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필리아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http://blog.yes24.com/kuju
리스트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필리아
童而習之,白紛如也 Thinking!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2·4기 책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4,227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My Favorites
나의 리뷰
소설,시
에세이,평론
인문,사회
자연과학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책임없는자유 새로운가치 지역연고주의 기회주의 21세기공화주의와공동선한국 최대행복 js밀 매킨타이어 폭력의거시물리학 폭력의미시물리학
2011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필리아님~ 좋은 리뷰 .. 
좋은 리뷰 잘 읽고 갑.. 
글 속에 필리아님이 .. 
우수 리뷰어 선정되신.. 
왕관 달려있네요. 잘 .. 
새로운 글

2011-02 의 전체보기
중국 역대 황실의 풍성한 문화야사 | 인문,사회 2011-02-26 14:51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340874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색色, 광狂, 폭暴

천란 저/정영선 역
시그마북스 | 201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秦나라 영호해부터 明나라 희종에 이르는 역대 왕조에서 기행으로 오명을 뒤집어 쓴 20인의 왕과 황제들의 면모를 시시콜콜 엮은 책이라 하겠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한 국가의 지존인 이들인 만큼 그네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취향과 일상, 또는 성향과 기질에 국가의 존폐를 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으로 보인다. 다만, 수록된 20명의 제왕들의 기괴한 면면과 관련하여 만들어 진 성어(成語)를 비롯하여 시(詩)와 사(詞), 회화는 물론 상업문물 등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다채로운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은 무성하여 일종의 문화사로서 이해하기에는 그 정보의 양이 풍성하다 할 수 있다.


일례로 수(隨)나라의 멸망을‘양제’의 호색(好色)과‘겉치레 공정’과 같은 개인적인 사치성향과 성적 탐닉과 결부시키고 있지만 이는 역사를 극단적으로 편협하게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세 차례에 걸친 고구려 정벌 원정의 실패나 대운하 건설과 같은 국가재정 및 백성의 피폐를 야기한 결정적인 사건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집중된 일인지하의 통치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의 역할이 지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료와 제도, 국제질서 등 대내외 정치경제환경을 배제하고서는 역사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폭넓은 역사인식을 부여하고자 했다는 엮은이의 포부를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부족하다.


성적 욕망과 폭력성 및 광기는 그 기원의 동일성을 말하는 서구문화처럼 동양에서도 그 기질이 함께 논의되는 것을 보면 불가분의 관계성을 지니고 있음을 굳이 회피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개되고 있는 제왕들의 기벽을 보면 대개는 이 세 가지는 거의 일체화되어 따라다닌다. 5세기 남송(南宋)의 폐제 유자업의 경우, 누이, 고모와 근친상간를 벌이는 광적이기조차 한 방탕, 음란함은 물론이고 사람 죽이는 것이 일종의 유희(遊戱)였다고 하니 삼위일체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남송이란 나라의 경우를 보면 제위에 오른 유씨들이 모두 병적이고 괴팍한 난폭성으로 모두 신하들이나 자식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그들의 유전적 기질의 연구에 대한 어떤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느껴진다.


