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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득한 느림의 여행 | 에세이,평론 2009-06-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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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원도 고갯길 여행

임동헌 저
송정문화사 |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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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흩날리고 길은 운무(雲霧)로 뒤덮였다.” 굽이굽이 강원도 고갯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저 아래 가마득히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산림의 바다에서 시원(始原)의 경외를 느끼곤 한다. 글쓴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산준령(高山峻嶺)이 가로막은 마을마다 삶을 이어가고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넘어서야 했던 고갯길의 미학과 그곳에 깃든 자연과 사람의 향기를 찾는다.


도리 없이 ‘느림의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고갯길 여행은 길을 떠난 나그네에게 자연이 구분해 놓은 삶의 경계를 떠나 서로 다른 삶과 문화를 발견케 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지혜를 선사한다. 그곳에서 “산빛 물빛 닮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긴 채 그 순응을 즐거워하고 “문명의 속도를 거역하는 사람들”의 풍요롭지는 않으나 삶을 향기롭게 가꾸는 자연의 얼굴을 본다.


속도에 편승해 내달리는 길에서는 결코 마주할 수 없는 것들을 고갯길 여행, 그 느림과 의외의 방향성에서 “길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자각과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래서 산 아래 마을이라 해가 일찍 지기에 아침나절 얼른 일해야 한다 해서 ‘아침가리’인 인제의 산마을도 알게 되고, 지금은 여객을 취급하지 않는 호젓한 산책공간으로 진화한 간이역 ‘도경리역’을 찾을 수 도 있다.

‘제뱅이’, ‘윗반쟁이’하는 옛사람들의 사연이 깃든 향토어(鄕土語)에서, “달빛이 처음 비추는 고개”라는 뜻으로 붙은 구룡령 ‘달하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양양과 인제를 잇는 광치령에 축구장 다섯 개 넓이의 습지‘용늪’의 아우라를 느끼고, 백복령에서 정선 쪽으로 살짝 내려오면 돌리네(Doline), 우발레(Uvale)가 이루는 카르스트의 빼어난 계곡과 용천수까지 천혜의 경관을 만끽하는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마을 청년들의 일제징용과 6.25참전으로 넘어서는 고갯길은 살아 돌아오기 난망한 일이어서 ‘이별고개’라는 눈물어린 ‘너그니령’, 한국 포장도로 중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해발 1,330미터 만항재길 까지 무수한 삶을 잉태한 30개의 고갯길 사연이 느리지만 아름답게 배어난다.


“저녁이 되면 세상의 길들이 집으로 돌아온다”(송주자 作, 등대에게 길을 배우다 中에서)고 노래했듯이 길은 삶이고 쉼인 모양이다. 느림의 여행이 주는 삶의 향기가 그득한 이 여행 에세이는 올 여름 강원도 산길을 달리는 우리들의 가슴을 풍요롭게 해 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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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시대를 견뎌온 해금이들 이야기 | 소설,시 2009-06-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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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저
문학동네 | 200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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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해금이 등‘아홉 송이 수선화’가 밟았던 인생길은 그 가장 예뻤을 시절을 앗아가 버린 우울하고 고통스런 시간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메케한 냄새와 희뿌옇게 도시를 점령한 최루가스와 차 밑창을 하늘로 한 채 뒤집혀 불타고 있는 경찰차량, 연일 새까맣게 몰려드는 시위학생과 군중, 그리고 착검한 소총을 둘러멘 공수부대 계엄군, 짭새한테 용돈 받고 동료를 밀고하는 파렴치한 녀석들, 계엄군 검열에 삭제되어 시커멓게 이 빠진 신문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처럼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밤하늘 아래 원을 두르고 어깨동무하여 민주를 외쳐댔었다. 당시 대학신문사에 있었던 나로서는 거의 시위현장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밤이면 낯 시간의 시위를 마치고 인근의 대학으로 몰려드는 지방대 학생들까지 합세한 한 밤의 열기를 취재하느라 날 새기를 밥 먹듯 하기도 했다. 경애, 수경, 승규,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검이 일상처럼 우리들의 환경이 되어버린 그런 야만의 시대였으니, 그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은 온통 상실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었다.


