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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병리현상 담은 응축된 한국현대사 읽기 | 소설,시 2010-07-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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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남몽

황석영 저
창비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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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묘사하는 이야기들 속의 사람들, 사건들은 어지간한 주의력을 가졌다면 그리 낯 선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압축적인 서사로 일그러질 대로 구겨진 한국인들과 한국사회의 민 낯짝을 전체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은 아마도 처음이리라. 사실 우린 누구도 이 사회를 지탱하는 성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45년 해방과 1948년 남한 단독의 절름발이 정부수립이후부터 오로지 비열함, 후안무치, 파렴치함, 야합, 폭력, 부조리, 부패, 탐욕, 모리배, 위선, 기만 등 온통 네거티브한 언어로 밖에 표현되지 못하는 이 사회의 일정한 습관과 기억이 60여 년간 체화되어 온통 개인들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기이한 성향과 코드를 형성하여왔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열악한 가정환경으로부터 시작된 생존을 향한‘박선녀’란, 한 여인네의 삶의 파노라마가 어둠의 문화, 폭력과의 동거, 그리고 물질을 향한 쾌락과 거부(巨富)의 아낙으로, 바로 그 거부의 물질적 상징인 건물 잔해에 깔리기까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그 어디보다 본성과 욕망이 절제되지 않는 곳, 룸살롱과 권력과 돈과 폭력은 우리시대를 설명하는 정말 잘 어울리는 기호들이다.

그래서‘강남’으로 표상되는 천박한 구별짓기의 계급화 된 이 언어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전수되어왔는지,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의 도식이 되어왔는지에 대한 이 현대사 읽기는 그 치부로 내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살기 위해서 일제의 밀정을 하고, 세상 흐름의 판세를 읽어낼 정도의 영악함으로 미군정의 정보원이 되어 권력의 본성을 터득하고 그에 야합하며, 이를 위해 선악의 도덕율이 무시되는 정치세계의 잔혹한 현실을 떠받치는 또 한사람의 주인공‘김진’이란 인물을 통해 물신주의와 지배권력의 실체를 따라가고, 폭력배들이 벌이는 탐욕과 정치의 공생, 배반, 그리고 피폐한 도시서민의 실상을 철거민의 고통을 통해 이 사회의 비뚤어진 습관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의 비열한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어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온갖 정보와 잡다한 기록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그 어느 시간보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낸다. 아마 평상시에는 은폐되거나 견뎌내던 것들이 일시에 폭발하여 그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 바로 민중과 사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여운형, 김구의 살해사건, 공산주의자 박정희 전향과 제주 4.3 양민학살사건, 군부의 쿠데타와 군사독재의 지리한 전체주의 시대, 이를 마무리하기라도 하듯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60여년의 짧은 기간동안‘압축적’이라고 표현할 밖에 없는 한국의 현대사를 과연 황석영이니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엑기스만을 건져낸 역사적 통찰력은 맛깔나는 스토리에 버무려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주인공들의 삶과 알록달록한 세상의 거친 속살에 빠져들게 한다. 정말 꿈결같이 흘러온 60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작품의 전체가 시사하는 도식이‘강남’과 같은 계급적 질서가 재생산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익숙한 기능이 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어찌 자고 일어나니 꿈이더라는 것과 같이 허망하다는 한마디에 담아 낼 수 있겠는가?


비록 하나의 문학작품이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사회의 발판이 얼마나 취약하고 무르고 부실한 것인지, 그리고 개인들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네거티브를 다시금 반성하고 확인하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신뢰가 넘치는 건강하고 견고한 사회를 위해 우린 우리의 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소설 『강남夢』은 뒤틀려온 현대 한국사회의 독특한 병리현상과 정치변동의 흐름을 분석하여 우리사회의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실천도구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게 하는 출발점이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빠르게 스쳐가는 그 응축된 역사의 서사를 질주하듯이 따라가느라 가빠진 호흡을 이제야 내려놓는다. 가히 현대사의 한 구간을 정리하는 압도적 소설이라 명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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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시리게 하는 웰메이드(well-made) 스릴러 | 소설,시 2010-07-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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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개의 장면(scene)으로 이루어져 급격히 빠른 전환과 전개가 우선 독자를 강하게 흡입한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적 권위자가 쓴 소설로서 전문성과 디테일의 탁월함은 물론 유럽사회의 국외자인 집시사회의 묘사를 통한 차원 높은 사회의식이 더해지고, 등장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은 마법처럼 이야기 속으로 매혹한다.

