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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거리는 욕망의 세계, 그 은폐된 진실을 완결한다. | 소설,시 2011-10-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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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즈 가든

기리노 나쓰오 저/최고은 역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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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노 미로’시리즈를 완결하는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특히 미로 시리즈를 읽었던 독자로서는 이 소설집을 통해서 그녀의 삶의 원형을 확인, 완성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완결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첫선을 보였던 『얼굴에 흩날리는 비』의 처음 장면부터 음울하게 흘러내리던 새벽녘의 빗소리처럼, 또한 SM 쇼와 같은 소재에서 느껴지던 특유의 욕망의 끈적거림에 내재된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와 관능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세계에서 전율케 하던 근원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표제인 단편「로즈 가든」은 죽은 남편으로만 등장하던 ‘히로오’의 삶의 모습과 기억을 통해 미로라는 여인을 재구성하여 그녀의 치명적 독성을 이루게 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더구나 『다크』에서 아빠 ‘무라노 젠조’를 의붓아버지임을 부각함으로써 적개심까지 불태우던 그 심리적 배경이 된 원인을 목격 할 수도 있다. 의붓아비와 소녀 미로의 금지된 장난, 그리고 이 야릇한 비밀이 발산하는 퇴폐적이기 조차한 어떤 원시적 관능까지 몽환적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한편 시리즈 각 작품에 공히 흐르던 인간 모두가 내밀히 품고 있는 악의(惡意)를 단순한 일상으로부터 발견케 하는 「표류하는 영혼」이라든가, 「혼자 두지 마세요」와 같이 사랑과 욕망의 혼돈, 그리고 거짓과 분노하는 인간을 목격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수록된 단편인 「사랑의 터널」은 마치 미로시리즈에 등장했던 온갖 불온하고 불편했던 존재들이 뿜어내는 은폐된 폭력과 강압, 은밀한 욕망의 집산지처럼 극한의 자극 세계를 좇는 감각이 마비된 현대인들의 어두운 공조를 까발린다.

이러한 작업은 욕망에 취약한 인간의 정신, 불완전한 인간세계, 악의에 대한 해방을 염원하는 미로의 세계, 우리들이 진정 헤어나야 할 닫힌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어둠의 미세한 균열을 찾는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니게 한다.


이렇듯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인간 욕망의 이면에 감춰진 어둠의 세계를 파헤치기에 엽기적이고 음침하며 음란하기조차 한 소재들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치밀한 복선, 논리적 정교함을 통해 우아하기까지 한 분위기로 전환되는 탓에 그 기이한 마력에서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하게 한다.

장편『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을 연상시키는 단편「혼자 두지 마세요」에 등장하는 게이바, 호스트바, 포르노그래피 등 어두운 욕망이 암약하는 오늘의 세계, 그것이 딛고 있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세계의 심각성이 발작적 슬픔처럼 다가오게 하기도 한다.


장편 『다크』에서 선악 관념이 더욱 흔들리고 보다 감성적 인물로 변한 미로를 접했던 독자로서 증오와 삶의 체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인 그녀의 내면이 왜 지옥의 어둠 같이 뒤틀린 잔인한 무엇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폭력적 분노, 광기에 휩싸인 미로의 거침없는 감정의 질주처럼 악마적 탐욕스러움으로 그녀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전복시켰던 장면들이 이 세계의 당혹스런 도덕성에 직면케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반항과 반란의 열망이었음에 대한 이해를 완성시켜준다.

 

매혹되었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었던 미로 시리즈를 완결하는 이 소설집을 덮는 심정이 아쉽기만 하다. 붉은 장미 같고 독사를 품은 것 같은 여인, 순수함과 관능을 동시에 발산하는 이 여인에 중독된 독자들에게 『로즈가든』은 위안을 삼게 해 줄 작가의 배려인 듯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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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지대의 우수(憂愁), 가벼운 긴장...소문대로 재밌다! | 소설,시 2011-10-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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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플랑드르인의 집