작가는 그러나 온 몸으로 살아내었던 스무 살의 해금이와 정신, 승희, 만영이...가 가장 예뻤다고 기억한다.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질 거야”하는‘시인(김진혁)’의 위로처럼 그네들의 울음이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만들어냈으니 그보다 예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 그때 민중들의 삶은 정말 고단했다. 늦은 저녁 동네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길가에 연탄불을 내놓고 국수 삶을 물을 끓이는 이웃들이 허다했다. 오랜 군부독재의 그늘아래 신음하던 서민들의 삶은 뒤틀릴 데로 틀려있어 노란 불빛이 비추는 단란한 가족, 그것이 희망이던 음울한 시절이었다. 스무 살 해금이들은 그래서 공장으로 막노동으로, 이념의 장으로 변질된 대학에서 ‘뚜뚜전’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혁명적 노동의 길’이라는 낯선 길로 내몰렸었다. 지금은 디지털단지라고 멀쩡하게 이름까지 바뀐 당시의 구로공단은 작품에서처럼 소외된 공장노동자들의 벌집이 다닥다닥 붙어 그야말로 “본능만이 살아서 꿈틀대는 동네”, “야만의 시간이 지배하는 동네”였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기막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정부발표는 비밀주의와 폭력성, 국민 기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독재정권의 파렴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악아, 우지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하고 해금이를 토닥여주는 승희 엄마의 품속, 아주 오래 묵은 엄마의 냄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잊어버렸던 그 처절했던 기억들을 풀어낸다.

이 작품은 이렇듯 오늘의 우리들이 이루어낸 소중한 가치들을 당시대를 절절히 앓아왔던 해금이 들의 모습을 통해 잔잔하지만 격렬하게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작품 어디에도 극한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은 없다. 냉혹하고 야멸치게 쏴 부쳐야 할 때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문장이 더욱 속 깊은 의미로 다가서게 한다.

상경한 아이들을 데려다 매매하는 인간쓰레기의 “자아 여러분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기도는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파~아~하고 터지게 한다. 또한, 노동자와 운동하는 이들과의 괴리, 즉, 당시 노동운동의 모습을‘일터’와 ‘현장’, ‘일꾼’과 ‘존재이전’이란 허풍스런 비난에 슬쩍 담아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품은 그냥 노동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80년 해금이 들의 그 서럽기 그지없는 눈물들을 아른거리게 하고,  건강함과 정당함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그네들의 얼굴, “짜디짠 소금물이 어쩔 땐 영혼 속까지 배어들어오는 느낌”으로 시대를 살아온 그네들을 잊을 수 없게 한다. 진정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의 그 터무니없던 시절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러나 통렬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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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증언으로서의 예술에 대해서 | 에세이,평론 2009-06-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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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저/박소현 역
돌베개 | 200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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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기행문을 순수한 미술에세이로 읽기위해서는 몇 가지 부담스러운 표기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식 어휘의 고집, ‘한국’의 표기를 거부하고 ‘조선’을 주장하는 작자의 정체성에 대한 거부감을 잠시 물리치는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別論으로 하자)

