시장을 찾는 독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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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인간이 되고자했던 한 청년의 살인과 처절한 삶의 고백 | 소설,시 2009-03-3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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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화이트 타이거

아라빈드 아디가 저/권기대 역
베가북스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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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인도의 오늘을 그리고 있지만,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경쾌한 독서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아라빈드 아디가’의 처녀작으로서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수작(秀作)이다. 여전히 지구촌에는 천부인권이니 하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낯선 인간부재의 사회가 실재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각성과 투쟁의 현장을 적나라한 언어로 조명하고 있다.

인력거꾼 ‘비크람 할와이’의 아들,‘무나(어린아이라는 의미)’의 살인자로서의 추억이라 할까? 중국 공산당 서기 ‘원 지아바오’에 보내는 편지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수신자가 왜 하필이면 ‘지아바오’인지에 대해서는 산뜻한 의미를 알 수 가 없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락스만가르’의 고단한 일상은 물소만도 못한 짐승의 삶이 지속될 뿐이다. 지주들의 착취, 공무원의 노골적인 부패, 사회 어느 곳에서도  썩은 시궁창 냄새가 들끓지 않는 곳이 없다. 가난과 짐승보다 못한 삶은 대물림 되어 아들에서 손자로 지속 될 뿐이다. 21세기 지금에도 인도의 카스트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이 참담한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할와이(과자 만드는 사람)’가 할 수 있는 일은 찻집의 바닥에 거미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며, 쓸고 닦는 일 이외에는 존재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정글엘 가더라도” 희귀한 짐승이 있듯이 “한 세대에 딱 한번만 나타나는 동물”, ‘화이트 타이거’만이 험한 정글을 극복해 낼 수 있다.

주인님으로 불리는 상류계급에 독점된 ‘부(富)’에 접근하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고작 제복을 입은 버스차장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는 줄 알 정도의 미스터리인‘무나(발람 할와이)’에게는 이 천(淺)한 어둠의 세계를 탈출할 생각으로 그득하다. 할와이라는 신분에는 절대 쥐어지지 않는 운전기사가 되려는 ‘발람’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우연찮게 고향동네 락스만가르에서 자신들을 노예로서 착취해대던 “짐승만도 못한 괴물”, 지주‘황새’의 운전기사가 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황새의 아들 ‘아쇽’내외의 전담 운전기사가 된 발람의 눈과 귀를 통해 보여 지는 상류사회는 탈세와 정치자금이라는 뇌물처럼 서로 등쳐먹는 부정과 부패의 고리로 연결되어있고, 자신들의 부귀이외에는 국민의 처참한 삶은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존재할 뿐임을 깨닫는다. “가엾은 인간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빛을 찾아보겠답시고” 화려한 대도시‘델리’로 모여들지만, 그들에게는 탁한 매연과 부패한 음식물과 오물, 검은 갠지스강에서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가 진동하는 공기밖에 주어지는 것이 없다. 여전히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과 상류층은 “두 개의 도시”에 있는 것임을 검은색 혼다시티의 차내에서 안과 밖의 대비를 통해 목격한다.

50만 루피의 뇌물을 주고 돌아와 1 루피 동전을 잃었다고 운전기사를 닦달하는 괴물인간의 형상에서 우리라는 인간의 공존이나 연민이 자리할 곳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류계층의 억압과 착취 못지않게 대다수의 국민인 하층민들의 체념과 지배체제에 대해 보이는 무능함과 안이(安易)의 태도는 닭장에 갇혀있는 닭들의 그 무심한 무저항의 모습에 비유된다. 동료의 목이 비틀려 철철 흐르는 피에도 닭장에서 꼼작하지 않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닭들의 그 어리석은 평온에서.

발람은 닭장에서 뛰쳐나오는 길을 찾는다. “제가 원했던 오직 하나,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그걸 위해 그는 단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70만 루피가 든 가방을 들고, 인도의 첨단 산업단지가 있는 기회의 도시‘방갈로르‘로.

