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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축된 시적언어로 그려진 전체주의의 살풍경 | 소설,시 2010-08-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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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
문학동네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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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달린 술(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달리는 말처럼, 딱딱하게 얼어버린 채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감시원의 눈길을 의식하며 걸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일상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문과 감금,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공포의 세계, 독재자‘차우세스쿠’의 사익을 위해서만 작동되던 1970,80년대의 경찰국가 루마니아 전체주의정권의 스케치이다. 사실 우리의 70년대 전후시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소설 속 네 명의 청춘을 온통 빼앗아버린 살풍경(殺風景)한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개인의 내면적 사유의 자유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사회, 권력이 지시하는 것에 순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향인 전체주의사회는 거짓과 불신을 조장한다. 거리와 상점, 식당, 학교 어디든 감시원의 귀와 눈초리가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다. 소설은 이런 암흑의 세계에서 상처입고 헐떡이는 젊은이들의 불안한 초상을 중심으로 작가 특유의 응축된 시적언어로 처연하면서도 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초반‘네모’로 표현되는 대학 기숙사의 방처럼 소설의 언어와 문장은 메마르고 건조하며 지극히 짧게 완성되지만, 그 어떤 장황한 묘사보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어 여운과 감동이 소실되지 않고 지속되는 특유의 풍요로운 감정적 느낌을 갖게 한다. 바로 네모는 공간의 형태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그 공간에 있는 여자 대학생들의 감성이기도 하며, 각박한 사회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네모의 벽장 속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는‘롤라’의 공책에 쓰인 “...라고 롤라는 썼다.”라는 진술들은 그야말로 시로 승화된 소설 아닌가 할 정도의 백미(白眉)들이다.


개인의 짐을 넣어둔 사적 장소인 트렁크조차도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나라 안에는 똑같은 트렁크 열쇠가 수없이 많았다. 모든 열쇠가 거짓이었다.”는 문장처럼 이상의 너절한 수식과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불법 수색과 압류, 사적자치의 불인정, 국가권력의 위선과 기만, 공포가 모두 내장되어있다. 또한, “옷 속에 그림자만 들어 있는 것 같은, 하루 일과에 지친 남자가 보인다.”라는 한 문장에서 비참한 노동자, 민중들의 희망이라곤 기대하거나 찾을 수 없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듯이, 문장들은 고밀도로 단단하게 짜여있어 그 풍부한 의미를 음미하느라 쉬이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롤라의 의심쩍은 죽음이 인연이 되어 모인 여대생‘나’와 남학생‘쿠르트’,‘에드가’그리고‘게오르크’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시를 얘기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시와 노래는 부조리하고 불온한 세상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흐른다. 이는 전체주의에 기탁하여 민중의 피를 빨아대는 개새끼들과 개의 형상을 한 감시원, 비밀경찰의 음험한 시선을 모은다. 졸업 후 국가에 의해 배정된 지역과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지지만 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주구(走狗), 경감 프엘레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은 은밀한 고발과 감시만이 설쳐대고 신뢰라고는 한 조각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기 위한 편지 속에는 머리카락 한 올을 넣고, 손톱가위는 심문, 수색은 신발, 미행은 감기 걸렸다...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쉼표하나로 약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편지에는 어김없이 이 단어들과 문장이 들어있고, 호칭 뒤의 쉼표는 지나치게 두꺼워지기만 하며, 수시로 가해지는 심문과 수색, 그리고 고문은 죽음의 휘파람 소리를 점점 가까이 들리게 한다. 전체주의에 순응하지 않거나 작은 조짐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도시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영혼이 사라진“도시의 정신병자들은 절대 죽지 않아. 쓰러지면 그들이 서있던 그 자리, 아스팔트에서 똑같은 사람이 솟아”오르듯이 인간의 본원적 정신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