색(色)은 본성이고 인간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수많은 문화적 영감을 탄생시킨 것을 우린 부인 할 수 없다. 폭력과 공포라는 色의 한 특징에서 그 본질을 탐색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움, 관능성, 미적 예술성이란 측면에서 찾을 수도 있다. 6세기 진(陳)나라 후주 진숙보에게서 볼 수 있는데, 비록 정치적으로는 무능함을 떨쳐낼 수 없지만 그가 총애하였던 귀비(貴妃) 장려화에 대한 극찬, 그래서 「옥수후정화」라는 詩까지 전해져 오니, 그 나라 백성이야 안타깝지만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色의 그 절묘한 본성을 풍성하게 음미하도록 해주지도 않는가? 이러한 예술가 기질이 뛰어난 황제로는 12세기 송(宋)나라 휘종을 또한 들 수 있는데, 음악과 회화, 서화집의 편찬 등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나 당대에는 예술이란 경망스러움과 천박함의 대명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그의 예술과 색의 지나침은 역시 국가의 쇠망으로 이어졌다하니 애석하다. 황제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행복했을 사람들이 권력의 한 복판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한편 당(唐)나라 희종, 일명 환관들이 추대한 황제라는 의미에서‘문생천자’로 불린 이현을 통해 내관이 통치하는 나라에 불과했던 이웃에게 우리의 삼국이 지리멸렬했다는 것은 참으로 뜻밖의 역사로 다가온다. 황제의 정치참여를 배제하기 위해 어린 황제의 등극을 도모했던 당의 권력체제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들의 황제였다는 것인데, 결국 이들은 색(色)에 둘러싸여, 쾌락과 유유자적만을 위해 존재했던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 제의(祭儀)의 희생양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五大十國(5대10국)의 분열이 시작되었다니 사실 황제의 색광폭(色狂暴)이 국가의 멸망이나 분열을 초래했다기보다는 관료들의 무능과 부패, 환관정치의 비뚤어진 권력의 탐욕이 야기한 것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어째든 BC 1세기의 한(漢)나라 성제의 육욕에 대한 탐닉역시 국가 멸망의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온유향(溫柔鄕: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 또는 미인의 처소, 미인의 부드러운 살결을 이르는 말)’, 그가 사랑했던 합덕의 품에서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이승의 복은 모두 누리고 간사람 아닐까? 중국 제왕들의 내밀한 기록을 통해 엿보는 역사의 일면은 그자체로 재미있는 소재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하나쯤 은밀한 야설을 제법 멋스럽게 전달하기에 그만인 이야기들로 넘쳐나서 즐겁기도 할뿐더러, 틈틈이 인용되는 시와 사(詩詞)들의 풍미와 의외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들을 만날 수 있어 기대치 못한 지적 수확을 거둘수도 있는 저작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갈등하는 속물사회, 격차사회의 속살을 파헤친다. | 소설,시 2011-02-24 18:09
http://blog.yes24.com/document/338771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야행관람차

미나토 가나에 저/김선영 역
비채 | 2011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분명한 것을 쫓는 측면에서 얘기하자면‘격차 사회’를 조성하고, 사회의 저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무분별한 욕망에 시달리는 오늘의 인간들, 사회의 보잘 것 없음을 어느 고급주택가에서 벌어지는 가족들의 히스테릭한 모습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사회는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계층의 차별화와 그 고착화를 위해 달려가는 사회를 격차사회라 부르는 모양이다. 여건이 되지 못하는데도 지니고 싶고,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부글부글 끓어대는 속물적 갈망은 한국사회의 우리들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허나 이 작품의 묘미는 디테일, 즉 등장인물들마다의 심리와 행동,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가족 개체들만의 내면, 서로 다른 계층의 의식과 행위의 적나라한 포착에 있다고 하여야 할까.


‘히바리가오카’는 명문 사립학교들에 인접한 언덕길 위의 고급주택가의 이름이다. 또한 넓은 땅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양옥들이 들어선 이 주택가는 일종의 상류층에 대한 사회적 기호이다. 이 지역에 진입하기만 하면 “나는 이런 곳에 사는 특별한 인간”이라고 믿게 되고 절로 걸 맞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라는 사다리에 기어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곳의 자투리땅을 매입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생의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옹색한 면적의 땅을 구입하고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싸구려 주택을 지어 이사한 그 가족에게는 과연 행복의 웃음이 피어날까?

기대와는 달리 이 볼품없는 가족은 불란(不亂)이 그칠 날이 없다. 계집아이의 사립중학교 입학 실패는 콤플렉스가 되어 가족 갈등의 근원이 된다. 엄마에게 ‘당신’이니, ‘그쪽’이니, 아빠에게는 “아저씨는 빠지시지”라고 망발을 거침없이 내뱉는 아이의 폭력적 모습은 읽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울화가 치미는데, 아마 내 옆에 있었다면 싸대기를 올려 부쳐도 한참을 그랬을 것이다. 정말 인내가 필요할 만큼 못된 계집아이가 있다.


