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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와 미국 연성 권력의 영향 | 인문,사회 2012-01-3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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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그렉 브라진스키 저
책과함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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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로부터의 독립한 1945년 이후 1987년까지란 시간의 구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자못 커다란 숫자이다. 아마 저자도‘대한민국’이라는 동아시아의 작은 민족 집단에게 비로소‘국가’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숫자일 게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이렇다 할 경제적 기반도, 국가 행정자원도, 통치력도 지니지 못한 보잘것없는 후진적 민족 집단이 소위 서구의 근대화, 민주화된 산업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 나아가 세계무대에 개발국의 지위를 확보하는 성공적 민주국가가 되었는지, ‘발전 지향적 독재’를 비롯한 독특한 한국의 산업근대화와 정치민주화의 과정을 탐사하고 있다.

 

책의 표제를 보면 전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일견 미국인인 저자의 오만함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객관적 사실의 표현, 즉 대한민국을 근대적 국가로서의 탄생이란 의미에서 바라보면 굳이 사시로 바라볼 것도 아니다. 1945~1948년 당시의 국제적 시선을 보면 “국가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조차 갖추지 못한 뒤쳐진 국가”라는 것이 지배적이었으므로 실제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의 형태를 지니지 못한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인구집단이라는 것이 진솔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우린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근대적 국가, 민주국가라고 자처하는데 크게 저항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이념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인권(人權) 및 개인의 자유, 평등과 민주주의 등 형식적 조건을 성취하는데 4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초들이 탐욕스런 독재 권력들의 폭압과 폭력에 참혹하게 희생되어야 했으며, 일제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민족의 배반자들에게 기득권을 여전히 향수하게 하고 있다는 치욕스러움이 남아있다. 또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천부적 인권이라고까지 불리는‘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복지분야, 만인의 평등을 법이란 형식 속에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 경제, 사회의 수많은 분야에서 차별과 분류, 구별짓기로 평등의 가치는 오히려 실종되어만 가고 있듯이 퇴행적 양태를 부인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측면에서 그나마 형식적 민주화를 시작하게 된 원년, 세계인의 시선에 정말의‘국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 1987년에 이르는‘국가화’의 시간에 전개된 양상들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함으로써 우리들이 반복하는 어리석음의 실체, 그 부당함과 부정의 요인들을 통해 진짜의 정치,경제 민주주의, 국민의 행복과 자유, 평등이 보장되는 선진 국가를 향한 귀중한 사유의 초석이 되어준다.

사실 이 책이 기술하고 있는 한반도 남쪽지역의 인구집단이 경험한 42년 동안은 민주주의가 실행된 적이 없다. 아니 실행하기 위한 안으로부터의 저항과 밖으로부터의 압력과 지원이 있었지만 그 외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만 그 엄청난 시간과 민초들의 희생이 소요되었다. 바로 이들 압력과 저항, 희생, 지원이란 무엇이었는지,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어떠한 작용과 영향을 주었는지 목격케 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1. 근대화를 지체시킨 독재자들

 