조르주 심농 저/성귀수 역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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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농’의 ‘매그레’시리즈 작품과의 첫 대면이다. 첫 인상치곤 낯설지 않다. 격렬한 긴장이나 수위 높은 자극으로 과도한 감정의 소모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편안한 자세로 느긋하게 읽어야 할 작품이란 의무감을 들게 할 정도이다. 그래서 소파에 길게 누워 읽을 요량이었는데, 어느 새 입맛을 다셔야 하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아쉬움으로 게으름의 만끽을 앗아가 버린다. 설명이 필요 없는 감정,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어디 출장이나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짐 속에 필히 시리즈 중 한 권을 끼워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의 강박을 해소하는 가벼운 긴장, 그리고 여유로움, 권태에서 살짝 비켜난 즐거움이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만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의 해결을 위해 달려가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매그레 반장의 관찰자적 행동이 주는 중립성의 어떤 위안이랄까? 심드렁한 무심함 속의 예리함, 요즘에는 발견하기 힘든 외유내강의 인물이 발산하는 매력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꽤나 빨리 매그레란 인물에 대해 친근함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라인강이 흐르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지대 작은 마을‘지베’, 호우로 불어난 강물로 인해 운송선들은 발이 묶여있고, 플랑드르인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는 전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친지의 서신을 지닌 여인의 부탁으로 살인의 누명을 쓴 그녀의 가족을 위한 일종의 구명 수사를 위한 사적(私的) 방문이다. 법학 공부를 하는 남동생의 정부인 여인의 실종, 프랑스인이 주류인 마을의 여론은 돈 많은 이 플랑드르인 가족을 용의자로 몰아간다.

        
보잘것없는 공장 노동자 집안의 단정치 못한 여자가 아이까지 낳아들고 변호사가 되려는 플랑드르인 가족의 청년과의 결혼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이 불온한 여자의 행위는 플랑드르인 가족의 평온과 이상을 위협하는 것이다. 바로 그 여자가 실종되었으니 곱지 않은 시선을 이들에게 보내는 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사건의 수사, 범인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잃어버린 듯이 실종된 여자의 가족과 플랑드르인 가족의 면면, 즉 개개 인간들의 삶의 이면을 좇는다. 아마 이처럼 사람들 저마다의 내면을 형성하는 기질들, 그것들이 품고 있는 사연들에 우리의 관심은 훨씬 증폭되기 마련이고 그 신호들에 본능적으로 빠져들도록 유인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사의 진행 상황은 매그레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건담당 형사로부터 듣게 되지만 그가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애당초 어렵다는 것을 독자는 알게 된다. 왠지 진실은 매그레가 관심을 갖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 내지르는 그 속성에 있는 것 같다는 믿음이 드니 말이다. 마을의 적대감에 고립된 플랑드르인 가족의 자기 보호를 위한 공고한 가족의 연대라는 중요한 덕목, 그들이 지켜내야 할 가치, 그 기대에 대한 정념은 구원수사 의뢰자인 ‘안나’라는 여성을 통해 어떤 과잉의 으스스함을 더한다.

흐트러짐 없는 표정, 무표정한 온화함을 걸친 회색빛 여인, 그녀에 대한 매그레의 관심, 그것은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이 특별한 여성의 성격은 이 소설의 분명한 매력 요소이다.


한편 반복되어 등장하는 피아노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입센’의 시(詩) 「솔베이지의 노래」는 이야기의 끊임없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데, 사랑의 기다림을 약속하는 그 애절한 내용에 마비되는 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겨울이 지나가도 / 사랑스러운 봄날이 / 흘러가 버려도... / 가을 낙엽과 / 여름의 열매가 / 모두 스러질지라도..., / 당신은 돌아올 거예요, / 오, 나의 멋진 연인이여, / 영원히 내 곁에 머물기 위해....”


여기에 비 내리는 부두와 물결에 흔들리는 무력한 배들의 한가로운 무리, 진흙길을 지나는 드문 발길들, 뿌연 빗줄기 너머 불 밝힌 외딴 주점, 경계에 선 사람들이 뿜어내는 알 수 없는 우수(憂愁)까지 더해 범죄 추리를 초월한 심연의 무엇을 자극하는 안온함이 작품 전체를 감싸 흐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그것의 정체가 인간에 대한 연민이든, 고상하게 휴머니즘이라 말하든 따뜻한 밥이 차려진 식탁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그런 좋은 기분이다. 아무래도 시리즈 나머지 작품들도 주문해야 할 것 같다. 물 흐르듯 유연한 인간 개성의 탐사와 함께 절로 다가서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접근은 가히 이야기의 참 맛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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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특유의 문학양식인 사소설(私小說) 로 본 일본인의 문화코드 | 에세이,평론 2011-10-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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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본의 사소설

