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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하고 익살맞은... | 소설,시 2018-09-28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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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솔라

이언 매큐언 저/민승남 역
문학동네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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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성찰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고, 죄책감 없이 메이지를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감사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P 332 에서

 

 

이 문장은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비어드가 첫 번째 아내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을 때, 여우의 눈물을 흘리며 내심 쾌재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묘사에 한 인물의 인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삶에는 진저리를 치며, 어떠한 책임감도 갖지 않으려 하고, 성적 충동의 실현에 아무런 제한도 없어야 하는 그야말로 자기애와 이기심만으로 똘똘 뭉친 거짓말쟁이이자 바람둥이다.

 

소설은 이처럼 화려한 지성의 권위 이면에 위장된 진실, 그 위선의 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결코 결합될 수 없을 것 같은 노벨물리학상과 실종된 도덕,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는 권위와 돈벌이처럼 지성이란 허울 좋은 가면 속에 감추어진 탐욕과 추오의 모순된 융합의 현실을 거닐게 된다. 그런데 작가가 이언 매큐언이다. 문장의 섹시함으로 현존하는 소설가중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 썼으니 뇌를 척척 감싸 핥아대는 그의 혀 놀림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끔찍한 아버지가 될지 일찌감치 간파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로부터 탈출한 네 명의 전처에 이어 맞바람을 피우는 열여덟 살 연하인 다섯 번째 아내 퍼트리스에 대한 뒤늦은 갈망, 그리고 수치심으로 안달하는 나르시시스트,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에 무임승차한 융합이론으로 노벨상을 거머쥔 후 돈벌이와 섹스상대를 물색하는 데 여념이 없는 인물의 묘사로 소설의 문장은 시작된다. 노벨상의 권위에 올라타 여기저기 이름을 걸어놓고 들어오는 수입이 왠지 부족하고, 그래서 그럴듯한 공직을 찾던 중 온난화 대처를 위한 신생기술개발에 국가의 관심이라는 명분을 위해 설립된 재생에너지 연구기관의 첫 책임자로 부임한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관심 없는, 더구나 지구라는 범인류적 차원의 대응과 같은 인류애적 연민에는 더더욱 혐오의 말을 뱉어내기까지 하는 인간이 신생에너지 연구 책임자가 되었으니, 또한 퍼트리스와의 가정사로 골몰을 앓는 인간으로서 이것이 얼마나 허위에 찬 현실인지는 굳이 여타의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연구 과제를 선정해야 하는 책임을 안은 마이클 비어드는 가정용 풍력터빈 개발이라는 현실성이라고는 없는 제안을 하고, 이것이 곧 연구소의 핵심과제가 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성과에 편승해 귀족 작위만을 노리는 연구소 실무책임자라는 문외한인 정부파견의 고위관리에 일을 떠맡기곤 직위의 명예와 높은 연봉과 대우를 향유하며 열심히 국가예산을 소비한다.

 

실패할 프로젝트임을 뻔히 아는 인물은 공사(公私)의 지리멸렬함, 그 권태를 떨쳐내려던 중, 그럴듯한 초대장을 손에 넣는다. 지구온난화를 몸소 확인하러 간다는 명분을 안고, 극적으로 녹아내리는 빙하 탐사 파견단에 합류한다. 얼음조각가, 소설가, 화가 등 예술가와 단 한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북극 기후변화 탐사단의 실체는 조롱을 넘어선다. 탐사선이 정박한 항구를 향해 스노모빌을 타고 달려가는 마이클 비어드의 과장된 고난의 자기 묘사는 이 작품의 여느 해학과 풍자의 전경 중 단연 압도적이다. 파안대소라 할까? 터져 나오는 웃음과 눈물로 잠시 읽기를 멈추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극한 추위에서 벌어지는 101쪽의 해프닝을 읽다보면 기승을 부리는 폭염도 어느새 잊어버리리라.