중세 기독교와 관련하여 비밀결사들과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거나 영원히 숨기기 위한 속세와의 대결은 사실 진부한 소재가 될 정도로 흔한 스토리다. 여기에 그 흔해빠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까지 가세하면 진부함의 네제곱쯤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내심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첫 장을 열자마자 광기와 욕망이 가득하고 영혼까지 시려오는 공포를 마주하게 되면서 예사롭지 않은 작품임을 바로 간파하게 된다.


섬뜩한 죽음의 예고 같은 흰자가 없는 눈을 가진 사내, 그리고 알 수없는 두려움의 전율로 도망가는 집시, 느닷없이 달려와서는 피를 뿌리고 몇 마디 암호 같은 말을 전달하고는 황급히 달려가는 집시와 작가의 황망한 장면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 1000편중 유실된 58편에 대한 행방을 안다는 집시 바벨의 섣부른 행동은 죽음을 부른다. 집시의 죽음으로 작가인‘애덤 사비르’는 살인용의자로 공개 수배되고, 적그리스도의 보호를 의무로 하는 비밀결사인‘코퍼스 말레피쿠스’의 일원인‘에이커 베일’은 예언시를 찾기위해 죽은 바벨의 집단인 집시마을로 숨어든다.


1566년 6월 17일, 잔혹한 막후 권력자인‘드발 백작’이 가해 올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스트라다무스의 다급한 시편의 은밀한 숨김이 있은 지 500여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21세기 프랑스와 스페인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질주는 호흡이 멎을 정도로, 아니 눈빛이 책장을 뚫어버릴 정도로 몰입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시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사비르’를 통해 주류사회의 곱지 않은 편견과 왜곡된 시선으로 그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마누슈 집시’의 세계를 통해 그네들의 풍습, 신앙, 사랑의 방식 등을 애정 가득히 담아 보여줌으로써 주류와 국외자의 융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살해된 집시, 바벨의 누이‘욜라’의 영혼적인 오빠가 된 사비르와 욜라의 헌신적인 남자‘알렉시’ 세 사람이 쫓는 잃어버린 예언시편의 추적과 비밀결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광포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에이커 베일’의 쫓고 쫒기는 긴장과 공포가 어우러진 아슬아슬한 스릴은 지금도 침을 꿀꺽하고 삼키게 할 정도가 된다.


고딕문학의 향취가 나는가하면 순간 지적인 민완형사‘칼크 경감’이 등장하면서 정교한 크라임 스릴러로, 그리곤 중세 기독교와 비밀결사의 흔적을 따르고, 종말을 경고하는 요한계시록의 암시와 집시들의 세계가 어울려 그 지성적 다채로움에 흠뻑 빠지게 한다. 눈앞에서 미세한 호흡의 떨림과 세밀한 움직임이 포착될 정도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묘사는 여느 액션 스릴러 작품의 치밀함도 넘어선다.

‘재림’을 방해하고, ‘적그리스도’를 보호하려는 비밀결사와 적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전멸을 피할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지키려는 작가와 집시, 공권력의 대결은 풍요로운 지적향기와 진정한 비밀의 정수를 찾아내려는 역사의 호기심과 함께 고도의 흥미를 시종 자극한다.


아나그램, 카발라, 거울문자 등 암호의 해독과 ‘생트 말리 드라메르’의 ‘사라 에 칼리(검은 사라)’등 성상에 얽힌 신비, 마침내 드러나는 1960년 이후 52년간 일어날 사건을 경고하는 52편의 사행시의 발견은 마야력에 따른 2012년 12월 21일의 지구 대변혁과 조우하며, 인간사회의 종말을 암시한다. 잊을 만하면 다시금 수면으로 떠오르는 종말론은 사실 인류사회에 대한 도덕적인 불감증과 수그러들지 모르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한 횡포가 극성을 부리면 떠오르는 현재의 반영일 것이다. 이 소설이 종말론을 내세워 단말마의 고통을 상기시켜 사람들을 위협하려는 그런 유치함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각성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고, 무자비하고 강박적으로 권력을 욕망하는‘엄청난 탕녀’의 실체를 암시함으로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길을 안내하려는 소박한 의지로 이해될 수 있다.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사악한 살인자와 정의의 세력이 대결하는 이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소설은 올 여름 휴가철 여가를 풍족하게 해 줄 안성맞춤의 작품이 아닐까. 지적 즐거움과 스릴러를 초월하는 수준 높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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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말하는 법을 말하는 역사서! | 인문,사회 2010-07-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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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론

에릭 홉스봄 저/강성호 역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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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술(記述),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 역사학과 역사학자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역사의 분석과 해석과 관계하는 학문들과의 연계성을 전체사회사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의 정체성과 당위론에 대한 홉스 봄(Eric John Ernest Hobsbawm)식 진술이라고 해야 할까.