몇 개의 장은 독일 등지의 미술관 방문을 통하여 확인하고 감상된 표현주의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작자의 단상이고, 일부는 대담형식을 차용한 미술평론이며, 또 일부의 장은 주관적 미술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미 이들 에세이는 오래전 일본의 잡지들에 발표되었던 내용들을 재구성한 것이어서 부분적으로 시간의 왜곡현상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작자의 초지일관하는 주제만큼은 분명하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 ‘에밀 놀데’의 고향 ‘제뷜’의 작은 미술관을 향한 작자의 기행에서 작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라고 정의하고 미의식은 역사적, 사회적 산물일 뿐이라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래서 독일 표현주의 운동의 핵을 형성한 놀데를 중심으로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로빈스 코린트’ ‘조지 그로스’의 작품을 통하여 주제를 표현하는 미술, 즉, “동시대인의 찌푸린 얼굴에 거울을 들이대는” 진실주의 회화에 집중한다.  내적 충동표현의 광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어 이의 연장선에서 전쟁의 기억을 그려낸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화가 ‘오토 딕스’에 대한 찬양적 수사가 한 개의 장을 이룬다. 전쟁의 참혹한 폐해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는 그의 전쟁화(전쟁제단화)를 비롯한 나치의 퇴폐화(畵) 박해 등 일련의 추함의 미적 추구를 설파한다. 이는 한국미술에 전쟁화가 거의 없고 예쁜 미술에 집착한다는 일종의 한국미술에 대한 비판과 결합한다. 즉 한국의 근대화란 일본의 식민지로서 강요당한 2급 시민의 입장에서 경험했기에 완전한 근대화 주체일 수 없었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또한 국민들의 미의식을 통제하고 지배하려했던 한국의 군사정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에 공여한다. 결국 미술은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체제저항과 소외된 삶들에 대한 적나라한 표출을 담아내야 한다는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자본주의 모순, 인간의 탐욕, 시대상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주장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한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폭력의 증언자로서 ‘펠릭스 누스바움’이나 불신에 대한 광적 숭고로서의 ‘카라바조’의 해석은 작자의 특이한 집착과 열광을 보게 한다.

한편 ‘반 고흐’의 원근법의 권력에서의 탈피와 예술과 재화의 모순적 병행에 대한 당위화는 저작자 자신과의 동일시는 물론 미의식에 대한 작자의 전반적인 신념을 위한 기반이 된다.

역시 증언예술의 일환으로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유대인 학살사진자료를 비롯하여 피카소의 한국전쟁에서의 양민 학살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대학살(The Massarcre in Korea)'까지 인용하면서 1948년 제주 4.3사건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 예술의 세계에서는 부재의 표상이 학살이나 전쟁을 예술적으로 표상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적절히 묻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추도를 의미한다.”고 전쟁과 인간의 잔혹성을 빗대어 과거의 한국을 비하하기도 한다.

결국 이 미술기행문은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재일한국인이 한 발은 한국에 담그고, 일본에 거주하며, 한국은 부정하고 조선을 주장하며, 남북분단이 미국과 반민주세력에 동조하여 김일성의 민족세력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방해한 결과라고 믿는 사람의 낡은 이데올로기 예술을 동원한 분노 표현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비판과 참여를 담는 미술이라는 이 저작물이 관통하는 주제를 예술사조에 대한 해설이나 비평으로만 읽기에는 순수치 못함으로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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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서울은 이방인들에게 어떤 곳일까? | 에세이,평론 2009-06-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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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공저
씨네21북스 | 200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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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이, 그리고 한국의 면면이 어떻게 보여 지고, 이해되고 있는지에 대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사실 이러한 단상들에 대한 내용은 100만 명을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신선한 소재거리도 내용도 전해주지 못한다.

특정분야에 초점을 맞춘 전문적 진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TV 연예프로그램의 말초적이고 통속적인 에피소드의 나열도 아닌 어중간한 내용으로 이들의 관심사에 그렇게 집중할 화제가 없다.


영어선생, 디자이너, 화가, 영화학자, 댄서라는 직업과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이들이 서울에서 어떤 일상과 접하고 그 가운데 느낀 우리사회에 대한 소견들을 마냥 호기심으로만 바라보던 시대가 아닌 오늘에는 그들이 어느 장소를 좋아하고, 한국인들이 어떻게 비춰지는지와 같은 일반적 관심사를 나열하는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파란눈의 영어선생님,‘로버트 프리먼’처럼 한 인간으로서 아시아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일궈나가고, 인생의 깊이를 깨달아가는 모습, 아이들의 순수와 성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선생님인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진정하게 다가온다. 한국인과 섞여 지내고 그들의 음식과 문화에 익숙해지지만 어쩌지 못하는 고독과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방인의 진솔한 면모가 보기에 좋다.