그는 성공했다. ‘어둠의 세계’를 벗어났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충분히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면, 사람들은 델리의 국회의사당 근처에다 동상을 세워줄 테지만, 그런 건 영광일 뿐” 발람이 추구하였던 것은 오직 인간다움 삶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투쟁에서 제가 승리하지 않았던가요? ”하는 발람의 이 외침이 그의 “아버지가 묵묵히 견뎠던 채찍질을 견디지 않으려는 투쟁, 어머니이신 갠지스강의 시커먼 진흙탕 속에 산처럼 쌓여 썩어 문드러질 이름 없는 육신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으려는 투쟁”이 살인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인가? 라는 의문에 작가는 갈등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패한 사회를 딛고 선 자신의 기업과 자본들에 시니컬한 조롱을 날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 명의 살인과 자신의 17명 가족의 죽음으로 비로소 얻어내야 했던 처절한 삶의 고백은 인간의 기본권에 도전하는 지배층의 야만적 복귀에 그들의 선(善)만을 기대하기에는 위태롭다고 부르짖는 민중의 울부짖음으로 들려온다. ‘아디가’의 후속 작품집,“Between the assassinations"의 국내 출간을 기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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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학의 미래를 위한 절절한 가르침 | 에세이,평론 2009-03-2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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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

한승원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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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7개의 강의로 구성된 한승원 선생의 이 소설작법은 한국문학에 새롭게 등장할 미래의 신인작가들에 대한 선배작로서의 절절한 주문과 노파심이 배어있다. 해서 나름 오랜 기간 문단 데뷔를 위하여 연구과 독서, 습작을 하여온 이들에게는 겸양의 미덕과 복습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터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소설쓰기의 입문서로서 귀한 책 읽기가 될 것이다.

또한, 소설 쓰는 이들의 작품구성과 소도구적 장치, 주제의 배치 방식, 표현기법 등을 통해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 내심 어려워하던 독자들에게도 많은 해갈을 안겨 줄 것 같다.

소설 작법의 첫머리에 ‘반전’을 이야기하며 소설의 재미로서의 요소를 설명하는 것은 소설은 우선 읽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인 듯하다. “사람들은 반전을 희망하면서 세상을 산다. 반전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도 없다.”고 인간사의 필요충분적 요인으로서 독자를 기대케 하고, 그래서 작품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것이기에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터이다. 또 하나, 이러한 읽히는  소설로서의 요소로 ‘대립과 갈등’에 대해서, 인간자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의 숙명적인 갈등과 대립의 비유를 통해 소설의 본질적 구성임을 설명하고 있다.

“대립구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 그 소설 작품에는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문장이 탄력을 잃는다. 구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야기에 재미가 없어진다. 주제를 확실하게 도출해낼 수 없다.”에서처럼 소설에서 그 영향이 어느 정도에까지 미치는지 거듭 확인시켜준다.

한편으론, 작가 자신의 소설관(觀)을 통해 오늘의 우리문단, 특히 젊은 작가들에 대해 한국문학의 지향점, 소설의 당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 세상은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몫이다.”그리고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인간과 세상과 우주를 부정하는 작품들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일심(一心), 즉 “하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소설의 주제로서 상승하는 우주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특히, 어쭙잖은 서구소설의 흉내로 한국소설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작품에 우려를 보내고, “한국소설의 전통회복이야말로 한국문학에 우주적인 원형(순리)을 담는 길이다.”라고 한국문학의 보편적 의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상업주의에 편승해 무분별하게 출간하는‘소설(?)’들에서 목격하게 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서’직접적인 설명으로 기술된 이야기들은 정말 아연실색케 한다. 번번이 이러한 책들을 읽고나면  이것이 에세이인지, 시사평론인지, 회고록인지 알 수 없는 장황한 사변적 주장으로 소설문학을 오용한 거북함을 느끼게 하였는데, 그 문제의 명확한 실체를 선생의 지적으로 확인케 되는 즐거움도 있다.

“주제는 작가가 작품의 말미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써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전체의 이야기, 즉 관념의 하부구조를 통해 독자의 가슴에 안겨지는 것이다. 작품 전체가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비유덩어리이다.”

이 얼마나 명료한 설명인가, 이어지는 ‘형상화’에 대한 비중 높은 강의에서 그 실체를 더욱 뚜렷하게 체득케 된다.

아마‘말(言)’의 관념과 인식의 해석에 대한 설명과 ‘형상화’에 대한 꼼꼼한 해설은 이 저술의 백미(白眉)중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관념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은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의 삶에 제한받는다. (중략) 사람은 참으로 미련한 동물이어서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보지 볼 수 없는 것은 보지 못한다.”결국 이러한 인간적 지식의 한계성으로 “그 관념의 하부구조를 만들어 그림 그리듯이 독자에게 보여주어야”하는 형상화는 소설의 핵심적 사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형상화의 예로 한승원 선생 자신의 단편소설'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를 통한 세밀한 예시와 해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김춘섭의 평문<농현(弄絃)의 미학, 역설의 미학>은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때론 훈계하고, 주장하고, 수사법이나 소설 유형의 설명까지에 이르는 과잉(?)친절까지 담고 있지만 1968년 선생의 신춘문예 당선작'목선'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제25강은 작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한껏 불러일으켜 주기도 한다.