침묵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죄책감을 죽지 못해 사는 자신들의 가족과 이웃, 사람들로 정당화하지만, 그렇다고 파괴된 도덕성까지, 정의까지 모른 채하기에는 너무 젊기만 하다. 사악한 권력은 끝내 청춘의 목숨을 하나씩 앗아가고, 떠날 수 있는 자는 독일로, 헝가리로 도피한다. 발령 받은 곳에 자신의 짐을 풀 수 없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안에는 불안감에 날이 고추선 흉흉한 자의식인‘마음 짐승’만이 도사리는 곳, 독재자의 확인되지 않은 병에 대한 소문은 모두에게 쾌재를 부르게 하는 곳, “바늘귀에 꿰인 실처럼” 굴욕이 이어지는 곳, 오로지 불신만이 깊게 드리워진 세상이 젊음과 자유를, 인간의 존엄을 누른다. 전체주의의 무참함과 옥죄는 공포의 긴장이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시선에 불안하게 흔들리며 소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잔혹하고 뼈아픈 우리 인간사회의 기록이다. 다시금 헤르타 뮐러의 시적 감수성이 농축된 언어를 통해 음울한 이 시대의 초상을 우아하게 읽어냈다. 이 같은 역사의 오류, 인류의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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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창녀의 자존을 향한 고귀한 영혼의 외침 | 소설,시 2010-08-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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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권익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착취의 만행이 그 잘난 이성으로 무장된 인간사회에서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무참함과 분노가 짐승처럼 마음을 어지럽힌다. 돈이라는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면서 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은 존재치 않는 세상이다. 인간에게서‘존엄성’이라는 단어는 수식적인 그럴듯한 의미만으로 사용되고, 정신의 숭고함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인 효율지상의 물신주의의 단면을 어린 소녀의 고귀한영혼의 외침 속에서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아홉 살 어린 소녀가 애비의 손에 붙들려 천진난만한 불안과 호기심속에 대도시 뭄바이로 이끌려가는 여정부터 그 심산(心酸)함이 가슴을 억누른다. 자신을 포주에게 넘기고 돈뭉치를 건네받으며“기뻐하면서도 자신을 혐오하는 듯한 표정”의 아비를 바라보는 아이‘바툭’의 망연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포주의 손에 끌려가면서,“아빠, 날 데려가줘요, 제발.”하는 그 간절한 절규가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듯하다.

 

더러움이 켜켜이 쌓여만 가는 쇠창살이 쳐진 화장실만한 작은 방을“황금으로 만들어진 자궁”이라고, 그 속성을 버리지 않은 채 화려한 공간으로 상상하는 소녀의 삶을 견뎌내려는 안간힘에서 참았던 내 인내도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아동의 노동과 성을 착취하는 공공연한 장소가 되어버린 고아원의 수심(獸心)만 무성한 인간사회의 더러운 거래가 적나라하다. 창녀가 된 어린 아이들이 출산한 유아는 또 다른 생산물이 되어 거래되고 착취의 도구로 이용된다. 어디에도 이성으로서의 인간의 사유는 작동하지 않는다.

 