이 책의 남다른 미덕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권력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향성에 대한 시비를 부분적으로 낮출 수 있음으로 인한 높은 객관성이다. 물론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란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한국의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 두 인물의 독재기간만 무려 30년인데다가, 이후 10 여 년간은 다시금 동족의 무차별적 살해를 통해 정치권력을 침탈한 군사 쿠데타 세력의 독재가 이어졌으니 여기에 뭐라 인문학적 성찰을 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제3자적 시선의 이들에 대한 평가, 특히 미국 정부의 당시 입장을 비롯한 근대화라는 가치 지향적 접근에서의 고찰은 국내사가(史家)들이 미처 서술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일례로 미국무부 작성 <이승만에 관한 비밀 보고서>에서 “현실 정치가로서 갖춰야 할 역량과 자질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와 같이 미국 정부의 평가나, 왜 미국이 이승만을 한국정치의 리더로 선택하고 지원했는지의 배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승만이 개인적 권력욕에 그토록 쪄들었는지, 국민의 의사 일체를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독재자가 될 수 있었던 자원(資源)적 배후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모든 국가 재건과 전쟁비용 등 국가의 재원 모두를 미국이 제공했으므로 이승만으로서는 국민과 협상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재원들이 경제발전이나 국가사회를 위한 자원으로 이용되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정치적 라이벌 제압과 같은 권력 유지비용, 기업에 특혜제공을 통한 정경유착의 씨앗비용은 물론 전쟁 중에도 자금을 비밀리에 빼돌려 결탁하고 개인사단을 위한 정보비로 사용하는 등 악질적이고 파렴치한 노회(老獪)한 늙은이가 우리민족의 가장 중요한 12년간을 갉아먹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이어진 군사쿠데타와 박정희의 군사혁명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당시 냉전체제하에서의 미국 케네디 정부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박정희의 권력유지를 위한 외줄타기 외교모험의 결과나 한일국교정상화가 미국정부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어떤 이해관계의 타협산물인지를 보게도 된다. 특히 박정희에 이르러‘발전 지향적 독재’로 명명되는 독재정권 하에서 국가권력의 일방적인 권위에 의한 경제발전 모델이 성립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기술은 항상 논쟁의 중심에 서는 항목인데, 경제자립의 명목 하에 거대재벌에 원조자금을 집중하여 줌으로써 자신의 정치자금원을 확보하고,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일석이조의 야심에 대한 미국의 당시 목소리를 들을 수 도 있다.

 

1차 경제개발 계획을 시작으로 박정희의 경제적 자주권을 향한 노력 - 재벌의 집중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 - 은 오늘의 시점에서 결과론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는 토대에선 부도덕하고 패륜적인 물질주의, 경제최우선주의 지향이 절대적 불가피 정책이었다는 주장은 그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에는 왜 중소기업이 육성되지 못하는지, 오늘날 기업집단의 파행적 행태와 고질적인 정경유착, 재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정치, 관료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함 등의 원인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유신헌법이라는 기본권은 물론 국민의 모든 권리가 제한되거나 부정된 막되 먹은 헌법 개정과 부패한 독재권력에 학문적 정당성이라는 방패를 마련하고 권력의 시녀가 된 원숭이들도 이 시절부터 한국의 혐오스러운 사회현상의 하나로 대두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재권력에 빌붙어 논리를 제공하고 관료자리를 한자리 꿰차는 것에 목메는 어용교수라는 것들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오늘의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면 거의 모든 것이 박정희 독재정권이 낳은 패습들의 연장에 있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농도 짙은 썩은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치적 입지 및 권력유지와 관련하여 미국 정부의 입장 변화들의 상린(常鱗)성을 통해 다채로운 사실과 분석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2. 국가화 과정의 요인들

 

나로서는 가장 매력적으로 읽게 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민주화와 근대 산업사회에 걸 맞는 지식인의 성장과 관련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근대화를 위한 연구와 노력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식민통치 하에서 일제의 권위적, 그리고 전통적 유교 교육에 얽매여 있던 전근대적 교육체계에서 미국을 통한 서구의 근대식 교육체계의 주입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의 유입이 이루어지는 경로와 프로그램 등 이식 방법 등이나, 특히 선택된 정치 행정 관료들 및 군 장교들의 교육이 한국의 정치경제 및 사회전반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당시 참여자들까지 거명하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사회전반에 미국의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양성된 사람들이 각 분야의 리더로서 한국사회의 근대화 등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인데, 미국 공보실의 후원으로 언론 유학을 다녀온 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관훈클럽의 전신이라든가, 군대에는 육사와 국방대학원을, 하다못해 출판분야에서는 『사상계』까지 원조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미국의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국가형성 작업의 영향력의 범위가 그것이다.