안영희 저
살림출판사 | 200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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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고백하는’ 양식의 소설인 사소설(私小說)은 내겐 기이하고 혐오스런 느낌을 주었다고 해야겠다. 자기의 실제경험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소위 리얼리티를 진정한 문학이라고 하는 소신인데, 이게 거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2011년 수상작이 사소설인 『고역열차』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1920년대의 서구 자연주의 문학이 왜곡되어 이해된 일본문학의 특수한 형태가 왜 21세기 일본의 현대문학 시장에서 다시금 부상하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부랴부랴 사소설의 탄생 배경과 사소설의 요소와 특성, 일본인의 의식과의 연관성 등에 대한 궁금증의 해결로 나가게 했다. 소설의 화자는 곧 작가인 소설, 경험 사실을 소설적 형태로 서술한 것, 그렇다보니 작가의 경험을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하기에 갈등구조나 해결방식, 절정과 대단원에 이르는 소설의 양식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인해 삶의 균형을 상실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체험하여야 하다보니 사소설 작가들의 인생이란 밑바닥 삶과 소외되고 저열한 생활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처럼 개인의 지루하기 그지없는 사생활을 들려주는 얘기가 독자에게 대체 어떤 의미를 주기에 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의 현대문학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발붙이기 어려운 장르라 할 수 있다. 타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으며, 고작 험난하고 비참하며 비루한 일상을 읽어야 할 동기유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들과 그들의 사회는 온통 빠져들고 칭송한다. 이것은 일본인 고유의 정서와 인식과 사소설이 지니는 속성과의 강한 유대관계를 의미한다. 근대 서구 자연주의문학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사소설이라는 변태적 리얼리즘 문학으로 정착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며, 일견 퇴행적인 문학양식이 여전히 그 생명이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지지받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사소설의 탄생


사소설이란 장르의 개막은 일본의 자연주의 시작과 궤적을 같이하는 모양이다.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노골적인 묘사를 원칙으로 하는 자연주의가 천황의 강력한 지배하에 놓인 1900년대의 일본사회에서 “구시대의 비판이 사회와의 대결”이라는 방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신변으로 시야를 좁힌 관조의 리얼리즘”으로 안착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결국 일본의 자연주의는 개인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표출, 즉 사생활을 중시하는 고백문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나라한 자기고백, 소설의 묘사는 어떠한 것도 진실이어야만 한다는 신념은 당대 일본문학계의 주류가 되기에 이른 모양인데, 이의 대표적 작품이자 사소설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1907년에 발표된‘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의 『이불(蒲團)』이다. 도키오라는 중년 작가가 자신의 집에 기숙하는 여 제자를 향한 비밀스런 애욕을 그린 작품으로 결코 충족할 수 없는 남자의 욕망이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서술된 이야기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실제 현실의 그대로의 재현으로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 단지 사생활을 소재로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린 이야기다.


여기서 일본 사소설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된 사적 생활의 기술에 머문다는 점이다. 다야마 가타이의 변형된 자연주의에 매료되어 사소설의 양식을 확정시킨 작가 중 한명인 ‘이와노 호메이’의 『오부작』은 사회성을 배제한 채 온전히 자전으로서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드려내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사생활을 모델로 소설을 쓴 이유는 “생활과 예술 그리고 사상이 합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생활이 그대로 예술이 되기를 원했고 자신의 사상과 문학을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구현하려 했다고 하니, 망상도 이쯤 되면 할 말을 잃어버리게 한다.


사소설 작가와 일본인의 의식구조


1.