소설은 사창가에 팔려간 아홉 살,‘바툭’이 열다섯 소녀가 되기까지 6년간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의지이자 결연한 자존의 출구로서 쓰인 비밀 글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바툭은“뭄바이 커먼가(街)에서 몸을 파는 매춘부다.”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 소위‘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성적 향응)’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자신의 휴식시간을 조금 더 얻어 내는 지혜임을 깨달을 정도로 적응하고, 그래서“넌 그중 제일 맞잇는 케이크야”라고 포주에게 환대를 받는 창녀로 성장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삶의 가닥이 완전히 끊어진 듯한 상실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손님을 받고 난후 잠간의 휴식시간이면 숨겨둔 파란공책(Blue Notebook)에 이야기를 쓰며, 자신을 투영하는 유일한 즐거움이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쓰는 중간 중간에 손님을 받는 것이라고 내면의 질서를 승화시켜 나간다. 또한 고향 마을 강가에 나가 강물의 소리와 물위의 아른거리는 햇빛에 매혹 되곤 했던 시절의 기억은 세상에 홀로 있지 않다는 위로가 되 주었듯이, 험한 커먼가 역시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강물이라 위안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 소녀를 포위하고 있는 온통 사악하고 잔인한 환경을 버텨내기 위해선 반복되는 엄청난 감정들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대부호의 자식을 위한 노리개로 팔려가‘히타’라는 하녀에게 안겨 봇물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강물 내음이”, “내 고향 내음이” 났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열다섯 소녀에게서 그 북받치는 감정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통을 발견하게 된다. 부도덕과 정의를 논의할 공간이 없는 가진 자들의 파탄된 정신세계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은 물론 고통에 대한 공감이란 인식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착취, 학대, 폭력, 그리고 살해에 이르기까지 보호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삶이 다시금 인간사회의 추악한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깃덩어리를 달라고 애원하는 늙은 개 같은 표정”을 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이 소설을 외면치 않고 마지막 까지 읽어내는 것은 정말 힘겨운 작업이 된다. 비록 사랑에 대한 이해로 맺는 어린 소녀 바툭의“은빛 눈동자를 지닌 표범”이야기는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마지막의 간절함이 되어 울리지만, 세계의 어디에선가 신음하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환영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까지 잠재우지는 못한다. 우리 인간사회의 주변부에서 자행되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폭력의 주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세상에 경쟁적으로 몰입하는 바로 우리들 말이다. 아이들만이라도 제발 이러한 세계에서 구원해 낼 수 있는 세계, 그 아이들이 바로‘나’자신으로서 이해 될 수 있는 가치와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세계 말이다.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써내려간 어린 창녀의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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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독증 작가가 쓴 소프트한 추리소설 | 소설,시 2010-08-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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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자이자 신경전문의인‘올리버 색스’의 대중적 유명저작이 된『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등장 할 법한 인물로서‘의미기억’은 잃지 않았으나, 단기성 기억력은 취약하기 그지없고, 글자를 쓸 수는 있으나 읽지는 못하는‘실독증’이란 독특한 신경생리학적 이상자의 재활의 기록이자,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의 추리 소설이다. 특히 작가인 ‘하워드 엥겔’이 바로 이‘실서증(失書症)없는 실독증(失讀症)’의 투병중에 집필한 분투와 노고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숭고한 인간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후두부가 함몰되어 2개월 남짓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사립탐정,‘베니 쿠퍼맨’의 재활 무용담(?)이라 할까?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자신의 두개골이 왜 깨지게 되었는지, 어떤 사건에 연루되긴 한 것인지, 그리고 왜 갑자기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된 자신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동료 경찰의 병문안에서 토론토의 한 대학 쓰레기장에서‘매컬파인’이라는 여자와 나란히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는 경황을 듣게 된다.

사고력, 언어구사력 등 인지능력은 온전하지만 읽기능력과 단기기억 상실로 인해 기억을 보전하고, 다시 불러내기가 수월치 않다. 재활치료센타의 쿠퍼맨은 무력감에 시달리지만, 사라져버린 기억들에 시동을 걸 수 있는 메모리 북의 기입과 글자모양을 시각화하여 읽기능력을 복원키 위해 노력한다.


과연 기억의 저 너머로 사라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낼 수 있을까? “진실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왜곡된 형상을 이용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사립탐정의 인간한계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버겁기만 해 보인다. 불쑥 떠오르는 알 수 없는 이름,‘로즈’를 단서로 연인인‘애나’의 도움과 고향 친구들의 우정으로 조각난 기억들을 맞추어 나간다. 이처럼 암흑에 묻힌 사건의 근원에 다가가는 전형적인 추리의 진전도 정교한 논리성을 요구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유머러스한 표현들에서 한 줄의 문장을 읽기 위해 엄청난 수고와 시간을 소요하는 무기력을 극복하고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작가의 노력에 절로 경외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로즈’는 자신이 버려진 채 발견된 대학의 학생이며, 고향 친구인 ‘스텔라 세코’의 딸임을 알게 되고, 바로 이 소녀가 자신의 의뢰인이었음을 짐작한다. 여기서‘스텔라’라는 인물을 묘사하게 되는데 “젖떼기도 전에 벌써 캐리어를 구축하기 시작한 여자”라는 문장처럼 인물성격에 더 이상의 너저분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해버리며,  또한 사건을 수사중인 형사,‘사이크스’의 무례하고 거친 말을 점잖게 눙치면서“사적인 대화를 할 때 언제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언사를 했다.”고 자신과 사이크스의 성격을 한 문장에 담아낼 정도로 세련된 문장미를 뽐내기도 한다.