 

집에 돌아온 비어드는 그에게 식물의 광합성을 이용한 태양광 에너지의 개발을 제안하던 연구원 톰 올더스를 발견한다. 아내 퍼트리스와 정사를 마치고 맨 몸에 자신의 잠옷을 걸친 젊은 녀석. 변명과 광자에너지 개발의 집요한 요구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비어드를 향해 달려오던 올더스는 대리석 계단에 머리를 부딪치곤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는 어지간한 미스터리 저리가라 할 만큼 치밀한 비어드의 조작이 빛을 발한다. 아내와 바람난 남자에게 살인죄를 덮어씌우곤, 아무런 죄책감도, 도덕적 책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일타 쌍피의 횡재에 발길이 가볍기만 하다.

 

죽은 연구원의 인공광합성을 이용한 태양광개발 연구 자료를 손에 넣은 비어드는 부지런히 자신의 연구논문으로 바꿔버리고, 수십 개의 특허권을 자기 소유화하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온난화를 일거에 해결하는 혁신적인 태양광자발전의 실현을 목전에 두기에 이른다. 거짓과 도둑질, 탐식과 도착으로 비대해진 기형적 인성을 지닌 지성, 아마 이러한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은 매큐언식 코미디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한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대처는 비어드란 인물만큼이나 추하고 난삽한 본성을 지닌 것이라고, 인류가 지닌 그 긴장감을 이 작품으로 조금이라도 해소하라는 위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정말 폭력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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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로스에서 존밴빌까지 | 에세이,평론 2018-09-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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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저
문학동네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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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영미권의 국내 번역 문학작품을 읽다보면 대개는 번역자 정영목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해외문학 작품을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쓴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아니 읽을 기회가 엄청 많았을 터인데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 올바를 것 같다. 번역된 책의 뒤편에는 거의 예외없이 번역자의 해설이나, ‘번역자의 말이라는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지만, 나만의 감상이 혹여 번역자의 글로 인해 변형되는 것을 꺼려하기에 항상 외면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외면해왔던 글들, 번역자로서 썼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들에 실렸던 그 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12명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일종의 문학 해설집이다. 여기에 그가 번역한 작품들과는 무관한 순수한 일상의 단상이나 그의 문학 예술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은 평론들이라 할 수 있는 에세이 22편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 신간 안내에 이 책이 눈에 뜨이자 곧 알아차렸던 것 같다. 내 고유의 작품 감상이 번역자의 해설과 뒤섞일 염려가 없는 상태, 즉 한 걸음 떨어져 번역자가 읽고 느꼈던 작가와 그 작품들의 감상을 함께 나눌 좋은 기회라는 것을.

 

1. ‘정영목이 통과한 작가들

 

<내가 통과한 작가들>은 지난 522일 타계한 필립로스를 비롯하여 존 업다이크, 존 밴빌, 코맥 매카시, 커트 보니것에 이르는 12명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론과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 인물을 필립 로스가 열고 있는데, 번역자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던 것 같다. 유태계 미국인이었던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줄곧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는 기록이었음을 해독해 주는데, 로스를 향해 뻔뻔스러울 정도로 전통적인 소설가라고 비아냥거렸던 바다의 작가 존 밴빌과의 비교 해석은 단연 압권이다.

 

내용이 뻔해지면 스타일도 뻔해진다라는 지론을 펴는 밴빌이 보기에 에브리맨의 평이한 스타일은 곧 삶에 대한 사유가 평이하다.”는 증거로 보였다는 것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두 작가가 그네들의 작품에서 동일한 모티브인 바다를 등장시킨 문장들을 읽게되면 그 사유의 판이함에 삶의 복잡성을 대하는 입장을 발견하게 된다. 해설자인 정영목의 로스를 위한 대변은 별도로 하고 그 다음의 이해는 독자의 몫이다.

 

내가 예순에 죽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던 주제 사라마구돌뗏목, “강인하고 과묵한 남성의 이미지로 굳건하게 각인된 헤밍웨이의 단편 작품을 통해 작가자신의 내면 치유를 향해 묵언적 평온을 지향하는 또 다른 헤밍웨이의 모습으로 안내하기하며, “미국의 소도시 중간계급의 삶에 천착했던 존 업다이크토끼 4부작을 중심으로 존 치버필립 로스의 평론과 어울려 더욱 작품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확대시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 ‘알랭 드 보통’, ‘코맥 매카시등을 새롭게 기억하는 읽기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소개된 모든 작가들에 대한 해설은 그들의 작품을 접하게 될 경우 분명 보다 깊은 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단 한편의 작품을 읽었음에도 강렬하게 내 마음을 지배하는 모더니스트 스타일리스트인 존 밴빌바다를 통한 짧은 평론은 그의 또 다른 회색빛 색조 소설을 기다려지게 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어둠 속의 웃음소리에 대한 웃음을 자아내는 메타 치정극으로서의 꼼꼼한 작품 해석은 그저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던 그의 작품으로 달려가게 만들기도 한다. 내겐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이들 작가들의 각양각색의 시선을 한 곳에서 발견하는 썩 좋은 시간이었다고 해야겠다.