주로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하거나 전문지에 발표한 짧은 담론들로 구성된 글이라서 고도의 배경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수월함이 있으나, 서술적 역사와 같이 일부 비판을 기초로 한 글들의 경우에는 대상학자와 저작에 대한 이해의 결여로 다소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다만 역사를 어떠한 관점에서 인식해야 하는지, 역사란 바로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아마 최고의 책이라는 점에서 사건사나 연대기정도에 익숙한 우리의 일반적 역사인식을 한 단계 올려놓아 주는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하였던 부분은 역사에서‘과거’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하는 것과 ‘당파’. 즉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입장에 자신의 의도를 종속시키는 것에 대한 지적을 들 수 있는데, 바로 근자에 기승을 부리는 뉴라이트의 비뚤어진 역사관에 대한 본질적 잘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가의 과제는 과거의 의미의 본질을 사회 속에서 분석하고, 그 변화와 이행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들일까? 결국 그 공식화된 기억으로서의 과거란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것일 뿐이다. 더구나 사회에서 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의식된 역사체계 속으로 통합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논쟁과 불확실성을 심판하는 법정이 되는 경향으로 흐를 경우 인위적 가공물이 되거나 날조되곤 한다.


역사를 정치적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볼 때 1947년에야 비로소 국가로 존재하게 된 파키스탄이‘5000년의 파키스탄’이라고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현재의 정당화나, 마케도니아를 말하는 그리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역사와 같은 시대착오나 날조에 대한 홉스봄의 지적은 “역사가가 자신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격정에서 비켜서 있어야 한다.”는 역사학자의 태도를 시정케 해준다. 그렇다고 역사의 당파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데올로기나 정치에 완전히 중립적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역사학자의 정치참여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탁상공론과 과학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과학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유혹되어 미리 결정된 자신들만의 교리를 입증하는 데만 참여하거나 실제적인 문제는 교조적 근거에서 거부하면서 사이비 문제를 제기하는 주관적 당파성은 경계하여야 할 요소임을 부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대체 우리들, 오늘의 사람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의미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역사학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역사변화 전반에 걸친 메커니즘 형태를, 특히 변화가 극적으로 가속화되고 확대되어온 과거 몇 백 년 동안의 인간사회의 메커니즘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즉 역사는 역사적 경험과 관점의 결합에 기초해 현대사회에 대한 전망을 가능케 하며, 미래와 미래를 준비하기위해 요청되는 인간행위를 판단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홉스봄은 ‘사회갈등’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한계까지 짓눌려 온 사회구조의 중요한 측면을 표현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로서 프랑스 혁명기라는 짧은 기간이 동일시간 폭을 지닌 어떠한 시기보다 더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유독 많은 역사연구에 바쳐진 것처럼 어떤 중요한 문제들은 그 폭발의 순간에 평상시 잠재되어있던 많은 것을 드러내기에 사회의 주요변혁과 반응을 전체적으로 명료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홉스봄의 전체사회사, 즉 기존의 하층계급에 대한 역사, 풍속, 관습, 일상생활을 의미하는 사회사를 벗어나 경제, 정치, 문화, 종교등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한 역사인식과 관련을 맺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특히,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 구조’라는 상호작용하는 상이한 수준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모델, 즉 사회현상의 위계질서를 주장하고 자기 지속적인 체계의 경향에 반작용하는 내적 긴장이 사회 내에서 존재한다는 주장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홉스봄의 역사론을 정립하는 원형적 토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 대한 분석도 그 사회의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과 함께 시작해야만 한다는 마르크스의‘생산양식’은 인간사회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토대로서 홉스봄의 역사인식에 근저를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이에 더불어 반(反)주류 역사라고 부를만한 분야의 탁월한 선구자들인‘페르낭 브로델’을 비롯한 《아날학파》의 “다양한 행동, 사고, 느낌의 형태를 서로 일관된 것으로 보기위해 이러한 형태들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을 발견하려한”‘망탈리테(mentalites)’는 전체사회사에 음양으로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가 역사학에 미친 영향이나 아날학파에 대한 몇 꼭지의 글은 그래서 이 저술, 아니 홉스봄의 역사인식에 대한 중심 사고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한편, 19세기 프랑스 歷史家‘미슐레(Jules Michelet) ’에 이르러서야 민중사가 시작되었다하지만 대개의 지역에서는 1950년대 되어서야 비로소 민중사 즉, 국가를 형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인 민중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역사가 민중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꽤나 인상적이다. 왜 역사는 왕과 황제, 지배계급 상층부만 이야기 하였을까? 역사는 통치자의 영광과 실용적 용도를 위해서만 저술되는 그러한 역사였다. 결국 사회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역사, 민중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역사. 우리 한국의 역사는 여전히 이러한 지배계급의 역사만이 얘기되고 교육의 현장에서 유리되고 있다. 고작 홉스봄의 지적처럼 보통사람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부 좌파의 역사조차도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인물이나 사건에 맞추어져 진정한 민중의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음에 대한 각성은 새삼스레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역사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홉스봄이 말하는‘전체사회사’나, 역사 기술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아울러 제시되는 방법론들, 그리고 팽창된 방대한 역사 기술로서 편리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상황’에 대한 연구의 제안 등 진정 역사란 무엇인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차원을 달리한 역사의 이해를 갖게 해준다. 그의 저술,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층적 이해를 위한 매혹적인 입문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역사를 말하는 법을 말하는 역사서이다! 역사를 읽으려면 우선 홉스봄의 『역사론: On History』부터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어진다.