모국에서보다 삶의 자유로움을 더욱 만끽한다는 이들과 경쟁의 일상에 빼꼭히 점령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네의 비견되는 삶에서 낯섦에의 도전과 고독함의 사유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보는 것은 작은 발견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인‘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방인들의 지적이 있지만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판타지와 전근대적인 예스러움과 동의어만 같아 선뜻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무차별적인 도시 개발 능사를 벌이는 우리의 안목 부족은 안타깝고, 또한 경계되어야 하는 일면이고, 이에 더해 종로가로변의 혐오스런 도시라인의 훼손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도 저도 아닌 흉물스런 모습은 부끄럽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서울 사람으로 동화된 이가 있는가하면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의 신나는 경험을 안고 자신의 나라에 돌아갈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시선에서 묻어나는 소견들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이유도 없겠지만 한결같이 조언하는 한국인들의 서구의 무차별적 흉내와 자신의 것을 잃어버려 궁극에는 한국을 표현할 어떠한 것도 남지 않을까한다는 우려는 오로지 물질에 현혹되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우리들에게 따끔한 충고로 새겨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새로운 식견이나 시선을 담아내지 못하고 진부한 동어반복의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이 소 책자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접기 힘들지만, 지극히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평범한 이들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미흡하나마 들어보는 짧은 기회로서 의미를 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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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테러범을 잡으려면 첨단 잠수함이 필요하다? | 인문,사회 2009-06-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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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권력의 포르노그래피

로버트 쉬어 저/노승영 역
책보세(책으로 보는 세상) | 200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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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의적 세계주의, 신제국주의, 군국주의, 케케묶은 옛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촌의 경찰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실체를 일컫는 말이다.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일명 PNAC로 불리는 네오콘 골수 분자들의 “새 세기를 미국의 원칙과 이익에 부합하도록 바꾼다.”는 1997년 창립선언문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 국가의 전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부르짖는 패권주의와 인간의 탐욕이 한데 뭉친 것을 소위 ‘군산복합체(軍産複合体)’라 부른다. 즉 거대한 군수산업의 짭짤한 이익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 많이 취하기 위해서는 안보위협과 전쟁은 필수적이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해체, 중국의 시장계획경제로의 전환 등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네오콘의 자금줄은 고통을 겪는다. 럼스펠드, 딕 체니, 리처드 펄, 부시, 파이스, 윌리엄 크리스톨, 폴 월포위츠 등 일군의 신보수주의 세력은 제국을 영구적인 전시태세로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고, 9.11 테러사건은 이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게 하는 기회이자, 국민을 겁박하고 군비를 증강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 절대적인 명분이 되었다.


이 저술이 록히드마틴, 보잉 등 군수업체와 정치권력이 결탁한 군산복합체의 그 추악한 기록들을 통해 정치, 경제적 해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고발하여, 자국(미국)의 경제적 낭비와 손실, 국민경제의 훼손에 대한 국민인식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나,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재앙적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정치와 경제의 부패한 유착이 국가경제에 어떠한 손상을 입히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하여주기도 한다. 특히, “국가의 안보불안, 정치선동, 경제적 탐욕, 과도한 애국주의, 종교적⋅이데올로기적 열성에서 비롯하는 압박은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 현상”이란 지적과 같이,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기만 하면 용공주의자니, 좌익이니, 조국이 풍전등화에 있는데 애국도 모른다느니 하는 우리 정치의 전형적 파렴치의 구태도 목격하게 된다.


