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필리아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http://blog.yes24.com/kuju
리스트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필리아
童而習之,白紛如也 Thinking!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2·4기 책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4,643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My Favorites
나의 리뷰
소설,시
에세이,평론
인문,사회
자연과학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책임없는자유 새로운가치 지역연고주의 기회주의 21세기공화주의와공동선한국 최대행복 js밀 매킨타이어 폭력의거시물리학 폭력의미시물리학
2020 / 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필리아님~ 좋은 리뷰 .. 
좋은 리뷰 잘 읽고 갑.. 
글 속에 필리아님이 .. 
우수 리뷰어 선정되신.. 
왕관 달려있네요. 잘 .. 
새로운 글

2020-01 의 전체보기
평범한 것에 놀라는 눈, 자본의 본성을 배운다 | 인문,사회 2020-01-31 15:5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04383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더 저널리스트 :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저/김영진 역
한빛비즈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노동력을 판 노동자는 자기 삶의 8시간, 12시간, 24시간....조금씩 떼어 판다.

누구의 소유에도 속하지 않지만 떼어낸 삶의 시간에는 자본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 자본가에게 매여 있는 것이다.” - 본문 151, 임금노동과 자본

 

 

마르크스의 주저(主著)자본(Das Kapital)과 함께 이의 원활한 이해를 위하여 고병권의 북클럽 자본시리즈와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를 참고하며 더딘 속도로 내 본질적 사유체계를 확인하기 위한 읽기를 하던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편역(編譯)자의 소개말처럼 마르크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상을 구체화했는지, 그 맥락 이해에 좋은 역할을 해주리라는 기대에서였다고 해야겠다.

 

자본1편 제2교환과정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상품은 스스로 시장에 갈수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교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품의 보호자 즉 소유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은 물건이므로 인간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출처: 김수행 자본론』Ⅰ[], 2008420일 비봉출판사, 2개역판 9P108

 

굳이 이 문장을 인용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것, 지극히 평범하고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 마르크스의 시선은 그 행위에 내재된 의미의 밑바닥까지 들이밀고, 바로 그 심연에서 실질적 작동의 원천을 기어이 퍼 올려,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지 못했던 진실을 우리들에게 펼쳐놓기 때문이다.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 전제적 소유권을 행사하는 구매자인 자본에 끌려가는 자본의 내재적 폭력성을 함유하는 글이다.

 

마르크스를 오늘 읽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처럼 평범한 것에 놀라는 눈, 맹목을 맹목으로 보지 않으려는 관심의 눈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덤처럼 지금 이 세계의 체제인 자본주의가 지닌 한계와 그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올바른 지혜의 틀을 구축하고 내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왜 자본가와 노동자의 부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하는 것일까?’, 또는 최저임금은 진정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와 같은 물음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사유하는 지혜의 바다로서의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 곧 체제전복 모의인 것으로 몰아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에도 여전히 이를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긴 하지만 이젠 무시할 정도로 시민의 지적 소양이 높아졌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민주화된 우리의 사회가 있기까지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이래 무려 반세기에 걸친 부패와 독재, 유신, 폭력시대를 거쳐 왔다. 이에 대한 생생한 육성처럼 여겨지는 최근에 발표된 장혜령의 소설 진주에는 편집된 민주화 투쟁을 외치는 시국선언문의 문장들이 있다. 그리고 불법 연행, 감금되어 고문자가 읊어주는 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나는 불법조직에 가담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소설 진주128쪽에서 인용)를 울면서 받아쓰게 하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곧 돌아가게 될 겁니다.”라고 거짓 위로를 뇌까리던 소설 속 문장이 떠오른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되는, 자본을 축적하느라 노동력, 인간의 노동이 오직 착취대상으로만 취급되던 시기였다. 우리에게도 자본과 결탁한 권력, 권력과 자본이 유착하여 노동력의 축적가치를 독식하던 압축된 시기가 있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사용하던 수법이 바로 공산주의자 몰이, ‘빨갱이낙인찍기다. 이 파렴치한 말이 지금도 정치배들로부터 흘러나올 때면 그 추악한 저의에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곤 한다.