 

2. ‘정영목이 읽은 세상

 

사실 <내가 읽은 세상>이라는 제목 하에 모여진 정영목의 에세이들은 기대하지 못했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번역자라는 직업적 편협성에 한 사람을 가두어두고 그 좁은 곳에 관념을 덧씌우고 있었던 내 편견 탓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22편 중 첫 세 번째에 수록된 칭찬과 성취에 선 사람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하는 야유할 권리라는 글에서 완벽하게 전복되고 만다. “칭찬하고 갈채를 보낼 때는 그저 박수만 쳐도 되지만, 자신을 비판하려면 야유하지 말고 예의와 격식을 갖추라고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론부에서 남에게 야유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갈채로 죽는 것을 막는 영리한 방법일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맺는데, 그야말로 그의 사유와 문장에 완전히 매혹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비가 정의에 우선하는 것을 가르쳐 준 할머니의 목소리, 김태영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 된다>, 여기에 순정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까지 가세하며 가족의 의미를 새기는 새로운 가족은 여느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초월하는 사유의 경쾌함과 깊이가 균형을 이룬 감동을 준다.

 

모두 엄선되고 시의성, 또는 지적 지평을 넓히는 글들이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에세이는 브레이킹 배드의심의 혜택, 두 편을 선택할 수 있다.

전자는 2014년 미국 에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의 삶에 펼쳐지는 삶의 여러 아이러니에 포커스를 둔 글이다. “세상이 자기를 보는 눈 세 가지”, 자신이 설정한 이미지대로 나도 나를 보고 세상도 나를 보아주는 눈이 일치할 때와 불일치 할 때 벌어지는 인간의 상황을 따라가며, 약자였을 경우의 원망, 강자였을 경우의 자기모독에 대한 세상을 향한 폭력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준다. 자신의 간절함을 정당화하는 순간 그것이 악으로 변해가며, 그 악을 선으로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견케 되는 여정은 불과 4페이지의 짧은 글임에도 거대한 장편소설을 읽어낸 듯한 감상을 주기까지 한다.

 

한편 의심의 혜택합리적 의심이라는 법적 용어를 빗댄 영어의 ‘benefit of the doubt'로 출발해서 세상의 이해에 감추어진 합리성과 투명성의 실체가 발하는 삶의 상황들을 알려준다. 단연 삶의 지혜가 농축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인 김수영, 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이문구에 대한 소박하고 친밀감 넘치는 평론 또한 진중하며 맛깔스럽다. 번역가 정영목이 아닌 독보적인 에세이스트로서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번역뿐 아니라 앞으로 그의 더 많은 창작 작업을 기대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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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 비동시대성의 위기 | My Story 2018-09-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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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비극23, ‘성안의 안 마당에 이르면 파우스트는 중세기사로 변장하여 헬레나에게 압운시를 가르치는 관능적 쾌락의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 있다. 고대와, 중세와 근대를 마구잡이로 널뛰며 도착한, 이 장면은 역사적 위치로부터 해방된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과 양식들이 공존하는별난 세계, 소위 비동시대성(Non-Synchronism)’이라는 말을 설명할 때면 빈번하게 인용되는 부분이다.

 

비동시대성이란 많은 개인들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문화적 또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 사태를 일컫는다. 이러한 양태의 탁월한 사례로서 파우스트는 예외없이 등장한다. 이 개념이 떠오른 것은 바로 지금 우리 정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질성을 바라보면서 문학의 기능을 새삼스럽게 생각게 된 탓이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혁기에 서있으며, 평화와 번영, 평등과 자연과의 공존 등 새로운 가치를 향해 있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더 이상 안보에 볼모가 되어, 불안과 경쟁, 성장과 차별의 수구적 경향에 머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가 그의 저술 Heritage of Our Times, 1932에 쓴 문장은 마침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개인들이 지닌 시대성의 논파 그것만 같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금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 오직 외적으로만 그렇다.