9.11 사건의 주범인 ‘빈 라덴’ 일당을 무찔러야 하지만, 그들은 특정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국가도 아니고, 첨단무기를 지니고 있지도 않는 사막의 어느 동굴에 있는 집단일 뿐이다. 19명의 9.11 테러범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이 15명이다. 군산복합체, 이 군국주의 교파의 사이비 종교적 목표와 상업적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군비의 항구적 증대를 위한 전쟁 대상국이 필요하다. 결국 9.11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대상국으로 설정하기위한 네오콘들의 정보 날조는 극에 달한다.

“끊임없는 불꽃놀이 비용을 충당할 자원이 있는 곳”, “이란보다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곳 ”, “점령비용을 석유로 해결할 수 있는” 이라크는 전쟁터로 안성맞춤이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라크 침공에 소요된 비용은 3조 달러에 육박한다고 하니 국민의 혈세를 빼내 거두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이다. 비행기 한 대, 배 한척, 탱크 한 대 없는 사막의 어느 동굴에 재래식 무기를 가진 탈레반 무리를 공격하는데 신형 F-22, F-35 전투기, 공중급유기, 최신형 잠수함의 생산 및 구매를 위한 국방비 증액 결정이 무사통과하는 미국의회의 결정이 우습기도 하지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누구도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애국주의를 가장한 사기행각”에 당시로서는 어느 누구도 참여치 않을 수 없으리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뉴욕지하철을 공격하려는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를 찾아내는데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상원의원의 논리는 그야말로 코미디지만 한 대에 30억 달러에 달하는 잠수함을 매년 2대 씩 구입하는 예산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잠수함 편대가 감축되면 9.11이후 군사수요를 감당 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군사비를 정당화하는데 미국이 전 세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미국의 신진보주의자나 신보수주의자,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별이 없다. 당파를 가리지 않고 군산복합체에 흘러드는 흥청망청대는 국방예산에 대한 탐욕은 이들 이름이 반대인 사람들의 구분을 없앤다.


이제 9.11의 배후에 사담 후세인이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던 이라크 침공사유가 조작된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으나, 이라크 침공에 목소리를 드높이던 언론, 정치인, 경제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그저 잊고만 싶어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우리의 현실과도 꼭 닮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네오콘이 아니지 않는가? 냉전시대의 익숙한 레퍼토리인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다시 끄집어내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에 약발이 먹히는 이들 공산주의 정권을 리비아, 이란, 시리아“와 엮어내고 미국의 전시체제를 유지하려 든다.


“미국이 침공한 나라들의 공통분모는 종교도, 자원도, 자유도 아니었”으며, “이 나라들이 표적이 된 것은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매우 복잡하고 값비싼 전쟁 장난감이 쓸모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는 저자의 결론은 세계평화 유지, 인권보호, 국가의 긴급한 안위를 위한 조치와는 무관한 단지 ‘군비증강이라는 수단’에 집착한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집단의 사기행각에 불과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단지 미국에 그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9.11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라에 군대를 보내어 집집마다 다니며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제국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독선”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군사예산을 합산하여도 미국의 군사비를 넘지 못하고, 군사장비 부문에서도 지구상의 어떠한 국가도 미국의 군사력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교정책으로 위기를 조장하곤 국방예산을 식은 죽 먹듯 늘려나가는 군산복합체의 주체세력들은 빈민촌 학교, 열악한 주거환경, 빈곤층 아동,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복지사업에는 예산을 삭감하고 외면하는 현실에서 미국 자본주의 실패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케네디에서 존슨, 레이건, 클린턴, 부시 행정부에 이르는 군산복합체의 전모를 비롯해, 이스라엘, 이란, 이라크 등 역학관계와 네오콘의 정체성 등에 대한 다양한 미국과 국제정치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다.  ‘나오미 클라인’의 신자유주의 시장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서인 『쇼크 독트린』에 이어 ‘신보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론서로서 대중들에게 시사(示唆)하는바 자못 큰 저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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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6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