 

케케묵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자본의 성장과 축적의 집중이 진행되고 있다. 분업의 가속화, 자동화와 노동의 단순화라는 노동 경쟁의 극렬화로 인한 압박이 높은 실업율을 정상화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대대적인 설비와 기술개발 경쟁으로 생산비용 감소를 통한 자본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과열된 동요(본문 180)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자본의 생존을 위해서 끝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모순으로 가득한 체제의 불협화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옆의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들이 알지 못하고 겪는 자본의 내재적 폐해에 대해서.

 

1. 저널리스트 마르크스의 기사들

 

책은 17편의 기사와 노동임금과 자본이라는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설명서랄 수 있는 1847년 출간된 팸플릿으로 구성되어 있다. <The people's paper: 人民報에 실린 노동자 의회의 창립을 축하하는 편지를 제외하면 16편의 기사가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로서 게재된 1850년대의 영국중심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대부분 부르주아의 대변지 기능을 수행했던 <선데이 타임스를 비롯한 자본가들과 정치권력 계층의 곡해된 논리를 반박하는 형식의 글로 씌어진듯하다. 자본가들의 자기 계급적 이익을 위한 맹렬하고 저열하며 추악한 탐욕이 아마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번 달에도 런던에서는 기아 사망 사건이 또 여러 건이 발생했다....

메리 앤 산드리는 얄팍한 짚더미 위에서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발견됐다...”

(본문 30, <기아라는 형벌>에서)

 

공장주는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의 목숨이나 팔다리를 지켜주려고 하기는커녕....

움직이는 기계들의 마모비용을 어떻게 남에게 떠넘길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본문 119, <공장노동 현안 보고>에서)


이처럼 기사들의 내용은 온통 기아와 빈곤, 부상과 죽음의 위협에 놓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을 일회용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는 자본가들의 거침없는 축적의 열망, 욕망의 질주로 채워져 있다.

 

그 중 깊은 인상을 주는 몇 몇 기사가 시선을 잡는다. 그 첫째는 임금에 대한 당대 주류 경제학의 논리이다. 임금이란 공장주의 실질이익이나 추정이익에 대한 일종의 공동지분을 챙기는 것이라고 부르주아지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임금이란 자본가가 일정량의 노동력을 사기위해 기존에 축적한 상품, 즉 축적된 노동력의 일부분이다.” 노동력을 통해 축적된 가치자본이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불합리하게 착취당한 노동력의 생산 가치를 돌려달라는 의미이다. 게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요청해야 수용될 수 있다고 말하는 공장주의 말은 헛웃음까지 터져나오게 한다.

 

둘째는 세계 경제, 아니 경제 식민화와 관련한 영국의 대외 수탈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렬한 비판의 시선이다. 2차 아편전쟁으로도 불리는 애로우 호사건에 숨은 영국 자본가의 비열함과 탐욕이 혼합되어 만들어낸 상품시장의 강제 개방을 위한 침탈 행위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자본주의 민낯인 노동력과 생산비용, 상품 시장에 이르는 자본 축적의 순환에 내재한 폭력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즉 노동력을 쥐어짜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하며, 이렇게 초과 생산된 상품의 교환가치를 늘리기 위해서 대외 통상을 통해 판로를 확장하려는 자본가들의 세력이 벌인 야만적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 기록으로서의 기사를 통해 이론의 살아있는 사례를 접하는 횡재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2. 임금노동과 자본에 대해서

 

사실 내겐 노동자들을 위해 준비된 강의 자료였던, 이후 1849<신 라인신문>5회에 걸쳐 게재되었던 노동임금과 자본을 마침 읽는 기회가 되었다는 반가움이 더욱 컸다고 해야겠다. 이후 집필된 자본(Das Kapital)의 주요한 내용이 압축되어, 그것도 누구라도 쉽고 이해 가능한 글이 되도록 하려는 마르크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기회일뿐더러, 상호 틈새를 메워줄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동력을 말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설명해야 하고, 또한 인간관계와 그 역사성에 대한 선행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아무려니 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의욕 탓에 상품, 교환가치, 노동력, 임금, 거래, 화폐, 이윤, 사회적 관계, 생산비용, 축적된 노동, 생활유지수단가격, 실질임금, 상대임금, 자본, 이자수익 등 각 용어마다 수십 쪽에 이르는 설명으로도 부족한 것들이 불과 30여 쪽에 집중되어 있어 읽는 수고가 만만찮다.