 

특히 서구의 근대화 이론을 통한 미국식 사고의 주입이 한국의 학생들과 지식인 사회에 자극을 주고 여하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은 우리가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로 인식되는데, 단지 추상적으로 독재권력에 대항한 민주적 욕구 발현의 동력이 되었다거나,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 결여된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도덕적 보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정도에서 그쳐서는 부족할 것이다. 실제 우리는 서구가 근대화라고 일컫는 산업자본주의는 물론 민주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고유의 양식과 과정으로 변환하여 수용하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이 때론 충돌하여 갈등하거나 배제되었는가하면, 유연하게 조화를 맺거나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것들 각각에 대한 우리만의 연구와 진단의 성과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민감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후진국이 경제발전우선주의 정책이란 가치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비롯한 자유와 평등과 같은 기본권을 억압하고 유린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정의의 문제에서부터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들과 그 권력에 이론과 행동의 실천으로 아첨하고 선전의 선봉에 섰던 자들에 대한 조명이 있으며, 미국의 권력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작동해왔으며 실제 작동하는 양태와 그 역학 관계를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현대사, 그것도 민주화 이전의 시기를 되돌아 볼 때면 항상 눈살이 찌푸려진다. 오직 일그러진 초상만이 있기에 그런 것인데, 이 책이 이러한 성찰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화이론을 비롯한 경제발전론, 그리고 미국이라는 제3의 시각에서 자료를 덧대어 역사적 시점을 현재화 하여 왜곡되거나 편향됨을 배제하고 분석, 제시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이해와 관점을 갖도록 해준다. 마침 한국의 정치 사회는 시민으로 외면당하고 부인될 정도로 신뢰를 상실하고 있으며, 이러한 판을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민주화된 국가로 도약하는 중대한 전환의 시기라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현대한국의 정치경제사는 우리들이 판단하여야 할 귀중한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도와준다. 수준 높은 역사 인식과 안목을 지닌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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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있는 인생의 문은 꼭 열고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 소설,시 2012-01-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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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나쓰메 소세키 저/김정수 역
비채 | 201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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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방이 오밀조밀 기능으로 분리된 소박한 일본의 전형적 가옥과 그 안에는 세상과는 얼마만큼 떨어진 채 자신들만의 안정된 삶을 꾸려가는 부부가 보인다. 도쿄 외곽의 한적한 셋집, 번화한 시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적막함마저 감도는 그런 외진 공간. 대화는 없지만 아내는 뜨개질을 하고 남편은 길게 누워있는 어느 일요일의 장면은 밋밋하고 무료함 그 자체임에도 그 어떤 강렬한 모습보다도 마음 깊숙한 무엇을 자극한다. 소설은 이러한 일상적 흐름을 통해 삶의 원형들, 존재의 의미들, 생의 가치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산사(山寺)길을 걷는 나그네의 모습처럼 그렇게 낮게 타박타박 그리고 있다.

 

교토(京都)의 대학생,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워가던 청년, 절친한 친구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이 윤리적 불륜은 세상의 질시를 받으며 인생을 시작하게 한다. 친구를 배신했다는 무의식에 뿌리내린 죄의식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잊힐 것이라 여겨지지만 단지 잠복하고 있을 뿐, 남자의 삶은 세상사에 무심한 듯, 한 걸음 물러난 초연(超然)함으로 가려진 채 마치 체념처럼 일상이 흐른다.

그리고 유산과 사산으로 연이은 불운은 남자의 아내조차 세상과 단절된 듯한 변두리의 작은 그들의 둥지가 지닌 의미를 강화한다.

 

남편의 일과 행동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 아내, 아내의 그러함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남편, 그래서 이들 부부가“서로 부둥켜안고 둥근 원을 그리고”,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지만 그것은“쓸쓸한 안정”이란 표현에 가 닿는다. 아내의 병약함, 그런 아내가 작은 셋집에서 시동생까지 뒷바라지 해야하는 상황에 애처로워 하는 남편, 남편의 우유부단과 자기 격리조차에도 배려와 격려를 하는 아내,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심연에 원죄의 의식처럼 침잠해 있는 무엇이 강한 유대와 고립, 불안의 배경처럼 그들의 삶을 쥐어틀고 있는 것만 같다.