註) 망탈리테(mentalites) : 사회문화현상의 밑바닥에 자리한 집단 무의식 또는 집합기억으로서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심성(心性)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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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휴가철 놓치기 아까운 장르문학 10選 | My Story 2010-07-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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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니, 삶의 길이니, 인간본성의 선악, 도덕과 정의 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삶의 본론을 잠시 떠나 그야말로 휴식이 되는 낭만적 휴가를 생각해보자. 일상의 시시콜콜한 잡념을 뒤로한 채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문자그대로의 완벽한 쉼의 상태를 주어보자. 그동안 이 치열한 환경의 도시에서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쳤는가 말이다. 그러니 우리들 자신에게 정말의 휴식을 베풀어보자는 얘기다.


그 기간이 하루면 어떻고 이틀, 사흘, 아니 일주일이면 어떻겠는가. 호젓한 계곡이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름 모를 어느 바닷가가 되었든, 아니면 산기슭의 어느 펜션이든 녹색의 자연 속을 거닐면서 한 권의 부담 없는 책을 읽는다면 그 것이 바로 신선놀음이 될 터이다. 아마 이러한 책으로는 장르문학만 것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읽어서는 모처럼의 여유로운 기운이 훼손당할 수도 있으니, 문장이 수려하면서 명쾌함과 재미가 있는, 게다가 읽는 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룩하고 진지한 의미까지 관통하고 있는 책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뭐 그렇다고 내게 특별히 책을 선정할 만한 혜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만찮은 두께에도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그냥 술술 읽히며 감동까지 주었던 몇 권을 선정하는 것은 크게 외람된 일은 아닐 것 같다. 2010년 올해 출간되었거나 예정된 작품들과 여타 사연으로 재출간되었던 작품들 중에서 10권을 선정하여 보았다. 어느 책이든 독자를 그리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12번째 카드
제프리 디버 저/유소영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04월

예언
김지현 역/마리오 리딩 저 | 비채 | 2010년 07월
창세기 비밀
톰 녹스 저 | 레드박스 | 2010년 03월
잠자는 인형
제프리 디버 저/최필원 역 | 비채 | 2010년 05월