사건은 이 점잖은 고급주택가의 정적을 깨는 계집아이 ‘아야카’의 천박한 소란과는 달리 이 보잘것없는 가족과 마주보는 고급저택에 사는 엘리트 의사와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는 자식들, 현숙한 아내로 구성된 가정에서 들려온 단 한차례의 고성에서 시작된다. 한없이 고상한 부인 같았던 의사의 아내가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것인데, 직접 신고하고 살인 당사자임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상류 계층의 상징인 동네의 명성을 둘러싸고, 게다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입방아는 물론이고, 사건 당사자의 자식들, 친척들에게 까지 죄의식을 뒤집어씌우는 악의적이고 치졸한 군중들의 언어폭력, 또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못난 계집아이처럼 “교만한 마음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모습은 더 없이 오늘의 추악한 인간들의 면모를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주택가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의 탈을 쓴 부잣집 사모님”의 주제넘은 오지랖에서, 그 대단함의 위세란 것이 무지하고, 하찮으며 천박한 속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가하면, 허영과 허위의식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온통 빼앗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무리들의 구차한 의식이 다시금 까발려 진다. 자신들이 기를 쓰고 축조한 욕망이란 탑이 한 없이 부실하고 불완전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발밑부터 허물어져 내릴 그 조악한 세상의 실체를 알았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상류와 하류로 구분하고 욕망조차 차별 짓는 세상 둘 다  한 번에 굽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관람차의 설치를 기대하는 사내아이, ‘신지’의 격차 없는 세상의 공존에 대한 희구는 왠지 더욱 간절한 진정함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변덕스럽고 모순적이며 양면적인 심리들을 공감 할 수 있는 언어화하여 들려주는 작가의 역량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이 사회에 대한 냉혹한 거부, 충격적이다! | 소설,시 2011-02-23 16:23
http://blog.yes24.com/document/337323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02 영이

김사과 저
창비 | 201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소설집 마지막에 수록된 「매장」이란 단편에는, 지도로만 이루어진 한 권의 책, “잡지이자, 여행기이자 소설이며(....)일기이자 사진이며 백과사전이 될 그러한 책, 그것은 책이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 이상해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머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는 주인공‘나’와 ‘y'의 기획이 있는데,  ‘김사과’의 작품들에 대한 한 문장의 정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위가 상하는 무심한 살인과 흐르는 피, 그리고 도시와 세상을 향한, 인간인 자신에게, 모든 인간들에게 퍼붓는 증오와 분노는 낯선 괴이함이다. 다만 우린 이토록 이상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겨운 공포 아닌 공포, 고통 아닌 고통과 함께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소설은 이러한 분노와 증오의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이며, 그 실체를 깨닫는 순간, 바로 그 해답을 발견하는 순간에 내닫게 되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타율성에 길들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얽매임에 종속되지 않으면 결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버리는데, 이러한 구속적 삶의 존재가 감수해야하는 고통을 벗어나는 것, 즉 완전한 해방이란 것, 그것을 알라버리면 동공이 부채살처럼 확대되고 떡 벌이진 입과 같은 형상을 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평소에는 잊고 지내는 그 공포.


다리미로 민 것 같은 얼굴, 실리콘이 박힌 얼굴, “분홍색 푸들”처럼 하고선 뒤뚱거리는 아무런 생각조차 없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래 사실은 별 감흥조차 없지만, 잔잔한 멀미와 비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물질의 풍요, 기계적 편의성, 신체를 한낱 부품정도로 이해하는 인간들에게서 진정“무지는 행복의 충분조건”임을 확신케 한다. “심지어 자신이 행복하다고까지 생각하는” 괴물들은 “무지가 모든 오류의 충분조건”이기도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말이다.