 

하급관리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온통 자기의 인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남자, ‘소스케’는 그러나 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인생의 길, 자기 존재성에 대한 가능성마저 저버린 것은 아니어서, 대인관계가 거의 없는 그가 생활의 여유와 다양한 인간관계, 삶에 너그러운 시선을 지닌 주인집 남자‘사카이’에게 호의와 동경을 보인다. 자신의 인생행로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사카이와 같은 삶의 행복을 가지지 않았을까하는 동일시의 기대에서 그것은 더욱 명료해진다.

 

급기야 주인집 남자로부터 우연히 튀어나온 자신과 아내가 배신한‘야스이’라는 이름은 자신들의 삶에서 지워버렸다고 믿었던 불안의 존재를 각성하게 한다. 상처 받을지도 모를 아내에게는 이 사실을 숨기고 남자는 막다른 길, 삶의 장벽에 막혀버린 듯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종교, 불교의 참선의 장, 자기 존재, 삶의 행로에 대한 문(門)의 물음으로 달려가기에 이른다. “마음을 다스려 집중하면 일체의 감각과 지각이 끊어지고, 육신이 철봉처럼 딱딱하게 굳어질 만큼 정진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선불교의 좌선의 행위처럼 “혼자의 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존재에 대한 힘겨운 물음에 인내하지 못한다. 결국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남자가 하는 행동은 집에 돌아와 혹 아내가 야스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불안만을 확인한다.

 

세상의 시선과 닿지 않은 도시 속 시골과 같은 공간, 그리고 극히 자기표현이 억제된 부부의 소박한 평온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 잠재하고 있는 쓸쓸함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쫓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뭉쳐졌던 무엇이 떠올라 하~아~하는 탄식이 뱉어진다. 닫혀져 있는 문 앞에서 나 역시 항상 머뭇거리다가 돌아서왔던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어쩌면 끝내 소스케처럼, 또는 오요네처럼 인생의 문, 내 존재의 문을 열고 저 쪽의 세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을 포기하고 말지도 모르겠다. 본래 열지 말아야 하는 것일지도, 인생이란 그 모름의 불안과 고적함, 무력할 수밖에 없는 무엇일지도 모를 일 아닐까? 인적 끊긴 산사의 눈길을 마냥 걷고 싶도록 하는 소설이다...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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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에 참여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 인문,사회 2012-01-1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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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저/임희근 역
돌베개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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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에 참여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이 작은 팸플릿의 몇 마디 문장들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상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이해시키고 또한 어떻게 행동하여 하는지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사실 우린 극한적으로 부추겨지는 경쟁에 내몰리고, 생활에 치여 정작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세상의 흐름에 둔감하며 무관심하다. 아니 몇 차례 부딪혀 보곤 좌절과 절망으로 문제를 외면하고 뒤돌아섰다고 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분노할 세상의 문제를 보지 못했겠는가? 그 드센 세계의 문제들을 응시하고 합류할 용기와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면 핑계가 될까?

 

그러나 나치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그리고 세계인권선언문의 기초자로,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아흔이 넘은 이 고령의 노투사가 “분노 하라!”, “동기를 찾아라!”라며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투사가 되라고 외치는 소리에는 변명을 할수록 비루해짐을 느끼게 된다. 정의와 자유의 방향을 상실케 하는 세상의 문제들에 분노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진실의 목소리에는 항거할 여지가 사라지고 만다.

