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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통한 무의식과의 소통 | 인문,사회 2014-03-1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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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과 상징

카를 융 등저/김양순 역
동서문화사 | 201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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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은 내게 있어서 어떤 절실한 필요에 의해 수없이 반복해서 읽은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삶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으로 인해 무지하기 그지없는 내적(內的)상태에 도달하는 길을 찾으려는 간절함이었다고 해야 할까? 특히, ‘칼 구스타프 융’이 쓴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분명 이러한 내게 접근가능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꿈의 기능은 심리적 평형 상태 회복”이라는 정의이다. 아마 ‘프로이트’의 “꿈 상징의 원인은 억압과 욕망충족”이라는 주장의 연장이었다면 이 책은 결코 인연이 없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즉, “꿈은 하나의 사실이자 무의식 고유의 표현”이며, “정당한 이유에서 생겨난 인과(因果)적 현상”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꿈 자체에 대한 사실적 가치의 부여라는 무의식 접근로(接近路)로서의 꿈의 발견이다.

 

마음의 표출인 ‘의식’, 그리고 의식에 끝없이 정보를 보내는 ‘무의식’이 발설하는 정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본능의 영역에서 분리되어버린 의식이외에는 무지했던 내 마음에 다가가는 하나의 길을 찾은 것이다. 물론 이 책은 60년에 걸쳐 이룩한 ‘꿈과 상징’의 연구를 정리한 융 심리학의 입문서로서 꿈과 무의식, 통과의례, 집단 무의식, 마음의 성장패턴,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 등 개성화 과정을 비롯한 상징의 심리적 기원과 사례분석, 현대 물리학과 무의식의 상보성에 이르는 꿈의 상징성 연구의 걸출한 집약서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분석심리학에 대한 현학적 호기심만으로 대하기에는 오늘의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막대한 정서적 에너지의 회복, 차단된 잠재적 역량의 발견과 같은 인간에 대한 정말의 공부를 놓칠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무의식과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대지” 혹은 “태모(太母)”로서의 나무와 같은 ‘물질’이 지닌 정서적 의미를 말하면, 이를테면 나무(木)나 돌(石)에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거나, 달 정령 운운하면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이렇듯 관념에서 정서적 에너지를 몰아내고 무의식과 단절되어 버렸다.

 

1. 무의식의 존재성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은 이러한 정서적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심리적 균형이 무너지면 의식에 정보를 보낸다. 다만, 의식이 이 신호를 받아 들일지, 억압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무의식의 존재는 부정되거나,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개의 주체는 터무니없다고 반박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 분열 증세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분리된 마음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의식적 내용이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되살아나거나, 한 번도 의식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한다.

 

일상에 필요성이 사라지거나 불편한 것이어서 억압하여 치워버리거나 의식 속 모든 개념은 그 자체의 심리적 연상으로 무의식속에 침잠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스며든 냄새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옛 기억을 되살려내는 무의식의 존재를 알린다. 또한 우린 직관적으로 ‘뭔가 있는 것 같다.’라든가, ‘왠지 수상쩍다.’처럼 잠재적 지각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 ‘영감(靈感)’으로 천재적인 문학, 철학, 예술작품은 물론 과학적 발견에 이르기도 한다. 무의식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상실했지만 무의식은 이렇듯 인간 의식의 표층에 불현 듯 나타나 그 존재성을 알린다.

 

2. 꿈은 무의식의 표출이다

 

그런데 마음의 평형을 잃어 내적상태를 헤아려 그 불균형의 소재를 이해하고 싶어도 현대인은 알 도리가 없다. 아마 융의 공적은 이것이라 할 것이다. 프로이트를 넘어서 ‘꿈’ 자체가 무의식의 사실적 표출임을.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 기법’을 통해 억압된 욕망으로서의 꿈을 해석하는 데 그쳤지만, 융은 상징적 이미지로 구성된 꿈 자체가 꿈 꾼 사람의 심리적 균형 회복을 위한 사실로서의 현상을 말하고 있음을.