꿈과 환상으로 지탱되는 이 도시, 서울의 세계, 여기서 단 한순간이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인간은 얼마나 될까? 매순간 타인들에게 증명되고 갱신되기 위해 사는 삶, 단지 살기위해서 사는 삶에 초점 잃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 초라함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정말 함께하는 것이 싫은 인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고 싶은 충동이 왜 안 일겠는가? 소설 속 인물들의 정신 분열적인 심리와 행동들, 그 가학적이고 충동적인 폭력과 살인은 그 자체로서도 진실이지만, 반대 방향, 즉 오늘의 인간무리들이 보이는 작태 또한 정신병자이기는 매한가지 일 것이다.


차바퀴에 손이 깔려 엎어진 노파의 구원을 무시하고 지갑 속 돈을 훔쳐내곤 살해하여 상자에 구겨 넣고는 “이미 죽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늙어빠진 할머니”이니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잖아요?”하는 항변이나 그래서 그건 거의 살인도 아닌 것이고, 거의 살인이니까 정말 살인은 아닌 거라는 주장은 세상에 대한 그 증오의 강도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가늠케 하는데, 좁은 골목길의 버려진듯한 국밥집 여주인을 칼을 휘둘러 살해하는 순간 발기한 자신을 깨닫는 소름끼치는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가 난 자신의 감정에만 귀 기울이는 것은 정신분열증의 오늘의, 한국사회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래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모든 것을 타인의 의지로 해 왔”으며, “타인의 욕망을 대리”한 것이 ‘나’이니 내가 가책을 느낄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역설의 역설만큼 수록된 8편의 소설은 잔인하게 이 사회를 후려치고 있다. 아니 천연덕스러운 냉혹함으로, 그러나 명료한 사회분석적 통찰을 안고 말이다.


뉴욕의 어느 한 구석을 닮아가려는 그 머저리 같은 지향성의 도시, 서울, 그리고 그 속의 인간들, 과연 그 끝은 어디인지 알고는 있기나 한 것인지, 자신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는 것인지...그녀의 진단처럼 우리가 빠져나갈 그 어떤 구멍도 없다는 절망감은 결국 이 사회를 이루는 역겨운 장치들을 거부하는 발작적 증상, 바로 정신분열의 상태로 터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그녀의 前作 장편『풀이 눕는다』에서 말하고자 했던 세상의 추레함과 비루함, 그리고 삶의 흉물스러움 대한 도발의 생생한 모습들을 이 작품집에서 발견하는 것은 내겐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하겠다. 김사과에 자꾸 빠져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죽음까지도 굴복시키는 그런 사랑이야기 | 소설,시 2011-02-22 08:2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335687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사랑의 추구와 발견

파트리크 쥐스킨트, 헬무트 디틀 공저/강명순 역
열린책들 | 2006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독일의 유명 영화감독‘헬무트 디틀’은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한 때, 계시의 한 장면처럼, 아니“연극의 한 장면처럼”, “분명하게 어떤 형상을 이룬 후 내 앞에 떡 버티고”섰던 꿈의 해석으로서 이 시나리오를‘파트릭 쥐스킨트’와 함께 만들었다고 제작의 변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흐릿하여 알 수 없었겠지만 사랑과 죽음과 구원에 대한 암시였을 것이다. 작품은 이 두 사람이 공동 집필한 시나리오로서 사랑하는 아내‘에우리디케’를 위해 지하세계로 뛰어든‘오르페우스’의 신화가 모티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죽음을 뛰어넘거나 죽음까지도 굴복시키는 그런 사랑, “일생일대의 위대한 사랑”같은 거를 말하면 대개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기가 십상일 게다. 어떤 세상인데 사랑 때문에 죽고, 또 저승을 따라가? 더구나 현실세계에서 그런 사랑은 결코 존재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단지 환상이라고 말이다. 자신의 음악성에 낙심한 여성과 뛰어난 작곡가의 소위 첫 눈에 반한 사랑, 그런 것일 게다. ‘비너스(슈테른헨)’와 ‘미미’의 격정적이고 영원을 약속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미미는 자신의 모든 예술적 이성을 쏟아 부어 음악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명곡들로 비너스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미미의 독백처럼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꼭 7년간만 지속되었을 뿐이다. “2천 5백번의 밤과 낮, 5백번의 밤은 행복했고, 2천 번의 낮에는 자꾸 문제가 생겼다.”(트레일러:http://www.youtube.com/watch?v=io2Brxo9b5I Click)