이처럼 자기 사생활을 소설이란 구조에 담아내려다보니 감동을 주어야 하는 자기 폭로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이다. 소재의 고갈이 극명하게 다가오는 것인데, 그렇다보니 밑바닥 삶과 자극적 사건을 몸소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따라서 사소설 작가들 대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설혹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적 균형이 수시로 파괴되는 것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현실의 무참한 폭로라는 비애를 감수하면서 사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위해서는 이 폭로로 인해 자신이 더 이상 침몰하지 않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인 ‘니시무라 겐타’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중졸의 학력에 날품팔이의 무력한 노동자이며, 성범죄자의 아들이다. “그들은 출발시점부터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생활 실격자’”였으며, 픽션과 같은 외출복은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빈번하게 번역판이 출간되는 사소설 『인간 실격』의 작가‘다자이 오사무’는 유산계급의 자식이었으니, 이 자는 거꾸로 사소설의 소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파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처럼 반복되는 자살과 사창가 여인과의 도피 등, 자기 예술의 승화를 위해 극단의 생활을 추구했으며, 궁극에는 이 기이한 예술의 모순을 마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여 해결하는 길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들은 왜 써야 했을까? 소외되고 고립된 그들로서는 누구 내 말 좀 들어줘요.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고, 뭔가를 쓰는 것은 피난처이자 자기 위안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쓴다는 것은 타인과 직접 대면하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일본인 고유의 습성 탓에 상대적으로 쉽게 느낀다는 것이며, 자기 객관화 능력이 떨어지는 일종의 어리광, 나르시시즘이라는 일본인 전형의 인격구조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고백행위라는 작가의 자기희생 행위를 칭찬하는 일본인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인식구조도 한 몫 한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불행한 처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으로 인한 소재고갈을 뛰어 넘기 위해 끊임없이 불행한 생활이라는 자기 연출에 내몰리게 한다. 자신의 사적 생활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소설의 한계는 문학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2.

어쨌거나 이 자폐증적 요소를 지닌 사소설은 일본의 문화코드와 분명 연관되어 있다. 일본의 대중 영상물을 보면 공통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유독‘엿보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TV, 신문, 잡지에서 루머나 유명인의 사생활을 화제로 많이 다루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자신인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타인인 내가 그것을 살짝 엿봄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교사하는 심정이 잠재해 있으며, 사소설은 바로 이러한 공공연한 엿보기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일본 문화의 영향에 노출됨에 따라 무분별한 관음증이 각종 미디어를 휩쓸고 있다. 어쩜 이러한 현상이 일본문학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사소설의 ‘사실성’이라는 소설 속에 그려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일본인에게 사실에 충실한 작가라는 신뢰를 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작가와 동일한 인물인 소설 속 주인공에 친밀감을 갖게 하고 나아가 ‘자기 동일화’로 더욱 빠져들게 한다. 특히 사실을 숭상하고 허구를 배척하는 일본사회의 특수성은 사소설의 자전적이고 현실의 생활기반 중심의 이야기가 본능적으로 수용되는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소설은 사회에서 도피하여 사적 공간에 머묾으로써 정치사회적 무관심에 놓이고 자기 내면에만 골몰하며 자기연민에 빠진 인간을 양산한다. 결국 사소설이 개인사를 얘기함으로써 반사회적 의식을 시사하더라도 예술을 관철하기 위해 자기 현실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 전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글쓰기인 이상 자기 파멸적, 멸망의 문학이란 오명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고백문학, 일기문학, 수기문학으로서 작가가 화자인 사소설은 작가의 시선이 주인공과 객관적 거리를 가지지 못함으로써 자기반성이 불가능한 문학이다. 반성이 없으니 변화가 없고 때문에 발전이 없다는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미시마 유키오’의 지적처럼 “자유로운 인격의 발전” 혹은 “자신이 책임지는 자율적 개인의 인격형성”이라는 가치와 갈등을 일으킨다.

허구를 배제하고 사실을 추구하는 기이한 소설, 객관적 거리감을 상실한 문학인 사소설이 일본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은 일본인들의 정신구조와 관련하여 이처럼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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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고학 -‘육화된 열정’이 모든 감각을 불러 깨운다! | 소설,시 2011-10-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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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른 살, 최고의 날

카를로스 발마세다 저/박채연 역
북스토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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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소설은 달콤하고 관능적 음악이 흐르고 열대의 찬란한 색감들로 조화롭게 꾸며진 최고의 요리들, 자신들의 지성과 탄력 있는 육체를 과시하려는 선남선녀들이 즐비한 화려한 잔치를 연상시킨다. 감각의 풍요로운 향연, 드라마틱한 전개와 즐비한 지성의 요리들, 이 모두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육체와 정신의 구분이 없어지는 지고의 쾌락에 흠뻑 빠지게 한다. 요리와 섹스, 그리고 잘 갈린 은빛 칼날이 은밀하게 반짝이는 그의 전작(식인종의 요리책)이 발가벗겼던 인간의 욕망이 여기서 또 다시 빛을 발한다. 이번에는 신화와 문학, 오페라, 회화를 아우르는 예술 작품 속에 표현된‘열정적 사랑’에 깃든 본질의 탐색이다.