역시 본질은 추리소설이듯이 의심이 가는 다양한 용의자들이 선상에 오르는데, ‘스티브 메입스베리’라는 로즈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 실종 사실이 더해지면서 대학과 교수들의 성향으로 시선을 모으고, 마약 밀거래라는 범죄성이 결부되기에 이른다. 치료병동에 앉아 실독증의 탐정이 좁혀가는 추리의 진전을 따라가는 재미가 기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지성(知性)의 정상층에 있는 교수들과 뇌손상 환자인 탐정과의 두뇌싸움이니 볼만 한 게임이지 않은가! 실종된 스티브 교수의 적극적 지원자였던‘파커 샘슨’교수, 쿠퍼맨에게 대학을 쑤시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의 편지를 보낸‘네스빗’교수, 신분을 바꿔가며 쿠퍼맨을 찾아왔던 묘령의 여학생, ‘로즈’의 상황을 은폐하기만 하는‘스텔라’등 복선과 함정을 여기저기에 묻어두고 독자의 심리를 지배한다.


허나 오늘의 세상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물질과 소비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욕구, 바로 이기적이기만 한 탐욕 아니겠는가. 거대한 이윤을 제공하는 마약 중개와 유통의 사슬은 범죄라는 은밀한 속성으로 조직의 견고성에 손상을 가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헉! 가장 살갑고 가까운 사람이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인 모양이다. 반전조차도 결코 격하거나 급하지 않고, 부드러운 잔물결이 흐르는 듯한 구성에서 절묘한 쾌락을 끌어낸다. 인간 의식의 경이로움을 동반한 수고의 이 작품에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감동을 느끼는 것은 물론,‘경험의 진실’에 입각한 추리소설이라는 면에서 그 작품적 가치는 고귀하다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신경학과 추리문학이 융합된 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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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인간사회를 위한 진정한 미래의 가치란 무엇인가! | 인문,사회 2010-08-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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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려움 없는 미래

게세코 폰 뤼프케 저/박승억,박병화 공역
프로네시스 |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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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로 들어선지 10년이 지나면서 소위 근대성이 함축하고 있는 오늘의 인류사회가 신봉하던 가치체계와 인식에 대한 믿음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고, 이는 인류의 존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논의를 낳고 있다. 그러나 지배 권력층에서는 인간의 지성이 지금까지 그러했듯 자연과 생태계의 모든 상황을 합리적 이성이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기만이고 날조일까?


자연자원의 무차별적인 소비, 온난화등 기후의 이상적 현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와 같은 시장자유주의의 명백한 오류, 남북문제 등 양극화의 심화,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물질지상의 소비주의로 인한 탐욕적 이기주의, 다원화로 인한 종교와 문화의 갈등과 같은 가치의 혼란이 카오스를 방불케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인간 세상 모습이다. 그래서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두려움 그득한 자문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이 저작은 이러한 21세기 인류사회가 지금 어떤 시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고수하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이미 새로운 전환의 국면에 들어선 미증유의 시간이라면 그저 무기력하게 지금의 가치체계로 대처하며 기다리는 것뿐인지? 인류가 200여년의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이 위기의 시간을 대처 할 방안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도래 할 미래의 새로운 가치와 인식이란 것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지? 에 대한 철학, 물리학, 시스템공학, 생물학, 사회학, 경제학 분야에 걸친 21명의 석학들과 전문가들의 진단과 변혁하여야만 하는 가치의 제안을 담고 있다.