“역사는 연이은 충격으로 이어진다.”는 철학자‘헤겔’의 문제에의 도전을 천명한 말처럼 우리의 역사도 민족을 배신한 일제의 앞잡이들, 군부 독재자들, 부패한 정치가들, 금권의 위력으로 탐욕에 넘치고 오만불손해진 경제적 퇴락에 이르는 충격과 이에 분노한 시민의 대결이었음을 알고 있다. 급기야 작금의 우리사회는 1%의 강(强)부자(富者)와 99%의 서민, 수백,수천억원의 연봉자와 팔,구백만원 연봉자라는 역사 이래 가장 극심한 부의 격차라는 심각한 불균형과 부정의가 뿌리내리고 있다. 시민의 대표라 선출한 정치인들은 자기 기득권 찾기에 혈안이 되어 썩어가고, 재벌과 그들의 재화에 시녀가 된 공직 사회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이 보일 겁니다.

강력한 시민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노(老)학자가 분노할 동기를 찾으라고 채근하며, 분노의 감정을 갖지 못하는 불감증, 인간으로서의 최악의 태도는 바로 ‘무관심’이라고 지적한 말은 정말 옳고, 또 옳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작은 사회적 배려이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간최후의 보루를 보장하려는 사회복지에도 인색함을 감추지 않는 이 사회의 몽매함과 이기심처럼 우리가 분노할 것들이, 격분할 것들이 산재하고 있음이다. 물론 우리가 분노 할 대상은 이렇듯 특권계층의 몰염치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뿜어내는 뒤엉킨 문제들로 무수하다. 더 이상 자기의 평안에만 기탁해 무관심으로 방관하는 안일함은 죄악이 되고 말 것이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 대 만인의 지나친 경쟁” 이것들이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문제가 없다고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진보의 역사적 가치를 군더더기 없이 직시하게 하는 이 한 마디의 진실성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의 자유와 정의를 희생시키는 권력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의 사용을 말하지 않는다. 부당함, 불의에 대항해 격분을 표출하는 테러리즘을 이해하지만 폭력을 낳는 폭력의 악순환을 시작하는 테러리즘은 부정해야 하며, 오히려 폭력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 비폭력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언제나 역사 발전의 힘은 희망이었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어주자는 소극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을 정복하는” 어려운 구축작업을 실행하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다.

 

분노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린 자신들이 서있을 곳도, 행복도, 존엄성도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자유와 정의를 훼손시키는 그 어떠한 것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유롭게 사고(思考)할 수 없는 순간 우린 더 이상 양심에 따라 행동할 권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와 정의를 위해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참여할 것을 견인하는 이 짧은 텍스트는‘아폴리네르’의 詩,「미라보 다리」의 마지막 구절인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처럼 비폭력의 희망이란 배움을 위해 ‘분노’의 미덕을 압축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시민 참여와 창조적 저항의식을 위한 실천 방법, 나아가 참여 민주주의를 위해 요구되는 정치적 창의성에 대한 제언까지에 이르는 저자와의 인터뷰, 이 책의 서평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실비평이랄 수 있는 조국 교수의 추천사가 더해져, 저자 ‘스테판 에셀’의 이 텍스트의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육성은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작은 연대의식에 불꽃을 당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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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가 '모던&클래식' 문학시리즈를 선보이다! | My Favorites 2012-01-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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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열면서 장르문학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던

도서출판 비채가 '모던&클래식' 시리즈로 정통문학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문학은 인간과 사회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드는 가장 진실된 창>이라는

선언과 함께, '모던&클래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고전부터

지금 이 시대를 그려낸 현대의 문제작까지, 빛나는 문학의 정수만을 엄선하여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처음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아모스 오즈의 <시골 생활 풍경>과 나쓰메 소세키의 <문>이다. 그리고 

후속작으로 오 헨리의 <오 헨리 단편선>,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

존 스타인벡의 <불만의 겨울>, 케롤 실즈의 <스톤 다이어리>등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세련된 장정과 디자인으로 작품 못지않게 책의 가치를 만들어내던

비채가 소장가치 500%를 자부하고 있다니 관심과 기대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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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 작품소개는 도서출판 '비채'의 네이버 카페에서 발췌함.