작품의 무대 역시 아르헨티나 남부 해안도시‘마르텔 플라타’이다. 왠지 이 도시에 있으면 절로 사랑에 빠지고 오감이 깨어나 생명력이 충만해질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감각들을 바짝 긴장시킨다. 절정과 감미로운 노곤함에 눈꺼풀을 스르르 감는 여인, 그녀의 기억을 여기에 멈추게 했던 사랑의 고고학적 발굴이 시작된다.

문학을 전공하는 서른 살의 대학 강사, ‘파울리나’는 박사 학위를 위해 <사랑과 연인들의 책>이라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걸작인 게 소설 속에 총 9개장으로 이 논문이 에세이처럼 소개되고 있는 것인데, 주제의식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제법 경이로운 이론까지 완비하고, 스토리와 상호 교섭하여 암시와 복선을 주고받으며 소설의 품격을 진부한 로맨스와 복수극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또 하나의 신화적 작품으로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사랑과 배신, 증오와 복수의 실체, 열정과 그 소멸, 이에 반응하는 연인들의 참담함, 그리고 그 열정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스 비극 『아이네이스』를 시작으로 『오셀로』,『트리스탄과 이졸데』,『페르 귄트』, 『피아노 치는 여자』등 오페라와 소설문학 속 비련의 연인들의 사랑의 자취를 거닐며, ‘옥타비오 파스’의 사랑의 비평과 ‘피카소’의 자화상이랄 수도 있는 인간의 육신을 한 수소 ‘ 미노타우로마키(La Minotauromachie)’가 뿜어내는 남성의 굶주린 욕망의 파멸성에 대한 해석까지 더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색깔을 조명한다.


새로 부임한 동료 교수‘호나스’라는 남자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인데, “사랑은 육화된 열정”인 것 같다는 파울리나의 열정적 사랑에 대한 고백처럼, 쾌락을 줄 수 있는 서로의 몸을 느낄 수 없는 사랑이란 강박관념 같은 고통, 좌절과 공허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체험적 논의들이 예술 작품들 여기저기를 누비며 사랑과 육체의 불가분성은 물론 연인의 육체에 대한 남성의 욕망의 속성, 그리고 사랑이 배신과 분노로 변질되고 증오와 죽음으로 연결되는 여정에 도사린 육체의 한계성을 부정으로서가 아니라 본질로서 파헤쳐 댄다.


여자의 사랑, 더구나 육화된 열정, 즉 육체를 잃어버린 사랑이란 이미 사랑이 아니라는 여자를 배신하는 것은 아마 죽음을 예약하는 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 비극작가‘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바로 배신한 사랑에 대처하는 여성의 화신이다. ‘입센’의 희곡『페르귄트』가 파울리나가 선택하게 될 사랑을 알려준다면, 『메데이아』는 사랑의 배신이 가져올 귀결이다. 열정은 그 열정의 사그라짐이 두려워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확인하기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공포다, 믿음을 흔들어대는 의심이 피어나는 순간 우린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곤 다가오는 상실의 고통,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이란 육화된 열정처럼 간절한 쾌락임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만 미노타우로스의 야수적 성애가 있다면 메데이아의 복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어야 할 것만 같다. 가히 매혹적인 사랑의 고고학적 탐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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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고 갈등할 수 있는 인간이란 얼마나 축복인가! | 소설,시 2011-10-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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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역열차

니시무라 겐타 저/양억관 역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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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이 그들의 삶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욕망들을 추구하며 내외적인 적대적 요소들과 무수한 갈등을 일으키고, 그것에 도달하려는 용기와 좌절, 그리고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린 인생의 또 다른 진실을 찾기도 하고, 마음의 정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러한 현대소설의 양식과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자기 삶에 대해 이렇다 할 의욕도, 희망도 없어 보이고, 삶의 균형을 깨는 요인들이라 이해하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것들에 증오하는 태도의 인물로부터 고착화된 의기소침과 좌절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열패감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지 쓸쓸하고 우울하다는 분위기 이상의 무엇에 도달하기가 여의치 않다.