 

꿈의 분석을 통해 잊었던 본능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꿈은 이해하기 어렵다. 의식적 마음이 하는 이야기와 다를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꿈은 직접적으로 시원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불쾌한 생각이 주는 충격으로부터 잠을 보호하기 위해 이미지를 왜곡하고 변질시켜 참된 주제를 은폐시키는 ‘검열 기관’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융은 이것이야말로 무의식 상태에서 취하고 있는 본질적 상태라고 반론한다.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난 심리에너지 그대로의 표출로서 당연한 표상인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꿈은 원시적 사고나 신화, 제의(祭儀)와 비슷한 이미지나 심리적 연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고통스러운 잔재’라고 기억의 찌꺼기로 해석하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잔존해 온 심리적 요소, 즉 ‘원형’, ‘원시적 심상’으로서 잃어버린 정서적 관념의 중대한 맥락을 제공하는 예지로서 분석한다. 이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상으로 형상시키는 본능적 경향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융의 분석심리학에 있어서 ‘상징’의 이해는 꿈 분석의 핵심 토대가 된다.

 

3. 왜 무의식의 이해가 필요한가?

 

융은 현대 문명사회가 무의식과 소통하는 법을 상실함으로서 자연의 일원인 인간이 의식의 무지함과 교만으로 자연과 자신의 균형을 파괴하고 마침내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현대인은 “자기네 합리주의가 인류를 심적인 지하세계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무의식에 은밀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계획이나 결정에 몰래 개입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주인일 수 없다.”는 심리적 무능상태에 빠져있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간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개인의 정서적, 도덕적 자질에 달려있기에 통계적이고 평균적인 실재하지 않는 인류라는 추상적 관념에서 탈피하여 유일한 현실인 ‘개인’에 대한 본질적 이해만이 생명의 연속성, 행복, 평화, 안정적 삶의 유지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강조한다. 그래서 융은 탄식한다. “정신이었던 것이 지능과 동일시되고, 막대한 정서적 에너지는 지능이라는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고.

 

인간의 마음(무의식)에는 온갖 진화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여기에는 개인의 콤플렉스라는 개별적 역사가 있듯이, 원형의 성질을 띤 사회적 콤플렉스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인류 전체의 고뇌와 불안에 대한 축적된 정신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이 무의식과의 대화를 잃어버린 현대인은 비인간화되고 오직 지적 관념에만 몰두하는 무미건조함과 물신화로 타자에게 상처를 주고, 독선과 기만에 찬 이기심을 양육한다. 무의식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만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먼저 변화를 시작해야 타자도, 사회도 변화 할 것이다. 무의식의 이해는 오류와 왜곡과 무지를 바로잡고 내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된다. 우리 세계는 신경증 환자처럼 분열되어 있고 언제나 적대자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한다. 자신의 그림자와 사악한 행위인 무의식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본성을 제어할 방법조차 모르고 있지 않는가? 융의 꿈과 상징에 대한 언어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 ‘자기’를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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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사랑, 관능과 엘레지의 유쾌한 번역소동 | 소설,시 2014-03-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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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 해 여름

에릭 오르세나 저/이세욱 역
열린책들 | 200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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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들과 언어, 그리고 소중한 섬에 바치는 경의”라는 산뜻한 소개의 말 이상은 외려 이 작품을 누추하게 표현할 것 만 같다. 그럼에도 여기에 감히 덧붙인다면 우아함 넘치는 쾌활함과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아득한 추억의 향수를 가득 품고 있다고 할까? 얼마간의 거드름조차 순수와 고움이 묻어나는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의 작은 섬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시선과 건강성이 유쾌하게 지면을 꽉 채운다.

 

섬이라는 고독과 고립에 자유를 입히고 대양의 드넓은 상상력을 품고 있는 토속적 투박함이 물씬한 B섬에, 죽었기에 더 이상은 간섭할 수 없는 이들의 작품만을 느릿느릿 번역하는 번역 작가 '질'은 어렵사리 둥지를 튼다. 우연히 마주한 사제의 초대에 응하고, 본당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영어를 불어로 번역하는 자신을 빗댄 사나포선(私拿捕船)선장이란 소문은 마을 사람들에 퍼지고 그렇게 그는 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섬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어 “애쓰거나 권태를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미끄럼을 타며 가뭇없이 달아”나는 시간을 보내던 질에게 출판사에서 계약안과 계약의 현실성을 입증하는 거액의 수표, 그리고 살아있는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이 동봉된 번역의뢰 편지가 날아든다. 번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죽은 작가의 작품만을 작업하던 질에게 살아있는 그것도 번역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보코프의 작품이 “저는 곧 부당한 명성을 누리는 졸렬한 번역가들을 상대로 한바탕의 전쟁을 벌일 생각입니다. 운운”하는 자부심과 교만에 찬 편지들과 함께 도착한 것이다.