 

임금 노동자들인 당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자기 계급적 인식과 부르주아지와 그들이 축적하려는 자본의 성격을 명료하게 인식시키는데 총력이 기울여진 저술이다. 노동력이 왜 상품인지, 상품이기에 여느 상품처럼 가격 결정하는 방법도 같다는 것, 상품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무엇을 뜻하는지, 즉 노동력의 가치가 왜 상승 혹은 하락하는지를 설명한다. 결국 상품가격은 생산비용으로 수렴하며, 이 말은 상품의 가격은 생산비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임을 확인시킨다. 그리고 생산비용에 따른 가격 결정은 상품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시간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라고 다시금 부연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의미인지, 예컨대, 면방직 공장 노동자는 면제품만 생산하는가? 하고 묻는다. 그리곤 그는 자본을 생산한다!” 고 알려준다. 그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다시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자본은 축적된 노동력이다.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의 교환가치 중 생활유지수단 만큼만 지급되고 나머지 잉여가치는 자본가가 축적한다. 그러니 자본을 축적된 노동력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축적된 노동력에 의해 노동자는 고용되고 또 생활유지수단을 의존하게 되는 것이니 노동자의 노동은 자기 자신을 얽어매는 기이한 형국이랄 수 있다. 자본의 본질이란 이처럼 노동력 착취를 근간으로 한 인간 역사 이래 아주 특수한 사회체제임을 설명한다.

 

더구나 이 순환 고리는 노동자의 임금 노동이 자기 자신 위에 군림할 별개의 부(), 그러니까 자신의 적대세력인 자본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뜻임을 알려준다. 이 결과를 통해 노동자는 생활유지수단이 주어지는 체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자본이 어떻게 성장해왔으며, 그 축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한다. 새로 창출되는 가치에서 살아있는 노동이 차지하는 몫과 축적된 노동, 즉 자본이 차지하는 몫과의 관계인 상대 임금(relative wage)'을 이해하게 되면 임금과 이윤의 일반법칙의 절반은 안 것이 될 것이다. 이는 21세기 세계화된 상품시장에서 경쟁하는 오늘날의 거대 자본가들 간의 경쟁, 실업율의 지속적인 증가 현상, 소득 간극의 극단적인 확대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앎의 과정이 된다.

 

상대임금은 실질임금이 오르는 비율이 이윤의 증가비율에 미치지 않을 때 떨어지게 된다.

... 따라서 자본이 급속히 증가하면 노동자의 수입도 늘어나겠지만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를 가르는 사회적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권력도 커지며....” (본문 174쪽에서)

 

이쯤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자본주의라는 생산방식은 역사발달 속에서 아주 특이한 관계에 속하는 사회체제임을 이해하는 것, 자본은 노동력의 축적가치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수고는 충분히 보상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정성과 불편부당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알아야 요구할 수 있으며, 왜곡과 그릇됨을 분별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라고 관심을 지니지 않거나 혹은 몰랐던 것으로부터 그 원천과 본질을 통찰해내는 마르크스의 눈으로부터 더 한층 배우게 되는 시간이 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8        
The art of loving, 사랑한다는 것(1) | 나의 리뷰 2020-01-29 07:0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03554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03:30 ~ 04:20

2) P 198 ~ P214

3) "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사랑의 능력을 집단적으로 상실해가는 이 세계에 대한 저항으로 집필되었다는 이젠 잊혀져가는 '에리히 프롬'의 저술이다. 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사랑의 본질을 비켜난 상품 진열장에 전시된 구매욕과 자신의 교환가치를 고려한 거래의 집착에 불과한 것들의 오해가 진실로 둔갑한 난감함만이 설쳐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랄 수도 있겠다. 

【출처: 동서문화사 刊, 『소유냐 삶이냐/ 사랑한다는 것』2013.8 2판 4쇄, 201쪽】


우리들은 진정 사랑을 알고 있는 것인가? 돈, 지위, 권력,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배우고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전혀 배우지도 힘을 들이지 않는다. 이 책의 표지를 열면 머리말에 앞서 '파라셀수스' 가 쓴 문장의 한 구절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늘면 늘수록 
그것에 대한 사랑도 또한 커진다."