마치‘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인간 실격』의 주인공이 부활한 것만 같은 인상을 받는다. 작가 자신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상의 이야기를 수기처럼 써내려간 사소설(私小說)의 리얼리티가 극적 재미를 기대했던 독자를 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개인사에서 인간과 세상의 보편적인 무엇을 발견하거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교감하는데 낯설다는 것이다. 또한 대단원을 향한 휘몰아치는 갈등과 그 해결이라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지만 사소설로서는 작가 인생의 대전환이나 혹은 죽음과 같은 극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니 이것이 박탈당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이 수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시선을 붙잡는 마력이 있다.


1.

마흔이 넘은 작가가 자신의 청년기 기억을 술회하고 있다. 성범죄자인 아버지, 가족에 보내는 사회의 시선, 그것은 수치심과 굴욕감에 포획되게 하고 보통사람들의 사회, 그 평범함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치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란 것은 막노동 이외에는 존재치 않는다. 항만에서 냉동 창고 하역작업의 막 일꾼으로 생활을 견뎌가지만‘간타’란 이 인물은 이조차 시큰둥하다. 하루 노동하곤 끼니를 구할 돈이 없어지면 다시 노동에 나선다. 그에게 목표란 것, 삶의 균형이란 것의 의식이 없다. 그러니 깨지고 말고 할 평형 상태란 것이 없다. 먹고 마시고 싸는 원초적 본능의 충족만이 전부다.


세상에 대한 낙심과 자신에 대한 혐오에 기초하는 좌절은 이렇게 희망의 기대를 지워버린다. 이러한 간타의 일상이 하역작업에서 동갑내기의 전문대학생을 만나면서 변화하는데, 타인과의 친근한 대화에 굶주렸던 그로서는 그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성실한 일용직 노동자의 대열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술과 매음굴을 찾을 수 있는 금전에 대한 약간의 여유를 덤으로 주고, 창고 내에서 일하는 자의 점심 특혜와 지게차 운전기능을 습득할 기회가 된다. 그러나 희망을 제거한 인간에게 이를 실천할 용기나 열정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에게 주어질 것은 다시금 단순 하역 노동자로의 복귀다.


한편 전문대생의 여자 친구인 대학생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그에게는 지적 허영이라는 역겨움으로만 인식되고, 열등감을 일깨운다. 이것은 그와 그들을 구분하는 일종의 구별 짓기로 이해되고 분노를 터뜨리는 구실이 된다. 이 사건은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고, 보통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다가 가는데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열아홉 살 중졸 학력의 청년이 성범죄자의 아들이란 무게를 떨쳐내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 그가 삶의 욕망을 찾으려고 단단한 세상 경계의 벽을 깨기까지에는 평범한 우리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역의 시간이 필요 했을 터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벌이 일용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그의 작업복 뒷주머니에 지니고 있던 사소설 작가 ‘후지사와 세이조’의 작품 복사물이 어느 순간 깨어났기에‘고역 열차’라는 신산한 삶의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2.

소설 『고역 열차』는 이처럼 열아홉 살 하역노동자로서의 삶의 기억인 「고역 열차」라는 미완의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듯이 마흔이 넘은 사소설 작가로서의 삶인「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라는 제목으로 비로소 욕망에 갈등하는 보통사람의 세상에 들어선 자를 얘기한다. 문학계의 파벌이나 인정이 개입하지 않은 그야말로 공정한 심사로 정평이 난 문학상으로서‘가와바타(川端)상’을 상정하고, 자신의 작품이 최종 후보작에 오르자 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동종업자들의 자의적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에도 불구하고 수상의 영광에 대한 기대를 떨쳐내지 못하는 헛된 집착의 비참함에 사로잡힌 자신에 대한 혐오, 자기부정과 합리화의 갈등을 보여준다.


달관한 척하면서 체념을 강요하지만 영예에 대한 희망, 그 명성을 얻지 못하면 일생 후회할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시달리는 것인데, “무작정 대접 받고 싶었다.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설령 일회성의 무의미한 소통이라도 좋으니 어쨌든 하룻밤만은 속 일 수 있을 만한 인기를 얻고 싶었다.”는 고백은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을 준다. 소설가로서 인생을 마치고 싶어 하는 사소설 작가의 염원, 지니지 못했던 삶의 균형을 향한 작은 욕망이 현실의 아쿠타가와(芥川)상으로 전해졌으니 그가 비로소 세상에서 갖게 된 희망, 꿈의 실현으로 괜스레 덩달아 긍정으로서의 삶을 느끼게 된 것처럼 고무되는 것이다. 욕망 없는 세계에서 그를 건져준 사소설의 세계, 은근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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