“작가는 절망하면서 쓰고 희망을 가지고 고쳐야한다.”는 만들어짊에 대한 각고의 노력을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추사' '다산' '초의' '멍텅구리 배'...등 이들 작품은 최소한 열 번에 이르는 추고과정이라는 지난한 투쟁에서 수확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케 된다.

소설의 기본 작법에서 문장의 밀도, 형상화에 이르는 이 저술은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미래의 작가들은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이고도 충분한 이해의 기반을 제공해주는 귀중한 길잡이가 된다. 귀한 우리문학의 대표 작가이신 한승원 선생에게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註① 단편소설‘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는 한승원 작가의 소설집<잠수거미>에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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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무의식의 영혼을 치유하는 법 | 인문,사회 2009-03-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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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오의 기술

가브리엘 뤼뱅 저/권지현 역
알마 | 200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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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즉 억압되거나 지워져버린 무의식의 세계를 풀어헤치는 심리치료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유아나 어린 시절의 상처받거나 표출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억압되어 무의식으로 침전된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그 손상된 상흔을 치유하는 패턴이다. 결국 이 저술의 주제가 증오의 기술이 되었든, 용서의 기술이 되었든, 상담환자들에 대한 저자의 접근태도는 동일한 것으로서 새로운 지식의 전달로서 이해되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부모나 형제, 자매로부터 받았던 어린아이의 상처가 성장하여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느 만큼이나 삶의 고통으로 지속되며,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고통의 괴로움을 가해자에게 향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에 돌리는 피해자에 대한 치유의 지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에게 그 잘못을 묻지 못하고, 외려 죄책감이란 감정을 자신에게 향하여 이로 인한 내면의 피폐함이나 또는 광기로 치닫는 사례를 보면서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서기도 한다.

책은 가해자의 분류를 통해 사례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딸을 근친상간하는 파렴치한 아버지와 같은 가학적 가해자, 자식을 경쟁자로 또는 노예적 분신으로서 이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이기적 가해자, 어린자식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가해 의도는 없으나 가해의 결과를 낳는 무고한 가해자를 예로 하고 있다. 한편 마조히즘적 선량하기만 한 피해자, 죄를 뒤집어쓰는 피해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 사례를 쫒다보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원형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근친상간을 당한 여자아이의 완전히 파괴된 영혼이 성인이 되어서도 치유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의식속에 완전히 침전된 쾌락 때문일 수도 있다고”환자를 방해하는 무의식의 기억을 설명하기도 하며, 또한 어머니와 자신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한 중년 남성의 예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지속된다.

이는 무의식속에 “자기 불행을 인정하거나 자기감정에 빠지는 일이 금지”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결국 “가해자를 원망하지 못”하고, 부모라는“사랑하는 존재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자 그에 대한 원한을 표현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가해자에 향했어야 할 적대감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자기표현의 충동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바깥으로 투영되지 못한 충동이 리비도 에너지를 환자 본인에게 되돌리게 되어”극단적인 보복을 낳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상처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원망하지 못하고, 더구나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상황은 자아분열, 우울증, 자살과 같은 그간의 고통을 자신에게 돌려, 더욱 그 고통을 심화시킨다. 저자는 이와 같이 “피해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책임지게 하는 메커니즘은 개인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인용되고 있는 ‘모스크바 재판’에서와 같이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걸세!”와 같은 모순되고 설명 불가능한 기이한 일들이 우리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믿는데 ‘가해자는 옳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 가해자인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적 충동을 느낀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그런 감정이 정상이며,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외부의 현실에서 욕망을 실현 할 수 없게 되면, 인간의 무의식은 상황을 이용해 광기를 드러내고 욕망을 실현한다고 하는 ‘피란델로’의 비극 <하인리히 4세>나, ‘프로이트’의 <환상의 미래>를 통해  보상을 받는 광기의 금지된 욕망에 대한 저항을 설명하기도 한다.