사랑은 기술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운 좋은 사람이 '빠지게'되는 감각()따위가 아니다. 연인을 갈망하고 연애의 우여곡절을 얘기하는 영화를 관람하며 사랑을 읊는 시시콜콜한 유행가사에 귀기울인다. 또한 넘쳐나는 유혹의 기술을 사랑의 심리학을 들먹이며 너절하게 늘어놓은 황당한 자기계발서를 넘겨 보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랑을 위해 음악, 건축, 의학, 하물며 요리 레시피만큼이라도 배워 두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왜 그러할까? 저자는 이러한 그릇된 생각에 깃든 세 가지의 전제로 제 1장을 시작한다.


그 첫째는 사랑의 문제를 자신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지않고, 사랑받는 문제로 여긴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스럽게 보일까에 대한 문제로, 권력과 부, 몸매와 옷차림의 맵시처럼 인기와 성적 매력의 혼합체로 인식하는 것, 둘째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이 사랑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는 것, 상호 유리한 교환이라는 관념에 입각한 바람직한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한 양질의 인간상품을 고르는 것이라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경험을 사랑하고 있다는 지속적 상태와 혼동하는 것이다. 고독했던 개인에게 놀랍고도 기적같았던 고강도의 흥분된 감정이 사랑이라 여기는 착각에 기대는 것말이다. 대부분 실패를 반복한다. 아마 다른 활동이나 사업같았으면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조사하고 의미를 연구하며 그 실천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술이다. 이론을 완전하게 습득하고, 실천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다. 

실행결과를 융합하고 자기 나름의 직관을 얻을 때까지 수많은 실천을 거친후에야 

비로소 숙련가가 되는 것처럼"   - P 204 中에서


4)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격렬하고 난폭하며, 일시적이고 주기적인 폭풍으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너무 삭막하고 두렵기조차 하다.  에리히 프롬의 이 저술은 사랑이란 무엇인지 배우며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야 하는 까닭을 알게 해준다. 왜 끊임없이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 동일한 질문에 직면하는 것일까를, 그 이유를 함께 사유하며...



소유냐 삶이냐/사랑한다는 것

에리히 프롬 저/고영복,이철민 공역
동서문화사 | 2008년 01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4        
[스크랩] [서평단 모집]『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 | My Favorites 2020-01-28 14:54
http://blog.yes24.com/document/1203323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어클럽


[예약판매] 살갗 아래

토머스 린치외 저/김소정 역
아날로그(글담) | 2020년 02월

 

신청 기간 : 2월5일 24:00

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2월6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페이스북을 사용하신다면 포스트를 페이스북에 공유하신 뒤 댓글로 알려주세요!!

(포스트 상단 우측 페이스북 아이콘 클릭/모바일은 하단 우측)


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 입니다.

geuldam4u@naver.com  | 2020-01-22 


"당신 몸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나요?" 누군가 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왜곡된 어떤 기억 때문에 장미향을 역겨운 냄새로 인식하는 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적색 신호를 보내며 배배 꼬이는 장? 아니면, 추운 겨울날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아버지의 크고 따뜻했던 손의 감촉이나 어린 시절 가족 중 누군가의 귓불을 만져야만 잠들 수 있었던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아주 잠깐 생각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다니! 살갗 위의 솜털부터 뼛속 깊은 곳까지,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딸려 나온다. 영화 "메멘토"처럼 기억해야 할 것을 문신으로 새길 필요도 없이 삶이 내 몸에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살갗 아래』는 바로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말하는 시인과 작가 15명이 살갗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감춰왔던 진실과 온몸에 전율을 일으킬 만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마 그 어떤 누구라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자기 몸에 깃든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어질 것이다. 




서평단 여러분께

1. 수령일로부터 2주 이내 리뷰 작성 부탁 드립니다(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어려우실 경우!)

2.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http://blog.yes24.com/document/4597770)

 3. 해당 서평단 모집 포스트를 본인 블로그로 스크랩 해주세요^^!

 페이스북을 사용하신다면 포스트를 페이스북에 공유하신 뒤 댓글로 알려주세요!