오늘 거리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동시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이들이 서로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의 많은 담론가들은 여전히  비동시대성의 역행적 의식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떠난지 오래된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의 마비된 인지능력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금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가치와 민심의 변화를 읽겠다고 선언했던 불과 3개월 전 여우의 눈물을 짐짓 흘리는 체했던 수구적 교활함의 태도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있으니 말이다.

 

니체 또한 선악을 넘어서에서 독일인들은 그저께의 사람들, 그리고 모레의 사람들이다. - 그들에게 아직 오늘이 없다.” 라며, 시대의 가치에 뒤쳐진 자신의 동족을 향해 외치기도 했으며, 프로이트는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Die endliche und die unendliche Analyse)에서 원시 시대의 용(dragon)들은 실제로 멸종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듯 수구적 가치의 망령이 여전히 발목을 잡아당기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혹여 나의 문화적, 정치적 의식이 현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이 사회에 비동시대성이 횡행하게 하는 존재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헤르만 브로흐의 소설 몽유병자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그에게 요하임과 루체나는 그들이 속한 시대, 즉 그들에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해준 시대에서

존재의 작은 단편들만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더 큰 부분은 어딘가 다른 곳에, (....)이 세계가 각기 다른 세기에 속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바로 그들이 동시대인들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불안정하고 서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마 이 때문이리라.”

 

문학 작품은 실로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제한된 공간속에 공존하는 역사적 비동질적인 사회적, 상징적 형식들을 예리하게 통찰해 낸다. 우리의 문학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성찰들이 발견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최근의 한국 소설들은 지나치게 현상적인 문제들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전환기에 선 나라들에서는 항상 세계적인 걸작이 탄생했다. 마침 우리도 그렇다.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거대한 발걸음을 구성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유의 가치들을 모색하는 문학 작품들이 많이 써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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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달문, 공생과 공존을... | 소설,시 2018-09-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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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선정 신간 10 리뷰 대회 참여

[도서]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저
북스피어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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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겉으론 조용해보이지만, 각자의 골방에 틀어박힌 수천수만 명의 독자가 문장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울고 웃으며 각자의 삶을 뜨겁게 뒤돌아보는 것이다. - P 184에서

 

 

누구나의 삶은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탓에 너무도 소중한 것이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숙명적인 물음이다. 위의 인용구절처럼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바로 이러한 물음, 진정 자신의 삶을 열성적으로 성찰하게 되는 시간이 되게 한다. 그런데 600여 쪽에 달하는 이 진지한 뒤돌아봄의 여정이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저리가라 할 만큼 소설의 힘에 굴복하여 소리치며 재미있어하는 소년이 되게 한다. 그렇다고 팔선녀와 사랑을 나누는 바람둥이 양소유의 편력과 같이 결여된 욕망의 충족에 대한 꿈같은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조선 영조대의 실존인물인 수표교 아래 비천한 거지 왕초였으며, 추한 외모 뒤에 사람에 대한 믿음의 고고한 품성, 그리고 반상(班常)을 막론한 모든 사람들에 위안과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광대 달문(達文)’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혹여 무소유와 인간애, 타인의 삶을 위로하며 기쁨을 선사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어떤 인물에 대한 도덕적 경외감이라고 주제를 피력한다면 이 소설을 협소화하는 고지식한 교과서적 설명이 되고 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달문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진정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절로 생각게하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소설은 매설가(賣說家)를 꿈꾸는 동대문 인삼가게의 어린 점주모독이 열여섯 살 수표교 거지 왕초인 달문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달문이라는 신비의 이름을 듣고 자란 모독이 상상한 괴물보다 더 못생기고 악취를 뿜어대는 인물에 끌리듯 다가감으로써 더없이 미천하며 추한 외모를 한 인물의 진짜 가치와 그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는 20여년에 걸친 성장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기간은빌어먹는 자에서 시작하여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자라는 7부로 분류된 달문의 인생을 기록한 전기이기도 하다.

