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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로 시대를 일깨운다 | 소설,시 2013-06-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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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뿌쉬낀 저/석영중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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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혼란으로 들끓는 사회, 그래서 어느 누구도 감정의 격렬함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는 시대라면, 이를 말하는 문장이 평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뿌쉬낀’의 이 소설은 지극히 사적인 술회에 녹여 무덤덤하기까지 할 정도로 감정의 파고를 노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판과 힐난의 목소리를 감지케 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요란하게 지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깨어있는 지성을 말하는 세련됨이랄까?

 

19세기에 써진 이 소설은 18세기말(1770년대)의 크고 작은 민중 폭동과 반란이 빈번하던 러시아가 배경이다. 특히 실존 인물로서 황제를 참칭했던 “뿌가초프”라는 반란군 두목을 등장시킴으로써 리얼리티 문학에 다가가지만, 결코 사회성을 앞세우거나 참여 문학적 색채를 띠는 것은 아니다. 외려 낭만적이라 할 만큼, 개인의 연대기와 연애담과 무용담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의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의식은 저변에 도도히 흐른다.

 

귀족 가문의 자제인 “뾰뜨르 안드레예비치 그리노프(애칭: 뻬뜨루샤)”는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군에 입대하고, 소위보가 되어 변방 요새에 배치된다. 방벽은 물론 이렇다 할 군사장비나 병력조차 지니지 못한 허름한 요새이지만 사령관인 미노로프 대위, 그의 아내 등과 가족적 친밀감을 높이면서 점차 임지에 적응해 간다. 한편 소설의 제목인 대위의 딸, 즉 요새 사령관의 딸인 “마리야 이바노브나(마샤)”는 뾰뜨르와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만, 뿌가초프가 이끄는 반란군에 의해 요새의 침탈과 함께 부모를 여의고 고립되는 상황에 이른다.

 

뿌가초프와의 우연한 지난 인연의 덕으로 생명을 부지한 뾰뜨르는 이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지만 감금상태에 있던 마리야의 구원의 호소편지는 다시금 청년장교를 반란군의 점령지로 향하게 하고, 귀족 등 지배계급에게 잔인함과 공포의 인물로 인식되는 뿌가초프를 향하여 당당히 연인의 구원을 위한 도움을 요청한다. 반란군의 수괴이자 폭도로 불리지만 뿌가초프는 자신의 적일 수 있는 귀족가문의 청년장교 뾰뜨르에게 신의와 정의를 보여주고, 선의를 베푼다. 당대 기득권 계층인 귀족들에게는 폭도이지만, 민중에겐 결코 극악한 폭도의 무리가 아님을 우회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란군이 진압되었을 때, 뾰뜨르에게 반란군의 두목과 내통하였다는 혐의가 되어 유형 판결을 받게 하는데, 예카쩨리나 여제(女帝)의 폭력정치가 횡행하던 시절 무능한 귀족들의 위선과 허영, 파렴치함이 어떻게 권력이 되어 작동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뾰뜨르의 유형판결 소식은 그의 부모에 의탁하여 보호를 받던 마리야에게 전해지고, 뿌가초프와 뾰뜨르의 관계에 얽힌 사정을 잘 알던 그녀는 무죄를 청원하기위해 여제가 있는 도시로 향하고, 공원에서 마주한 우아한 여인과 뾰뜨르의 사정을 얘기하게 된다.

 

아마도 이 소설의 중립적인 기운, 치열하지 않음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마리야가 만난 여인이 바로 예카쩨리나 여제라는 것이고, 그녀가 뾰뜨르를 사면하는 것인데, 민중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기성권력의 모습을 통해 정치권력의 변화를 기대하고자 하는 작가 염원의 반영이지 않았을까싶다. 서슬 시퍼런 권력의 감시와 검열을 인내하면서 시대와 역사의 당위를 말하려 했던 뿌쉬낀의 모습이 투영되는 듯하다. 또한 연애소설이자 자비와 용서의 역사를 사적 수기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이 작품은 세상을 향해 말하는 방식, 변화의 제안 방식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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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도서]죽음은 소멸이외의 의미를 가지는가? | My Story 2013-06-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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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물음의 대상인 언어, 아니 그 무형적 실체성에 대해서 인간은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죽음 !' 일상에서 죽음을 항시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다가올 이 현상은 아마 부조리중에서도 최악의 부조리일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인간들의 의문은 헤아릴 수 없는 사유를 만들어 왔을것이다. 삶이 끝난다는 것의 의미는 진정 무엇인지, 소멸, 사라짐이라는 의미만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구태여 진정한 의미를 찾는 까닭은 무엇인지, 물을 필요조차 없는 단지 '무(無)' 그 이상도 이이하도 아닌 것은 아닌지... 게다가 종교와 심리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영혼과 죽음 이후의 존재를 상정하기까지 하고, 자연 순화의 고리에 연결하여 윤회를 말하기도 한다.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산 자들이 삶의 실체성에 공고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공상일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가오는 그림자에 대한 인식을 떨쳐내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이라는 책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내게 죽음의 이해를 통해 현재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어떤 명확성, 삶의 방향에 대한 이해를 제시해 줄 것 만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육체만의 실존 문제인가, 영혼, 혹은 정신이라 지칭하는 것은 육체의 부산물일 뿐인가? 더 나아가서 살아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근거는 진정 무엇인가?  죽음은 그저 생명의 박탈에 불과한 것인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죽음은 내게 오고 말 것이라는 확정적 필연성은 대체 어떤 관계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그렇다면 죽음은 악질이고 두려운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 것인가? 이들에 대한 케이건의 진지한 사유는 분명 내 삶의 의미와 의욕을 위한 어루만짐이 되어줄것 만 같다. 팔순이 훨씬 넘어버린 부모님들을 뵐 때면 더더욱 죽음 앞에 서 있게 될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매번 벼르기만 하다가 놓쳐버린 이 책을 비로소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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