21세기 초인 오늘은 분명‘대변화의 시대’이다. 지구행성이란 제한된 시공(時空)속에서 산업사회의 성장지상주의로 무한한 성장과 소비천국을 구가하며, 반면 자연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지만, 이 둘이 커다란 모순임을 누구든 알고 있다.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는 낙관 속에 모든 문제에 대한 처방전을 마치 지니고 있는 것처럼 오만을 부리지만, 화석연료의 고갈, 물 부족, 기후변화 등 생태계는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계론적 사고에 의한 죽은 물질의 이데올로기로 생명현상을 분석해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시장의 붕괴는 지구경제를 일시에 혼란에 밀어넣었지만 처방은 불안감을 산발적으로 대체하는 미봉책으로 그칠 수 있을 뿐,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과는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자부하는 인간의 개인주의는 생태계와 유리되어 생물권의 공생적 하위시스템임을 인정할 줄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미 진화론적 위기에 돌입해 있다는 자각으로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인간중심의 가치관으로서가 아니라“개체 자체가 전체이면서 동시에 더 큰 전체의 부분”이라는‘홀론(Holon)’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시스템의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를 이해하기에 이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위기로서의 현상은 근본적인 시선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낡은 확신과 해법들로 산발적인 불안감 조절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기도 하다. 체계와 결속된 권력은 변화하려 하지 않으며, 생명에 적대적인 작금의 지배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려한다. 또한 위협하는 모든 위험을 외면하고 당면한 문제를 대중의 관심사에서 배제시키려고만 한다. 결국 주류권력은 근본적 변화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의식의 변화를 이루려고 하는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체계의 취약한 단면을 은폐하려고만 한다.


위기를 회피하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가치와 인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모든 생태학적, 사회학적 지표는 물론 양자역학, 생물학 등 학제적 이해역시 생명 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토해내고 있다. 지각하는 현실을 위해 모든 것을 사물의 세계로 제한한 근대문화의 단선적이고 폐쇄적인 시각은 위기를 끊임없이 부인하고 이로서 피드백되어야 하는 신호를 차단하고 자멸의 길로 내 닫기만 하고 있다. “위기는 바로 등잔 밑에서 일어나 아주 파괴적으로 작동 할 수 있으며, 너무 일찍 찾아 올수도”있다. 이처럼 위기의 근본은‘인식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인간 종이 직면한 이 위기를 우린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인간을 포함하는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멋진 예가 등장한다. 생명은 상이한 요구들이 협력적으로 조정되고 답을 찾아 나갈 때만 유지되며, 다양한 시스템 단계들 사이에서 지적 협상이 오고간 결과가 바로‘질서’임을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심장-허파 기관’이 선진국 산업기관이라 가정했을 때, 심장분배센터는 혈액가격을 설정할 것이고,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기관에만 혈액을 공급할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경쟁체제와 같은 승자-패자 시스템이 여기서 기능할 수 있겠는가? 생명시스템의 유지를 위해서 이러한 시스템은‘그냥 안 되는 것이다!’고도로 발달된 유기적 시스템의 완벽한 사례인 인간의 신체는 바로 전체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체계라는 것이다. 신체를 구성하는 각 세포인 하위의 개체들이 경쟁하면 신체의 기관들은 존속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신체의 각 기관들 역시 개체 자신의 개인성을 전문화하되 협력하여야만 생명이 유지된다. 이렇듯 부분은 온전한 전체이면서 전체의 부분이며, 협력과 공존의 체계이다.