 

거지 왕초에서 동료들로부터 버려진 어린 주검을 거둔 뒤 수표교를 떠나게 되는 달문, 모독의 작은 배려에 보답키 위해 인삼가게 점원이 되어 점주를 위해 자기책임을 다하는 인간, 의금부와 포도청이 좌우익으로 나뉘어 19년 만에 벌이는 산대놀이의 으뜸 광대로서의 달문, 기생의 조방꾸니가 되어 자신의 후원자로서 아버지를 잃고 인삼가게라는 터전을 상실한 모독을 일으켜 세우는 달문, 당대 최고의 재담꾼이자 춤꾼인 달문 자신의 이름으로 인해 야기되는 경쟁이란 틀을 피하기 위해 통신사의 일원이 되어 일본으로 떠나는 달문, 계속되는 기근과 탐관오리의 착취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놀이패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는 달문, 역모사건의 연루자가 되어 의금옥에 갇혀 모진 고문에 시달리는 모독을 위해 주동자로 지목되었음에도 친국장에 나서는 달문은 모두 타인의 삶을 위해 정작 자신의 크고 작은 상처는 기꺼이 감수하는 인간, 결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계산하지 않는 인간, 자기 편한 것을 따지지 않는 인간, 제 입을 찢고 코를 짓뭉갠 놈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귀천과 존비를 불문하고 그네들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투여하는 달문이라는 인간을 쫓다보면 그 속에 발하는 삶의 가치들, 의로움과 배려와 상생, 순수와 자유, 평등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 역모의 주동자로 몰려 모독과 나란히 금상(임금)이 심문하는 친국장에 선 달문의 장면일 것이다. 금상이 묻고 달문이 답한다.

 

모독을 믿느냐?”

사람을 믿습니다.”

  (.....)

과인을 믿느냐?”

믿습니다.”

과인은 당장 너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도 믿느냐?”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를 보고나서 정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믿는 겁니다.”                       (P 563, P 578 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의 이 항변은 인간이라는 존재자는 운명적으로 의타적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기꺼이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 보편의 운명을 통해 존재자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공생과 공존의 가능에 대한 이해를 각성케 하며,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인생의 중요 가치들을 반성하고 살피는 이 같은 사유의 환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모두(冒頭)에는 이야기의 구조인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암시하듯 모독은 달문에게 승려 성진이 양소유라는 자로 환생하여 여덟 명의 여인과 환락을 즐기지만 이것이 하룻밤 꿈임을 깨닫는다는 구운몽을 들려준다. 그런데 소설 역시 동일한 수미쌍관을 보여준다. 최초의 시작 문장이 마지막에 이르러 달문의 인생을 그려낸 모독의 완결된 소설에서 반복된다.

 

언제부터 달문達文이란 이름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내 또래 중에 부모로부터 그 이름을 듣지 않고 자란 이는 없었다....” (P 12, 610)

    

이야기의 모두(冒頭)에서 달문은 보여 줄 것 다 보여 준 뒤 체면 차리려고 몇 마디 훈계를 덧붙이는 꼴입니다.”라며, “뒤늦게 깨어나면 뭘 하겠습니까? 욕심입니다 그건. 지금 누리는 행복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 거라는 황당한 욕심! ”이라고 비판한다. 즉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처음은 같은 것이 아니며, 일어나지도 않는 허튼 수작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미(末尾)에 이르러 처음으로의 회귀는 삶 전체를 새롭게 곱씹기 위해서,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선다는 의미에서 해 볼만한 일이라며 의견을 뒤집는다.

 

시작과 끝이 맞닿는 이러한 구조는 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과거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온통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온 달문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던 모독, 아니 작가 김탁환의 애정과 존경의 배려였을까? 새로운 삶의 도래에 대한 가능성을? 이렇듯 이야기의 구조와 의미의 닮은 꼴을 새기는 재미가 더해지고, 산 모양의 무대구조물인 산대(山臺)와 가면극, 재담, 각종의 가무를 포함하는 산대놀이판의 묘사는 가히 그 디테일에서 상상력을 자극해대기도 한다. 특히 달문과 기생 운심(雲心)이 추는 검무의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풍부한 이야기들,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넘치며,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케 하는 재담꾼의 시작이자 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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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6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