 4. 리뷰에 아래 문구를 꼭 넣어주세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5. 리뷰를 쓰신 뒤 함께 쓰는 블로그 ‘리뷰 썼어요!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세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습관으로 완성된 삶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 인문,사회 2020-01-27 10:1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02978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해빗 HABIT

웬디 우드 저/김윤재 역
다산북스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인내와 끈기라는 골방에서 나오라!” - P 171에서

 

의지력이 그렇게 약해서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하겠어?’와 같은 인내와 끈기 부족을 나무라는 말은 주변에서 빈번하게 들려오는 표현이다. 국어사전에 담긴 뜻풀이를 보면 어떤 일을 이루고자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힘이라고 의지력(意志力)을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지속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중단한 나약한 마음 탓이라고 자책하며 좌절감과 무기력을 곱씹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웬디 우드(Wendy Wood)’본래 의지력(Will Power)이란 것 자체가 대단히 나약하다.”, 또한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근본요인이 의지력 부족이다.’라는 명제가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인간 내면의 충동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전혀 다른 곳에서 문제의 답을 찾는 격이라고, ‘인간 행동의 촉발과 지속에 관여하는 심리적 동인(動因)을 추적한다. 책은 바로 인간행동의 변화와 지속에 대한 심리학적 기반의 방법론적 연구결과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사회심리학의 문을 연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 그의 주저인 사랑의 기술에서 썼듯이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삶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론을 배우고 그 이론을 실천하는 것으로서의  삶의 기술.” 이 책은 이러한 의미에서 삶의 필수 기술이라 하여도 무방하리라. 인간 행동의 43%를 차지하는 습관의 형성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1. 의식적 자아와 비의식적 자아

 

마음에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힘없음을 지적하는 의지력 박약이라는 힐난의 목소리에는 의식적 자아를 끊임없이 채근하여 마음에 쌓인 관성을 극복해내라는 주문이 담겨있다. 사실 중단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인내심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며 버티려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의 빛을 비추어준다. 인간 행동을 이끄는 결정적 요인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절차에 의해 작동되는 다수의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결코 의식적 자아와 같은 단일한 총합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지력이라는 의식적 자아는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실행제어(Executive Control)'기능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고 작업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의식적 자아 없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있다. 세수하기, 이 닦기, 옷 입기, 매일의 출근하기...., 내 의지를 다그치지 않아도 일상의 행동 패턴이 되어 자동적으로 실행하는 것들, ‘습관이다. 습관은 이처럼 실행을 제어하는 의식의 간섭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비의식적 자아이다.

 

비의식적 자아이기에 우리는 습관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삶의 많은 행동이 습관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의식적 자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인지적 편향성에 기초한 과대평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행동에 앞서 생각하고, 느끼며, 의도를 지니고 실행한다는 이 신념을 지칭하는 내성착각(Introspection Illusion)'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존재할 정도로 의식은 비의식적 자아에 의한 행위를 가로채기 일쑤다. 이 그릇된 신념 때문에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다. 실행제어기능을 계속하여 작동시키느라 의식적 자아인 의지력은 고갈되고 스트레스가 되어 정신을 압박한다. 이때 우리는 지속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맹렬하게 검토하기 시작하고, 의식은 손쉽게 합당한 이유를 찾아 중단을 선언한다. 더 이상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헬스장은 그만 가기로 한다. 어학원의 발길도 끊는다. 의식은 지속성과는 무관한 영역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러니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본연의 영역인 비의식적 자아인 습관에 탑승하는 것 또한 마땅한 선택이 될 것이다.

 

2. 습관 형성, 그 작동 설계

 

이제 더 이상 내성착각의 신념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의지력 실험으로 스트레스를 초대하여 버텨내는데 의식을 소진시켜 정작 사고(思考)가 요구되는 일에는 소용이 닿지 않는 어리석음을 중단해야 할 충분한 과학적 입증을 책은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노력이 필요 없는 정신의 자동 활동 영역에 더 많이 넘겨줄수록, 마음(의식)본래 처리해야 일(Proper Work)’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의식적 평가, 분석을 하지 않고 외부 자극에 자연스럽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은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침 출근이나 등교처럼 특정한 상황에 똑같은 결정을 반복하는 단순화된 행위를 자동으로 하듯이 습관의 힘은 삶을 단순하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간절하게 찾고자 했던 것은 힘들이지 않고 지속 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가가 될 터이다. 습관은 쾌락의 경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행동이나 행동 자체에 재미, 짜릿함, 평온한 기분 좋음, 황홀감과 같은 뇌가 인식할 수 있는 보상이 내재되어 있도록어떤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보상을 기억한 뇌는 의식의 도움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습관이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 보상이 멈춰도 마치 이전에 받았던 보상의 유령이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습관은 작동하여 그 형성여부의 판단까지도 검증케 한다는 것이다. 습관 형성의 기본 조건은 이처럼 실로 간단하다.