어두운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는 신비스럽기만 하다. 이 임상사례집이라 할 수 있는 ‘증오의 기술’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무심한 행위가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면 또 다른 수확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가해자를 원망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그 상처를 돌려 자신의 영혼을 손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워버린 기억, 억압된 기억들로 고통 받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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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와 벤야민의 탁월한 입문서 | 인문,사회 2009-03-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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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벤야민 & 아도르노

신혜경 저
김영사 | 200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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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과 아도르노의 저술을 접하기 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는 이 두 명의 지식인에 대한 사상적 기반, 주요 저술에 대한 해박한 해설, 그리고 이어지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토론과 이들의 연장선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이슈로 구성된 이 저작은 훌륭한 입문서, 나아가 소개되는 이들의 저술에 대한 핵심적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길라잡이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과 <문화산업론> 그리고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용어의 해설을 기반으로 하여 비판이론, 동일화, 사물화에 이르는 아도르노 사상의 본질적 탐험은 물론, 그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진정한 예술을 향한 미학이론을 설명하며, 또한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가치전환, 그리고 충격체험, 몽타주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이르는 풍부한 배경 이론으로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한편 이 저술은 칸트와 마르크스의 철학전통에 입각한 비판이론과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여 오늘의 대중문화를 읽어내는데 적합지 못하다는 비판의 의견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벤야민의 예술이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할애한 것은 다소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작의 후반부 ‘대화’편에서는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신랄한 난상토론을 게재하고 있어 독자들의 판단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등 지적흥미를 제고시키고 있기도 하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이전의 다른 어떤 이론가들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중문화와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의미와 역할을 중요하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평가를 수행한 이론가”들이다. 즉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된 계몽주의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양식’은 오히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발전시킨 사회체계의 구속아래 점차 종속되어갔다는 인식에서 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서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의 산물은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동일한 것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중략) 대중문화는 우리가 진지하게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힘을 무력화 시키는데 한 몫 함으로써, 기존의 잘못된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고 대중문화의 현실을 비판하고, 우리에게 대중문화가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억압과 기만을 낳는가?”고 질문한다.

 

급기야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은 “사람들의 내적 본성에 작동하여 모든 사람이 동질적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며 행위 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고 ‘동일화’로 인한 대중의 포섭과 통제, 지배관계와 이데올로기 정당화의 도구역할에 머물며, ‘루카치’의 ‘사물화’이론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노동 산물과 대립하고 오히려 산물에 지배당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결국 오늘날의 독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예술이 더 이상 문화와 예술이라는 범주 속에서 고찰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예술은 고통이 현존하는 상황에서조차 고통을 극복해야 하며, ‘행복에의 약속’을 드러내야 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을 주장한다.


 

한편, 벤야민 사상은 신학적 배경과 유물론적 사유가 교차된 특수한 사상으로 정의하면서, ‘아우라’의 상실로 대변되는 현대의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문예이론을 소개한다.

오늘날, 사진, 영화, 음반과 같은 기술복제시대의 새로운 예술은 수많은 복제물의 생산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애초 원본과 복제본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아우라를 상실해버린 예술은 더 이상 숭배가치가 아니라 전시가치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이전과는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영화와 같이 감상방식의 집단화로 정신 산만한 새로운 수용방식을 요구되는가하면, 수많은 영상들의 흐름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같이 깊이라는 차원을 상실하고 파노라마식 시선과 같은 새로운 지각방식을 가져오게 하였음을 지적한 벤야민의 저술에 대한 개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더구나‘푸돕킨’의‘연결 몽타주’와‘예이젠시타인’의‘충돌 몽타주’에 대해서, 그리고 ‘바쟁’의 몽타주라는 형식원리 비판에 대한 해설, ‘월든’,‘고다르’의 전통영화와 대항영화에 대한 소개까지 흥미진진한 대중예술의 현대이론이 독자를 즐겁게 한다.

“수익을 올린 작품일수록 그 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나 사회적 유용성 등의 논의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나버리는”“시장성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오늘의 대중문화는 과연 “예술과 현실 사이에 화해되지 않은 긴장에 의해 남아있는 흔적과 차이를 정확하게 그려내고 해독하고 있는가?” 오늘의 대중예술이 극복하고 자동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대중의 정신적 불구에 대한 자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귀중한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끝으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저술을 읽기 전에 이 입문서를 반드시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낯선 미학의 언어들과 난해할 수 도 있는 벤야민의 저술을 본격적으로 독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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