이별 후에 제기하는 절망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그들의 노래처럼 미미는 비너스를 잊지 못하고, 결국은 친구‘테오’와‘헬레나’의 그리스 별장에서 자살하고 만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죽음은 구원의 빛을 던져주고, 비로소 미미에 대한 사랑의 간절함으로 비너스 또한 연인을 쫓아 하데스의 입구인 우물에 몸을 던진다. 지옥의 강 스틱스의 뱃사공 카론과 문지기인 케르베로스조차 매혹시겼던 오르페우스의 릴라의 선율처럼, 비너스의 애절한 노래는 지옥의 신들을 감동시키고 연인들에게 이승으로의 구원을 허락하지만 신화처럼 하찮은 사소함으로 미미는 다시금 지하의 세계로 멀어진다.


세월이 지나, 지하세계의 신으로부터 세 시간이란 이승에서의 삶을 허락받은 미미가 오페라극장에서 열연하는 늙은 비너스를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광장에서 두 사람이 조우하여 과거의 연인들을 그리는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 숙연한 이미지가 되어 마음에 둥둥 떠다닌다. 어쩌면 그렇게 이별함으로써 이 연인들의 사랑은 가장 위대해질 수 있었는지도...마법에 걸린 것 같고, 시적이며, 낭만적이고, 불가능한 그런 사랑이 되는 것인지도...사랑의 감미로움, 애틋함이 오르페우스의 아리아 선율을 타고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삶의 애증, 그리고 탄식, 구슬픈 노래가 되어.... | 소설,시 2011-02-19 09:33
http://blog.yes24.com/document/331752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화씨 비가

쑤퉁 저/허유영 역
비채 | 2011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작품은 그의 소설 『성북지대(城北地帶)』와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거의 동일한데, ‘펑황’이란 이름의 여인이나, 마을의 중심축이 되는‘참죽나무길’까지 두 작품의 강한 유대감을 지니고 기댈 곳 없는 서민들의 삶의 소묘에서 우러나는 닮은 감성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화씨 비가』는 반전이 없어서 더욱 쓸쓸하고 울적하다. 맹랑하고 허황되게 삶의 긍정을 그려내야 한다는 도식에 충실한 쓰레기처럼 쏟아지는 대다수의 소설들에 이봐라! 하며 소시민의 대물림되는 가난과 절망을 처절하게 각인시켜준다. 순박함이 곧 무지함으로 인식되는 오늘에야 말할 것이 뭐 있겠는가마는 쑤퉁이 일관되게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맞추는 배우지 못한 서민들의 목소리와 지친 몸뚱이들이 뿜어내는 삶의 해학은 그 어떤 숭고한 철학적 사유를 능가하는 가공되지 않은 진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의 도입부는 그야말로 우문현답의 향연이다. 아내 펑황이 그녀의 근무 장소인 유류창고에서 목매 자살한 채 발견되자 감정의 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창고에 불을 지른 뒤 심문을 받는 남편,‘화진더우(화씨)’와 재판장과의 대화인데, 이름을 묻는 답변에 출신성분까지 곁들여 “지주 집안이 아니고 아주 떳떳한 하층 빈농이랍니다.”라고 부연 설명하는가하면, 방화의 이유를 대라는 질문에 “그걸 진짜 모르겠다는 거 아닙니까요. (...)정신이 홱 나가버린 겁니다.(...)누가 내 머릿속에 매듭을 꽁꽁 묶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숨이 목구멍에 턱 걸려서는 들이쉴 수도 내쉴 수도 없는 겁니다.”라는 정말의 대답이 형식적이고 거만한 제도의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으며 요구되는 대답이 되지 못하는 것에서 그 소통의 단절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성을 잠시 잃고 길길이 날뛰다보니 자신을 피하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필 석유통이었고, 더구나 석유통에 불조심이라고 훈계하는 문자가 방화의 결정적이고 직접적 동기였다는 진술 또한 거짓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린 여기서 피식하고 웃게 되지만 그 이상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법제도가 오히려 진실을 벗어난 황당함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은 예정된 판결결과에 대한 좌절과 절망으로 자살하고 마는 화진더우는 여동생과 네 딸, 그리고 아들 두후(獨虎)에 대한 걱정으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사이인 구천에서 떠도는 궁상맞은 원혼이 된다. 어린 나이부터 생업을 위해 열심이었던 남자, 갓 스물에는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 되어 혼자 세 사람 몫의 일을 해 댈 정도로 마소처럼 일한 사나이였지만 졸지에 고아가 된 다섯 남매의 아비로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혼령으로서의 그 애틋한 마음은 아이들을 떠나지 못하고 참죽나무길을 맴돈다.