살인위원회
그렉 허위츠 저 | 비채 | 2009년 04월

살인자들의 섬
김승욱 역/데니스 루헤인 저 | 황금가지 | 2004년 07월

우행록
누쿠이 도쿠로 저/이기웅 역 | 비채 | 2010년 04월
유골의 도시
마이클 코넬리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05월
브로큰 윈도
제프리 디버 저/유소영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06월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노리즈키 린타로 저 | 비채 | 201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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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액션에 버무린 법과 정의(正義)의 충돌현장 | 소설,시 2010-07-1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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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법체제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어떤 흠결도 없는 것인가? 또는 법이 구현하지 못하는 정의를 실현키위해 보다 상위의 도덕적 신념을 우리는 인정해야하는가? 만일 그러한 신념의 행동을 방임할 경우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공공의 안정성과 건강성에 어떤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 작품이 던지는 정의에 대한 파문은 실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정의는 공공선이라는 때론 모호하기 그지없는 집단적 질서에 우위를 인정하다가도 개인이나 가족의 연대에 대한 미덕과 충돌할 때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마이클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행복과 자유와 미덕의 이상(理想)을 통해 고민하는 바로 도덕적 딜레마에서 정의를 생각게 하는 바로 그 실제를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곱 살 여아의 무참한 살인, 아이의 아빠인 연방법원 부집행관‘팀 랙클리’와 엄마인 군 보안관‘드레이’부부에게 자식의 죽음을 알리는 음울한 전언으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내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에 대한 증오, 그리고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정신적 고통이 처음부터 독자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완벽한 살인증거물들과 현장, 그리고 용의자의 자백으로 쉽사리 매듭 될 듯이 작품은 빠르게 전개되지만, 여기서 작가는 첫 번째로 법과 정의에 대한 시험으로 우리들의 사유를 주춤거리게 한다. 범인을 체포한 아내의 동료들인 군 보안관들이 내밀하게 직접의 복수를 가할 기회를‘팀 랙클리’에게 제공한 것이다.


법의 판단에 앞서, 경찰력의 비호(庇護)하에 내 아이의 참담한 죽음에 직접적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떤 결정을 하여야 하는가? 놈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가슴이 찢어들듯 울부짖는 아내의 슬픔과 사무치게 그리운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아이의 시신이 교차되어 이성이 마비될 것 만 같은 자신의 증오에 위로가 될까? 공공의 이성, 즉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에 맡겨야 할 것인가? 살인범을 앞에 두고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결단에 대한 갈등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이 이어지는데 아이를 추행하고 토막 살인한 살인범이 법집행절차의 흠결로 인하여 무죄판결을 받는다. 귀머거리인 범인에게 미란다수칙을 지키지 않는 수색과 체포의 결과물은 법적 증거물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인행위와 법집행절차의 충돌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살인용의자의 인권, 그리고 제도로서의 법적장치 수호와 개인의 행복과 자유의 충돌이기도 하다. 명백한 살인자이지만 단지 집행절차의 문제로 범인이 풀려나는 것이 과연‘정의’인가? 하는 도발적인 질문인 것이다. 내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법의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아이의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무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사법제도는 무능력한 것이고, 정의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법집행절차를 비롯한 사법제도의 자기갈등 요소로 인해 세상에서 격리되고 처벌되어야 할 흉악범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율에 상처임이 분명하다. 표제인『살인위원회; The Kill Clause』의 등장은 그래서 소설의 구조상 적절함을 넘어 주제를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극악한 살인의 증거와 정황이 명료함에도 법적용의 흠결이나 하자, 오심으로 인해 풀려난 살인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척결하기 위한 은밀한 조직이 법집행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는 정의에 대한 판단을 누가하는 것인가? 인간사회가 합의한 질서를 초월하여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이 된다.


사회심리 및 범죄심리학계의 유명교수가 중심이 되어 가족의 일원이 살해되는 고통을 안은 전직 FBI, 형사로 구성된‘살인위원회’의 활동이 갈등 끝에 합류한 주인공‘팀 랙클리’의 민완한 행동으로 본격화된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도 살해되고 사회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행동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찬사를 보내지만, 법질서의 훼손을 방치할 경우 사회치안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이 방치한 흉악범들에 대한 처단의 치밀한 전개가 기막힌 액션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소설의 재미를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아마 책 읽는 자들의 쾌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폭력성과 보복의 처참함으로 필름 느와르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으나, 이보다는 고귀한 주제의식과 완벽함에 가까운 플롯으로 인해 장르소설이 지니는 주변적 시선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어 여느 정통소설 못지않은 작품성을 확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밀리터리 액션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서스펜스와 스릴, 범인 소탕을 위해 벌이는 현장감이나 세밀한 디테일에서 상당히 뛰어난 서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초법적인 팀의 행동을 다시금 제도 내에 복귀케 함으로써 경직되고 냉정한 법 체제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는 작가의 인본주의적 신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의는 항상 갈등하지만 장기적으로 도덕적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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