 

B(행동) = f {P(사람), E(상황/환경)} , 역장 이론

            - 독일 심리학자, Kurt Lewin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이 제시한 역장이론은 습관형성의 기본 조건을 토대로 습관 설계의 중요한 접근 단서를 보여준다. 인간 행동은 특정한 힘에 영향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과 상황(환경)에 의해 가해지는 추진력과 억제력과의 끊임없는 마찰, 투쟁이다. 결국 이들 외부의 힘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에 맞추어 재배열하고, 마찰력을 최소화하여 망설이거나 주저할 틈 없이 배치해 내는 것이 습관의 설계라 할 수 있다. 이론을 학습했다고 바로 터득되겠는가? 책은 미주알고주알 섬세한 설명과 입증사례들이 빼곡하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최고의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라! 그러면 보상을 맛본 뇌는 우리가 습관설계를 터득할 때까지 아무런 수고도 끼치지 않고 반복하여 이 책을 읽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습관이란 거부감이 최소화된 익숙한 생활 패턴이다. 그래서 이 익숙함에 작은 균열만 있어도 의식적 자아가 개입하여 조정하려 든다. 의식이 끼어드는 순간 습관형성은 실패하고 만다. 익숙함을 만들어 낸 시간, 장소, 도구, 사람, 행동들과 같은 일관된 상황 신호들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낼 때 습관이란 것은 비로소 발동 된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맛본 뇌는 동일한 상황에 동일한 반응(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목표로 한 행동과 짜릿한 보상을 연결하기만 하면 일단 습관의 최초 시작은 이루어 진 셈이다. 여기에 더해 습관 형성에 일조하는 추가 전략들을 융합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습관 형성의 과학이라 자부하는 저자의 선언처럼 기꺼이 실천으로 이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이란 삶에 유익한 행동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삶을 갉아먹는 나쁜 습관 또한 있으며, 습관의 수정 또한 필요한 것이 인간의 삶이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의식적 자아가 위축되어 자동 조종모드인 협소해진 습관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은 진부한 삶에 매몰되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때문에 새로운 습관 형성 작업 못지않게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습관의 무분별함에서 탈출하기 위한 기술의 습득을 말하는 책의 마지막 장은 더욱 몰입하여 읽게 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 습관의 권태,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

 

반복은 어떤 행동에 나서려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그 행동에 대한 감각을 약화시킨다.”      - P 241 에서

 

매일이 똑같은 진부한 일상처럼 속박이 되어버린 습관도 있다. 습관은 상황에 의존한다고 했다.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그저 길들여진 데로 계속하여 하는 일들이 있다. 마치 오래된 결혼 생활에서 오는 습관의 권태처럼. 또한 현재의 환경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갇혀있는 느낌과 같이 변화의 모색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도 있다. 이때 우리는 반복적인 필연성을 능가하는 무언가가 필요함을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습관의 형성이 아니라 습관의 단절이 요구되는 것이다. 상황신호에 민감한 습관의 익숙함을 파괴하는 것, 관성에 저항하는 것 역시 역장이론에 답이 있다. 행동의 변수인 상황에 미세한 흠집, 혼란을 일으켜 의식적 자아가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의식적 결정의 필요는 개선점의 발견, 새로운 행동의 요구를 통한 변화로 이끈다. 그런데 만만찮은 나쁜 습관도 있다. 손톱 물어뜯기 에서부터 흡연, 알코올 중독에 이르는 물질 남용 장애와 같은 뇌 작동 방식과 뇌구조 변경까지 동반하는 악성습관에는 그것 이외에 다른 보상 활동이 존재치 않다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박적 성향의 중독성 습관에도 상황지배의 속성이 있기에 시공간적 단절을 통한 마찰력 증대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직장(), 거주 환경을 변경시키는 것은 현대인에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지만 삶의 질을 위해서는 고려치 않을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반복적 성격을 지닌 혼자만의 의식(儀式)리추얼(Ritual)'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어쩌면 비의식적 자아인 습관에 올라타기로 한 이상 이 의식의 행위가 중독성 습관의 단절을 위한 보완적 방법론이 될지도.