'침묵하지 않는 작가' 아모스 오즈가 그려낸 쓸쓸한 이상향

2010년 지중해 문학상 외국문학상 수상작

시골 생활 풍경(Scenes from a village life)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아모스 오즈는 현대 이스라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최근 십여 년간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작가이다. 아모스 오즈의 최근작인 《시골생활 풍경》은 2010년 지중해문학상 외국문학상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전에는 오르한 파묵, 움베르토 에코, 이스마엘 카다레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이 상을 수상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텔일란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진 가공의 마을이다. 이 가공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면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시적인 문체로 잘 표현해 내었다.

 

스무 살이 조금 지나 읽은 《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젊은 부부가 살아가는, 골목 안 쥐죽은 듯 조용한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엽 감는 새》를 쓸 때 나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_무라카미 하루키

문(門)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전기前期 걸작을 만나다!

도쿄대생 선정 추천도서 100권

홋카이도 대학 선정 '불후의 명저'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근대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소세키는 일본 화폐 천 엔짜리 모델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국민 작가'로서 일본 근대 문학의 토대를 굳게 다진 대표적인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문》은 소세키의 작가로서의 원숙함이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소세키는 이 작품에서 그전까지는 그린 적 없는 평범하고 세속적인 시정의 샐러리맨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처음으로 일상 세계를 사는 사람들의 범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세키는 《문》에서 전혀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근대적이고 명석한 문체에 매력을 느꼈으며, 《태엽 감는 새》를 쓰는 데 큰 도움을 받았음을 고백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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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달콤새콤한 사색의 시간... | 에세이,평론 2012-01-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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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달팽이 안에 달

김은주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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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소박한 기분 좋음, 그런 그림들과 새콤달콤하면서도 진지한 삶의 성찰이 담긴

진짜배기 ‘생각’들이 여백을 완성하고 있는 이 책이 왠지 쑥스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몰래 ‘김은주’라는 여자의 마음속 일기를 훔쳐보고 있는 소년 같은,

혹은 청년 같은 순수함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독히 치열한 삶의 격전장에서 돌아와 모처럼의 나른한 심정으로

따뜻한 차를 옆에 두고 소파에 길게 누워 그간 예사로이 흘려버렸던 내 삶의 정경들을

하나씩 천천히 느린 동작의 장면으로 꼼꼼하게 그러나 느긋하게 살펴보는 시간이랄까?

거기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나타나

삶의 거름이 되고 방향이 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즐거움, 보람, 행복, 진실의 울림들을 주는

바로 긍정의 사유의 얘기가 되어주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 책의 말미인 에필로그를 채운

“ 내가 쓰는 글만큼 나는 강하지 못하다. ~

내가 쓰는 글만큼 나는 용감하지 못하다. ~

내가 쓰는 글만큼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

내가 쓰는 글보다 나는 늘 뒤에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글이 나를 이끈다.”

는 작가 김은주의 고백은 간결하게 압축된 이 글들이

왜 그렇게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다가왔는지,

그 발견한 삶에 내재한 진실의 이야기들에

왜 그렇게 친근감이 들고 애정이 솟구쳤는지를 알게 된다.

 

가끔 격렬한 삶터에서 돌아와 치열함, 분주함, 소란스러움, 두려움, 공허감, 무력감, 실망감...

이런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이 책의 글들과 그림들이 기운을 돋워줄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진실들 - 남자와 여자, 사랑, 욕망, 드라마, 여행, 예술, 라면, 선물... -

이 아름답고 풋풋한 사색의 글들이 되어

지친 우리들의 마음에 흰 눈송이처럼 살포시 내려앉는

평온한 마음의 세계를 여기서 보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난 이글과 그림 뒤에 자주 웅크리고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위해, 정말의 생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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