“남들은 머리굴려 잘 먹고 사는데”, 그렇지 못한, 아니 배움이 없어 그럴 수 없는 사람의 푸념이 육두문자를 피할 길이 있을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라는 문장은 계급과 권위를 내포하는 말이다. 재판관이 하는 ‘여기가’하는 말은 웃기는 얘기가 아닌가. 여기가 뭐긴, 인민이 세금내서 지은 법정이고, 인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사는 인간들이 하찮은 권력을 왈가왈부하는 것이 더 웃기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런가. 배운 놈, 가진 놈이 행세하도록 짜여있는 세상에서 화진더우나 그의 자식들, 벽촌에 사는 일가들에게는 아득히 먼 세계인 것을. 시집도 안 간 둘째 딸‘신란’이 덜컥 애를 배서 돌아오자, 알량하게 남은 체면을 지키려고 뱃속의 시한폭탄을 지우다가 사망하는 장면이 있는데 무산계급혁명을 부르짖으며 처단 되었던 부르주아 지주의 여식이 오히려 의사가 되어 화씨 집안에 대한 복수로서 낙태수술 중 절명시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체제라는 것도 인간사회의 오래되고 끈질긴 탐욕의 본성과는 무관한 하물며 변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웃들은 고아가 되어버린 화씨 남매에 대한 보살핌은커녕 회피하고 학대당하는 대상들이 되어 천덕꾸러기로 자란다. 특히 아들 두후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내려다보는 망자인 화진더우의 기대와는 달리 탈선과 무위도식으로 누이들과 고모를 고통스럽게 하고 급기야는 동성애자로 화씨의 손을 잇는 사내와는 멀어지는가 하면, 신메이, 신주, 신쥐, 세 딸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안타까움에 겨워 따라다니지만 혼령이란 아무런 것도 그들에게 줄 수 없음을 자책하는 망령의 옹잘거림은 그 애절함을 증폭시키기만 한다. 성인이 되고 짝들을 찾아 혼인하고 또 아이들을 낳는 자식들의 세월과 함께, 화진더우와 펑황을 대신해 아이들을 어미처럼 돌본 진더우의 누이인 고모의 애처로운 죽음에 이르면 이들 화씨에 떠나지 않는 불행이 더해 그 쓸쓸함이 더욱 애달프고, 소시민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괜스레 가슴이 아려온다. 세습되는 가난과 소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어버이의 쓰라린 심정이 구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화진더우와 그의 전용 하늘 당나귀의 눈물이 되어 뿌려지는 듯하다. 외롭고 희망 없는 삶, 그러한 인생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 어쩜 그것이 사람의 숙명인지도...작가의 말처럼 운명의 질긴 애증과 고독이 이 보다 절절하게 표현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처량하고 구슬픈 노래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부모의 사랑이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3
진행중인 이벤트
트랙백이 달린 글
내용이 없습니다.
스크랩이 많은 글
[서평단 모집]『사랑 광기..
해석에 대하여
[서평단 모집]『반지성주..
법의 무지
많이 본 글
오늘 60 | 전체 421983
2007-01-16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