 

4. 결 어

 

습관으로 완성된 삶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 P 342 에서

 

인간 내면의 충동적 본성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며, 이것을 통제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에 대항해서 의지력이라 부르는 의식적 자아는 상대적으로 나약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생물학적으로 이 둘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촉발된다. 비의식적 자아인 습관의 속성을 파헤친 저자의 연구 노력은 지속적 행위를 통한 목표달성에 이르는 수많은 삶의 과제를 성취하는데 파격적인 도움을 줄 것 같다. 낭비에 가까운 의지력과의 소모적 싸움이 야기하는 실패와 좌절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는, 나아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론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이 저술은 진정한 '삶의 기술에 관한 과학의 전범(典範)'이다. 아마 의지박약과 노력만능이라는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단 하나의 과학이라는 저자의 당당한 선언에 어찌 이의를 달겠는가. 한 번 읽고 책장에 넣어둘 책이 아니다. 삶의 바람직한 목표의 실천을 위해, 습관 형성의 반복적 자기학습의 교본으로서 내내 참고하여야 할 저술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이해는 아닐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4        
몸으로 된 글을 읽는다 | 에세이,평론 2020-01-19 17:3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00947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2019 올해의 책 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물질적 삶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윤진 역
민음사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의 삶에는 두 소녀가 있고 내가 있다. 방파제의 소녀, 연인의 소녀,

그리고 가족사진 틀 속 소녀가 있다. - P 99 에서

 

어느 책이든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 맞다면, 이 책은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의미일까? 이라는 제목을 지닌 비교적 긴 글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나는 책 속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말하고 있다.” 라고. 그래서 독자인 나는 할 수 없이 책 바깥의, 더구나 존재 이유를 지니지 않은 그 무엇을 읽게 되고, 그것이 분리 불가능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몸과 글임을, 어딘가로 빠져나갈 곳 없이 꼭꼭 뭉쳐진 폐쇄된 비극의 한 덩어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쓴 책 중에서 있는 그대로 손 댈 수 없는 책들이 있다고, 그것들을 열거한다. 80년 여름』 『대서양의 남자』 『부영사』 『M.D.』 『연인』 『고통』 『롤베스타인』 『방파제까지, 여기에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없다. 이 책 아닌 책을 읽으면서 내 무의식 어딘가에 불편한 감정을 지핀 인간의 출현과 연결 짓게 된다. ‘제라르 자를로(Gerard jarlot)', 실명 언급 없이 이 인물로 인한, 이 인물에 대한 구술, 밤늦게 온 마지막 손님, 거짓의 남자등 여러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1956, 올렝의 테르트르 성()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여정의 이야기에서, 그 남자로 인해...서로에게 다가 갈 때마다 우리는 두려웠고 떨었다. ...광기였다. ...이상한 욕망을 마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미친 듯 섹스에 탐닉케 하던, 결코 글쓰기의 층위로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검은 덩어리의 실체를 말한다. 아니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곤 조금 가라앉아서 그냥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썼다.”라고 쓴다. 아마 이 시기였을 것인데, 연회와 정치집회를 드나들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죽음과 너무 근접했던 것일까? 죽음이 스며든 억제된 격렬함, 그 모순된 사랑의 이야기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타협없는 순수한 욕구, 죽음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어떤 두려움의 쾌락에 대해서.

 

거짓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려 했지만 결코 완성에 이르지 못한 미완성 원고가 뒤라스의 플레야드 전집에 실려있는 모양이다. 그 남자에 대해 쓰려고 몇 번 시도했었다. 그런데 시작만하면 이내 그의 거짓말이 그를 가려버렸다.” 절제되었으면서 동시에 거칠고, 무서우면서도 예의바른 난폭한 사랑을 할 줄 알았던 완벽한 남자로, 또한 여자들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비극적 흥분으로 치닫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욕망에 관해서는 거짓말이 없다고 뒤라스는 말한다. 그러나 고통은 남았다.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떨림도 그대로다.”라고 또 쓴다.