또한,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세계의 토대는 물질이 아님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원자는 더 이상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물질은 사라지고 형식만이 남는 다는 즉, 존재의 구조만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바로 이‘존재’는 자연이라는 결속성, 즉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된 기초적 결속성임을 의미하고 있음이다. 생명성이란 불안정성에 기대고 그 주요한 힘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보상적 영향을 미치는 세계인 것이다. 낡은 고전 물리학의 기계론적, 물질적 사고는 진화의 대 변곡점에선 오늘의 위기에 대해서 아무런 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낯 선 영역인 이 변화라는 위기에서 집단적 고정관념은 불필요한 저항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만 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지금의 방식들은 붕괴 직전에 와있다고 신음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작금의 효율성과 합리주의 이성이 가리키는 것처럼 위기는 회피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위기라는 현상은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 미래로 내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며, 이로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주변에 대한 시선을 확보하게 된다. 새로운 것은 지적으로나 사회적 주변부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우린 알고 있다. 결국 위기는 새로운 생명의 비전이 출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개방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위기는 큰 여파를 몰고 오는 진화가 일으키는 것이며, 진화는 재앙을 통해서 작동되고 가속화되기에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강요한다. “앞으로 오는 시대가 힘들어질수록 진화의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은 더욱 빨라질 것”임을 우린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사회의 위계구조 상층부인 권력은 결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하루하루 생존과 싸워야 하는 빈곤에 허덕이는 계층역시 변화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근본적 변화의 기회는 우리 시민사회, 바로 우리대중들이 각성하고 가치를 세우고 의식의 변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양문화, 탈중심문화,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유연하고 역동적인 협력의 공동체인 시민사회운동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회현실을 변화시키는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의 지수적 성장이 야기하는 재분배의 왜곡을 비롯한 경제의 가치혼란과 비정의에 대한 이자, 복리시스템의 대체 방안으로서의 수수료체제나, 스위스의 비르(WIR)와 같은 자체지역통화의 기축통화에 대한 보완적 통화의 통용과 같은 구체적 공진화방안과 같이 미래를 보는 새로운 가치를 담은 사유와 구체방안들이 풍부하게 제안되고 있으며, 나아가 위기국면에 대처하는 평정심 유지의 중요성이 위기의 시대면 인기를 누리는 파시즘, 근본주의 이데올로기, 권위주의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에서부터 미래 역량을 배양하기 위한 사회적 집단지능의 활성화 능력을 육성하기 위한 대안의 제시까지 위기국면에 있는 인류사회를 위해‘파괴의 고통’을 동반하는‘긍정적 해체’로서의 미래가치에 대한 분야를 망라한 담론이 우리의 지성을 향해 진중하게 펼쳐지고 있는 위대한 저술이다. 작금의 요동치는 세계는 더 깊은 차원의 진리와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는 불가피한 시간임을 높은 안목의 제시로부터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며, 이 저술들에 소개되는 탁월한 생명의 질서와 체계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더 없이 커다란 삶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공존을 위한 미래가치와 인식혁명을 위한 존귀한 지침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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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서도 거대한 불의를 바꿀 수 있다! | 인문,사회 2010-08-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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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의 두 얼굴 : 외부 조종자

EBS '인간의 두 얼굴' 제작팀,김지승 공저
지식채널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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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아선 우린 지옥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불의와 부도덕, 참혹한 사건 사고가 넘쳐나는 악의 울타리 속에 갇혀있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정치사회는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공공행정 및 치안은 시민을 위해 작동하지 않고, 이기적 탐욕만이 성공을 안내하며, 소비와 쾌락만 조성하는 기이한 사회, 정의와 도덕성은 부인되고 타인의 고통은 방관하는 끔찍한 사회이기만 하다고 한탄한다. 도처에 사회의 안전이 체계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만이 무성한 사회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거대한 불의의 덩어리를 ‘나’한사람의 힘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가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이러한 무참한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사회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기만 한다. 과연 나 하나의 힘으로는 어떠한 시정도 가할 수 없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로 이 저작의 주된 관점이고, 그 가능성과 실제를 일상의 실험을 통한 인간의 심리적 기제들의 성찰과 사회의 작은 현상들에서 찾아내고 있다.