 

비가 줄줄 새는 집수리와 바닥이 보이는 생활고에 질은 나보코프의 작품 번역을 수락하지만, 이내 “어려서부터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쫓아다닌 탓에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이 성격 장애자의 문체에는 나비의 교태가 배어있었다.” 번역가는 나비의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과 변덕을 옮겨야 하는 끔찍한 장애에 부딪친다. 한 문장도 손을 대지 못한 채 우울한 날을 보내던 그에게 극(極)지대를 탐험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화단을 가꾸던‘생텍쥐베리’여사의 친절이 다가온다. 여름이면 박사논문을 쓰고, 무언가를 연구하기에 더없이 매혹적인 섬의 환경 탓에 몰려든 학자, 교직자들, 하물며 아이들 돌보미로 고용된 영국인 처녀들까지 “가족사이자 근친상간의 연대기인”나보코프의 소설 『에이다』의 번역에 돌입한다.

 

출판사가 있는 파리에 적개심을 가득품고, 번역가 질을 압박하는 무례에 저항하기라도 하는 듯 마을 사람들은 각기 나누어진 몫에 매달려 열성을 쏟는다. 그러나 그것엔 무언가 향긋한 관능이 맴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모녀가 나란히 우리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우리는 되도록 조심스럽게 두 여자의 비누 냄새를 맡곤 했다.”

 

“<She had been prevailed upon to clothe her honey-brown body.> 정말 옮기기가 쉽지 않군요.”

 

섬의 본당 신부가 이러한 섬의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성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그 부도덕성을 질책하고 손에 쥐고 있던 『롤리타』를 집어던지며, 신성모독자인 나보코프에 매달리지 말아야 함을 역설한다. 이것은 작품의 면면에 감도는 친화력과 유쾌함, 그리고 관능과 엘레지(élégie)풍의 서정성을 더욱 부추기는 기발한 에피소드로 마음에 들어찬다. 여기에 아르헨티나를 떠나 섬의 고독에 잠겨있는 ‘호세 마리아 페르난데스’의 감각을 통해 이 야릇한 섬을 가득 채우던 기운이 더해진다. “섬의 어디에나 색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中略) 향긋한 냄새로 미루어 근처 어디에선가 교접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에이다』가 발산하는 번역의 열기로 채워진 섬의 분위기가 이보다 잘 묘사될 수 있겠는가?

 

이윽고 호세의 무선통신기 TS801, 즉 전리층, 하늘까지 공모자로 활용하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은 전 세계의 불어권 사람들을 향하여 난해한 문장의 도움을 받는다. 일상의 언어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번역가들의 고뇌의 한 단면이리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전환, 아마 ‘노스탤지어’를 그저 ‘향수(鄕愁)’라고만 번역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듯이, 또한 자칫“생동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데다, 너무나 밍밍하고 시르죽은”것이 되고 말기에 까다롭기 이를데없는 번역가의 고충이 이렇듯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독촉에 시달리는 번역가, 다행스럽게도 나보코프는 매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의뢰 받은지 3년이 넘어서고, 드디어 수상자 선정이 임박했을 때 출판사 편집위원이 섬에 최후의 통첩을 위해 찾아든다. 이 파리로부터의 인물에 막연한 적대감을 지닌 섬사람들은 질을 위해 이 사자(使者인 동시에 死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리곤 노벨상 선정 발표일에 맞추어 출판될 수 있는 더 이상 변명을 꾸며댈 수 없는 이유있는 구체적인 최후의 날자가 통보된다. 낱말, 고양이, B섬의 사람들..., 자유와 오만불손한 독립성이 닮아 있는, 그러나 상상력과 사랑이 풍성한 그것이 『에이다』의 번역 완성본이 되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안에서 섬을 떠난다. 마치 본당 신부의 저주에 답을 보내듯이, 아니 번역의 고통스런 시련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자연과 언어가 주는 행복의 장면들이 우아함과 경쾌함, 그리고 익살맞은 웃음에 실려 한바탕 소동의 즐거움, 막연한 옛 추억에 묻히는 시간이 된다. 자신들의 토착어를 지키는 사람들, 돛배로 항해하는 법과 떠나는 법을 아는 사람들, 고독과 사랑이 풍성한 섬 ‘브레아’에 대한 작가의 경의에 독자의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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