 

이 지면의 많은 부분이 그녀가 알코올 중독에 이른, 그와 관련한 기억들로 그득 차 있다. 환각과 고통, 가까이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며, 그것은 그대로 두려웠고 떨리는 이상한 욕망과 연결되는 것만 같다. 심연에 똬리를 틀고 앉아 결코 그녀를 풀어줄 리 없는 무서운 욕망(?), 죄의식(?)...죽음의 유혹(?)...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내 책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모두 '롤베스타인(Lol V. Stein)'에서 비롯한다.” - P 39 에서

 

에스 탈라의 무도회,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라는 사실을 알았고, 자기에게 불리한 그 결정에 온전히 동조했고, 그래서 광기에 빠진여인, 롤베스타인. 눈이 밝고 경솔하며 무모하다. 또한 자신의 삶을 망치며 모두 겁을 먹고 길거리와 광장을 두려워하며 행복을 기대치 않는 여자. 뒤라스는 사진 속 자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려, 비현실적인 좀처럼 보게 되지 않는 그 낯선 자신을 보려 소설을 썼던 것만 같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비극성으로 똘똘 뭉쳐진 자신에게 출구를 열어주기 위해서. 그러나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 환각의 요구는 그녀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이 책 물질적 삶을 읽게 된 목적(?), 동기가 있다. ‘미셸 투르니에가 묘사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대한 인종적이고 가부장적 편견으로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이다. 째진 눈과 중국 광동성 어딘가의 얼굴에 가까운 혼혈이라고, 그래서 그녀의 소설 연인(L'Amant)15살 소녀는 뒤라스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일 것이라는 추측의 내용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분한 마음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뒤라스 어머니와 중국인의 불륜에 의한 출생이라는, 그래서 그녀의 모든 작품을 격하시키려는 은폐된 악의가 보이는 글의 반박을 위해서.

 

뒤라스는 얘기한다. 백인 남자들이 소설 연인을 소비하는 방법을. 연락선, 사이공 야경, 식민지의 잡다한 것만 본다. 백인 소녀와 중국인 연인은 보지 않는다. 인종적 거부감, 백인 우월적 인식의 손상으로 정작 소설 본연의 문장을 해독하지 못한다고. 이 작품에 깃든 기억들이, 글을 쓴다는 것, 어머니의 청결과 관련한 의미에 대해서, 소설을 이루는 그 내용의 사실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반복적으로 구술되는데, 여기서 근친상간의 욕망과 함께 작은 오빠의 기억을 떠올리는 구절은 깊은 인상을 준다.

 

그는 나를 집어 삼킨다. 그의 힘과 부드러움이 나를 무너뜨린다.

살갗, 작은 오빠의 살갗, 똑같다.

. 똑같다.” - P 51 에서

 

그리고 고통스러운 분노의 눈을 하고 검은 외투를 입은 환각 속에서 마주하는 남자를 애기하는 책의 마지막 글인 밤에 나타나는 사람들에서 뒤라스의 글 또한 의미심장한 시사를 던진다. 출생이후 나의 존재이유였던 혈통을 환기시키려 했을까. 그는 유대인이거나 내 아버지였으리라. 혹은 다른 무엇일 수 있다.”

 

그녀의 존재이유가 되는 혈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푸른 눈의 검은 머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중국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시절, 병석에 내내 누워있던 아버지. 그럼 어머니는? 늙은남자(미셸 투르니에)의 망령된 소리에 현혹된 것 같다. 대신 마르그리트의 작품세계, 그리고 한 작가의 삶의 지난한 투쟁을 함께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투르니에를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모든 사소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그래서 어둠 속에 이미 있는 것에 대한 해독으로서의 글쓰기로서 써진, 일흔 두 살에 구술된 이 글들은 한 인간의 잊을 수 없는 흥분과 쾌락의 신호, 성애와 고통과 죽음, 모성과 사랑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그녀의 글은 모두 몸인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호감의 일정부분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게 된다. 말 도 안 되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뱉어지는 말, 그 몸의 말에 대한 고통스러운 믿음, 그 떨림의 이야기에 취하는 시간이 된다. 그녀의 삶을 출구 없는 비극성이라는 이 압축된 문장에 다 담아낼 수 있을는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7        
1 2 3
진행중인 이벤트
트랙백이 달린 글
내용이 없습니다.
스크랩이 많은 글
[서평단 모집]『사랑 광기..
해석에 대하여
[서평단 모집]『반지성주..
법의 무지
많이 본 글
오늘 129 | 전체 422344
2007-01-16 개설