 

마치 인간은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주변의 상황에 어쩔 수 없어하는 것이 실제의 모습이다. 사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의 근거를 관찰하면‘상황’에 주도되는 취약한 존재임을 즉시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상황에 종속되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때론 선악의 경계를 넘어 가벼운 위반에서 범죄행위에까지 이르는 사례를 목격 할 수 있다. 인간은“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일 때 자신이 한 행동의 근거와 합리성을 타인과 집단으로부터 얻으려고 한다.”거나, 특정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압력을 받아 스스로의 행동 또는 생각을 바꾸는‘동조현상’, 그리고‘권위에 대한 맹종’처럼 집단에서 배척당하기를 거부하고 거기에 소속되려는 기본적인 욕구 탓에 인간은 특정 상황에 통제된다. 예시되는 대구지하철 참사사건당시의 미동도 없는 승객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집단 동조현상의 실험, 경찰복장을 한 자에 대한 맹목적인 권위의 복종 실험 등은 이를 흥미롭게 증명해주고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무수한 심리학서에 단골로 등장하는‘제노비스 신드롬’이라 불리는 무려 38명이라는 다수의 목격자가 침묵하는 가운데 35분간에 걸쳐 한 여성이 세 차례나 난도당하며 살해당한 사건은 우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지만 이 역시 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주변의 반응을 통해 행동을 결정하거나 다수에게 책임이 분산됨으로서 모두 방관자가 되게 하는 인간심리를 이해하면‘상황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강력하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유사한 예는 동네 골목에 쓰레기가 무단 투하되는 것이나, 무단횡단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행위에서처럼 도처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인간의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행동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의 힘에 종속되는 인간의 행동을 일탈하는 행동 또한 우린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은 상황의 방해가 없을 경우 타인을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학습능력이 거울뉴런이란 존재 때문에 가능하듯이, 내면에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 내재화되어 있음이 다양한 과학적 실험들과 뇌과학의 검증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곧 이타심으로는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잠자고 있는 우리의 이타심을 깨우기 위해 우리 주변의 상황을 이타심이 발현되기 쉬운 상황으로 여하하게 만들어 나가느냐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이 저작에서는 역기능으로서 사람들의 이미지를 획일화하는 가공할만한 미디어의 힘을 이러한 이타심을 확대재생산하는 긴요한 도구로 긍정적인 활용을 할 수 있음을 방편으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일본의 지하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한국인 유학생‘이수현’군의 일화가 일본의 도덕 교과서에 수록되고, 미디어에서 재생산되어 이타심을 확산시켜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던 일본인들의 행동방식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잠들어 있는 선한 본성이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위‘사회적 태만’의 비극이라는 불리는 집단 내 여러 사람(또는 기관)에 주어진 과제의 경우 성과에 대한 기여자와 책임소재의 불명확으로 모두 방관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우린 작은 힘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꽤나 흥미롭고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케 하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실험인데, 횡단보도에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 사람에 이르면 지나가던 모든 이들이 동조하여 하늘을 쳐다보는 광경에서 세 명이 모이면 집단의 힘이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케 된다. 셋이 모이면 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게 되고, 즉 거기엔 사회적 규범 또는 법칙이 되고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 누군가 한 사람이 외치고, 여기에 한사람이 더해지고 또 한 사람이 더해져 세 사람이 되면 아주 사소한 시도로 커다란 변화를 열어나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단한 노력이나 엄청나게 기발한 해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필요한 열쇠는 이처럼 작고 평범한 한 사람의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서 거대한 집단을 움직이는‘세 번째 손’이 되고자 하기만 한다면 우린 굉장한 변화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저 엄청난 권력의 횡포를 내가 어떻게 바꿔. 대기업의 말도 안 되는 시장의 폭력을 어떻게 막아. 그러나 우린 바꿀 수 있다. 우리 한 번 바꿔 봅시다! 고 나 먼저 외쳐보자. 친숙한 우리의 사건과 사고의 일례와 알기 쉬운 심리학 실험과 용어의 설명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긍정성을 발전시키는 데 명쾌한 도움을 주는 뛰어난 기획물이며, 재미있는 심리학 실험으로부터 사회학적 정의의 지향점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진정 훌륭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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